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얼운님’을 기다리는 마음

아이들이 예쁘다.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나이가 든 모양이다. 뭘 바라는 건 없다. 우리보다는 더 자유롭게, 더 평화롭게, 더 풍요로워지길 바랄 뿐이다. 우리 부모 세대가 그랬다. 전쟁과 빈곤 속에서도 늘 미래의 아이만을 생각했다. 항상 어른은 아이의 후견이었고 아이는 어른의 희망이었다. 부끄럽지만 받을 땐 소중함을 잘 몰랐다. 어수룩한 깨달음조차 늘 뒷북이었다. 갈수록 어른이 없다. 어른을 찾는 애절함은 더 커지는데 정작 어른 싸움에 아이들 멍은 더 짙어만 간다. 전통의 배구 명가인 화성의 송산고 배구부만 해도 그렇다. 학교 측과 지도자 간에 각자의 주장이 있고, 시각차도 있었겠지만 마지막 해법이 ‘배구부 해체’라는 건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른 싸움에 아이 등 터지는 꼴이다. 아이들의 꿈, 아이들이 선택할 기회를 원천 박탈하는 이유가 ‘어른들’ 싸움이라니 당최 어른스럽지 않다. 배드민턴 여제 안세영도 어른을 기다린다 했다. 그는 “누군가와 전쟁하듯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 보호에 대한 이야기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제가 하고픈 이야기들에 대해 한 번은 고민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어른이 계시기를 빌어 본다”고 말했다. 어른들의 대답은 달랐다. 같이 살자고 얘기하는데 함께 죽자고 싸움을 키우는 형국이다. 비록 서투른 직접화법이지만 안세영의 고언을 어른들이 정치적으로 소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다음 올림픽에서는 안세영이 감사와 보은의 마음이 분노보다 더 큰 힘이었다는 금메달 인터뷰에 나서길 기대한다. 어른의 본뜻은 생물학적으로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어른은 ‘얼우다’에서 유래한다. 예전에는 ‘사랑을 나누다’의 뜻으로 ‘얼운님’을 기다리는 황진이의 마음으로 쓰였다. 어른은 어우를 수 있는 사람이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지혜로 동이불화(同而不和)를 이겨야 한다. 진정 공멸의 길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얼운님’을 기다리는 모두의 마음을 정부도, 협회도, 체육회도 헤아리길 바란다. 어차피 같은 시대 지구의 한 모퉁이를 함께 여행하는 동반자이지 않은가.

[천자춘추] 비급여 진료비 공개제도

얼마 전 필자의 큰딸이 손목이 아파 병원을 다녀온 적이 있다. 병원에서 비급여 주사를 꽤 큰돈을 지불하고 맞았다고 한다. 동일한 주사에 대해 다른 병원에 문의해 보니 가격이 달랐다. 비급여 항목은 왜 병원마다 가격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먼저 ‘비급여’라는 용어부터 살펴보자.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는 진료를 ‘급여’, 적용되지 않고 환자가 모두 부담해야 하는 진료를 ‘비급여’라고 한다. 대표적인 비급여 항목의 예시로는 시력교정술, 도수치료, 진단서 발급비용 등이 있다. 국민이 부담하는 소중한 보험료라는 한정된 재원으로 운영해야 하니 건강보험법령에 따라 업무나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질환에 대한 치료 등은 요양급여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항이 있다. 이러한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에서 가격을 정하지 않으며 병원이 자율적으로 정하므로 병원마다 가격이 다를 수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사평가원)은 국민이 병원을 이용할 때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비급여 진료비용을 공개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큰 규모의 병원은 2013년부터, 동네 의원은 2021년부터 비급여 진료비용을 매년 공개하고 있으며 전체 항목은 623개에 해당한다. 비급여 진료비 정보 서비스를 함께 이용해 보자. 심사평가원 누리집 혹은 모바일앱 ‘건강e음’에 접속해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클릭한다. 상세 검색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지역, 의료기관 규모, 항목’을 필수값으로 입력하면 병원 목록이 검색 결과로 나온다. 병원의 세부 버튼을 누르면 가격정보를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고 병원별 가격 비교도 가능하다. 미처 비급여 진료비 정보를 검색하지 못하고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게 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병원은 환자와 보호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병원 홈페이지, 병원 내 인쇄물, 책자 등으로 비급여 진료비용을 고지할 의무가 있으므로 병원 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 비급여 진료 전에 환자나 보호자에게 비급여 항목과 가격을 설명토록 하는 ‘비급여 진료 사전설명제도’도 시행되고 있다. 이제 비급여제도를 알게 된 독자는 병원에 가기 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비급여 진료의 병원별 가격을 먼저 비교해 보고 필요시 비급여 진료에 대해 설명을 요청해 알 권리를 보장받고 현명한 의료 선택을 하길 바란다.

