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푸드트럭

일류 레스토랑의 셰프인 칼 캐스퍼는 유명음식평론가가 온다는 말에 창의적인 요리를 선보이려 하지만 사장의 지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기존 메뉴를 내놓으면서 평론가의 혹평을 받게 된다. 칼은 홧김에 평론가에게 트위터로 욕설을 날리고, 이들의 썰전은 온라인 핫이슈가 된다. 결국 그는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쿠바 샌드위치 푸드트럭에 도전한다. 칼의 푸드트럭은 어린 아들과 마이애미, 텍사스, 뉴올리언스 등 미국 전역을 돌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셰프의 명성도 되찾는다. 재미있게 봤던 영화 아메리칸 셰프(Chef)의 줄거리다. 외국여행을 하다 보면 세계 곳곳에서 푸드트럭을 만나게 된다. 노천 레스토랑 못지않게 야외에서 맛있는 음식과 음료를 맛보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어느 지역에선 푸드트럭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하고, 하나의 관광포인트로 자리 잡은 핫한 푸드트럭을 소개해주는 잇 푸드트럭이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전 세계가 푸드트럭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8일 경기도의 창업자금 지원을 받은 굿모닝 푸드트럭 청년 창업 1호점이 안산시에 탄생했다. 고잔동에 위치한 시립체육시설인 호수테스니장에 개업한 푸드트럭의 이름은 입가심(IPGGASIM)이다. 창업 1호점의 주인공 김수진씨(27)는 안산에 거주하는 청년 창업자로 체육학과 졸업 후 스키강사와 운동처방사로 일하다가 쉬던 중에 경기도의 푸드트럭 창업상담회 참석을 계기로 창업을 하게 됐다. 도는 김수진씨에게 1%대 금리로 창업자금을 지원해줬고, 안산시 등과 함께 장소 선정 작업도 도왔다. 지난해 7월 푸드트럭이 합법화됐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규제개혁 가운데 하나로 6천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전국적으로 허가받은 푸드트럭은 33대에 불과하다. 지정된 장소에서 한정된 음식만 팔다보니 장사가 안되는 것이다. 이에 경기도에서도 박물관, 미술관, 공공청사 등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푸드트럭 영업장소를 확대해 달라는 건의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외국의 푸드트럭은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푸드트럭은 정해진 장소 외에는 영업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멈춰 서 있다. 트럭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푸드트럭의 네 바퀴를 굴러가게 할 대책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DMZ 지뢰

지난 4일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몰래 매설한 목함지뢰를 밟은 하재헌 하사는 오른쪽 다리 무릎 위와 왼쪽 다리 무릎 아래쪽을 잘랐다. 함께 수색작전을 하던 김정원 하사도 목함지뢰 폭발로 오른쪽 발목을 절단했다. 다리를 붕대로 감고 병상에 누운 이들의 모습은 지뢰가 얼마나 잔인한 살상무기인지 새삼 일깨워줬다. 지뢰는 사람의 발가락이나 발목, 다리를 절단시키는 야만적인 무기다. 화생방 무기를 제외하면 가장 잔인한 무기다. 지뢰는 적군과 아군, 민간인을 구분하지 못한다. DMZ에는 이런 지뢰가 100만발 이상 매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군이 6ㆍ25전쟁 때 한반도로 들여온 지뢰는 10만여 발이다. 남북한 군대가 휴전 협정 후 62년 동안 첨예하게 대치하면서 10배 넘게 늘어났다. 북쪽 DMZ에 북한이 매설한 지뢰는 얼마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또 북한 지뢰는 군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휴대용 장비로 탐지하기 어렵다. 목재와 플라스틱 등 비금속 지뢰이기 때문이다. 지뢰는 DMZ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방공기지 같은 후방 지역 군사시설 주변에도 유사시에 대비해 매설했다. 호우나 산사태가 발생하면 유실되기도 한다 . 군사지역을 벗어난 곳에서 민간인이 지뢰를 밟아 다치는 원인이다. 지뢰금지국제운동(ICBL) 한국지부인 평화나눔회는 6ㆍ25 전쟁 이후 지뢰 피해 민간인을 총 462명으로 파악했다. 정부는 올해 4월 민간인 지뢰폭발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골자로 하는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에 들어가 피해 신청을 받고 있다. 지뢰는 가장 비인도적인 무기로 분류돼 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대인지뢰금지협약(일명 오타와 협약)이 1999년 발효됐다. 160여 개국이 이 협약에 가입했다. 그러나 남북한과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은 동참을 안한 상태다. 미국은 지난해 6월 더 이상 대인지뢰를 생산ㆍ구매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도 한반도는 예외로 뒀다. 예고 없이 생명을 앗아가는 지뢰의 피해와 위험은 한반도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지뢰 문제를 한반도에서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 필수다. 얼마 전 합의한 남북 고위급 접촉 공동보도문 1항엔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했다고 명시돼 있다. 지뢰 문제도 회담 의제로 삼을 수 있다는 얘기다. 남북한이 DMZ 내 지뢰 제거에 대해서도 적극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노블레스 오블리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프랑스어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최근 경영권 승계로 세간의 관심을 받은 롯데판 왕자의 난 사태로 재벌들의 승계 문제가 또다시 부각되고 있다. 국내 재벌들은 1세대 창업주에서 2세대, 3세대로 넘어가면서 극히 일부 지분만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가족 간 싸움이 붙어 그룹이 쪼개지는가 하면, 자신이 적자임을 내세우려고 여론전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있는 사람들이 더한다는 비아냥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40대 재벌 가운데 거의 절반인 17개 기업에서 혈족 간의 분쟁이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을 물려주려다 횡령, 배임 등으로 구속되는 일도 허다했다. 심지어 가족 간 고소ㆍ고발 사례도 드물지 않다. 롯데그룹은 분쟁 끝에 신격호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세습 경영의 문제, 순환출자, 일본 그룹이라는 인식에 따른 이미지 추락 등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 그룹은 대표적인 세습 기업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5대째 150여 년 동안 세습 경영을 하고 있다. 부모 도움 없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해야 하며, 해군 장교로 복무해야 가문의 경영진으로 합류할 수 있다는 조건을 둔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능력부터 갖춰야 하는 것이다. 발렌베리 그룹은 매년 그룹 이익금의 85%를 법인세로 납부하고, 그룹 재단의 수익금도 학술지원 등 공익을 위해 쓴다. 세습 기업이지만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대명사다. 국내 재벌들도 상속과 독점에만 눈이 멀기보다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과 전문성을 확립하는 동시에 도덕적 의무를 다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김규태 경제부 차장

