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리멤버 416

아이들은 수학여행 중이었다 / 교실에서처럼 선실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그 말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앉아 있었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움직여라/ 누군가 이 말이라도 해주었더라면/ (나희덕 시 난파된 교실 일부) 돌려 말하지 마라/ 온 사회가 세월호였다/ 오늘 우리 모두의 삶이 세월호다/ 자본과 권력은 이미 우리들의 모든 삶에서/ 평형수를 덜어냈다(송경동 시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일부)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제주를 운항하는 대형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것이다. 이 사고로 안산 단원고 학생 250명을 비롯해 304명이 희생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에는 봄이 없다. 개나리와 벚꽃 천지인 남도의 봄은 당시 사망자들을 수습하느라 섬 전체가 통곡과 슬픔에 묻혔다. 아픔은 참사 1주년을 맞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시신을 찾아달라며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실종자 가족이었던 유가족들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있다. 이들을 지켜보는 진도 주민들의 속도 타들어간다. 함민복의 시처럼 숨쉬기도 미안한 4월이다. 요즘 팽목항은 하루 1천여명의 추모객이 다녀갈 정도로 다시 북적인다. 팽목항엔 살아남은 자들의 리멤버 416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살아남은 자들의 다짐과 약속이 담겨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방파제 끝에 위치한 3m 높이의 빨간색 희망의 등대다. 등대는 세월호 침몰로 숨진 304명의 숫자만큼 계란 모양의 전등이 장식돼 있는 설치작품이다. 등대 앞에는 기억하라 416이란 글자를 새긴 부표가 떠있다. 등대 옆 우체통에는 주인 잃은 편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팽목항은 물론 전국에서 세월호 추모 물결이 일고 있다. 지난 10일 저녁엔 안산 고잔동에서 고교생 2천여명이 모여 추모문화제를 가졌다. 안산의 한 상가건물엔 건축계 인력들이 희생자 304명의 생전 흔적을 모아 세월호 기억저장소를 만들었다. 또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아들인 숀은 팽목항에서 4.16km 떨어진 무궁화동산에 세월호 기억의 숲을 조성하고 있다. 역사적 비극 앞에 말을 잃은 이들이 글로, 노래로, 몸으로, 각자 가진 재능으로 세월호를 기록하고 있다. 또 가슴으로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다. 세월호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백금세대

백금(platinum)은 스페인어로 작은 은이란 뜻의 platina에서 나왔다. 이는 은과 아주 비슷하지만 가공이 불가능한 금속으로 여겨져 붙여진 이름이다. 신용카드나 회원 등급을 매길 때도 플래티넘이 실버나 골드보다 높은 등급인 데서 볼 수 있듯 백금은 귀금속 중에서도 최고의 등급이다. 최근 백금세대가 뜨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인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1차 베이비부머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법적 정년에 들어서기 때문에 이들의 은퇴ㆍ노후 준비는 투자업계에서도 중요한 화두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50세 이상의 시니어 세대로 진입한 만큼 기존에 연장자를 통칭하던 시니어 또는 실버세대와 같은 개념으로 묶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1차 베이비부머들을 부자 세대(Wealthiest Generation)이면서 높은 정치 참여율(High Political Participation)과 높은 교육 수준(Intellectual Desire)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힘(Trend Maker)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인생 이모작(Encore Career)을 준비하는 세대라고 진단했다. 앞선 시니어 세대와 차별화되는 특징으로 할아버지 경제의 부각(Grandparent Economy)과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Old body, Young mind)이라는 생각, 강해지는 여성의 의사결정권(Lady First), 다양성(Diversity of Senior) 등을 꼽았다. 연구소는 이들의 모습과 트렌드를 종합해 시니어 그룹으로 진입한 1차 베이비부머 세대를 화이트골드(WHITE GOLD), 이른바 백금세대로 정의했다. 겉보기엔 은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가치가 훨씬 높은 백금에 비유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자산을 보유한 세대는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한 50대로 평균 자산은 4억3천만원이다. 과거에는 시니어라고 하면 부양 대상으로 생각했지만 자산을 축적한 베이비부머가 시니어 세대로 편입되면서 경제적 주도권 또한 자연스레 시니어 세대에게 넘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 60세 이상과는 확연히 다른 1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근거로 새로운 시니어 개념을 정립할 때가 됐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세월호 1주기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 당시 온라인뉴스팀장을 맡고 있던 기자는 텔레비전 자막을 통해 속보 처리 뉴스로 세월호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된다. 그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 학생 등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뉴스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내 탑승자 전원 구조라는 방송 자막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이 보도가 오보로 판명나면서 대한민국은 차디찬 바닷물 속에 갇힌 어린 학생들이 끝까지 살아남기를 바라는 기적과 온국민의 성원으로 들썩였다. 하지만 구조 과정의 어려움으로 인한 지체로 사망자가 하루하루 늘어나고, 선장을 비롯한 세월호 책임자들이 자기만 살자고 배와 탑승객을 버린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은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끝내 9명의 실종자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 4월16일은 세월호 침몰 사건이 발생한지 꼭 1년이 지난날이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며칠 전 정부가 숨진 학생들과 교사들에 대한 보상 규모를 밝혔지만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전히 해양수산부 청사 앞에서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실종자와 제대로 된 사건 원인 규명을 위해 필요한 세월호 인양을 1년 가까이 끌어온 정부가 인양 여부를 놓고 여론수렴을 듣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다. 국가를 운영하는 고위직들이 이같은 의견을 낸 이면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원하는 유가족의 마음까지 헤아리고 그들의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는 대안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세월호는 우리에게 안전 불감증을 일깨워준 반면 개개인의 마음 속에 반목을 심어주고, 진실을 믿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제 그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근데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지 못하는 분위기로 흐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세월호 사건은 정쟁과 이익이 우선시 되는 사안이 아니다. 우리는 진정 어른으로서, 책임자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1주년을 맞은 세월호 사건. 다시는 이같은 아픔이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스스로를 다시 한번 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다. 김규태 경제부 차장

