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가진 남북4차접촉 실무절차합의서 마련을 위한 의견조율 16개 사항중 1∼2개 사항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해 합의서 작성이 5차 접촉으로 넘어갔다. 비공개된 합의사항이 어떤 것이며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것이 있다. 김일성 주석의 참배여부 문제다. 정부당국은 지난 3차 접촉에서 이에대한 일부의 보도내용을 전면 부인했으나 여전히 첨예한 관심사다. 북측에서 참배를 요구하지 않으면 몰라도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95년 돌연히 일어난 북측 유고가 있기전에 예정됐던 남북정상회담 합의사유만으로도 저쪽에서는 참배요구의 이유가 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은 좀 다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4시, 38선 일원의 인민군에게 총공격령을 내린 작전명령시달이 ‘내각수상겸 인민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이름으로 된 사실을 지울수 없는 것이다. 이로인한 동족상잔의 참극은 새삼 말할 것이 없다. 더욱이 6월은 현충의 달이다. 남쪽에서는 현충의 달을 기리는 입장에서 정상이 평양에 간 것까지는 이해해도 김주석을 참배하는 것은 정서상 걸맞다 할수 없다. 전몰유족단체등의 심한 반발도 예상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과거를 따지자면 한반도 냉전은 종식시킬 수 없는데 어려움이 있다. 일부에서는 정상회담에서 6·25문제도 거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처음부터 어려운 일부터 시작하면 대화가 되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는 남북관계개선이 성숙된 다음에 꺼내도 그리 늦진 않다. 또 민족화해는 용서하는 마음으로 출발해야 가능하다. 남북정상회담은 기대되는 역사적 대업이긴 하나 회담은 상대가 있다.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가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렇지만 정서상의 장애로 인해 회담분위기를 미리 그릇치는 것이 과연 민족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 깊은 고려가 또한 있어야 한다. 정부는 이에 조만간 확실한 내용을 밝힐 의무가 있다. 실무접촉에서 참배에 관한 논의요구는 없었다든지, 아니면 요구가 있어 어떻게 대처하여 합의수준은 어느정도라는 것을 알려 국민의 양해를 미리 구해야 한다. 아무말 없이 있다가 평양에 가서 불쑥 예상치 못한 참배를 하면 비록 통념적 의전절차라해도 미리 밝혀 양해될 수 있는 일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하는 것이다.
올 어버이날에도 그들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카네이션 대신에 무궁화를 어버이들 가슴에 달아주자는 수원 영복여고 학생들의 나라꽃사랑 캠페인이 해마다 있었다. 벌써 10여년째다. 학생들은 이같은 캠페인을 해마다 어버이날이면 수원시내 직장단체를 찾아다니며 벌여왔다. 카네이션 달아주기는 190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 살던 한 처녀가 어머니추도회에서 한상자의 카네이션을 바친데서 비롯됐다. 안나 져비즈라는 이 처녀는 그후에도 어머니의 은공을 기리는 어머니날 제정을 주창, 자신이 지닌 유산을 다 쏟아부었다. 헌신적인 노력이 헛되지 않아 윌슨대통령의 감복으로 매년 5월 두번째 일요일을 어머니날로 공인된 것이 1914년이다. 이어 1934년에 아버지날이 정해졌다. 우리나라도 처음엔 어머니날만 있었던 것을 아버지를 포함한 어버이날이 제정된 것은 1974년이다. 이를테면 아버지들은 어머니들 덕분에 덤으로 어버이날을 갖게 된 것이다. 훈화초, 근화(槿花)라고도 불리는 무궁화는 반만년동안 국내에 많이 자생해온 대표적인 꽃이다. 단군이 개국할때부터 목근화가 나왔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후에도 중국에서 우리나를 지칭할때는 근역(槿域), 즉 ‘무궁화의 나라’라고 지칭한 문헌이 많이 남아 있다. 이처럼 유서깊은 무궁화가 드디어 국화로 지정된 것은 조선조말 개화기에 윤치호등의 발의로 애국가가 창작될때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란 구절이 들어간데서 비롯됐다. 어버이날에 미국식의 카네이션보다는 국화꽃인 무궁화를 달아주자는 영복여고 학생들의 나라꽃사랑 캠페인은 의미가 깊다. 경로효친의 전래사상을 전래의 나라꽃으로 상징하는 것은 곧 우리의 혼을 지킨다 할 것이다. /白山
