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강화고려박물관

인천연수문화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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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남아 있는 인천 강화도(江華島)의 가장 옛적 이름은 ‘갑비고차(甲比古次)’다. ‘갑비고차’는 우리말 ‘가비고지’, 곧 ‘갑곶’을 한자로 나타낸 말이다. 이 이름은 지금도 ‘갑곶리’에 남아 있다. 이 가비고지가 ‘혈구군(穴口郡)’과 ‘해구군(海口郡)’을 거쳐 고려 태조 때인 서기 940년에 ‘강화현(江華縣)’으로 바뀌었다.

 

지금 이름의 나이만 따져도 이처럼 1천살을 훌쩍 넘긴 강화도는 흔히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린다. 곳곳에 퍼져 있는 수많은 유적들 덕분에 생긴 별명이다. 그만큼 오랜 역사와 사연을 안고 있는데, 단군 할아버지와 고인돌을 비롯한 선사시대의 내용을 빼면 단연 고려시대의 유적들이 눈에 띈다.

 

이는 널리 알려져 있는 것처럼 서기 1232년부터 1270년까지 강화도가 고려의 임시 수도(首都)였기 때문이다. 고려 고종 임금 당시 조정을 장악하고 있던 최씨 무인(武人) 정권은 1231년 몽골군이 침입하자 이듬해 수도 개경(개성)을 버리고 강화로 도읍을 옮겼다. 그 뒤 1270년 무인 정권이 무너지고 개경이 다시 수도가 되면서 강화 임시 수도 시대는 막을 내린다. 강화를 ‘강도(江都)’라 부르기도 하는데, ‘강화도(江) 수도(都)’라는 뜻이다.

 

이렇게 40여년 동안 수도 역할을 했으니 강화도에는 고려의 유적이 많을 수밖에 없다. 왕궁이 있었던 터와 외성(外城), 4기(基)의 왕릉을 비롯한 여러 무덤, 팔만대장경을 새겨 보관했던 절터... 개성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다른 곳에서 강화도 외에 이렇게 비중 있는 고려의 유적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 달리 없을 것이다.

 

강화군이 이런 의미를 살리고 후대에 전하기 위한 ‘국립 강화 고려 박물관’ 건립 사업에 나섰다. 중앙정부의 박물관·미술관 진흥 계획에 이 사업을 반영해 국가 차원에서 추진할 것을 요구하며 주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인천시박물관협의회와 인천지역 10개 구·군의 단체장들도 이 같은 뜻의 공동 건의문을 냈다.

 

우리는 흔히 반만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곤 한다. 하지만 박물관이나 기념관·연구원처럼 그 자랑스러운 역사를 여러 주제별로 집중해 연구하고, 보여주고, 교육하는 기반시설은 무척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면에서 아마 남한 땅에서는 고려와 가장 관계가 깊은 곳에, 고려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에, 고려의 역사를 각별히 조명하는 국립박물관이 생긴다면 분명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무인 정권이 강화로 도읍을 옮긴 것에는 많은 비판이 있다. 겉으로는 몽골과의 타협 없는 투쟁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와 편안함만을 위해 백성들을 육지에 내팽개치고 섬으로 달아난 사건이라는 역사가들의 평가가 적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강화도로 올 때뿐 아니라 도망쳐 와서도 새로 궁궐을 짓고 온갖 사치를 부리느라 백성들을 끝없이 괴롭힌 사실이 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고려의 역사를 보여주되 권력자들의 이런 못된 행태도 분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시각의 균형을 이루는 ‘국립 강화고려박물관’이 꼭 생기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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