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의 뿌리

지역 감정의 뿌리를 찾자면 국토가 영남·호남·기호권으로 각립(角立)됐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때부터다. 특히 지역 감정은 조선조에 이르러 파벌이 만들어지면서 극에 달했는데 영남계인 동인과 호남계인 서인 그리고 조선조 후기 정권을 주도했던 노론(시파·벽파) 등이 대표적인 예라 하겠다. 8·15 해방, 4·19 혁명 등 격동의 세월을 겪은 지금에도 지역 감정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5·16 때는 ‘경상좌도’, 5·6공 때는 ‘경상우도’그리고 경상우도도 경상좌도도 아닌‘경상도 바닷가 정권’과 지금의 ‘호남도’에 이르기까지 굳이 말하자면 통치권자의 출신지에 따라 그 명칭만 바뀌었을 뿐이다. 권력 유지 수단으로 악용됐던 지역 감정이 이번 총선에도 어김없이 등장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다. 각기 다른 정치적 논리하에 지역 감정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각 정당을 우리는 지역당(地域黨)이라 부르고 있다. 이들 지역당은 상대 당을 넘어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또 지역 주민을 볼모로 해 사건을 조작하기도 하고 남의 약점을 파헤쳐 위협도 하며 때에 따라선 이해 관계로 꾀하기도 한다. 작금의 정치판은 지역 감정과 색깔론을 들먹이면 당연히 당선될 것이라는 낙후된 의식을 가진 정치인이 다수 존재하는게 현실이다. 얼마전 대통령까지 전직 대통령들과 만난 자리에서 “본적지를 없애면 어떻겠냐”고 말했는데 지역 감정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지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데도 여전히“우리가 남이냐”며 지역 감정을 열심히 조장하고 있는 장본인. 그들은 정치적 불신과 국민들의 실망이 극에 달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모양이다. /최인진기자 ijchoi@kgib.co.kr

광역교통연합에 기대한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은 전국 인구의 45%에 이르는 2천만명이 거주하고 있는 단일생활권이지만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 관리업무는 69개 자치단체로 분산돼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때문에 자치단체간 과열경쟁과 중복투자 등으로 시민들의 교통불편이 나날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도권이 겪고 있는 교통불편은 이미 오래 전부터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지경에 처해 있다. 서울 주변 신도시를 비롯한 수도권 주민들의 숙원 가운데 하나가 원활한 대중교통 문제 해결, 즉 서울 도심까지 운행하는 버스노선의 신설과 노선연장, 그리고 증차 등인 것이 이를 입증한다. 또 하나의 숙원은 종합버스터미널 설립이다. 수도권 신도시에 시외버스를 탈만한 종합버스 터미널이 없어 주민들이 타지방을 오가는 데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다. 현재 경기도와 서울을 오가는 대중교통은 경기도 등록 버스 2백2개 노선 1천9백29대와 서울 등록 버스 1백18개 노선 2천6백17대가 있다. 버스터미널은 부천 시외고속터미널 1곳 뿐이다. 그러나 건설교통부의 광역교통기획단, 수도권행정협의회 등 현재의 교통조직체계로는 실질적인 집행력이 없어 교통문제 해결이 불가능한 상태다. 수도권 교통사정이 이러한 때에 경기도가 수도권의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을 통합관리할 수 있는 ‘수도권 광역대중교통연합’을 설립키로 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한 조치로 그 운영효과에 큰 기대를 걸게 하고 있다. 이 교통연합은 각 시·도와 시·도 교통관련 단체 등이 일정지분씩 투자한 독립법인으로 운영하고 중앙정부 및 각 지자체와 유기적 관계를 통해 수도권을 단일교통체제로 운영하는 매우 타당한 광역지구이다. 하지만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할 건설교통부와 서울시가 교통광역기구 설립을 아무런 이유없이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유감스럽기 짝이 없는 횡포이다. 깊이 따지고 들어가면 수도권 교통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서울시다. 서울시가 말로는 대중교통 이용을 외치면서 인구분산정책에 따라 수도권도시로 이주한 주민들의 대중교통 불편을 외면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정책이다. 서울시와 건설교통부는 수도권 광역대중교통연합 설립 특별법 제정에 대한 경기도의 건의를 이유없이 즉각 받아들여, 대중교통 관리를 일원화하고 난마처럼 얽힌 교통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 협조하기를 촉구한다.

