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사법부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소고

“법관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나라와 국민을 위한 제도이다.” 양승태 전(前) 대법원장의 퇴임사 중 한 구절이다. 하지만 재임 기간 불거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는 퇴임사의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특별조사단이 찾아낸 문건의 면면을 살펴보면,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와의 효과적 협상 추진 전략’, ‘VIP(박근혜 전 대통령) 면담 이후 상고법원 입법추진전략’,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 등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를 성사시키기 위해 사법부가 얼마나 권력의 눈치를 봤는지 엿볼 수 있다. 특히 사법부는 사실상 상고법원 설치의 결정권을 지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협조를 얻기 위해, KTX 승무원 사건, 쌍용차 정리해고 사건 등 약 20건의 재판에 대해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려 노력한 증거라며 제시하기도 했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 해고된 KTX 승무원들, 정리해고를 당한 쌍용차와 콜텍의 노동자들 모두 원심에서는 승소했으나, 대법원에 이르러서는 모두 패소했다. 긴급조치 9호에 대한 국가배상사건에서도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긴급조치 발령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며 사실상 박 전 대통령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내렸다. 우리에게는 지난 군부독재 시절 강압적인 권력에 의해 법원이 휘둘리고,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희생양을 만들어 낸 아픈 역사가 있다. 국민이 아닌 권력의 편에 선 대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그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옥살이를 한 사람들은 뒤늦게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이 되살아나거나, 잃어버린 청춘이 돌아오지는 못한다. 하지만 작금의 재판거래 의혹은 사법부 스스로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최고권력자의 눈치를 보고, 맞춤형 로비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그럼에도 사법부 내부에서는 위와 같은 의혹에 대한 해결방안을 두고 수사의뢰를 하자는 입장과 사법권 침해가 우려되니 사법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중이다.하지만 위와 같은 사법부 내 논란을 지켜보면, ‘국민’이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사법권 독립이라는 미명하에 스스로를 성역으로 만들어 국민이 든 회초리를 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수사기관이든 국회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그런 일은 결코 없었다”며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아직도 많은 의문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 의문을 푸는 열쇠를 사법부가 꼭 쥐고 국민에게 내어주지 않는다면 사태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 주기를….” 어쩌면 국민이 그리고 사법거래의 대상이 된 판결의 당사자들이 원한 것은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해 달라는 소박한 바램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바램이 산산이 무너진 지금, 사법부는 더 이상 스스로를 성역으로 만드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정치과잉시대의 소확행

눈만 뜨면 북미정상회담, 드루킹 댓글조작, 대한항공 총수일가의 패악질, 네이버 뉴스 갑질장사 등으로 어지럽다. 원래 세상은 혼란하고 시끄럽다고는 하나 우리는 정도가 지나치다. 특히 정치과잉이다. 외국에 한 열흘 정도 나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신문을 보면 누구 구속, 몇 명 사망으로 도배돼 있다. 한국에 10여 년 살다 자기 나라로 돌아간 나의 일본인 지인은 심심한 일본이 지겨워 미칠 지경이었다고 한다. 시끄럽고 거칠고 지저분하고 유도리(원어는 유토리: 여유라는 뜻이지만 약간의 융통성 내지 얼렁뚱땅) 있는 우리나라가 너무 그리웠던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좋게 해석하면 역동적인 나라로 들린다.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전 세계에 유례없는 비약적인 압축성장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독립, 분단, 전쟁, 기근, 독재, 민주화를 거치며 우리 역사의 가장 자랑스런 시기를 보냈다. 아직도 이념, 양극화, 실업, 저출산, 고령화, 남북문제 등 여러 어려운 일이 있으나 잘 되리라 믿고 싶다. ‘역사책에서 행복했던 시절은 백지로 돼 있다’는 말이 있다. 없다는 뜻이다. 세종대왕 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재위 중 굶주림으로 없어진 가구가 2천567호나 됐으니 굶어 죽은 백성은 만 명도 넘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와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면서도 방법론에 있어서 너무 차이가 난다. 해방 직후 좌우 이념대립은 저리 가라다. 서로 나만 정의(正義)이고 선(善)이라고 하니 너무 피곤할 수밖에 없다. 어려운 말을 많이 하는 노자(老子)가 ‘무위지치(無爲之治)’란 말을 했다. 쉽게 말하면 최고의 정치는 지도자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잘 다스려지는 것을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지금에 맞춰 해석해 보면 지도자는 ‘내가 여기 있음을 알아 달라’고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도자는 사람을 발굴하고 일을 맡기고 평가해서 상벌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분열된 민심을 통합하고 반대하는 사람과도 협치하고 포용해야 한다. 최근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이 유행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 썼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하얀 면내의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보는 것이 소확행이고 나의 장모님은 성경을 또박또박 필사하는 게 소확행이고, 어머님은 점심을 누구와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는 것이 소확행이다. 적정한 가격에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에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다고 한다. 지도자는 국민의 소확행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국가, 민족, 통일, 양극화 등 거창한 구호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보면 다 부질없는 게 많다. 정치과잉에 매몰되면 개인의 행복은 이미 멀리 가버린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저마다 기적을 보여줄 것처럼 난리이나 기대를 안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국민의 작은 행복을 책임져 줄 사람이 그립다. 너무 설치지 않으면서.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여론조사와 대수의 법칙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갑작스런취소 선언으로 꺼진 듯했던 북미정상회담의 불씨가 불과 하루 만에 되살아나면서 북미 간 실무 대화가 재개됐다. 지난 26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에서 극비리에 만나 두 번째 정상회담을 하는 등 파격과 반전으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파장과 이해득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미정상회담 향배에 따라 지방선거의 판도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북미회담 취소 발표 이전에 실시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이번 지방선거에 ‘꼭 투표할 것’이라는 응답이 4년 전보다 8%p 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70%대 초반으로 여전히 고공행진을 기록하고 있고, 민주당 지지율 역시 50%를 웃돌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만 놓고 보면 이번 선거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는 모양새다. 일부에서는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대승할 때보다 민주당 분위기가 더 좋다는 평가도 나온다. 여론조사 결과대로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일까? 후보등록일인 지난 24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조작된 가짜 여론조사가 언론을 통해 기승을 부릴 것”이라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감을 강하게 드러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금의 여론조사가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여론을 호도하고 정치인들의 선거 운동에 악용된다며 ‘여론조사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통계학 용어 중에 ‘대수의 법칙(law of large numbers)’이란 말이 있다. 혹자는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 왜 자꾸 나한테 일어날까에 대한 설명으로해석하기도 하지만, 수학적 확률과경험적확률의 관계를 나타내는 정리(定理)로 통계의 가장 핵심적인 법칙이다. 즉 우연한 사건 내지 결과의 발생을 정확히 예측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반복되는 수가 많거나 표본 수가 크면 클수록 일정한 수준으로 수렴하게 되고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요즘 이런 통계법칙을 적용하지않고충분히 크지 않은 표본에서 추출한 엉터리 통계와 어설픈 확률이 여론조사라는 이름으로 유권자의 판단을흐리게만들고 있다. 낮은 응답률, 유·무선 전화와 통계보정의 신뢰성문제, 응답자의 정치성향 비대칭성, 설문의 항목과 방식 등여론조사에 대한의심의 눈초리와 불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일 전 6일부터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유권자로 하여금 우세해 보이는 쪽을 지지하게 만드는 이른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 불리한 편을 응원하고 투표하게 하는 언더독 효과(underdog effect), 사표방지 심리, 침묵의 나선 효과 등 국민의 진의를 왜곡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해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613 지방선거가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앞으로도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까지 각종 여론조사가 실시된다. 날마다 쏟아져 나오는 여론조사를 외면하거나 무시할 순 없겠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맹신해서도 안 된다. 여론조사는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이다.여론조사에 휘둘리지 않고정책과 인물을 꼼꼼히 살펴소중한 자신만의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기를기대해 본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마라

