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종이통장의 퇴출

가로 14cm, 세로 8.7cm 크기에 그 안의 숫자가 커지면 커질수록 뿌듯해지는 마법의 종이, 바로 통장이다. 통장은 돈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어 금고 역할을 해주는가 하면, 서민들에겐 꿈을 실현시켜 주는 도구였다.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돈으로 꿈을 성취할 수 있었기에 종이 이상의 큰 의미를 가졌다. 어떤 이의 통장엔 배고픔과 눈물로 버텨낸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했다. 종이통장은 1897년 고종 34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은행인 한성은행(조흥은행의 전신)이 설립되면서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120여년 만에 종이통장이 사라지게 됐다. 인터넷과 모바일 뱅킹 이용이 늘면서 종이통장을 만들지 않기로 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9월부터 2년간 종이통장을 만들지 않는 고객에겐 금리우대 등의 혜택을 주고, 2017년 9월부터는 아예 종이통장을 발행하지 않을 방침이다. 2020년 9월부터는 통장 발급을 원하면 발급 비용을 고객이 부담하게 된다. 통장 개수가 부의 잣대가 된 건 옛말이다. 고객과 은행 모두에 불필요한 부담과 비용만 초래하는 존재가 됐다. 고객 입장에선 통장의 입출금 거래내역이 가득 차 이월하려면 직접 은행창구를 방문해야 한다. 분실ㆍ훼손하거나 인감을 변경할 경우엔 2천원의 수수료를 내고 재발급 받아야 한다. 지난해 고객이 통장 재발행 비용으로 은행에 낸 수수료만 60억원이다. 종이통장을 찍어내는 은행들의 제작 비용과 인건비ㆍ관리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금융감독원은 종이통장 1개의 제작 단가는 300원에 불과하지만 인건비ㆍ관리비 등을 더하면 5천원에서 1만8천원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신한은행은 2013년 1천100만개, 2014년 1천90만개의 종이통장을 만들었는데 간접비용까지 반영하면 연간 150억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했다. 종이통장은 미국ㆍ영국 등에서는 금융거래가 전산화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미국은 1990년대, 영국은 2000년대에 종이통장을 없앴다. 중국도 2010년대 들어서는 소비자 요청이 있을 경우에만 통장을 발급해주는데, 비율이 20% 정도다. 종이통장의 퇴출은 시대적인 흐름이다. 하지만 아직도 장년층일수록 종이통장 거래를 선호하는 편이다. 오랜 거래 습관이 남아있기도 하고, 인터넷ㆍ모바일뱅킹에 서투르거나 안전성을 믿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다. 이들을 위한 배려도 충분히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사람잡는 폭염

낮에는 절절 끓는 폭염(暴炎)이, 밤에는 잠 못이루는 열대야(熱帶夜)가 연일 반복돼 전국이 기진맥진이다. 섭씨 35도 안팎을 오르내리는 찜통 더위로 열사병 사망자가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전력 수요도 최고치로 치솟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불볕 더위와 열대야는 이번 주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최고기온이 이틀 이상 33도가 넘을 경우 발령하는 폭염주의보도 계속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물러가니 폭염이 괴롭히고 있다. 불볕 더위는 특히 건강이 약한 노인들에게 치명적이다. 1일에만 뙤약볕 아래서 농사일을 하던 80대 할머니 3명이 숨졌다. 지난달 30일에도 야외에서 일하던 노인 2명이 숨졌고, 29일에도 밭일 하던 노인과, 건설현장의 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숨졌다. 사람잡는 폭염이다.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돼 건강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노인들은 평소보다 물을 자주 많이 마시고 한낮에는 외출이나 농사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일터에서도 실외 활동을 자제하고 낮 시간대에는 1015분씩 짧게 자주자주 쉬는 것이 좋다. 땀을 흘려 수분ㆍ염분이 부족해지면 작업 중 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잃거나 의식이 혼미해져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갈증을 느끼기 전에 의식적으로 물을 자주 마셔야 한다. 카페인 음료나 술은 되레 탈수를 유도하므로 수분공급에 효과적이지 않다. 불볕 더위로 열사병, 열탈진, 열경련, 열실신, 열부종 등의 온열질환자도 크게 늘었다. 고열이나 빠른 맥박과 호흡, 두통, 구토 등이 생기면 시원한 장소로 피하고 그래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바로 119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찌는 듯한 더위는 밤까지 이어져 기온이 25도를 웃도는 열대야 현상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기온이 25도 이상 오르면 잠들기도 어렵고 잠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밤의 열기와 싸우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잔 직장인들은 낮동안 충혈된 눈과 피곤ㆍ짜증에 시달리느라 피곤한 나날이다. 냉방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소외계층에게 폭염은 가히 살인적이다. 쪽방촌 사람들, 홀로사는 노인들, 만성질환자 등 사회적 보호 대상자들의 여름나기는 가히 목숨을 건 사투나 다름없다. 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된 사각지대의 취약계층을 특히 잘 챙겨야 한다. 행정기관의 손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내 이웃을 한번 둘러보고 챙기자.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도립의료원 수원병원 이전

