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또 다시 한글 전용을 위하여

‘정부24’ 홈페이지에서 출력한 군 경력이 포함된 주민등록 초본의 첫 주거지 ‘세대주 및 관계’ 란에 기재된 아버지의 이름, 그립고 선명한 그 이름이 아니었다. 다시 살폈으나 여전히 믿을 수 없게도 낯선 인격이 내 아버지라고 주장하며 당황한 나를 어느덧 비웃는 듯했다. 90년대 초에 지자체가 수기(手記) 한자(漢字) 정보를 한글로 바꿔 입력하며 야기한 오류를 이제야 발견하다니, 죄책감에 붉게 물들어 보완에 인색한 70여년 한글전용 정책을 원망했다.

우리는 그동안 한자의 한글 오기 사례뿐만 아니라 한글전용 텍스트에서 여러 인지오류와 소통장애 사례를 숱하게 겪었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국어 어휘의 칠할 가량이 원래 한자 용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보와 지식의 정확한 전파와 활용을 생산 활동의 기초로 삼는 정보화기반시대를 경과하면서도, 안중근 ‘의사’를 ‘병 고치는 의사’로 잘못 알고, 안내판의 조선조의 관직 ‘목사’에 ‘당시에 웬 교회 목사?’라며 의아해하고, ‘보안’과 ‘보완’의 뜻을 혼동해도 자타 웃으며 넘겨왔다.

대학의 강의와 수강에서 더욱 문제 돼 한자학습을 애원하듯 권유했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아마 재래의 모종 고루한 이념과 관습에 연계된 학습하기 까다로운 문자라는 선입견에다 현실 문헌매체에서 한자가 출현하지 않아 꼭 배워야 할 동기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오해와 기피에 불과하다. 우리 후속 세대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해결방안과 실천은 쉽고, 효용과 편리는 막대하다.

내년부터 당장 초등 6년 국어 수업에서 한자 1천800자를 나누어 가르치고 배우며, 초중등 교과서에 국한해 고전 이외의 글에서도 필요에 따라 한글로 표기된 한자용어 옆에 해당 한자를 아울러 표기하면 문제를 거의 해결할 수 있다. 즉 “안중근 ‘의사(義士)’”, “‘목사(牧使)’”, “‘보안(保安)’”, “‘보완(補完)’”이라 제시하며 동시에 그 훈(訓)으로 조성된 뜻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하자는 오래되고 평범한 방안이다. 그러면 국어사전의 참조 없이도 이후 생애 내내 반복되는 한글표기 한자용어들과 그 뜻을 상기할 수 있다. 오독과 오기 방지는 물론이고, 문장과 문맥 독해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학생 시절에는 한자를 학습하고, 졸업 후 사회 직장에서는 한글전용을 철저하게 이행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에서야 드디어 일제 치하 선열 한글학자의 염원을 구현하고, 그동안 유보되어온 실질을 한글전용론이 확보해 그 진정한 효과를 향유할 수 있다.

우리는 한자 발음의 통일과 그 표기도 내포된 세종의 한글 창제의 의도를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한자학습을 초등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참고로 북한은 1948년에 한글전용을 실시했지만 상기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자 이념화했던 한글전용을 수정해 김일성의 교시로 1968년부터 초중등 교육에서 한자학습을 의무화했다. 대선의 시기, 여러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언어는 인간의 의사와 의식의 근본 질료이면서 모든 생산 활동을 촉진하는 기본 자산이 아닌가. 한글전용을 보완하는 한자 1천800자 의무학습과 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을 약속하는 후보에게 한 표 드리려 한다.

김승종 연성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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