죽음 앞에는 장사가 없다. 그러나 더러는 이에 초연한 삶이 있다. 이러한 당자가 개인업에 종사하는 사람일지라도 우러러 존경심을 갖게 된다. 하물며 국가대사에 관여하는 사람의 그같은 초인적 노력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고(故) 엄익준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이런 분이다. 간암말기 진단을 받고도 이를 숨긴채 남북정상회담 관련의 중대사를 음지에서 도우며 진통제로 고통을 견뎠다. 사표를 낸 것은 회담성사가 확정된 뒤인 지난달 8일, 일이 잘된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마음놓고 물러난 것이다. 뒤늦게 현대 중앙병원에 입원했으나 3일 오후 3시15분께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고인과 비슷한 분으로 약10년전 배석대법관이 있었다. 그 역시 간암말기 진단을 받고 미제사건을 줄이기 위해 밤새워 일을 더 열심히 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작고하기 보름전 사표를 쓸때 비로소 알았다. ‘현직에서 죽으면 조직에 누를 끼친다’며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사표를 냈다. 배대법관 역시 그때의 나이가 고인과 같은 57세로 아까운 나이였다. 두분의 성품이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히 순국의 공직자 상이다. 간암말기는 견디기 힘든 통증이 괴롭힌다. 고인이 회담 성사를 위해 남모를 뒷바라지를 하면서 겪었을 그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 쓰리다. 평생이라 할 34년동안 몸담았던 국가정보원葬으로 지난 6일 삼성의료원에서 영결식을 가졌다. 미망인 임미대자씨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퇴직금은 장학금으로 기증하고 조의금조차 정중히 사절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숙연케 했다. 삼가 명복을 비옵나니 고통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白山
일부 고등학교가 학생들의 흡연, 두발, 교복불량, 지각 등에 대한 생활지도를 이유로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의 학부모를 학교로 불러 들여 해당 학생과 함께 학교복도 청소 등을 50여차례나 시킨 일을 놓고 찬반 양론이 무성하다. ‘교실붕괴 만연을 바로 잡을 값진 일이며 자식의 비행 교정 효과가 크다’는 찬성론과 ‘수치심만 자극하는 일이지만 자식들 때문에 수모를 참는다’는 반대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학교측의 취지를 들어 보면 그럴 듯 하다. 교칙을 위반한 학생들의 학부모 봉사활동을 시행한 지난 3월 이후 흡연 학생수가 대폭 줄어 들었으며 학부모들이 오히려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부모가 자녀 일로 해서 학교에서 청소를 하는 것은 말이 봉사활동이지 실상은 처벌을 받는 것이다. 일부에서 교단이 무너지고 교실이 붕괴되는 현상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과 그 학부모가 함께 하는 교내 봉사활동을 통해 학생의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생각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교칙위반 학생-학부모 연좌제’는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연좌제라는 어휘가 주는 성격을 고려할 때 사회적 통념상으로도 적절하지 못하다. 연좌(緣坐)는 글자 그대로 ‘일가(一家)의 범죄로 인하여, 죄없이 처벌당하는 일’이다. 깊이 따진다면 교내에서의 학생 잘못이 과연 학부모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인가. 교사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는가. 제자가 잘못했을 때 회초리를 제자에게 내주며 ‘잘못 가르친 내 죄가 크다. 그 벌로 내 종아리를 때리라’고 한 고매한 스승의 책임론을 교직자들이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만일 학교에서 연좌제를 강행한다면 교사의 잘못은 교장이 책임져야 하는 등식이 나온다. 학생생활 지도는 학생상담 등을 통해 교내에서 해결하거나 교칙위반 내용을 학부모에게 통보하여 가정에서 선도토록 해야 한다. 가정과 연계하더라도 효율에 앞서 학부모들이 심적 부담을 갖거나 학생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된다. 교칙을 어긴 학생을 교사는 학교에서, 학부모는 가정에서 선도해야 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확산될 우려가 있는 교칙위반 학생-학부모 연좌제는 중단해야 된다.
