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기록의 함정

16대 총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번에는 바꿔보자’는 정치개혁 욕구가 그 만큼 강하다는 것이다. 특히 총선연대가 반민주, 반인권전력 등을 기준으로 올해 1, 2월에 이어 이달 3일 발표한 84명의 낙선대상자명단이 일반 유권자들의 관심을 고조시키는데 일조했다. 중앙선관위 역시 지난 2월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후보자들의 병역·납세실적에 이어 6, 7일 네차례에 걸쳐 전과기록을 전격 공개함으로써 국민들의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과거 후보자에 대한 일방통행식 홍보자료를 ‘선택기준’으로 삼았던 것에 비하면 놀랄만한 비약이다. 그러나 이같은 후보자 검증에도 함정은 있다. 소득세 및 재산세 0원, 병역면제, 실형전과를 지녔다고 해서 ‘자질없는 후보’라고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없지 않다는 말이다. 이런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지난 7일 한 시사평론가는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모지역 출마자의 경우를 들어 민주화운동으로 구속, 옥고를 치뤘는데도 죄명이 잡범에 가까워 ‘불이익’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선거를 불과 며칠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사실과 다른 죄명만으로 언론에 공개될 경우 해당 후보는 해명할 기회조차 없게된다”고 강조했다. 후보자 검증을 위해 실시된 신상기록 공개가 자칫 진주를 진흙에 파묻고 잡석(雜石)을 캐내는 어리석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위 ‘민주전과’를 가진 여당후보들이 8일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병역기피자와 전과자로 매도하지 말라”며 일부 정치권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선거일이 3일 앞으로 다가왔다. 유권자는 최소한 옥석을 가려내는 노력을 통해 적어도 잡범을 ‘국민의 대표’로 선출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될 일이다. /이민봉기자 mblee@kgib.co.kr

저질 쇼

지난 3월 31일 일부 장·차관과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파주산 육류 시식회’가 여의도 국회안 ‘의원동산’에서 있었다. 지금 전국적으로 축산농가를 긴장시키고 있는 구제역에 대한 일반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헌신적(?)인 행사였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장과 환경부장관을 비롯, 농림부·축산업 관계자 등 150여명이 참석한 이날 시식회에서 먹은 돼지고기·쇠고기는 당연히 구제역이 발생한 파주산 고기인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참석자들이 실제로 먹은 고기는 파주산이 아니고 농림부 산하기관인 한냉·양돈협회가 제공한 고기라는 것이다. 시식회에서 상당수 참석자가 안먹으려고 하자 주최측이 ‘이건 파주산이 아니라 한냉에서 사온 고기라 안전하다’고 말하자 50㎏을 구워 먹고, 남은 20㎏은 참석자들이 싸갔다고 한다. 며칠 뒤 이 저질 쇼가 탄로나자 국회농림해양수산위원장측은 행사준비를 맡았던 한냉·양돈협회가 31일부터 파주의 질병 발생 반경 20㎞ 이내의 육류 반출이 일절 금지되자 다른 곳에서 고기를 가져온 것으로 안다고 변명했다. 농림부측도 이 때문에 행사 이름을 ‘우리 축산물 시식회’로 바꿨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농림부 한 관계자는 당시 행사에 사용된 고기는 모두 한냉에서 갖고 온 것이라고 밝혔다. 구제역에 걸린 소·돼지고기가 인체에 전혀 해로움이 없다는 것은 이미 확실히 밝혀졌다. 차라리 ‘파주산 육류 시식회’를 열지나 말지,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이다. 한복 입고 누드 쇼를 했다고 우기는 것 같은 정말 치사한 쇼가 아닐 수 없다. 당국의 매사가 이러하니 정부가 하는 말을 누가 믿겠는가. 시식회의 음식도 가짜가 있으니 정말 믿지 못할 세상이다. /淸河