[천자춘추] 고령자 교통사고 제도 개선 필요

우리나라는 2025년이면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며 고령자 증가에 따른 교통사고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 통계에 의하면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2022년 3만4천652건에서 2023년 3만9천614건이 발생해 전년 대비 14.32% 급증했고 고령 보행자 교통사고는 2022년 1만435건에서 2023년 1만921건이 발생해 전년 대비 4.6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고령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대책 및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현재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인지지각검사 및 교통안전교육을 시행하고 있으며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대해서는 운전면허 적성검사 주기가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됐고 인지능력 자가진단과 교통안전교육을 2시간 이수해야 면허가 갱신되며 운전면허 반납 등의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자 교통사고가 증가하고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등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로 인명 피해가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고령자에 대한 운전을 강제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건강 상태 및 신체 능력은 개인차가 있으므로 연령만으로 운전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이 있고 대중교통이 취약한 지역에선 자차 운전 외에 이동수단이 마땅치 않아 이동권 제한이라는 주장도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여러 의견을 감안하면 고위험 고령 운전자에 대한 국가 차원의 추가적인 관리 및 제도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즉, 고령 운전자의 이동권을 보장하면서도 나날이 증가하는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고령자의 건강 상태 및 신체 능력 등에 따라 특정 조건하에서만 운전이 가능하도록 하는 조건부 운전면허제도 도입 및 고령 운전자의 실수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 장착 의무 등의 추가적인 대책 및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 고령 보행자는 도로를 횡단할 때 차량의 위험을 제때 인지하지 못해 교통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고령자가 다수 거주하는 지역을 선별해 고령 보행자 중심의 보행환경 조성, 속도제한, 무단횡단 방지를 위한 시설물 보강, 야간조명시설 설치 및 고령 보행자의 신체 특성을 고려한 보행신호 부여 등의 개선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외에도 고령자 교통사고 감소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적극적으로 발굴 및 수립하고 지속적인 홍보 및 고령자 교육 등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천자춘추]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인천시청 본관 앞에 설치된 기후위기 시계 맨 앞자리가 5년에서 4년으로 바뀌었다. 산업화 이전 시기 지구 평균 기온보다 1.5도 상승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줄었음을 뜻한다. 인천시는 급박함을 알리며 시민들에게 에너지 절약, 일회용품 근절 등 일상생활에서의 탄소중립 실천을 적극 독려했다. 화석연료로 생산된 전기를 쓸 수밖에 없고 끊임없이 플라스틱을 생산해내는 세상에서 시민들에게 친환경 생활 실천을 독려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탄소를 무참히 내뿜는 발전소, 기업에 더 강력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우선이다. 기후위기의 여파가 어떤 이들에게 더 가혹하게 가 닿는지 살피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도 행정의 역할이다.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에 갇혀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들을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여긴다. 정부와 지자체는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고 타협한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고 오히려 산업 부문 탄소 저감 목표치를 완화했다. 전국 곳곳에서는 토건 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면서 기후위기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며 개인의 실천을 독려한다. 경제 성장을 위해, 편리한 생활을 쫓아 살아온 인류의 역사가 기후위기 시대를 만들어냈다는 언어로 뭉뚱그려 누구 책임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그러는 사이 어떤 이들은 급격한 기후변화 앞에 속수무책이다. 기후재난이다. 우리는 이제 대상을 구체화해야 한다. 문제를 구체화할 때 문제 해결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기후위기는 어떤 경로로 발생했는지, 현재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앙으로 향하는 가속페달을 밟고 있는 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어떤 이들에게 책임이 있는지 따져 물어야 한다. 사회정치적 권력이 있는 이들에게 문제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가 놓친 많은 질문만큼 많은 시간을 놓쳐 왔다. 더 이상의 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매년 9월이 되면 수천명의 시민이 모여 목소리를 낸다. 올해 9월7일 열리는 기후정의행진 슬로건은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다.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대상을 구체화하고, 정책 결정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기후재난 현장에 있는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서다. 많은 시민이 9월7일 광장으로 나와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나누는 장이 되길 바란다.

[천자춘추] 비약물치료의 안전성

인지기능이 저하된 경도인지장애 환자와 치매 환자를 위한 약물 치료는 최근의 혁신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인지기능 저하 증상을 완화하고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시도가 있어 왔다. 이러한 비약물 치료의 범위는 인지기능 환자들에 대한 기억력을 포함한 인지기능 자극훈련부터 일상생활 수행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인지기능재활 등을 포함하며 넓게는 치매가족교실 등 보호자와 가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까지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비약물치료가 약물치료에 비해 환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겨지면서 검증되지 않은 치료들이 너무 쉽게 적용되는 모습을 진료 현장에서 종종 보곤 한다. 가장 먼저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문제는 비약물치료 역시 환자에게 적용되는 치료이므로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검증된 치료만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치매안심센터 등의 치매 관리 인프라가 확충되면서 비약물치료의 필요성 역시 커지고 있고 이에 따라 다양한 비약물치료가 치매안심센터를 비롯한 지역사회 치매 관련 기관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상당 부분 그 효과와 안정성에 의문이 드는 경우가 많다. 환자 몸에 약물이 투여되지 않아 직접적인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하더라도 치료 효과가 불분명한 치료를 무분별하게 적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약물치료의 진행 과정도 중요한 문제다. 비약물치료를 환자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절차가 필요하다. 비약물치료 역시 의료 행위이므로 반드시 자격이 검증된 의료진의 판단이 개입돼야 한다. 약물이 직접 투여되지 않는 비약물치료라고 해서 환자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의료진 없이 진행된다면 환자의 안정성 확보도 어렵고 의료법 위반의 소지도 발생한다. 최근에는 디지털의료의 발달과 함께 비약물치료에도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시도가 늘어나면서 환자의 안정성 확보를 위한 절차가 간과되는 경우 역시 급증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약물치료도 의료 행위이므로 반드시 정식 등록된 의료기기를 사용하거나 환자의 안전을 담보하는 논문 자료를 바탕으로 기관생명윤리위원회 심의 통과 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 장비들의 비약물치료 적용 과정에서 신기술 개발이라는 명분하에 이러한 과정들이 생략되고 심지어 검증되지 않은 기기에 불필요한 예산을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인지기능 저하로 고통받는 치매 환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노력이 시도되는 것은 치매전문가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환자에게 행해지는 모든 의료 행위는 반드시 환자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한다. 그 효과와 안정성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돼야 하고 진행 과정에서도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친환경 파리올림픽의 힘

연일 무더위와 열대야로 지친 일상에서 이번 여름은 지구촌 최대 축제인 2024 파리 올림픽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전해오는 선수들의 열정과 투혼의 감동과 반가운 메달 소식을 접하며 무더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번 파리올림픽조직위원회의 과감하고 파격적인 개막식 장소와 콘셉트, 페스티벌 형식의 행사를 보면서 눈길이 가는 부분이 있다. 이번 대회는 역사상 친환경 올림픽이라는 슬로건으로 파리의 대표적 장소인 상젤리제 거리의 그랑팔레, 베르사유 궁전, 에펠탑 광장 등 역사적인 장소를 활용해 친환경 경기장을 조성했다. 또 재생 가능한 전기 사용 등 탄소배출 최소화 노력, 수질 문제로 논쟁이 많았던 마라톤 수영 등 센강이 경기장으로 재탄생, 골판지 침대 등 선수들 숙소의 파격적 조성까지 상상 이상의 도전과 모험으로 시작한 창의성도 눈에 띈다. 반면 저탄소 운영을 위해 각국 선수단 숙소에 골판지 침대 설치와 자연 냉각을 유도, 공기순환을 촉진하겠다며 에어컨도 설치하지 않은 것은 옥의 티다. 폭염에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가혹한 환경으로 더위와 싸워야 하는 이중 부담까지 주는 선수촌 환경은 무리한 친환경 실천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과거 우리나라 올림픽의 사례로 볼 때 막대한 예산 투입으로 종목별 경기장과 선수촌을 건립하며 화려한 대회를 마쳤지만 지금처럼 심도 있는 환경 문제는 접근도 못하고 축제로만 마무리됐던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기를 거쳐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13개 경기장 건립비로 8천956억원의 예산 투입, 그나마 환경을 생각해 녹색 건축물 인증과 중고 컨테이너 재활용 방안을 접목했으나 이 또한 경기장 시설에 대한 뚜렷한 사후관리 방안 없는 국제대회 유치에 한계성을 느꼈다. 이런 관점에서 2002년 월드컵의 사례를 보면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월드컵 종료 후 스타디움과 부속시설에 대한 사후관리 고민을 통해 도시민들의 생활체육시설과 복합구장으로 탈바꿈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축구진흥 및 사회공헌과 친환경 구현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현재까지 공실 없이 목적과 트렌드에 맞는 공간활용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의 예산 지원 없이 독립채산제로 매년 흑자경영을 달성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건립된 축구전용 경기장인 이곳을 관리운영하는 (재)경기도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은 목적사업 외에 ESG 경영의 핵심 가치를 수용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더 나은 기회’를 만들고자 RE100, 태양광 발전설비 구축, 전기자동차 충전시설 확충, 경기장 내 ‘No Plastic’ 일회용품 제로화 선언, 주경기장 및 중앙광장 외부트랙 친환경 코르크 산책로(도심 속 맨발걷기) 조성 등 다양한 친환경 사업까지 영역 확장은 물론이고 태양광발전 사업을 올해 말 1차 기반구축 완료 후 2025년 2차 기반 구축사업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세계인들에게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를 되새기며 재단도 친환경 경기장으로의 탈바꿈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 경기를 중심으로 기후변화 환경오염의 위기를 내세우며 긍정적인 역동성 창출과 친환경 원칙을 고수한 파리의 전략과 리더십은 과거 어느 대회보다 환영받고 있다. 올림픽이 끝난 후 관련 시설이 애물단지가 되지 않도록 사후 활용까지 고민해 친환경 행사 콘셉트가 퇴색되지 않게 다양한 가치를 전파한 성공적인 사례로 남기를 기대해 본다.