[지지대] 원이 엄마 편지

▶<병술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네 늘 나에게 이르기를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 가시는고. 나하고 자식하고 누굴 의지하며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자네 먼저 가시는고. 자네 날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며 나는 자네 향해 마음을 어찌 가지던고. (중략)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찬찬히 와 이르소. 내 꿈에서 편지 보시고 한 말 세세히 듣고자 하여 이리 써넣네. 찬찬히 보시고 날더러 이르소. 자네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할 말 이르고 그리 가시면 밴 자식 태어나면 누구를 아비하라 하시느고. 아무리 한들 내 속 같을까. 이런 천지 아득한 일이 하늘아래 또 있을까. (중략) 나는 꿈에 자네 보리라 믿고 있노이다. 꼭 보소서. ▶1586년 이응태 묘에서 발견된 부인의 편지다. 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지구에서 발견된 이 무덤에는 한 구의 미라와 더불어 이 편지가 수장돼 있었다. 429년 전 편지인 것이다. 진실로 서로 사랑하며 백발이 될 때까지 함께 해로하고자 소망했던 부인의 간절한 소망과 사랑, 보고픔을 가슴에 고이 품어 묻어둔 마지막 편지다. 부부지애(夫婦之愛)는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늘도 그 마음에 감동해 지금까지 이를 남겨 둔 것은 아닐지? ▶지난 25일 새벽 2시, 남북이 목함지뢰로 발발된 준전쟁 상황을 타개하고자 무박 3일의 마라톤 협상을 벌여 6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이 중에는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재추진도 포함됐다. 분단 70년이 지난 현재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던 11만6천460명 중 절반 가량이 돌아가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부도 이번 회담에서 이산가족상봉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원이 엄마의 편지를 보면서 또다시 500년 후에 이산가족 중 한 분의 묘에서도 이런 애끓는 편지가 발견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노파심이 벌써부터 생기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그분들의 한이 풀리지 않았음에 대한 안타까움이자, 더 이상 부부를 갈라놓는 물리적 행위가 발생하지 말기를 바라는 간절함일게다. 이제부터라도 생존해 있는 이산가족들이 더 이상 아파하지 않도록 남북이 서로 약속을 잘 지켜내길 바란다.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지지대] 잠수함 15척 대 70척