[지지대]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경기도 등 광역자치단체에는 국제관계 역량 강화를 위해 전문성 높은 외무공무원이 지방자치단체 국제관계 대사로 근무하고 있다. 국제관계대사는 국제업무 중 단체장이 지시한 사항의 검토ㆍ지원, 지방자치단체의 국제협력사업에 대한 계획의 수립 지원, 해외교류사업의 활동 지원, 중앙부처 및 지방자치단체 간 국제협력 효율화 도모 등을 통해 시ㆍ도지사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경기도는 1990년 12월 소병용 국제관계대사가 첫 발을 내딛었으며 현재 이용준 대사와 최종현 대사까지 모두 25명이 활동했다. 이들의 임기는 대부분 1~2년이며 타 광역지자체와 달리 경기도에는 2명의 국제관계대사가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은 2003년 9월~2004년 8월까지 1년여간 경기도 국제관계 대사로 근무한 뒤 2006년 1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제34대 외교통상부 장관을 역임했다. 신정승 전 주중국대사, 김종일 전 주스위스대사, 최충주 전 주파키스탄대사, 백영선 전 주폴란드대사 등을 비롯해 현직으로는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 석동연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차관급), 이병화 주노르웨이대사, 김성진 주애틀란타총영사 등이 경기도 국제관계대사를 지냈다. 지난 7일 경기도의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국제개발협력사업 추진을 위해 손을 잡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김영목 이사장도 지난 2006년 2월부터 1년6개월 동안 경기도 국제관계대사를 지낸 바 있다. 이처럼 경기도에 발을 디딘 국제관계대사들은 이후 행보에서도 승승장구했으며 이들의 풍부한 외교 경험, 국제적 인적 네트워크는 세계 속의 경기도를 알리는 데 보탬이 되고 있다. 민선 6기 남경필 호가 출범하면서 여느 때보다 지방외교를 강조하고 있다. 지방정부 처음으로 외교정책과를 신설하고 지방 외교의 격을 높이기 위해 국립외교원과 상호협력 협약을 체결한 것도 그 일환이다. 격을 높인 세계 속의 경기도 지방외교에 경기도 국제관계대사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정근호 정치부장

[지지대] 이기우 부지사와 火葬場

명문 고등학교라 일컬어지는 기준은 다양하다. 오랜 전통일 수도, 높은 진학률일 수도, 화려한 동문일 수도 있다. 화려한 동문은 그 중에도 가장 흔히 적용되는 기준이다. 국회의원 몇 명, 장관 몇 명, 판ㆍ검사 몇 명, 장군 몇 명. 이 기준이 지역에 오면 고위 공직자 몇 명, 시장 몇 명, 시ㆍ도 의원 몇 명으로 바뀐다. 이 기준에 의해 명문으로 부각되는 도내 고등학교들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수원의 유신고등학교가 있다. ▶경기 남부의 중심인 수원권 주변의 시장들이 유신고 출신이다. 용인시장(정찬민ㆍ4회)과 화성시장(채인석ㆍ7회)이다. 또 주목되는 건 경기도 고위직에의 포진이다. 부지사 3명 가운데 김희겸(행정 2ㆍ7회) 이기우(사회통합ㆍ10회) 부지사 등 2명이 유신 동문이다. 경기도정 역사에서 부지사 직책이 이렇듯 특정 고등학교 출신에 집중(?)됐던 적도 없다. 지금 경기도 정치 행정의 중심에 유신고가 있다는 동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화성 화장장 문제가 끝없이 대립하고 있다. 화성시민과 수원시민의 이익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화장장 설치는 5개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광역행정이다. 결국엔 경기도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경기도의 활약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못 푸는 것인지 안 푸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못 푼다면 무능이고 안 푼다면 직무유기다. 그 사이 양 시(市)의 대표자 공개토론에서는 육두문자 직전의 막말까지 나왔다. ▶이기우 부지사의 정식 직함은 사회통합부지사다. 지자체간 통합 조정 기능도 당연히 포함된다. 여기에 화장장 설치를 총괄하는 복지분야의 책임자다. 정치적으로도 이 부지사의 일이고, 행정적으로도 이 부지사의 일이다. 여기에 인맥까지 얽혀 있다. 화성 채 시장과는 유신고 3년 선후배다. 수원 염 시장(수성고ㆍ22회)과는 지역 내 오랜 정치 동지다. 행정ㆍ정치에 인맥까지 얽혀 있는 것이 이 부지사와 화성 화장장의 관계다. ▶행정행위를 풀면서 학연(學緣)을 빌미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화성 화장장 문제-특히 수원시와 화성시의 관계-는 행정마찰 이전에 정서적인 충돌이다. 인연을 고리 삼은 정서적 접근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 부지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이기우 부지사가 언젠가 수원 시장에 출마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리 틀린 소문만도 아닌 듯하다. 어쩌면 미래의 어느 날 이 부지사에겐 이런 질문이 쏟아질지 모른다. 2015년 화장장 충돌 때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 그 때 뭐라 할 건가. 궁금하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태교도시 용인