[천자춘추] 증명되지 못한 가난의 비극

얼마 전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이 숨진 지 한 달이 지난 후 발견됐다는 뉴스를 접했다. 기초연금에 의지해 살던 이들은 26만원의 체납 전기료를 낼 수 없어 곧 전기가 끊길 예정이었다. 어디가 부서진 것인지 두 달 치 수도요금이 90만 원이나 나오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러 나온 수도사업소 직원이 모자의 죽음을 발견하게 됐다. 벽이 갈라지고 집 안은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낡고 부서진 모습들만 가득하다. 지병이 있던 아들이 먼저 숨지고 하반신이 마비돼 돌봄을 받지 못한 어머니가 뒤이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사람 모두 수입이 없었지만 그들이 살던 집은 외관이나 상태와 상관없이 기초생활수급자 지원 기준 공시지가인 1억2천만원을 훌쩍 넘긴 1억7천만원이었기 때문에 의료비 지원이나 주거비 지원 대상에도 들지 못했다. 그들이 살던 집은 85년이나 돼 낡고 작았으며 비가 새고 벽이 무너져 팔릴 것 같은 희망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이 집에서 살던 모자는 자신들의 가난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더운 여름날 고통스럽고 외롭게 사망하고 만 것이다. 뉴스는 모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숫자가 아니라 관심과 돌봄이었다는 말로 마무리됐다. 이들에게 필요했던 ‘관심과 돌봄’은 어떤 것이었을까.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돌봤다면 모자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루 한 번씩 도시락이 배달되고 긴급복지 지원이 이뤄졌다면 두 사람은 건강하게 살아 있을까. 주거비 지원이 이뤄졌다면 주저앉은 개수대를 새것으로 바꿀 수 있었을까. 이들의 쓰러져가는 집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고칠 수 있었을까. 돌봄 인력이 정기적으로 방문했다면 설거지를 하지 못해 비닐봉지를 씌워 사용하던 그릇들을 설거지해 줬을까. 의료비 지원을 통해 아픈 아들이 하반신 마비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다닐 수 있었을까. 이 비극적인 기사는 우리 사회의 안전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언제쯤이면 가난한 사람이 스스로의 가난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관심과 돌봄을 친인척이나 이웃의 일로 치부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날이 올까. 어떤 제도와 정책이 엉성하기만 한 사회적 안전망을 물 샐 틈 없는 단단한 안전판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더운 여름, 곰팡이가 핀 쪽방에 앉아 전기료 무서워 선풍기조차 마음대로 틀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을 떠올리며 마음이 갑갑하기만 하다. 여름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얼음장 같은 방바닥에서 전기장판도 켜지 못하고 일곱 겹 옷과 오래 빨지 못한 이불들을 겹겹이 덮고 겨울을 나게 될 이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친다. 더위와 추위를 이기고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증명된 가난이 필요하지 않은 그런 사회가 되길 희망해 본다.

[천자춘추] 혼자 사는 삶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혼자 사는 삶이나 1인 가구에 대한 책들이 부쩍 많아졌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도 마찬가지다. ‘혼자 삶’이 사회 전반의 화두가 되는 것은 혼자 사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인 가구는 얼마나 많아졌을까? 통계청의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의 1인 가구는 782만 9천 가구로 전체 가구 중 35.5%를 차지한다. 2015년 1인 가구 비율이 27.2%였던 것에 비해 8.3%p 증가한 것이다. 1인 가구라고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도시 생활을 하고 있는 바쁜 20대 직장인? 농촌에 혼자 살고 있는 여성 노인? 전체 1인 가구의 연령대별 비율을 살펴보면 20대는 17.9%, 30대와 60대는 각 17.3%였고, 70대 이상은 19.1%였다. 1인 가구가 특정 연령대에 집중된 것이 아니라 모든 연령대에서 나타나는 가구 형태가 된 것이다. 성별로 분석해 보면 남성 1인 가구는 30대 비율이 21.9%로 가장 높고 20대 18.1%, 50대 17.6%인데 반해, 여성 1인 가구는 70대 이상이 28.3%로 가장 높고, 20대 17.7%, 60대 15.2% 순이었다. 20~30대 1인 가구 비율이 비교적 높은 것은 초혼 연령의 상승과 비혼을 선택한 청년의 증가로, 40대 1인 가구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혼인상태를 유지하는 비율이 반영된 것이다. 50대 1인 가구 비율은 이혼 증가나 비혼이었던 젊은이들의 나이듦의 결과 등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60대 이상의 1인 가구 비율이 남성보다 여성이 높은 것은 성별에 따른 평균 수명 차이로 해석할 수 있다. 전반적인 연령대 비율은 유사하나 성별에 따른 비율이 다른 것은 생애주기에 따른 경험이 달라질 수 있음을, 더 나아가 성별을 막론하고 인생의 어떤 시기에는 누구나 1인 가구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1인 가구 정책은 다양한 요인으로 형성된 1인 가구들의 특성과 연령대별 요구를 반영해 추진할 필요가 있다. 최근 경기도는 1인 가구 정책제안 공모전을 추진하거나, 1인 가구 정책 참여단을 모집하며 도민 의견을 반영한 1인 가구 정책 개발에 힘쓰고 있다. 현재 혼자 살고 있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그러지 않을 수 있고, 현재 여럿이서 살고 있지만 생애주기의 어느 순간에는 1인 가구로 살아가는 날이 올 수 있다. 지금 나는 1인 가구로 살아가 있는가? 다른 구성원과 함께 살고 있는가? 나의 생애주기 어느 시점에서 혼자 사는 나의 모습은 어떨지 한번 생각해 보자.