법은 무엇인가? 법은 소수 법조인들이 향유하는 지적 산물이 아니다. 어쩌면 법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윤리규범을 활자화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대가 변하고 국민의 생각이 달라지면 그에 맞춰 법도 변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아동학대를 강력히 처벌하고 그중에서도 정서적 학대행위에 대해 엄히 다스리는 것은, 몸에 난 상처보다 마음속 상흔이 아이들의 성장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정서적 학대는 성장과정 내내 아이를 괴롭히고, 그 이후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렇기에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했다. 최근 대법원은 만 2세의 아이들을 ‘찌끄레기’라고 불러 아동을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보육교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해당 보육교사들이 생후 29개월 된 유아에게 “아휴 찌끄레기 것 먹는다” 혹은 “너는 찌끄레기”, “빨리 먹어라 찌끄레기들아”라고 말하는 등 모욕적인 표현을 한 점은 분명히 하지만 만 2세에 불과한 피해자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잘 알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찌끄레기란 ‘찌꺼기’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사람에게 찌꺼기라고 부르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모욕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영아는 찌끄레기라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정신건강의 위해 여부를 확인할 수 없고, 따라서 학대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의 판시대로라면, 잘 모르는 외국어로 욕설을 해도, 상대방이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못 알아듣기 때문에 괜찮다’라는 이야기는 아이들을 인격체가 아닌 사람 형상의 무언가로 보는 것과 같다.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될 아이들에게 ‘찌끄레기’라는 막말을 일삼은 보육교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은, 앞으로 보육현장에서 벌어질 정서적 학대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심히 걱정된다. 이렇듯 현실과 법은 때때로 큰 괴리를 보인다. 단돈 2천4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한 버스기사는 17년간 아무런 문제도 없이 성실히 근무해 왔음에도, 법원으로부터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아야 했다. 법원은 2천400원을 횡령한 게 사회 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책임 있는 사유라고 했다. 이에 반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한 대기업 총수는 36억원의 뇌물 혐의가 인정되었음에도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일반인이라면 몇 천만원의 뇌물만 받아도 실형이 나오는 현실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법이 아닌 사람의 문제다. 국민이 법에 대해 불신을 가진 것은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국민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동시대를 사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인들이라면 누구라도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는 법집행이야말로 진정한 법치주의의 실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찌끄레기’ 막말을 한 보육교사들은 분명 법적으로는 무죄를 받았다. 그리고 무죄를 선고받는 순간 대다수 평범한 국민은 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축하한다. 찌끄레기들아!”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그리운 고향, 그리운 가족

지난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이날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단과 종전 선언, 종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전환 등 추진키로 하고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정부에서 밝힌 ‘H 경제벨트’로도 불리는 환서해권, 환동해권, DMZ를 가로지르는 접경지역 3대 경협으로도 볼 수 있는데 특히 환서해권은 교통, 물류, 산업 벨트로 인천과 직결된다. 실제 2000년대 초 인천-남포항 해상운송이 있었고 지리적으로 북과 가까운 인천이 남북경협의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기에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역사회가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경제적 효과도 효과지만 남북관계 개선이 더 시급한 이유가 또 있다. 바로 이산가족이다. 대부분 80세 이상 고령으로 인천지역만 하더라도 매년 200여 명 가까이 줄고 있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엔 5천900명, 2015년엔 5천599명, 2016년엔 5천330명, 2017년엔 5천84명, 현재는 4천794명밖에 남지 않았다. 2005년 8천442명과 비교해볼 때 벌써 절반이 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적십자는 이산가족 상봉 외에도 매년 명절에 고령 이산가족을 선정해 위로방문을 하고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고향의 기억과 가족과 헤어진 마지막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누구보다 애타는 분이 있는데 올해로 93세, 이병호 할아버지다. 지금도 자나깨나 마지막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헤어질 당시, 4살된 딸이 “아빠”하고 외치던 게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한다. 그게 마지막 딸의 모습이었고 그게 마지막이 될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65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간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리면 추첨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자가 선정되다보니 매번 상봉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래서 본인까지 차례가 오겠느냐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딸을 만나길 소망했다. 과거 300~400명씩 만나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로는 피맺힌 응어리를 풀 수 없다. 한 매체를 통해 이산가족 생존자 80%가 금강산 외 다른 면회소가 필요하다고 조사된 것도 맥을 같이한다. 지금보다는 더 많은 기회가 있어야 한다. 피를 나눈 혈육간 만남엔 이념도 정치도 개입할 수 없고 인도주의만이 적용돼야 한다. 문화예술, 학술교류, 경제협력 등 중요한 사업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통한의 생이별을 더 이상 바라만 봐선 안 된다. 회담결과 공동발표 후 만찬이 생중계됐다. 이내 만찬장에 ‘고향의 봄’이 울려 퍼졌다. 노래 가사 말처럼 이산가족에게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었고 냇가에 수양버들이 춤추는 동네였고 그 속에서 놀던 동네였다. 그리고 그 고향에 부모, 형제가 있다. 이들에게 고향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남북관계 개선 이후 가져올 경제적 효과로 어느새 이산가족에 대한 관심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하루빨리 이산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길 희망한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인천시론] 법고(法苦)와 검경수사권 조정

석가모니는 인생의 네 가지 고통으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들었다. 요즘은 4개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옥고(獄苦), 실직고(失職苦), 이혼고(離婚苦), 파산고(破産苦)다. 작년에 타계한 마광수 교수는 ‘운명’이란 저서에서 자신이 겪은 옥고(獄苦)에다 3년 동안의 재판까지를 포함해 법고(法苦)라는 새 단어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법고(법으로 인한 고통)를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출소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교도소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분은 절대로 이런 곳에 오지 마시오”라고 했다. 남들보단 훨씬 나은 환경에서 수감생활을 한 사람도 저런 말을 할 정도면 다른 사람은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감옥까지는 아니어도 각종 고발 고소 사건으로 경찰과 검찰에 불려가 보면 돈과 시간에 따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법고를 겪지 않고 한평생 산다는 것은 보통 행운이 아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가 점입가경이다. 사실 국민은 별로 관심이 없다. 두 기관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기 때문이다. 수사종결권, 영장청구권 등 어려운 말을 해봐야 짜증만 난다.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고 시대의 흐름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문제는 그 대안이 경찰이라는데 있다. 경찰이 표정관리, 입 조심할수록 국민은 불안하다. 최근 드루킹 사건으로 경찰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고 더 큰 문제가 발생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적은 숫자의 검찰이 난리치는 게 많은 숫자의 경찰이 난리치는 것보다 낫다고 극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로 넘어갈 거라면 한번 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하는 여론도 있다. 문제는 국민이 실험대상이 된다는데 있다. 사실 검·경도 할 말은 많다. 현실 권력에 대항해 제대로 수사한다는 것은 자리를 내놓기 전에는 어렵다. 전 FBI 코미 국장도 트럼프에 대들다 경질되지 않았던가. 결국 인사의 독립과 과잉수사의 금지 등 제도적 장치를 갖춰야 가능하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민의 인권에 초점을 맞춰야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단순 권한 이동은 더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어차피 경찰로 무게 중심이 옮겨질 거라면 경찰권 비대화를 막는데 전력을 집중해야 한다. 그런 준비가 과연 되어 있을까? 우리는 검찰이나 경찰에 사건이 연루되면 우선 그쪽에 아는 사람이나 소위 쎈(?) 변호사를 찾기 마련이다. 구속이라도 되면 몇천만 원은 기본이다. 돈 없는 사람은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 재판이 진행되면 비용과 시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토정비결에도 구설(口舌)이나 송사(訟事)를 조심하란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러기에 착하게 살라는 말이 나오는데 착하다고 법고(法苦)를 피한다는 법은 없다. 대학 병원장이 자기 병원에서 암수술을 받고 입원하면서 느낀 것을 책으로 냈다. 명색이 병원장인 나도 환자가 돼보니 병원행정이 이렇게 불합리하고 화가 나는데 일반 환자들은 얼마나 힘들까라는 반성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까지 겪는 고통은 칼자루 쥔 사람들이 그들의 입장이 돼 보면 많이 바뀌지 않을까. “정의(正義)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똑같이 부당하다고 느낄 때 실현된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어린이와 함께하는 안전한 나들이

