어제 친구가 이르게 갔다. 영안실에서 지상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받은 그가 몸을 태울 시각 경주 남산에 올랐다. 혈류를 막은 다량의 알코올이 산행을 무겁게 하지만 죽음을 다녀온 따뜻한 양광은 잊지 않고 봄의 발효를 알린다.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는 음식물처럼 세월은 은밀히 변했고 죽지 않는 석탑들만 장기를 통과한 씨앗처럼 남아 천 년을 버티고 있다. 금오신화를 쓴 김시습의 용장사지와 마애불, 석탑들을 지나 금오산 정상에 오른다. 남산을 마주한 망산 뒤편 산들이 신라여왕들의 젖무덤 같은 부드러운 곡선을 봉긋 세울 때, 삼릉을 둘러싼 빼곡한 노송들이 고개 숙인 남자처럼 남아있는 정력의 분출을 애써 갈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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