정부의 공적자금운용이 무척 걱정스럽다. 당장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에 투입하고자 하는 소요액이 5조원인데 비해 확보된 자금은 불과 3조원이라고 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40조원의 추가공적자금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정부의 방만한 공적자금운용 인식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 기업부실 및 금융부실의 확대로 이미 투입된 64조원 말고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도 유만부동이지 얼마가 더 필요할 것인지 실로 답답하다. 그렇다고 이미 51조원이 투입된 금융기관의 자산구조나 수입구조가 썩 좋아진 것도 아니다. 자금회수가 얼마나 가능할 것인지도 지극히 의문이다. 정부는 90%로 보고 있다. 책상머리 계산을 일단은 믿는다 해도 6조원 이상의 원금을 날릴 판이다. 여기에 또 해마다 수조원의 이자가 붙는다. 이를 국민의 세부담인 재정자금으로 감당하고 있다. 과다한 재정적자 가중을 우려치 않을수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성업공사와 예금보험공사의 공채발행을 통해 조달해왔던 것이 이젠 공적자금 마련에 초비상이 걸렸다. 비상수단으로 예금공사가 은행으로부터 일시 차입한 형식으로 발등의 불부터 끄고 보겠다는 것이 정부측 생각이지만 근본적 해결방안은 아니다. 대대적인 채권발행도 금융시장에 부담만 줄뿐 전망이 투명하다 할 수 없다. 이에 우리는 변칙은 무리라고 보아 정공법으로 가야할 것으로 믿는다. 공적자금조성 및 투입에 국회의 심의를 받아 동의를 얻을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이를 외면하면 국회가 요구해야 한다. 국민부담을 담보로 추경이나 당초 예산규모와 맞먹는 수조, 수십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을 정부부처가 혼자 떡 주무르듯 하는 것은 사리에 맞다 할 수 없다. 공적자금운용은 적정성과 효율성이 생명이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자금이 과연 이에 합당한지는 심히 의문이다. 금융개혁만해도 겉치레 실적에 급급하여 책임규명과 후속조치를 소홀히 해 악순환을 되풀이한다는 거센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망할 기업은 망해야 경제가 제대로 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천문학적 수치의 공적자금 투입에 등가성이 있어 정말 불가피했는지 냉정한 반성이 요구된다. 공적자금이 마치 공돈처럼 보편화된 인상을 주는 것은 황당하다. 다음 정부는 어떻게 되든 우선 써놓고 보자는 것이 아니라면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공적자금운용백서 발표같은 것은 그같은 사례의 하나라 할 것이다.
세간의 화제가 된 재미교포 여성로비스트사건은 고위공직자들 기강이 얼마나 해이했던가를 말해준다. 당시의 내로라하던 장관들, 중진 정치인들이 40대 재미교포 여성을 가운데 두고 벌인 치졸성은 가히 인품을 의심케 한다. 그들 말대로 단순 사생활을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보통여성이 아닌 미국의 무기상 로비스트인 점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설사, 거명된 인사들의 관련내용이 개인적 일이라 해도 객관적 시각은 그로인한 로비의 영향이 없다고 보기 어려워 사생활 노출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이다. 로비스트는 이미 1천800만원을 군관계자에게 건내주어 무기관련 2급비밀을 빼돌린 혐의로 불구속 기소상태에 있다. 이런 사람이 누군가의 전화 한통화로 출국금지조치가 풀린 적이 있다. 또 백두사업은 로비의 목적을 달성, 벌써 계약이 성사됐다. 군당국이 아무리 로비의 영향이 없다고 발표하여도 믿기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으로 보이는 것이 국민적 의혹이다. 로비스트가 미모 하나로 막강한 배후 실력자들을 제멋대로 주무른 흔적이 발견되는 것은 국가안보 측면에서도 심히 우려스런 현상이다. 이런데도 막상 진실규명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 것은 유감이다. 검찰은 재수사를 말로만 다짐하고 있다. 관망하고 있는 저의가 어디에 있는지 의아스럽다. 당초의 수사가 의도적 축소수사였음이 드러날 것을 우려하고 있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행여라도 그렇지 않다면 국기관련의 의혹에 걸맞는 결연한 수사의지로 국민적 의문을 시급히 풀어주는 것이 부하된 소임일 것이다. 정치권 또한 사태추이를 당리당략 차원으로 저울질만 할 일이 아니다. 백두사업은 구 정권에서 이루어졌다. 한나라당은 사건 규명에 능동적 자세로 나서 옥석을 구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당 역시 엉거주춤해 보여서는 항간의 의심을 사기가 십상이다. ‘미꾸라지 한마리가 온통 흙탕물을 일으킨다’는 전래속담을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다. 유사한 병폐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위공직자들의 처신이 분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러둔다.