수원지법ㆍ지검이 광교신도시로 들어가기로 결정되기 전 서수원이 수원지법 이전 부지로 검토된 적이 있다. 서울 농생대가 후보지 중 하나였다. 대법원 관계자들도 직접 현장을 찾아 타당성 여부를 확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수원비행장 항공기의 이륙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들은 대법원 관계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방음벽을 설치해 소음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에도 불구, 대법원 관계자들은 귀를 찢는 듯한 소음으로 서울 농생대 부지로 수원지법을 이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수원 일대는 항상 수원시의 아픈 새끼손가락으로 여겨졌다. 수원비행장으로 인해 각종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으면서 나날이 발전해가는 동수원에 비해 낙후된 서수원을 개발하기 위해 수원시는 갖가지 노력을 기울였으나 쉽지 않았다. 이중 대표적 사례가 종합병원 유치였다. 수원시에는 아주대학병원(1천86병상), 빈센트병원(791병상), 동수원병원(428병상) 등 종합병원이 모두 동수원권에 위치하고 있다. 이에 수원시는 수년간 호매실택지개발지구에 종합병원 부지를 마련, 5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을 유치하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최근 수원시가 경기도에 도립의료원 수원병원의 이전 검토를 타진했다고 한다. 민간 종합병원들이 서수원 진출에 관심이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 종합병원 기능을 갖고 있는 도립의료원 수원병원을 호매실로 이전하면 서수원권의 의료 인프라가 크게 개선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 생각인 듯하다. 또 메르스 사태와 같은 전염병 발생시 이를 대처할 수 있는 경기도 거점 병원으로 조성한다는 명분을 갖고 중앙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갖고 있다. 문제는 3천억원이 넘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이 이해득실을 따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는데 있다. 수원시는 도립의료원이라는 이유에서 예산을 부담할 근거가 없고 경기도 실무부서는 시급한 사안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에서 부정적 입장이다. 또 도립의료원을 서수원에 빼앗긴다는 생각에다가 정치적 논리가 우선, 전염병 시설이 들어온다는 식의 유언비어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균형발전이라는 목표 앞에서 돈이 많이 든다거나 지역이기주의적 행동은 지엽적인 문제다. 서수원의 발전을 통해 수원시 전체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이에 따른 이득도 수원시 전체에 고루 돌아간다. 도립의료원 수원병원 이전 여부가 수원시의 해묵은 동-서간 불균형 해소의 시작으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김동식 사회부 차장

[지지대] 씁쓸한 경기도의료원 인사

만성적자 등으로 천덕꾸러기 취급받던 경기도의료원이 적극적인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으로 오랜만에 칭찬받았다. 민간 병원에서 꺼리는 메르스 환자 수용과 치료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응원에 의료진을 비롯한 경기도의료원 모든 임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모처럼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최근 부적절한 인사로 내부 갈등이 외부로 표출되고 있어 안타깝다. 상급기관 경기도 감사에서 각종 비리 혐의로 해임처분을 받은 간부 A씨를 다시 기조실장에 발령냈다. 상급기관 감사결과를 무시한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인사다. 이 부분에 대해 의료원장은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입을 닫았다. 기자의 취재에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정당하고 절차에 맞는 인사라면 당당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맞다. 인사에 앞서 열린 경기도의료원 인사위원회에서도 문제의 간부에 대해 감사결과 해임 결정을 내렸지만 도의료원장은 인사위원회 결과를 최종 결재하지 않아 인사위원회를 무력화했다. 당시에도 도의료원장은 이유를 묻는 기자의 취재에 노코멘트했다. 그리고 이번 인사를 강행했다. 문제의 간부 A씨도 할 말은 많다. 경기도의 해임처분이 잘못됐다며 여기저기 탄원서도 내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여러 방식의 소명 구제 절차를 통해 명예회복에 안간힘이다. 문제는 경기도의료원의 원칙없는 인사행태다. 경기도의료원이 절차대로 감사결과를 이행하고 A씨도 법 절차 등 소명절차를 통해 복직을 요구할 수 있다. 도의료원은 그 결과대로 인사하면된다. 하지만 경기도 감사결과와 자체 인사위원회를 무시하고 단행한 인사는 명분을 찾기가 어렵다. 도의료원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에 대해 쉬쉬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인사 하나로 단합된 분위기가 조성됐던 의료원의 내부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도의료원이 내ㆍ 외부 불신을 극복하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원칙과 제대로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선호 문화부장

[지지대] 김황식 前시장의 눈물

김황식 전 하남시장(64)은 광주(廣州) 출신이다. 적어도 2010년까지는 광주가 낳은 인물이었다. 30대는 직장인으로 잘 나갔고, 40대는 기업인으로 잘 나갔다. 50대는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았다. 특유의 뚝심으로 돋보이는 4년을 보냈다. 2006년부터는 민선 하남시장으로 일했다. 모두가 기피하는 광역화장장을 유치하겠다고 나섰다. 지역이기가 만연한 사회에 주는 충격이 신선했다. 도지사를 향한 그의 대망론도 그즈음 퍼졌다. ▶그러다가 무너졌다. 시장직에 재도전하던 2010년이다. A 여성과의 내연說이 사단이었다. 소문의 진원지는 A씨 본인이었다. 정당과 언론사를 찾아다니며 폭로전을 폈다. 뿌려댄 자료에는 낯부끄러운 표현까지 기술돼 있었다. 김 전 시장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 전 시장은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세상은 매정했다. 한나라당 경기도당이 공천을 회수해 갔다. 그해 10월 11일, 경찰이 김 시장의 무고함을 밝혔다. 이때는 이미 그가 모든 걸 잃은 뒤였다. ▶와신상담 4년을 보낸 그가 2014년 명예회복에 나섰다. 친박(親朴)계라는 정치 상황까지 맞물리며 새누리당 하남시장 후보로 나섰다. 그때 4년 전 악몽이 다시 재연됐다. 그때와 똑같은 주장이 퍼졌다. 이번에도 A씨였다. 김 전 시장은 4년 전 결론이 난 허위 사실이라며 유권자에 호소했다. 하지만 내연 관계라는 선정적 소재(素材)의 파괴력은 이번에도 컸다. 5천여표 차이로 낙선했다. 선거가 1년여 흐른 지난 23일, 이번에는 법원이 결론을 냈다. A씨에게 허위사실 유포죄를 물어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번에도 김 시장에겐 남은 게 없다. ▶언론 시쳇말에 허리 아래 얘기라는 표현이 있다. 성(性) 추문을 일컫는 비속어다. 일간 신문에서 다루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음성적 전파력이 당사자에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공론화하지 않으니 검증할 길이 없고, 검증할 길이 없으니 해명할 기회도 사라진다. 김 전 시장을 두 번 침몰시킨 내연說이 딱 그랬다. 누구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뒤에서 수군거리며 작업(作業)을 했을 뿐이다. ▶결론은 났다. 2010년 경찰과 2014년 법원의 주문(主文)이 같다. 김 전 시장이 피해자다다. 하지만, 그가 잃은 어떤 것도 다시 채워질 수 없다. 그저 촉망받던 정치인이 환갑을 넘긴 초로(初老)로 바뀌어 가고 있을 뿐이다. 2010년 봄 어느 날 저녁이었던 것 같은데. 그가 회 한 접시와 소주 앞에 앉았다. 쑥덕거리던 소문들의 진상을 깨알처럼 설명했다. 정치권과 얽힌 기막힌 뒷얘기도 털어놨다. 왜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느냐며 탁자도 내리쳤다. 그러다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설움이 북받친 눈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태완이법