‘인간존엄성’ 우선한 판결

법리해석, 사실판단 양면으로 실로 맹괘한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장례식장은 혐오시설이 아니다’라고 한 수원지법의 판결은 시사하는 의미가 매우 크다. 장례식장을 혐오시설로 보는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친 수원시가 이의 허가신청을 불허한데 대한 행정소송 재판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물론 수원시가 불복하면 대법원의 확정판결까지 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원심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장례식장을 무조건 혐오시설로만 볼수 없는 것으로 본 판결은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입각했다고 보아지기 때문이다. 생명은 잉태해 태어남으로 인해 시작돼 그 수명이 다함으로써 소멸한다. 즉,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장례절차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혐오시하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그릇된 오만으로 이로인해 장례식장은 거부감을 갖는 것으로 인식된 일부의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감성적 측면일뿐 인간생활은 이성이라는 것이 요구된다. 법원의 판결은 감성적 정서보다 보편적 이성을 강조했다고 보아 사회기능 및 사회공익에 일치된다. 법률이 추구하는 합목적성에도 합치되는 것으로 믿어진다. 장례문화는 머지않은 우리 주변의 생활문화다. 장의사가 주택가나 상가에 위치하는것 쯤은 흔히 보는 일상적 현상이다. 그렇다고 장례식장이 아무대나 마구 들어서도 좋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주관적 거부감은 객관적 타당성을 부인할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회의 새로운 인식과 함께 적정한 장소에 적정하게 세워지는 장례식장은 일종의 공공적 시설로 보는 객관성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줄 안다. 이같은 노력은 장례식장 운영에 또한 필연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판결은 실생활에 근거한 사회기능속에 법리추구가 융합할 때 더욱 빛을 뿜어 한층 더 가깝게 다가서는 법익을 피부로 느낀다. 법원의 형안에 감동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판결은 그간 혼란을 겪어온 장례식장 등에 따른 인근 주민들과의 무턱댄 잦은 마찰에 새로운 행정 및 사회지침이 될 것으로 보아져 크게 주목된다.

초대권

각종 공연장에 무료입장할 수 있는 초대권은 당초 객석을 채우기 위한 고육책으로 시작됐다. 출연자가 자기 PR을 위해 무더기로 입장권을 사서 친지나 제자들에게 뿌리는 사례도 적지는 않았고 반대로 출연자의 가족이 출연자의 인기도를 높여줄 목적으로 다량의 입장권을 구입, 초대권 형식으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 초대권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공짜 심리와 특권의식의 발로가 됐다. 지금도 외국의 유명 교향악단이나 인기 오페라·뮤지컬 공연이 있을 때면 국회의원 비서관이나 정부 부처 직원들이 초대권을 보내라고 공연 주최측에 전화를 건다고 한다. 티켓 값을 줄테니 ‘초대’ 도장이 찍힌 입장권을 달라는 요구도 한다는 것이다. 초대권 소지자는 특권층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프랑스·일본·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선 홍보를 위한 프리뷰 공연에서 평론가·언론·후원기업에 초대권 몇장 보내는 것으로 그친다. 일본에서는 현장에 올 수 있는지 확인해 최종적으로 초대자 명단을 작성, 초대권을 발송해 사석(死席)을 예방한다. 지정석이 있는 초대권을 받고도 입장하지 않아 객석의 이곳저곳이 비어있는 우리의 공연문화와는 다른 것이다. 공연기획자 재팬아트의 경우 2천석 규모의 공연에서 4%(20장)정도를 홍보용 초대권으로 제공하고 출연 성악가들에게는 1장의 초대권을 준다. 3년째 2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는 뮤지컬 ‘노틀담의 곱추’를 공연중인 파리 팔레 드 콩그레 관계자는 ‘고위 공직자들로부터 초대권 청탁이 들어오지 않느냐’는 질문에 “공짜 티켓을 요구한다구요? 그건 조직폭력배들이나 하는 짓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조직폭력배라는 오해를 받기 싫어서 초대권 갖고는 입장하지 않는 공연장 문화가 빨리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청하