[천자춘추] 마을 문화 잃어버린 도로명 주소

조선시대에는 전국을 팔도로 나누고 각 도에는 중앙에서 관찰사를 보내 도의 행정을 맡아보게 했다. 도는 여러 고을로 구분했는데 고을의 격에 따라 부·목·군·현의 구별을 두고 부사·목사·군수·현령을 중앙에서 임명했다. 이들 고을의 으뜸인 수령은 행정뿐만 아니라 치안과 사법도 담당했다. 고을은 지역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을은 특정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반영돼 있고 특정 지역에 대한 문화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행정구역을 기반으로 주소가 표기되며 해당 지역의 행정구조를 이해하기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주소가 일제를 거쳐 내려오면서 몇 정목으로 표기되기도 했다. 이 때부터 내려온 주소가 구 주소다. 이 구 주소가 2006년 10월4일 제정된 도로명 주소 등 표기에 관한 법률(이하 도로명법)에 의거해 전면적으로 개정됐다. 이 법은 도로명 및 건물번호에 의한 주소 표기에 따른 관련 시설의 설치·유지관리·활용과 도로명 주소의 부여·사용·관리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해 국민의 생활 편의를 도모하고 물류비 절감 등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도로명법 제정에 대한 효율성은 길 이름이나 번지 등이 다양하게 표기돼 있어 실제로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이 법에서 말하는 ‘도로명시설’이라 함은 도로명사업에 의해 설치된 도로명판(지주 등 그 부속물을 포함한다)·건물번호판, 안내표지판, 그 밖에 도로명사업으로 구축된 전산자료, 전산시설 및 이와 관련된 부속 시설물을 말한다. 이에 따라 2011년 7월29일부터 2013년 12월31일까지는 기존 주소와 병기해 사용하다 이를 정부에서 2014년부터 전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도 구 주소와 현 주소가 공존한다. 정부에서 도로명 주소를 빨리 착근시키기 위해 새로운 주소를 부여받게 되면 도로명 주소가 없으면 행정행위를 할 수 없다. 건물이나 도로의 세부정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때가 있어 정확한 위치 파악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지자체 민원부서 주무관들은 건축 관련 민원서류가 접수되면 우선 위성위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한 인터넷 지도를 보고 건축물의 불법 여부를 확인하고 불법이 확인되면 불법을 제거하고 민원 서류를 접수하라고 통보한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가고자 하면 내비게이션이 막히는 길을 우회해 가는 길까지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도착시간까지 일러준다. 모든 자료를 입력하고 엔터 키를 치면 전산자료가 순식간에 바뀐다. 구 주소를 사용해도 모든 자료가 순식간에 저장되고 활용되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굳이 주소가 꼭 외국의 스트리트가 돼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도로명 주소 사용을 강제하다 보니 고을을 중심으로 전해지던 마을 고유의 문화가 없어질 지경이다. 행정안전부가 중심이 된 마을 가꾸기는 지방을 중심으로 활성화돼야 한다. 그러나 도로명 주소로 인해 고을을 중심으로 이어져 가던 고을의 전통과 문화가 사장될 위기에 있다.

[천자춘추] 8월의 단상

1945년 8월 광복 직후 여러 사회운동이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뜻깊은 역사는 조선적십자사의 재건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적십자운동의 시작은 1905년 고종황제의 결단으로 대한적십자사라는 이름으로 시작됐지만 이내 나라를 잃은 후 본격적인 적십자 활동은 1919년(임시정부는 이해를 대한민국 원년이라고 정했다) 8월29일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대한적십자회를 설립하면서 이뤄졌다.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의 교두보와 같은 조직으로 적십자회를 설립하면서 초대 회장(총재)에 이희경, 부회장에 안정근, 그리고 명예총재는 서재필, 고문에는 이승만 이동휘 안창호 문창범 등이 추대됐다. 임시정부의 지휘 아래 출발한 적십자운동은 곧 독립운동의 일환이었고 국제적십자사의 공인을 받아 임시정부의 국제적 지위를 확보하려는 것은 또 다른 목적이었다. 이 운동은 상하이에서 시작해 미주지역에 특파원을 파견해 지부를 결성, 일본의 식민 통치와 함께 적십자운동으로 포장한 일본적십자를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인(韓人)으로 만일 적십자회원이 아닌 자 일인(日人)과 여일(如一)하다”라며 재외교포들의 적십자운동 참여를 촉구했다. 이후 미주지역은 물론이고 캐나다, 멕시코, 쿠바, 러시아 등지에서 벌인 독립만세운동은 모두 적십자와 함께한 투쟁이었다. 1945년 8월15일 조국이 광복한 이후 국내에서 김재옥을 창설준비위 원장으로 해 결성 준비에 들어갔다. 마침내 1947년 3월16일 열매를 맺어 ‘조선적십자사’라는 이름으로 발족하게 됐다. 그해 5월28일에는 조선적십자사가 공식 출범하면서 총재에 김규식, 부총재에 안재홍, 그리고 집행위원에는 백상규 이갑수 등이 맡았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당시 적십자사는 비록 짧았지만 남북이 나뉘어 정부를 수립하기까지 남북이 함께할 수 있었던 역사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립되면서 대한적십자사도 국가적 기관으로 1949년 10월27일 새역사를 시작해 명예총재는 이승만 대통령, 명예부총재는 이범석 국무총리, 그리고 총재는 양주삼, 부총재는 변영태 유각경 등이었다. 그런데 양주삼은 일제강점기 기독교조선감리교회 초대 총리사를 지낸 이후 1930년대에는 신사참배에 앞장섰고 신도들에게 ‘충량한 신민’이 되라고 강연하며 학도병 지원을 앞장서 독려하는 등 기독교계의 대표적인 친일 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대한적십자사 초대 총재가 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역사였다. 인도주의와 세계평화를 위해 설립돼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에 섰던 대한적십자사에 양주삼 총재를 임명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받아들일 수 없는 인사였다. 독립기념관장의 임명을 놓고 사회적 물의가 빚어지고 친일파와 ‘밀정’의 득세를 우려하고 있는 역사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천자춘추] 이항 대립(二項 對立)을 넘어서