1999년 5월 20일, 대구 동구의 한 골목길에서 학습지 공부를 하러 가던 김태완(당시 6세)군이 누군가의 황산테러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49일간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김군이 이웃 주민을 범인으로 지목했지만 수사당국은 혐의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용의자를 불기소 처분했다. 태완군의 부모는 공소시효 만료를 사흘 앞둔 지난해 7월 4일 검찰 수사가 적절했는지 따져달라며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하지만 지난 2월 기각됐다. 태완군 부모는 재정신청 기각에 불복해 재항고했지만, 대법원은 최근 이를 기각하며 사건을 종결했다. 지난 2007년 살인죄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늘었지만 태완군 사건은 그 이전에 일어난 일이라 소급적용되지 않았다. 사건을 지켜 본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의원이 지난 2월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없애는 법안을 발의했다. 일명 태완이법이다. 국회는 지난 24일 고의로 사람을 살해하고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형법상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완전히 폐지되게 됐다. 49일간의 사투 끝에 숨진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했던 한 부모의 16년간 이어진 끈질기고 처절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통과된 태완이법은 태완군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음 아고라에선 태완군 사건 등에도 소급적용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반인륜적 살인을 저지른 자는 잡히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게 됐다. 여론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실제 반인륜 범죄에는 공소시효를 두지 않는 나라들이 많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협력했던 전범을 아직도 추적하고 있다. 대부분 90세가 넘은 노인이 됐지만, 모살(謀殺) 등 중대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독일 사법제도상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미국도 대다수 주에서 공금횡령이나 사형ㆍ무기징역에 해당하는 범죄는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는다. 살인죄 공소시효가 사라지면서 장기미제 살인사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게 됐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살인사건은 20102014년 기준으로 연평균 3.2건이다. 매년 3건씩 수사기관의 손을 떠났을 사건이 처리대상 사건으로 쌓이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사기관의 부담이 커지겠지만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연간 사교육비 33조원

이번 여름방학 기간 동안 초등학생 10명 중 7명은 하루 평균 2.9시간의 사교육을 받을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른 방학 사교육 비용은 39만2천원으로 조사됐다. 영어교육 전문기업 윤선생이 지난 7일부터 12일까지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665명을 대상으로 여름방학 사교육 계획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1.7%가 여름방학에 사교육을 시킬 계획이라고 답했다. 주로 계획하고 있는 과목(복수응답)은 영어(77.4%)가 제일 많았고, 예체능(58.3%)과 수학(49.1%)이 뒤를 이었다. 국어(15.7%), 사회ㆍ과학(14.9%)을 계획하고 있다는 대답도 있었다. 늘어나는 사교육 시간과 비용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이 89.1%에 달했다. 우리나라의 연간 사교육 시장 규모가 올해 국가예산(375조4천억원)의 8.8% 수준인 33조원에 육박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천식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분석한 결과, 연간 총 사교육비가 32조9천억원에 달하고 계속 증가 추세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 공교육 재정투입 규모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의 70% 수준인 반면, 사교육비 규모는 OECD 평균의 3배에 육박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교육비 문제 해결을 위해 특별위원회를 설치,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등 사회ㆍ경제적 문제로 확대해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엄청난 비용으로 굴러가는 사교육 시장은 공교육을 파행으로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과도한 가계지출로 실버푸어(빈곤한 노년층)를 양산하는 요인이 되고있다. 공교육 황폐화가 바로 잡히지 않으면 중산층의 몰락도 멀지 않아 보인다. 억대 연봉자도 버겁다는 사교육비다. 이는 출산율이 낮은 이유 중 하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 세월호 참사, 올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경기침체가 계속되고 있지만 예외인 업종 중 하나가 사교육이다. 사교육비 증가세가 꺾이지 않는 것은 여전히 교육이 출세의 지름길이며, 이를 위해 부모가 목숨을 거는 문화 탓이다. 교육을 유일한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과도한 사교육비 탓에 5060세대는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공교육을 정상화 시켜 사교육비를 줄이는 일이 시급하다. 이는 중산층을 살리고 노년층도 살리는 대안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삼성의 합병전쟁과 제2의 엘리엇

개인을 모집해 조성한 자금을 국제증권시장이나 국제외환시장에 투자, 단기이익을 거둬들이는 개인투자신탁을 헤지펀드라 부른다. 투자지역이나 투자대상 등 당국의 규제를 받지 않고 고수익을 노리지만 투자위험도 높은 투기성 자본이 바로 헤지펀드다. 헤지란 본래 위험을 회피 분산시킨다는 의미지만 헤지펀드는 위험회피보다는 투기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헤지펀드는 파생금융상품을 교묘히 조합해 도박성이 큰 신종상품을 개발, 국제금융시장을 교란시키는 하나의 요인으로 지적돼왔다. 44일간의 합병전쟁으로 일컬어진 삼성그룹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싸움이 지난 17일 삼성그룹의 완승으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통과됐다고 해도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엘리엇은 한번 물은 먹잇감을 쉽게 버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친 헤지펀드다. 10년 넘게 소송을 끌며 수십배의 차익을 실현한 적도 허다했다. 엘리엇의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합병 주주총회의 무효소송, 삼성물산 대주주였던 삼성SDI, 삼성화재, 국민연금에 대한 배임소송, 한국자본시장법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불리하다는 투자자 국가 간 소송(ISD), 경영진 교체 요구 등에 대해 삼성은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국내에는 경영안정을 위한 경영권 보호장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자본시장은 완전히 개방돼 적대적 인수합병도 가능하고, 규모의 경제가 커지면서 대주주의 지분은 작아졌는데 경영권 보호장치는 없는 게 국내 기업의 현실이다. 특히 주식매매차익에 대한 과세도 약하다보니 외국투기자본에는 한국 기업만큼 좋은 먹잇감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차등의결권 등 외국에는 이미 보편화돼 있는 경영권 보호 장치를 국내에서도 하루빨리 도입해 기업이 마음 놓고 투자하고 청년 일자리를 만들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제2의 엘리엇은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그때마다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우리 기업을 모두 지켜 줄 수는 없지 않은가. 김규태 경제부 차장

