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의 비애?-위당설법(爲黨設法)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을 완화하라.” 16대 총선에서 17석 확보에 그친 자민련이 지난 24일에 이어 26일 3당 총무회담에서도 재차 요구한 내용이다. 현재 국회법상(제33조) 교섭단체 요건인 20명을 15명으로 조정하는 것이 의원정수 감축과 원활한 국회운영, 세계적 추세 등에 부합한다는 것. 그러나 이는 다분히 위당설법(爲黨設法)적 발상이라는 비판이다. 자민련은 지난 19일에도 외국의 교섭단체 구성조건이 2명∼15명 등으로 매우 낮게 잡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도 15명을 굳이 교섭단체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민주국민당(2석)등 소수정당의 권익보호 차원보다는 지극히 ‘자당몫 챙기기’의 일환이라는 지적이다. 또 올 1, 2월 선거법 협상과정에서 의원정수 감축으로 인한 교섭단체 구성요건 완화 필요성에 대해 일절 언급한 적이 없었고, 총선 직후 민국당, 한국신당(1석)과의 소(小)통합이 실패로 돌아가자 이 문제를 들고 나왔다는 점도 그렇다. 특히 자민련은 이날 어느 정당도 과반수(1백37석)를 확보하지 못한 만큼 국회의장 경선이 이뤄질 경우 이를 빌미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자민련이 교섭단체를 구성해야만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16대 국회 개원일(6월5일)까지 교섭단체를 등록하지 못할 경우 국고보조금 대폭삭감, 상임위원장 배분문제, 원내협상력 약화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 여권 일각에선 향후 군소정당의 권익보호를 위해 정치개혁 차원에서 자민련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자민련이 이제껏 ‘원조보수’를 자임해오면서 갖가지 개혁입법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에서 설득력은 약하다. 지난 20일 민주노동당이 ‘이제 소수정당의 슬픔을 알겠는가’라는 논평을 통해 자민련의 당리당략적 행태를 비아냥거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민봉기자 mblee@kgib.co.kr

首整法, 약속대로 개정해야

경기지역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의 재개정 작업을 조속히 마무리해야 된다는 주장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지난 25일 동부권시장·군수협의회와 시·군의회 의장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지난해 4월17일 입법 예고한 수정법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오염총량제 전면 거부는 물론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새삼 수정법의 개정 작업이 도내 현안으로 등장했다. 수정법 개정에 대한 도내 여론은 그동안 본보를 비롯 각종 언론기관은 물론 시민단체, 관련기관 등에서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도 없다. 도시의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한다는 이름 아래 각종 규제를 하고 있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은 제정 취지와는 다르게 여러가지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지난 1월7일 정부는 경기도가 강력히 요구한 자연보전권역내 외자유치를 위한 내용을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자연보전권역내 관광지 조성 허용은 이미 지난해 입법 예고된 사항이고, 더구나 대통령은 98년 10월 경기도 방문시 외국인 투자 관광지 조성을, 국무총리는 99년 11월 수정법 시행령 개정을 약속했다. 때문에 경기도는 이를 믿고 외자유치를 추진했는데 강원도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개정안에 경기도의 외자유치 조항을 제외시킨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이런 정부 정책에 대해 경기도 시·군의회의장단은 강력한 반대운동을 전개했으며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도 가세했으나 아직도 정부는 이에 대한 확고한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총선도 끝났으니, 제16대에 진출한 국회의원 당선자들도 수정법 개정운동에 적극 참여해야 될 것이다. 곧 인구 1천만이 넘는 최대의 자치단체인 경기지역이 중앙정부의 환경보전이라는 단순 논리에 의해 발전 자체가 저해되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더 이상 외국에 대한 국가 신인도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수정법 재개정을 조속히 시행해야 된다. 목적을 잃어 버린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 지역 실정에 맞게 운영되는 탄력적 자세를 보여야 될 것이다.