국방백서(國防白書)라는 게 있다. 국방부가 매년 만든다. 국방력과 관련된 통계가 있다. 우리가 보유한 무기(武器) 현황이 있고 북한의 무기 현황도 있다. 자연스레 남북한 비교표가 만들어진다. 대부분 우리가 북한보다 수적 열세다. 하지만, 이 자료가 심각하게 논의된 적은 많지 않다. 오히려 국방부의 부처 이기주의가 개입된 보고서라는 눈총을 받았다. 국방 예산을 더 받아내려고 국방부가 남북 군사 불균형을 부풀린다는 시선이었다. ▶그랬던 국방백서가 요 며칠 절박하게 읽혔다. 언론이 버려뒀던 2014 국방백서 속 수치를 끄집어내 앞다퉈 활자화했다. 야포-북한 8,600문 남한 5,600문, 다연장ㆍ방사포-북한 5,500문 남한 200문(육군). 전투함정-북한 430여척 남한 110여척, 상륙함정-북한 260여척 남한 10여척(해군). 전투임무기-북한 820대 남한 400대, 공중 기동기-북한 330여대 남한 50여대(공군). 육ㆍ해ㆍ공 포함 병력-북한 120만여명 남한 63만여명. 거의 모든 항목에서 남한이 열세다. ▶잠수함 공포가 컸다. 국방부가 북한 잠수함의 70%인 50여척이 우리 감시망에서 사라졌다고 밝히면서다. 남북 접촉이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곧이어 북한 공기부양정 70척이 서해 고함포로 전진 배치됐다는 발표도 나왔다. 잠수함과 공기부양정을 이용한 아군 군함 타격, 특수전 병력 상륙 등의 섬뜩한 시나리오가 곳곳에서 뿌려졌다. 국방백서에 잡혀 있는 잠수함 통계는 북한 70척 남한 15척이다. ▶무기 성능은 우리가 월등하다. 남북 군사력 비교 때마다 등장하는 위로(?)다. 많은 전문가들이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성능 우위가 보완할 수 있는 수량 열세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번 잠수함 위협이 그랬다. 북한 잠수함은 구형이라 1~3일에 한 번씩 수면에 떠올라야 한다고들 했다. 그런데, 그 3일간 우리는 북한 잠수함을 완전히 놓쳤다. 전면전에서의 3일이 어떤 의미일까.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이 남침했다. 서울 방어선인 미아리가 북한 전차에 뚫린 것이 6월 28일 새벽 1시다. 3시간 부족한 3일이었다. ▶이제는 수적 열세도 극복해야 한다. 야포를 늘리고, 전투기를 늘리고, 잠수함을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예산이 필요한데. 국방부는 2016~2020 국방 중기계획에서 전력증강을 위해 필요한 예산이 96조원이라고 했다. 기획재정부가 작성한 2014~201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반영된 방위력 증강 예산은 66조원이다. 30조원의 차이가 있다. 서둘러 이 차이를 줄여야 한다. 이것이 5일간의 극한 대치에서 우리가 얻은 절박한 숙제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우리네 할머니들의 이름엔 끝에 자(子)자가 많이 들어갔다. 순자, 명자, 숙자, 정자, 미자, 경자 등등. 이는 일제 식민지시대에 지어진 이름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 여성들이 아끼꼬, 미치꼬, 나미꼬, 아사꼬 등 꼬(子)자로 끝나는 이름이 많아서 이를 따라 지은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고싶어 한 것은 아니다. 일본이 우리 성과 이름을 없애고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창씨개명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일제는 우리 민족을 완전히 일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민족말살정책을 폈다. 우리 말과 글의 사용은 물론 우리 역사의 연구와 교육도 금지했다. 조선이라는 나라와 민족을 없애버리려는 의도로 피의 전통을 의미하는 고유한 성(姓)까지 파괴하려 했던 것이다. 그때 일본식 이름을 강요받으며 수많은 ~자가 탄생했다. 슬픈 역사의 잔재다. 창씨개명은 사람 이름뿐 아니라 우리 산야의 수많은 풀ㆍ꽃ㆍ나무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큰개불알꽃, 며느리밑씻개, 도둑놈의갈고리, 좀개갓냉이 등 가녀리고 예쁜 풀꽃에 이런 저속한 이름들을 붙였다. 큰개불알꽃은 오이누노후구리(大犬の陰囊)라는 일본 이름을 번역한 것이다. 이 이름을 붙인 이는 일본 식물학자 마키노 도미타로로 그는 큰개불알꽃의 열매가 개의 음낭(이누노후구리, 犬陰囊)을 닮았다고 이런 이름을 붙였다. 며느리밑씻개는 마마코노시리누구이(繼子の尻拭い)에서 유래했다. 의붓자식의 밑씻개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의붓자식이 며느리로 바뀐 경우다. 오랫동안 불러온 우리 고유의 이름이 있건만 식민지 수탈의 일환으로 우리 산야의 식물을 채집해 일본식 저급한 이름을 붙이면서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식물의 호적이라 할 수 있는 학명에 남은 일제 잔재도 심각하다. 국립생물자원관에서 만든 한반도 고유종 총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반도 고유 식물은 모두 33목 78과 527종인데 이 가운데 일본학자 이름으로 학명이 등록된 식물이 327종이나 된다. 일본 속의 한국 문화를 찾아 왜곡된 역사를 밝히는 작업을 해온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이 식물의 한글 이름이 기록된 조선식물향명집을 일일이 조사, 최근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의 내력을 찾아 책으로 펴냈다. 참으로 의미있는 작업이다. 이 참에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을 되짚어보고 우리 풀꽃에 우리 이름을 붙여줘야 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남북한의 표준시

표준시(Standard Time)는 한 나라 또는 한 지방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평균태양시다. 세계 각지의 표준시는 경도 0를 지나는 영국 그리니치 표준시와의 시차를 정수로 두는 것이 보통이다. 경도 15도를 지날 때마다 1시간의 시간차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리니치 표준시보다 9시간 빠른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삼고 있다. 한반도 중심을 관통하는 자오선은 동경 127.5도이다. 하지만 남북한은 일본 본토를 통과하는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써왔다. 구한말인 1908년 2월 7일 대한제국 표준시 자오선이 공포되면서 동경 127.5도를 표준자오선으로 했지만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일본의 표준자오선으로 바뀌었다. 1954년에 다시 127.5도를 표준자오선으로 환원했지만 1961년 군사정권이 출범하면서 표준시를 동경 135도로 변경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군사정권은 미군과 연합훈련을 벌이거나 다른 나라와 시간을 환산할 때 혼란스럽다는 이유를 변경 근거로 내세웠다. 이후 정치권에서 표준시 변경론이 이따금 제기돼 왔다. 일제 잔재 청산과 천문 역법을 고려했을 때 표준시를 동경 127.5도로 환원해야 한다는 법안이 몇차례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제거래 등에서 1시간 단위를 주로 사용하고 있고 표준시 변경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감안하면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얘기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 잔재를 청산한다며 광복절인 15일부터 표준시간을 30분 늦췄다.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을 표준시로 정하고, 15일 새벽 평양 표준시 시작을 알리는 타종식도 가졌다. 북한의 표준시가 늦춰지면서, 우리나라가 정오일 때 북한은 오전 11시30분이 된다. 한반도에 두 개의 표준시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두 개의 표준시는 개성공단 입ㆍ출경 등 남북교류에 불편을 주고 장기적으론 남북통합에 지장을 주게 될 것이다. 30분의 시차는 남북간 이질성 심화 등 점점 멀어져가는 남북관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해 씁쓸하다. 좁은 한반도에서 서울시간, 평양시간을 따로 정하는 것은 옳지않아 보인다. 표준시의 통일도 또 하나의 과제가 됐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독도는 대한민국땅