[지지대] 로또 부부

▲요즘 중년 부부들 사이에서 오가는 유행어 중 로또 부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우리는 로또 부부야 하자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가 그렇게 잘 맞았나라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아내로부터 돌아온 답은 안 맞아도 그렇게 안 맞아. 그래서 우린 로또 부부야라는 것이다. 수십 년 살을 비비며 같이 해 왔지만 여전히 어긋나는 것이 많다는 점을 풍자한 유머다. ▲로또복권은 용지에 6자리 숫자를 적어 넣은 뒤 45개의 공을 돌려 그 번호가 맞으면 당첨되는 복권이다. 매주 진행돼 지난주에 벌써 659회를 맞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박의 꿈을 꾸며, 투명 유리병 속에서 속절없이 나뒹구는 숫자 박힌 공에 모든 시선을 집중한다. 문제는 당첨 확률인데, 현재까지 1등의 당첨 확률은 대략 1/8,140,000이라 한다. 로또 당첨은 그래서 대박이다. ▲우리 삶 과정에서 과연 로또와 같이 대박이 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있다면 그것은 부부의 연(緣)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부부는 모든 인간 삶에 있어 가장 큰 행운이고 고귀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존중하고 양보하며 한 평생을 동반하는 것이다. 로또 부부는 수십 년을 같이 살아가고 있지만 소소히, 때론 크게 서로 의견을 달리하고 갈등하면서도 이를 봉합해 나가는 과정을 풍자한 것이다. ▲가족 구성의 근간은 부부다. 그런데 최근 이 부부 관계를 둘러싸고 회자되지 말아야 할 무서운 일들이 종종 발생한다. 남편에게 농약을 먹인 부인, 수십년 간 부인을 구타한 남편, 자식들을 내팽개치고 방치해 장애를 앓게 한 부부 등등. 결국 그들은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선물이자 행운인 부부의 연을 그렇게 끊는다. 진정한 로또 부부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로또 복권처럼 맞기 어려운, 어쩌면 맞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대화와 타협, 혹은 양보와 인내로 하나하나 맞춰갈 때 당첨되는 것이다. 로또 부부라는 우스갯 소리가 젊은 부부도 아닌 중년 부부들 사이에서 나도는 것은 아마도 이런 다짐을 다시금 하는 것은 아닐까? 정일형 지역사회부 부국장

[지지대] 수원여대가 왜?

수원여대의 전신은 수원간호고등학교다. 1969년 1월 설립됐다. 이후 1979년 수원간호전문대학으로 개편됐다. 수원여자전문대학(1990년), 수원여자대학(1998년)으로 교명이 바뀌었다. 지금의 수원여자대학교는 2011년부터의 명칭이다. 올해부터는 간호과가 4년제 학사학위 과정으로 개편됐다. 교육부로부터 교원ㆍ교수 확보 현황, 교육과정 운영계획 등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얻어낸 결과다. ▶위상이 커진 만큼 학과도 다양하다. 간호학부, 보건식품학부, 사회 실무학부, 예술학부가 있다. 간호대학의 범위를 넘어 종합대학으로서의 외관을 갖춰가는 중이다.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다양한 수상ㆍ선정의 영예도 얻었다. 2014년에는 교육부가 선정하는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사업에 포함됐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부설 고등직업교육평가인증원이 주관한 2014년도 전문대학 기관평가인증 인증서도 받았다. ▶이런 수원여대가 느닷없이 인터넷 검색어에 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연관 검색어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수원여대생 부검, 수원여대생 납치, 수원여대생 실종. 누가 보더라도 수원여대생이 납치되고 실종되고 부검됐다로 해석된다. 이 검색어의 출발은 수원역에서 발생한 여대생 납치 살해 사건이다. 피해자는 수원지역의 한 대학교 학생이다. 수원여대 학생은 아니다. 그런데도 검색어에는 수원여대가 사건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언론이 이번 사건을 수원여대생 살해 사건이라고 명명하면서 빚어진 일이다. ▶영화 살인의 추억은 2003년 개봉해 500만이 넘는 관객을 들였다. 1980년대 후반 경기도 한 지역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을 각색한 영화다. 영화사는 돈을 벌었고 등장하는 실존 인물 몇몇은 유명세를 얻었다. 하지만, 해당 지역민이 받은 고통은 컸다. 지역 내 촬영을 금하고 지역명 표기를 안 한다는 조건으로 만들었지만, 결국엔 ○○ 연쇄살인 사건이 다시 부각되는 피해를 봤다. 이때의 ○○연쇄살인 사건 역시 언론이 만든 이름이다. 영화 속 박 기자의 실제 인물이 최초 명명자라는 설도 있다. ▶엽기적인 살인 사건 앞에 지역명을 붙이는 언론의 관행. 특정(特定)하기 편리하다는 이유로 남발된다. 이 때문에 특정 단체나 지역이 받는 피해는 크다. 수원지역 전통의 수원여대. 끝없는 투자로 발전을 거듭하는 수원여대. 이런 수원여대가 하루아침에 참혹한 살인 사건의 연관 검색어로 도배되고 있다. 학교, 재학생, 학부모 모두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가해자는 이번 사건을 수원여대생 실종 피살사건이라고 써대는 언론이다. 김종구 논설실장/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