군부대 사격장 이전

군부대 사격장내 영농문제가 연초 농번기때마다 ‘된다’ ‘안된다’로 이어져 마치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 6.25전쟁이후 군작전상 필요한 땅이면 어느 곳이던 징발해 지금까지 사용해오고 있지만 지역이 점차 개발되고 상주인구도 늘면서 주민생활에 끼치는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격장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동안 정부시책에 따라 군훈련에 지장이 없는 한도내에서 영농이 허용돼왔다. 이에 부대는 매년 당해년에 한해 영농을 허용한다는 각서를 받아왔고 농민들도 이를수용해 사격장내 영농은 계속해서 이어져 왔다. 그러나 군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올해도 올한해만 영농을 허용한다는 방침아래 사격장내 기동로를 기존 3.5m에서 8.5m로 넓히고 주변에 철조망을 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기동로를 넓히는 것은 1천500여평의 농경지 잠식과 함께 49만여평에 철조망을 침으로써 많은 국방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따라 주민들은 군부대의 이런 계획들이 영농을 금지토록하는 전초전이라며 사격장 폐쇄운동을 점차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격장 이전은 지역주민들의 숙원이다. 이런때 민·관·군은 머리를 맞대고 주민 편에 서서 생각해보고 주민들을 위하는 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행정이나 군부대나 모든 정부조직들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조직돼 있고 조직의 목적이 국민을 위해 있기 때문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옛말처럼 지금부터라도 사격장의 이전 문제를 논의, 통일시대에 대비해 한반도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연천=장기현<제2사회부> khjang@kgib.co.kr

봄비

“이 비 그치면/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푸르른 보리밭길/맑은 하늘에/종달새만 무에라고 지껄이것다.//이 비 그치면/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임 앞에 타오르는/향연(香煙)과 같이/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동양적 서정 세계를 부드럽고 아늑한 율조로 읊은 이수복(李壽福) 시인의 ‘봄비’라는 詩다. 산과 들을 적시는 봄비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 봄엔 풀리게/내 뼛속에 얼었던 어둠까지/풀리게 하옵소서./온 겨우내 검은 침묵으로 추위를 견디었던 나무엔 가지마다/초록의 눈물, 그리고 땅속의/벌레들 마저 눈뜨게 하옵소서./이제사 풀리는 하늘의 아지랑이,/골짜기마다 트이는 목청,/내 혈관을 꿰뚫고 흐르는/새 소리, 물 소리에/귀는 열리게 나팔꽃인양,/그리고 죽음의 못물이던/이 눈엔 생기를, 가슴엔 사랑을/불붙게 하옵소서” 연천 태생의 박희진(朴喜璡) 시인의 ‘새봄의 기도’라는 詩다. 그리운 사람처럼 기다리던 봄비가 16일 전국적으로 내렸다. 잠시 내린 이 봄비로 지난 2월 19일부터 한달가량 전국에 내려졌던 건조주의보가 경기도와 서울, 강원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제됐다고 한다. 그러나 경기도와 인천에 적게 내려서인가, 도무지 봄비가 왔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정치꾼들의 시끄러운 목소리에 자연이 오염되었는가, ‘봄은 찾아 왔는데 봄이 정녕 온 것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李白의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이수복의 ‘봄비’같은 봄비가 온누리에, 그리고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속에 종일 내려 박희진의 ‘새봄의 기도’처럼 나뭇가지마다 초록눈물이 맺혔으면 좋겠다. /청하

