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완벽함이라는 환상

‘와, 이 사람은 정말 모든 걸 다 가진 예술가였구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살바도르 달리 전을 보는 내내 이렇게 생각했다. 미술 문외한인 내가 달리에 대해 알고 있던 건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거장이라는 점과 대표작 몇몇 정도가 전부였다. 그의 작품 세계나 삶의 궤적을 소상히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의 예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전시를 보면서 내심 부러운 마음을 느꼈다. 넘치는 천재성을 쉴 새 없이 작품으로 생산했고, 경제적 성공은 물론 ‘셀럽’으로서의 인기도 누렸으며, 심지어 평생 여신처럼 숭배하며 사랑한 아내도 있었다. 이 셋을 다 가진 예술가가 얼마나 되겠나? 딱히 아쉬울 게 없어 보이는 삶.

아내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보다 이상적인 관계가 있을까 싶을 정도. 아내 갈라는 달리에게 정서적 유대감, 예술적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그의 작품과 수입을 관리하는 에이전트 역할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갈라가 없다면 달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오갔을 정도. 그런 아내를 어찌나 사랑했던지 노년이 되어 달리는 중세의 성을 하나 사서 선물하기에 이른다. 갈라의 허락 없이는 출입조차 않겠다는 서약까지 해가며. 이를 두고 달리는 서로 거리를 유지하는 게 관계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함께하면서도 존중하는 관계로 보여서 나는 내심 경탄했다.

맙소사! 위 모든 이야기는 절반의 진실이었다. 전시에서 말하지 않은 숨겨진 이야기가 더 있었던 것이다. 귀가하는 길에 살바도르 달리의 삶을 검색해보고선 나는 말 그대로 식겁했다. 달리는 평생 갈라만 사랑하며 의지했지만 갈라는 그렇지 않았다. 달리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남자들과의 연애를 병행했고, 달리가 선물해준 성에서도 달리의 출입을 엄금한 채 마음껏 연애를 즐겼다. 달리는 존중에 따른 자발적인 거리 유지처럼 말했지만, 실제론 갈라의 만남 거부였던 것이다. 생의 말미에 이르러 달리는 결국 폭발한다. 아내의 연애를 문제시하다 폭력을 휘둘러 갈비뼈 두 개를 부러뜨리고, 갈라는 달리에게 진정제를 과다 투여해 돌이킬 수 없는 신경 손상을 입힌다. 그리고 파국을 맞았으니 결말은 막장 치정극.

전시에는 이런 이야기가 소거돼 있었다. 거기서 갈라는 일생일대의 사랑이자 뮤즈였고 완벽한 에이전트였다. 왜일까? 이유는 다양하게 추론해볼 수 있다. 작가의 예술 세계를 전달하는 데 딱히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전시에 굳이 내걸 만한 내용이 아니다, 사생활이기에 언급하지 않는 게 예의다 등등. 다 일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좀 아쉽다. 달리의 모든 작품엔 불안의 정서가 짙게 배어 있고 사랑, 성, 관계 역시 주요 모티브로 계속해서 활용된다. 두 사람 관계 이면의 이야기를 미리 알았더라면 현장에서 작품을 이해하고 느끼는 데 좀 더 도움이 됐을 듯해서 아쉽다. 또 ‘너무 완벽한 삶 아냐?’라며 괜스레 부러워하지도 않았을 테고. 아마도 내 안에 완벽함을 향한 환상이 있는 모양. 그러나 실제 달리는 생의 마지막까지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며 어떻게 보이는지에 집착한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작품들은 바로 그 흔적.

역시 완벽한 삶을 사는 예술가는 없나 보다. 어쩌면 그런 결핍이야말로 창작의 진짜 동력인지도 모를 일.

홍형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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