한국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한 살이 된다.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10개월 동안을 생명체로 보기 때문이다. 뱃속에 있는 동안 아이는 바깥의 소리를 듣고, 엄마가 먹는 것을 같이 먹고, 엄마와 감정을 똑같이 느낀다. 엄마의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태아에게 그대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태교를 중요시했다. 조선시대 여성들도 태교를 했다. 임신을 하면 몸가짐을 반듯하게 하고 옛사람의 태교법에 따라 실천했다. 이사주당(李師朱堂ㆍ17391821)은 조선후기 태교신기(胎敎新記)라는 책을 지어 태교의 중요성을 알린 여성이다. 태교신기는 1800년에 한문으로 지어진 세계 최초의 태교 관련 저술이다. 자녀 교육을 제일의 관심사로 여겼던 이사주당은 여범과 소학 등에 소개된 태교법과 민간에 전승되는 태교 등을 수집하고, 자신이 네 아이를 임신하고 낳아 기르며 경험한 것들을 태교신기에 실었다. 언문지를 비롯해 100여권의 저서를 남긴 실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유희가 이사주당의 아들인 것도 우연은 아닌 듯하다. 사주당은 62세의 나이에 이 책을 썼는데 20년이 지나 아들 유희가 책의 내용을 편집해 만든 것이 오늘날 전해지는 태교신기다. 유희는 사주당의 글을 10편으로 나누고 우리말로 해석했다. 태교의 중요성, 조용한 환경과 편안한 마음가짐, 올바른 생각과 일하기, 먹기, 자기 등 구체적인 태교 실천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사주당은 태교의 목표를 인성을 갖춘 군자에 뒀다. 사주당은 태교신기를 통해 스승의 가르침 10년이 어머니의 뱃속 교육 10개월만 못하고, 어머니의 10개월 교육이 아버지가 잉태시키는 하루를 삼가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며 아버지의 도리도 강조했다. 또 태교는 임산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온가족이 함께하는 것이라며 가족태교의 중요성도 일깨웠다. 이사주당은 용인시 모현면에 잠들어 있다. 용인시는 태교신기가 매몰돼가는 인간성을 회복하고 각종 사회병리를 치유할 수 있는 지역의 훌륭한 문화유산이라고 보고 태교도시를 지역 브랜드화하기로 했다. 8월 중 태교도시 선포식을 갖고, 태교축제도 펼칠 계획이다. 용인시가 태교도시라는 독특한 브랜드로 출산율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사거용인(死居龍仁)의 이미지를 벗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살고싶은 도시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호세 무히카

호세 무히카. 지난달 1일 퇴임한 전 우루과이 대통령이다. 요즘 우리 국민들이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에 열광하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호세 무히카의 어록과 사진들을 경쟁적으로 올리고 있다. 나는 가난하지만 마음은 절대 가난하지 않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삶을 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동정이 아니라 기회입니다. 그의 어록들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의, 그것도 퇴임한 대통령에게 이렇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출판업계에서도 그의 평전 조용한 혁명을 국내에 번역, 출간하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80)은 세상에서 가장 검소한 대통령으로 불렸다. 그는 재임 중 대통령궁을 노숙인에게 내주고 농장에서 생활하면서 월급의 90% 이상을 자신이 속한 정당과 사회단체, 서민주택 건설 사업에 기부했다. 수도 몬테비데오 외곽에 있는 자택은 검소함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 집은 거실과 방, 부엌이 1개씩밖에 없는 허름한 농가로 대통령의 집이라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무히카 대통령은 취임후 직원 42명이 관리해 오던 대통령 관저를 노숙인 쉼터로 개방하고 해변 휴양도시에 있던 대통령 별장을 팔아버렸다. 자신은 농가에서 직접 출퇴근했다. 대통령이 된 뒤 달라진 것이라면 경호를 위해 경찰 2명이 인근에서 대기했다는 것뿐이었다. 무히카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의 검소함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제정신이 아니다. 내가 평범하게 산다고 놀라워하는데, 그런 관점이 오히려 걱정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퇴임 때 낡아빠진 1987년형 폴크스바겐 비틀을 몰고 대통령궁을 떠났다. 대통령에 당선됐던 5년 전에 이 차를 직접 몰고 출근했던 것처럼. 국민은 그를 열렬하게 지지했다. 물러나는 대통령의 지지율이 65%나 됐다. 이런 지지율의 밑바탕엔 그의 검소한 모습만 작용한 것이 아니다. 주말에 농사를 짓고, 태풍이 오면 동네 이웃의 집을 고쳐주기 위해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재임 기간 평균 5%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우리 국민이 그를 존경하고, 국내에서 조명받는 것은 사회 지도층에 대한 불신과 함께 국내 정치인들에겐 없는 진정성과 헌신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할머니 예비군

매년 4월 첫째 금요일은 향토예비군의 날이다. 향토예비군은 지난 1968년 북한이 청와대 습격을 위해 무장공비를 침투시킨 121사태와 미국의 첩보함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을 계기로 국민의 반공안보의식을 고취시키고, 북한의 4대 군사노선에 대응하고자 지난 1968년 4월 1일에 창설됐다. 예전 어른들은 만 40세가 지나면 민방위 훈련 소집 대상에서도 제외된다며 이젠 나라에서도 쓸모없는 사람이 됐다고 투덜(?) 되는 이야기를 곧잘 들었다. 본인은 올해 만 40세로 민방위 훈련 마지막 연차다. 이제 나도 쓸모 없어지는 건가. 그러나 웬걸 지난달 27일 환갑의 할머니 박용옥씨(60)가 51사단 과천시 여성예비군 소대 창설식에서 딸만 둘이라 나라도 국가 안보에 힘을 보태고 싶어 지원하게 됐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것도 박 할머니는 1.5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여성예비군 소대원으로 선발됐다. 지난 1989년 백령도에서 처음 창설된 여성예비군은 18세 이상 여성은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기간은 2년이지만 연장할 수 있고 거주지 시군구에 신청하면 결원이 생길 때마다 입대 기회를 준다. 1년에 6시간 훈련을 받고 보수는 없다. 현재 전국에 6천여명의 여성예비군이 활동하고 있다. 할머니의 지원 동기를 곱씹어보면 남자들처럼 군 복무는 못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국방의 의무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가진 여성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20여 년 전 대학시절 교양과목으로 양성평등과 관련한 과목을 수강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남성의 취업시 가산점 부여를 놓고 언쟁을 벌이다 여성 스스로가 남성과 같이 군대와 비슷한 수준의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 경험이 있다. 물론 여자들을 남자와 똑같이 군대에 보내야 된다고 주장할 정도로 못난 놈은 아니다. 20여 년이 지난 현재 세상은 정말 많이 변했다. 박 할머니의 예비군 지원은 여성의 국방의무와 안보의식에 대한 인식 변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앞으로 소집 대상에서 제외된 남성들의 자발적 예비군 지원도 받아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최원재 정치부 차장