실효성없는 본적란 폐지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13일 전직 대통령들과의 만찬석상에서 지역감정의 골을 해소하기 위해 ‘호적에서 본적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이후에 찬반 양론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망국병’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지역감정 문제가 특히 선거 때 마다 증폭된 작금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호적에서 본적을 없애려는 생각에 이해는 간다. 하지만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지역감정이 과연 호적에서의 본적란 때문인가. 물론 아니다. 역대 정권이 국민의 자연스런 애향정서를 불순한 의도로 왜곡시켜온 것이 지역감정이라는 망국병의 원인이다. 본적의 가족법상 정의는 호적의 존재장소다. 그러나 국민정서는 법에 앞서 연년세세(年年歲歲)의 혈연, 가족관계 및 개인 정체성의 표현으로 인식하고 있다. 법을 바꿔 본적을 삭제할 수는 있지만 그에 앞서 국민 일반의 공감이 선행돼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 제도하에서는 사회생활을 할 때 각종 서류 등을 통해 개인의 본적지가 따라다니고 그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출신지를 환기시켜 주기 때문에 본적란 삭제가 지역감정 타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찬성론도 있다. 그러나 호적에서 본적을 없애는 일은 여권에서 국적을 안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며 이력서에서 학력을 없애는 것 과도 같다. 본적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뿌리와 고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적 기재를 왜 나쁜 의미로 해석하는가. 또 호적제도 자체는 유지하면서 본적지란을 없애는 것은 호적등·초본 발급시 출생지 등이 상세히 나타나 실익도 의문시 된다. 현실적으로 취업, 진학, 자격시험 때 본적지를 스스로 표시토록 하는 관행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만큼 설령 호적에서 본적이 삭제된다 하더라도 실제로 지역주의를 치유할 수는 없다. 현 제도하에서도 본적을 옮기는 전적(轉籍)이 어렵지 않고, 또 많은 국민이 실제로 본적을 옮기고 있지만, 그로써 지역감정 문제의 심각성이 결코 덜해지지는 않는다. 지역감정을 극소화하려는 고충은 십이분 이해가 되지만 호적에서의 본적 삭제 문제는 무리라는 점을 거듭 강조해 둔다. 본적폐지 검토는 지역감정 해소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것인지 법령이 아니다.

조급한 對北 ‘노크’, 상투적 ‘반응’

북한을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은 사회주의 체제로 보는 김대중 대통령의 시각은 오류다. 그랬으면 좋지만 북한은 다르다. 단순한 사회주의 정권이라면 벌써 개혁개방에 나섰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이유가 동구권 붕괴이후 더욱 강도높게 다진 김일성주의에 있다. 김일성주의는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로 폐쇄사회에서나 가능한 체제다. 이를 모르지 않을 김대통령이 그제 재향군인회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개혁개방을 촉구하면서 중국·베트남과 비유했다. 정말 같다고 보고 말한 것인지 궁금하다. 그 연유가 어떻든 베를린 선언이후 며칠새에 대북 제스처가 부쩍 는 것은 정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방송위원 면담 자리에서는 ‘베를린선언을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했고 전직 대통령들과의 회동에서는 ‘북한이 응할 것’이라고 했다. 육사졸업식에서는 ‘어떤 레벨의 당국자회담도 응하겠다’고 했다. 베를린선언과 관련, 미국에 보낸 이정빈 외교는 ‘북한의 테러문제는 응징보다 재발방지가 중요하다’며 테러지원국 해제조건으로 랑군폭파, KAL기 폭파사건 등을 묻지 않을 뜻을 밝혔다. 그러나 북한측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대통령의 재향군인회 간부들 접견이 있던 날 중앙방송은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노동신문 논평을 보도하면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소위 통일애국인사 활동보장,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긍정적 변화 조건으로 요구해 왔다. 이뿐 아니다. ‘남조선 집권자가 최근 해외에서 북남관계의 연설을 하면서 무슨 선언이란 것을 발표…’라고 한 방송보도 내용은 다분히 의도적 비하의 어투로 보인다. 가관인 것은 북한의 보도내용보다 우리측 대응이다. 중앙방송을 가리켜 ‘북한이 베를린선언의 대응방법을 둔 내부조율 과정에서 1차반응을 보인 것’이라는 통일부 당국자의 논평은 제정신인지 의아스럽다. 북한의 개혁개방과 한반도의 냉전종식은 우리 역시 대통령 못지 않게 열망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유도해야 한다는 고충 또한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벌이는 대북노크는 틀렸다. 북한 문제는 보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내외정세와 함께 신축성, 의연성 있는 객관적 대처가 필요하다. 지금같아서는 설사, 북한이 대좌에 나온다 해도 적당한 구실로 저들에게 일시 이용만 당하기 십상이다. 남북문제를 치적화에 급급하는 일방적 과욕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국회의원 신기루

