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한국어 대 일본어

김종구 논설실장 kimjg@kyeonggi.com
기자페이지

축구 국가 대표팀 슈틸리케 감독은 1954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62세로 지난해 취임 당시 회갑이었다. 40대 감독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축구 풍토와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도자로 쌓아온 경험이 화려하지도 않다. 35살이던 1989년 스위스 대표팀을 맡으며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이렇다 할 성적은 없었다. 2006년 아프리카 코트디브아르 대표팀을 맡아 잠시 선전했다. 그러나 아들이 사망하면서 이 역시 도중하차했다. 팬들의 첫 평가는 ‘반신반의’였다. ▶그랬던 그가 지금 인기 몰이 중이다. 여기엔 대표팀 성적 외에 그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접근법이 있다. 중요한 순간마다 등장하는 한국어 구사다. 호주 아시안컵을 앞둔 2014년 12월 31일. 새해 첫 인사를 보내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한국어였다. 결승전 직후에는 적어온 한국어를 꼼꼼히 읽었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다음날 모든 기사의 제목은 그의 이 말이었다. 지금 국민은 슈틸리케에게 더 없는 신망을 보내고 있다. 이게 한국이다. ▶“아키오모 야메사세탄다로?(신동빈도 그만두게 했잖아?)” <신격호> . “야메테나이데스(안 그만뒀습니다)” <신동주> . 롯데그룹 신격호 총괄 회장과 아들 신동주씨의 대화다. 동주씨 측이 공개했다. 그런데 여론이 거꾸로 갔다. 롯데 창업주가 재일동포라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총수 부자의 악센트 강한 일본어 대화를 듣는 국민의 반응은 달랐다. 신격호 회장의 일본인 부인, 일본인 며느리까지 롯데의 친일(親日) 가계도가 모두 털렸다. 롯데 불매 운동 조짐까지 꿈틀거렸다. ▶동생 동빈씨가 3일 귀국했다.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사과했다. “먼저 국민 여러분께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에 대해서 진짜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어였다. 그룹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도 “롯데는 한국기업입니다”라며 한국어로 답했다. 이후 여론에 변화가 느껴진다.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누가 한국말을 하느냐’로 관전 포인트가 바뀌는 듯하다. ‘일본어 하는 형’과 ‘한국어 하는 아우’의 경쟁으로 바뀌어 가는 듯하다. ▶국내 5위의 대기업이다. 자산 규모만 91조원(2014년 기준)이다. 회사를 움직이는 힘은 주식에서 나온다. 후계자가 쓰는 언어는 어떤 구속력도 갖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은 술렁인다. ‘일본 기업을 키울 수 없다’부터 ‘롯데는 망해야 한다’라는 표현까지 나온다. 이 모습 역시 한국이다.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문자와 하나의 언어로 반만년을 살아왔다는 자긍심으로 뭉쳐 있는 한국의 모습이다. ‘신격호-신동주’ 부자의 적나라한 일본어 대화가 그런 민족적 자긍심을 건드렸다. 적어도 여론전의 승부는 ‘한국어’로 결판나는 듯 보인다.

김종구 논설실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