[지지대] 무감독 시험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는 생도는 거짓말, 부정행위, 도둑질을 하지 않으며 그런 행동을 하는 이들을 용납하지 않는다(A cadet will not lie, cheat, steal or tolerate those who do)라는 서약이 커다란 돌에 새겨져 있다. 생도들은 이 서약을 철칙으로 여기며 생활한다. 이를 어길 경우 처벌보다 불명예를 더 부끄럽게 여긴다. 미국 프린스턴대의 모든 시험은 감독관 없이 진행된다. 학생들은 시험이 끝난 후 나는 아너 코드를 어기지 않았다라고 서명한다. 본인뿐 아니라 타인의 부정행위까지 학교에 신고하도록 하고, 위반시엔 퇴학까지 감수해야 한다. 아너 코드(Honor codeㆍ명예규약)는 학생들이 시험이나 과제물 제출, 논문 작성 등에 있어 정직하게 행동하겠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학교에 제출하면 교수들이 학생들의 명예를 존중해 시험을 감독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치르게 하는 제도다. 1840년 미국 버지니아대학에서 처음 시작돼 현재는 하버드대ㆍ스탠퍼드대 등 미국 주요 대학에서 채택하고 있다. 아너 코드는 학생 개인의 양심과 교수ㆍ학생 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부정행위를 할 경우 처벌도 강력하다. 국내에선 한동대가 1995년 개교 때부터 아너 코드를 운영하고 있다. 한동대는 입학 때와 매 학년 시작할 때 등 모두 4번 명예서약에 서명한다. 중간ㆍ기말고사 시험지엔 나는 정직하게 시험에 응하였음을 확인합니다라는 서명란이 있다. 서울대 자연대가 내년부터 아너 코드를 적용하고, 무감독 시험을 시행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1학기 교양과목 중간고사에서 집단 부정행위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고, 재시험까지 치렀다. 서울대 본부는 부정행위 근절을 위해 스마트폰 수거 등 각 단과대에 시험감독 강화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자연대는 감독 강화가 부정행위에 대한 근본적 해결이 될 수 없다고 판단, 아너 코드 도입과 함께 무감독 시험을 시행하기로 했다. 자신의 명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고 스스로 유혹을 뿌리칠 수 있게 교육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아너 코드의 핵심은 정직과 양심이다. 학생들을 강제로 옭아매는 규칙이 아니라 스스로 정직을 선택하게 만드는 문화다. 시험 감독이 없는 상태에서 양심에 따라 시험을 치르는 서울대의 무감독 시험제가 성공하고, 또 널리 확산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푸어’ 전성시대

아이를 키우다 빈털터리가 된다는 베이비 푸어가 있다. 고용 불안 및 전셋값 폭등으로 경제난에 시달리는 젊은 부부들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더욱 허덕이게 됐다. 특별히 사치를 부리지 않아도 아이 한 명 낳고 키우는데 한 가정 소득의 40%가 넘게 들어간다면 베이비 푸어가 된다. 졸업하자마자 부채자가 된다는 워킹 푸어도 있다. 대학 졸업 후 어렵게 취직을 했지만 대부분 임시직이나 비정규직이어서 학자금 대출도 갚기 어렵고 저축은 꿈도 못 꾼다. 일을 해도 소득이 충분하지 않아 늘 빈곤에 허덕인다. 경기침체로 고용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결혼해서 깨가 쏟아져야 하는데 빚이 쏟아진다는 웨딩 푸어도 있다. 결혼식 비용에 혼수, 전세 대출이 고스란히 빚이다. 이들은 사랑만으로는 결혼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결혼을 미루거나 안 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푸어(poor)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슨 무슨 ~ 푸어 하나쯤은 갖고 있다. 대출을 받아 집은 마련했지만 원리금 상환 등으로 가난한 생활을 면치 못하는 하우스 푸어, 과열된 교육열에 자녀 사교육비로 등골이 휘는 에듀 푸어, 노후대비를 제대로 못해 은퇴 후 빈곤하게 사는 실버 푸어, 몸이 아파도 경제력이 부족해 병원에 갈 수 없는 헬스 푸어 등 별의별 푸어가 다 있다. 우리 시대 빈곤의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푸어가 2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수조원의 자산을 가진 대기업 회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식들이 속을 썩이는 자녀 푸어, 소크라테스처럼 아내 때문에 늘 스트레스를 받는 와이프 푸어 등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정서가 메마른 감정 푸어일 수 있다. 푸어로 살다 푸어로 인생을 마감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푸어 신세가 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가난함ㆍ빈약함ㆍ부족함 등의 의미를 가진 푸어는 우울하다. 멋진 인생을 살고 싶지만 갚아야 할 빚을 생각하면, 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우울하고 씁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삶의 그늘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희망과 대안이다. 어렵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마음만이라도 푸어가 아닌 리치(rich)로 살 수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탕평인사

