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노블레스 오블리주

김규태 경제부 차장 kkt@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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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프랑스어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최근 경영권 승계로 세간의 관심을 받은 ‘롯데판 왕자의 난’ 사태로 재벌들의 승계 문제가 또다시 부각되고 있다. 국내 재벌들은 1세대 창업주에서 2세대, 3세대로 넘어가면서 극히 일부 지분만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래서 가족 간 싸움이 붙어 그룹이 쪼개지는가 하면, 자신이 적자임을 내세우려고 여론전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있는 사람들이 더한다’는 비아냥 섞인 말까지 나오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40대 재벌 가운데 거의 절반인 17개 기업에서 혈족 간의 분쟁이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을 물려주려다 횡령, 배임 등으로 구속되는 일도 허다했다. 심지어 가족 간 고소ㆍ고발 사례도 드물지 않다.

롯데그룹은 분쟁 끝에 신격호 총괄회장의 차남인 신동빈 회장이 경영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세습 경영의 문제, 순환출자, 일본 그룹이라는 인식에 따른 이미지 추락 등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발렌베리 그룹은 대표적인 세습 기업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5대째 150여 년 동안 세습 경영을 하고 있다. 부모 도움 없이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유학을 해야 하며, 해군 장교로 복무해야 가문의 경영진으로 합류할 수 있다는 조건을 둔다.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능력부터 갖춰야 하는 것이다.

발렌베리 그룹은 매년 그룹 이익금의 85%를 법인세로 납부하고, 그룹 재단의 수익금도 학술지원 등 공익을 위해 쓴다. 세습 기업이지만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의 대명사다.

국내 재벌들도 상속과 독점에만 눈이 멀기보다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책임과 전문성을 확립하는 동시에 도덕적 의무를 다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재탄생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김규태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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