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번지수 찾기

‘번지수’란 건물이나 토지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되는 숫자를 의미한다. 번지수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 어디든 길을 잃지 않고 곧바로 찾아갈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뜻의 ‘번지수를 제대로 찾다’는 관용어가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번지수는 부정적 의미가 더욱 많다. 어떤 일에 들어맞지 않거나 엉뚱한 데를 잘못 짚는 경우 당연한 듯 번지수를 소환한다. 특정 사안을 두고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섣불리 의견을 밝혀 망신을 당하거나,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님에도 애꿎은 사람을 비난해 민폐를 끼칠 때도 늘상 따라붙는 말이 바로 ‘번지수를 잘못 찾다’거나 ‘번지수가 틀리다’이다. 원조는 역시 정치권이다. 번지수를 완전히 잘못 짚은 온갖 실언들이 판을 치며 가뜩이나 버거운 서민들의 삶에 불쾌지수만 높이고 있다. 문제는 한없이 가벼운 언행이나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성 카더라식 폭로조차 정파적 이익에 충실했다는 이유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웃픈 현실이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지만 그로 인한 대가는 달콤하다. 이는 단순히 정치권에 한정되지 않는다. 소위 공인이라는 사람들이 던진 말 한마디가 나비효과처럼 선의의 피해자를 만드는 것 역시 일상 다반사다. 최근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인 한 선수가 자신의 SNS에 일본식 한자로 쓰여진 ‘국제선 출국(일본행)’ 전광판 사진을 올린 뒤 “한국에 매국노 왜케 많냐”며 저격성 글을 남긴 건 대표적 예이다. 확인 결과 해당 사진의 주인공은 광주 소재 일본풍 식당이었고 급기야 해당 식당은 친일 논란에 휩싸이며 악성댓글로 인해 큰 고초를 겪어야 했다. 문득 우리 국민이 일본식 가게를 운영하는 것이 매국노라는 것인지, 일본행 출국 전광판을 통해 일본 여행객이 최고치를 기록하는 최근 세태를 가리켜 매국노라 하는 것인지, 글쓴이의 의도가 궁금하다. 하지만 둘 중 어떤 경우에도 ‘매국노’란 단어를 붙일 수 없다는 점에서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것이다. 뒤늦게 공개사과를 하긴 했지만 오랜 기간 힘들게 쌓아온 소상공인들의 삶을, 매국노 한마디로 평가절하했다는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무엇보다 번지수를 잘 알고 찾아가는 것이 중요해진 세상이다. 취업이 고민인 청년에게 ‘너 같은 인재를 몰라 주는 사회가 문제’라며 무책임한 위로를 건네는 것이 아닌, 취업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지 냉정하게 지적해주는 따뜻한 용기가 더욱 대접받을 때야말로 번지수 찾기의 긴 여정은 끝날 것이다.

[인천시론] 녹지행정체계, 집중과 규모화 필요

지방자치단체 조직은 단체장의 중요한 정책구상이나 지역적 이슈에 따라 이뤄진다. 전략적으로 이뤄지는 셈이다. 그를 통해 무게가 실리는 조직이 생기고 중요하게 부각되는 역할이 있게 된다. 인천시가 2군·9구로의 행정체제 개편에 맞물려 조직개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 면에서 인천시가 고려하면 좋겠다 싶은 제안을 하나 하고자 한다. 부산시는 지난 2월 말 시민행복도시 실현을 표방하며 ‘푸른도시국’을 신설했다. 이 국에서 국가공원, 국가정원, 민간공원 조성업무 등을 통합 추진한다. 공원정책이나 산림녹지를 푸른도시국 소관으로 둠으로써 녹색도시를 위한 구조개편을 완성한 셈이다. 서울시는 이미 지난 2004년말 푸른도시국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푸른도시여가국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공원·녹지 관련 업무만이 아니라 야생 동식물 보호와 하천생태 복원업무 등도 처리하고 있다. 반면 인천시는 과거 환경녹지국에서 분리된 녹지업무를 주택녹지국을 거쳐 개발부서인 도시계획 산하 조직으로 유지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 탄소중립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인천시로서 다시금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게다가 인천시가 소래습지를 1호 국가도시공원으로 지정받기 위해 본격 행동에 나섰다. 전국 최고의 공원이면서 도시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서도 공원녹지 분야의 조직적 면모를 제고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느 도시라 할 것 없이 도시브랜드 제고와 글로벌 허브도시, 시민행복도시의 기치를 내거는 시대다. 이를 위한 조직 형태나 사업구조, 재원 등의 추진체계에 찍히는 방점에서 다르다. 쾌적한 도시, 살고 싶은 도시를 거론할 때 으레 도시환경의 수준을 살피는 요즘이다. 그 가운데 도심 내 잘 가꿔진 공원이나 녹지는 빼놓을 수 없는 핵심요소다. 시민의 여가생활과 건강을 고려하면 더욱 중요해질 기능이다. 그렇다면 인천시가 향후 정책적·조직적 방점을 공원·녹지 분야에도 둘 필요가 있다. 시의 현 공원·녹지 관련 조직과 사업, 예산의 규모는 이미 가볍지 않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도심의 크고 작은 공원만도 2천여곳을 헤아릴 정도다. 결국 인천시도 어떤 형태로든 녹지행정체계의 집중과 규모화로 도시의 체질,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때다. 이는 원도심의 쇠퇴를 막고 시민들의 정주여건을 향상해야 하는 시정목표에도 부합한다. 마침 정부가 통제하던 지자체의 실·국장급 기구의 수와 규모를 지자체가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필요에 맞춰 조직을 가다듬으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고 한다. 그에 맞춰 여러 지자체들이 사업·행정 수요가 높은 실·국 정원을 늘리거나 추가 국 단위 기구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시의 비전과 의지를 담은 조직개편에서 ‘녹지국’의 신설을 포함해 푸른 변신에 힘이 실리기를 바란다.

