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연극과 공간

나에게 연극 작업은 미지의 공간 탐험과도 같다. 이 공간에는 별처럼 많은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도대체 이 공간의 깊이가 어느 정도이기에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쉼 없이 토해질 수 있는 것일까?

연극은 어떻게든 공간 속에서 관객과 만나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창조된 공간의 모습이 바로 연극의 모습이다.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창조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공간은 어떤 방법으로 관객과 약속이 이뤄지는지에 따라 연극의 형태가 결정된다. 관객 입장에서 보자면 어떤 공간 속에서의 연극이든 간에 그 공간은 바로 허구의 공간일 뿐이다. 그렇기에 제아무리 현실을 잘 담아낸 연극이라 할지라도 관객이 그 공간의 존재 자체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연극은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다.

연출 작업의 시작은 바로 그 공간을 연구하고 결정하는 데 있다. 연극은 언제나 일정한 가로 세로 높이의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는데 그 작은 공간은 연극이란 마술로 우주보다 넓은 공간으로 창조된다. 유한한 공간에서 무한함을 창조해 내는 것, 바로 이런 점이 연극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공간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일반적인 몇 가지 오류를 생각해보고 싶다. 우선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집착한다. 예를 들어 큰 창고처럼 빈 공간에 덜렁 의자 하나가 놓여 있는 그림을 보면서 무엇이 보이는지 일반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대부분 의자가 보인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면 의자가 차지한 공간보다도 창고 전체의 공간이 훨씬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연극적 가능성은 바로 의자를 뺀 나머지 공간, 즉 비어 있는 큰 공간에 있다. 빈 공간의 가능성을 믿고 공간창조 작업에 접근하는 것이 연출 작업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다음은 편견과 인식의 오류다. 미술 수업 중 ‘거꾸로 된 그림 그리기’라는 것이 있다. 대개 피카소가 그린 작곡가 스트라빈스키 소묘를 보이는 그대로 그리기 연습을 하는데 피카소가 그린 그림을 거꾸로 놓고 보면서 똑같이 따라 그리기 연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정상적으로 놓인 그림을 그릴 때보다 거꾸로 놓인 그림을 그릴 때 대상을 더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경험한다. 거꾸로 된 그림 그리기는 오로지 보이는 대로 그리면 매우 쉽지만, 알고 있는 형태를 의식해버리면 자신도 모르게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없게 된다. 그림 그리기 연습처럼 공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정확하게 공간을 바라보지 못하고 인식의 오류를 범할 때가 많다. 내가 공간을 결정할 때 도전하는 문제는 보이지 않는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결국 관객에게 보여지는 공간을 통해 믿음을 얻고 보이지 않는 무한한 공간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며 바로 그 믿음을 바탕으로 무대에 펼쳐지는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바로 그 이야기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객은 그 질문의 답을 고민하며 극장을 나서게 될 것이다. 분명한 건 내가 추구하는 공간은 유한한 공간에서 무한대의 공간을 창조해 나가는 일이라는 것. 무엇이 다 정해져 버리면 재미없지 않은가? 아직 정해진 것이 많지 않기에, 그래서 무한하기에 늘 연극은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있으며 열렬한 것이다.

구태환 수원시립공연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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