[지지대] ‘욱병’

최근 들어 욱병(분노조절장애)으로 야기되는 사회파장성 대형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순간적으로 감정 조절이 안돼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은 충격은 물론 답답함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근래 발생한 욱병 관련 주요사건은 이렇다. 욱병 환자의 대명사가 돼버린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과 올 초 인천 어린이집 보육교사 4세 여아 폭행은 전국민을 부글부글 들끓게 할 정도로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2월 양주에서는 50대 여성이 마트 인수 문제로 주인과 실랑이를 벌이다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르는 바람에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는 분신까지 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화성에서는 재산문제로 화를 참지 못한 70대 동생이 80대 형과 형수, 출동한 경찰까지 엽총으로 쏴 살인하는 엽기적인 일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또 지난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과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살해당한 여성이 무려 31명이나 되는 것만 봐도 욱병의 치명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앞뒤 헤아림 없이 격한 마음이 불끈 일어나는 욱병은 사람들 인성정도에 따라 표현하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치밀어 올라 자신을 억제하지 못해 헐크가 되는가 하면 화를 내기에 앞서 내면 깊숙이 맘을 눌러 자아조절을 하는 천사형이 있다. 심리학자들은 수많은 헐크를 위해 욱병 예방 및 극복의 일환으로 길고 긴 심호흡과 눈을 감고 숫자 세기 등 현재 일어난 분노상황을 잊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가족, 친구, 연인과의 편안한 대화나 자신에 맞는 운동과 등산도 욱병 극복방법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자신 스스로 욱병을 이겨낼 수 있음을 격려하는 자신에 대한 사랑법도 주요한 방법으로 제시한다. 기자도 사실 한 욱병하는 환자 아닌 환자였다. 다행히 요즘 들어 욱병을 이겨내기 위한 여러 방법을 동원한 끝에 서서히 욱병을 이겨나가고 있다. 이에 기자의 욱병 대처방법을 제시하려 한다. 어떠한 극한 상황이 있을 때 마다 자신의 얼굴이 보이는 거울을 보는 습관을 가지면 어떨까 싶다. 참을 인(忍)을 맘속으로 외치면서 말이다. 이용성 사회부장

[지지대] 위플래쉬·서편제

들을 만한 데도 없이 천허기만 한 소리요. 송화(오정혜 扮)가 말한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터이니 사양치 말고 좀 들려주시오. 동호(김규철 扮)가 부탁한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누이와 동생이다. 그 사이 장님이 된 누이의 소리와 동생의 북소리가 어우러진다. 그때으 심봉사가 부친 눈을 띄우려고 만경창파를 떠나는디. 7분 43초 동안 이어지는 심청가 롱테이크다. 한국 최고의 음악 영화 서편제의 명장면이다. ▶득음의 경지에 오른 송화의 창법이 원숙하다. 외국 평론가들은 이 부분을 궁금해했다.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주인공의 음색 때문이었다. 사실 이때의 심청가는 오정혜의 것이 아니다. 명창(名唱) 안숙선이 불렀고 오정혜는 입을 맞췄다. 소리꾼 출신 배우 오정혜조차 양에 차지 않았던 임권택 감독의 욕심이었다. 음향의 끊어짐을 감수하면서까지 추구했던 완성도에 대한 고집이었다. 관객 113만명이 들며 당대 최고의 영화로 기록됐다. ▶앤드류(마일즈 텔러 扮)는 최고의 드러머를 꿈꾸는 학생이다. 최악의 폭군 교수 플렛처가 스승이다.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을 하지만 돌아오는 건 폭언과 모욕뿐이다. 급기야 스틱을 가지러 갔던 앤드류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오지만 플렛처는 시간이 늦었다며 자리를 빼앗는다. 그 사이 앤드류는 서서히 최고의 드러머로 발전해 간다. 상영 중인 미국 음악 영화 위플래쉬 (Whiplash)다. ▶이 영화 마지막에도 9분짜리 롱테이크가 나온다. 재즈 명곡 카라반(Caravan)에 실린 앤드류의 드럼이 불을 뿜는다. 최고의 드러머만이 할 수 있는 연주다. 대역은 없었다. 주인공 마일즈 텔러가 연주했다. 6살부터 피아노, 15살부터 드럼을 연주했던 그다. 이 영화만을 위해 하루 4시간씩 피나는 연습을 했다. 연습 도중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영화 장면은 실제에서도 수없이 목격됐다. 이런 위플래쉬에 아카데미는 남우조연상, 음악상, 편집상을 안겼다. ▶1993년, 명창이라는 대역을 써서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던 한국 음악 영화 서편제. 2014년, 배우의 솔직한 땀을 통해 음악가의 혼을 표현한 미국 음악 영화 위플래쉬. 두 영화 사이에는 2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와 동서양이라는 공간적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관객에게 전달되는 감동은 하나다. 예술의 끝을 향한 인간의 처절한-어쩌면 죽음 직전까지 다가서는- 도전정신. 두 영화가 위대한 이유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실버 운전