이항 대립은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가 짝을 이뤄 특정한 개념을 구현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한 개인의 성격을 생득적인 ‘본성’과 후천적인 ‘양육’의 측면에서 조망하는 방식이다. 드라마 ‘삼식이 삼촌’에서도 인생의 방향은 ‘타고난 천성’과 ‘살아온 관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이 역시 이항 대립을 통한 개념화라고 할 수 있다. 이항 대립은 현상을 군더더기 없이 정리해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현상의 이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성격만 하더라도 어디까지가 본성이고 양육인지 현실에서는 파악하기 어렵다. 또 성격은 패턴화돼 있어 같은 것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현실에서는 일관성보다 불규칙성을 보이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의 배우자나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대부분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의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워서다. 작정하고 비위를 맞추려 해도 좀처럼 맞출 수 없다. 의사든 상담자든 현실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정신건강 이슈가 성격이다. 전문가가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고 접근하면 대부분 실패한다. 당사자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를 겪고 있고, 누구보다 예민한 상태에 있어 누가 자신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게 못마땅하다. 무언가 언짢고 불편하면 좀처럼 다음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의 내면에는 극단적인 이항 대립의 로테이션 구조가 있다. ‘원하고 원망하죠’라는 노래 가사처럼 서로 다른 극과 극이 공존하면서 언제든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한다. 선과 악, 사랑과 미움, 현실과 비현실, 설렘과 낯섦, 존경과 혐오 같은 이질적 요소들의 양립과 잦은 태도 교체를 기본원리로 삼는 내적 구조는 동물의 보호색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버림받지 않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런 방식이 과연 도움이 됐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당사자가 주관적으로 이득이 된다고 믿는 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점은 당사자는 자기 내면에 이런 이항 대립 구조가 작용하고 있다는 걸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환경이나 가까운 사람들로 인해 자신이 혼란, 좌절, 패배감, 버림받는 느낌을 받고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한다. 결국 주변 환경에 대한 불만족,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이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격적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매 순간 판단하게 만드는 내적 이항 대립뿐 아니라 자신만 실재하고 타인들은 존재하지 않는 듯 관념화하는 유아론(唯我論)적 사고를 한다. 따라서 타인의 의도된 개입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예를 들면 엄습하는 생각과 감정에 거리 두는 연습(고통을 줄이기 위한 마음챙김), 같은 어려움을 가진 이들과의 집단상담(타인을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타인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는), 판단중지하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활동(천진난만한 아이들과의 놀이), 옳고 그름에 갇히지 않는 변증법적 대화(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게 하는)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천자춘추] 다양성과 포용의 산실 ‘경기도’

경기도는 고려, 조선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1천년 동안 통합과 포용이라는 특별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온 나라의 문화와 문물이 모여들고 뒤섞여 새로운 형태로 재창출되기도 했다. 특히 광복과 6・25전쟁 후 많은 외지 인구가 경기도에 유입되면서 이러한 면모가 크게 부각됐다. 광복이 되자 경기도에는 귀환동포와 월남민의 이입(移入)이 매우 많았다. 중국과 북만주 지역의 동포들이 인천항을 통해 귀국했고 이들은 해안선이나 연안을 따라 남하한 후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기도에 정착하는 사례가 많았다. 또 지방에서 계속 발생한 정치적 소요사건, 자연재해와 전염병의 창궐 역시 인구 이동을 부추겼고,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곤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공업과 서비스산업의 중심지인 서울과 경기도로 몰려들었다. 6・25전쟁 중 경기도는 피란민들의 주된 이동 통로였다. 이들 중 많은 수가 전후(戰後)에도 그대로 머물러 사는 경우가 많았다. 피란민은 주로 서울, 인천 등 큰 도시에 정착했지만 농촌지역에도 상당수가 유입됐다. 경기도는 각 지역에 난민수용소를 설치해 이들을 수용한 뒤 도내 미간척 유휴지와 간석지 등을 최대한 개발했다. 정부 역시 전황이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유엔의 지원을 받아 주택을 건설하고 피란민 정착사업으로 귀향불능 피란농민 정착 개간 및 염전사업장을 추진했다. 외지인의 대거 유입은 경기도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항으로 여러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됨으로써 풍습과 생활문화가 혼합되는 계기가 됐다. 현대 경기도의 문화적 다양성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 역시 통합과 포용의 실천이 절실하다. 빈부 격차와 세대 갈등, 지역 이기주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다문화 관련 지표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2023년 통계에 의하면 경기도의 외국인 수는 38만여명에 달한다. 도민 100명 중 3명은 외국인 주민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다양성 포용도’는 매우 낮은 실정이다. 몇 년 전 영국의 BBC 방송 조사에 의하면 한국인들은 “배경, 문화, 견해가 다른 이들에게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 관용적이냐”는 물음에 20%만 ‘매우 관용적’이라고 응답했다. 이는 27개 조사 대상국 중 26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7월 말 영국의 한 소도시 어린이 댄스 교실에서 발생한 흉기 살해 사건은 ‘범인은 무슬림’이란 허위 정보가 소셜미디어에 등장하고 극우 인플루언서들이 이를 토대로 반이슬람‧반이민 정서를 앞장서서 자극, 증폭함으로써 급기야 극우 폭력 시위를 촉발시켰다. 세계 곳곳에서 극우 세력들의 인종차별을 기반으로 한 폭력이 숱하게 발생하고 있다. 우리 역시 남의 일로 여길 수만은 없다. 경기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양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경기도가 가진 통합과 포용의 역사적 임무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 모색과 사회적 인식 확대가 필요하다.

