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브랜드 네이밍’의 중요성

브랜드 네이밍(작명)의 중요성이 마케팅의 성공 요소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인천의 주요 기관 명칭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2016년에는 인천테크노파크와 인천경제통상진흥원, 인천정보산업진흥원 등 3곳의 기관이 통합하면서 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이 이상한 명칭은 무려 3년 동안이나 쓰이다가 2019년 인천테크노파크(인천TP)로 바뀌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특히 종합이 들어가는 기관명도 다수가 있다. 지난 2016년 공모를 통해 확정된 인천문화예술회관은 원래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이었다. 종합 하나 빼려고 공모를 했느냐는 지적도 많이 받았었다. 현재 대다수 시민들은 인천예술회관으로 부르고 있고, 인천도시철도(지하철) 1호선의 지하철역 명도 예술회관이다. 또 아직도 종합이 들어간 기관명으로는 인천종합비즈니스센터, 인천종합건설본부가 있다. 이와 비슷하게 복합이라는 명칭을 붙인 청라복합문화회관도 있다. 이들 모두 종합이나, 복합이라는 단어를 빼도 의미전달에 전혀 이상이 없다. 또 다른 사례로는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있다. 정식 명칭은 인천광역시교육청학생교육문화회관이다. 예술회관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이 명칭 그대로 부르는 사람은 없다. 교육도 하고 싶고 문화도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차라리 인천학생회관이라고 하면 짧아서 부르기도 좋고 표기도 쉽지 않을까 싶다. 인천지역의 네이밍 우수사례로 작은도서관을 들 수 있다. 하늘나래작은도서관, 햇살둥지어린이도서관 등 이름만으로도 작고 귀여운 느낌을 주는 작은도서관이 무려 312개나 존재한다. 각자의 특성과 개성을 잘 나타내는 이러한 네이밍의 작은도서관들을 다른 기관들은 작명 시에 참고할 만하다. 또한 최근 미추홀참물의 새 이름으로 선정된 인천하늘수는 네이밍 선정과정에 눈길이 간다. 공모형식으로 이루어져 인천 수돗물 브랜드공모 심사위원회와 시민정책자문단의 심사를 거쳐 7개를 선정하고 온라인현장 투표에서 3개로 압축했고, 시민시장 대토론회에서 인천 하늘수를 최종 선정했다. 누가 정한 것인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기관명과 대비되는 정성이 보인다. 네이밍 자문을 위한 브랜드 자문위원회 설치도 고려해 볼만하다. 그동안 가끔 전문가 자문을 구한 일도 있으나, 상설 자문기구를 두어 수시로 조언을 받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조영홍 인천대학교 융합예술영재교육연구소 초빙연구위원

[천자춘추] 겸손과 도전 정신 속에 빛나는 ‘깐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역으로 열연한 오영수 배우가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한국 최초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인생 최대의 전성기 앞에서도 겸손함으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평정심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마음가짐, 우리 사회가 1등 아니면 안 될 것처럼 흘러갈 때가 있어요. 2등은 1등에게 졌지만 3등한테 이겼잖아요. 다 승자예요라고 밝힌 어른께 국민은 박수를 보냈다. 그는 우린 깐부잖아라는 대사가 유행하여 광고 제의를 받았지만, 온 힘을 다해 연기한 깐부는 작품에서 중요한 단어이기에 작품의 의미를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광고제의를 거절했고, 승자와 패자도 없고, 네 것과 내 것도 없는 것이 깐부 정신이라며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유형의 갈등 해결에 꼭 필요한 정신이라고 밝힌 바 있다. 60년간 연기를 통해 200명의 인생을 살아본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그냥 하는 것이다. 자신감이 제일 앞에 있어야 할 것 같다며 도전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죽음 문턱까지 가보니 진정한 승자는 돈과 명예보다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이라며 일을 통해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삼으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人生到處知何似 應似飛鴻踏雪泥(인생도처지하사 응사비홍답설니). 인생은 도처에서 무엇과 같은지 아는가? 마땅히 날아가는 기러기가 눈밭을 밟는 것과 같다. 대배우 오영수의 살아온 발자취와 신념을 보니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한 소동파의 시가 떠오른다. 오영수 배우의 겸손과 도전 정신이 뿌리가 내려 한류 콘텐츠를 바탕으로 K-문화는 한국 경제와 국가 브랜드 자산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김재현 ㈔한국문화스포츠마케팅진흥원 이사장

[천자춘추] K-ESG 가이드라인과 관련한 우려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ESG(환경, 사회, 거버넌스) 열풍을 대변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정부 차원의 ESG 촉진 정책이다. 지난 12월 정부는 총 61개 진단 항목으로 구성된 일명 K-ESG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발표했다. 우리 기업의 ESG 초기 진입 부담을 완화하고, 공시 활성화를 위해 범부처 합동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고 한다. ESG 경영에 관심은 많지만 어떻게 ESG 경영을 준비하고 평가에 대응해야 하는지 몰라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중소기업 및 조직은 이번에 발표된 가이드라인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 차원에서 발표한 가이드라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이나 시장의 혼란이 우려스럽기도 하다. 또한 이번 가이드라인을 기반으로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 등 공공부문의 활동과 유관부처에서 향후에 내놓을 ESG 정책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도 걱정스럽다. ESG를 가이드라인이 제시하는 몇 가지 항목으로 규정해서 추진하다 보면 ESG 성과 창출 방법의 획일화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ESG 성과 창출보다는 좋은 점수(평가) 받기에 몰두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ESG 성과를 경제적 성과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보거나, 체크리스트 관리 차원의 편협한 시각으로 바라보면, 조직 경영과 경제 전반을 바라보는 전략적이고 통합적 관점을 유지할 수 없다. 조직의 궁극적인 목표나 목적은 누가 뭐래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확보다. 조직 운영에 ESG를 고려하는 것 또한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목적 달성을 위한 것이다. 조직 운영, 특히 기업 경영은 상황 특수성(Situation-specific)이 매우 강하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을 고려하고, 조직이 가진 자원을 전략적으로 배분해, 성과 창출을 극대화해야 조직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다. ESG 경영을 전략적으로 추진한다는 것은 여러 ESG 이슈 중에서 조직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에 대한 우선순위과제(Priorities)를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개별 조직은 모든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겠다는 허황된 꿈을 버려야 한다. 전략이 없거나, 전략이 있더라도 백화점식 전략체계를 가지고 있는 조직은 모두가 내 고객(Selling to Everyone)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특정한 조직이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잘하는 것, 우리가 하면 사회적인 효과가 큰 것에 집중하는 것이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에 기여하는 것이며, 이해관계자와 사회가 우리 조직에 바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현 신한대 글로벌통상경영학과 교수