점차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기 좋은 계절이 왔다. 어린이를 동반한 야외활동을 할 경우 주의해야 할 질환들은 ‘살인 진드기’로 유명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 쯔쯔가무시병, 그리고 유행성 출혈열이 있다.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작은소참진드기에 물린 뒤 6∼14일의 잠복기를 거쳐 고열이 3∼10일간 지속된다. 이때 혈소판과 백혈구 감소가 나타나며 구역·구토·설사 등 소화기 증상이 동반된다. 발생 지역은 우리나라 전역이지만 특히 경북·강원·제주에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경남과 경기 순이었다. 5∼10월 사이에 많이 발생하는데 7∼9월 사이가 가장 위험한 시기다.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는 중국·일본·한국 3개국에서 발생이 보고됐고 2013년 이후 3년간 우리나라의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의 사망률은 27∼47%로 매우 높았다. 쯔쯔가무시병은 균에 감염된 털진드기의 유충에 물린 뒤 1∼3주의 잠복기를 거쳐 급성으로 오한·발열·두통의 초기 증상으로 시작돼 기침, 구토, 근육통, 복통 등이 동반된 발진과 딱지가 생긴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발생하며 특히 활순털진드기 분포 지역인 전남·경남·전북·충남 지역에서 많이 발생한다.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로 특히 9∼12월중 벌초를 하면서 산에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2016년 이후 2017년까지 연간 1만여 명이 넘는 발생 건수를 보이고 있다. 유행성 출혈열은 한타바이러스에 속하는 야외형의 한탄바이러스, 도시형의 서울바이러스, 2012년 발견된 제주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 들쥐의 소변에 섞여 나온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퍼지면서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감염된다. 잠복기는 대개 2∼3주이며, 발열기, 저혈압기, 감뇨기, 이뇨기, 회복기의 5단계를 거친다. 감염된 사람의 13에서 증상이 나타나고 절반가량이 위중한 증상을 보이며 사망률이 7%에 이른다. 발생시기는 10∼12월에 많지만 5∼6월에도 건조하면 발생이 증가하며 들쥐뿐 아니라 도시 지역 집쥐나 실험실용 쥐에 의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 가능하면 풀밭에 앉거나 눕지 말아야 하며, 특히 잔디가 곱다고 맨발로 다니는 것은 금물이다. 아파트 단지 등에서도 풀밭이나 잔디에 이불을 널어 말리지 않아야 하며, 야외에서 돌아온 뒤에는 반드시 옷을 털고, 가능하면 세탁하는 것이 좋다. 특히 풀밭에서 어린이들이 용변을 보지 않도록 하고 등산로를 벗어난 산길을 피하고 어린이들과 함께 걸을 때엔 길의 중앙으로 걷도록 한다. 또한 피부 노출을 줄일 수 있도록 소매는 여미고 바지는 양말 안으로 집어넣어 옷을 입히거나 다리를 완전히 덮는 신발을 착용하도록 해야 한다. 벌레에 물리면 가려워 어린이들은 더 심하게 긁게 되는데 깨끗하지 않은 손으로 긁다보면 2차 세균감염이 발생하므로 손을 대지 말고 항생제 연고를 발라주는 것이 좋다. 최근 어린이를 동반해 다양한 형태의 캠핑을 즐기는 가족이 늘고 있는데, 앞서 설명한 장소들과 유사한 조건의 장소에 다녀온 후 약 1주일 정도가 지나 고열을 동반한 다양한 증상이 발생한 경우 가까운 소아청소년과에서 진료와 상담을 받아야 한다. 김동현 인하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인천시론] 궤도 정치

댓글 조작 사건으로 나라가 연일 시끄럽다. 파워블로거이자 경제적공진화모임 대표인 김모씨, 필명 드루킹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권리당원들이 네이버 뉴스 기사 댓글 등 인터넷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했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 경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경수 의원이 관여됐다는 사실이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지난 대선 때에도 부정한 여론 조작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혹도 날로 커지고 있다. 민주당원 댓글 조작 사건의 주범으로 구속된 ‘드루킹’ 김모씨는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 ‘느릅나무’라는 유령 출판사를 설립하고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는 온라인 활동을 벌였다. 이후 그 대가로 김경수의원 등 여권 인사들에게 오사카 총영사 자리에 대한 인사 청탁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반감을 품고 반정부 댓글 조작을 벌인 것이라고 전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야권에서는 지난 대선에서 여론 조작 가능성을 의심하고 이와 관련해 특검을 요구하고 나섰다. 실제로 드루킹의 댓글 조작이 있었던 지난 1월 중순 ‘여자하키 남북단일팀 비판’ 관련 기사에 1분만에 ‘공감’을 412건 폭증하게 하는 등 조회 수, 추천 수, 댓글 조작으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10% 가까이 급락했다고 한다. 즉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댓글 조작 등을 통해 여론을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 역시 이와 같은 방법으로 실제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댓글이 정치인에 대한 호감도에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심리학자들은 사소한 댓글이라도 읽는 순간 뇌에 자동으로 해당 정보가 사실로 입력되기 때문에 타당성이 매우 낮고 아무 근거가 없는 댓글도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전체 이용자의 0.9%에 불과한 사람이 댓글에 참여하고 여론을 좌지우지한다는 분석도 있다. 댓글 조작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선거는 상대 후보를 쓰러뜨려야만 내가 산다. 그래서 선거를 흔히 전쟁에 비유하곤 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병법가인 손무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손자병법’ 시계편(始計篇)에 ‘병자궤도야(兵者詭道也)’란 말이 있다. ‘전쟁이란 궤도, 즉 속이는 것이다’라는 뜻으로 이런 간계, 속임수가 지금 우리나라 선거, 정치판에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인터넷 세상 속에서 말이다.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대다수 선량한 국민을 기만하고 여론을 호도한다. 그러나 궤도, 속임수를 써서 당장 눈앞의 선거 전쟁에서 이길지는 몰라도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불편하기만 하다. 지난 제18대 대선에서는 국가정보원이 댓글 알바 또는 직원을 통해 여론을 조작하고 급기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실형을 받고 구속됐다. 6·13 지방선거가 이제 50여 일도 채 남지 않았다. 자기 또는 소속 정당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일단 당선만 되고 보자는 식의 인기영합적 헛공약을 남발하는 거짓말쟁이 후보는 안 된다. 훌륭한 국가는 훌륭한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처럼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와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볼 때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일상 속 미투운동, 그 거대한 파도를 기대하며