축산농가를 살리는 길

한국 축산농가에 초비상이 걸렸다. 수포성 가축질병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이면서 국민들의 축산물 소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최소 10조원정도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 질병 자체에 의한 피해보다 소비자가 육류소비를 줄여서 나타나는 피해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현재 한우 소비량은 약 30%, 수입 쇠고기는 10∼20% 줄었고, 쇠고기와 돼지고기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이처럼 예상되는 구제역의 막대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가장 먼저 국민들이 안심하고 육류소비를 계속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공연히 겁을 내 고기를 사먹지 않으면 국내 축산업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뿐만 아니라 나중에 비싼 달러를 주고 축산물을 수입하게 돼 국가경제에 전체적인 피해를 볼 수 있다. 때문에 지금 우리의 축산농가가 살 수 있는 길은 국내 축산물 소비뿐이다. 수출물량을 내수로 돌리는 길 뿐인 것이다. 정부도 할 일이 많다. 축산농가 피해를 충분히 보상해 농민들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보상문제 등에 축산농가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도살하는 가축보상가격을 현실에 맞게 산정하고 각종 행정절차를 간소화하여 신속히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발생지역부터 순서대로 전국에 예방접종을 철저히 시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농민들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구제역으로 의심되는 가축은 철저히 도살해야 한다. 대만에서 구제역이 3년째 계속되는 큰 원인이 농민 비협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다행히 정부와 각 단체들이 구제역 발생으로 수출길이 막혀 육류가 과잉공급돼 가격이 폭락하고 사기가 크게 떨어진 축산농가를 위해 축산물 소비촉진운동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것은 축산농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공무원과 모든 사회단체 회원들이 가정에서 육류소비에 앞장 서고 군부대를 비롯, 정부의 각종 급식소에서 육류소비를 확대키로 한 것은 큰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일보와 축협경기도지회, 경기농협지역본부가 공동 주관하고 있는 축산 농가돕기 성금 모금 운동도 축산농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작은 정성이다. 앞으로 정부는 물론 각 단체에서 ‘구제역에 감염된 돼지고기·쇠고기도 인체에 전혀 해로움이 없음’을 더욱 널리 알리고 국민도 이를 믿고 축산물소비에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對북 환상? 對국민 쇼?

독일에 들른 북한의 백남순외상은 지난 4일 우리측 기자들에게 “그것 되겠어요? 김대중씨에게 물어보시오. 북남(정상)회담 여건에 분위기가 조성돼 있는지를…”이라고 말했다. 불과 이틀전인 2일 서영훈 민주당대표는 긴급기자회견을 자청, “남북정상회담이 올해안에 가능할 것”이며 “상당한 협의가 추진되고 있다”면서 “김대통령으로부터도 들었다”고 말했다. 서영훈대표의 발언이 매우 고무적이라면 백남순외상의 발언은 사뭇 냉소적이다. 국민들은 뭔가 사기당한 기분이다. 그동안 비밀접촉을 통해 구체적인 협의와 진전을 이끌어낸 것처럼 시사해온 정부측 제스처는 연극이었는가, 아니면 환상이었는지. 1994년 7월 25일부터 29일까지 평양에서 갖기로 한 남북정상회담이 그해 7월 8일 갑작스런 김일성북한주석의 사망으로 비록 이루어지진 못했으나 그땐 전제조건이 없었다. 이번은 다르다. 백남순북한외상은 한·미·일 공조파기, 한·미 합동군사 훈련중지, 국가보안법 철폐, 통일관련단체활동보장등 4개항 선결을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쪽 제의를 받아들이기 싫으면 과거에도 으레 해온 말이다. 김대중대통령은 임기내 한반도 냉전을 종식시키겠다는 생각에 너무 쫓기는 것 같다. 훌륭한 생각이지만 무작정 서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남북평화공존, 민족공동이익의 추구는 김대통령만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햇볕정책이란 용어를 썼다해서 대북 포용정책이 김대통령에 의해 처음 시작된 것은 아니다. 1992년 남북간 최고 당국자가 재가, 발효절차를 거친 남북기본합의서만 해도 그렇다. 이 합의서는 아직도 유효하다. 북측이 이행을 않고 있는 것과 효력이 없는 것과는 다르다. 또 1994년 이루지 못한 남북정상회담 역시 무기연기된 상태다. 그해 7월 11일 남북정상회담 예비접촉 북측단장인 김용순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장이 이홍구부총리에게 보내온 서한은 ‘우리측 유고로 예정된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음을 위임에 의하여 통지한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남북관계 개선은 기존의 남북기본합의서 이행과 연기된 남북최고위급회담 재개로도 능히 가능하다. 문제는 베를린선언 같은 것을 하고 안하고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저들이 말하는 전제조건에 대한 대응이다. 정부는 백남순북한외상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연내 정상회담의 가능성이 있다고 우길지 모르겠다. 그럼 그것이 무엇일까. 돈으로 요구조건을 떼우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가당치 않은 4개항 선결요구를 부분적 수용태세로 나올 것인지를 두고 지켜보고자 한다. 이는 국기와 관련한 매우 첨예한 문제이다.