구박 앙갚음 연쇄살인극

참으로 끔찍하다. 이성이 마비되고 나면 그 어떤 야수보다도 잔인할 수 있는 게 바로 사람이다. 우리 모두를 소름끼치게 한 이천 연쇄살인범의 범행은 인간의 가슴속에 도사린 악마성(惡魔性)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소한 시비끝에 발작된 살인 광기(狂氣)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채 사흘동안 5명을 살상한 범행들은 엽기적 공포영화나 납량소설속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왔던 것들이다. 이번 범죄는 그 동기와 배경이 아주 단순했다. 노름판에서 개평(고리 돈)을 떼려다 벌어진 싸움에서 폭행당한 앙갚음으로 상대방의 머리 가슴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말리던 사람에도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범인은 내친김에 그동안 자신을 업신여기고 구박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찾아 살인극을 벌였다. 희생자 중엔 자신이 기거했던 절의 주지 부부와 술집주인도 있다. 범인은 ‘첫번째 범행후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해 일생동안 나를 괴롭힌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 했으며, 그 대상은 10명정도’라고 했다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범인이 그 이전에 잡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의 생명도 위태로웠을 것이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범인이 털어놓았듯이 범죄의 동기가 된 것은 자신을 멸시하고 손찌검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증오였다. 범인은 유년시절에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고교를 중퇴했다. 50세가 넘도록 결혼도 못한 채 떠돌이 생활을 했으나 배운 게 없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데다 외소한 체격탓에 매맞고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많아 심한 소외감과 원한이 쌓였음직 하다. 범인들의 잔혹한 범죄는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이 낳은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치관이 무너지고 인간성이 상실되는 물질만능적 세태는 사람의 목숨까지도 욕구충족의 수단으로 삼는 풍조를 낳았다. 뿐만 아니라 극심한 경쟁체제는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소외감과 좌절감을 심어주었다. 이번 범인이 자신을 구박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갖게된 증오심도 힘만이 유일한 가치요 기준인 것 같이 인식케 한 우리 시대의 사회적 병리현상이었다. 이런 사회병리의 근본을 다스려 나가지 않는 한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선 우리사회의 갖가지 모순을 줄여 나가는 구조적 처방과 함께 올바른 가치관 정립방안을 모색하는데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촌지와 교사

너무나 가난했던 시절에는 먹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가난 때문에 아이들을 남의 집으로 보내면서 ‘입 하나 던다’고 하였다. 한 집안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을 ‘식구’라고 한다. 이 말은 가족과는 좀 다르지만 식구라면 대개 가족이었다. ‘식구(食口)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밥 먹는 입’이다. ‘식구가 여섯이다’라고 하면 집안에 밥 먹는 입이 여섯이라는 것이다. 어려웠던 시절이긴 하였지만 예전에는 모처럼 집에 온 사람을 그냥 보내기가 섭섭해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서 무엇이라도 손에 쥐어 보냈다. 정 줄 것이 없으면 보리 한 됫박이라도 싸서 보냈다. 이 보리 한 됫박이 바로 ‘촌지(寸志)’다. 촌지란 주어서 즐겁고 받아서 고마운 그런 것이다. 서로 부담없이 나누는 인정이 촌지다. 학부모가 자녀의 선생님을 찾아갈 때 양말 두어 켤레, 고기 한 두근 사가지고 가는 것이 촌지다. 미처 그런 것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봉투에 소주 한병 값이나 넣어서 놓고 나오는 것이 촌지다. 교사는 사양해도 좋겠지만 성의로 생각하고 고맙게 받아두어도 잘못된 일은 아니다. 이러한 전통사회의 촌지가 요즘은 ‘선물’도 아니고 ‘뇌물’로 인식이 변했다. 촌지라는 이름으로 전해지는 보리 한 됫박이 값비싼 고급물건으로, 소주 한병 값이 심상치 않은 액수로 바뀐 것이다. ‘촌지를 주고 받았다는 오해를 살까 봐 학부모님이 학교에 오시면 겁이 난다’는 교사들이 뜻밖에도 많이 있다. 지난 해 ‘스승의 날’, 교실에 놔두고 간 상품권 1장을 학부모가 누군지 몰라 돌려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교사를 본 일도 있다. 담임 선생님이 사양할 것 같아 몰래 이름도 밝히지 않고 놓고간 상품권이 바로 촌지의 미덕이다. /淸河

