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새

우리나라는 지역적으로 열대와 한대의 중간지역이어서 세계적으로 드물게 많은 철새들이 머물거나 지나간다.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겨울철새는 오리류, 고니류, 두루미류 등 모두 116여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들 겨울 철새들은 중국 동북지방과 시베리아 등지에서 여름 동안 번식과 새끼 키우기를 마친 뒤, 혹한이 몰아 닥치는 겨울이면 생존을 위해 따뜻한 남쪽나라로 내려온다. 그러나 봄이 되면 다시 번식지인 북쪽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철새들은 그 먼 거리를 한 치도 틀리지 않고 방향을 잡아 날아간다고 한다. 낮에 주로 이동하는 철새들의 경우, 자신들의 생체 시계속에 내장돼 있는 정보로 빛의 방향을 판단하여 자신들이 날아갈 방향을 정한다는 것이다. 밤에 주로 이동하는 철새들은 별자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또 철새들은 지구 자기장(磁氣場)을 감지하여 이동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개 철새들의 장거리 이동은 남북 방향을 따라 이루어지고 있으며, 철새들이 지구 자기(磁氣)를 감지하여 방향을 잡는다고 한다. 실제로 비둘기의 머리에서 나침반 역할을 하는 1㎜×2㎜의 자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러한 겨울철새들이 지금 한국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들의 서식지가 파괴·훼손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겨울이면 찾아오던 유명한 낙동강 넓은 하구의 을숙도주변은 하구언댐과 빌딩, 도로 소음, 공해때문에 매년 철새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경남 창원 주남 저수지도 온갖 큰 공장들이 들어서 아주 찾아오지 않거나 과거에 비해 줄어 들었다. 4∼5년 전만 해도 주남 저수지에서만 장관을 이루던 가창오리 무리들도 충남 서산 천수만으로 옮기더니 그 곳에서도 살수 없는지 2∼3년전 부터는 전남 해남 황산면 바다갯벌을 막는 고천암 간척지 호수에 날아온다는 소식이다. 철새가 찾아오지 않는 환경은 인간도 살기 힘들게 된다. 그러나 죽음의 호수였던 시화호에 다시 청둥오리가 찾아온 일은 신기할 정도이다. 철원 평야에서 펼치는 두루미들의 군무도 장관이다. 그동안 환경·시민단체들이 기울여온 눈물겨운 노력의 대가이다. 4일 입춘이 지나면 철새들은 다시 북쪽으로 서서히 떠날 것이다. 겨울철새들이 다시 한국으로 날아오도록 환경보호와 습지생태계 보전에 주력해야 한다.

119 신고체계가 이래서야

119전화는 가장 긴박하고 위급한 사건 사고 발생시 절대 필요한 신고체계이다. 신속한 접수 및 처리는 119의 생명이다. 이러한 119 신고체계에 허점이나 이상이 있다면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경기도내 수원·성남·안양·송탄·안산·고양·과천·오산·시흥·군포·하남·안성 등 상당수 지역에서 119 신고가 타지역 소방서로 접수된 후 다시 해당 소방서로 통보되는 이중체계로 운영되고 있다니 매우 걱정스럽다. 전화국 관할구역과 소방서 관내지역이 일치하지 않거나 전화 국번호가 혼재된 시·군·구 접경지역에서 119 신고시 전화국 선로에 따라 인근지역의 소방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본보의 보도에 따르면 수원 중부소방서의 경우 관내인 권선구 매교·세류·교동에서 화재나 재난이 발생, 119로 신고하면 회선이 남수원전화국으로 연결돼 있어 수원 남부소방서로 접수된 후 다시 수원 중부소방서로 무선 통보되고 있다고 한다. 서울전화 수용지역인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 등 13개 동과 성남시 금곡동 일원은 회선이 서울 은평, 양재전화국으로 각각 연결돼 있어 서초·서울소방서로 119 신고가 접수되고 있는 상태다. 특히 오산소방서 관할인 화성군 봉담읍 매송면, 태안읍 기안리, 오산시 청호동 등은 전화국 수용구역과 행정구역이 일치되지 않아 119 신고가 엉뚱하게 수원 중부, 남부, 송탄소방서로 접수된 후 다시 오산소방서로 연결되는 실정이다. 119 신고체계가 이러한데도 즉시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경기소방본부가 한국전기통신공사측에 기술적인 문제 해결과 대책을 요구한 사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달 “119 특수번호 접속체계는 전화국단위 수용구역의 선로 및 교환기 시스템 중심으로 접속되므로 행정구역 또는 소방관서 관할구역과 일치되게 만드는 것은 엄청난 예산이 소요돼 현실적으로 곤란하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한다. 이 또한 설득력이 없다. 성남시 금곡동에서 발생한 화재신고를 서울 서초소방서에서 접수하는 체계는 얼마나 큰 모순인가. 한국전기통신공사측은 예산을 이유로 중대한 문제점이 도출됐는데도 이를 묵과해서는 안된다. 예산이 부족하면 특별예산을 들여서라도 각종 화재와 재난을 방지, 구호하는 119 신고전화 선로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루빨리 개선해야 할 것이다.