쓰레기를 줄이자

쓰레기대란이 아직까지 가시지 않고 있다. 주택가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 쓰레기에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상인들은 치워지지 않은 대형쓰레기봉투로 인해 영업에 지장을 받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정이 어찌됐든 사람이 사는 동네에 쓰레기가 생겨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의정부시만해도 하루에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가 81.7t, 재활용품쓰레기가 86.9t 등 모두 296.5t에 이르는 막대한 생활쓰레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엄청난 양이다. 쓰레기를 조금만이라도 줄일 수는 없을까? 일부 상점들은 20/20운동이라고 해서 음식량을 20%줄이고 음식값을 20%내리는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관할 행정도 PET병이나 폐현수막 등의 재활용품을 수거하고는 있으나 대단치는 못하다. 미국이나 호주 등의 국민들처럼 모아둔 음식물쓰레기로 비료를 만들어 화단을 가꾸는 아름다운 사례를 들어보기가 힘들다. 재활용품을 버리면 버렸지 그것을 이용해 뭔가 생산적인 산물로 승화시켜 나가는 시민들도 흔하지 않다. 보관상의 문제를 들먹이며 쓰레기로 전락하는 음식들을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차제에 쓰레기를 양산하는 시민들의 의식이 우선적으로 전환돼야 한다. 쓰레기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손해는 곧 시민들 자신에게 돌아온다. 시민 개인개인이 바로 오늘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단 한가지의 계획이라도 세워야 할 때다. /의정부=배성윤<제2사회부> sybae@kgib.co.kr

궁중사극

KBS-TV 사극 드라마 ‘용의 눈물’과 ‘왕과 비’가 끝나고 ‘태조 왕건’ 방영이 시작됐다.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용의 눈물’과 ‘왕과 비’는 시청자들의 인기와 관심을 집중시켰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용의 눈물’과 ‘왕과 비’ 등 궁중사극은 아무리 드라마라고는 하지만 사실고증이 잘 안되고 정치사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등 문제거리가 많았다. 궁중의 과부인 대비들은 소복을 입고 여생을 보내게 마련인데 ‘왕과 비’에서 덕종비 인수대비(소혜왕후)가 화려한 의상을 입고 계속나왔다. 대비가 마구 걸어서 궐정을 왕래하거나 왕의 집무실에 멋대로 나타나서 고함을 지르는 모습은 사실이 아니다. 궁중의 왕족이나 비빈들은 몇 발짝을 움직이려 해도 연(輦)이나 가마와 같은 것을 탔었다. 조선시대에는 신하들이 왕을 접견할 때는 항상 부복(俯伏)의 자세로 대화를 하고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임금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는데, 사극에서는 신하들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마주 앉아 왕을 노려보면서 큰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연출됐다. 실록은 승리자의 기록인데 궁중사극이 실록을 위주로 제작되고 있는 데도 문제가 있다. 권력을 잡은 자들이 남긴 자료들을 근거로 한다면, 패한 자, 또는 민초들의 삶을 그리기가 어렵다. 잘못된 궁중사극은 국민의 역사의식을 그르칠 수 있고, 역사와 현실정치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눈을 해칠 수 있다. 극작가들은 물론 역사학자가 아니다. 뿐만 아니라 극본자체가 문학적 창작에 속하기 때문에 픽션이 허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물을 다룰 때는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 특히 지나치게 시청률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국민의 올바른 역사의식을 부양하는데 힘써야 한다. TV 방송국이 궁중사극을 제작할 때는 지나치게 시청자의 인기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淸河