[인천시론] 삼사일언 삼사일행

‘5·18 북한개입설’, ‘전두환 찬양’ 등 부적절한 언행으로 논란이 됐던 도태우 변호사와 ‘목발 경품’, ‘조계종 비하’로 설화를 일으켰던 정봉주 전 의원에 이어 ‘난교’, ‘손톱의 때’ 글과 발언으로 논란이 된 장예찬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공천이 우여곡절 끝에 박탈됐다. 여야 각 당의 공천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가운데 막말 설화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총선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여야 할 것 없이 발 빠르게 이들을 손절하고 나선 것이다. 정 전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과거 오래전 발언으로 정치인의 발목을 잡는 건 자기 자신이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다며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반해 도 변호사는 거침없는 보수의 일꾼으로 소임을 다하겠다며 결국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다. 장 전 최고위원도 공천 취소에 반발해 18일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공천 취소의 원인이 된 막말 논란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 야당 정치인의 과거 언행을 언급하며 자신의 20대 시절 개인적인 SNS를 검증한 잣대로 민주당을 살펴보면 공천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항변했다. 총선 공방도 날로 거세지고 있다. 인천지역에선 총선 후보들 간에 네거티브성 공방과 고소·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동구미추홀구갑 선거구에 출마한 심재돈 예비후보는 허종식 예비후보 등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했다. 민주당 인천시당은 심 후보가 검사 시절 참여했던 수사에서 40대 경찰관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많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반면 심 후보 측은 이는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을 희석하려는 의도라며 동구와 미추홀구 곳곳마다 허 후보의 돈봉투 의혹과 음주운전 전과를 부각하는 현수막을 걸어 상대방을 자극하고 있다. 연수구갑에 출마한 정승연 국민의힘 예비후보는 자신을 ‘친일망언 인사’라고 SNS에 언급한 이재명 대표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부평구갑에서는 경선을 마친 같은 당 예비후보들끼리 설전을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총선 공방으로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피로도와 정치 혐오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막말과 여야 공방으로 선거 초반부터 과열 양상이 빚어지면서 정작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민생 현안과 정책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점이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삼사일행(三思一行)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공자(孔子)가 천하를 유람할 때 나온 말로 ‘한마디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행동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하라’는 뜻이다. 무릇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국민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인천시론]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몹시 고집스럽고 끈질긴 것’을 일컬어 ‘집요하다’라고 표현한다. 일상에서는 주로 특정 사안이나 사람에 대한 그릇된 집착을 가리킬 정도로 부정적 어감이 강하지만, ‘집요함’이 개인의 투철한 직업정신과 결합된다면, 그땐 판이 달라진다. 맡은 일에 대해서는 완벽한 성과를 내겠다는 집념이 그것이다.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의 집요함, 진실을 알리기 위한 기자의 집요함. 최상의 상품을 만드는 장인의 집요함 등 알고 보면 ‘집요함’이 주는 감동은 어느 것보다도 더욱 극적이다. 하지만 그중 가장 극적인 순간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의사의 집요함일 것이다. 아픈 환자를 살리고자 집요하게 매달리는 의사의 모습은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도 아름답다. 그래서인지 대중매체 속 의사의 이상향은 출세가 아닌 오직 사람 살리기에 숭고한 사명감을 가진 것으로 그려진다. 굳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의사라는 직업이 갖는 공익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인지 최근 의사들이 사직서를 내며 환자 곁을 떠나는 모습은 너무도 안쓰럽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증원의 시기와 규모 등이 과연 적정한지는 제쳐두고라도, 의사가 환자 곁을 떠나는 건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의료법 위반을 피하고자 파업이 아닌 동시다발적인 사직서 제출을 택하고, 어떻게든 업무복귀명령을 송달받지 않고자 애쓰는 모습은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단지 ‘환자를 치료하지 않는’ 부작위만으로도 사회를 초토화시키는 의사들의 권력(?)을 두고, 국민들의 비판여론이 상당하다. ‘정부는 결코 의사들을 이길수 없다’는 한 의사의 발언에 ‘의사들은 결코 국민을 이길 수 없다’는 우문현답이 나온 것도 같은 이유이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라고 준 의사면허가 정부 정책에 대한 투쟁수단으로 변질됨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의사들이 병원을 지키며 환자들의 치료를 위해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할 때 오히려 대중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환자 곁을 떠난 의사들의 주장은 결코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오늘날,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낭독되는 것은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아닌, 이를 현재에 맞게 변형한 ‘제네바 선언’이다.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마칠 것을 엄숙히 선약하노라’로 시작되는 제네바 선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지금 이 순간 의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직서를 낼 용기가 아닌 생명에 대한 집요함일 것이다.

[인천시론] 일타강사 vs 방검복 교사

사교육 1번지 강남 학원가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부와 명예를 거머쥔 소수의 스타강사들이 있다. 소위 일타강사라 불리는 그들은 대한민국 사교육의 상징으로 그 외관은 화려한 듯 보이지만, 실상 그 이면을 보면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빼곡한 강의 일정에 더해 강의 준비에 수강생 관리, 교재 개발까지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자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일타강사는 누구든 꿈꾸지만 감히 쉽게 이룰 수 없는 ‘극한 직업’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수업 중 던지는 농담까지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하니, 프로 그 자체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한 건 일타강사 개인의 탁월한 역량과 오랜 노력 탓도 있겠지만, 그들이 강의에 집중하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 흘리는 수십명의 연구원과 스태프들의 공도 클 것이다. 여기에 공교육에 비해 학생 생활지도 측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일타강사 대부분은 한때는 공교육에 몸담았던 교사 출신들이 많다. 이렇듯 일선 교사들 역시 강의에 있어서는 일타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왜 우리는 지금까지 공교육 붕괴를 걱정해온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교사들로 하여금 온전히 수업과 학생지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환경 탓이 크다. 우선 과도한 행정업무로 인한 과부하 문제가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해 5월 발표한 ‘교사 건강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퇴직 및 휴직을 고민한 가장 큰 이유는 ‘교육활동 이외의 과도한 행정업무’(62.8%)가 차지할 정도로 학교현장은 이미 서류더미와의 싸움에 지쳐 가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학생 생활지도로 인해 일선 교사들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굳이 서이초 사건의 비극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학부모와 학생들의 안하무인식 교권침해로 인해 교사들 스스로 자신을 감정노동자라 칭할 지경에 이르렀다. 여기에 최근 전북지역의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현직 교사가 방검복을 입고 출근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년 전 일부 학생들의 불성실한 수업 태도를 지적했지만 이후 앙심을 품을 학생들이 교사는 물론 가족 목숨까지 위협하기에, 걱정하는 가족들을 안심시키고자 방검복을 착용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은 미성년자라 형사처벌받지 않을 거라며 협박을 일삼은 건 덤이다. 서류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며, 급기야 방검복까지 등장한 학교 현장, 탁월한 수업능력에 학생지도까지 겸비한 일타 ‘교사’가 되는 길은 너무도 험난해 보인다.