고등학교 진학도 뒤로 한 채 연기학원에 다녀 청소년 드라마에 몇번 출연했던 한 10대가 상습적인 본드흡입자가 돼 경찰에 구속됐다. 드라마 출연이 좌절되고 결국 퇴출당하자 마약·본드에 손을 댄 것이다. 열 아홉살 때 주연급으로 영화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던 한 여배우는 데뷔후 연기력 부족 등의 지적을 받고 물러난 뒤 강남의 한 술집 룸 살롱 ‘마담’이 되었다. 한때 10대들의 우상이었던 모 가수는 대마초 흡입으로 몇차례 구속되곤 하더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나이트클럽과 미장원에서 일하는 왕년의 인기 댄스그룹 멤버들도 있다. 10대들 중심의 편향된 대중문화가 연예계를 휩쓸면서 ‘스타 열병’에 시달리는 수 많은 N세대들이 이렇게 절망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도처에서 나타난다. 한해 2천명이 넘는 신인가수들이 음반을 내지만 살아 남는 사람은 1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힘겹게 스타가 돼도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가수의 경우 음반 50만장 이상을 팔아도 홍보·의상비용 등을 빼고 나면 용돈 정도만 남는다. CF나 이벤트 행사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수입을 매니저나 제작사에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인과 매니저가 맺는 계약서를 ‘현대판 노예문서’라고 부른다. 5장의 앨범을 40만장 이상씩 팔며 활동중인 인기 댄스그룹 멤버 K씨의 경우도 번지르르한 외제 승용차 한대가 재산의 전부다. N세대들이 스타세계에 대한 환상으로 겉만 보고 부나방처럼 달려들었다가 이내 좌절하고 만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마치 요즘 4·13총선을 앞둔 정치판과 같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군상들을 보면 ‘스타 신기루’에 정신이 빠져 전후 좌우를 제대로 못가리는 N세대들 같아 도무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국회의원 신기루’가 ‘스타 신기루’보다 더 허황되고 마약적인 것 같다. /청하

선진 교통문화 확립을

최근 수원시는 불법 주·정차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까지 교통질서 확립에 노력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수원시 전역에서 불법 주·정차한 차량에 대해 즉시 과태료를 부과함은 물론 견인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그러나 수원시의 이런 강력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내 곳곳에는 불법으로 주·정차한 차량이 많아 교통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고 응급환자 발생시나 화재시 구급차와 소방차 같은 긴급 차량출동이 어려워 큰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수원시의 교통체증은 이미 한계에 달하고 있다. 최근 도로 증가율은 0.5%인데 비하여 차량 증가율은 11.2%로 훨씬 높고 또한 출퇴근시 주행속도가 낮아지고 있어 불법 주·정차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 되었다. 이에 시는 78명의 단속 요원을 배치하여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철저한 단속을 하여 선진화된 교통문화를 확립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불법 주·정차 문제는 최근에 야기된 상황은 아니다. 또한 수원지역만의 문제도 아니고 운전자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물론 불법 주·정차를 하는 운전자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겠으나, 과연 정부나 지자체에서 차량 증가에 따른 주차장과 같은 기본 시설 설치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진화된 교통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운전자들의 준법 정신과 교통 질서에 대한 폭넓은 이해이다. 아무리 강력한 단속을 해도 운전자들의 협조 없이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교통질서를 지킴으로써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또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는 질서 의식이 선행되지 않고는 당국의 단속만 가지고 해결할 수 없다. 무절제한 차량 운행을 줄이는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대중 교통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서 대중교통 노선에 대한 재정비도 필요하다. 대중교통이 시내전역에 고루고루 운행되어야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지 않은가. 2002년 월드컵 대회를 개최하는 문화시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기 위한 선진교통문화가 불법 주·정차 근절로부터 확립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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