조선시대 탕평(蕩平)에 사활을 걸었던 영ㆍ정조대왕은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후손들에게 칭송받은 대표적 군왕이다. 고른 인재등용, 이는 곧 조직의 존폐를 좌우하는 열쇠다. 사가들에 따르면 이른바 탕평인사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주왕조가 멸망하고 동주 왕조가 시작된 기원전 771년부터 통일 진나라가 세워지기까지의 550년 기간을 춘추전국시대라 말한다. 군웅할거 시대인 이 기간 동안 중국인 특유의 대륙기질로 받아들여지는 유연성과 융통성이 생겨났다. 특히 인사 부분은 눈여겨 볼만하다. 노예나 몸종, 비록 죄수 신분일지라도 능력에 따라 벼슬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들은 각자의 기상을 유감없이 떨칠 수 있었다. 붕당정치로 배경은 사뭇 다르지만 우리 조선사에도 탕평을 찾아 볼 수 있다. 숙종때 박세채가 처음으로 주장했다 전해진 탕평은 영조부터 서서히 빚을 발하다 정조때 무르익었다. 정조는 자신의 침실에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란 이름을 붙이고 편액까지 건 것으로 전해진다. 인기드라마 징비록에도 면천제가 등장한다. 공을 세우면 천인신분을 면해 주는 제도다. 최근 경기도가 고위급 인사에서도 이런 저런 태도로 말썽을 자초했다. 법에 따라 의장에게 인사 추천권까지 행사하도록 해 놓고 뒤늦게 3의 인물을 저울질하는 이중잣대로 화를 자초했다. 배경은 다를수 있지만 이런 휘둘림은 200여 의회사무처 직원 모두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소위 괘씸죄로 곧이어 예정된 하위직 인사에서도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사무처 직원들은 인사때마다 변방 신세임을 하소연한다. 진급을 하려면 인사권자 근처에 맴돌라는 말도 있다. 때문에 과거 인사나 총무, 감사, 기획 분야 근무자가 진급 1순위로 분류된 이유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와 시군은 일선 사업부서 근무자를 우선하는 고육책까지 운영한바 있다. 하지만 이런 탕평률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게 작금의 현실이다. 최근 도의회는 의회 기본조례 제정을 준비중이다. 의회사무처 직원들에 대한 신분보장, 인사불이익 근절책을 포함시키자는 주장도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김동수 정치부 차장

[지지대] ‘메이저 퀸’ 전인지 효과

지난 13일 이른 아침부터 TV를 통해 중계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US여자오픈을 본 골프팬들은 전인지라는 스물두살 새로운 골프 스타의 탄생에 환호했다. 올해로 고희를 맞이한 미국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US여자오픈은 LPGA 5대 메이저대회 중 가장 오랜 전통과 최고의 상금이 걸린 대회이자 한국 선수들과 유난히도 우승 인연이 많은 대회다. 1998년 박세리가 처음으로 우승한 이후 2005년 김주연, 2008년 박인비, 2009년 지은희, 2011년 유소연, 2012년 최나연, 2013년 박인비가 우승하는 등 그동안 모두 7명의 선수가 8차례에 걸쳐 정상에 올랐다. 특히, 박세리의 한국인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은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한파로 시름하던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했다. 당시 제니 추아시리폰(태국)과의 연장전에서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세컨드 샷을 날린 장면은 각종 캠페인 영상으로 제작될 만큼 화제를 낳았고, 그 모습을 보고 골프채를 잡은 박인비, 최나연, 신지애 등 수많은 세리 키즈가 등장해 현재 세계 골프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다. US여자오픈 개막을 앞두고 전문가들은 세계랭킹 1위인 박인비와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김효주 등 세계 1~4위들이 우승을 다툴 것으로 예상했으나, 대회 3일째까지는 시즌 1승의 양희영이 선두를 질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양희영의 우승 가능성이 높았지만 3라운드까지 선두에 4타 뒤져있던 전인지가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초청 선수로 참가한 LPGA 메이저 첫 대회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려 약 9억원의 우승상금도 손에 넣는 행운을 안았다. 세계 여자골프를 주름잡고 있는 코리언 군단에 또 한명의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전인지의 우승으로 한국 골프의 위상을 다시 한번 세계에 떨침은 물론 그녀가 소속된 하이트진로의 주가가 사흘째 상승하고, 하이트진로의 지주사인 하이트진로홀딩스 주가는 15일 최근 3년내 최고치로 상승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또한 전인지의 우승은 미국 현지에 브랜드 홍보 등 2천억원 이상의 홍보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기업이 스포츠 구단을 운영하고 선수 육성과 스폰서십을 하는 이유다. 황선학 체육부장

[지지대] 官運-경기도 大望論

관운(官運) 하면 고건(77)씨다. 1961년에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했다. 때마침 박정희 정권이 등장하던 때다. 유례없는 영남(嶺南) 독주 시대의 서막이기도 했다. 호남에 대한 견제와 핍박이 혹독했다. 하지만, 호남 출신인 그는 승승장구했다. 강원도 부지사(1973년), 전라남도지사(1975년)로 임명됐다. 1979년에는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까지 했다. 권력자의 최측근 자리였다. 바로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됐다. 권력은 끝났고 박정희 시대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잘 나갔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교통부 장관과 농수산부 장관, 내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노태우 정부에게는 관선 서울시장직을 받았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총리도 두 번이나 했다. 한번은 김영삼 정부가, 또 한 번은 노무현 정부가 준 선물이었다. 관운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노무현 정부 때다. 2004년 3월 12일 국회가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했다. 하필 국무총리가 그였다.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에 올랐다. ▶사람들은 그를 관운(관리로 출세하도록 타고난 복)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이 과거 인터뷰로 남아 있다. 나는 특정 정권에 충성한 일이 없다. 행정 전문가로서 나에게 일이 맡겨지면 국민을 위해 봉사했을 뿐이다. 그래서 어느 정부든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를 징발해 갔다. 실제로 그는 행정의 달인이라고 불렸다. 또한 그만큼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갖춘 이도 드물다. 고건의 관운에는 이처럼 준비된 능력이 있었다. ▶그렇다고, 호남이라는 출신배경까지 생략할 수는 없다. 역대 모든 영남정권엔 숙제가 있었다. 호남 민심 끌어안기다. 그때마다 권력의 구미에 들어맞는 적임자가 고건이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만 그가 고위직에 임명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더 재미있다-이때의 서울시장은 선출직이었다-. 그의 출세를 두고 역(逆)지역주의 산물이란 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경기도가 호남처럼 됐다. 선거를 위해 배려해야 할 지역이 됐다. 또 그런 정치 계절이 온 모양이다. 경기도 출신의 원유철(평택갑)ㆍ이종걸(안양만안) 의원이 원내대표가 됐다. 좋든 싫든 둘에게는 경기도 배려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4선인 이들에겐 자존심 상할 소리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게 현실이다. 탓하고 있기보다는 득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현명하다. ▶그 옛날 호남 배려는 호남의 거물 고건을 만들었다. 지금의 경기도 배려도 언젠가 경기도 거물 누군가를 만들어낼 것이다. 지금 경기도 정치판에서 나도는 △△△ 대망론ㆍ○○○대망론도 따지고 보면 경기도 배려라는 정치적 한계부터 역으로 시작되는 논리다. 김종구 논설실장