최근 2∼3년전부터 각종 전염병이 계절과 관계없이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이상징후를 보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지구온난화 등으로 인한 이상기후와 환경파괴로 인한 생태계의 정화작용이 사라지면서 비롯된 것으로, 방역당국이 당연히 사전 대비책을 세워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사후에 허둥대는 것은 뒷북행정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경기도내에는 작년에 이어 벌써 크고 작은 식중독 사고가 일어나는가 하면 갖가지 전염병이 심상찮게 발생하고 있다. 특히 올 봄에는 다른 어느해 보다 짙은 황사현상이 잦았고 긴 가뭄과 함께 최근엔 한낮의 이상고온 등 요인으로 각종 전염병의 만연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같은 우려는 벌써 곳곳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여름철 제1종 전염병인 장티푸스 환자가 올 3월까지 10명이 발생, 작년 같은 기간보다 2명이 늘었고, 작년 11명이던 말라리아 환자도 12명으로 늘었다. 또 가을철 전염병인 유행성 출혈열 환자가 7명, 쯔즈가무시병 환자는 2명이 발생했다. 특히 가을에 발병하는 유행성이하선염 환자는 작년에 2명뿐이었으나 올해는 45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세균성 이질 감염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작년 3월말까지 21명이던 세균성 이질환자가 올해는 용인 여주 등 9개 시군에서 이미 76명의 환자가 발생, 작년보다 3.6배나 늘었다. 여름철 집단질병과 전염병은 주로 서민층이 피해자란 점에서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중요하다. 며칠전 보건당국이 경기 인천 등 13곳을 말라리아 위험지역으로 선포했지만, 그외의 계절파괴 전염병에 대한 당국의 대처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큰 문제다. 때없이 발생하는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전천후 방역체제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또 전염병의 신고·보고체계의 보완·강화도 필요하다. 법정 전염병의 경우 가족 의사 모두 쉬쉬하기 일쑤여서 제대로 신고되는 것은 절반도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당국은 때 이르게 찾아온 각종 전염병이 더 번지기 전에 종합방역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그저 분무소독이나 하는 형식적 방역에 그칠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방역사업을 벌여야 한다. 전염병이 창궐한 후에야 겨우 서두르는 식의 뒷북치기 방역으로는 국민건강을 지킬 수 없는 것이다.
죽음 앞에는 장사가 없다.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안다면 어떻게 될까. 대개는 의욕이 꺾여 자포자기할 것이다. 살아도 이미 사는게 아닌 것이다. 그러나 더러는 이에 초연한 삶이 있다. 이러한 당자가 개인업에 종사하는 사람일지라도 우러러 존경심을 갖게 된다. 하물며 국가대사에 관여하는 사람의 그같은 초인적 노력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고(故) 엄익준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이런 분이다. 간암말기 진단을 받고도 이를 숨긴채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중대사를 음지에서 도우며 진통제로 고통을 견뎠다. 사표를 낸 것은 회담성사가 확정된 뒤인 지난달 8일, 일이 잘된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마음놓고 물러난 것이다. 뒤늦게 현대 중앙병원에 입원했으나 3일 오후 3시15분께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고인과 비슷한 분으로 약10년전 배석대법관이 있었다. 그 역시 간암말기 진단을 받고 미제사건을 줄이기 위해 밤새워 일을 더 열심히 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작고하기 보름전 사표를 쓸때 비로소 알았다. ‘현직에서 죽으면 조직에 누를 끼친다’며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사표를 냈다. 배대법관 역시 그때의 나이가 고인과 같은 57세로 아까운 나이였다. 두분의 성품도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가히 순국의 공직자 상이다. 간암말기는 견디기 힘든 통증이 괴롭힌다. 고인이 회담 성사를 위해 남모른 뒷바라지를 하면서 겪었을 그 고통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 쓰리다. 평생이라 할 34년동안 몸담았던 국가정보원葬으로 오늘 삼성의료원에서 영결식을 갖는다. 삼가 명복을 비옵나니 고통없는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白山
