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심이 많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위해 살아간다고 믿고, 타인을 향한 배려나 선의에도 어느 정도 자기중심적인 측면이 있다고 여긴다. 그렇다 보니 착한 말, 다정한 말을 많이 하는 이를 잘 믿지 못한다. 오히려 경계한다. 위선적인 사람이 아닐까 하고.
첼리스트 요요 마를 향한 시선도 조금은 그랬다. 프랑스 태생의 중국계 미국인인 그는 음악계에서 손꼽히는 휴머니스트다. 언제나 밝게 웃는 얼굴로 화합과 사랑의 메시지를 설파해왔고 연주하는 레퍼토리 역시 여느 클래식 음악가보다 훨씬 폭넓다. 우리 귀에 친숙한 팝부터 세계 각국의 민속음악까지 경계 없이 연주하며 다양한 배경의 예술가들과 왕성하게 교류한다. 출신부터 행보까지 화합의 메신저 그 자체다.
그런 요요 마가 가을이 한창이던 어느 주말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그날의 주제는 위로와 희망. 팬데믹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실제로 그는 백신 주사를 맞는 자리에 첼로를 들고 나타나 무료로 즉석 연주회를 치른 적도 있다. 슈퍼스타가 아닌 ‘동네 아재’의 옷차림으로 체육관 구석에서 15분간 연주한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 널리 전파되며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급기야 그런 메시지를 담은 곡만 추려서 앨범까지 발표했고 이 리사이틀은 그 일환이다. 클래식, 탱고, 민속음악을 아우르는 소품들로 꾸려졌으며 하나같이 따스하고 다정한 멜로디를 품은 곡이었다.
‘와, 이건 진심이구나.’
그의 연주를 듣는 내도록 난 이 생각만 했다. 선율이 부드러웠다, 첼로 소리가 포근했다 같은 차원을 넘어서 모든 곡에서 마음이 느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클래식 연주자들의 다른 장르 소품 연주에 감명받은 적이 그다지 없다. 원래 자기 분야에 비해 들인 시간과 고민이 확연히 적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따금 무성의하다고 여겨지는 연주를 들을 때면 ‘저 사람은 클래식 외엔 얕잡아보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든다.
그러나 요요 마에게선 그런 기색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다양한 배경의 곡을 두루 연주했음에도 그 모두에 고유의 정서가 배어 있었고, 그걸 자기만의 깊은 감성으로 풀어서 청중에게 전달하는 역량도 출중했다. 한마디로 연주하는 음악과 듣는 사람을 향한 존중이 느껴졌단 소리. 현장에서 이를 확인하자 그의 이력이 달리 보였다. 그는 20여 년의 시간 동안 마흔 명이 넘는 동서양 음악가들과 ‘실크로드 프로젝트’, ‘애팔래치아 왈츠 프로젝트’ 등의 대규모 협업을 해온 바 있다. 음악으로 각자의 뿌리를 모색하며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날의 소품 연주 역시 넓게 보면 그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진심이 담긴 위로. 여기저기서 많이 듣는 표현이지만 피부로 느끼기는 쉽지 않다. 위로는 대부분 피상적이고 진심 역시 이면에 숨어 있을 때가 많으니까. 그러나 요요 마의 연주 앞에선 내가 가진 모든 의심을 내려놓았다. 그날의 주제인 위로와 희망 중 위로는 확실히 받았다. 어쩌면 희망도 조금은 느꼈을지 모르겠다.
홍형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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