[지지대] 내년 최저임금 6030원

최저임금위원회가 지난주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6천30원으로 의결했다. 올해보다 450원(8.1%) 오른 금액이다. 월급으론 126만270원(월 209시간 기준)이다. 최저임금위는 사상 처음 최저임금이 6천원대에 진입했고, 2008년 이후 최대 인상률을 기록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소 두자릿수 인상을 기대한 노동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절박한 생계난을 외면한 결정이라고 비판했고, 경영계도 영세기업의 부담을 늘렸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정부는 저임금 근로자 342만명이 이번 인상안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내년도 월 환산 최저임금 126만원은 2015년 미혼 단신 월 생계비(150만6천179원)에도 못 미친다. 2014년 기준 도시근로자 1인 가구 가계지출(월 166만원)에도 한참 미달된다. 노동자 혼자 살아가는데도 시급 7천200원~8천원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자 가구가 평균 2.5명이니 가구당 최저생계비는 월 200만원이 넘는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했던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최저임금마저 제대로 못 받는 근로자가 많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현재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는 232만6천명으로 전체 근로자(1천879만9천명)의 12.4%에 달한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는 연령별로는 청년층과 노년층, 학력별로는 대학생, 고용형태별로는 비정규직에 집중됐다. 최저임금 미지급 근로자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한 것은 정부의 미약한 단속 의지가 큰 원인이다. 최저임금을 위반해도 제재받는 사업주가 1%에도 못미치는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고용노동부가 사업장을 단속해 최저임금법 위반을 적발한 건수는 2012년 9천51건에서 2013년 5천467건, 지난해 1천645건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근로자 스스로 최저임금법 위반 사업주를 신고한 건수는 2012년 771건에서 2013년 1천423건, 지난해 1천685건으로 급증했다. 그동안 정부는 최저임금을 제대로 주지않아 적발돼도 근로자에게 미지급 임금을 주는 시정조치만 하면 제재를 하지 않았다. 법 위반을 해도 시정조치만 하면 불이익이 없는데 누가 제대로 법을 지키겠는가. 한국의 노동빈곤층에게 최저임금은 생명선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률을 높였다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위안부 영화 ‘귀향’

영화 귀향(鬼鄕)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인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에 사는 강일출(87)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을 소재로 했다. 이 그림은 1943년 일본 순사들에게 붙들려 중국 지린의 위안소로 끌려간 강 할머니가 모진 고초를 당하다 전염병에 걸리자 일본군이 자신을 불태워 죽이려 했던 장면을 기억하며 2001년에 그렸다. 영화는 조정래 감독이 2002년 나눔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중 그림에 영감을 받아 시작됐다. 하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조 감독은 투자자를 찾지 못해 13년간 시나리오를 다듬기만 하다가 지난해 말에야 본격 촬영에 들어갔다. 영화를 제작할 돈이 없다는 소식에 한 네티즌이 크라우딩 펀딩을 제안해 모금이 시작됐고, 국내외 4만여명이 소액으로 보내온 돈이 6억원쯤 됐다. 배우 손숙 등 출연 배우와 스태프들은 사실상 무보수로 참여했다. 영화 엑스트라도 SNS를 통해 모집했다. 국민 모금으로 13년 만에 영화가 완성됐지만 이번엔 배급사를 찾지 못해 개봉을 못하고 있다. 조 감독이 직접 많은 곳을 찾아다녔지만 거절당했다. 대부분 흥행이 되겠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또 다른 이유는 영화 배급사들이 일본에서의 영업 등을 고려해 일본이 껄끄러워하는 영화의 배급을 꺼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에선 영화를 배급해달라는 청원이 이어지고 있다. 강일출 할머니는 영화를 생전에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하고 있다. 조 감독은 광복 70주년을 맞는 오는 8월 15일에 시사회를 열고 영화를 개봉할 계획이었지만 사정이 여의치않자 개봉일을 올해 말로 미뤘다. 세계적인 영화제에 입상하고 나면 배급사들이 관심을 가질까 싶어 베를린영화제 등에 출품해서 돌파구를 찾는 계획도 세웠다. 조 감독은 위안부 문제는 인권 문제다.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세상에 드러나야 한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왔다면서 사실상 국민이 만드는 영화가 상영되도록 마지막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흥행 때문에,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영화 귀향이 극장에 걸리지 못하다니 너무나 가슴 아프다. 영화 배급사는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인가 싶다. 올해만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일곱 분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 등록된 238명 가운데 생존자는 이제 48명으로 줄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곳간 열쇠