[천자춘추] 심의제도에 관한 생각

지난해에 건축 허가 및 개발행위 허가와 함께 의제로 접수했던 건이 도시계획 심의 과정에서 재검토로 통지됐다. 지난 심의에서도 건축사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이유를 들어 재검토 의견을 받은 상태였다. 나름대로 보완해 접수했기에 내심 기대를 했지만, 결론은 참담했다. 검토 의견을 보면 법률적인 부분보다는 사용자로서 바라 본심의 위원들의 생각이 내용의 주를 이뤄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다. 건축사로서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기준을 가늠할 수 없기에 더 답답하다. 그렇다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제도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이나 규칙으로 규정되지 않은 사안으로 제출된 도서 검토를 하게 되면 정해진 툴이 없어져 피해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현재 국토부에서는 심의 규정을 두고 정해진 분야에 대한 검토와 근간을 흔드는 심의는 자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축 관련 심의제도가 정당한가?라고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의도는 정당할지라도 제도의 문제점은 존재한다. 예측 불가능한 상태에서는 사업주가 사업을 시행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사업주와 사용자가 공존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필자가 건축을 시작한 40년을 돌아보면 예전에는 예측할 수 있었지만 요즘처럼 심의와 행정절차의 다양성 덕분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사업 시행 여부를 결정하기가 어려운 지경이다. 토지 구매 후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건축허가에서부터 착공시점까지 1년 이상 소요된 경우가 부지기수다. 심의제도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계속될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각종 심의위원회별로 인적 구성을 살펴보면 건축, 경관, 조경, 시공, 토목, 교통, 환경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50% 이상은 대학교수들이 자리를 차지한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도시계획심의위원 구성 시 실정을 잘 아는 지역 전문가를 배제해 위촉하고 있다. 하나의 건축물을 심의하는데 각 분야의 심의에서 각기 다른 심의위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수정하다 보면 전에 시행했던 심의와 다른 부분이 많이 발생하게 된다. 이는 고스란히 사업주에게 시간적, 금전적 손해로 가게 된다. 세월이 흐르며 민원인들의 요구가 다변화되고 있다. 각종 법안, 규제들이 생겨 관련 공무원들도 늘어나고 이에 따른 심의가 생기는 부분은 이해되지만 중복된 심의가 되지 않도록 검토하고 노력해야 한다. 근본적인 목적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안의 범위에서 중복된 전문가들의 의견은 통합 심의를 함으로써 사업주들의 고충을 덜어 줄 수 있도록 심의제도 개편을 해야 한다. 앞으로는 법 위에 군림하는 심의제도는 지양돼야 한다. 정내수 경기도건축사회 회장

[천자춘추] 우는 자와 함께 울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대리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다. 전자는 사건, 사고의 당사자가 갖는 심리적 어려움을 말하며 후자는 당사자는 아니지만, 그 현장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자가 겪는 심리적 어려움을 말한다. 간접경험이 스트레스 장애로 나타날 때 이를 대리외상(Vicarious Trauma)이라 하는데, 주로 경찰관이나 소방관, 간호사, 의사, 응급실 의료행위자, 심리치료사 등에게서 나타난다. 일반인도 반복되는 영상이나 관련 뉴스에 장시간 무차별적으로 노출되면 유사한 형태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망실종자 가족들이 PTSD를 겪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오천만 국민 모두 대리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하루에도 수천, 수만 건의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어떤 이들은 그 모든 일이 다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잘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거라고 위로하려 한다. 그런 말이 무슨 위로가 되겠는가. 설령 위로를 받는다 하여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이기에 위로를 받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거나 정말 그 뜻을 이해해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성경은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했다. 말이 필요 없다. 장황한 설명이나 미사여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슬픔을 당해 괴로워하며 심한 고통 속에 있는 자를 부둥켜안고 울어주라는 것이다. 망연자실 주저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껴안고 어깨를 토닥이며, 뜨거운 눈물로 젖어 있는 내 얼굴을 그들의 얼굴과 손등에 비비며 소리 없이 있어 주면 그만이다. 절망과 좌절의 사람들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들의 슬픔에 들어가 함께 울어준 자들의 눈물이다. 여전히 우리 주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들을 향한 눈물이 마른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 어쩌면 다음은 내 차례라고 생각하며 겸손하게 다가가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자.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되자. 고명진 기독교한국침례회총회장

[천자춘추] 우리 軍에 대한 기대와 희망

연초부터 북한에서는 연일 극초음속 미사일을 포함한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군 지휘부에서는 도발은 아니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미사일 날아가는 하늘에 대고 평화만을 외치는 황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새해 벽두 1월1일에는 강원도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을 넘은 월북자로 인해 군의 경계태세와 기강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에 점프 귀순으로 경계 태세에 대한 허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바로 그 당사자가 다시 유사 경로로 월북한 것이다. 군 수뇌부는 2021 연말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지난해 헤엄 귀순을 계기로 전방의 엄정한 작전기강 확립 등을 통해 경계작전태세의 완전성을 제고 했다고 스스로 평가했는데 모두 헛소리에 불과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최후의 보루인 군에 대한 기대와 신뢰는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러나 지난 4일 공군 F-35A 최첨단 스텔스 전투기가 착륙장치 이상으로 동체 착륙한 일이 있었다. 비행 중 갑자기 조종간과 엔진을 제외한 모든 장비가 작동하지 않았다. 조종사 배 소령은 서산기지에 비상착륙하겠다고 보고하고 서산기지로 향했다. F-35A 기지는 청주다. 서산기지는 바닷가에 있어 도시와 가까운 청주기지와 달리 인적이 드문 기지이다. 배 소령은 해안선을 보면서 비행하면 전투기가 추락하더라도 내륙에 떨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어 국민의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서산기지를 선택한 것이다. 조종사는 바다로 기체를 포기하고 비상 탈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배 소령은 자신의 생명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동체 착륙을 선택한 것이다. 그동안 훈련을 통해 쌓은 강한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위험을 피하면서 천억여원에 달하는 국가 재산을 지키겠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어서 지난 11일에는 임무 수행을 위해 F-5E 전투기가 이륙하던 중 추락한 일이 있었다. 조종사 심 대위는 탈출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과 100m 떨어진 민간 주택가에 추락을 피하고자 끝까지 비상탈출을 하지 않고 조종간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동체착륙을 성공한 배 소령의 놀라운 능력과 군인정신, 자신의 생명까지 포기하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먼저 생각한 29세의 심 대위의 희생과 헌신을 보면서 그동안 절망적인 것만 보여주던 우리 군대의 모습 속에 한 줄기 기대와 희망이 있음을 볼 수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안타깝게 산화한 고 심 소령에게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각별한 경의를 표한다. 김진형 숭실대학교 정보과학대학원 겸임교수예)해군제독