[인천시론] 아직 가능한 기후위기 대응, 지속가능발전을

중국 산둥성 타이안 북쪽에 있다는 태산. 중국의 대표적인 산 가운데 하나라지만 멀기도 멀고 미지의 산일뿐인데 마치 뒷산인 양 친근하게 입에 붙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있다. 하찮은 수고와 성과라도 조금씩 모아나가면 태산처럼 큰 결과를 얻으리라는 교훈을 준다. ‘걱정이 태산 같다’는 표현도 있다. 설마 시작부터가 태산이었겠는가. 어쩌다 보니 티끌이 모여 태산 되듯 해결하지 않은 걱정이 모여 크나큰 우환이 된 지경이지 싶다. 공교롭게 두 속담 모두 오늘의 현실, 우리의 처지를 비추는 것 같아 몹시 불편하다. 이상고온이나 한파, 가뭄·홍수, 수시로 번지는 대형 산불, 해수면 상승의 여파, 게다가 우리가 마구 버린 쓰레기들의 역습까지, 지구적 일상이다. 이상(異常)이 일상(日常)이 된 셈이다. 그 사이 ‘티끌’ 같던 걱정이 ‘태산’으로 변했다. 인류의 지속가능성이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에 부닥쳤다. 이대로라면 미래에 드리운 암울한 회의감을 걷어내기 어려울 듯싶다. 우리가 누렸던 풍요와 행복이 당연하지 않으며 영원하지 않다는 경고가 절실히 다가온다. 지구 생태계가 내뱉던 비명, 숱한 경고들에 진즉 귀 기울여 뭐라도 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티끌이라도 모아 보려는 정성, 근심과 걱정을 애저녁에 털어 버리려는 노력조차 없었지 싶은 미안함과 반성이 밀려든다. 기후위기 대응이나 지속가능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서둘러 잡아야 한다. 가능할 때 말이다. 어떻게 해야 그럴 수 있을까? 이들은 뚝딱 해치울 사업이나 금방 맛볼 성과가 아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그러면서도 규모 있는 활동의 과정이면서 성과들의 결과이기에 공공행정의 조직이나 정책으로 승부를 걸 일이다. 인천시가 표방하고 있는 ‘1.5℃ 선언’, ‘2045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자원선순환 등이 매우 중요한 이유다. 또 탄소인지예산제도, 주요 행정계획 지속가능성 사전검토제와 같은 도구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예산이 주어진들, 좋은 정책·제도를 갖췄던들 이를 집행하고 평가하는 조직체계, 성과를 강화하고 확산하는 협력네트워크의 활성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도로아미타불일 것이다. 그러므로 소위 ‘시스템화’를 강조하게 된다. 인천시 공공행정 전반의 조직과 사업에 ‘지속가능발전’이라는 가치가 속속들이 배어들어야 한다. 시민적 노력 역시 가벼이 여겨질 수 없다. 사회는 개인의 ‘합(合)’이다. 인천이라는 지역사회가, 인천시 주요 정책이 어디로 향해 무엇을 이뤄낼지는 시민의 선택과 참여에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니 ‘티끌은 모아 봐야 티끌’이라 헛웃음 삼을 수 없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를 외칠 기개로 지속가능발전의 길을 뚜벅뚜벅 함께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인천시론] ‘죄송합니다’라는 사과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무인카페를 처음 와서 모르고 얼음을 쏟았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않고 치우겠습니다.” 올해 초, 무인카페에 얼음을 쏟은 한 초등학생이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지폐와 함께 남긴 쪽지 글이다. 점주는 학생의 기특한 모습에 크게 감명한 나머지, 평생 카페 무료 이용을 약속했고, 지금도 학생과 매일 만날 정도로 절친이 됐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를 책임지는 모습이 세대를 초월한 우정을 가능케 한 것이다. 지난해 노량진역 3번 출구 인근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노부부가 배달앱에 달린 혹평 리뷰에 남긴 댓글 역시 여전히 감동이다. “오이를 빼달라”는 요청을 무시했다는 리뷰엔 “너무 너무 좨송합니다. 너무큰실수를햇내요. 앞으로는 조심또조심하갯읍니다”라 하고, “냉면에 육수가 없고 면은 다 불었다”는 글엔 “너무 좨송합니다. 다음엔 육수 만이 드릴개요”라고 답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오히려 불만 글을 남긴 고객들이 괜히 미안해질 지경이다. 오타범벅에 띄어쓰기조차 엉망인 이 짧은 댓글은 사람들을 울컥하게 만들었고, 이 가게는 하루 1000건의 주문이 몰려들며 소위 돈쭐을 당하게 됐다. 이유가 뭘까? 그저 사과했을 뿐임에도,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진심’이다. 이들의 사과에는 변명이 없다. 그렇게까지 사과할 일이 아님에도,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도 그 흔한 남탓조차 없는 것이다.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깊이 사죄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마치 신세계를 본 듯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에 인색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제대로 된 사과를 받는 것에 목말라했던 게 아닐까? 굳이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도 없다. 부정부패에 연루된 정치인들은 늘상 “정치적 보복이다”, “오해가 있다”라며 일단 잘못을 부인하는게 공식이 됐다. 그러다 결정적 증거가 나오거나 아예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되면 그제야 “불미스러운 일로 국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려 유감”이라는 사과인지 아닌지 모를 애매한 표현으로 대충 넘어가곤 한다. 이는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도 마찬가지다. 사죄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마지막엔 “좋은 연기로 보답하겠다”거나 “평생 운동만 해서 세상물정에 어두웠다”는 미사여구는 꼭꼭 챙기는 모습이다. “죄송합니다”라는 이 한마디가 왜 이리 ‘하기 힘든 말’이 된 건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인지 어린 학생과 노부부의 진심 어린 사과는 쿨하다 못해 아프다.

[인천시론] 데이트폭력, 사랑하니까 때린다?

2001년작 영화 ‘엽기적인 그녀’는 로맨틱 코미디의 수작으로 꼽히며, 그 해 488만명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영화는, 자신이 하고 싶은 건 반드시 하는 고집불통에 거친 말투와 행동까지 고루 갖춘 그녀와 그녀의 모든 걸 받아주며 곁을 지키는 남친 견우의 ‘만남에서 이별, 다시 만남’을 다루고 있다. 그녀는 수시로 견우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죽을래?”라는 막말을 일삼는다. 강이 얼마나 깊은지 확인한다며, 견우를 밀어 강물에 빠뜨리기도 한다. 특히 지하철 안에서 게임을 하면서, 그녀가 견우의 따귀를 무차별로 때리는 장면은 백미로 뽑힌다. 하지만 웃음 뒤에 찾아오는 건, 안타깝게도 두려움이다. 주인공이 무려 전지현과 차태현이라는 호감도 최상의 명배우였고,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연인을 잃은 아픈 과거가 있었으며,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사실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다. 연인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폭력이라는 상식을 미처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 속 ‘엽기적인 그녀’는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다. 물론 ‘견우가 이러한 폭력을 기꺼이 받아들였으니 괜찮지 않냐’는 반론도 가능하다. 하지만 합의된 폭력이라거나, 폭력 역시 사랑이라며 이를 감내하는 것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가스라이팅된 희생자이지, 결코 사랑이 아니다. 그럼에도, 데이트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2020년 4만9225건, 2021년 5만7305건, 2022년 7만790건으로 3년간 44% 증가했다. 특히 2022년 검거된 피의자의 범죄유형을 보면, 폭행·상해 9천68명(71%), 체포·감금·협박 1천154명(9%), 주거침입 764명(6%), 성폭력 274명(2.1%) 등으로 가히 충격적이다. 데이트폭력은 주로 연인 사이에 발생하기에, 신고가 어려워 은폐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처음에는 막말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신체적 폭력에 성폭력까지 점차 극악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데이트폭력을 별도 범죄화하는 단일법을 두지 않은 까닭에, 그때그때 형법과 스토킹처벌법 등을 적용해 땜질처벌하고 있다. 데이트폭력의 심각성과 잔혹성을 생각한다면, 이를 가중처벌하는 법안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껏 데이트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은 앞다퉈 법안을 내놨지만, 아직까지 국회 문턱을 넘은 적은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쳐야 법이 바뀔까? ‘엽기적인 그녀’는 판타지일 뿐, 결코 현실이 돼선 안 된다.