[천자춘추] 지구 보호막 두 얼굴 ‘오존’

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열대야로 인해 ‘최고’, ‘장기화’라는 단어가 기사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최근 아침 기온이 24~29도로 평년보다 2~5도 높고 낮 기온은 30~36도로 평년보다 1~3도 높아지면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이와 함께 오존 농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존 하면 성층권의 오존층을 떠올린다. 성층권의 오존층은 피부암과 백내장을 유발하는 태양의 자외선이 지구 표면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막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 우리 건강을 지켜주는 좋은 물질이라고 알고 있다. 반면 대기오염으로 발생하는 지표면 근처의 오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와 공장에서 배출된 질소산화물, 휘발성유기화합물 등이 강한 햇볕과 반응해 발생하는 오존은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다. 햇볕이 강하고 무더운 여름에 주로 발생하는 오존은 산화력이 강해 호흡기와 눈에 자극을 주고, 심한 경우 폐 기능에도 문제를 일으키며 농작물 수확량도 감소시키는 유해한 오염물질이다. 2023년 국민환경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자의 62%가 대기질에 대해 불만족한다고 답변했으며 2023년 오존 연평균 농도는 전국 33ppb, 경기도 31ppb로 2020년 대비 각각 3ppb 증가했다. 주의보 발령일수 또한 전국 62일, 경기도 37일로 각각 16일, 10일 증가한 상황은 오존 농도 저감을 위한 대책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오존은 고농도로 발생하더라도 색과 냄새가 없어 대응에 어려움이 있지만 경기도는 도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사전 대책으로 오존 발생 원인 물질인 질소산화물과 휘발성유기화합물 관리를 위해 자동차 배출가스 단속과 유기용제 저장·사용 및 소각시설을 점검해 도심 내 오염물질 발생을 억제하고 있다. 사후 대책으로는 오존 농도가 높아지는 4월부터 10월까지 정확한 측정과 예측을 통해 오존 경보제를 운영하며 도로 살수차를 운행해 도로 온도를 낮추고 습도를 높여 오존 발생 상황을 만들지 않는 조치를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만으로는 오존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저감 대책을 행정기관에서 마련하고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스스로 대기오염 정보에 관심을 갖고 고농도 오존 예·경보 발령 시 불필요한 자동차 운행을 줄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실외 활동 및 과격한 운동을 자제하는 등의 행동 요령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고농도 오존 발생 시 행동 요령을 숙지하고 실천해 건강을 지키는 데 도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 바란다.

[천자춘추] 백락이 있어야 천리마가 존재한다

스승은 제자를 만났을 때 탄생한다. 부처에게는 아난다가 있었고 예수에게는 베드로가 있었다. 공자에게는 안회가 있었으며 소크라테스에게는 플라톤이 있었다. 위대한 스승은 위대한 제자를 만나면서 만들어진다. 추사 김정희의 명작 ‘세한도’는 충직한 제자 이상적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을 제자로 맞으면서 자신의 철학의 한계를 깨달았다. 바둑의 신이라 불리던 조훈현도 돌부처 이창호가 자신을 내리 세 번 이기며 국수의 자리에 오를 때 위대한 스승의 지위를 얻었다. ‘백락이 있은 후에 천리마가 존재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천리마는 항상 있지만 백락과 같은 마부는 항상 있지 않은 법이다. 훌륭한 준마라도 그 가치를 알아보고 정성을 들여 키울 수 있는 마부가 곁에 없다면 평범한 망아지들이 모여 있는 마구간에서 평생 여물이나 축내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말로 살다 죽을 것이다. 제자의 가치를 알아보는 것은 훌륭한 스승의 덕목이다. 때로는 채찍으로, 때로는 당근으로 제자를 부지런히 조련하고 진심으로 훈육하는 스승은 제자를 성장하도록 만든다. 천재는 하늘이 내리지만 수재는 위대한 스승이 만든다. 또 위대한 스승은 뛰어난 제자가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을 상대로 ‘삥’이나 뜯던 마이크 타이슨을 세계 복싱 챔피언으로 세운 건 커스 다마토라는 트레이너가 그의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소년원에 수감 중이던 타이슨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본 다마토는 그의 코치이자 양아버지가 돼 주기로 약속한다. 그는 혹독한 훈련과 자상한 사랑으로 타이슨을 키운다. 안타깝게도 그는 타이슨이 트레보 버빅을 이기고 헤비급 최연소 챔피언 자리에 오르기 직전 세상을 떠난다. 그는 타이슨을 두고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아주 무섭거나 치욕적인 일들을 겪는다. 그 상처들은 그들의 재능과 인성 위에 막을 한 겹씩 형성해 위대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걸 막는다. 선생으로서 해야 할 일은 그 막들을 걷어내 주는 것이다”. 세상은 커스 다마토란 이름을 잘 모른다. 오로지 타이슨의 스승으로만 기억할 뿐이다. 청출어람의 제자를 둔 스승의 숙명이란 다 그런 것이다. 파리 올림픽에서 당당히 메달을 목에 건 스포츠 영웅들의 빛나는 성공 뒤에는 어김없이 그들을 묵묵히 길러낸 스승들이 있었다. 올림픽을 보는 즐거움은 선수들의 열정과 탁월한 기량을 감상하고, 드라마 같은 승부와 승리의 명장면을 보는 것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선수들의 땀방울과 영광 이면에 스승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노고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흥미와 감동이 몇 배나 커질 것이다.

[천자춘추] 음주운전과 무등록 중개, 누굴 단속해야 할까

음주와 무면허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뉴스가 언론에서 들려온다. 애꿎은 피해자가 나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솜방망이에 불과한 처벌 소식이 보도되면 우리는 국민의 법 감정과 법원의 판결에 큰 괴리가 있다며 이제라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정부와 경찰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음주운전 단속과 함께 각종 캠페인도 강화하고 국민 누구나 손쉽게 주변의 음주운전과 무면허운전 신고를 할 수 있게 제도를 운용한다. 그런데 만약 선량한 일반운전자를 대상으로만 음주·무면허운전 단속과 신고를 할 수 있다면 효과가 있을까. 그런데 중개업계에서는 일어나고 있는 상황들이다. 부동산중개사무소는 공인중개사법에 근거한 공인중개사라는 전문자격사만이 시·군·구청에 사무실 보유 증빙서류와 실무교육 이수증을 가지고 등록해야 하는 업종이다. 지역주민들과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오래된 중개사무소는 종종 지역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담당한다. 일반적인 중개사무소라면 그 업무와 관련해 주민들과 어떠한 잡음도 없어야 할 뿐더러 인적사항이 고스란히 행정청에 등록돼 있으므로 나쁜 짓은 꿈도 꾸기 어렵다. 문제는 무면허운전자와 같이 등록도 하지 않고 중개업을 하는 무등록업자와 중개보조원, 그리고 일탈공인중개사들인데, 특히 무등록자는 실거래가 신고를 하지 않아 이들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기관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우리나라 부동산 거래의 평균 약 45%가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거래되고 있다는 점을 통해 많다는 사실을 미뤄 짐작할 뿐이다. 심지어 협회조차 조사 권한이 없어 무등록·일탈공인중개사들에 대해 신고받고 제재할 수 있는 핫라인이 없다.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당연히 정부와 경찰은 무등록업자와 중개보조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국민과 주변 중개사무소들의 제보도 받으며 관리감독에 나서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량한 대다수 멀쩡한 중개사무소만을 대상으로 각종 의무 사항만 늘리며 ‘실효적 대처’가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피해자는 결국 선량한 국민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정부와 경찰, 시·군·구청은 인력 부족으로, 협회는 단속권 부재로 손 놓고 있는 사이 우리나라 무등록업자들은 오늘도 법의 사각지대에서 국민의 재산을 노리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사무실 외부와 간판에 ‘중개’라는 글자가 없다면 정상적인 등록 중개사무소가 아니다.