[천자춘추] 말하지 않는 것들_탈성장

기후위기는 평균기온만의 문제는 아니다. 산업혁명으로 증폭된 자본주의 성장신화가 자연의 거의 모든 것을 전유하고 상품화해서 대량으로 생산하고 소비하고 빠르게 폐기하는 대량생산소비시스템을 구축해가는 과정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통해서 더 멀리 더 깊숙이 자원의 전유를 강화하면서 필연적으로 동행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생태계 위기, 인간 자신을 포함한 생물종 전체의 생존 위기의 총합을 말한다. 이 시스템은 역사 이래로도 오랜 전통도 없고 전승의 기록도 매우 짧다. 좋은 삶을 위한 필요 때문에 조직된 것도 아니고 이 길이 아니면 인류가 생존할 수 없는 필연의 길도 아니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사회도 문명도 지속 가능하지 않고, 문명의 기회를 준 온화한 지구의 균형도 붕괴되면서 영구적으로 다른 균형을 찾아갈 것이다. 거기에 최상위 포식자 인류의 자리는 없다. 더 문제는 그 시점이 매우 빠르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성장의 덫에 갇힌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무엇이, 누가 우리를 이 덫으로 몰아넣었는지도 각성하자. 세계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우리나라는 90% 이상이 도시에 산다. 우리나라 도시는 대부분 주택상업지구와 산업지구, 거기에 에너지와 자원을 공급하고 폐기물을 처리하는 기초인프라로 구성된다. 도시를 가득 채운 아파트와 건물들에는 전기, 가스, 난방이 자동으로 공급되고 가전제품들로 가득하다. 대형 냉장고 안에는 먼 곳에서 생산된 식료품들이 가득하고, 도시는 발길 닿는 곳마다 생활 편리를 돕는 상품들로 가득하고 도로에는 화석연료를 가득 채운 자동차들로 가득하다. 가족과 마을이 감당하던 노동도 더욱 분업화된 생산소비사회로 흡수되고 다른 시민들의 노동으로 대체됐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나에게 오는 거리가 멀어지면서 노동도 멀어졌지만, 그 거리만큼 더 타인의 노동과 화석연료에 더 기대어 산다. 소비는 생활 필요에서 허위와 장식으로 과잉되고 있다. 더 많은 상품을 소비할수록 더 많은 타인의 노동을 만나고 더 많은 나의 노동에서 도피한다. 시민들은 생활에 필요한 상품을 구매할 화폐를 얻고자 자신이 유일하게 소유한 노동을 판매하면서 스스로 상품이 되어간다. 성장의 덫은 생존을 위한 필연이 아니기에 우리는 더 좋은 삶으로 탈출할 수 있다. 경제의 모든 부문들이 언제나 성장해야 한다고 전제하는 대신에, 우리는 좀 더 현명한 접근을 해야 한다. 경제의 어떤 부문들이 여전히 확대가 필요하고, 어떤 부문들이 사회적 필요성이 적으며 축소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적을수록 풍요롭다. 제이슨 히켈. 2021) 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천자춘추] 용장이 필요한 시기, 영웅들을 기린다

정초 발생한 F-35A 전투기 동체착륙과 F-5E 전투기 추락 등 2건의 사고는 놀랍고 안타깝다. 일촉즉발 상황에서 애기(愛機)를 살리고 비상착륙에 성공한 조종사의 군인정신도 놀랍지만, 민가를 회피하여 야산에 추락한 젊은 조종사의 죽음은 너무 안타깝다. 우리는 군인에게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죽음마저 불사하는 투혼과 헌신의 보편적 자질을 기대한다. 이는 군인의 모든 활동은 전쟁억제의 수단으로서 국토를 방위해야 하는 국가안위의 최후 보루라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가 계속될수록 군인의 애국적 열정이 점차 세상의 동기에 더 가려지고 있어 지금 이 기준은 여전히 군인정신을 정의할 수 있는 충분한 기준이 되는가 하는지는 의문이다. 사실 우리 군은 그동안 꾸준한 변화와 혁신의 노력에도 오히려 각종 사건사고와 군 기강 해이 문제로 국민에게 많은 걱정을 안겨주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DMZ 철책 월북으로 군의 무능이 국민의 심한 질타를 받기도 했다. 현대사에서 80년대 초의 정치 혼란기에는 일부 군인들의 정치 참여 행위가 국가와 국민의 이해에 상치되어, 이들과의 싸움과 민주화가 시대의 과제였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서해교전과 천안함의 용사들, 북한의 백령도 포격도발 시 장병들의 헌신적인 군인정신과 용기를 국민은 결코 잊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된 군인정신은 이제 무덤에 묻어야 하지만, 보편적 군인은 칭송해야 한다. 어쩌면 국민의 격려로 높아지는 군의 사기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보다도 더 소중하다. 나폴레옹은 전쟁에서 군인의 사기와 정신력은 4분의 3을 차지하며, 수적 요소는 단지 나머지 4분의 1일 뿐이다라고 했다. 새해가 왔다. 하지만 우리의 안보상황은 아직은 예단하기 어렵고 불투명하다. 북한은 여전히 도발적이다. 연초부터 보란 듯한 세 번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는 이례적이다.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해 임기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한 약속은 무색해졌다. 더 이상 전쟁이 없고,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는 것은 모두의 목표이며 열망이지만 남북 간 평화공존을 위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를 지키는 국방력임은 당연지사이다. 힘의 축적 없는 평화는 허상이다. 안보가 정치의 도구로 전락되어 한낱 백가쟁명식 논란으로만 그치지 않고, 분단조국의 하늘과 바다, 땅을 지키기 위해 산화해간 영웅들의 희생과 용기를 기억해야 한다. 그저 상상 속에서 전쟁을 그리며 군사적 옵션을 이야기하고, 평화를 기대하고 있다면 그것은 너무 책임 없는 자세이다. 한국은 지금 사기충천한 용사와 지혜로운 용장(勇將)이 필요한 때다. 국가를 위해 순직한 수많은 영웅과 유족을 기린다.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 호원대 법 경찰학과 교수