난(亂) 개발 방지책 시급하다

수도권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경기지역이 난개발로 인하여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경기남부는 최근 개발된 용인 수지지역을 중심으로 무분별한 난개발이 자행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생활시설은 물론 각종 교육시설과 문화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있어 기형적인 도시가 형성되어 이대로 가면 도시발전이 아니라 도시 퇴락의 길을 걷게될 것 같다. 무분별하게 개발되는 용인 수지지역에 대하여 관계당국에서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난개발 방지책을 수립하고 있는데, 이를 조속히 실시하기를 촉구한다. 최근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북부지역의 난개발이다. 경기 제2청사의 개청, 접경지역법의 개정 등으로 경기북부지역 발전을 위한 전기가 마련되고 있으나, 이런 기대가 오히려 각종 난개발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된다. 지금까지 경기 북부지역은 휴전선을 접하고 있는 이유로 각종 규제를 받고 있으며, 또한 재정상태가 열악하여 다른 지역에 비하여 낙후된 상황인데 이런 여건이 더욱 난개발을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그 동안 각종 규제와 통제로 인하여 재산상의 손해를 본 주민들은 각종 규제조치의 철폐와 더불어 난개발을 통해서라도 재산상의 손해를 보전하려고 하는 과정에서더욱 심각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경기지역의 44.9%를 차지하고 있는 북부지역은 경기 전체 인구의 25.9%를 차지하고 있으며 통일시대를 대비한 발전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군사시설 보호구역, 개발제한구역, 상수원보호구역 등으로 전지역의 70% 정도가 규제되고 있어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나 경기도 당국은 부부지역 발전에 대한 청사진 제시 없이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가 지금과 같은 난개발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것은 난개발 방지를 위한 대책 수립이다. 무분별한 난개발을 중지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 장기적인 발전책을 차근차근 추진해 나아가야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수도권 정비법 및 상수원 보호구역의 합리적 재지정이 요구된다. 더 이상의 난개발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관계당국의 철저한 대책 수립을 재삼 요망한다.

선거 이용한 집단이기주의

제16대 총선거로 시국이 어수선한 틈을 이용하여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4일부터 대부분의 동네의원들이 집단 휴진에 들어가 많은 환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가운데, 내일부터 의사들이 무기한 휴진에 들어가겠다고 밝혀 더욱 죄없는 환자들의 불편만 가중될 전망이다. 이뿐만 아니다. 인천에서는 일시적이나마 시내버스 파업으로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불편을 겪는 사례가 발생하였으며, 오는 10일부터 직장의보 노조가 총 파업을 돌입키로 하여 의료보험 서비스의 심각한 차질이 예상된다. 선거때야 말로 각종 이익집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표출하기 가장 좋은 기회이다. 정당이나 정치인 모두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비록 예산상의 대책이 없는 공약(公約) 아닌 공약(空約)을 남발하게 된다. 더구나 많은 유권자가 집단으로 움직이고 있는 단체로부터 표를 얻기 위해 정당이나 후보자는 각종 단체가 요구하는 민원에 대하여 어느때보다 약하기 때문에 선거때가 되면 각종 단체들의 요구가 봇물을 이룬다. 이런 현상은 민주국가에서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야기되고 있는 각종 단체에 의한 선거를 이용한 집단 이기주의는 다소 지나친 감이 있다. 의약분업을 앞두고 발생한 의사들의 집단휴진은 지난 주 대통령까지 개입하여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집단 휴진을 철회한 바있는데, 또 다시 집단휴진을 하려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 그 동안 대화로 문제를 풀겠다는 약속은 어떻게 된 것인지 묻고 싶다. 불과 일주일 전 집단휴진을 철회할 때와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의사들과 복지부등 관계기관은 국민들에게 대답해야 될 것이다. 분명 어느 한쪽은 잘못한 것이다. 단체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평화적 방법은 보장해야 된다. 그러나 선거를 틈타 유권자들을 담보로 집단의 과도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오히려 선거분위기를 혼탁하게 하여 공명선거를 해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부도 선거때라고 방관만 하지 말고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하여 정정당당하게 집단이기주의적 행동에 적극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숲 보호가 환경을 살린다.