[인천시론] 탄소중립 대전환, 정부·지자체·민간의 공동작품

해가 바뀌어서 일 텐데, 개인 소망을 떠나 탄소중립과 지속가능발전에 대해 생각해본다. 지금도 인천시청 본관 앞 기후위기시계는 6년이 채 남지 않은 파국을 경고하고 있다. ‘2045 탄소중립’을 위해 한동안 인천시나 군·구 차원에서 탄소중립 기본계획, 전략수립에 분주했다. 이제부터 광역과 기초 간 연계라든가 감축과 흡수원 확충 측면에서 지역 여건을 반영한 실질적인 성과가 중요하다. 우리는 시간의 한계 앞에 서 있다. IPCC(기후변화 정부 간 패널)는 ‘임계점’을 넘기지 않으려면 2030년까지 에너지 부문에서 매년 적어도 7%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전 세계 탄소배출 비중 상위권을 차지하는 주요 선진국들이 ‘2030 국가온실 가스감축목표’(2030 NDC)를 기한 내에 달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1990년부터 연평균 1.39%씩 꾸준히 증가한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매한가지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20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1850~1900년보다 1.09도 올랐다. 그러면서 2019년 이산화탄소 순 배출량을 기준으로 볼 때 2050년 1.5도 제한을 달성하기 위한 탄소량은 10년 치도 남지 않았다. 어쩌면 2050년이 아니라 2030년 즈음 이미 그 수준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 탄소중립을 ‘패싱’하고 지속가능발전이나 ESG가 성립할 수 없다. 탄소중립이 전제된 환경적 토대 위에서 거론될 인류의 생존전략이자 도시의 지속가능성이다. 결국 탄소중립은 더 강력한 실천, 분명한 결과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인천은 대규모 화력발전소, 공항, 항만이 있어 전국적으로 손꼽히는 다배출 지역이다. 그만큼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이 시급한 반면 매우 어렵기도 하다. 최대 이슈는 발전 분야다. 지역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58%를 차지하는 석탄발전을 2045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 국가적·지역적 대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민간과 지역 주도의 선도적인 탄소중립 이행 도시모델’을 주문한다. 특히 ‘지역 여건에 맞춰 민간 참여 적극 활용’을 제안하고 있다. 민간과 지역 주도, 민간 참여 적극 활용으로 가능한 탄소중립의 수준은 어디까지일까? 신재생에너지로의 국가적 전환, 대체기술의 대대적 보급, 녹색생산과 소비문화 정착 등 굵직한 의제들을 볼 때 정부의 정책과 지역의 역할은 수레의 양축이다. 탄소중립은 정부, 지자체, 민간의 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방식을 다시 세워야 가능하다. 공동작품인 셈이다. ‘긴급한 기후행동만이 모두가 살 만한 미래를 보장할 것’이라는 IPCC 보고서의 경고가 주는 의미를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인가? 미래 세대를 위하는 일이 곧 지금 우리를 위하는 일이다”라는 어느 책의 글귀가 머리에 맴돈다.

[인천시론] 너 범인 해라

최근 수사물이 영화와 드라마를 넘어 시사프로그램까지 접수했다. 특히 실제 경찰들이 나와 자신이 해결한 사건과 그 뒷이야기를 털어놓는 콘텐츠는 그중 단연 인기다. 혐의를 벗어나고자 머리를 굴리는 범인과 진범을 잡기 위해 집요하게 수사를 이어가는 경찰의 두뇌싸움은,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수사현장을 보여준다. 결과는 늘 그렇듯 권선징악으로 끝나지만,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경찰이 흘린 피와 땀이 주는 감동은 압도적이다. 그래서인지 마치 스타 셰프들과 특수부대 출신들이 방송가를 장악하며 전문직업인과 방송인간의 경계를 허물었듯, 이제 범죄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전∙현직 경찰들의 시대가 오는 듯하다. 하지만 미디어 속 경찰의 빛나는 수훈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들도 있다. 특히 최근 한 시사프로그램에서는 경찰이 고3 남학생을 길거리에서 음란행위를 한 범인으로 지목한 후 ‘혐의 있음’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이 보도됐다. 사건 발생 시간에 해당 학생은 학원에서 수업 중이었고, 수업을 마친 후 곧바로 집으로 왔음에도 느닷없이 변태로 지목된 것이다. 당시 학생의 부모님은 관련 CCTV를 직접 확보해 실제 아들이 집으로 오는 모습과 함께 진범과 아들의 인상착의가 다르다는 점까지 알렸지만 오히려 담당 경찰은 “그걸 제가 왜 봅니까”라며 “아들이 참 용의주도하네요”라는 황당무계한 답변을 늘어놓았다고 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자신의 무고함을 위해 스스로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고, 그럼에도 이를 무시한 채 ‘넌 반드시 범인이어야 해’라는 담당 경찰의 외고집은 가히 충격적이다. 당연하게도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지만 고3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성범죄자로 몰린 학생과 가족들이 겪었을 고통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이에 방송사 측에서 해당 경찰의 입장을 들으려 연락했지만 “현재 출장 중이고 언제 복귀할지 모른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기약 없는 출장’이란 핑계로 언론을 피하는 모습은 비루하다. 만약 본인의 자녀였다면 용납될 수 있는 수사인지 되묻고 싶다. 경찰의 매서운 눈과 동물적인 감각은 분명 수사에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너는 반드시 범인이야’라는 확증편향이 경찰의 공권력과 결합한다면 그땐 누군가의 인생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언제든 출장이 끝난다면 개인적으로라도 어린 학생에게 “내가 틀렸다”며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문득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영화 스파이더맨 속 대사가 떠오른다.