[천자춘추] 포·모·털-퓰리즘에 관한 소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올린 이재명은 뽑는다고요? 노(No) 이재명은 심는 겁니다는 밈(meme), 즉 짧은 영상이 세간에 흥미와 재미를 주며 회자됐다. 이 밈에 대해 탈모인과 20~30대는 폭발적으로 반응했고,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을 둘러싼 논쟁으로 확전됐다. 국민의힘은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은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니, 더 위중한 질병에 지원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대중을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포퓰리즘(populism), 모(毛)퓰리즘, 털퓰리즘으로 규정했다. 포퓰리즘의 등장은 대중의 불만과 고통을 기성정치권이 외면할 때 발생한다. 포퓰리즘이 옳다 또는 그르다 논쟁 이전에 우리가 발견해야 할 것은 대중의 불만과 고통이다. 그래서 필자에게 탈모약 논쟁은 이번 대선에 있어 가뭄의 단비 같은 청량제였다. 국민의 불만과 고통, 고충을 주제로 전개되는 정책 논쟁은 삶의 변화와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것을 포퓰리즘으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매우 포퓰리즘적이다. 그렇다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제안한 자영업자 50조원 지원은 포퓰리즘이 아닌가? 이재명 후보가 제안한 임기 내 병사 임금 200만원 보장 공약과 유사한 윤석열 후보의 짧은 SNS의 글 병사 봉급 월 200만원, 그것도 집권 즉시 실행이란 공약은 포퓰리즘이 아닌가? 정치학에서 정체성의 정치는 국가권력 획득을 목적으로 민족, 인종, 종교의 정체성을 활용해 유권자를 동원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이는 배타적 정체성에 기초, 대중의 편을 가르고 상대 진영을 혐오ㆍ증오하게 함으로써 지지층을 확보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극우정당이 제3정당으로 등장하게 된 배경이 바로 대중의 불만과 고통을 외면했던 기성 정당의 정당성의 하락에 따른 것이었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우려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해시태그 멸공 논란에서 시작, 윤석열 후보의 달2022파2022멸2022콩과 나경원 전 국회의원의 멸공! 자유!, 문파멸공이라 자세히 해석한 김진태 전 국회의원의 멸공캠페인까지, 이것이 바로 이념으로 진영을 나누는 정체성 정치의 시작이다. 국민의힘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통한 20대 남녀 편 가르기, 멸공캠페인을 통한 이념으로 좌우 편 가르기, 뒤이어 지역(그 전조는 여수멸치)으로 영호남을 편 가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 같다. 20세기적 향수(鄕愁)로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없다. 제발 시대의 변화와 유권자의 의식수준에 맞는 선거운동 실행을 바란다. 김종욱 동국대 행정대학원 대우교수

[천자춘추] 구리시, 망우리공원 가슴에 담을 때

망우리공원은 1933년 일제강점기 경성부립공동묘지에서 출발을 한다. 일제는 1912년 묘지, 화장장, 매장 및 화장 취체 규칙을 제정하고, 1920년을 전후해서 경성부립공동묘지를 도성 밖 다섯 곳에 조성한다. 광희문 밖 신당리와 수철리(지금의 금호동), 서대문 밖 아현리와 신사리, 남대문 밖 이태원 등으로 총 52만평에 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태원과 신당리가 가득차자 대체지로 고양군 은평면 홍제내리와 고양군 숭인면 길음리가 선정됐다. 1930년대에 들어서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늘자 경성부는 택지조성에 박차를 가한다. 이태원공동묘지가 택지로 포함되자 1931년 4월부터 묘지 사용을 금하고, 천장지로 망우리와 미아리를 택정했다. 경성부는 1933년 경기도로부터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 일대의 임야 75만평을 무상으로 매입하고는 52만평 규모의 묘역을 조성한다고 공표했다. 1933년 6월10일 드디어 망우리공동묘지의 시대가 열렸다. 이후 도산 안창호만해 한용운소파 방정환호암 문일평위창 오세창 등 독립유공자와 우두를 도입한 지석영,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설의식, 김상용계용묵김말봉최서해박인환 등 문인과 이인성이중섭권진규 등 미술가 등 근현대 선각자 60명이 이념과 함께 이곳에 묻혔다. 1973년 4만7천기로 만장이 되자 공동묘지로서의 역할을 마친다. 현재는 6천7백여기가 남아있다. 망우리공원, 망우리사색공원, 망우리인문학공원, 망우리역사공원으로 이름이 바꾸면서 근현대 인문학 보고로 우뚝 서있다. 이 공원은 구리시와 서울시 중랑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주요인물 중 3분의 2가 구리시에 속한다. 등록문화재 9기 중 6기, 기미독립만세운동 33인 중 3인의 묘역이 구리시 교문동에 주소를 두고 있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중랑구는 휴게시설과 가로등, 화장실은 물론 산책로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만 구리시는 앉을 의자도 부족한 상황이다. 중랑구는 작년에 망우리공원과를 신설해 체계적인 관리에 들어갔고 종합안내소도 준공을 앞두고 있다. 반면 구리시는 어떠한가. 시 소속 문화관광해설사들이 머물 곳도 탐방시설도 편의시설도 소원(疎遠)할 뿐이다. 망우리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설화에서 태조가 죽어서 묻힐 건원릉 터를 얻고서는 근심(憂)을 잊었다(忘)해 만들어진 지명이다. 묘역을 돌면서 근심이 늘어나는 것은 왜일까. 구리시는 한때 고구려를 두고 광진구와 역사전쟁도 겪었다. 이를 뼈아픈 기억으로 삼고 망우리공원을 가슴에 담을 때다. 한철수 시인ㆍ구지옛생활연구소장