친구의 어머니는 76세인데 운전을 하신다. 시내 운전은 물론 지인들과 인근 나들이도 자주 나가신다. 친구는 어머니가 운전을 할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차를 같이 타봤는데 차선을 밟고 달리는가 하면,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뒤늦게 출발하기 일쑤다. 이젠 운전대를 놓으라고 말해도 운전경력이 30년 넘는다며 화를 내신다. 그 어머니는 지난해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무난히 넘기고 면허증을 갱신했다. 실버 운전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령 운전자가 늘어나고 교통사고 발생률 또한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엔 74세 운전자가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액셀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60세 남성을 치어 숨지게 했다. 3월엔 85세 운전자가 도로와 인도 사이의 안전 펜스를 뚫고 상가 건물로 돌진한 사고도 있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교통사고는 지난 2009년 23만1천990건에서 지난해 22만3천552건으로 감소했지만,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1만1천998건에서 2만275건으로 5년 사이 배 가까이 늘었다. 노인이 되면 집중력과 신체 반응 속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실버 운전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고령 운전자들이 운전 조작 실수나 교통 상황을 잘못 판단해 내는 사고가 늘면서 경찰도 긴장하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 운전자는 233만여명에 달하지만 내년엔 25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5년에 한 번 시력검사 위주의 적성검사를 하는 것 외에 고령 운전자의 운전능력을 가려내는 대책이 없다. 경찰이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고령 운전자에게 교통비 등을 지급하는 운전면허 반납제 도입을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고령 운전자들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일본은 70세를 기준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면허증 갱신 기간을 단축하고, 75세 이상 운전자는 판단력 등 인지기능검사를 의무화 하고 있다. 영국은 70세 이상 운전자가 면허를 갱신하려면 3년마다 의사 소견이 첨부된 건강검진서를 내야 한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무대책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도 연령별 운전면허 관리를 강화하고, 인지기능 검사 등을 의무화해야 한다. 고령 운전자 차량에 실버마크를 붙이도록 하는 실버마크제를 활성화해 이들 차량에 대해 양보와 감속운전을 하고, 고령자 운전에 도움이 되도록 도로환경 정비 등 교통인프라 구축도 시급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깊은 잠’ 법안

14년 전 사고로 전신이 마비돼 감옥같은 생활을 하는 천재 마술사 이튼이 있다. 그의 곁엔 12년간 한결같이 간호해주는 소피아가 있다. 그녀의 도움을 받아 장애를 극복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라디오 DJ로 제2의 삶을 살아가지만 힘겹다. 남의 손에 모든 걸 맡긴 채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하나 고통스럽다. 이도 다른 사람이 닦아주고 머리도 감겨주고 옷도 갈아입혀 준다. 콧등에 파리가 앉아 간질거려도 쫓을 수가 없다. 머리를 흔들어보고 입으로 불어 보지만 꼼짝 않는다. 그는 죽음을 선택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친구인 변호사를 불러 법원에 안락사를 청원(請願)한다. 사랑해서 보낼 수 없는 사람,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주는 사람. 과연 어떤 게 옳은 것일까.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인도 영화 청원의 줄거리다. 감동 깊게 봤던 기억이 새롭다. 이 영화에서 청원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근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유럽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 네덜란드와 벨기에에 이어 프랑스 의회가 사실상 안락사를 허용하는 깊은 잠(deep sleep bill)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고로 뇌를 다친 뒤 7년째 식물인간 상태인 뱅상 랑베르 씨(39). 부인이 남편의 안락사를 허용해달라며 프랑스 최고 행정 재판소에 소를 제기하면서 안락사가 프랑스의 핫 이슈로 급부상했다. 프랑스 법원은 안락사를 허용하는 이례적인 판결을 했고, 이어 프랑스 하원이 깊은 잠 법안을 압도적인 표 차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의사가 진정제를 투여하면서 음식과 수분 공급을 중단해 수면 상태에서 생을 마감케 하는 것으로, 주사를 맞고 바로 죽는 안락사와는 차이가 있다. 조건은 생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여야 하고 본인이 요구해야 한다. 병이나 사고로 의사 표현이 어려울 경우에도 사전에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면 유효하다. 새로운 법은 프랑스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상황을 크게 바꿔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보수 종교단체 등은 법안 통과에 반대하고 있지만, 진보 단체는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처럼 아예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도 고통 없이 존엄하게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가 됐다. 삶의 가치와 행복을 선택할 권리는 스스로에게 있는 것 아닐까.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반월시화국가산단

국내 최대 규모의 국가산업단지는 2011년 안산 스마트 허브, 시흥 스마트 허브로 명칭이 바뀐 반월ㆍ시화국가산업단지다. 안산 스마트 허브는 지난 1977년 도시계획법상 공업지역으로 정한 뒤 1988년 지방공단으로 지정됐다. 시흥 스마트 허브도 1986년부터 조성이 시작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당시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에 산재해 있던 중ㆍ소 공장들의 이전수용을 통해 인구 및 산업시설을 분산시키고자 이 곳에 전국 최대 규모의 중소기업 집적단지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처음 계획을 세웠던 박정희 대통령부터 김대중 대통령까지 당시 대통령들은 수차례 이곳을 방문하는 등 국가적으로 큰 관심을 받아왔다. 그 결과 1만8천개에 육박하는 업체가 입주, 29만3천166명이 근무하며 연간 51조원을 생산하고 80억불을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조성된지 30여년이 지난 현재 거대 공룡이 된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는 상하수도 수도배관 등 기반시설 노후화에 따른 갖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중앙정부가 연간 수천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거둬가면서도, 현행 법상 유지ㆍ보수 책임은 해당 지자체들에 있다며 나몰라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가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산업기반시설에도 보수관리 등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법안은 아직 국회에 계류중이다. 결국 각종 문제점을 알고는 있지만 한정된 예산 탓에 지자체들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대규모 공사에 대해 손도 못대고 있다. 주차문제, 교통사고, 화재 등 각종 사고는 눈에 보이는 문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수관 등 기반시설의 노후화다. 이같은 상황때문에 대기업이나 강소기업들을 새롭게 산업단지 내로 유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이에 영세기업들이 빈 곳을 채우고 있다. 중앙정부도 지자체도 이같은 문제점은 알고 있다. 그러나 접근 방식과 대처하는 자세는 다르게 느껴진다. 지자체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예산 마련을 위해 각종 사업을 정부에 제안하고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중앙정부는 수동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명관 사회부 차장