올 한해 미투운동(#Me Too·나도 고발한다)이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강력한 바람이 되고 있다. 하지만, 문득 작금의 미투운동이 용두사미처럼 한순간 바람으로 그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미투운동은 끝없이 일렁이는 큰 파도가 되어야 한다. 이는 미투운동의 주요 대상이 소위 갑을 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으로, 일상 곳곳에 숨어 있는 부조리한 권력관계가 그 근원이기 때문이다.더욱이 일반적인 성폭력이 폭행이나 협박과 같이 눈에 보이는 물리적 힘을 수단으로 함에 반해 미투운동에서 문제가 되는 성폭력은 사회적 지위나 영향력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그 수단으로 하기에, 피해자 스스로도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증거 역시 확보하기 어렵기에 처벌이 쉽지 않다. 결국, 피해자들의 용기 어린 미투가 없다면 세상은 변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더는 미투운동을 온전히 피해자와 피해자를 응원하는 국민만의 몫으로 남겨둘 것이 아니다. 우선 일상 속 미투운동을 가로막는 가장 큰 방해물은 형법상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규정이다.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려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형법은 공공의 이익이 인정될 경우에는 이를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위법성 조각사유를 두고 있으나, 만약 미투운동의 상대방이 공인이 아닌 일반인이라면 위와 같은 공공성이 인정될 여지는 적어진다.위 규정을 폐지할 경우 발생할 부작용을 고려한다면, 엄격한 조건하에서만 제한적으로 성립될 수 있도록 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예컨대 현행 형법은 신문·잡지·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의 경우 ‘비방의 목적’이 있을 경우에만 처벌토록 하여,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다. 이를 일반인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적용한다면, 일상 속 미투운동 역시 더욱 활발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더욱이 ‘비방의 목적’이 있을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성립되므로, 미투운동의 가면을 쓴 거짓된 폭로도 충분히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대법원은 성희롱을 사유로 해임된 대학교수를 복직시키라고 판단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며, “법원이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는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며 “성희롱 피해자가 2차 피해에 대한 불안감이나 두려움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후에도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있는 등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할 것을 지적하였다. 또한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 삼는 과정에서 가해자 중심적 문화·인식·구조 등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는 점 역시 강조하였다. 결국 위와 같은 사법부의 판결은 미투운동의 거대한 물결에 응답하는 사법부의 위드유(#With You·당신과 함께한다)인 것이다. 이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법 개정으로 응답해야 할 때이다. 국회의 ‘위드유’는 언제쯤 선언될까 기다려본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인천시론] 의료복지 통합시스템이 필요하다

4년 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복지사각지대를 찾아 돕고자 하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갑작스런 질병, 실직, 이혼 등 경제적 위기에 놓인 가정을 통칭 ‘위기가정’이라 말하고 민관이 합심해 발굴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 절대빈곤율은 유엔 기준 7%였지만 정부로부터 의료지원을 받는 의료급여자는 3%에 불과했다. 생활고로 6개월 이상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해 병원 가기를 포기한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자는 400만명이 넘었다. 특히 2017년 사회보장정보원의 ‘복지사각지대 발굴에 따른 지원현황’을 보면 복지 고위험 대상자 신규 발굴자 중 22.1%만 지원을 받았다. 사회적 공감대는 형성됐지만, 의료와 복지를 연계해 줄 전문인력과 통합시스템은 여전히 절실한 상황이다. 흔히 복지사각지대는 정부의 지원이 닿지 않는 것으로 본다. 반대로 얘기하면 정부의 지원이 없어도 될 형편이었지만 갑작스런 사유로 인해 정부지원이 꼭 필요한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의료문제에서 긴급한 복지개입이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그간 적십자에서 지원하는 위기가정 긴급지원을 수년간 수행하면서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시민들과 심층 인터뷰를 한 결과, 대부분 지극히 평범했지만 갑작스런 질병으로 인해 생계위험으로 내몰린다는 점과 위기를 모면했을 땐 평범한 가정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갖고 있다. 다양한 위기 가운데 의료는 특히 그렇다. 대개 가족구성원 중 누군가가 아플 때 가까운 친지에게 도와달라는 말을 하고 안면이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해 경제적인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더는 도움을 구할 곳이 없을 땐 아픈 부모, 형제, 자식을 낫게 하려고 무리하게 신용대출을 받아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진다. 결국, 행정기관과 모금기관 개입시에는 밀린 병원비는 해결할 수 있어도 그간 쌓인 빚은 고스란히 남은 상태가 되곤 한다. 따라서 늦은 시점의 지원은 일시적 위험을 모면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의료환자가 발생했을 때 환자정보를 가진 일선병원과 지원체계와 프로그램을 가진 수많은 NGO단체, 행정기관은 의료에 있어서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민간에서 모금하고 긴급지원 하면서 의료기관과 제대로 연계된 단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고 설령 된다고 하더라도 의료기관 복지연계 담당자가 이 일을 전담해 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는 현 시스템이 아닌 의료-복지가 하나로 연계된 통합복지시스템으로 적극 개입할 수 있는 사회망은 부재하다. 며칠 전 충북 증평에서 송파 세 모녀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심마니였던 남편이 죽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배우자와 4살된 딸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유서에 “혼자서 너무 힘들다. 딸을 데려간다”는 내용을 적었다. 다시금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울리고 있다. 민관이 함께 복지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와 프로그램을 현실에 적용하지만 여전히 근본 해결은 되지 않고 있다. 우리 모두 사회적 아픔을 딛고 위기가정의 입장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해 성숙한 시민사회로 한걸음 내닫길 희망한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인천시론] 이제 ‘우리’를 다시 배울 때