집안에 A급 전범이 세 명이나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체제 등장 후 독도에 대한 일본의 공세는 거칠어졌다. 아베는 초중학교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의 고유 영토인데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하도록 지시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아베가 지난 2014년 2월 일본국회 예산위원회에서 아이들이 해외에서 독도 등과 관련한 논쟁을 벌일 때 일본 입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나라 동북아역사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루는 동북역사재단이 매국적 사학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11일 본보와 경기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광복 70주년 기념 경기도학술대회에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매국 사학으로 변질된 식민사학(독도와 간도 문제를 중심으로)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소장은 동북아역사문제에 관한 한 대한민국의 공식창구인 동북아역사재단의 역사관은 이미 중국과 일본이 장악했다면서 분개했다. 그는 우리가 해방 후 70년이 되도록 식민사학, 즉 매국 사학을 해체하지 못한 결과, 이미 역사관은 외국의 노예로 다시 전락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역사는 이미 팔아넘겼으니 남은 것은 영토가 외국의 것으로 넘어가는 것뿐이다며 국제정세가 대한민국에 불리하게 돌아가서 100여년 전과 같은 상황이 온다면 신(新)일진회 깃발 들고 나설 인물들이 대한민국 요로에 곳곳이 활개치고 있는 것이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의 민 낯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일 전국노래자랑 강진군편에 출연한 일곱살 김민서양은 독도는 우리 땅이 아니라 대한민국땅이라는 멘트로 관람객을 감동시켰다. 민서는 89세 송해 선생에게 다짜고짜 독도는 누구 땅일까요. 모두들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요. 잘 들어보세요. 독도를 말할 때 우리나라도 우리 땅, 일본도 역시 우리 땅이라고 표현을 하죠. 그래서 정확하게 독도는 대한민국땅이라고 말하는 게 더 좋겠죠. 독도는 대한민국땅 잊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어린아이도 아는 것을 동북아역사재단은 모르는 것일까. 아직도 일제강점기에 있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역사관에 광복의 날이 찾아오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정치부차장

[지지대] 휴가의 신 유형 ‘스테이케이션’

분명히 저녁 일곱 시쯤 잠이 든 것 같은데, 깨어보니 이튿날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다. 잠이 보약인 건 확실했다. 천근 같던 몸이 새털까지는 아니어도 확연히 가벼워졌다. 솔직히 나는 하루에 4~5시간을 넘게 잔 기억이 별로 없다. 주말에도 일찌감치 학원을 가는 딸들을 챙기느라 늦잠 한번 자기도 여의치 않았다. 올해 휴가만큼은 원 없이 자보겠다는 게 목표였다. 결국, 그렇게 했다.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먹고 싶을 때 일어나 먹고. 그렇게 여름휴가를 보냈다. ▶이런 경우가 내게만 국한된 건 아닌가 보다. 불볕더위와 일에 지쳐 휴가를 멀리 떠나기보다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조사 결과다. 최근 시장 조사 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이 1959세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여름휴가에 여행이 꼭 필요한가?를 주제로 설문했더니 2명 중 1명(51.7%)이 필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많은 직장인이 스테이케이션을 선호한 것이다. ▶스테이케이션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생겨났다. 머물다라는 의미의 스테이(stay)와 휴가를 뜻하는 버케이션(vacation)의 합성어로 집에 머물거나 집을 떠나도 가까운 곳을 찾아 휴식을 즐기는 휴가 법을 말한다. 2009년 이미 웹스터 사전에 신조어로 등록됐는데도 다소 낯선 이 단어가 올해 대한민국 여름휴가의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진정한 휴식을 즐긴다는 점에서 성숙한 휴가 문화라고 볼 수 있지만, 우리 국민이 얼마나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바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정부가 국민 사기 진작을 명분으로 지난 14일을 공휴일로 정했다. 내수 경기를 살리겠다며 이례적으로 전국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주기까지 했다. 실제 임시공휴일 지정에 따른 광복 70주년 특별 연휴(14~16일) 기간 중 대형마트 매출액이 25% 이상 급증하는 등 내수 진작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하지만, 가계 빚과 노후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수많은 가장과 취업이 어려워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들에게 누적된 피로는 하루 더 논다고 풀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박정임 경제부장

[지지대] 이호준(산본공고)유상훈(수원공고) …

1977년 7월 18일 오후 2시.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딸 박근혜씨가 참석하는 행사가 열렸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우승하고 개선한 선수단에 훈장을 주는 자리였다. 강명순 교수(한양대 공대) 등 12명이 동탑 산업훈장, 김원석씨(육군 제305병기대 하사) 등 4명이 철탑 산업훈장, 윤현모씨(성동 기계공고 조교) 등 5명이 석탑 산업훈장, 이창희씨(금성사 사원) 등 5명이 산업포장을 받았다. ▶대통령의 긴 축사가 이어졌다. 옛날에는 기술과 기능 분야에 관심이 희박했고 기술천시의 직업관을 가졌다. 지금은 기술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과 관념이 완전히 달라져 기술개발에 앞장서고 있음은 물론 정부도 기술 인력 양성에 전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여러분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우대받는 시대가 오고 있다. 비록 여러분이 상급학교에 진학 못했다고 하더라도 노력만 하면 학문과 이론을 배울 수 있도록 대학에 진학하는 길도 터놓았다. ▶일부 예언은 맞았다. 그 후 공학(工學)이 우대받는 시대가 됐다. 대졸(大卒) 취업률이 이를 설명한다. 삼성이 지난해 11월 25개 계열사에서 5천명을 뽑았는데 85%가 이공계다. 현대차의 신입사원 선발 비율도 공학계열이 7대 3 정도로 많다. LG전자는 그 편차가 9대 1까지 벌어진다. 오죽하면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인문대를 나오는 것보다 지방대 공대를 나오는 게 입사에 유리하다는 말이 나온다. 기술도 우대받는 시대를 지나 기술만 우대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다른 예언은 틀렸다. 그 시절 기능올림픽은 돈 없는 청년들의 꿈이었다. 이들이 우대받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공고(工高) 출신의 사회적 대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14년 초임금을 조사했더니 대졸 신입사원과 고졸 신입사원의 임금격차가 월 74만2천원이다. 기술만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장학(奬學) 특례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돈 없는 기술자들은 여전히 배고픈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호준(20ㆍ산본공고), 이정욱(21ㆍ제빵학원), 유상훈(20ㆍ수원공고), 양민우(21ㆍ일산고).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나가 메달을 획득한 기특한 경기도 젊은이들이다. 이들의 활약으로 대한민국이 종합우승했다. 곧 브라질에서 귀국한다. 어떤 환영이 기다리고 있을까. 카퍼레이드, 청와대 초청, 훈포장 수여는 기대도 않는다. 가구 만들고 빵 구우며 흘렸을 땀의 대가라도 주어졌으면 좋겠다. 훈장 대신 도비(道費) 지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고, 청와대 대신 도지사실(道知事室) 초청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고도비만