[인천시론] ‘의료취약’ 인천의 불명예

‘치료 가능 사망률’은 의료적 치료가 효과적으로 이뤄졌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조기 사망률을 뜻하는 통계다. 치료 가능 사망률이 높다는 건, 그만큼 의료환경이 취약한 까닭에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끝내 사망케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OECD 보건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치료 가능 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142명으로 OECD 국가 평균 239.1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할 정도다. 하지만 의료선진국 대한민국 안에서도, 의료취약지역으로 불리며 소외받는 곳이 있다. 인구 300만의 대도시이자 인천국제공항에 송도·청라 경제자유구역을 보유한 인천이 그 불명예의 주인공이다. 보건복지부의 ‘치료 가능 사망률 현황’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인천은 인구 10만명당 치료 가능 사망자가 51.49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으며 17개 시∙도 가운데 50명대를 넘은 지역은 인천이 유일했다. 전국 평균인 43.7명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인천의 열악한 의료 현실은 안타깝게도 의사 수의 절대적 부족에서 기인한다. 2022년 기준 인천지역 의료기관 종사 의사 수는 7천 857명으로 7개 특·광역시 중 울산을 제외하고는 가장 적다.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를 기준으로 하면 인천은 2.6명으로 부산(3.6명)과 대구(3.7명)의 3분의 2 수준인 것은 물론이고 인구수 110만명인 울산의 2.5명과 비슷한 수준이다(건강심사평가원∙2023년). 이는 인천지역 내 의대 입학 정원이 고작 89명으로, 인구 153만명인 강원도의 267명의 절반조차 되지 않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천에 뿌리내릴 의사 수급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공공의대 도입의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정부는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 운영을 위해 전국을 16개 권역으로 나누고 권역별로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해 이를 총괄토록 했지만 인천과 울산을 제외한 모든 권역에서 국립대 병원이 책임의료기관을 맡고 있다. 인천에는 국립인천대가 있지만 의대와 병원이 없는 까닭이다. 어쩌면 의사 수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대 병원 부재라는 의료사각지대 속에서 인천시민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최근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전격 발표했다. 300만 대도시 인천이 더는 의료취약지역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공의대 설립뿐 아니라 의대 정원 확대와 같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천시론] 양육비, 법은 멀고 현실은 가혹하다

지난 11월 법원에서 대낮 추격전이 펼쳐졌다. 양육비 4천만원을 미지급한 한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후 법원 출입문 앞에 나선 순간이었다. 취재진이 모여들며 질문을 하려 하자 남성은 뒤따르는 카메라를 뒤로한 채 전력질주하더니 성인 허리 높이의 법원 담장을 훌쩍 뛰어넘으며 도망친 것이다. 필자는 이 남성에 대한 기억을 소환했다. 지난 10월 결심공판을 마친 후, 방송국 카메라를 향해 “간이라도 팔아서 애들하게 해주고 싶어요. 못 해주는 제 심정을 아시냐고...”라며 열변을 토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성형외과의 ‘비포 앤 애프터’를 보듯 판결 전후로 달라진 남성의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떻게든 중형을 피하고자 낮은 자세를 보이다가도 막상 목적을 달성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책임을 회피하는 파렴치한의 전형이다. 특히 양육비를 줄수 없는 현실이 괴롭다는 변명은 악어의 눈물을 연상케 한다. 법원 담장을 단번에 뛰어넘는 정도의 체력이면 일을 해서 줄 수 있음에도 뭐가 그리 억울한지 의문이다. 이는 마치 스스로를 양육비 독촉에 고통받는 선량한 피해자인 것처럼 포장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가스라이팅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2017년 남성의 외도로 이혼한 뒤 식당 일을 하며 홀로 세 자녀를 양육해온 피해자의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 모든 걸 가능케 한 건 역설적으로 집행유예 판결의 공(?)이 크다. 양육비 역시 금전 문제이기에 굳이 분류하자면 횡령·배임과 같은 재산범죄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같은 액수의 돈을 횡령·배임했다면 실형 선고가 유력하다는 것이다. 양육비 미지급은 아이들의 생존권과 직결된 것은 물론 ‘낳아 놓고 책임지지 않는’ 나쁜 부모에 대한 것이기에 더욱 엄중한 처벌이 필요함에도, 현실은 정반대인 것이다. 양육비 수천만원을 주지 않아도 실형은 받지 않는다는 잘못된 시그널이 세상에 전파됐다. 일부의 문제겠지만 악질적인 양육비 미지급자의 세계관에서는 ‘이대로라면 실형을 받지 않을까’ 하는 가장 큰 고민이 사라진 것이다. 특히 양육비 미지급자를 고소하기 위해서는 감치명령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는 걸 고려한다면 사실상 형사고소의 실효성은 미약해졌다. 그래서인지 지난 2021년 7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제재조치를 받은 양육비 미지급자 772명 중 실제 양육비를 지급한 사람이 고작 69명이라는 여성가족부 통계는 뼈아프다.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법원의 역할이 절실한 지금 ‘법은 멀고 현실은 가혹하다’고 느끼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인천시론] 갯벌로 차별화된 도시, 생태도시로 가는 미래

‘물새와 사람이 공존하는 Biophilic City 송도’라는 비전을 내걸었다. 물새와 물새의 터전을 사랑하고 친밀하게 공존하는 도시로서의 송도를 의미한다고 한다. 수년간 진행돼온 송도 조류대체서식지 조성사업 기본계획이 수립됐다. 광활하고 풍요로운 갯벌을 자랑하던 송도. 저어새와 검은머리갈매기, 알락꼬리마도요 등 국제적 희귀 조류가 찾는 갯벌이면서 다양한 저서생물의 서식처로서 주변 어민들의 터전이기도 했다. 지금은 옛 명성에 지나지 않는다. 흔적조차 거의 남지 않아 그 당시를 가늠키 어렵다. 매립에 의한 도시화와 도로건설, 산업단지 조성 등 개발로 송도지역 갯벌의 대부분이 사라졌다. 멸종위기에 놓인 조류를 포함해 서식지 보전을 위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갯벌의 가치와 기능에 근거해 그나마 남은 갯벌을 어떻게 지키고 잘 활용할지에 대한 활발한 모색이 이뤄졌다.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 도시에 대한 요구가 날로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마무리된 송도 조류대체서식지 조성사업 기본계획은 송도 11공구 매립공사 시 환경보전방안 조건부 협의사항으로 시작됐다. 구상에 따르면 담수습지와 기수습지로 물새들의 서식지, 띠녹지를 이룰 완충구역, 습지센터와 생태탐방로로 이뤄진 협력구역으로 나뉜다. 물새들의 안정적인 활동을 위해 가능한 한 조명이나 소음 등 간섭요인을 차단하고 탐방활동의 노출도 최소할 계획이라고 한다. 2030년 완공해서 개관하는 것이 인천경제청의 목표다. 사실 전체 송도갯벌의 매립 면적에 비하면 대체습지의 조성 면적은 매우 미미하다. 해당 지점에 집중하면서도 향후 공간적·기능적으로 주변부 연계지점으로의 확대까지 고려한 조성이 필요하겠다. 이는 위치가 송도 11-2공구 북측연구단지 인근 연안에 맞닿는 지점이라는 폐쇄성과 단절성의 극복과도 관련이 있다. 조성 완료 후 차별화된 관리운영체계까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대상 지역이 이미 매립된 곳임에도 인위적으로 일부를 생태습지로 복원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주목할 사례다. 전국 최초일 것으로 여겨지는데, 생태환경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점, 도시계획과 개발계획 구상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경우다. 성공리에 진행된다면 송도는 세계적인 생태도시로 성큼 나아가는 셈이다. 황해를 품은 인천의 특성에 기인한 탓이지만 갯벌 관련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상황이다. ‘송도국제도시 조류대체서식지 조성사업’ 외에 인천갯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추진, 소래습지 1호 국가도시공원 지정 추진 등을 두고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맞물린 현안으로 갯벌이 모두 주인공이다. 환경적 관점에서 보면 탄소중립과 더불어 블루카본이나 생물다양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도시적 관점으로는 생태도시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려는 시도로 여겨질 만하다. 어떻든 세계적 모범도시로의 탈바꿈이 인천에서 진행되려는 것이 아닐까?