[지지대] 수원시립미술관

독자의 입장에서 글을 써라. 흔히 언론사 수습기자들을 교육할 때 하는 이야기다. 수습기자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다. 독자보다는 취재원 입장을 대변하거나 취재원에 설득당해 특정 집단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기사를 출고하는 것이다. 그럼 선배 기자나 부장이 지적하는 단골 레퍼토리가 독자의 입장, 시민의 입장에서 봐라다. 그럼 문제가 달리 보인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문제일수록 이같은 공식을 대입하면 오히려 해답은 금방 나오곤 했다. 최근 수원 지역사회에 몇몇 복잡한 갈등 요소들이 등장했다. 그중 하나가 수원시립미술관 명칭 논란이다. 현대산업개발의 300억원 기부체납으로 건립중인 수원시립미술관은 오는 6월 완공예정이다. 그러나 명칭에 대해 말들이 많다. 명명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에 특정 아파트 브랜드가 붙었다는 이유다. 공공 미술관에 웬 아파트 브랜드. 일부 시민단체 등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일리가 있다. 공공 미술관에 대기업 아파트 브랜드라니,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전통과 문화를 사랑하는 수원의 공공미술관 이름을 바로 잡는 것, 수원의 자존심과 명분을 찾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갈등 때문에 정작 가장 중요한 미술관이 어떻게 운영되고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한 논의는 완공 3개월 앞둔 지금도 공론화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수원에 번듯한 미술관이 생겼는데 이름을 놓고 씨름하는 사이 실리는 까먹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수원시민의 입장에서 사안을 살펴보면 어떨까? 시민들에게 미술관 명칭이 무엇이냐가 더 중요시할지, 아니면 신설되는 공공미술관을 어떻게 이용하고 무슨 콘텐츠가 들어오는 게 더 궁금해할지 말이다. 수원에는 이미 특정 기업 이름이 들어간 공공시설들이 있다. 수원SK아트리움, 최근 리모델링한 수원kt위즈파크 등 이곳들을 수원시민들은 명칭에 대한 이렇다할 거부감 없이 이용하고 있지 않는가. 이곳은 되고 공공미술관은 안 된다?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그날 그 대학생은…

을지로 정류장을 지나고 있었다. 버스가 갑자기 섰다. 슬리퍼 차림의 기사가 뒤로 갔다. 방금 승차한 대학생 앞에 섰다. 너 방금 (하차)카드 찍었지. 승객들의 눈이 학생을 향했다. 얌통머리 없이 카드 찍었잖아".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학생은 말이 없었다. 커피는 만원짜리 처먹는 것들이, 싸가지 없이 버스비는 아끼려고. 승차와 동시에 슬며시 하차 결제를 한 모양이다. 곧 버스는 출발했지만 학생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검은 안경에 여드름이 많았다. 잘 차려입은 외모도 아니었다. 속임수를 쓰기엔 너무도 순수해 보였다. 만원짜리 커피를 처먹을 여유로움도 없어 보였다. 어쩌면 정말 300원-거리 환산 할증요금-을 아껴야 할 사정이 있었는지 모른다. 버스는 30여분만에 수원에 도착했다. 학생도 수원까지 왔다. 그 30분, 버스 안 승객 누구도 학생을 쳐다보지 않았다. 을지로 정차장, 검은 색 안경의 학생, 마른 체격의 버스 기사, 빨간색 광역 버스. 당사자들에겐 지금도 남아 있을 기억이다. ▶광역 버스 요금은 2100원(카드 2,000원)이다. 30㎞를 초과하면 5㎞에 100원씩 추가된다. 경기~서울 간 거리를 50㎞로 본다면 2500원(카드 2,400원)이다. 왕복이 필요하니 하루 5000원(4,800원)이다. 서울에서 한 번 더 갈아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지하철 기본운임은 1,050원이다. 10㎞부터 5㎞에 100원씩 추가된다. 평균 1,100원이라고 치면 이것도 하루 2,200원이다. 통학하는 대학생이 부담할 교통비는 하루 7,000원 내외다. 한 달(25일 기준) 17만5000원이다. ▶금감원이 대학생들의 용돈을 조사했다. 한 달 32만4000원이었다. 여기엔 스스로 벌어 충당하는 아르바이트 소득까지 포함된다. 무조건 부담해야 할 교통비가 17만5000원이다. 나머지 14만9000원으로 밥 먹고, 책 사야 한다. 만원짜리 커피를 처먹을 여유란 없다. 그런 학생들에게 대중교통 비용은 너무 비싸다. 많은 학생들이 300~400원이라도 아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수많은 대학생이 경기도와 서울을 통학한다. 그보다 몇 배 많은 직장인이 경기도와 서울을 통근한다. 이들에겐 통학이 생존이고, 통근이 생업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엔 통학 복지도, 통근 복지도 없다. 부잣집 아이들에게도 급식을 무료로 주면서 통학 비용은 도와주지 않는다. 무상복지가 정의(正義)고 평등(平等)이라고 외치면서 통근 복지는 나 몰라라다. 그러는 사이 200원 아끼려던 대학생들이 씻을 수 없는 망신을 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경기도가 요금을 인상해 버스 회사를 돕겠다고 한다. 잘못된 나라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향년 91세를 일기로 23일 새벽 타계했다. 싱가포르 국민은 물론 세계의 지도자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그는 역사의 진정한 거인, 현대 싱가포르의 아버지, 아시아의 위대한 전략가의 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국부(國父)이자 작지만 강하고 잘사는 싱가포르의 기적과 신화를 이룬 인물로,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 통한다. 정치ㆍ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동시에 달성해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세계적 금융 및 물류 중심지로 탈바꿈 시켰다. 그는 싱가포르가 영국 식민지였던 1959년부터 자치정부 총리를 지냈다. 그의 나이 35세때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 때까지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31년이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던 싱가포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하던 1990년 1만2천750달러를 달성했다. 지난해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5만6천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다. 세계경제포럼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다. 오늘의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에 비판과 논란도 있다. 싱가포르가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율이 낮은 도시가 된 배경에는 무거운 벌금, 태형 등 강력한 처벌이 있었다. 마약 소지자는 엄벌에 처하고 껌만 뱉어도 벌금을 부과하는 엄격한 통제를 국가경영에 도입했다. 그의 통치 방식은 온건한 독재 가부장적 통치로 불렸다. 그러나 동남아의 다른 독재자들처럼 무력 동원이나 경제개발 과정에서 착취는 없었다. 리콴유는 1990년 고촉동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줬다. 2004년 14년간 재임한 고 전 총리가 물러난 후 리콴유의 큰 아들 리셴룽이 새 총리로 취임했다. 리셴룽 총리의 등장은 또다른 형태의 권력세습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정치ㆍ행정 분야의 요직을 거치며 지도자 교육을 받아 싱가포르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국민들이 열광하고 세계 지도자들이 존경하는 리콴유를 보며, 우리에겐 왜 그런 지도자가 없을까 생각해 본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온라인 스토킹