한반도에서 일고 있는 ‘바람’은 태풍일까, 순풍일까? 광풍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월일지, 5월일지? 우리의 숨을 죽이게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고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꾸려지고,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과 태권도 시범단, 김영남과 김여정(특사) 폐막식 참가, 패럴림픽 북한팀 참가, 문재인 대통령 특사 북한 파견, 남북 정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 확정, 숨 가쁘게 돌아가는 그 와중에 시진핑과 김정은의 만남. 남측예술단 평양공연까지, 지금 계절은 분명 봄인데 봄바람이 아니라 태풍 급 회오리가 휩쓸고 있다. 전 국민의 신경이 곤두서있는 이 엄중한 국면에 느닷없이 국민감정을 무참하게 만드는 노벨평화상 얘기가 튀어나와 우리의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대한민국직능포럼이라는 ‘뚱딴지’가 ‘문재인 대통령 노벨평화상 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첫 발기인 모임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가 여론의 무수한 ’펀치’를 맞고 어디론가 숨어 버렸다. 이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하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 등 3자 공동수상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었다. 우리 국민이 이토록 유치한가? 이토록 치사했나? 교언영색의 아첨꾼들은 여전히 권력 주변을 맴돌고 있구나!? 자괴감이 일었다. 남북대화를 추진하면서 대통령이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성급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일렀건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벨평화상 ‘사건’을 다시 언급하는 건 무엇보다 국민의 여론이 뭉쳐야 앞으로 휘몰아칠 것으로 예상되는 ‘태풍’에 대처할 힘과 지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대화가 오갈 때 얼마나 많은 유언비어로 정권을 흔들고 사회(여론)를 사분오열 시켜 놓겠는가! 그 유언비어는 느슨한 국민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올 것이다. 남북대화가 오가고 한반도 비핵화가 탁자에 오르면 저들의 강점인 능수능란한 선전선동은 정권과 국민 사이를, 정치권을, 더 나아가 한미 동맹을 파고들어 이간질 해댈 것이다. 여기 휩쓸리면 내부 혼란과 충돌로 무너질 수도 있다. 국민이 강해야 한다. 힘은 ‘주먹’의 크기와 세기에 있지 않고 바른 생각, 옳은 행동에서 나오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 나라는 자유를 위해 피흘려 싸우고 잘 살아보자는 일념으로 새마을운동, 수출장려, 중동 열사의 땅에서 땀 흘려 이룬 나라다. 종북은 물론 불의와 기회주의가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우리는 위기에 강한 나라로 이스라엘을 자주 거론한다. 그들이 강한 건 바로 그들의 공동체 정신에 있다. 유대인은 개인적인 역량도 크지만 그보다는 ‘나’보다 ‘우리’를 중시하는 단결력과 서로 돕는 협동정신(헤세드 정신)이 강하다. 공동체에서는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땐 물질적 도움은 물론 정보와 지혜 나눔, 인맥 소개 등 말 그대로 성공할 때까지 보상을 기대하지 않고 헌신적으로 도와준다고 한다, 위기가 닥치면 그들은 더 단단해진다. 어떤 위기도 돌파해 내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교육에 있겠지만 무수한 민족적 고난과 형극의 역사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고 우리는 기회주의자가 살아남음을 체득한 모양이다. 아첨꾼은 내부의 적이다. 송수남 前 언론인

[인천시론] 영혼 있는 공무원

루마니아 작가 게오르규의 소설 ‘25시’를 원작으로 만든 옛날영화가 있다. 영화 제목도 같은 ‘25시’인데 1967년도에 제작되고 안소니 퀸과 비르나 리지가 주연이다. 전쟁의 참화 속에 희생된 부부의 얄궂은 운명을 다룬 명작이다. 마지막 장면에 안소니 퀸의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표정연기가 압권이었는데 나는 좀 다른 장면에 주시하게 됐다. 독일군에 끌려간 남편의 행방을 찾고자 공무원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비르나 리지가 하소연하는 장면이다. 그 공무원은 열심히 종이에 메모하면서 여자의 청원에 관심 있는 척하지만, 사실은 그림낙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민원인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딴짓하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오늘의 현실과 오버랩 됐다. ‘영혼 없는 공무원’은 현대 사회학의 태두 막스 베버가 관료조직을 비판하면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막스 베버는 이런 식의 말을 한 적이 없다. 베버가 주목한 건 관료의 신분보장과 전문성이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잘릴 걱정 없이 소신껏 일해야 국민이 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베버의 바람일 뿐 우리는 남의 나라 얘기였다. 고위 공무원 스스로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라고 말할 지경이니 대다수 공무원은 침묵이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나라인 미국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FBI 코미 국장에게 충성을 요구했다고 하나 코미는 영혼을 팔지 않았다. 매우 드문 경우다. 대다수 고위 공무원들은 트럼프의 말에 영혼을 다 바쳐 충성하고 있다. 최근에 그만둔 고위 공무원은 후배 공무원들에게 ‘영혼이 있네 없네 고민하지 말고 드러나지 않게 알아서 기어라’고 조언한다. 정권을 7번이나 겪었으니 나름대로 사는 길을 알려준 것인데 어쩐지 씁쓸하다. 위법한 상관의 지시나 명령을 거부해도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이 지난 3월2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영혼 있는 공무원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좀 미안한 얘기지만 ‘공무원은 영혼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면 명문대 간다’거나 ‘운동하면 살 빠진다’와 같은 뻔한 소리다. 정권을 담당하는 사람과 장차관만 제대로 하면 공무원은 영혼백배 뛸 사람들이다. 박근혜 정권의 영혼 없는 드라마를 펼친 주역은 청와대와 장차관과 신분보장이 안 되는 1급 공무원들이었다. 소수 사람들만 정신 차리면 될 일을 전체 모든 공무원에게 확대하는 것은 무리다. 과거 김지하 시인은 나라를 좀먹는 ‘오적(五賊)’으로 장차관과 고급공무원을 지목했다. 선견지명이 대단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사실 국장급 이하 공무원들은 나라를 뒤흔들만한 비리나 부정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신분이 보장되기 때문에 돈만 받지 않으면 좌천 정도로 끝난다. 영혼 있는 공무원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임명권자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봉사자이지 정권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며 정권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직자가 돼서는 안 될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대상은 가까운 데 있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무위무불위와 정치

필자는 최근 노자가 던지는 33가지 질문과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무위무불위(無爲無不爲)’(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7.8)란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세계적인 도교 철학자 자오치광 교수가 미국 미네소타 칼턴대학에서 강의한 내용을 성균관대 이희옥 교수가 정리, 번역한 책이다. 67세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자오치광 교수의 마지막 유작으로 미국, 일본과 중국에서 출판돼 화제를 불러온 책이다. 노장사상은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도가철학을 말한다. 도가사상이라 하면 대개 무위자연을 떠올리게 되는데, 무위(無爲)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즉 무리해서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한 대로 사는 삶을 무위자연이라 한다. 해마다 세계 트렌드가 바뀌고 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자오치광의 이야기는 자칫 허무맹랑하다고 보일지 모른다. ‘무위무불위’의 영어식 표현은 ‘Do nothing & Do everything’이다. 즉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든 행하는 것’의 합성어인 셈이다. 얼핏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깊은 뜻이 숨어 있다. 무위는 무엇인가를 애써 하지 않는 것으로 자연의 규칙에 순응하는 일종의 겸손인 반면 무불위는 자연스럽게 일이 일어나도록 좋은 습관을 들이는 과정으로 규칙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라고 설명한다. 이는 대중의 관심과 여론에 지나치게 민감해 설익은 정책을 추진하거나, 튀는 행동과 막말을 해서라도 주목받으려 하는 요즘 정치인과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뭔가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기에 급급하거나 당장의 가시적인 성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에 대해서는 ‘아니오’라고 반대는커녕 눈치 보기 바쁘다. 요즘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일을 벌인다.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다. 무언가를 기획하고 준비가 되면 일단 터뜨리고 본다. 언론을 통하든 개인 SNS를 통하든. 일부 정치인은 SNS 중독증에 걸린 게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다. 모든 현안에 대하여 해법을 요구받거나, 묻지도 않았는데 앞다투어 먼저 대안을 밝히기도 한다. 하지만 식상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 반면 신중한 답변을 위해 즉답을 피하거나 고심하는 경우 정책적 역량이 부족하거나 심지어 무능한 정치인으로 매도당하는 분위기도 문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토론은 실종되고 ‘포퓰리즘이다, 아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판치는 세상이다. 최근 최저임금제 인상과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논란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자기 측의 주장만 일방통행할 뿐, 생산적 토론이 아쉽다.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렵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은 변화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현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대로 있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자는 생선을 굽듯이 나라를 다스리라고 충고한다. 너무 자주 뒤집으면 생선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눈앞의 정치적 이익만 추구하거나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졸속 정책이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신중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정치인 모습을 그려보는 건 필자만의 바람일까?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잊지 말아야 할 우리 동포, 인천에 있다