[인천시론] 붕어빵 멸종의 시대

풀빵의 계절, 겨울이 왔다. 풀빵은 철판으로 된 틀에 액체 밀가루 반죽을 부어 굽는 빵을 의미한다. 일본의 오방떡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지는 풀빵은, 싼 가격에 배를 채울 수 있는 길거리음식 중 하나다. 특히 풀빵은 값싼 재료에 간단한 기술만 가지고도 만들 수 있기에, 주로 가진 것 없어도 몸 하나는 건강한 길거리 노점상들의 단골 메뉴이기도 했다. 1950~70년대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청년들이 추운 겨울날 한 끼 식사로 풀빵을 애용했다고 하니, ‘눈물 젖은 풀빵’의 참뜻을 이제는 알 것 같다. 풀빵의 대표주자로는 단연 붕어빵이다. 붕어빵은 도미 형상의 타이야키(鯛焼)에서 유래했다. 우리에게는 ‘돔’이라 불리며 참돔과 감성돔, 청돔 등 최고급 횟감인 도미는 예부터 ‘백어(白魚)의 왕’이라 하여 값비싸고 귀한 생선으로 대접받아 왔다. 그래서인지 19세기 말 일본의 서민들은 도미를 흉내 내어 타이 군을 만들어 먹었고, 1930년대 우리나라로 건너와 지금의 붕어빵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붕어빵은 풀빵의 대명사이자 특히 1960~90년대의 추억을 소환하는 문화아이콘이 됐다. 슈크림, 피자 등 다양한 속재료를 넣은 붕어부터 붕어 모양의 아이스크림까지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것은 물론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붕어빵 틀을 사은품으로 줄 정도로 붕어빵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붕어빵 영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붕어빵 가게와 가까운 곳에 자리잡은 권역을 가리켜 ‘붕세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까 이렇듯 붕어빵 가게를 보기 힘든 이유는 간단하다. 반죽 가격부터 가스비, 인건비까지 줄줄이 오르면서 길거리 노점에서 붕어빵을 파는 것이 크게 부담스러워진 탓이다. 여기에 전국 유통망을 갖춘 대기업 편의점과 깔끔한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들이 앞다퉈 붕어빵을 팔기 시작하면서 길거리 노점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하지만 같은 붕어빵이라도 길거리 노점이 아니라면 왠지 이질감이 든다. 집 근처 모퉁이 허름한 손수레에서 능숙하게 붕어빵을 찍어내던 주인아저씨도, 붕어빵이 담긴 하얀 봉투를 가슴팍에 품은 채 추위를 녹이며 집으로 향하던 우리네 부모님들의 모습도 이제는 먼 옛날의 추억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중요했던 건 붕어빵의 맛이 아닌, 그 시절이 주는 ‘멋’이 아니었을까 싶다. 길거리에서 붕어빵이 멸종되고 있는 지금, 과연 붕어빵을 떠나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됐는지 묻는다면 필자는 단호히 아직은 너무 이르다 답하고 싶다.

[인천시론] 예술창작 확장과 지속가능한 청년예술인

인천지역에서 현재까지 청년예술인 대상 정책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많다. 곧 청년예술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보통 청년예술인이 강한 의욕, 역동성에 비해 현실적인 활동 여건이나 여력은 취약한 편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기반을 이야기하게 되고 도약을 위한 디딤돌을 놓아주는 경우가 생긴다. 이는 그들이 ‘취약계층’이어서, 또한 단순 ‘시혜’의 성격이 아니라 기존 경계를 넘나들며 예술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청년예술인의 가능성에 초점을 둔 논의이고 제안이다.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와 인천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가 공동의 노력으로 올 초 유경희 시의원이 대표 발의한 ‘인천광역시 청년예술인 육성 및 지원 조례’를 제정한 이유다. 그 이후 최근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문화분과가 만 19세부터 39세까지의 청년예술인 500명 대상 ‘인천 청년예술인 지원정책 수립 방향’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청년예술인들이 성장할 문화예술생태계 활성화,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청년예술인 지원정책 수립을 위해서다. 예정 인원을 초과한 설문 결과, 경제적 안정성이 청년예술인의 지속가능성, 예술창작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중요한 전제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천에서 문화예술 활동 수행 시 원활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46.7%이며 어렵다고 응답한 비율은 15.8%로 나타났다. 가장 어려운 요인으로는 소득의 안정성 저하가 46.1%였다. 인천이 도입하거나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타 공공기관의 지원사업으로는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지원사업이 45.0%로 가장 높았다. 청년예술인 성장, 정착을 위해서는 소득의 안정성이 51.1%로 가장 중요했다. 지역 내 문화예술 활동 지속 의향 대비, 청년예술인 정착을 위한 예술창작활동 비용 지원과 소득의 안정성을 원하고 있었다. 또 문화예술 활동에 따른 소득은 월별로 금액의 편차가 커 창작준비금제도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았다. 아울러 신규 예술창작 지원공간에 대해 응답자의 63.1%는 충분하지 않다고 응답했고 향후 신규 공간 조성에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음에 대해 73.9%가 동의했다. 결론적으로 청년예술인 개인의 경제적 안정성과 창작활동 활성화를 위한 지원, 그리고 공간에 대한 갈급함을 알 수 있는 설문 결과였다. 물론 이는 청년예술인만의 곤란은 아니고 그러한 환경과 지원이 청년에게만 필요한 것도 아니다. 문화예술의 지속가능성, 다채로운 예술창작 세계의 확장, 생활문화로의 저변 확장이라는 면에서 좀 더 강조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오는 2024년 유정복 인천시장의 문화예술예산 3% 공약과 더불어 탄탄한 청년예술인 정책이 펼쳐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천시론] 맨발 걷기 열풍, 생태계 건강도 보살펴야