스토킹(stalking)은 은밀히 다가서다 몰래 추적하다란 뜻의 stalk에서 파생돼 명사화된 용어다.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의도적으로 계속 따라다니며 남을 괴롭히는 행위다. 남을 쫓는 행위는 물리적으로 남을 따라가는 것뿐만 아니라 전화ㆍ이메일ㆍ편지 등을 보내 괴롭히는 것도 포함한다. 이동통신ㆍ이메일ㆍ대화방ㆍSNS 등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스토킹은 특별히 사이버 스토킹 또는 온라인 스토킹이라 한다. 스토커는 표적으로 삼은 사람을 인격체로 보지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기분ㆍ의지ㆍ감정 등은 배려않고 따라다니며 정신적ㆍ신체적 피해를 입힌다. 스토킹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생활 침해일 뿐 아니라 협박ㆍ폭행ㆍ살인 등의 범죄로 발전하기도 한다. 미국에선 비틀즈 멤버였던 존 레넌과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가 스토커에 의해 살해됐고, 배우 조디 포스터의 극성팬이 그녀의 관심을 끌기 위해 레이건 미국 대통령을 저격한 사건도 있었다. 최근엔 온라인 스토킹이 심각하다. 온라인 스토킹은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계속 연락이 오거나 모르는 사람이 자신의 온라인 행적을 추적하거나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을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만 15~50세 남녀 2천4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9.9%가 온라인 스토킹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스토킹은 여성이 70.17%로 남성(67.12%)보다 다소 높았다. 유형별로는 모르는 사람이 나의 블로그나 홈페이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방문해 나의 개인정보나 일상을 엿보거나 감시한 적이 있다는 답이 62.2%나 됐다. 온라인 스토킹 피해를 경험한 장소로는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34.5%)가 가장 많았다. 스토킹은 엄연한 사회범죄다. 미국에선 1990년 캘리포니아 주를 시작으로 모든 주가 반(反)스토킹법을 제정했고, 1998년 제정된 연방 반스토킹법은 사이버 스토킹도 처벌대상에 포함시켰다. 일본도 2000년 스토커 규제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스토킹에 대한 법률이 제정되지 않아 별다른 보호책이 없는 상황이다. 특히 온라인 스토킹에 대한 처벌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 법 집행에 있어서 오프라인에서의 신체적 접근이 아닌 한 범죄성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조심하는 수 밖에 없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누리과정 미봉책

불안불안했던 누리과정 문제가 결국 터져버렸다. 누리과정비 부담을 놓고 정부와 갈등을 벌이다 2개월치만 편성한 광주를 비롯해 3개월치를 세운 서울인천전북강원제주 등 6개 교육청의 예산이 이미 바닥나면서 보육대란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지역 역시 4개월 15일 치만 편성, 사회혼란이 목전에 와 있다. 급기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9일 정부차원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누리과정 사업을 포기할 수 있다고 도민에게 공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정부는 경기지역 6천405억원을 비롯해 전국의 올해 누리과정비 부족분 1조7천억원 가운데 29%에 해당하는 5천64억원의 예비비를 각 시도 교육청에 배분키로 했다. 나머지는 다음달께 임시국회에서 지방재정법 개정을 통해 각 교육청이 지방채를 발행, 해결토록 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대책 역시 미봉책(彌縫策)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제다. 경기도교육청은 예비비와 우회지원금을 최대한 확보한다 하더라도 3천억여원이 부족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결국 3천억여 원의 지방채를 추가 발행해야 하는 실정으로 사실상 경기교육재정 파탄을 넋 놓고 지켜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교육청은 올해 학교신설, 명퇴수당 등을 위해 1조 2천19억원의 지방채를 발행할 예정으로 올 연말 지방교육채 잔액은 2조 4천790억원까지 상승, 전국 최고 수준이 된다. BTL지급금 4조 817억 원을 합하면 도교육청의 빚은 6조5천607억원이 되는 셈이며 여기에 누리과정 지방채가 다시 더해지는 것이다. 이 같은 빚은 이자부담의 가중을 불러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 교육재정은 좀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리는 세상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국가가 교육과 보육을 책임지겠다는 의지에 따라 지난 2012년 3월 5세를 대상으로 시행에 들어갔으며 2013년 3~4세까지 전 연령으로 확대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최대 공약을 지키기 위해 경기 교육재정을 파탄 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돌려막기식 임시방편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국민들이 바라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수철 사회부 차장