[천자춘추] 버츄얼 캐릭터가 열어갈 메타버스 시대

최근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CO) 예술기술 융합 연구자로 선정돼 버츄얼 캐릭터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버츄얼 캐릭터는 최근 부캐 열풍과 함께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AR가면을 사용하는 버츄얼 유튜버부터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가상인간까지 버츄얼 캐릭터 생태계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5년 14조원 규모로 버츄얼 인플루언서 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2021년 12월 슈퍼챗 순위를 보면 버츄얼 유튜버가 전세계 1위부터 10위까지 모두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로지, 루시, 김래아 등 가상인간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민의힘 대선후보 A.I 윤석열이 등장하며 정치영역까지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있다. 과거에는 브라운관을 통해 일방적인 콘텐츠를 송출했지만, 현재는 얼굴이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도 상호작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신분을 노출하고 자기주장을 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행동이 됐다. 따라서 대부분의 버츄얼 유튜버들은 자신의 얼굴과 신분을 노출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는 유명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공격적이다. 유명인이 되면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일각에서는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감내하라고 한다. 그러나 유명하다는 이유로 불특정 다수로부터 위험에 노출되거나, 사소한 잘못마저 잊히지 않는다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유명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 등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될 수가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누구나 파파라치가 될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은 다양한 심리적 문제를 겪고 있으며 종종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곤 한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자기검열은 더 엄격해질 것이며 소신 있는 목소리는 위축될 것이다. 페이스북이 사명을 META로 변경한 것처럼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미래는 메타버스다. 버츄얼 캐릭터가 만들어갈 메타버스 세상에서는 다양성과 자아의 표출이 넘쳐날 것으로 기대한다. 노인은 젊은이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청년은 노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은 여성이 될 수 있으며 여성 또한 남성이 될 수 있다. 또한 기술변화로 인한 민주주의의 새로운 물결을 가져올 것이다. 공동체를 위한 합리적 토론이 시작될 것이며 다음 세대를 착취하는 약탈적 포퓰리즘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거대한 변화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민재명 크리에이터

[천자춘추] 지자체 창업 생태계 정책 이대로는 안된다

통계청이 지난 12월 발표한 장래인구추계:2020~2070년을 보면 한국의 인구성장률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고, 가장 높은 국가는 이스라엘이었다. 출생아 수는 2021년 27만명에서 2023년 23만명으로 줄어들고 2070년에는 20만명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지난 3년 동안 필자는 서울, 인천, 부산, 제주의 스타트업 생태계 현주소를 현미경으로 보면서 경험했다. 알다시피 지자체의 가장 큰 고민은 청년들이 지역을 떠난다는 것이며 이 외에도 인구소멸, 저출산, 고령화의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모든 원인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대로 구축 못하는 사회구조 및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사회로 급속히 바뀐 공직자 전문성의 한계를 꼽을 수 있다. 또한 공무원의 잦은 전보는 업무 공백, 전문성 저하, 연속성 결여 등 부작용을 초래하고 순환보직제는 특정 자리에 오래 있으면 민원인과 인간적인 유착 관계가 형성될 소지가 있어 미리 차단하려는 것이나 이러한 순기능과 달리 각종 부작용도 낳고 있다. 이를 일부 보완하기 위해 전문직위(전문관)제를 둬 전문성 향상과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곳도 있다. 서울시는 2013년도 53명을 시작으로 2017년 9월 기준 712개의 전문직위와 378명의 전문관을 지정했고, 2020년에는 1천명의 전문관을 선발하는 등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반면에, 대부분 타 지자체는 전문직위 지정 비율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특히 디지털 사회 전환에 따른 고부가가치 산업은 스타트업 생태계와 직결돼 있다. 그래서 정부도 디지털, 그린 뉴딜을 외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속 빈 강정이 돼 예산만 펑펑 쓰이고 있다. 이 또한 전문성 결여, 순환보직제, 소명의식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지역 청년들이 정착하고 기업을 유치하고 싶다면 창업 생태계를 구성하는 MZ공간과, 지역 초중고 및 대학 관계자, 창업지원기관 관계자, 시민 인식확산 등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며 이후 단계에는 도시재생, 스마트시티, 스타트업을 함께 바라보며 컨트롤 타워를 통해 점들을 내실 있게 연결해야 하는 것이 지자체의 역할이다. 이것은 모든 산업을 건강하게 아우르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창업공간 기획, 설계 전문성이 부족하다. 우후죽순 기관마다 창업공간을 만들지만, 실제 운영이 잘 되질 않고 서울과 해외 베끼기에 급급하다. 일류 기업 유치하고 대규모 펀드 조성해서 투자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은 환상에 빠져 있는 느낌도 받는다.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와 청년들이 선호하는 창업 생태계의 멜팅팟(인종의 용광로)을 어떻게 조성할지 깊은 고민 할 때다. 김영록 넥스트챌린지아시아 대표

[천자춘추] 신년의 약속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루에도 수많은 약속(約束)을 한다. 사전적 의미의 약속은 다른 사람과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미리 정해 두거나 그렇게 정한 내용이다. 하지만 약속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정해두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일상은 매일 같이 자신이나 타인과 약속하고 그를 믿고 의지하는 신뢰(信賴)의 과정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약속은 공동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가정에서부터 사회, 국가라는 조직 안에서 구성원들 간 이뤄지는 가장 기본적이고도 필연적인 요소다. 남녀가 결혼하면서 평생을 아끼고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겠다고 약속을 한다. 직장에 들어가면서는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고, 직장은 노력에 합당한 대가(급여)를 주겠다고 약속한다. 정치인들은 선거를 통해 잘 사는 나라, 국민만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한다. 이처럼 어느 조직이든 간에 정해진 규범과 법규 안에서 서로 지킬 것을 정해두고 생활을 하는 것이 통례다. 개인 간에도 어떤 일이나 관계 유지를 위한 크고 작은 일에 대해 서로 언약(言約)을 하거나 이를 굳게 지키겠다는 서약(誓約)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사전적인 의미와 달리 자신의 습성이나 관습, 생활방식의 변화 또는 어떤 목표를 정해두고 이를 지키기 위해 내적인 약속을 하는 경우도 많다. 자신과의 약속은 대개 한해의 시작인 연초나 어떤 큰 결심을 통해 행하는 경우가 많다. 새해를 설계하면서 하는 약속이 불과 며칠을 넘기지 못한다 해 생겨난 말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육십간지의 39번째인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활짝 열렸다. 지난 2년여 지속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모든 것이 헝클어지고 모두가 힘든 가운데서도 새해의 희망은 움트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 희망 속에서 자신은 물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새로운 약속을 하고 그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약속은 신뢰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약속할 때 그를 꼭 지키겠다며 맹세를 하기도 한다. 약속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소망(所望)이다. 따라서 약속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그를 위해서는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도 필요하다. 임인년 새해에는 각 분야에 걸쳐 많은 변화와 국운이 걸린 크고 작은 일들이 예정돼 있다. 우리에게 또다시 1년이라는 약속의 기회가 주어졌다. 자신 또는 타인과 약속한 일들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가정과 사회, 직장, 국가 등 모든 분야에서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임인년 호랑이 기운을 받아 우리 모두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보자. 조윤혜 남서울대 교양학부 교수