[천자춘추] 양평은 새로운 관광지다

용문산은 산세가 웅장한 산이다. 한반도의 주요 대간, 정맥들에서 벗어나 별개의 단독 산군으로 존재하고 있다. 악(惡)자가 들어가지 않은 악산이 용문산이다. 용문산 정상 가섭봉은 실제 높이 1천157m, 서울 동쪽 42㎞ 지점에 위치해 광주산맥에 속하지만 독립된 산괴로 본다고 한다. 산체가 웅대해 동서 8㎞, 남북 5㎞에 걸쳐 존재하고 있다. 이를 향토사학자 이복재는 용문산맥이라고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청운면 용두리(용머리)에서 시작해 용문을 지나 곤지암 가는 열미가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있다. 용문산 밑에는 도도히 흐르는 남·북한강이 있다. 강원도 태백에서 출발해 충북과 여주를 거쳐 375㎞를 흐르는 남한강과 북한 쪽 강원도에서 출발해 화천, 춘천, 청평을 지나 두물머리를 향해 내려오는 482㎞의 북한강이 있다. 이렇게 거대한 용문산 아래를 흐르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어우러져 있어 가히 산자수려라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강 중 팔당상류라서 수도권 1천700만명에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한 철통같은 이중, 삼중 건축규제로 인해 서울 가까이에 있는 도시이면서도 옛날 자연과 같은 풍광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생태계가 잘 보전돼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물머리요, 세미원이 발생한 것이다. 이렇게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생태적 환경을 두물머리를 중심으로 한 서부권역, 양평과 용문사를 중심으로 한 중부권역, 여기에 전국적으로 의병이 최초로 일어났던 양동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역으로 나누어 생태관광코스를 조성해야겠다. 그중 핵심은 숙박관광이다. 가족 중심 또는 단체 위주로 양평 전역에 퍼져 있는 펜션을 중심으로 숙박관광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직은 관광객을 맞이하기에 부족한 시설들이지만 운용하면서 점차 개선해 나갈 일이다. 당일치기 여행보다 숙박관광이 통상적으로 세 배의 효과가 있다고 하는 게 일반적인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은 수학여행지로 경주를 꼽고 있었다. 거기에는 불국사를 비롯한 신라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점차 바뀌어 옛날 같으면 전통적인 고궁이나 건축물이 없는 우리 양평은 관광명소가 없어 관광지로 꼽힐 수 없었다. 전통적인 고궁들은 한두 번 가보면 금방 싫증나기 십상이나 자연을 벗 삼아 하는 관광은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생태관광이다. 전통적인 고궁관광은 몇 번 가면 한계가 나타나지만 생태관광은 보면 볼수록 재미가 더해진다.

[천자춘추] 박물관의 ‘내 집 짓기’

누구나 내 집을 원한다. 작가도 큐레이터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작품, 큐레이터는 전시가 내 집이다. 세상에 수많은 작품과 전시가 있지만 내 집다운 내 집이 드물다. 철학과 시대, 사회를 관통하는 주제 설정의 적확성이 관건이다. 죽자 살자 작품과 전시를 만들지만 왜 만들었는지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으면 실패한 집 짓기가 된다. 특히 큐레이터는 작품과 유물로 캔버스 대신 전시장이라는 공간을 경영해 내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작가다. 여기에는 주춧돌, 대들보, 기둥 같은 논문과 도록이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이를 토대로 도면이 그려지고 전시라는 내 집이 만들어진다. 문제는 이것이 전시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관객이 물밀듯이 밀려와 즐기고 놀 때 내 집은 완성된다. 그래서 전시는 박물관의 잔치이고 축제다. 경기도박물관의 현실은 이와 반대다. 사실상 집안 잔치에 머무르고 있는데 외국은 고사하고 서울과 지방 손님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2023년 관객은 11만9천명인데 400만명을 헤아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40분의 1 수준이다. 1천400만 도민의 문화지표를 100이라 했을 때 10에 해당한다. ‘경기’에 이미 ‘’경(京)’과 ‘기(畿)’가 한 몸임을 감안하면 2천400만 수도권 인구의 0.5% 수준이다. 이는 3만5천달러 경제선진국이지만 여전히 3천500달러 문화후진국임을 입증한다. 여기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은 해묵을 대로 묵어 누구나 다 아는 절대 인력과 예산 부족, 그리고 재단 예속에 따른 기획시스템의 와해로 모아진다. 재단 산하 8개 뮤지엄의 독립 문제만 해도 관장 취임 7개월 동안 이구동성으로 귀가 따갑도록 들었고 7월12일 개최된 박물관운영자문위원회에서도 어김없이 거론됐다. 실제 해법으로 의원 발의나 도지사 직권의 조례 개정을 통해 현재 도자재단의 뮤지엄재단 확대 개편안이 최종 결정 단계에서 무산됐다고도 했다. 하지만 뮤지엄재단 독립 이전에 뮤지엄 스스로의 선결과제가 있다. 경기도박물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No2 박물관 위상에 걸맞은 독자 브랜드의 전시라는 내 집 짓기와 마케팅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인공지능(AI)과 기후변화로 인류와 지구 차원의 문명 대전환기가 아닌가. 국내적으로도 인구절벽과 고령인구 1천만 시대다. 지금이야말로 박물관은 위기이자 더 큰 도약의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경기도박물관은 전례 없는 문화전쟁에서 핵보다 더한 힘을 가진 박물관만의 유물을 재해석해낸 ‘전시X영화X학술’을 관통하는 프로그램을 발명 중이다. 이를 통해 도민과 세계인의 즐거운 놀이터로 탈바꿈하고자 용쓰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박물관 외부의 모든 문제가 해결돼도 허당을 벗어날 수 없다. 경기도박물관은 경기도에 국한된 박물관이 아니다. 고려 조선의 사대부 삶과 민속은 물론이고 주먹돌도끼부터 DMZ까지 종횡하는 한국문화의 정체성과 세계성을 생각하면 존재 자체부터 국립박물관과도 성격을 달리한다. 경기도박물관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면 경기는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참된 의미의 정치경제 도약의 기회도 없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복지가 화두인 시대의 진정한 민생 문제는 먹고사는 시장과 보고 듣는 박물관을 동시에 챙길 때 해결된다. 문예와 정치 경제는 선진 경기와 대한민국의 양 날개다.