연초부터 물가 너무 뛰었다

연초부터 물가가 심상치 않다. 1월중 소비자 물가가 1.1%(경기·인천 각 1%)나 올라 그동안 안정세를 보여왔던 물가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이같은 상승률은 작년 9월(1.5%) 이후 최고 기록으로 작년 1월보다 4.2%나 오른 것이다. 구조조정에 따른 대량실직사태속에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물가불안’이란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물가가 급등한 것은 농축수산물 가격상승과 각종 공공요금인상 때문이다.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농축수산물 가격이 잦은 폭설에 따른 출하량 감소와 설 수요 때문에 한달 동안 평균 2.8%(경기 3.6%, 인천 3.1%) 올랐고, 의료보험 수가가 9.9% 올랐으며 담뱃값 도시가스요금 상·하수도료 등 공공요금이 2.0%(경기 2.5%, 인천 2.6%) 오른 것도 전반적인 물가를 끌어 올리는 데 크게 작용했다. 물론 1월 한달간의 물가급등을 두고 섣부르게 경제불황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우려하기는 이른감이 없지 않기는 하다. 그러나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국내외 변수가 잠복해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국제유가 및 각종 원자재가격이 들먹거릴 가능성이 적지 않고 정부의 관리에도 불구하고 봄철 신학기 및 이사철을 맞아 각종 사교육비와 전·월세가격도 낙관만 할 수 없는 실정이다. 물가급등은 국민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이 경기침체 못지 않게 심각하다. 물가상승의 피해는 결국 근로소득자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가안정이 실업대책 못지 않게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라는 정부의 인식이다. 물론 정부는 엊그제 서둘러 긴급 물가안정대책을 내놓기는 했다. 우선 상반기 중 공공요금을 동결하고 학교 납입금과 학원비의 인상폭을 최소화 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중앙공공요금에 비해 큰 폭으로 오른 상·하수도요금 등 지방공공요금의 안정화를 위해 지방교부세 산정시 이를 반영키로 했다. 보험약가도 실거래가격조사 결과를 토대로 인하할 계획이며, 전·월세 가격안정화를 위해 임대사업자에게 소득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대책들이 말이나 선언만으로 그치면 결코 물가를 잡을 수 없다. 구체적인 실천이 중요하다. 올해 우리 경제가 안정기조를 유지하면서 4개부문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물가안정이 절대 필요 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정부는 이제 모든 정책수단을 동원, 초기에 물가 오름세를 진정시키는 시책을 실행에 옮기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안기부 자금 특검서 밝혀야