다 알고 있는 얘기지만 지난 2일 김영배 민주당 상임고문이 김대중 대통령의 역대 보좌진 모임인 인동회(忍冬會)의 모임에서 ‘피바람’을 일으켰다. 인동회의 4·13총선 당선자 축하 오찬에서 김 고문은 당선자 대표 답사 말미에서 “김 대통령이 자신의 임무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완수할 수 있도록 보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정권의 창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야당시절 보좌진 출신들이 모인 인동회 회원으로서 지극히 당연하고 충성스러운 발언이다. 그러나 “자칫(정권재창출) 실패하면 이 나라에는 엄청난 피바람이 휘몰아칠 것”이라고 말을 맺었다. 이날 모임에는 한승헌 전 감사원장과 남궁진 청와대 정무수석, 김옥두 민주당 사무총장을 비롯, 4·13총선에서 살아난 20명의 당선자와 200여명의 회원이 참석했었다. ‘피바람’은 국어사전에는 아직 없지만, 온통 피가 낭자한 곳을 형용하여 일컫는 ‘피바다’와 비슷한 말이다. 그러니까 김 고문은 민주당에 소속된 인물이 DJ에 이어 대통령이 되지 못하면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은 피바다에 빠져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셈이다. 차기정권을 잡지 못하면 ‘정치보복’을 당할지 모르니 합심하자는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김 고문은 발언 후 말썽이 나자 ‘별다른 정치적 의미없이 차기정권을 재창출하기 위해 열심히 하자는 의미로 한 얘기’라면서 발언을 취소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고문은 유력한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설화라고 생각하기에는 석연치가 못하다. 속된 말로 경종을 울리기 위해 ‘미친 척’하고 총대를 멘 것인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는 김성재 청와대수석이 “다수(영남)의 단결은 불의이고 소수(호남)의 단결은 정의”라고 하더니 이번엔 민주당 총재대행까지 지낸 사람이 ‘피바람’을 몰고 왔다. 추종자들이 무얼 믿고 큰소리 치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래 저래 DJ는 골치 아프겠다./청하
지난해 전국 경찰에 접수된 미아발생신고는 모두 3천506건으로 하루 평균 10명에 가까운 어린이가 부모를 잃은 셈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부모를 찾지 못해 경찰을 포함한 각종 기관에서 전국의 아동복지시설(공인시설)로 보호 조치된 미아는 216명이라고 한다. 이는 공공기관이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데도 부모와 연결되지 못하는 ‘비극’이 한 해에 200여건이 발생한다는 계산이다. 그나마 이같은 수치는 실제 미아 발생 현황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다. 사설 복지시설 등에 넘겨지는 일이 많고 자녀를 잃어버리고도 신고 자체를 안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 정신지체 등 장애아동의 경우 길을 잃어도 대부분 단순 부랑아로 간주돼 부모를 찾아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복지시설에 수용돼 미아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를 한 번 잃어버리면 찾기가 너무 힘들다. 미아발생 건수에 비해 미아찾기 관련기관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도 각 기관을 단일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미아발생신고를 접수하고 있는 곳은 경찰(신고전화182)과 한국복지재단 산하 어린이 찾아주기센터(02-777-0182)가 있을 뿐이다. 이렇게 미약한 상황에서 미아를 신속히 찾으려면 전국의 미아현황을 총망라해 정리해놓고 수시로 입력,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또 전국 읍·면·동사무소에 주민등록 사진을 입력하기 위해 비치해 놓은 디지털카메라를 활용해 미아와 가출 아동 등의 사진을 즉시 촬영하고 단일 네트워크에 입력하면 어디서든 빠르고 쉽게 조회가 가능해질 것이다. 미아발생은 부모와 자식간의 생이별도 문제지만 미아를 찾기 힘든 우리 사회 현실이 ‘앵벌이’등 어린이를 악용하는 범죄를 낳는 단초가 되고 있어 더욱 심각한 것이다. 5월은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석가탄신일, 스승의 날 등이 있어 나들이를 많이 하는 달이다. 가정의 달에 미아가 발생하여 온가족이 슬픔 속에 잠기지 않도록 어린이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미아발생은 그 어떤 상황과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보호자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