오늘날 우리가 헤쳐나가야 할 난관은 너무나 많다. 그 가운데 근본적으로 먼저 해결해야 될 문제가 환경을 살리는 일이다. 나날이 오염·황폐화되는 환경을 살리고 보존하는 길은 나무 심기와 숲을 가꾸는 일이다. 그러나 나무 심는 날로 1년에 하루를 정한 식목일에도 나무 심는 모습은 점점 사라져가고 하루 ‘노는 날’로 전락해 공휴일로 정한 식목일의 취지가 퇴색했다. 더구나 산림보호정책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 맥을 못추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만 해도 98년부터 99년까지 2년동안 산림면적만 2천92ha가 훼손됐다고 한다. 특히 세계적인 생물종 다양성의 보고인 광릉숲(국립수목원)마저 파괴되고 있는 실정은 참담해지기까지 한다. 국립수목원은 야생 동·식물 5000여종이 서식하는 광릉숲을 보호하기 위해 지난 97년부터 산림욕장을 폐쇄하고 주말입장을 통제해왔다. 그러나 이 지역 관할 지자체인 포천군과 남양주시가 숲 보존 지역에서 불과 300∼400m 떨어진 곳에 청소년 수련시설, 음식점, 전원주택단지 등을 무더기로 허가해 주었다는 것이다. 포천은 이에 앞서 지난해 10월에도 같은 완충지역인 소흘면 직동리의 준농림지를 전원주택지로 허가해 주기도 했다. 국도변의 야산은 물론 해발 100m가 넘는 산중턱까지 건축허가를 내주는 이러한 사례는 용인, 화성, 구리, 고양 등 타 시군에도 많다. 심지어 산자체가 송두리째 사라지기도 한다. 올해 산림청은 나무 심기 기간동안 2만ha에 4천900만 그루를 심고 경기도는 식목일을 전후해 2000여만 그루의 나무를 심을 계획이라고 한다. 각 학교나 다른 단체에서 심는 숫자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은 나무가 심어질 것이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산불로 인해 1만200ha의 산림이 재가 되어 허망하게 사라졌다. 그래도 우리는 나무를 심었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여도 오늘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왔다.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홍수방지와 수자원 함양, 임산물제공, 깨끗한 물과 공기, 쾌적한 삶의 터전 제공 등으로 매년 35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산림조성 및 보호정책이 개발논리에 계속 밀려나 산림과 도시의 녹지가 줄어든다면 자연의 재앙은 불원간 우리를 엄습할 게 분명하다. 식목일에만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다. 식수기간이 아니더라도 나무를 심고 가꿔 푸른 숲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구제역, 범국민적 대처를

진정되는 듯 하던 구제역 공포가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에서 발생한 가축전염병이 ‘구제역’으로 확인된데 이어 인근 법원읍 금곡1리와 화성군 비봉면 쌍학1리, 그리고 충남 홍성군에서 유사한 증상의 ‘의사 구제역’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당국의 가축방역사업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파주에서 수포성 질병이 처음 발생했을 때 이미 본란을 통해 전국적인 구제역 방역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감염경로가 황사바람에 실려온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구제역이 발생했던 중국에서 수입한 건초에 묻어온 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든간에 전국적 문제 발생 가능성이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그러함에도 농림부 등 정부의 초기 대처는 너무 안일하기만 했다. 정부는 애초부터 파주 인근의 조사결과만으로 질병의 확산이 더 이상 없다는 결론을 서둘러 내렸다. 빈틈없는 대처보다는 축산농가와 소비자들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였겠지만 시식회 등으로 인체에 무해함을 알리는 등 우선 파문 덮기에 급급했다. 파주의 경우 발생 4일 만인 지난달 24일에야 신고되었는데다 그나마 검역당국은 당일 업무가 끝났다며 하루 뒤인 25일에야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화성에선 지난달 30일 발병 사실을 확인하고도 3일뒤인 2일 신고했다. 그러나 괴질신고 하루가 지난 3일 아침에도 우유회사 집유차량이 괴질발생지역 낙농가의 우유를 수집해 갔고, 화성군 당국은 3일 정오쯤에야 차량 출입을 통제했다. 정부가 전국적으로 구제역에 대한 주의환기와 신고계도 등 사전조처를 소홀히 했음은 물론 사후 대응도 마냥 늦기만 했다. 그뿐인가. 가축괴질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지금 축산농가들은 소독제를 제때 공급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정부의 방역태세가 이래선 안된다. 당국은 이제부터라도 구제역의 확산방지를 위해 방역과 예방조처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방역과 접종에 필요한 약품확보와 인력동원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축산농가들도 쉬쉬할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면 바로 신고해야 한다. 일반 소비자 역시 수출길이 막힌 육류소비를 늘려 위기극복에 동참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구제역 사태 해결을 위해 범정부 범국민적 차원의 총체적인 협조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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