연초부터 불거진 안기부 예산 선거자금 전용이 정치권을 계속 강타하고 있다. 검찰이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하고 있는 강삼재(姜三載)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의 조사가 여의치 않아 불구속 기소하고 또한 법무부가 한나라당을 상대로 국고환수를 위한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여야간의 끊임없는 소모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지난 29일 있은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진상을 밝혀야 된다는 야당의원의 주장이 제기되어 정국이 더욱 어수선하다. 검찰의 주장대로 안기부 예산이 96년 제15대 총선시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후보자들에게 1천여억원의 거액이 지원되었다면 이는 국기(國基)를 흔드는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막대한 국민의 혈세가 특정 정당 후보자의 선거자금으로 둔갑되었다면 이를 지시한 당사자를 비롯한 관련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처벌을 받아야 되며 또한 사용된 자금은 전액 국고로 환수하여 더 이상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된다. 그러나 현재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물론 강삼재 의원도 안기부 자금 사용을 부인하고 있다. 통치자금의 일부이니, 또는 제15대 대선시 사용된 선거자금의 잔여분이니 등등 여러 가지 설이 많으나,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 없다. 심지어 강의원은 정치자금 문제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다고 공언하면서 검찰 조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하니 결국 실체 파악 없이 정치적 공방의 지속 속에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많다. 여하한 경우에도 안기부 예산 선거자금 전용문제는 밝혀져야 된다. 이 사건의 실체가 밝혀지지 않으면, 정치권은 이로 인하여 큰 수렁에 빠짐은 물론 여야관계가 정상화되기 힘들다. 더구나 이 사건에 대하여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의혹은 대단하다. 이를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는 여야에 대한 불신은 최고조에 달하고 있으며, 또한 검찰에 대한 시선 역시 결코 곱지 않다. 안기부 자금 전용의혹 문제는 과거에 있었던 정치자금 사건과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과거와 같이 정치자금이란 이유로 흐지부지된다면 검찰은 물론 여야는 국민들로부터 더 이상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다. 현재 검찰의 수사를 믿을 수 없다면 특별검사제라도 도입하여 실체를 밝혀 국민적 의혹을 해소시켜 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지금 3D업종 가릴땐가

실업홍수 사태속에 일부 중소기업체의 구인난이 여전하다. 경기침체와 구조조정 여파로 실직자와 노숙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터에 이른바 3D업종 중소기업에서는 일손이 모자라 애를 태우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힘들고, 지저분하고, 위험한, 소위 3D업종 중소기업이 사람을 못구해 어려움을 겪어온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경제불황과 산업구조 조정으로 대량 실직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올해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은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느낌이다. 더욱이 올 1·4분기엔 계절적 요인도 겹쳐 실업자가 100만명을 육박하고 실업률도 4%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이와는 달리 도내 상당수 3D업종 기업들이 일손 부족으로 생산에 차질을 빚는 등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를 다시 살려야 할 긴박한 상황에 실직자로 남아 있을 망정 3D업종엔 취업하지 않겠다는 심리가 퍼지고 있는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실업자가 넘쳐나는 상태에서 이같은 기현상이 나타난 데 대해 우선 정부의 실업자 대책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예컨대 정부의 실업대책중 공공근로사업은 고용창출이라기보다 노임살포에 그치고 있다. 막대한 국가재정이 이들 사업에 쓰이는 동안 3D업종 기업들은 구인난을 걱정하고 있다. 실업대책 자금중 일부를 3D업종 취업지원에 할애했더라면 인력난과 실업해소를 부분적이나마 함께 실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3D업종을 기피하는 일부 사회분위기를 바로잡는 일이다. 경기중기청의 경우 지난해 267개 3D업종 기업에서 근무하는 1만7천667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내국인으로 교체했지만, 이중 1천220명이 1∼2개월도 안돼 중도 포기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4만8천8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주로 3D업종에 취업하고 있다. 불법체류자 16만6천여명을 합치면 20만명이 넘는다. 이자리를 외국인 대신 내국인이 모두 채우면 실업률은 크게 낮아질 것이다. 물론 놀더라도 실업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궂은 일이라도 3D업종에 취업할 것인가는 구직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개인별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강요할 일도 못된다. 그러나 노동력을 갖고 있는 한 노숙보다는 건전한 산업현장을 찾겠다는 정신과 노력은 가치있는 것이다. 3D업종 중소기업에서 창의와 성취의 가능성을 찾아보는 것이 꽉 짜여진 대기업집단에서 어줍잖게 지내는 것보다 더 발전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중학생의 ‘性’