[천자춘추] 곡즉이실 사즉동혈

곡즉이실 사즉동혈(穀則異室 死則同穴), 중국 최고의 시집인 시경(詩經)에 나오는 글로 살아서는 방을 달리하더라도 죽어서는 무덤구덩이를 함께 하리라 라는 뜻이다. 남편의 죽음을 슬퍼한 아내의 말이다. 여기서 곡(穀)은 살아있는 것을 의미한다. 오래전 어느 결혼식에서 주례선생이 신랑신부에게 여러 말씀 끝에 살아서는 같은 방을 써야 하고 죽어서는 같은 무덤을 써야 한다.(생즉동실(生則同室) 사즉동혈(死則同穴)) 라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난다. 본래의 이실(異室)이 동실(同室)로 바뀐 어원과 유래는 찾지 못하겠으나, 긴 세월이 흐르고 생활관습이 바뀌어서인지 지금은 다른 방이 같은 방으로 바뀌었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대화주제 중의 최우선 순위는 건강에 관한 얘기다. 그리고는 밤에 소변을 보기 위해 몇 번을 일어나게 돼 잠을 잘 못 잔다는 얘기로 이어진다. 결국은 아내와 같은 방을 쓰냐, 아니면 각방을 쓰냐가 주제가 된다. 의외로 다수가 각방을 쓴다고 한다. 각방을 쓰는 원인과 이유가 각기 다르지만, 가장 큰 이유가 야뇨증(夜尿症)으로 일어나게 돼 배우자의 숙면을 위해 다른 방을 쓴다는 것이다. 성장기에 잠을 잘 자야 발육이 잘돼 잘 큰다고 하는 것처럼 잠을 잘 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노년에도 마찬가지다. 잠을 푹 자면 이튿날 모든 활동도 순조롭고 컨디션도 좋아진다. 컨디션이 좋으면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편향시켜 결국 생활을 행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어느 심리학 교수는 수면시간만 바꿔도 인생이 바뀐다고도 했다. 이유야 어떻든 부부가 각방을 쓴다는 것은 과연 합당한 일인가? 얼마 전 각방을 쓰던 사람의 돌연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아마 각방을 쓰지 않았다면 위급한 상황에서 응급처치나 치료 등으로, 적어도 생명은 건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부부가 사랑하면 침대에서 칼날 같은 거리도 멀어지게 느껴지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넓은 침대도 가깝게 느껴진다라는 말도 있다. 배우자를 진정으로 아낀다면 불편을 극복하며 서로 지켜줘야 한다. 내가 잠 좀 편히 자겠다고, 아니면 편히 자게 해야겠다고, 배우자와 떨어지려 하는 것은 멀어진 사랑의 표출이며 이기적 행동이다. 네가 잠 못 자는 사람의 심정을 알아? 할지는 모르겠다. 이제 부부가 살아서는 방을 달리한다는 수천 년 내려오던 생활관습이, 살아서는 방을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는 기준으로 바뀐 세상이다. 진정 배우자를 아끼고 사랑한다면, 배우자가 떠난 후 후회치 않으려면, 오늘 당장 베개 위치가 나란히 되기를 권하고 싶다. 황용선 前 파주부시장

[천자춘추] 보육정책의 방향

아이들이 미래인 만큼 보육정책이 나아갈 방향과 현재 시행되는 정책의 여러 부분에 수정ㆍ보완을 제안해왔다. 이번엔 보육지원 서비스 부분에 대해 제안을 한다. 교사 대 아동비율을 개선하자. 현재 교사 대 아동의 비율은 1:3. 1:5. 1:7. 1:15. 1:20으로 교사들이 아동을 돌보기에 어려움이 있다. 교사 대 아동 비율을 1:2. 1:3. 1:5. 1:10. 1:15로 개선해야 2019 개정 누리과정에서 추구하는 아동중심, 놀이중심 보육환경을 현실화할 수 있다. 보육현장 요구 우선순위인 교사 대 아동 비율 축소는 보육의 질을 향상시킨다. 이는 아이, 부모, 교직원의 만족도가 올라갈 것이다. 또 안전 점검비를 지원해야 한다.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에는 환경개선 보수비의 지원으로 노후한 어린이집을 보수할 수 있다. 그러나 비지원 어린이집은 운영비 부족으로 노후 시설이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고, 이에 대한 피해는 결국 영유아들에게 돌아간다. 민간 및 가정어린이집에도 안전 점검비의 지원방안을 찾고, 환경개선보수비 지원에 대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민간(가정)어린이집 지원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 비지원 어린이집이 국공립과 동일한 형태로 운영하기에는 예산상의 문제와 운영 형태(차량 운행, 공간, 보육프로그램 등)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비지원 어린이집의 보육서비스, 보육행정, 보육프로그램, 교직원의 처우개선 등 보육의 질적 향상에 획기적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비담임 정교사 배치(보조인력 배치)도 필요하다. 안전한 보육환경 마련, 보육의 질 향상, 보육교직원의 휴식 시간 보장, 연차 휴가 보장, 어린이집의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비담임 인력 전체 배치가 필요하다. 코로나 트라우마 심리치료가 시급하다. 코로나로 휴원한 어린이집의 원아들은 많은 트라우마가 있다. 심리검사를 통하여 영유아의 정서 상태를 파악하고 심리 지원 개입이 필요하다. 또한 경계선에 있는 영유아들에게 발달검사 및 심리 정서 지원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영유아의 심리적 특성ㆍ발달검사 등을 통해 발달 지연 및 문제 행동을 조기 발견하고 부모 상담의 기초자료로 제공해야 하며 발달 지연에 대한 서비스를 받도록 해야 한다. 원장의 직책 수당을 지원하여 자존감을 존중하자. 교사들에게는 각종 수당이 지급되고 있다. 그러나 사비를 투자하여 운영하는 원장들에게는 지원이 없다. 원장들에게 직책에 대한 수당을 지급해 기관장으로서의 긍지를 갖게 해야 한다. 급ㆍ간식비 유치원과 동일 지원 및 급ㆍ간식비 별도 지원도 시급하다. 어린이집은 원비에 급식비가 포함되어 유치원의 급식비를 따라가지 못한다. 급ㆍ간식비 인상 및 별도 지원을 통한 안전한 먹거리 및 아이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 서울시는 유치원과 맞추도록 발표했다. 민간ㆍ가정 어린이집 교사의 호봉제 도입은 절대적으로 해결해야 할 숙제이다. 민간 및 가정 어린이집 교직원들에게는 호봉제가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호봉제를 도입하여 국공립과의 형평성을 유지해야 한다. 1년 차 교사도, 15년 차 교사도 동일한 최저 호봉을 받는 경우가 있어 능력 있는 교사들을 채용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정원 미달 어린이집 폐원을 방지하자. 저출산 및 사회변화로 인하여 어린이집의 정원이 미달되어도 지역의 필요한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을 폐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원 미달 어린이집에는 적절한 운영비 지원을 통해 지역 내 영유아가 장거리 등원을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이만수 협성대학교 특임교수ㆍ 한국보육교사교육연합회 명예회장

