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구 ㈔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
계엄령을 선포했고 포고령에 담긴 문구는 살벌했다. 집회를 열 수 없다는데 출판기념식은 가능할까 싶었다. 공들여 편찬한 책자 탄생을 자축하는 자리조차 뜻한 바대로 가질 수 없다니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계엄 진행 과정을 시민들과 국회가 제압했고 출판기념식은 열렸다. 40년이라는 시간이 힘을 불어넣기라도 한듯 한자리에 모인 인천문화예술가들은 담담하고 의연했다.
인천문화예술 40년을 정리하겠다는 기획은 대담했다. 40년 역사를 기록하려고 맘먹은 지 3년이 지나 책자가 나왔다. 100명 남짓 모였지만 규모 이상으로 영예로운 기념식이었다. 인천직할시 출범 이후부터 40년, 반세기 가까운 기간과 방대한 영역을 망라하려니 우여곡절이 많았다. 기록에 참여한 필진만 56명이고 인천사 전문가 10명이 감수했다. 편찬 기준을 논의하는 데만도 10여명 위원이 힘을 모았다. 자문에 참여한 문화예술가까지 포함하면 100명이 훌쩍 넘을 것이다. 전국적으로도 유례없는 인천 역사에 남을 큰 사업이었다.
나는 인천 청소년 문화예술활동 40년 역사를 썼다. 관련 기록이 충분하지 않았고 증언해 줄 인사도 많지 않았다. 자료를 뒤지고 옛 활동들을 다시 돌아보면서 배운 게 많았다. 쉽지 않은 길을 걸어 온 이들의 족적이 다시 보였다. 80년대 청소년들은 군사문화 틈새에서 진통을 겪으며 성장했다. 글을 쓰면서 참고 삼아 뒤적였던 계엄이라는 단어를 40년이 지나 접하게 된 상황을 훗날 어떻게 기록할까 상상했다. 초현실, 비현실, 어떤 표현으로도 기록하기 어려운 타임슬립 같았다. 다만, 청소년들이 펼치는 문화예술 활동에 계엄은 풍자 대상이 되리라 확신했다. 청소년들 시민의식은 급속하게 진화했다. 국회 앞에 모여든 학생들은 콘서트 야광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오늘 우리가 이룬 민주주의를 즐기고 있다는 상징이다.
출판기념식에서 인천문화예술에 대한 희망을 글로 남기라는 주문을 받았다. 이벤트라고 하기에는 분위기가 무거운 시기였고 엄숙하게 쓰려니 잔치 분위기가 신경 쓰였다. 문화예술은 시대와 불화하는 게 숙명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비장한 시국이므로 이후 40년 인천예술이 가야 할 방향을 결의해야 마땅하다고 여겼다. 바깥은 여전히 혼란한 정국이고 요동치는 세상에 문화예술이 서야 할 자리는 다시금 선명해야 했다.
축하 잔치는 어엿한 호텔연회장이었지만 나는 폐허 위를 살고 있었다. ‘나는’이라는 주어로 시작하는 시국선언문이 드러낸 삶에서 비켜 서 있을 수 없었다. 폐허라는 은유가 국회에 진입한 군홧발을 지켜봐야 하는 직설이 돼버린 역사가 몸을 관통한 통증은 극심하다. 기나긴 40년, 지난 세월 중에 이토록 참담한 장면이 몇이나 있었을까. 청소년들이 외치는 탄핵 요구 함성을 들으며 성직자들이 질타한 “어찌 사람이 이 모양인가”를 넘어설 문화예술을 생각했다.
나는 잔치 자리에 앉아 판을 갈아엎을 고민에 몰두하고 있는 이몽룡을 떠올린다. 계엄 난리 중일지라도 잔치는 흥겨워야 하고 축제는 열려야 한다. 경종을 울리는 건 언제나 예술의 몫이다. 거나한 자리 한편에 앉아 ‘금준미주 천인혈’을 쓰는 시인이 있어 좌중은 술렁대며 변혁 예고음을 감지한다. 문화예술 40년을 기념하는 자리가 하필 시대착오 사또 패악질 와중이었다. 이 모양인 사람과 시대에 일침을 가한 시인처럼 나도 쓰련다. 거리는 민주주의 축제로 들끓고 시대는 오늘을 빛나는 역사로 기억하리라. 지난 40년 인천에서 꿈틀대던 문화예술 활동이 오늘을 만들었다. 미래 역시 청소년 문화예술활동으로 찬란할 것이다. 40년은 그들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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