우리나라 중학생의 성교육에 대한 개선책이 시급해졌다. 중학생의 성지식이 100점 만점 기준 46.6점으로 매우 낮을뿐 아니라 10명중 4명이 이성교제를 하며 성(性)을 ‘남녀간의 성적관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 중학생의 경우 83.3%가 “성관계를 하더라도 꼭 결혼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하는 등 혼전 성관계에도 개방적인 인식을 갖고 있어 걱정스럽다.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경기대 교육대학원 김상원 교수 등에 의뢰, 최근 발표한 ‘중학생의 성의식 조사 및 성교육자료집 개발연구’결과를 보면 한마디로 의식은 개방적, 지식은 낙제점이다. 지난해 7∼12월 전국 중학교 1,2,3학년 학생 2천82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성과 교제중인 학생은 41.3%이며 가장 큰 고민이 이성교제, 성충동, 임신·인공유산, 성행위, 자위행위 순으로 나타난 것이다. 첫 성경험 시기는 중2때(32.9%)가 가장 많고 중1, 중3순이었으며 성관계시 76.8%가 피임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학생의 0.8%가 임신 경험이 있고 임신했을 때는 인공유산과 출산 후 입양으로 나뉘었으며 성추행·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22.3%나 된다. 문제는 중학생들의 이성교제는 늘어나고 있으나 성지식은 평균 50점에도 못미친다는 점이다. 또 PC보급과 인터넷 음란물 등의 접촉으로 학년이 낮을수록 성에 대한 개방적 성향이 높다는 것이다. 중학생이 고교생보다 오히려 부모에 더 저항적이라고 한다. 앞으로 중학생들의 성의식은 더 개방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를 사회적 현상으로는 인정하려 하지만 자기 자녀의 문제로는 받아 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도 성문제에 직접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정신적·현실적인 준비를 해야 된다. 성을 아름답게 가꿔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 자녀들의 실수를 막아주고 차선책으로 실수는 따뜻하게 치료해주는 자세를 갖는 것이 이 시대 부모들이 할 일이다. 올바른 성가치관 교육을 위해 초·중·고등학교 교과과정에서 당연히 성교육을 정규과목으로 삼아야 한다. /淸河

이수현씨의 죽음

우리에게 이수현씨(27)의 죽음은 무엇일까. ‘일본 열도를 울린 의인’이란 말을 듣는다. 고려대 무역학과를 휴학하고 일본에 건너가 유학중이던 일본어학교 아카몬카이에서 학교장으로 지난 29일 영결식을 치렀다. 영결식장은 모리 일본총리등 각료를 비롯한 각계인사 1천여명이 조문하고 이씨의 홈페이지 게시판은 추모의 글이 2천100여건이나 올라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일본 언론은 이씨가 지난 26일 도쿄시내 전철역에서 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져 살려내고 자신은 숨진날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던진 한국유학생의 죽음을 헛되이 말자’고 했다. ‘한·일 우호증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씨의 의로운 죽음은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시각을 새롭게 한 것은 사실이다. 일본에 의해 희생당한 이씨의 4대에 걸친 사연은 그의 죽음에 애도의 정을 더욱 절실하게 했다. 살신성인의 의로운 죽음은 우리 주변에서도 더러 있는 일이다. 입장을 바꾸어 일본인 한국유학생이 서울시내 전철역에서 위험에 처한 한국인을 구하고 자신은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만약에 그런 경우가 이수현씨에 앞에 서울에서 먼저 일어났다면 우리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의인, 이씨에 대한 일본열도의 후한 조의는 어디까지나 인간정신의 발현이다. 일본 사회 역시 점차 삭막해지는 결핍된 인간정신을 한 이국인의 의로운 죽음을 통해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역땅에서 목숨을 던진 젊은 의인은 우리들에게 한국인의 긍지를 갖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렇다하여 일본의 국익을 한국의 국익으로 양보하는 일은 조금도 없다는 사실이다. 부산에 사는 이씨의 여자친구는 ‘수현아! 넌 지워지지 않아. 항상 널 위해 노래부를게. 천국에서 들으렴…’하고는 흐느꼈다고 전한다. 생떼같은 아들을 놓친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일본으로 달려간 이씨부모는 한줌 재로 변한 유해를 저미는 가슴에 품고 귀국했다. 다시 살아 돌아올수만 있다면 ‘한국인의 긍지’, ‘일본인의 후의’를 다 반납해도 좋다. 그래서 다시 살아날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것이 인생사다. /白山