맨발 걷기 열풍이 거세다. 몇몇 사람이 그리 걷는다 싶었는데 어느새 산책길을 오가는 사람 중 다수가 맨발이다. 심지어 전철역 내부 계단을 맨발로 오르내리던 중년 여성들을 보기까지 했다. 산이나 숲, 공원은 물론 갯벌에까지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의아스럽고 염려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길을 맨발로 다니면 기인 또는 어딘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했다. ‘어싱 이론(Earthing Theory)’이라는 것이 소개되며 상황이 급반전했다. 그것은 ‘인체(발)를 지구 표면(땅)에 접지해 몸에 유용한 전자를 유입함으로써 여러 염증이 감소하고 건강을 도모한다.’는 이론이다. 노화나 질병을 두려워하는 우리들, 건강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매우 설득력을 갖는다. 어싱을 통해 혈액순환 개선, 면역력 증진, 스트레스 해소 등 다양한 효능을 누릴 수 있다는데 굳이 마다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별 비용을 들이지 않고 언제든 간편하게 실천할 수 있는 건강비법인데. 대유행과 맞물려 맨발 길 조성 요구가 빗발침에 따라 인천시는 지난 7월 ‘맨발 걷기 활성화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원칙적으로 맨발로 걷기, 정해진 산책로나 맨발로 걷도록 만들어진 길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할 일이 없다. 필자는 오히려 대지와의 접촉, 생태환경과의 깊은 교감이 반갑기도 했다. 그런 기회로 건강한 생태환경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계기가 된다면, 안전하고 쾌적하게 걷기 위해 오염과 훼손을 줄이려는 노력까지 더해진다면 등등의 바람도 있었다. 그런데 맨발 걷기를 둘러싼 염려와 후유증은 당사자의 몫이 아닌가보다. 급기야 한 지상파 방송사에서 문제점을 짚었다. 사례로 인천의 소래습지생태공원 갯벌에 들어가 맨발로 걷는 이들을 취재했다. 이미 그것을 두고 여러 차례 우려가 제기됐던 상황이다. 갯벌에 빤질빤질한 산책로가 생기더니 금세 넓은 길이 만들어졌다. 공원과 산 등도 몸살을 앓는다.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이 정해진 산책로가 아닌 곳을 걸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잖아도 골치인 중구난방 샛길이 더욱 복잡해진다. 사람이 땅을 밟으면 답압에 의해 생물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딴딴해진다. 주변까지 황폐해진다. 결국 타 생물의 삶터를 빼앗는 셈이다. 이래서는 지속가능한 맨발걷기문화를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맨발 걷기로 자연과의 공존, 조화가 빛나기보다 사람의 건강만을 챙기려다 보니 생태계의 건강은 나 몰라라 하는 격이다. 맨발 걷기가 환경 파괴의 원인이라는 오명은 걷기문화 전반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생태계의 건강을 지켜주면서 정해진 장소와 방법으로 걷는 맨발걷기인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한 때다.

[인천시론] ‘마약’ 마케팅 속 불편한 진실

“영감이 필요한가? 당신을 위한 액상대마를 준비했다. 완전히 합법이다” 최근 대학가에 살포된 마약 판매 전단지의 문구이다. 마약이 거리의 뒷골목을 벗어나 진리의 상아탑인 대학 캠퍼스까지 넘보는 순간이다. 물론 액상 대마 역시 마약의 일종으로 불법이라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액상 대마는 일반 대마초에 비해 10대 이상 환각 효과가 크고 겉모양이 전자담배 액상 용기와 비슷한 까닭에 그 위험성이 매우 높다. 당연히 해당 전단지를 유포한 40대 남성은 곧바로 체포돼 마약류관리법 혐의로 구속송치된 상황이다. 분명 사건은 해결됐지만 그럼에도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아 있다. 사방에 CCTV가 있는 대학 캠퍼스에서 감히 마약 판매 전단지를 뿌릴 수 있는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그것이다. 대학생들의 준법의식을 과소평가했다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전단지를 보고 호기심으로 연락하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을 거라 믿은 게 아닐까? 그도 아니면 이제 마약 정도는 떳떳하게 광고해도 무방할 정도로 마약의 대중화가 이뤄졌다는 확고한 판단이 있던 건 아닐까? 안타깝게도 이 모든 질문에 단호히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작금의 현실은 너무도 참담하다. 대검찰청의 2022년 마약류범죄백서를 보면 지난해 마약사범은 1만8395명으로 2018년의 1만2613명과 대비해 4년 만에 무려 45.8%가량 증가하며 마약이 우리사회에 뿌리 깊게 침투했다. 여기에 30대 이하의 마약류 사범이 2018년 5257명에서 지난해 1만988명으로 109% 늘어나면서 젊은층이 마약의 주소비층으로 급부상했다. 이유가 뭘까? 크게는 마약이 더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약’이라는 단어가 ‘맛있는’, ‘편안한’과 같은 긍정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하며 마약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희석된 것이다. 이는 중독성 있는 맛을 가진 마약김밥·떡볶이에 그리고 숙면을 취하게 해주는 마약베개까지 소위 ‘마약’ 마케팅의 영향이 컸다. 여기에 대마향이 나는 전자담배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이제 마약의 간접체험 시대가 열린 것과 같다. 특히 판매자는 대마향을 완벽히 구현했다고 홍보하며 실제 대마향과 똑같다는 상품평까지 올라오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각종 마약을 모티브로 한 상품들이 줄지어 나올까 걱정이다. 마약은 사회악이다. 그럼에도 마약마케팅은 자본주의경제의 이름으로 ‘마약’을 우리 곁의 친절한 이웃으로 만들고 있다. 늦기 전에 여기서 멈춰 달라.

[인천시론] 갯벌을 곁에 둔 도시가 누릴 풍요·가치

갯벌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분주히 오가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와 국가도시공원 지정이 그 이유다. 이 두 가지 타이틀은 만일 그렇게만 된다면 영예도 그렇지만 우수성과 가치에서 탁월함을 공인받는 셈이다. 그 파급효과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가능성이 거론되는 갯벌은 강화와 영종 남단, 송도 등의 연안갯벌이다. 국가도시공원에 해당될 만한 갯벌은 소래습지 일원이다. 갯벌을 메워 단기간 고밀도로 개발한 도시에서 한창 진행되는 갯벌 논의가 반가우면서도 왠지 생경하다. 인천시민 가운데 의문을 품을 이도 있을 법하다. 실제로 바다에 닿기 어려운 지금에야, 게다가 도무지 갯벌과 그리 상관없는 삶을 사는 이로서야 당연하다. 이제의 현상은 바다와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시대, 바닷길로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인천, 그러니까 해양도시 인천의 정체성에 기인한다. 실제, 인천의 갯벌은 국내는 물론 ‘월드 스타’급이다. 많이 쪼그라들기는 했으나 여전히 ‘핫 스팟(Hot Spots)’으로 손색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니 갯벌을 잘 ‘어떻게’ 해본다면, 인천으로서는 ‘화룡점정’일 수 있겠다. 잘 갖춰놓은 도시 인프라에 더해 청정 갯벌, 풍요로운 갯벌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면 그러한 도시는 가장 살 만한 도시이자 방문하고 싶은 도시이지 않을까? 이와 유사한 경험치와 검증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국내적으로 순천시와 신안군, 고창군이 그렇다. 멀리 국외로 보면 홍콩의 마이포습지, 영국 런던의 런던습지센터, 유럽의 와덴해 갯벌 등을 꼽을 수 있다. 경제적 부가가치와 주민 삶의 질을 동시에 높여 ‘보호를 위한 투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그래서일까? 갯벌을 논할 때의 확연한 변화가 읽힌다. 환경보전이라는 원칙론과 당위성에 대한 주장만이 난무하지 않는다. 환경운동가들은 인간이 살기 위한 방편임을 설득한다. 경제적 이익은 물론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이뤄진 조사와 연구의 결과를 대며 생명 다양성과 풍요로움을 뒷받침한다. 그것을 누리며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를 우리네 삶으로 풀어 설명한다. 공무원들도 적극적이다. 해내려는 의욕은 물론 나름대로의 소신을 피력한다. 이러니 개발과 보전을 두고 벌어지던 원색적인 충돌을 찾기 어렵다. 우리는 도시적 삶과 함께 자연이 주는 혜택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음이다. 인천을 통해 도시가 생태공간과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지, 소중한 생태자원의 지속가능한 활용의 모델은 무엇일지를 가늠할 잣대가 마련되기를 기원한다. 갯벌을 위한 관심과 투자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 인천이 품고 있는 연안, 섬들 모두가 인천의 자산이며 정체로 생각되기를 희망한다.

