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고귀한 영성에 빚진 도시

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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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에서 우리는 고귀한 영혼을 본다.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거룩함을 확장하고 고양해 기어이 다다르고야 만 신성과 조우한다. 대개 사람들은 지상에 발 디디고 진토에 몸 더럽히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퍼뜩 정화수를 들이부은 듯 영혼이 깨어날 때가 있다.

 

종교가 담당해 온 순기능이 있다면 그것이다. 세례 의식이 잘 보여주듯 인간은 타락에도 능한 존재라서 씻김을 경험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본다. “내 영혼, 내 영혼”을 부르며 찾는 순간, 인간 안에 숨어있던 영성이 화들짝 반응한다. 성인들은 영성의 부름 앞에 진솔하고 범인들은 자주 외면하다가 일주일에 한 번 겨우 회개한다. 그렇게나마 인간은 신성을 닮으려 몸부림치는 존재라서 갸륵하다.

 

김상봉 교수는 ‘영성 없는 진보’라는 진단서로 오늘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예견했다. 우리는 물질로도 진보했고 민주 정치 체제로도 진보해 왔다고 여겼다. 하지만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혐오와 배제로 점철된 일상이 내전인 사회와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영성 없이 진보해 온 업보라고 여기며 70년대 개신교와 가톨릭을 되돌아본 김 교수의 글을 다시 펼친다.

 

그는 전태일이 믿었던 기독교가 타자를 위해 자신을 불사를 수 있었던 영성의 토대라고 봤다. “종교는 나와 타인, 나와 세계가 하나의 절대자 속에서 하나라는 믿음을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자기희생적 응답을 가능하게” 만든다. 기독교를 통해 영성과 만나 거룩한 영혼 전태일이 탄생했다. 일찍이 신학자 서남동 교수는 전태일을 ‘우리 시대의 예수’라고 칭했다.

 

예수가 부활을 예고하며 십자가에 달리던 고난 성주간에 자유공원 초입 성공회 내동교회에서 ‘닥터 랜디스’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랜디스(남득시) 박사는 1865년 미국에서 태어난 의사이자 선교사다. 개항기 인천에 성 루가병원을 세워 환자들을 돌보고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거둬 가르쳤다.

 

한국문화를 사랑하며 연구해 후학들은 그를 ‘한국학’의 선구자로도 여긴다. 이날 추모사는 인천 개신교 역사에 남은 슈바이처, 예수 말씀대로 실천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그를 불러냈다. 불과 32세 젊은이로 생을 마감했지만 오전 7시에 진료를 시작해 오후 8시30분에 일과를 마감했다는 기록을 보면 예수만큼 치열했을 그의 생애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낯선 나라 헐벗은 고장 제물포를 위해 생을 바친 그의 영혼에 인천이 진 빚이 크다.

 

답동성당 옆 천주교 인천교구 역사관에서는 ‘바다가 불러 세운 교회’라는 특별기획전이 진행 중이다. 메리놀외방전교회가 한국 사회와 인천을 위해 헌신해 온 선교 기록이자 사회 구원 역정이 펼쳐져 있다. ‘메리놀’은 미국 선교 본부 건물이 자리한 마리아의 언덕(Mary’s Knoll)에서 유래했고 아시아 지역 선교를 목적으로 창립했다. 전쟁 피란민 구제 사업으로 인천과 인연을 맺었고 당시엔 선교 활동이 활발했다.

 

이 전시는 ‘배고픈 이에게 음식을’, ‘집 잃은 자에게 안식을’, ‘앓는 이에게 돌봄을’ 베푸는 일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바다 위에 세워진 교회’의 역할로 조명한다. 가톨릭 선교사들은 “소멸은 언제나 서글픈 것이지만 무용해 질 때 비로소 임무가 끝났음을 실감하는 존재들”을 자처했다. ‘씨 뿌리는 자의 사명은 무용해 질 때 완수’된다는 그들의 믿음은 우리 인천이 영성에 빚진 도시임을 일깨운다. 이 자각이 인천에 내재한 고귀성을 되살려낼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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