인천공항 개항준비 완전한가

인천국제공항이 오는 3월 29일 개항된다고 한다. 동북아의 허브공항으로 역할이 명실상부할 인천공항이 개항되면 인천시는 국제도시로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인천공항이 완전하게 개항하려면 아직도 문제점이 많다. 우선 공항 주변의 개발이 늦어져 허허벌판으로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살벌하다. 당장 환승탑승객들이 쉴만한 호텔이 하나도 없다. 관광객들이 찾아가 볼만한 관광지도 개발이 안됐다. 인천공항주변에 도시기반이 아직 조성안된 것도 문제점이다. 이러한 것은 외형적인 것이지만 특히 1천300억원을 들여 설치한 수하물처리시설이 미비한 것은 개항예정일이 차질이 생길만큼 매우 심각한 실정이다. 지난 연말 여객터미널 3층에서 실시한 출발수하물처리 시험 결과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모듈당 컨베이어 처리능력이 1시간에 600개로 설계돼 있으나 이보다 훨씬 떨어진 평균 429개가 처리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또 비상버튼이 불필요하게 작동돼 컨베이어벨트가 정지되고 일부 컨베이어는 장애발생으로 처리속도가 크게 떨어지는 등의 결함이 발견됐다. 더욱 우려되는 사태는 인천공항에 입주할 예정인 항공사측에서 인천공항의 수하물처리시설이 100% 가동된다고 하더라도 시간당 600개 처리용량으로는 여행객 짐을 원활히 처리할 수 없다고 지적한 점이다. 적정수하물 처리용량이 최소 900개 이상돼야 적체현상이 해소된다는데 600개로는 엄청난 혼란이 생긴다는 것이다. 연간 2천700만여명의 탑승객을 수용할 인천공항이 여행객 짐처리가 늦어지면 탑승수속과 항공기 출발지연으로 이어져 공항의 전반적인 기능이 저하될 게 아닌가. 공항운영의 중요한 부분인 수하물처리시설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개항을 늦추는 문제가 그래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인천공항측은 수하물처리시설은 약 20㎞에 이르는 컨베이어와 4천개 이상의 센서 및 각종 제어시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성능 발휘에 이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장담할 일이 아니다. 인천공항은 개항에 따른 본란의 지적을 유념, 모든 문제점을 면밀히 파악, 분석하여 대책 마련과 함께 개선작업에 주력하기 바란다.

규제개혁 아직도 멀었다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해온 행정제도 개선 및 규제개혁이 아직도 미진한 상태다. 행정자치부가 지난해 자치단체를 비롯 교육청과 지방국세청 및 지방경찰청 등 298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면조사 결과를 보면 이같은 현상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청소년보호법과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 규정상 제한 연령이 서로 다르거나 방화시설 시정 보완명령이 행정기관과 소방기관으로 이원화 돼 있는 등 664건의 낭비적이고 비효율적인 제도 및 국민편의 저해 행정제도가 드러났다. 정부가 아무리 위민(爲民)행정을 구현한다며 제도개선과 규제혁파를 부르짖어도 일선 행정기관에선 이 외침이 겉돌고 있는 것이다. 행정제도 개선과 규제완화는 변화된 환경에 따라 불필요하고 잘못된 법규·규정 등을 고쳐감으로써 민원인에게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며 동시에 이를 통해 국제경쟁력 제고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95년부터 행정쇄신위원회를, 98년부터는 규제개혁위원회를 가동해 수만건의 비능률적 제도를 폐지하고 규제를 완화조치 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선 민원창구에서 공무원으로부터 받는 국민들의 느낌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전히 공무원이 복잡한 모순투성이의 규정을 내세워 ‘처리불가’를 주장하고, 규제철폐 사실조차 모르면서 고자세로 우기는 일도 없지 않다. 또 불필요한 구비서류를 과다하게 요구하거나 반복적으로 보완을 요구하다가 ‘처리불가’를 통보함으로써 민원인들로부터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행정제도 개선과 규제개혁 정책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재량권 거머쥐기 같은 욕심이나 공직자들의 권위주의적 규제 위주 사고방식 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행정제도 개선과 규제개혁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를 저해하는 법령개폐와 함께 현장 점검을 강화하고 규제개혁 불이행 사례를 찾아내 중대한 잘못이 드러나면 문책하는 등 사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공무원들이 공복으로서 스스로 봉사하려는 정신자세를 갖는 것이다. 이제 모든 공무원들은 그동안 민원인들의 편의를 저해하고 불편을 주던 폐습을 버리고 인허가 업무에서 자주 나타나는 재량권 남용과 구태의연한 권위주의 잔재도 말끔히 털어버려야 한다.