[지지대] Kt wiz의 성공 조건

프로야구 10구단 kt wiz가 마침내 1군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kt는 지난 7일 시작된 시범경기를 통해 1군 무대에 첫 모습을 보였고, 14일에는 홈구장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개장식과 함께 두산과의 시범경기를 통해 홈 팬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개장 후 주말경기 이틀동안 케이티 위즈 파크에는 하루 2만 명 안팎이 경기를 관람해 8년 만에 도래한 수원 프로야구 시대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수원에서 프로야구 1군 경기가 열린 건 넥센 히어로즈의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가 2007년 10월 5일 한화 이글스와 마지막 홈 경기를 치른 이후 2천717일 만이다. 이후 고교야구 등 주로 아마추어 경기만 열렸던 수원야구장은 제10구단 kt가 수원을 연고지로 택하면서 프로야구 수원시대가 다시 열렸다. kt의 주말 개장 2연전을 치르는 동안 경기장 주변의 상권은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고, 주변 음식점이나 편의점 등의 매출이 평소보다 2~3배 증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원 프로야구 시대는 적지 않은 부작용도 노출됐다. 1천600대 수용인 수원종합운동장 주차 공간의 부족과 1번 국도를 대체할 우회도로의 부재로 인해 경기장 일대가 2~3㎞ 정체됐다. 경기장 주변 골목길 이면도로 역시 관람객들의 불법 주차로 몸살을 앓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오는 28일 정규리그가 막을 올리면 평일 경기가 오후 6시 30분에 시작되기 때문에 직장인들의 퇴근 시간과 맞물려 교통정체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이에 kt와 수원시는 사전 주차예약제와 임시주차장 마련, 셔틀버스 운행 등의 대책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시민의 참여 없이는 요원한 일이다. 막내구단 kt는 시범경기에서 3승5패로 1군의 높은 벽을 실감하면서도 나름대로 선전하며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국내 선수 가운데 1군을 경험한 선수가 10여 명에 달할 정도인 상황을 감안할 때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kt가 창단 2년 만에 포스트시즌에까지 진출한 제9구단 NC 다이노스를 뛰어넘어 명문 구단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아낌없는 투자가 절실하다. 10구단 kt의 성공을 위해서는 선수단의 노력과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 주차ㆍ교통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 협조, 데뷔 첫해 다소 부진한 성적을 거두더라도 아끼고 성원하는 팬들의 성원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이번엔 반기문?

다그 함마르셸드(스웨덴ㆍ재임 1953~1961)는 2대 유엔 사무총장이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국 정찰기가 중국(당시 중공)에 추락했다. 조종사와 승무원들이 억류됐다. 유엔은 관련자 송환을 촉구하는 결의안 906호를 채택했다. 하지만, 비회원국인 중국은 꿈쩍도 안 했다. 그가 개인 자격으로 중국을 찾았다.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와 담판을 벌여 전원을 구해냈다. 이른바 북경 법칙(Peking Formula)이다. 그는 역대 최고 총장으로 평가된다. 마지막도 콩고 분쟁 해결을 위해 이동 중 추락한 비행기 속이었다. 역사상 최초로 사후 노벨 평화상이 주어졌다. ▶쿠르트 발트하임(오스트리아ㆍ재임 1972~1981)은 4대 유엔 사무총장이다. 독일 장교 복무와 유태인 학살 연관 논란에 휘말렸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회원국의 요청이 있을 때만 개입한다는 원칙으로 행동했다. 공개적으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내 역할은 무엇보다 의례용 역할일 뿐이라며 자조했다(1975). 하지만, 권력욕은 대단했다. 부정적 기류 속에서도 3선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 이후 국내 정치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1986년 오스트리아의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를 초청한 주요 국가들은 없었다. 업적은 없었고 권력욕만 많았던 총장으로 기억된다. ▶반기문(대한민국ㆍ재임 2007~현재)은 8대 유엔 사무총장이다. 분단국 출신이라는 악재를 성실성으로 극복했다. 업적도 뛰어나다. 기후변화, 핵확산 방지, 새천년개발목표 달성 등을 이뤄냈다. 2011년 있었던 연임 통과 과정이 인상적이다. 안보리와 지역그룹이 만장일치로 연임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총회는 192개국의 우레와 같은 박수로 연임을 확정했다. 분명 발트하임보다 함마르셸드 쪽으로의 호평을 받고 있는 반 총장이다. ▶그런 반 총장을 한국 정치가 들쑤시고 있다. 서로 자당 대권 후보라며 추켜 세우고 있다. 여론조사도 한몫한다. 한길 리서치의 2월 정기 조사에서 32.6%로 1위를 기록했다. 유엔 사무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나쁠 건 없다. 다만, 걱정스러운 건 한국 정치의 전과(前科)다. 안철수 현상 고건 대망론 40대 이인제론. 모두 예선에서 키우다가 본선에서 패대기친 역사다. 하나같이 정치 유랑자를 생산해 냈다. 어느덧 공식으로 자리 잡은 한국 정치의 역사다. 반 총장에게 대권(大權)을 양보할 정파(政波)가 있겠는가. 친박ㆍ비박, 친노ㆍ비노. 그렇게 아량 있는 정치집단들이 아니다. 괜스레 반 총장의 3선(選) 가도만 막아서는 듯해 걱정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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