페르난도 보테르하면 풍선처럼 터질듯한 뚱뚱한 사람들의 이미지가 생각난다. 콜롬비아 화가인 보테르는 볼륨을 강조한 풍만한 인체를 통해 남미의 유머와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그림이라서 일까, 풍만한 인물들은 뚱뚱하지만 거슬려 보이지는 않는다. 지금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보테르전은 연일 만원이다. 그렇다면 보테르의 그림 속 뚱뚱이들의 건강은 어떨까. 의사들은 목선이 드러나지 않고 복부 및 팔다리의 굵기를 볼 때 초고도비만에 가깝다고 한다. 이 정도 비만이면 심장질환과 중풍, 대사증후군, 고혈압, 고지혈증, 퇴행성관절염, 수면무호흡증, 암 등 각종 성인질환이 2개 이상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단다. 과다한 지방세포에서 다량의 염증 물질을 분비하고, 몸무게가 과도하다 보니 무릎 척추 등에 강한 압력을 가하게 된다고. 보테르의 그림은 마른 몸에 집착하는 오늘날 미의 기준에 경종을 울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사회에서 고도비만은 심각한 문제다. 비만은 현대인의 가장 심각한 질환이자 만병의 근원이다. 고도비만일수록 다양한 질환으로 인해 수명이 최대 14년까지 단축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팀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고도비만인 사람은 정상 체중인 사람에 비해 질병 발병률과 사망률도 2배가량 높았다. 건강보험공단이 2002년 이후 우리나라 비만 인구가 2030대를 위주로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이 추세대로라면 10년 뒤 전체 고도비만율이 5.9%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17명 중 1명이 고도비만이 된다는 얘기다. 비만은 암, 당뇨, 고혈압, 고지혈, 뇌졸중, 허혈성심질환, 지방간 등 다양한 질환의 원인이 된다. 비만이 증가하면 건강보험의 재정 부담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비만으로 인한 진료비는 2002년 8천억원에서 2013년 3조7천억원으로 4.5배가 됐다. 건강보험공단은 10년 뒤인 2025년이면 비만관련 질환 진료비가 현재보다 2배 가까이로 늘어난 7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건강보험공단이 담배에 이어 비만을 사회 문제로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몸 관리도 이제 국가가 나서야 하는 시대가 됐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여성 독립운동가

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누구나 유관순 열사를 떠올린다. 또 다른 사람은? 대부분 잘 모른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배 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친 여성 독립운동가는 상당히 많다.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발굴된 사례만 2천여명에 가깝다. 그러나 국가보훈처에서 서훈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총 1만4천197명중 263명(1.85%)에 불과하다. 최근 광복 70주년과, 영화 암살의 흥행 열풍에 힘입어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고 있다. 특히 젊은층에게 암살의 히어로인 안옥윤(전지현)이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여성 독립투사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선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동과 업적을 재조명하는 특별기획전 독립을 향한 여성영웅들의 행진도 열리고 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면면을 살펴보면 남성 영웅 못지않은, 그 이상의 활동과 업적에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영화 암살의 안옥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남자현 지사(1872~1933)는 여성 안중근으로 불린다. 1932년 왼손 무명지를 잘라 흰 천에 조선독립원이란 혈서를 써 하얼빈에 온 국제연맹 조사단에 조선 독립을 호소했고, 이듬해 만주 주재 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기 위해 노파로 분장하고 폭탄을 운반하다 체포돼 온갖 고문을 당했다. 광복군 간부였던 오광심 열사(19101976)는 여성이 참가하지 않으면 독립운동은 사람으로 말하면 절름발이, 수레로 말하면 외바퀴라며 여성 참여를 독려했다. 함경도 길주에서 만세운동을 펼치다 체포된 후 옥사해 북한의 유관순으로 불린다. 권기옥 지사(1901~1988)는 중국 항일 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가 됐다. 대한독립군 대령으로 전역해 대한애국부인회를 이끌며 조국 독립을 위해 힘썼다. 윤희순 지사(1860~1935)는 최초의 여성 의병장으로 중국에서 항일의병을 조직했고, 안경신 지사(1877~미상)는 1920년 임신한 몸으로 평안남도 일본 경찰국 청사에 폭탄을 투척했다. 모두 당시 여성은 남성의 보조적 역할만 했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이야기들이다. 이들의 희생이 있어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병가지상사