외국인노동자들의 참상

국내에 거주하는 20여만명의 외국인노동자들이 대부분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가난하고 약한 자의 피맺힌 한(恨)과 설움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한 우리가 더 약한 자들을 괴롭히고 있으며, 또 방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수차례의 언론보도를 통해 부분적으로 알려지긴 했지만 지난해 말 현재 20만6천500여명에 달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월60만원 수준의 저임금에다 고용주와 한국인 동료들의 횡포·폭행으로 ‘코리안 악몽’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60%가 넘는 12만6천여명은 불법체류자여서 인권을 더욱 유린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엊그제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가 폭로한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 인권백서’를 보면 더욱 무참해진다. 인도네시아 연수생 푸르노마는 다른 인도네시아 연수생의 일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작업반장에게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으며, 필리핀 여성 노동자는 기숙사에서 한국 남자에게 성폭행당해 임신했으나 회사에서 쫓겨 났다는 것이다. 스리랑카 연수생 테나쿤은 왼쪽 집게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한 후 보상금을 회사에 빼앗겼다가 2년만에 겨우 되찾았고, 인도네시아 산업연수생 9명은 이탈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외출을 금지당한채 화장실에 갈 때조차 감시를 받는다는 것이다. 소위 연수생이 이러한데 밀입국자나 불법체류자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외국인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당하는 참담한 사례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새 삶을 찾아 이 땅에 온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비정하게 대해서는 안된다. 물론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는 한국인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탄압과 노동착취를 막으려면 외국인을 경시하는 일부 고용주들의 의식전환은 물론 정부의 대책이 더욱 절실한 것이다. 짧은 기간 고용했다 돌려 보내는 ‘단기 로테이션 정책’에서 ‘사회적 통합 정책’으로 개선해야 하며 외국인노동자가 일하는 동안은 한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법적으로 신분을 보장해 줘야 마땅한 일이다. 도대체 한국이 언제부터 외국인을 지배하며 살았는가. 우리 역시 얼마전까지 외국에 노동자들을 수출하는 국가였으며 지금도 수많은 한국인노동자들이 외국에서 일하고 있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賃鬪, 자제와 타협으로

올해 노사 임금협상의 진통이 심상치 않을 것 같다. 근로자측과 사용자측이 제시한 임금인상률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다 양측 모두 한치의 양보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민노총과 한국노총이 제시한 임금인상률 15.2∼13.2%는 한국경총의 가이드라인 ‘5.4%이내’에 비할 때 무려 9.8∼7.8% 포인트의 격차가 있어 임금타결률이 저조한 상태다. IMF터널을 벗어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해야 하고, 특히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된 올해야말로 산업현장의 평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임에도 앞으로의 임금교섭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인지역의 임금타결률은 지도대상 사업장 중 9.7%로 전국 평균 타결률 13.3%에 크게 못미치는 최저치에 머물고 있다. 이에 따라 이미 노동계는 총력투쟁을 선언하고 그에 따른 파업등의 일정을 진행중이다. 민노총 및 한국노총 경기지역본부는 5월 초·중순까지 사업장별로 임·단협교섭을 벌인뒤 5월말과 6월 1일부터 총파업 투쟁을 벌이기로 했다. 노동계의 강경 움직임이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불안요인으로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다. 노사가 제시한 임금인상률의 현격한 차이는 임금에 대한 양측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른데서 비롯된다. 양측이 제시한 인상률의 근거를 보면 근로자측은 임금을 주로 생계비에 기준을 두고 산정하고 있는 반면 사용자측은 그것을 주로 기업의 경영여건에 입각해서 책정하고 있다. 노사가 서로 다른 시각아래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기준없이 인상률을 책정했기 때문에 그 차이가 크게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임금인상률이 아무런 조정작업없이 개별 산업현장에 전달될때 임금교섭과정에서의 마찰과 갈등이 그만큼 크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그러한 마찰과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우선 임금에 대한 노사 쌍방의 관점의 차이부터 축소해 나가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고 본다. 개별기업이 임금교섭에 앞서 경총과 양대노총 등 모든 당사자가 한자리에 모여 먼저 가이드라인부터 서로 최대한 접근시키는 조정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관점과 입장을 포괄하고 합리적으로 절충하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할 때인 것이다.