[인천시론] 무너진 교권, 죽어야 바뀌는 법

대한민국 공교육이 무너졌다. 교사에게 막말을 하고, 심지어 폭행에 성희롱까지 일삼는 학생들을 보는 건 더는 놀랄 일이 아니다. 여기에 일부 학부모들의 맹목적 자식사랑까지 더해지면, 그 전투력은 가히 폭발적이다. 반면 교사들은 공인이라는 신분상 약자의 지위에서 이를 감내해야 한다. 전인교육을 위해 쓴소리 한번 했다가 임자 잘못 만나는 날엔, 각종 악성민원에 여기저기 불러다니며 소명까지 해야 한다. 여기에 보신주의로 가득한 학교관리자와 교육청 담당자까지 버티고 있다면, 싸울 의지조차 잃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교사가 되고 난 뒤 명퇴 신청할 날만 기다린다”는 일선 교사들의 푸념은 애처롭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선출직 정치인들과 교육감들은 늘상 학생인권을 강조했고, 그때마다 교사들은 마치 학생들을 탄압하는 절대적 권력자로 취급되며 교권은 한없이 추락했다. 교권을 제한하는 것이 곧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의 결과다. 이미 시대가 변해 학생들과 학부모가 학교교육의 주체로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내고 있음에도, 이를 도외시한 것이다. 특히 서이초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불거진 교권추락의 민낯에 세상은 경악했다. 여기에 2년 전 세상을 떠난 의정부 호원초의 이영승 교사의 경우 애초 단순 추락사로 보고됐지만, 실상은 학부모의 지속적인 악성민원이 그 원인이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리고 이는 ‘교권보호 4법’이 일사천리 국회를 통과되는 기적으로 이어졌다. 초·중등교육법 등에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 범죄로 보지 않는다는 예외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교육부가 배포한 고시 해설서에서 ‘수업 중 엎드려 잠을 자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학생들의 경우 면학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교원이 지도할 수 있다’며 친절히 예시까지 들고 있다고 하니, 이토록 뻔한 규정을 왜 이제야 법제화했는지 황망할 뿐이다. 물론 어디까지를 ‘정당한’ 생활지도로 볼수 있을지를 두고 벌어질 법적 분쟁은 덤이다. 근본적으로 교사의 지위가 학생들과 학부모에 비해 열위인 현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교권보호란 말은 허상에 불과할 수 있다. 과연 ‘교권보호 4법’이 교권회복의 실질적 교두보가 될지, 아니면 성난 여론을 달래기 위한 땜질처방에 머물지 정치권과 교육계의 향후 행보가 기대된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소중한 목숨을 잃고 나서야 허겁지겁 법을 만드는 작금의 현실이 더욱 서글프다.

[인천시론] 더불어 멀리 가는 방법, 거버넌스를 위한 단상

얼마 전 장기간의 공석을 메우고 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의 제10기 민간대표가 비로소 추대됐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도심 생명의 물줄기가 더욱 맑고 힘차게 흐를 것으로 기대된다. 인천하천살리기추진단 소식이 더욱 반가운 것은 전국 최초의 지원조례로 탄생한 하천거버넌스이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지역사회에서 쉼 없이 전개돼온 ‘거버넌스(협치)’를 돌아보게 된다. 귀에 설고 입에 담지 않았던 ‘거버넌스’라는 단어를 이제는 자연스럽게 말하고 듣는다. 거버넌스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어진 조건 내에서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투명하게 의사 결정을 하고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행위자가 참여·협력한다는 점에서 ‘협치(協治)’로도 풀이한다. 이는 오늘날의 행정이 분권화, 네트워크화, 국제화를 지향하고 있기에 가능한 체계다. 결과적으로 한계가 분명한 행정(광역·기초지자체)의 기존 활동을 보완, 조력하고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살피는 기능을 담당한다. 필요한 논의, 사업들을 전개하고 제도와 정책, 조직으로 성과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거버넌스의 원리와 역사는 지역적으로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이하 인천지속협)의 궤와 거의 같다.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 어젠다21 채택, 1998년 ‘인천의제21 살기좋고 활기찬 인천만들기’ 선포, 1999년 조례 제정과 인천의제21실천협의회 창립의 맥락이 그것이다. 그 과정에서 파생한 하천살리기추진단은 거버넌스의 확장이면서 강화의 대표적인 예다. 2000년대 초반 진행한 승기천과 장수천 등 인천 5대 하천 자연생태복원을 이끌었다. 아쉬운 경우도 있긴 하다. 지난 2006년 활동을 시작했던 (사)푸른인천가꾸기운동시민협의회가 녹지거버넌스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 지금은 활동을 멈춘 듯 보인다. 크고 작은 부침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협치는 계속된다. 인천지속협을 통해 조만간 인천청년 거버넌스가 형성될 예정이다. 또 인천둘레길을 관리하고 안내하는 둘레지기들이 모여 비영리단체를 결성, 거버넌스의 첫발을 뗐다. 전국에서 찾는 명품, 인천둘레길이 기대된다. 거버넌스는 지방화시대, 분권으로 피워낸 꽃과 같다. 그렇다고 협치가 늘 우선하거나 매끄럽지는 않다. 원하던 성과로 직결되는 것만은 아닐 터다. 하지만 꾸준히 시도하고 노력하면서 쌓아가는 자산이다. ‘윈윈’을 위한 투자인 셈이다. 거버넌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자주 인용하던 경구가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다. 지금 우리는, 행정은 지역 거버넌스의 자산을 잘 지키면서 풍요롭게 가꿔 가고 있는 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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