당나라 헌종(憲宗)때의 일이다. 그는 국운이 쇠퇴한 어지러운 때 즉위했다. 그러나 개혁에 대한 의지는 남달랐다. 한 장수가 회서(淮西)지방의 절도사 오원제(吳元濟)와 싸움에 패했다. 신하들은 이 싸움을 더해서는 안 된다며 말렸다. 하지만 헌종은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는 말로 이를 거부했다. 싸움을 하다보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일. 한번 패했다고 해서 포기해 버린다면 더 큰 뜻을 이룰 수 없다는 의지 때문이었다. 이런 시간들을 거친 후 당나라는 한때나마 중흥기를 맞이했다. 일을 하다보면 좌절과 희망, 승리와 패배 등 이런저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사람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병가지상사는 추후 되풀이하지 말라는 전제가 있다. 최근 경기도청 공직계에 눈여겨 볼 만한 법원 판결이 있다. 도가 해임처분한 K사무관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2013년 12월 해임됐다. 항명과 품위유지 손상죄가 이유다. 당시 그는 대학업무를 담당했다. 모 대학 보조금 사용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도 이 시점이다. 이 사안은 곧바로 윗선에 보고됐다. 하지만 함구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덮어둘 수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그러던 차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사실을 오픈했다. 이후 그에게 돌아온 것은 해임이었다. 이후 K사무관은 1년6개월 이상 법적투쟁에 나섰다. 그 사이 자신은 물론 아내까지 가정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렇지만 너무 억울했기에 그냥 덮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 진실이 통했던지 1ㆍ2심 법원은 그에게 손을 들어줬다. 이어 도가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최종 승소가 확정됐다. 사건일지는 대충 이렇다. K사무관 또한 문제가 없는 게 아닐 듯싶다. 오죽 그랬으면는 주위 말도 그냥 쉬이 넘어갈 게 아니다. 조직에 몸담은 이상 충성과 헌신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해임사건은 이제 일단락됐다. 해임처분이 잘못으로 판명된 이상, 도는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복직은 됐지만 그는 아직도 사무관직에 걸맞는 업무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 기능직이 담당하는 차량과적단속 업무에 투입돼 있다. 아까운 혈세가 낭비되는 현장이다. 걸맞는 직과 위안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함께 잘해보자는 경기연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수 정치부 차장

[지지대] 평화통일 콘서트

지난 7월1일 민주평통 제17기가 출범했다. 민주평통은 경기도를 비롯한 국내 17개 시도 이북 5도, 해외 5개지역(미주, 일본, 중국, 아세안, 유럽)에 지역회의를 두고 있다. 경기지역은 박해진 부의장이 연임되면서 16기에 이어 17기를 이끌게 됐다. 오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각 시도 지역회의, 시군 지역회의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민주평통(수석 부의장 현경대)은 오는 14일 통일준비 한마음 봉화 대축제를 마련했다. 이 행사는 범 국민적인 평화통일 염원과 통일준비 한마음을 하나로 이어 통일을 앞당기자는 의미로 전국 69개 지역 봉수대와 파주 임진각 등 70개 지역에서 열린다. ▶경기지역회의도 올해 처음으로 1천500여명의 민주평통위원이 참여하는 광복분단 70주년 평화통일콘서트를 오는 14일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개최한다. 김동건 아나운서, 가수 설운도, 주현미, 나현, 성악가 김동규, 이영숙, 경기소년소녀합창단, 웨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 등이 참여, 화합과 평화를 염원하는 평화의 대축제다. 더욱이 이번 평화통일콘서트는 광복 이후 시대와 노래를 접목한 통일콘서트로 이채롭다. ▶최근 미디어리서치가 한 언론사와 전국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통일의식을 조사한 결과, 86%가 남북한 통일이 가능하다고 응답했으며 남북한 통일까지 걸릴 시일에 대해서는 27.5%가 20년 이후라고 가장 많이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북한의 DMZ 목함지뢰 도발로 군 당국이 전방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는 등 최고 수준의 경계태세 발령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경기도는 올해 남북교류협력 예산을 지난해보다 대폭 늘였지만 목함지뢰 도발로 인한 대북 사업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면서도 통일을 위한 철저한 계획과 적극적인 준비도 잊지 말아야겠다. 정근호 정치부장

[지지대] 박기춘

박기춘 의원이 지난달 29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했다. 뇌물 혐의로 내사를 받는 사실이 알려진 지 한 달여만이다. 그의 모습을 취재하려는 기자 수십여명이 검찰 현관을 지켰다. 포토라인에 선 그가 입을 열었다. 국민 여러분과 남양주 시민 여러분, 국회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본인 관리를 엄격하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준비해온 듯한 한 마디를 남겼다.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어제(10일)는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어느 때보다 당이 어려운 상황에서 3선 중진 의원이 당에 오히려 누가 되고 있다. 30년 정치 여정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마무리하도록 기회를 갖고 싶다. 곧바로 새정치연합을 공식 탈당했고 무소속 신분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혐의 사실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정치자금과 과도한 축의금, 시계 선물 등의 수수 사실을 모두 인정한다. 역시 모든 것을 인정하는 내용이다. ▶우리 정치사에 금품 스캔들은 숱했다. 그중에도 최악은 차떼기 대선 자금이다. 2.5t 트럭에 실린 현금 150억원을 통째로 넘겨받은 사건이다. 이런 엄청난 비리가 처음 알려지던 2003년 10월 9일, 최돈웅 당시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비자금 수수설은 전혀 사실무근임을 이 자리에서 명백히 밝힙니다 구체적인 혐의 내용도 없이출석하라는 것은 검찰권의 남용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 진실이 드러났고 그는 전달자로 확인됐다. ▶금품 스캔들에 휘말리는 정치인들이 늘 이랬다. 우선 정치적 탄압이다라며 혐의를 부인한다. 이어, 당의 입장을 따르겠다며 검찰 소환에 버틴다. 모든 게 들통나는 순간에도 붙들고 늘어질 해명은 있다. 돈은 받았지만 대가성은 없었다. 요사이 매스컴을 오르내리는 금전 스캔들도 같다. 누구 하나 죄를 시인하지 않는다. 혐의가 드러나면 목숨을 내 놓겠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다. 이런 정치적 수사(修辭)에 이젠 국민도 진저리를 친다. ▶알려진 박기춘 의원의 혐의 사실은 가볍지 않다. 현금 2억7천만원을 받았고 명품 시계 2점, 고급 안마 의자도 받았다. 사법부의 엄한 처벌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눈여겨보게 되는 것이 있다. 회피하지도 않고, 부인하지도 않는 그의 태도다. 지금까지 봐 왔던 다른 정치인의 모습과는 분명히 다르다. 정치로 더럽혀진 과오에 대한 인간적 반성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설혹 소송 기술적 의도가 있다 하더라도- 그의 판단은 옳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정치인 박기춘 인생이 아니라 자연인 박기춘 인생이다. 구차한 정치는 불특정 유권자를 잃지만 구차한 인생은 평생 갈 주변인까지도 잃는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광복절 특사