벤처기업

금세기의 국가경쟁력은 첨단기술이다. 예컨대 의사나 회계사가 많다고 해서 잘사는 나라가 될수 없다. 사회기여도가 대체적으로 국내에 한하기 때문이다. 이에비해 첨단과학기술의 발달은 제반 산업에 영향을 미친다. 국력을 좌우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제구조가 이젠 첨단 과학기술 중심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저비용 경쟁의 경제구조로는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중국같은 후발국들이 값싼 노동력을 무기삼아 무섭게 추월해오고 있다. 중국인의 생산성은 우리에 비해 50%밖에 안되지만 임금이 10∼20%로 워낙싸 저비용 경쟁에선 게임이 안된다. 이의 돌파구가 과학기술의 개발이다. IMF경제위기도 근원적으로 보면 기술경쟁의 빈곤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이 있다. 상당수의 첨단기술중심 벤처기업이 성공하면서 몇년만에 수십억, 수백억원을 번 부자 엔지니어들이 생겼다. 이바람에 월급쟁이 기술자들이 벤처기업 창업을 위해 사표를 내던지자 이직을 못하게 하는 어느 재벌기업의 소송제기가 있었다. 재벌 및 대기업에서는 핵심 엔지니어들에게 스톡옵션 등 인센티브를 적극적으로 부여, 이들을 붙잡아두기에 안간힘을 쓰는 실정이다. 벤처기업은 코스닥시장이 활성화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아 벤처스타들이 뜨고 있다. 지난해말 현재 4천934개 벤처기업가운데 미국기준의 자격이 있는 곳은 17%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가 나왔다. 이에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지만 따지고 보면 외환위기 탈출을 비롯 긍정적 측면이 더 많다. 다만 정부의 벤처산업 시책에 재점검이 불가피한 것만은 사실인것 같다. 아직 본궤도에 오르진 못했어도 싹이 있는 벤처는 키우되 거품은 걷어내야 할때가 됐다. /白山

移木之信

정부의 ‘범국민준법운동’과 관련하여 이목지신(移木之信)의 고사가 생각난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효공(孝公)이 부국강병책의 법을 제정하였으나 백성들이 조정을 믿지 않으므로 공포(公布)를 미루고 한가지 시험을 해봤다. 높이가 30자나 되는 거목을 남문에 세워놓고 이를 북문에 옮기는자에겐 상금 10금을 주겠다고 방을 붙여놨다. 아무도 옮기는 사람이 없어 상금을 50금으로 높였다. 그래도 옮기는 사람이 없었다. 백성들이 조정의 말을 그토록 믿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 지나 어느 한사람이 속는 셈치고 나무를 옮겨놓자 효공은 약속한 50금을 선뜻 내주었다. 백성들 모두가 진즉 자신이 옮기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을 즈음에 새로운 법을 공포하여 백성들이 따르도록 했다는 이 얘기는 사기(史記) 상군전(商君傳)에 나온다. 사회기강확립을 위해 범국민적 준법의식이 있어야 하는것은 틀림이 없다. 그렇지만 왜 준법의식이 해이해졌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법은 지킬수록 손해’라는 관념이 팽대해진 불행한 현상이 생긴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총칼로 합헌정부를 뒤엎은 군부세력이 있었다. 그들이 집권하고 나서는 준법을 외쳐댔지만 헌법을 파괴한 원죄를 모면할수 없어 국민들 귀엔 공허한 소리로만 들렸다. 사회의 준법의식이 해이해진데는 이런 원인(遠因)의 배경이 있다. ‘국민의 정부’들어서도 국회는 국회법위반을 밥먹듯이 해대고 대통령은 선거법 불복종 선언을 했다. 법의 권위를 실추시킨것은 국민들이기 보단 언제나 집권층인 것이다. 범국민적 준법정신은 당연히 존중돼야 하지만 집권층부터 먼저 법을 무섭게 알고 지키는 참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급하다./ 白山