어제·오늘·내일 눈을 뜨면 반복되는 일상이 있다. 그렇게 평범한 시간이 지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신년이 밝으면 새해 계획을 세우고 나만의 시간에 스케치를 한다. 절주를 다짐해 보기도 하고 피아노를 배우기 위해 꿈을 꿔보기도 한다. 하지만, 수십 년간 한결같이 하나의 소원을 꿈꿔온 이들이 있다. ‘내일’이면 반드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고 손꼽아 기다린 이들. 보고 싶은 부모, 형제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잊혀져가는 고향의 모습. 그 모습이 누구보다 간절한 이들은 바로 사할린동포들이다. 사할린동포의 역사는 일제의 강제징용 등에 의해 러시아 사할린으로 이주시키면서 시작됐다. 불행 중 다행히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이들은 이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귀환 불허와 1952년 일방적인 국적 박탈조치로 인해 사할린에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또 한 번 좌절해야 했다. 그렇게 남은 한국계 동포는 후손까지 포함해 약 4만3천여 명이나 됐다. 인도적 사안 해결을 위해 1989년 7월 한일 정부의 요청으로 양국 적십자사는 사할린동포의 영주귀국, 일시모국 방문, 귀국지역방문 등 사할린에 거주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동포에 대한 지원하는 ‘사할린 한인지원 공동사업체’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한인 동포 중 우리 조국으로 귀국해 남은 삶을 보내고자 하는 분들은 영주귀국 시켜 드리고 사할린 현지 한인 동포 1세, 2세 모국을 방문한 이들은 국내에 7박8일간 체재하며 우리 전통문화와 발전한 고국의 모습을 시찰함으로써 고국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일시모국 방문사업도 하였고 영주귀국한 사할린동포들을 대상으로 1~3개월간 사할린 현지를 방문해 가족과 친지와 만남으로써 제2의 이산의 고통을 줄이는 등의 지원이 이뤄졌고 약 4천여 명이 고국에 정착했다. 사할린동포 1세대 가운데 질병이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요양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지원하는 사업이 있는데 그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우리 인천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인천 연수구에 인천 사할린동포복지회관이다. 귀국 당시 받았던 금의환향은 잠시, 현재는 간헐적으로 후원하는 시민만이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간 적십자에서는 사할린 어르신들을 위해 지역사회 기업과 단체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삼계탕을 대접해 드리는 행사도 열고 지역 내 학생들과 사할린어르신이 함께 할 수 있는 봉사활동프로그램을 만들어 미술치료라든가 말벗봉사 등을 했다. 특히 학생들이 적십자를 방문하게 되면 꼭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 대해 소개하고 어르신들을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꼭 기억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후원은 줄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루가 다르게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해방된 지 70여 년이 흐른 지금. 이제라도 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길 희망한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지사 회장

[인천시론] 통, 통, 통

이런 혹한의 겨울도 있었던가 싶다. 그러나 아무리 혹한이라도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고 한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니 이제 봄은 오겠지? 남북 관계와 국제(북미) 관계로 가면 이치대로 되지 않으니 답답해진다. 날씨가 풀렸다고 봄인가 하다가 급변한 날씨에 감기에 걸려 고생하거나 자칫 동사하는 경우도 생긴다. 지금 남북 관계가 딱 이런 모양새다. 김정은의 신년사 한 줄로 촉발된 동계올림픽 해빙 무드는 ‘신접살림’을 차릴 기세다. 우리가 언제 으르렁거렸느냐는 듯이 선수단 참가, 단일팀 구성, 공연단 응원단 태권도 시범단에 공동입장까지, 거기에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고위급 대표단으로 다녀갔다. 바다로 하늘로 육로로 한국의 통로를 휘젓고 내려오더니 이번엔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폭격, 목함지뢰 사건 등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까지 폐막식에 고위급 대표단으로 내려왔다. 이제 곧 4월이 온다. 한파도 지나가고 꽃들도 피어나는 4월은 완연한 봄이다. 한숨 돌렸다 싶겠지만 긴장을 늦추기엔 이르다. 3월과 4월 꽃샘추위가 아직 남아있다. 근현대사에서 4월은 우리에겐 잔인한 달이다. T.S 엘리엇(황무지)이 읊은 것보다 더 하지 않을까 싶다. 다가오는 4월은 북핵을 둘러싸고 팽팽했던 긴장이 모처럼 남북 대화의 모티브를 잡은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까지 끝나고 맞는 달이다. 잠시 멈췄던 한미 연합훈련과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충돌할 경우 우리 세대의 가장 참혹한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 ‘4월 위기설’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군사훈련을 연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한국이 군사훈련 연기를 제안하면 한미 동맹에 대해 심각한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여기에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코피작전은 없다. 무력이 사용되면 문명사상 가장 참혹한 사건이 될 것”이라는 게 미 의회의 기류란다. 미국은 대화는 한다지만 명분 쌓기 수단일 뿐 비핵화가 아니면 의미없다며 더 강력한 제재조치(해상)를 발표했다. 4월은 문재인 정부가 맞게 될 엄중한 시기가 될 것이다. 어느 칼럼에 통(通) 통(統) 통(痛)을 언급한 걸 봤다. 통(通)으로 통(統)을 이룬다는 이 정부의 모토가 북한과만 통(通)하다가 국민에게 통(痛)을 안기고 65년 동맹(미국)을 잃고 나라를 재앙에 빠뜨리는 통한(痛恨)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경고였다.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은 물론 북미 간에도 대화가 시작될 조짐은 보인다. 남북은 1971년부터 지금까지 정치(256회) 군사(49회) 경제(132회) 인도(153회) 사회문화(57회) 분야에서 647회나 회담을 했다. 그러고도 우리는 다시 또 시작하는 선에 서 있다.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와 아이스하키 단일팀 결정으로 들끓었던 민심은, 김영철 폐막식 대표단 초청 수락으로 극에 이르렀다. 국민을 위한 정부(한국) 맞느냐는 거다. 소통을 내건 이 정권은 출범 때 ‘쇼통’만 하고 일방적으로 내달리고 있다. 왜 남북 관계 추진 과정을 수시로 국민들과 국회에 설명하고 의견을 구해 소통하지 않을까? 전 정권 탄핵의 꼬투리가 그거 아니었나! 꿍꿍이짓이 수상쩍다. 송수남 前 언론인