브레이즈델 목사

약 5년전인가. 그 무렵에 개봉된 ‘쉰들러’란 영화가 있었다. 제작사, 감독, 주연배우등 이름은 잊었지만 미국영화임은 분명하다. 쉰들러는 독일사람 이름이다. 2차대전이 한창인때 독일군을 상대로 군수품장사를 했다. 돈버는 일이라면 이것저것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던 쉰들러가 인간애에 눈을 뜬 것은 유태인들이 대량 학살당하는 것을 보고나서였다. 죽음의 현장으로 끌려가는 벌거벗은 유태인들 가운데 남자는 멀리 성기까지 노출됐으나 혐오스럽기보단 처참한 장면이 리얼리티하게 연출된 명화였다. 쉰들러는 이토록 불행한 유태인들을 한사람이라도 더 빼돌려 살려내기 위해 독일군 장성들에게 번 돈을 다 털어 뇌물로 바친다. 쉰들러는 실존 인물의 실화다. 50년전 한국전쟁판 쉰들러로 불리는 러셀 브레이즈델씨(91) 방한이 무척 감동적이다. 전쟁 당시 미공군중령으로 군목이던 그는 전쟁고아 1천여명을 미군 당국에서도 불가하다는 것을 끝내 설득시켜 제주도로 무사히 피란시킨 전쟁고아의 아버지다. 그제는 반세기만에 양주군 장흥면 한국보육원을 찾아 황온순원장(101세·여)을 비롯 30여명의 전쟁고아들과 뜻깊은 만남을 가진데 이어 어제는 고양시에서 역시 전쟁고아들과 해후했다는 보도가 눈길을 끈다. 벌써 60대를 바라보는 전쟁고아 20여명과 일일이 손을 맞잡으며 재회의 감격을 나누고 스님이 된 황병진 장안사주지(고양시 일산구 풍동)는 큰 절을 올렸다고 본지기사는 전한다. 그에게 큰 절을 올리고 싶은 당시의 전국 전쟁고아들을 다 만날수 없겠지만 치열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국에 꽃피운 인간애는 아마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미 아흔을 넘긴 브레이즈델 목사가 방한한 것은 생전에 전쟁고아들이 어떻게 사는가를 직접 보고 싶어서이겠지만 전쟁고아들 역시 다시 보고싶었던 여간 고마운 은인이 아닐수 없다. 아니 우리 모두의 은인이다. 전쟁은 인간을 추하게 만든다. 인성을 잃게 해 자신만 살기위해 어쩔수 없이 사악해지기 쉬운 것이 전쟁이다. 이런 가운데서 인간애를 살린 박애정신은 쉰들러 이상이다. 우리는 그의 방한으로 전쟁의 참화와 사람이 더불어사는 인간정신에 다시 한번 일깨움을 받는다. 브레이즈델 목사의 남은 여정이 아무쪼록 편안하고 귀국후에도 하느님 뜻을 이루는 여생이 되기를 빈다. /白山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