대학별 입신전형 구체화를

2002학년도부터 시행할 새로운 대학입시에서 수학능력시험을 ‘등급제’로 바꾸기로 한 결정에 대하여 수험생과 학부모는 물론 대학으로부터 논란이 많다. 수능시험의 비중을 줄이고 내신 성적의 상대적 비중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 입시제도는 한창 자라나는 고교생들을 입시지옥에서 해방시켜 창의력을 향상시키며, 동시에 고교교육을 정상화시킨다는 취지에서 우선 긍정적 조치로 생각된다. 그러나 최근 교육부에서 발표한 수능등급제는 너무 현실을 무시한 발상이며, 이는 동시에 대학의 선발권을 축소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보완할 점이 많다. 수능 성적이 상위 4%안에 들면 1등급을 받는 등 9개 등급으로 단순화시켜 대학에 입시자료로 제공할 경우, 대학이 참고할 전형자료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대학의 선발기준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수능의 비중을 낮추는 것은 찬성하나 획일적으로 등급화시키기 보다는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등급화시켜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 지금까지 수능성적은 대학입시에 있어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때문에 모든 수험생들이 수능에 매달려 입시를 준비하였는데, 무려 10∼40점 차이를 같은 등급으로 인정하여 대학에 입시자료로 제공한다고 하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단계적인 등급화를 시행하여 점차 확대하든가, 또는 등급화는 대학 자체기준에 따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새로운 입시제도에서 수능 이외에 논술, 면접, 특기 사항 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대학의 기준도 아직 제대로 준비되고 있지 못하다. 대학의 신입생 선발권을 최대한 부여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아직 정부 발표 이외에는 선발 다양화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제시되지 못하여 고교 2학년생들은 불안하다. 수능 비중 약화로 수능 이외에 다른 것도 모두 잘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입시생들에게 더욱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현재로서는 대학이 주도권을 가지고 신입생 선발에 대한 전형기준을 조속히 발표하여 수험 준비생들이 혼란을 없도록 해야 된다. 이는 대학의 자율성을 제고시키는 계기도 될 수 있으므로 대학 스스로 새로운 입시전형 기준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이다.

野 ‘議長’ 수용용의 없나?

총재회담과 관련하여김대중대통령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여야총재회담은 일단은 성공적인 것 같다. 정당정치, 의회정치발전을 위한 ‘미래전략위원회’, ‘여야정책협의체’ 등 구성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 하다. 대화정치, 신뢰정치구현과 남북정상회담의 초당적 대처등을 다짐한 11개항의 공동발표문 또한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모양새가 좋았다. 이제 앞으로 이를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가 과제다. 두 총재는 역시 총재회담에서 합의한 적이 있는 ‘경제협력협의체’ 구성을 휴지화한 전례가 있어 이번 회담이 잘 끝난것 만으로는 전망이 밝을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관건은 상호신뢰에 있다. 서로 믿기 위해서는 여당이 먼저 믿을 수 있도록 정치적 고려를 베푸는 것이 순리다. 야당에게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덮어놓고 협조만을 요구하는 집권당의 자세는 무리다. 예컨대 당장 제16대 국회 원구성을 앞둔 의장선출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돼 있다. 원만한 합의없이 이대로 가면 또다시 격돌, 좋았던 총재회담 분위기가 간곳 없게 될 것이 뻔하다. 객관적으로 보아 집권당 몫이 관례라는 여당의 주장보다는 다수당이 차지해야 한다는 야당쪽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다수의석 우위의 의회원리가 그러다하고 믿는 것이다. 국회가 행정부의 시녀가 아닌한 원구성은 자율로 행해져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논리를 떠나 전기의장은 야당에게 양보하는 집권당의 금도가 있으면 여야관계가 한결 원만해질 것으로 판단한다. 후기의장은 여당몫으로 협상해두어도 좋을 것이다. 국민들이 보기에는 여당이 날치기 통과를 일삼지 않고 야당이 의사진행 방해의 횡포를 부리려 하지 않는 한 어느당이 의장이 되든 상관없는 것이다. 여야의 의장자리 싸움조짐이 그렇지 못한 ‘잔재주정치’의 전주곡을 다시 보는 것 같아 불쾌하고 불안하다. 두 총재회담의 의의는 정치불신, 정치불안을 씻어주는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생의 정치로 국민들의 냉소 대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복원의 책임은 여야가 다 져야하지만 정국을 주도할 입장에 있는 집권여당의 몫이 더 크다. 이전의 회담처럼 실패하지 않는 총재회담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회담후의 김대통령의 마음가짐이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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