2002년 개봉된 광복절 특사는 코믹영화다. 재필(설경구)은 조금만 참으면 애인 경순(송윤아)과 결혼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기 위해 모범적인 교도소 생활을 한다. 그러던 중 면회 온 경순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재필은 애인의 맘을 되돌리기 위해 탈옥을 결심한다. 빵 하나 훔쳐 먹고 신원이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감옥에 들어온 무석(차승원)은 억울함에 여러 차례 탈옥을 시도하다 형량만 늘어 최고참이 된 인물. 무석은 어느 날 숟가락 하나를 발견하고는 탈옥 루트 만들기 6년, 드디어 땅굴 파기에 성공해 재필과 함께 탈옥한다. 그러나 탈옥의 기쁨을 느끼기도 전, 이들은 자신들이 광복절 특사 명단에 끼어있음을 신문에서 보게 된다. 특사로 나왔으면 대문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었을 것을 너무 일찍 담을 넘어 버렸다.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는 웃음과 함께 인생은 타이밍이다를 역설한다. 정부의 8ㆍ15 광복절 특사 규모가 200만명에 이른다 하는데, 같은 제목의 이 영화가 생각났다. 이번 특별사면에는 민생 사범이 대거 포함된다. 도로교통법 위반 사범과 병역 관련 향군법 위반 사범, 가벼운 생계형 절도범과 부정수표단속법에 걸린 중소기업인 등이 대상이다. 통상 교통법규 위반 사범이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데, 이번에도 운전면허 벌점 보유자, 면허 정지자나 면허 취소자 등의 상당수가 혜택을 보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절 특사와 관련 경제 살리기와 국민 사기 진작이라는 큰 방향을 제시했다. 이번 사면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상 전 LIG넥스원 부회장 등 상당수 재벌 총수가 포함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강력범이나 파렴치범, 비리 정치인은 제외된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재벌 총수와 경제인 특별사면에 대해 반대 54%, 찬성 35%로 나타났다. 정치인 특별사면에 대해선 반대 79%, 찬성 12%였다. 재계에 비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역대 정권마다 국민 대화합을 앞세워 계기가 있을 때마다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하지만 국민 눈에는 여야 정치인과 기업인 봐주기 사면으로 보인다. 광복절 사면이 지지를 받으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사면 기준을 분명히 밝히고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실시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광복절 국민 대합창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광복절에는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유난히 관심을 끄는 것이 합창이다. 전국에서 시민들과 함께 하는 대규모 합창공연이 펼쳐진다. KBS는 나는 대한민국이란 국민 대합창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나는이란, 신-나는, 힘-나는, 빛-나는의 의미를 함축한 것으로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라는 자부심과 자존감을 갖게 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주제곡은 가수 이승철이 만든 우리 만나는 날이다. 8월 15일 저녁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7만 국민합창단이 하나 돼 이 노래를 부르게 된다. 합창단에는 광복 70년을 맞아 70세 어르신들로 구성된 1945 합창단, 김연아의 연아합창단, 조영남과 국회의원 14인,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로 구성된 아침합창단 등이 국민 7만명과 함께 한다. 광복절을 단순한 기념일이 아닌, 온 국민이 함께 즐기고 축하하는 역사적인 축제 개념으로 기획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함께 공감할 감성을 합창이라는 도구에 담아낸다. 같은 날 서울 잠실 올림픽 주운동장에서도 수만명이 모여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는 축제가 펼쳐진다. 지구상 마지막 분단의 땅인 한반도의 통일과 인류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로 축제 이름은 2015 우리의 소원 천만의 합창- 나비 날다다. 축제엔 소프라노 조수미와 21세기 최고 테너로 손꼽히는 로베르트 알라냐가 출연한다. 피날레는 오후 8시 15분에 시작하는 우리의 소원 대합창. 1만명의 시민 합창단과 5만명의 관객이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부른다. 같은 시각, 미국ㆍ일본ㆍ러시아ㆍ독일 등 전 세계의 재외동포들도 이 노래를 부르게 된다. 수원에서도 15일 저녁 8시 수원 제1야외음악당에서 7000인의 시민 대합창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수원시는 7월 한 달간 대합창 시민가수를 모집했는데 9천326명이 접수해 뜨거운 참여 열기를 보여줬다. 수원유스콰이어, 수원기독남성합창단, 삼성전자 디지털시티합창단, 봉녕사 우담화합창단 등 관내 합창단뿐 아니라 전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시민들이 대거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시립교향악단의 반주에 맞춰 아침이슬 아름다운 강산 한국환상곡 등 3곡을 부른다. 광복절에 합창으로 하나 되는 대한민국이다.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뜻으로 대한민국의 평화와 희망을 노래하며 가슴 뜨거워지는 날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아프리카의 눈물