[천자춘추] 해상풍력발전 추진의 전제조건

전세계적인 이슈 중 하나는 단연 기후위기다.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를 어떤 방식과 속도로 추진해야 하는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인천에서도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30년까지 인천 전력 수요량의 35.7%를 수소연료전지,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것이 인천시의 계획이다. 해상풍력의 경우 10개 이상 업체가 20개소 이상 대규모로 추진하다 보니 어민들과 마찰이 존재한다. 최근 국회에서 대규모 풍력발전소 추진 시 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하는 법안이 발의돼 논란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해상풍력발전소 추진에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어민 등 주민과의 의견수렴 과정을 충분히 갖추는 것만이 아니라 전력생산량과 수요량을 줄이기 위한 로드맵 구축, 해양환경 영향을 고려한 입지선정 주도, 공공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천시는 인천지역 전력수요량을 감축한다는 계획이지만, 그간 수요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왔고 신규 신도시와 산업단지 조성으로 오히려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정책의 핵심은 저감과 전환이다. 수요량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반쪽짜리 정책일 수밖에 없다. 또한 영흥석탄화력발전소가 폐쇄되지 않는다면 인천지역 전력생산량 총량만 늘어나는 셈이 된다. 정부가 논의 중인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영흥석탄화력발전소 1, 2호기 조기폐쇄계획이 담길 수 있도록 민관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이유다. 또한 전기는 공공재이며 해양환경 영향을 고려한다면 입지선정 등 공공이 주도해 추진하거나 개입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는 사업자가 신청하면 검토해 허가를 내주는 수동적인 역할 정도다. 제주도의 경우, 특별법을 통해 풍력자원을 공공의 자원으로 관리하고 있다. 풍력자원을 활용한 개발사업을 통해 얻는 이익을 도민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선 방향과 과정도 중요하다. 해상풍력발전 추진에서 원칙을 세우고 충분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하다. 박주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

[천자춘추] 온실가스와 방귀세

영국신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모자 탑 햇은 한 양품점 주인이 조세정책에 항의하는 의미로 챙이 좁고 키가 높은 모자를 만들어 쓴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영국의 피트 내각은 세금을 거둬들이려고 비싼 모자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모자세를 부과했다. 모자세를 내지 않으면 무거운 가산세를 물렸고 모자에 붙이는 증지를 위조한 사람은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귀족들이 권위의 상징으로 기르던 수염을 깎게 하는 대신 수염세를 물렸다. 수염과 옷소매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니는 것이 못마땅해 수염 단발령을 내렸지만 귀족들의 반발이 거셌던 때문이다. 그러나 수염세가 도입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애지중지하던 수염을 깎기 시작했다니 권위나 전통보다도 세금이 더 무서웠던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지구촌에서는 방귀세 논란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에스토니아 정부와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농가의 젖소에 이른바 방귀세를 물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왕정시대도 아닌 오늘날 소가 뀌는 방귀에 세금을 매기려 한 기막힌 속사정은 무엇일까. 소나 양처럼 되새김질하는 반추동물은 풀을 뜯어 먹은 후 저장과 되새김질을 통해 분해효소의 작용으로 섬유질을 소화시킨다. 이처럼 되새김질을 하는 반추동물들은 소화과정에서 발효를 일으키며 이들은 트림이나 방귀로 다량의 메탄가스를 배출한다. 메탄가스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이산화탄소보다 열을 잡아 가두는 온실효과가 21배가량 높다. 소나 양 등 축산계에서 배출하는 메탄가스를 모두 합치면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발생량의 18%에 이르며, 국가로 치면 세계 3위 수준이다. 소 한 마리가 연간 배출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승용차의 1.5배에 달한다고 한다. 에스토니아는 전체 메탄가스 배출량의 25%를 소가 차지한다고 하니, 방귀세는 교토의정서에 따라 농업부문 배출가스 저감사업에 투입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것이 없다고 하며 우리 조상들은 소를 소중하게 여겼고 한 식구로 대했다. 그런데 하필 소의 하품과 방귀가 문제가 되고 있다. 인간의 탐욕으로 본의 아니게 방귀쟁이로 몰려 세금을 물게 된 소에게 인간으로서 계면쩍고 미안할 따름이다. 정작 방귀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면서도 책임에는 미온적인 인간의 소비 양태가 변화되지 않는 한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은 소가 웃을 일이다. 안동희 여주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공동회장

[천자춘추] 물렀거라, 범 내려온다

코로나19의 기승이 여전한 가운데 2021년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가 저물고 있다. 다가올 2022년은 임인년(壬寅年)으로 호랑이띠의 해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무서우면서도 친숙한 동물이었고, 우리나라와 민족을 표상하는 동물이었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겠다고 고개를 지키던 호랑이, 오누이를 잡아먹기 위해 나무를 오르던 호랑이, 곶감을 무서워하는 호랑이 등 어린 시절 들었던 설화 속의 무수한 호랑이가 있다. 호랑이는 항상 우리 주변에서 어떤 때는 인간을 죽이는 공포의 대상으로, 어떤 때는 인간이 비는 산신으로, 어떤 때는 친근한 할아버지로서 우리와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마늘과 쑥의 전쟁에서 곰은 고통을 참고 인간이 됐지만, 호랑이는 인간이 되는 일에 실패했다. 환웅과 결혼해 단군을 낳은 것은 호랑이가 아니고 곰이다. 단군신화만 놓고 보자면 우리는 호랑이가 아니라 곰의 자손이다. 그런데 왜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상징 동물이 곰이 아니고 호랑이일까? 호랑이가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 까닭은 국토의 3분의2가 산이고, 산에 많은 호랑이가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호랑이가 많은 만큼 물론 호환(虎患)도 많았다. 많은 사람이 집에서 생활하다가, 산에서 나물 캐다가, 밭 갈다가, 김매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다. 실학자 성호 이익은 경기의 어느 고을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백성이 전쟁으로 죽은 백성만큼 많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호랑이에 물려 죽는 호환(虎患)이 다반사인데도 우리 조상은 민화(民畵)에 무서운 호랑이를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그렸다. 이런 여유와 반전을 두고 미국의 미술사학자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 1910-1996)은 한국 미술사의 클라이맥스라고 극찬한 바 있다. 호랑이는 십이지(十二支) 중에 세 번째인 인(寅)에 해당하고, 인월(寅月)은 음력 정월이다. 정월의 의미뿐만 아니라 호랑이가 사악한 기운을 막아 주리라는 이른바 벽사(8F9F邪)의 믿음도 민간신앙으로 있었다. 호랑이를 그린 부적, 호랑이 발톱으로 만든 노리개, 호랑이 혼백의 상징인 호박을 마고자 단추로 썼고, 밥주발, 필통, 연적, 벼루, 베갯모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빨랫방망이에도 호랑이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들이 쓰는 굴레나 호건 등에 수놓은 호랑이 장식도 모두 벽사를 위한 것이었다. 호돌이와 수호랑에서 보듯이 호랑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지금도 여전해 88서울올림픽과 평창동계올림픽의 마스코트로도 활용됐다. 여전히 우리 역사 속에서 범은 내려오는 중이다. 코로나19야 썩 물렀거라. 정성희 실학박물관장