[인천시론] 혹세무민 역술가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속이는 것을 ‘혹세무민’이라는데 요즘 대표적으로 비난받는 것이 역술(易術)이 아닌가 싶다.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한가지다. 역사에 기록된 최초 역술의 기원은 중국의 주역(周易)이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 주역은 점치는 책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천지만물과 자연현상의 원리를 설명한 책이다. 인류 역사와 함께 한 역술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 하여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여기서 역술의 종류와 관련된 내용을 나열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심심풀이라고 보기에는 엉터리 역술가의 폐해가 생각보다 심각하기에 이 부분을 얘기하고 싶어서다. 업계에서 추정하는 대한민국 역술시장 규모는 3∼4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재미 삼아 보는 오천 원짜리 점부터 재벌들이 보는 수천 만원에 달하는 고수급 점에 이르기까지 천태만상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내가 아는 자칭 고수가 전하는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은 다음과 같다. 과거는 제법 맞추는데 앞날은 적중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한자 해득(解得) 능력이 없어 남이 번역한 책에만 의존하고, 제대로 된 스승에게 공부하지 않아 수준 이하다. 품성과 인격이 함량 미달이고 돈만 밝힌다. 자칭 고수가 30년 영업을 토대로 내린 결론은 세상은 자기 뜻대로 굴러가지 않으며, 인생은 운명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위에서 함께 굴러가는 존재이기에 사주팔자를 벗어나기 힘들단다. 그러나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의 결과는 달리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아름답고 귀하다는 것이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 학자인 유향(劉向)은 “운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아는 자는 타인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운명의 이치는 밤이 가면 낮이 오고 낮이 가면 반드시 밤이 온다는 것이다. 작년 대선 전 각 역술가는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 SNS에 현란한 설명과 함께 예언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갈수록 좋아진다고 예언한 역술가도 상당수였다. 틀린 역술가는 이 정도도 못 맞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영업을 접는 것이 도리다. ‘아니면 말고’ 식의 뻔뻔함, 심지어는 1년 전에 예언했다면서 엉터리 허위 증거자료를 내놓는 후안무치에 법적으로 사기죄가 안 되는지 관계당국에서는 검토해 봐야 한다. 강호의 고수는 돈 받고 남의 운명을 봐주는 역술인에게 최소한의 자격요건을 갖출 수 있도록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실시하는 시험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이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몇 달 학원 다니고 나서 점상 차리는 세태만큼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점을 친 대목이 17회나 나온다. 오늘날 윷점을 말하는데 나무막대를 던져 괘를 만들어 길흉을 확인하는 것이다. 장군은 자신의 입신양명이나 부귀영화를 위해 점을 치지 않았다. 어머니, 아들과 아내의 안부, 전쟁의 승패, 후원자 류성룡이 아플 때 쳤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의지할 데 없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충무공의 애틋한 심사가 가슴을 친다. 그분도 우리처럼 한없이 약한 존재였다는 동질감을 느낀다. 아플 때 병원 가듯이 힘들 때 점을 치는 일을 나무랄 수 없다. 힘든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일부 점술가들이 문제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인천시론] 서인부대, 지역 불균형 해소해야

무술년 벽두부터 ‘서인부대’란 신조어(新造語)가 회자되고 있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과 경제성장률 등 일부 경제지표를 보면 인천이 부산을 넘어 대한민국 2대 도시가 될 것이라며 유정복 인천시장이 화두로 던진 말이다. 민주당과 시민사회계 일각에선 ‘서인부대’가 613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거나, 시민들의 삶의 질은 간과했다는 등 비판적 시각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필자는 인천에 유리한 자료만 끄집어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그러던 터에 몇몇 통계자료를 챙겨봤다. 지난해 6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2045 장래인구추계: 시도편’을 보면 2015년 대비 2045년에 서울과 부산, 대구 등 10개 시도 인구는 감소하지만, 인천을 비롯한 경기, 세종 등 7개 시도 인구는 증가한다.서울은 이미 인구 천만 명의 벽이 깨진 지 오래로 2017년 기준 986만 명에서 881만 명으로 줄어들고 부산 역시 현재 354만 명에서 298만 명으로 인구가 크게 감소한다고 한다. 반면 인천은 294만 명에서 314만 명으로 오히려 20만 명 증가한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인구 증가가 시민들의 삶의 질이나 행복지수와 직결되는 것일까? 인천시 군·구별로 자료를 살펴보면 녹록지 않은 상황이 감지된다. 지난 11일 인천시가 추계한 자료에 의하면 인천 전체 인구는 10.53% 증가하고 지역별 인구 순위도 대폭 조정된다. 서구, 남동구 순으로 7개 군·구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감소 추세인 동구와 부평구, 계양구의 인구는 2035년까지 계속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대비 2035년에는 동구는 -10.58%, 부평구는 -9.50% 인구가 줄고 계양구는 무려 -13.43%나 인구가 급감한다. 반부패연대의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인천시 8개 구의 재정자립도 추이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전년 대비 2017년 재정자립도가 떨어진 지자체는 서구, 부평구, 계양구 세 곳에 불과했다. 지역별 인구 편차와 지역 간 불균형은 주거환경, 교육여건 등 주민 생활 여러 분야에서 지역 간 격차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으로 도시기능이 집중됨에 따라 교통, 주택, 환경 등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또한 상대적 소외감을 증대시키고 시민 화합을 저해하기도 한다. 이제라도 인천시는 10개 군·구가 상생하고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방안과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일부만 잘 나가는 절름발이 성장으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2대 도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613 지방선거가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변화의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우물 안 개구리 식의 독불장군, 근시안적 사고를 가지고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이번에는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거나 코앞에 닥친 상황만을 모면하려는 ‘마케팅 마이오피아(Marketing Myopia)’ 정치인이 아니라 거시적으로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 당선되길 기대해 본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인천시론] 건조한 겨울철 화재사고 철저히 예방해야

최근 한파가 몰아치면서 인천에서 부주의 등으로 인한 화재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올해부터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일반주택에서도 소화기와 경보형 화재감지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지난해 12월29일 인천소방본부가 아파트가 아닌 일반주택에 사는 초·중학생 2천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는데 집에 소화기나 화재감지기가 설치됐다고 응답한 학생이 전체 43%에 불과했다. 가정마다 준비한다면야 더할 나위 없지만, 가정환경에 준비하기가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정용 소화기와 화재감지기를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불과 3만원이면 준비할 수 있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든가 저소득 취약계층의 경우 화재 위험성을 알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소화기와 화재감지기를 사놓는 게 부담스럽다. 2018년도 기초생활수급비를 보게 되면 1인 가구 50만1천원, 2인가구 85만4천원, 3인가구 110만원 정도다. 가령 기초생활수급 비를 받는 홀몸어르신이 한달에 20만원 정도 소득이 있다고 가정하면 소득을 제외한 기초생활수급비 30만원을 받게 되고, 월세공과금난방비를 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건 불과 몇만원밖에 안 된다. 여기엔 식비가 빠진 계산이다. 게다가 정부지원에서 빠지는 복지사각지대의 경우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적십자에서는 적십자회비를 통해 각종 재난에 대비하고 유독 관심이 필요한 취약계층이 재난에 빠지지 않도록 예방활동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벌인 사업이 소화기 보급사업이다. 그간 적십자에서는 화재가 발생하면 이재민들에게 구호물품을 보내고 심리적 지지활동을 한다. 그래서 화재현장을 자세히 볼 기회가 많다. 전소가 되는 집이 있는 반면 반소 혹은 일부 그을림으로 그치는 집이 있는데 초기에 화재 진압을 할 수 있었는지, 화재에 취약한 주거환경인지 현장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깨진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로 덧대는 집도 있고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스티로폼을 깔아 막는 집이 있었다. 하나같이 생계가 어렵고 기운 없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초기 화재제압의 중요성을 알고 지난해 동절기가 도래하기 전 10월에 인천 관내 취약계층 953세대를 가가호호 방문하여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소화기를 설치하고 사용방법을 안내해 드렸다. 화재 발생 시 조기에 제압하지 않으면 살림살이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한다. 특히 취약계층일수록 화재가 나면 어디 의지할 곳도 없어 중요한 사업이라 생각된다. 지난해 제천 화재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2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천도 예외는 아니다. 여전히 시민들의 안전불감증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원룸 밀집지역에서는 아직도 불법 주정차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소방용수 5m 이내 접근금지는 무시되고 있다. 가정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소화전이나 소화기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적다. 이제부터라도 시민들에게 충분한 정보 제공과 안전의식 고취와 더불어 화재에 취약한 가정에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지사 회장

[인천시론] 평창 평화올림픽?