[천자춘추] 한 시간만 자고 일어날게

비행기가 떠오를수록 시야는 점점 넓어진다. 작은 창으로 멀어지는 지구가 한눈에 들어오는 듯 밤 풍경은 빛으로 디자인한 듯 아름답고 황홀하기까지 하다. 중국이나 러시아, 동남아 쪽이 깜깜 어둠일 때 전 국토가 황홀인 대한민국은 역시 멋진 나라야, 으쓱할 때도 있었다. 10여년 만에 다시 본 라오스 밤 풍경의 변화가 정말 놀라웠다. 지구 환경을 생각하면 금세 안타까운 마음으로 돌아선다. 태양과 함께 눈 뜨고 태양과 함께 잠들어야 몸이 순해진다. 자연의 일부인 몸이 자연의 이치를 따라야 건강한 삶을 살듯 지구도 밤이면 칠흑의 방전 시간이 필요하다. 환경오염에 관해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잦은 산불을 포함해 과다한 불빛은 기온 상승의 요인이고 지구의 휴식을 방해한다. 병든 몸은 잠이라는 회복의 시간이 절대 필요하고 잠의 방해 요소인 불빛은 최소한이어야 한다. 환경단체는 4월22일을 지구의 날로 정하고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일제히 소등의 시간을 갖자는 연중 ‘어스아워(Earth hour)’ 캠페인을 벌인다. 비스듬히 서서 훌라후프처럼 나를 회전시키는 게 루틴이야 널 등지면 돌아가 눕겠거니 했는데 너의 잔상으로 몸은 영영 식지 않았어 너만 사랑해 너의 웃음을 너의 에너지를 너의 찌푸림까지 변치 않는 열정도, 네가 분사하는 폭 양도 웃음으로 받아낼 수 있어 그러나 너까지 싫어질 만큼 너를 복사하는 것들 역겨워 눈 감고 바닥에 귀대고 대지 소리 자장가 삼아 잠들고 싶어 암막 커튼치고 죽은 듯 자고 일어날게 - 졸시, ‘한 시간만 자고 일어날게’ 과다한 불빛이 아니어도 지구는 각종 오염의 부스럼을 앓는다. 니체는 인간을 지표면에 붙어 지구를 갉아먹고 사는 벌레라고 하는데 오염된 사과는 껍질을 벗기거나 도려냄으로써 그 부위가 제거된다. 하지만 지구는 사각사각 벗겨내거나 오염 부위의 나라를 통째로 도려낼 수는 없지 않은가. 외부 환경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생명체는 지구라는 행성을 탈출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지구가 폭망의 길을 걷는다는 느낌은 있다. 12시가 지구 종말의 시간이라면 현재의 시간이 11시59분이라니 무언가 아슬아슬하지 않은가.

[천자춘추]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선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달러를 넘어서고 있지만 경제성장 및 도시화 과정에서 소외된 노후불량주거지 등 취약지역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대유행, 기후변화에 따른 폭우, 폭염, 한파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삶의 질, 안전, 위생 등이 문제되는 취약지역 생활환경 개선이 절실하다. 노후불량주거지의 대표적 정비수단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의한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있으나 국비 지원 2단계 사업(2005~2013년)이 종료된 후 현재 국비 지원이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주거지 정비는 공백이 발생했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지방시대위원회(당시 지역발전위원회)는 2015년 신규 사업으로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을 마련하고 2024년 현재까지 도시 169개소와 농어촌 637개소 등 총 806개 취약지역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은 취약지역 주민들이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안전, 위생 등 긴급한 생활인프라 확충 및 주거환경 개선, 노후·위험주택 정비, 일자리·문화·복지 등 휴먼케어사업, 주민역량 강화 등을 지원하는 종합적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국토교통부는 도시지역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는 농어촌지역에서 대해 사업운영관리를 하고 있다. 현재 추진 후 10년째 접어든 사업은 해당 지역 주민 및 지자체의 호응과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시지역의 사업을 보면 민간기업, 지역공공기관 등의 사회공헌 활동과 연계해 사업대상지 내 집수리, 주민돌봄사업, 사회적경제 육성사업, 지역문화사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연계체계를 발전시켜 한정된 재정지원사업을 보완하고 전국 취약지역의 물리적·사회경제적 생활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민관협력의 종합적 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주거지 정비에 있어 기존 법제도에 의한 도시정비사업, 도시재생사업 등에서 소외된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지역에 대한 면밀한 현황 파악을 통해 사업 대상 및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소외돼 있던 취약지역 주민들의 생활여건 개선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천자춘추] 문화와 기업의 ‘아름다운 만남’

세상에는 여러 만남이 있다. 친구로서, 연인으로서, 때로는 비즈니스 관계로 만날 수도 있다. 어느 만남이든 서로를 잘 이해하고 돕는 관계가 돼야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 문화와 기업의 만남도 같다. 인간의 정서적 미학을 추구하는 예술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활동은 추구하는 목표가 전혀 다르지만 오늘날 기업과 예술의 만남은 ‘창조적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상호 보완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예컨대 기업은 조건 없는 문화예술 지원 활동을 통해 시민 삶의 질을 높임으로써 사회에 공헌하고 기업 이미지를 좋게 함으로써 수익 창출에 도움을 준다. 즉, 문화예술에 기울이는 관심과 지원은 기업에도 중요한 마케팅 전략이 되는 것이다. 기업이 후원회, 문화재단, 협회 등을 통해 창작, 공연, 전시 등 문화 활동 전반에 걸쳐 지원하는 것을 ‘메세나(Mecenat)’라고 한다. 메세나에 참여하는 기업은 사회적 기부로 인정돼 소득세, 법인세가 감면되고 문화와 기업이 상생 발전할 수 있다. 기업이 앞장서 ‘하우스 콘서트’나 ‘초청 공연’, ‘사내갤러리’ 또는 ‘청소년 꿈나무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금호그룹은 ‘금호아시아나 문화재단’을 통해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한다. KT&G는 ‘상상 마당’이라는 문화예술 프로젝트로 젊은 예술인들의 창작활동과 문화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문화 확산도 메세나 운동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기업이 문화와 만나면 지역 문화생태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전문 공연장에서 열리는 대규모 이벤트보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고 자연스럽게 모이는 장소를 택해 ‘작은 음악회’나 ‘테마 전시회’를 열면 시민들로부터 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기업체 사옥이나 마트, 전철역 어디든 좋다. 거리나 공원을 중심으로 즉흥 연주를 통해 시민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버스킹(거리공연)에 기업이 동참하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다. 이처럼 문화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좋은 투자수단이다. 문화예술인과 기업인의 ‘아름다운 만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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