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호 경기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혈연과 지연을 기반으로 하는 농촌 공동체 사회였다. 과거에는 모두가 함께 일해야만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이웃이 가끔 꼴 보기 싫어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것이 미덕이었고 그래야만 내가 아쉬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쳐 어느덧 지능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면서 애써 힘을 합치지 않아도 혼자서 일을 처리하는 시대가 됐다.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던 기성세대와 달리 부부가 가사와 육아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직장에서 상하 관계를 내세우면 꼰대로 취급받게 됐고 퇴근 후 회식 자리에서 직장생활의 고충을 토로하기보다 정시에 퇴근해 운동과 취미 활동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새로운 직장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무엇보다 지금은 꽤나 완성도 높은 법제도가 사회적 약자를 비롯해 개인을 보호한다. 가정이든 학교든 교육을 명분으로 손찌검을 하지 못하게 됐고 욕설조차 금지하는 사회가 됐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서양 현대 이전에는 강한 가족 공동체에 약한 개인이 소속됐지만 지금은 강한 국가와 강한 개인의 시대임을 강조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0년에 걸쳐 체화했던 가부장적 문화를 상당 부분 청산했다. 더 이상 집단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게 됐으며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가장 우선시하게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동체 소속감과 정서적 안정도 함께 사라졌다. 즉, 개인은 가부장적 공동체의 구속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그와 동시에 한없이 외로워졌다. 그래서인지 나이 든 정치인이나 기관의 리더들은 공동체에 대한 추억이 너무도 강렬하다. 그들은 일제히 공동체 복원을 외쳤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공동체 관련 사업을 앞다퉈 추진했다.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는 외로움이다. 어떤 사람도 교감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기 어렵다.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노인 10명 가운데 2명이 혼자 살고 10가구 중 4가구는 1인 가구다. 2022년 보건복지부에서는 고립·은둔 청년을 50만명 이상으로 추산했다. 2018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부 장관까지 임명해 사회적 대응에 나섰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절박한 시대는 일단 막을 내렸지만 외롭지 않기 위해 우리는 다시 서로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다만 힘들게 얻은 개인의 영역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서로에게 세련되게 다가서려면 과거와 달리 ‘사회기술(社會技術)’을 따로 익혀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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