민족의 위상을 세계에 과시하는 평화올림픽이라고? 북한이 참가하면 평화올림픽이고 불참하면 분쟁(갈등) 올림픽인가. 선수단이나 몇 명 보내면 될 일을 고위급 대표단, 응원단, 예술단에 태권도 시범단, 참관단, 기자단까지 내려온다고 한다. 그동안의 경직됐던 남북관계가 다 풀린 것처럼. 문재인 정부는 일촉즉발의 북핵 문제를 남북 간 대화로 풀어보겠다던 터라 돌파구다 싶어 너무 서두른다. 냉정함을 잃은 들뜬 모습이 우리 국민의 눈에도 훤히 보인다. 이 정권에게는 김정은의 신년사가 평창올림픽의 성공과 남북대화, 북핵 해결까지 주마등처럼 스쳤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렇게 서둘러서야 하나. 어딘가 서툴러 보인다. 우리는 저들에게 언제나 숨긴 망치에 뒤통수를 맞아 왔지 않는가. 이번엔 망치도 보인다. 올림픽을 자신들 정치 선전장화 하면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압박을 늦춰 보려는 술수를 부리고 있다. 저들은 어떻게 세계 각국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며, 피땀 어린 경쟁 끝에 어렵사리 따낸 출전권을 손도 안 대고 코 풀려고 하는가. 동계스포츠 경쟁력이 약한 국가들을 위해 활용하고 있는 와일드카드 제도를 북한에 적용하겠다는 게 IOC의 입장이기는 하다. 북한의 참가가 스포츠를 통한 평화 실현이라는 올림픽 이념과 맞는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북한은 국제 질서에 분탕질을 한 불량 국가로 페널티 감이다. 올림픽 참가를 염원하는 진정성도 보이지 않는다. 남북대화의 목적은 남북한 간의 긴장완화, 평화정착, 교류협력 등을 통해서 민족적 화해를 이루고, 궁극적으로는 정치·군사 문제를 해결하여 평화통일을 달성하려는 데 있다. 지난해 7월 상호 적대행위 중단을 위한 남북한 군사당국 회담 및 이산가족 상봉 논의 등을 위한 적십자회담 추진에도 꿈쩍 않던 북한이 트럼프의 위협에 다급하긴 했나 보다. 올림픽을 매개로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터 보려는 노력은 환영할 일이다. 염려스러운 것은 문재인 정부가 운전석에 앉기 위해 국제사회가 구축해 놓은 대북제재를 허무는 우를 범하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앞으로 올림픽 문제를 넘어 이산가족 상봉이나 군사회담 등으로 논의를 넓혀갈 때 복잡하고 어려운 고비를 만날 것이다. 벌써 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내용을 갖고 막말을 쏟아내고 있는 저들이다. 지난번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저자세의 외교로 국민을 실망시켰음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대북문제에 우호적인 인사와 정책들로 인해 많은 국민이 이 정부를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음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남북 대화는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의 막바지 단계와 겹치는 결정적 시기에, 그리고 우리의 동맹인 미국이 ‘3개월 시한’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상태에서 진행된다. 미 백악관은 최대 압박 전략을 지속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고 했다. 과거의 실수라는 표현은 북한의 의도를 오판한 유화책으로, 경비 대주고 선전 마당 펼쳐 주고 핵개발 시간 벌어줘 온 실패의 경험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 회담이 이 정권에 대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송수남 前 언론인

[인천시론] 성문 앞 수레바퀴 자국

지금은 행정안전부로 이름이 바뀐 과거 내무부에서 근무할 때 얘기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 구포 열차 추돌사고가 육해공에서 한꺼번에 발생해 수백 명이 사망했다. 당시 내무부차관은 인위재난을 담당하던 나에게 재난단계별 행동요령과 사고방지 매뉴얼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사무관이었던 나는 생판 처음 듣는 지시에 당황했다. 하지만, 성경에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믿고 동료들과 상의한 끝에 문서 창고를 뒤져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를 발견했다. 국무총리까지 역임했던 분이 과장 시절 손으로 쓴 보고서였다. 20년도 넘은 보고서였는데 내용이 훌륭해 제목을 ‘후진국형 인재 대응방안’으로 그럴싸하게 바꾸어 올렸더니 칭찬이 자자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후진국형 사고는 반복됐고 그것도 갈수록 대형으로 진행됐다. 2017년, 다시 25년 세월이 흘렀다. 불행히도 달라진 것은 없다. 대책은 보고서에 다 있었지만 실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흥도 낚싯배 추돌사고와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세월호 침몰사고의 트라우마 때문에 대통령 보고는 신속했으나 구조대 늑장출동이나 현장 대응은 미흡했다. 제천화재도 부실대응으로 너무나 안타까운 참사였다. 죽고 사는 게 완전히 운수소관인 세상이 됐다. 일련의 대형사고를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이런 사고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각자도생(各自圖生)만이 살길이라는 서글픈 현실이다. 국가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후회도 없다. 사람 사는 곳에 사고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머리를 잘 쓰면 많은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현장대응을 잘해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사고를 유형별로 정리해 실전 대응훈련을 일상화하는 것이다. 뻔한 얘기지만 이런 뻔한 말을 무시해 뻔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우리가 실전대비 훈련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막상 사고가 터지면 우왕좌왕하는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을 상정하고 진지함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매년 을지연습을 한다. 거기에 보면 전쟁이 발발하면 주민들을 피난, 소개(疏開)해 남쪽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나는 파주에 사는데 자유로, 통일로 다 막혀 꼼짝도 못하고 그냥 사는 집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 북한 미사일이 많지도 않을 텐데 파주에 쏠리는 없고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국가에서 부르면 총을 쥐든지 물건을 나르든지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연락은 어디서 어떻게 받지? 별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맹자에 보면 ‘성문 앞 수레바퀴 자국이 어떻게 말 두 마리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인가?’라는 말이 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수레가 좁은 성문 앞을 똑같은 자국을 따라 지나다녀 깊게 파인 것이다. 원래는 사물의 원인을 잘못 유추해서 잘못된 결론에 도달한다는 비유인데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잘못된 일을 반복하며 살다 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늘 하던 일이라고 여겨 만사를 그대로 따라 하고 편한 것만 찾아 매사를 임시변통으로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병폐다. 언제쯤 사고발생→위로 및 긴급대책→관계자 처벌→망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새해부턴 이런 후진국형 사고의 종식(終熄)을 보아야 할 때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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