불씨와 장롱과 곳간의 열쇠를 인계인수 받으며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집안 살림살이 일체의 권한을 이양하던 성스러운 배턴터치의 모습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 지 오래다. 부와 위세의 상징이었던 한 집안의 곳간열쇠. 대개 이것은 고래로부터 서방은 뺏겨도 이것은 빼길 수 없는 아녀자의 자존심이자 정체성이었다. 며느리로부터 당당할 수 있었던 징표이자 바깥으로만 내 돌던 서방 바람 재우기 방편으로, 집안 건 사용으로까지 두루 사용되며 속곳 허리춤에서 쉬이 모습을 내놓을 줄 몰랐던 그 열쇠. 그것이 곳간열쇠인 것이다. 최근 남경필 경기지사는 도의회 임시회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상시 예산 편성에 이어 예산 편성 권한 자체를 경기도의회에 주겠다는 것이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곳간 열쇠를 넘기는 듯 집행부의 고유 권한으로 여겨지던 예산편성권을 도의회에 넘기려 하고 있다.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집행부의 예산편성 권한을 의회에 주는 것은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 처음이다. 이 때문에 이번 예산편성 권한의 의회 부여가 앞으로 도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도는 자체사업예산 603억원 중 도의회 의장단, 대표단, 상임위원장에 최대 100억원의 예산을 편성하도록 할 계획이다. 특히 남 지사는 예산편성과 관련해 의회가 현장의 목소리를 사전에 수렴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도의회의 예산권 강화가 미래의 방향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남 지사는 일하는 사람(공무원)들부터 탁상에서 세워지는 예산 편성보다는 도민의 목소리, 현장의 요구가 무엇인지 파악해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곳간의 주인은 도민이고 그 곳간은 그 주인인 도민이 필요로 하는 일에 열려야 한다는 취지다. 이를 놓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곳간의 열쇠를 쥐었다고 자신의 배만을 채우고 일부가 담합하여 여기저기 퍼 주며 인심 쓰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집행부가 도의회에 예산 편성권한을 이양한 순수한 목적대로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돼 도민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우선적 사업에 제대로 곳간 문이 열리길 기대한다. 최원재 정치부차장

[지지대] 열정페이는 ‘그만’

대학생인 큰 딸아이가 여름방학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하우스가이드(공연장 안내원)다. 말이 좋아 하우스가이드지, 입장권을 받는 일은 기본이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의 물품(주로 꽃다발)을 보관해주거나 기념품을 판매하는 일에서부터 공연 중 화장실이 급한 관객을 안내하는 일, 허락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관객을 제지하는 일 등이 주 업무다. ▶공연 시간 전후를 포함해 대여섯 시간을 서서 일하면서 때론 각종 불만을 터트리는 관객의 욕설까지도 감내해야 한다. 자신을 감정노동자로 인정하면서 손에 쥐는 일당은 2만7천원. 최저임금인 시간당 5천580원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도 수십 대 일에 달하는 경쟁률을 뚫은 데는 이유가 있다. 경기도 내 한 공연장에서 일했던 게 스펙으로 작용했던 거다. ▶고용주의 입장에선 비록 아르바이트생이라 해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 낫다. 최근 한 온라인 아르바이트 포털이 대학생 4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더라도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6.8%가 아르바이트 채용에도 스펙이 작용한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40%는 아르바이트 지원 시 스펙 때문에 불합격 한 경험이 있다고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보수가 적어도 하는 수 없이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경험을 쌓기 어려운 업종은 더 심하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인턴 경험이 있는 직장인 407명을 대상으로 최악의 인턴경험을 물어봤더니 이른바 열정페이로 불리는 너무 적은 월급을 꼽았다고 한다. 열정페이는 원하는 분야에서 일하게 해줬다는 이유로 업무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고용주의 인식이나 행태를 풍자한 신조어다. ▶문제는 청년층 과반수가 열정 페이를 경험했다는 데 있다. 올핸 특히 메르스 여파로 아르바이트 시장 규모가 축소되면서 일자리 구하기 전쟁이 벌어졌다. 근로계약서 등을 꼼꼼히 살피지 않았다면 열정페이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거다. 학생들이 아르바이트하는 이유는 미래 직업에 가까이 가고자 인 때도 있지만, 등록금이나 용돈 마련이 먼저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스펙을 쌓으려는 대학생들을 악용하는 사례는 근절돼야 한다. 박정임 경제부장

[지지대] 촉새 멸종

촉새(black-faced bunting)는 참새목 멧새과다. 위아래 갈색과 녹색이고 크기는 16㎝ 정도다. 동북아시아에 서식하며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 9월 하순에서 10월에 우리나라를 지나간다. 울음소리가 참새처럼 가늘고 짧다. 쉴새 없이 지저귀며 빠르게 행동하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간혹 사람이 촉새에 비유되기도 한다. 촉새 같은 사람. 말이 많고 경망스러우며 행동이 가벼운 사람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이 촉새가 정치권에 느닷없이 등장했던 예가 있다. 2011년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하던 때다. 당시 비대위원 구성은 언론과 당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 인선안이 일부 언론에 먼저 보도됐다. 보도한 언론엔 특종(特種)이었고, 다른 언론엔 낙종(落種)이었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훗날 촉새가 나불거려서라는 표현까지 쓰며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의 조직 관리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입단속에 철저하고 보안을 중시한다. 자신의 뜻과 다른 말이 언론에 얼비치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보안에 허술한 주변인에게 이러면 같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경고를 했다는 전언(傳言)이 숱하다. 친박 출신의 A씨(공공재단 대표)는 SNS를 하지 않는다. 1년 여전, 시대에 뒤진 것 아니냐고 물었을 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 (SNS에서)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사고를 친다. 말 많고 말실수하는 것을 (박근혜 대통령은) 제일 싫어한다. ▶엊그제 청와대 행정관 세 명이 잘렸다. 내부 정보 유출에 따른 책임이라고 한다. 민정수석실이 확인했다는 혐의(?)는 이렇다. 총리 발표 이틀 전쯤 청와대 홍보수석실에 법조인 총리를 염두에 두고 발표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내려갔다. 이 사실을 한 행정관이 여권 인사에게 귀띔했다. 이후 요로를 통해 정보가 전파됐고 결국 언론에 차기 총리 법조인 유력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다른 두 행정관의 해직 사유도 카톡에서의 말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류 촉새는 사라지고 있다. 중국과 타이, 캄보디아에서 식용 재료로 사용되면서부터다. 보호 강도가 2004년 위협 근접에서 2008년 취약, 2014년 멸종위기로 높아졌다. 국제 조류보호단체인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은 막대한 양의 해충을 조절하는 생태계 질서가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청와대 주변에서 인간 촉새도 사라지고 있다. 보안을 중시하는 권력의 입맛 때문인 듯 보인다. 촉새의 재잘거림이 귀찮음을 이해하지만, 이러다가 사사로운 정보 나눔의 문화까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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