[천자춘추] 교사의 훈육과 학대 사이

학생에 대한 체벌이 아동학대처벌법상 신체적 학대가 될 수 있다. 반복된 꾸지람, 폭언, 모욕 등은 정서적 학대의 범주에서 논의된다. 근래 아동학대로 신고당한 교사가 체벌이나 꾸지람을 징계재량권으로 정당화하기란 쉽지 않다.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이 범죄성립 판단의 핵심이 되는 경향이 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학대, 계모의 학대치사 등 사회적으로 지탄이 될 만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처벌은 강화되었다. 신고인의 분리 요구가 있다면 교사는 직위해제 처분으로 업무에서 배제되기 마련이고, 3개월이라는 직위해제 기간의 한도는 예외로 뒀다. 훈육의 필요성이 크거나 적극적인 지도행위로 볼 여지가 있는 사안일수록 학대 여부 판단은 지연되기 마련이어서 학대가 명백한 사안에 비해 직위해제의 장기화에 따라 교사의 고통이 가중되는 아이러니한 현상도 발생한다. 아동학대사건의 가해자로 인정되면 취업제한명령도 뒤따른다. 최근 아동학대죄로 약식기소 된 교원이 초범이었음에도 해임을 징계했다가 소청 등으로 취소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취업제한명령을 이행하기 위한 일선 교육청의 섣부른 조치로 보이지만, 어린이집 보육교사를 염두에 둔 취업제한명령 규정이 교육공무원법상 교사의 신분보장마저 뿌리째 흔드는 모습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강력한 제재로써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신체적, 언어적 폭력이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된 건 분명히 환영할 만한 변화이자 성과이다. 다만, 교사들의 리스크가 지나치게 커져서 이제는 훈육을 아예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낸다. 누가 책임지고 적극적인 교육에 나설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레 생긴다. 성경에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잠언 22:15)는 말이 있다. 자녀와 학생이 어릴 적에는 지식과 경험이 부족해 판단을 그르칠 수 있으므로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깨우침을 줘야 하고 때로 징계가 필요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선생과 학생들 간 1대 다(多) 구도의 교육현장에서 전체의 통솔을 위해 규율과 지시를 위반한 개인에게 적정한 징벌이 필요한 경우도 분명히 있다. 훈육과 학대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면 정작 훈육이 필요한 학생에게 변화와 성장으로 이끌 수 있는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교육을 기대할 수 없다. 학생의 인권보장 강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흔들리는 교권(敎權)을 어떻게 정립해갈 것인지 입법과 사법 전반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설대석 법무법인 대화 변호사

[천자춘추] 웃어, 빙긋이

1950년대 자유주의자가 진지하고 회의적인 성향이었다면, 1960년대 혁명가는 낙관적이며 즐길 줄 알았습니다. 누가 사회를 더 변화시켰을까요? 1972년 정초에 백남준이 쓴 편지의 한 대목이다. 백남준아트센터 2021년 전시 웃어의 주제인 플럭서스의 성격을 잘 표현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플럭서스는 전통적인 제도와 통념으로부터 미술을 해방시키고자 1960년대 일었던 혁명적인 예술 흐름이다. 백남준의 플럭서스 예술 또한 파격과 반격의 연속이었고 거기에는 언제나 웃음이 동반했다. 조롱이나 냉소가 아니라 천진하고 명랑한 웃음이다. 백남준에게 플럭서스는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순수해지는 것이었고, 백남준 특유의 유머는 그 순수함의 발로였다. 그리고 이는 백남준이 타인을 대하는 성정이기도 했다. 내가 바보니까 좋은 사람이 오는지 내가 똑똑하니까 좋은 사람을 찾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좋은 사람을 만나요. (백남준, KBS 인터뷰) 타인을 향한 앎의 정도는 그 인식의 스펙트럼이 사람마다 다르다. 가족, 친구, 연인, 동료, 이웃에 대해 얼마나 가깝게 느끼는가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매일매일 문자 톡을 주고받으며, 소셜 미디어에 일상을 공유하며 사이가 깊어진다 느끼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런 식의 관계들은 헛헛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과 맺는 마음의 감각이 구식인 필자는 이처럼 즉각적이고 동시적인 소통이 서로를 살피고 보살피는 곁의 마음을 다 담아내기는 어렵다고 여전히 믿는 편이지만, 그래도 온라인 매체가 이어주는 관계들을 발견하고 소중함을 깨닫는 경우도 많다. 웃어 전시의 일환으로 열었던 주간 플럭서스 톡 채널은 매주 한 번씩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악보인 지시문을 발송했고 구독자들이 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연주하도록 했다. 백남준이 머리에 먹을 묻혀 바닥에 대고 선을 그어 나간 퍼포먼스로 잘 알려진 직선을 긋고 그것을 따라가라라는 지시문을 발송했던 주가 기억에 남는다. 어느 구독자가 자신의 거실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쭉 풀며 뒷걸음질하면서 휴지를 풀고 반려 고양이가 그 앞에서 졸졸 따라가는 소박하고 유머러스한 영상을 올렸다. 플럭서스에 대한 공통된 관심으로 반년 동안 채널에 모여 전위적인 미술을 일상 속에서 기꺼이 향유하고 공유했던 구독자들은, 직접 만난 적 없어도 올해 필자에게 누구보다 가깝게 다가온 분들이다. 새해에는 이렇게 예술을 나누며 빙긋이 새어 나오는 웃음이 우리 삶을 조금은 더 낙관으로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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