슬프도록 아름다운 눈망울을 가진 검은 피부의 아이들, 광활한 초원과 사자ㆍ기린ㆍ얼룩말 같은 야생동물 등 거룩한 대자연을 품고 있는 아프리카. 지난 4일 같은 부서에 있는 후배가 월드비전과 동행해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후배를 보내며 2011년 2월 봉사활동 차 갔다 왔던 아프리카 가나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태국과 케냐를 경유해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가나의 수도 아크라였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잘 발달된 아크라의 모습은 당시 생각해왔던 아프리카와는 달랐다. 이런 곳에서 무슨 봉사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버스를 타고 봉사활동의 목적지인 크라치웨스트로 가는 동안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1시간 정도를 가니 1990년대의 모습이 나타났고, 1시간을 더 가니 1980년대의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1시간을 또 가니 경험해보지 못했던 1960년대가 연상됐다. 목적지로 향할수록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이랄까. 그로부터 크라치웨스트에 사는 부족을 방문해 목도한 그들의 집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방이 하나만 있는 집은 온갖 잡동사니와 쓰레기로 가득했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짐승들이 사는 우리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그곳은 우물을 파기 위해 방문한 마을이었다. 부족민들은 호소했다. 오염된 물을 식수로 사용하면서 발생한 피부병과 각종 질환을 앓고 있는 몸을 보여주면서 이곳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은 우물에서 퍼올린 물이 담긴 큰 대야를 머리에 이고 걷는 아이들의 행렬이다. 마을에서 우물까지 1~2시간은 기본으로,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와 어깨를 짓누르는 일상의 무게라는 핑계같지 않은 핑계로, 4년 전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이들의 가슴 아린 모습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본다.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에, 좀 더 낮은 곳을 살피며 나보다 못한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고자 했던 아프리카에서의 다짐을 다시 한번 일깨워 본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지지대] 악플과 뒷담화

악플은 악(惡)과 영어의 reply가 합쳐진 말로 고의적인 악의가 담긴 댓글이다. 악플의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다고 한다. 어느 유명 여배우가 악플 충격으로 직접 머리를 자른 뒤 다소 헝클어진 모습으로 예능프로그램 제작발표회에 나섰는가 하면 구수한 입담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한 셰프(요리연구가)는 아버지의 불미스러운 사건과 관련된 악플에 시달리며 프로그램을 일시 하차하기도 했다. 더욱이 잊힐 만하면 터지는 악플과 관련된 연예인 자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곤 했다. 이런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 악플의 근간은 뒷담화라고 할 수 있다. 담화(談話)와 우리의 뒤(後)가 합쳐져 생긴 말로 보통 남을 헐뜯거나 뒤에서 하는 대화를 말한다. 사실상 두 명 이상 모이면 남 얘기하길 좋아하는 건 인간사 전형적인 심리다. 하지만 그 내용이 칭찬 일색이 아닌 누군가의 단점으로만 가득한 부정적인 내용이라는 게 뒷담화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이런 사정에 뒷담화로 초래되는 사건도 만만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20대 남성이 대학시절 동아리 친구가 자신을 험담했다는 이유로 흉기를 휘둘렀는가 하면 한 마트에서 일하는 40대 남성이 평소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했다는 이유로 동료 여성직원을 흉기로 위협하기도 했다. 뒷담화가 강력사건의 주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인 암 존재가 돼버린 악플과 뒷담화에 대해 선플이나 칭찬하기 운동, 명예훼손 고소를 통한 법적인 강경절차 등 여러 방지책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과는 극히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훗날 미래를 고려해 어린 청소년을 중심으로 인성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대부분 악플러나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뒷담화 중독자(?)는 자신들의 행동이 잘못됐다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실질적인 인성 교육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것이 이들을 양산한 주원인으로 볼 수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다. 앞으로 사회적 반목과 갈등을 야기하는 악플러나 뒷담화 중독자를 최소화시키기 위해선 그동안 소홀히 했던 인성교육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용성 사회부장

[지지대] 한국어 대 일본어

축구 국가 대표팀 슈틸리케 감독은 1954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62세로 지난해 취임 당시 회갑이었다. 40대 감독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축구 풍토와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도자로 쌓아온 경험이 화려하지도 않다. 35살이던 1989년 스위스 대표팀을 맡으며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이렇다 할 성적은 없었다. 2006년 아프리카 코트디브아르 대표팀을 맡아 잠시 선전했다. 그러나 아들이 사망하면서 이 역시 도중하차했다. 팬들의 첫 평가는 반신반의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 인기 몰이 중이다. 여기엔 대표팀 성적 외에 그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접근법이 있다.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한국어 구사다. 호주 아시안컵을 앞둔 2014년 12월 31일. 새해 첫 인사를 보내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한국어였다. 결승전 직후에는 적어온 한국어를 꼼꼼히 읽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다음날 모든 기사의 제목은 그의 이 말이었다. 지금 국민은 슈틸리케에게 더 없는 신망을 보내고 있다. 이게 한국이다. ▶아키오모 야메사세탄다로?(신동빈도 그만두게 했잖아?)<신격호>. 야메테나이데스(안 그만뒀습니다)<신동주>.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 회장과 아들 신동주씨의 대화다. 동주씨 측이 공개했다. 그런데 여론이 거꾸로 갔다. 롯데 창업주가 재일동포라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총수 부자의 악센트 강한 일본어 대화를 듣는 국민의 반응은 달랐다. 신격호 회장의 일본인 부인, 일본인 며느리까지 롯데의 친일(親日) 가계도가 모두 털렸다. 롯데 불매 운동 조짐까지 꿈틀거렸다. ▶동생 동빈씨가 3일 귀국했다.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사과했다. 먼저 국민 여러분께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서 진짜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어였다. 그룹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도 롯데는 한국기업입니다라며 한국어로 답했다. 이후 여론에 변화가 느껴진다.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누가 한국말을 하느냐로 관전 포인트가 바뀌는 듯하다. 일본어 하는 형과 한국어 하는 아우의 경쟁으로 바뀌어 가는 듯하다. ▶국내 5위의 대기업이다. 자산 규모만 91조원(2014년 기준)이다. 회사를 움직이는 힘은 주식에서 나온다. 후계자가 쓰는 언어는 어떤 구속력도 갖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술렁인다. 일본 기업을 키울 수 없다부터 롯데는 망해야 한다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이 모습 역시 한국이다.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문자와 하나의 언어로 반만년을 살아왔다는 자긍심으로 뭉쳐 있는 한국의 모습이다. 신격호-신동주 부자의 적나라한 일본어 대화가 그런 민족적 자긍심을 건드렸다. 적어도 여론전의 승부는 한국어로 결판나는 듯 보인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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