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의가 통하지 않는다

고대 중국 촉나라의 유비가 집권하고 있을 때 일이다. 어느 해 가뭄이 너무 심해 흉년이 들자 유비는 식량으로 술을 빚지 못하도록 하는 엄금령을 내리고 집에서 술을 빚는 도구가 발견되면 벌금을 물리겠다고 했다. 주조 금령이 내려지자 긴장과 소란이 일었다. 대신들도 이 금령중 불합리한 부분을 고치자고 간언하고자 했으나 좋은 방법이 없어 곤란해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익살맞은 풍자를 잘하는 간옹이란 사람이 있었다. 유비와는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한번은 유비와 여행을 하다가 길을 지나가는 남자와 여자를 보았는데 이때 간옹이 유비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이 지금 간음을 하려 하는데, 왜 저들을 잡아와 법대로 처벌하지 않습니까?” 유비가 놀라며 물었다.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간옹이 웃으며 말했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저들은 모두 간음할 때 쓰는 도구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유비는 간옹의 말을 듣고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리고 자신이 내린 주조 금령 중 억지를 띤 부분을 확연히 깨달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유비는 술 빚는 도구로 죄를 다스리는 방법을 즉각 고쳤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유비가 내린 ‘술을 빚는 도구가 발견되면’과 같은 단서가 붙은 단속규정이 많다. 그러나 간옹과 같이 개선을 건의하는 사람이 없다. 설령 간옹과 같이 건의한다고 해도 묵살당한다. 묵살은 나은 편이다. 괘씸죄에 걸려 설 자리마저 쫓겨난다. 시키면 무조건 시키는대로 하라는 식이다. 우매한 권력자는 사람들을 슬프게 하지만 교활하도록 지능적인 권력자는 사람들을 병들게 한다. 교활하고 지능적인 권력자가 너무나 많은 요즘 세상이다./淸河

N세대

전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젊은이가 나이 지긋한 분에게 좌석을 양보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젊은이가 좀 있다 나이든 분에게 다가서면서 “저보고 뭐라 하셨습니까?”했다. 나이든 분이 아무말을 안했다고 하자 젊은이는 “난 또 저보고 고맙다는 말씀을 하신 줄 알고…”하며 혼자말처럼 말했다. 젊은이는 나이든 분이 아무말을 안한 줄 알았으나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는 것이 섭섭해 일부러 그랬던 것이다. 좌석을 양보하면 당연하다는 듯 인사 한마디 없이 앉는 나이든 분들도 보기가 안좋지만 노인에게 자리를 내줄줄 모르는 젊은 얌체족도 보기가 좋지 않다. 어제 낮 한일타운 건너편에서 탄 시내버스의 좌석이 여학생들로 꽉 찼다. 자리라고는 여학생들이 다 차지해 서 있는 것은 어른들 뿐이었다. 그중엔 나이 지긋한 분들도 있어 차가 이리저리 움직일때마다 손잡이에 매달려 시달리곤 했다. 여학생들은 마냥 웃고 떠드는 바람에 노인의 고역쯤은 눈에 보이지 않았던지 남문까지 가도록 좌석을 내주는 학생은 단 1명도 없었다. 어른들은 그같은 여학생들의 모습에 거슬린 표정을 짓긴 했으나 나무래려 들지는 않았다. ‘요즘 아이들은 옛날같지 않다’는 말은 어느 세대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성마저 달라질 수는 없다. 노인에게 자리양보 안한 것을 두고 인성을 말하는 것은 심하다 할지 모르겠지만 뭔가 잘못된 것만은 사실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심위주의 가치관이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달라진다’는 말이 있다. N세대들도 나이들어 성장하면서 생각하는 것도 성숙할 것으로 믿고 싶다. /白山

상수도요금 인상, 재고해야

지방자치단체별로 수도요금을 10%에서 최고 40%선까지 이미 인상했거나 또 인상을 추진중이어서 주민들이 벌써부터 반발하고 있다. 지난 22일, 행정자치부가 최근 누적되고 있는 상수도 적자를 해소하고 물소비를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2001년까지의 구체적인 수도요금 인상계획을 수립, 11월말까지 보고하라는 ‘상수도요금 현실화 지침’을 일선 자치단체에 시달했다는 것이다. 행자부는 특히 수도요금 현실화 실적이 저조한 지자체엔 보통 교부세를 적게 지급하는 ‘역(逆)인센티브제’를 실시하겠다고 밝히면서 주민반발을 의식하고 있는 일선 지자체의 결정을 독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 때문에 지역별로 수도요금 인상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 수원시는 11월 납기분부터 이미 평균 41% 올렸으며, 고양시 역시 내년 1월부터 평균 41.3%를 인상키로 했다고 한다. 지난 10월부터 수도요금과 별도로 t당 80원씩의 팔당댐 물이용 부담금이 부과돼 평균 35%의 수도요금을 더 내고 있는 수도권 주민들이 그래서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더구나 인상계획을 세운 지역 가운데는 올해초 이미 수도요금을 인상했던 곳이 적지 않으며, 지난 3월 가정용 수도요금을 23% 올린 바 있는 인천은 또 다시 내년 1월부터 가정용 수도요금을 41.9%(영업용 등 포함 평균 30.9%) 인상해야 하는 고민에 빠져 있다. 이와같이 많은 지자체들이 수도요금 인상안을 아직 확정짓지 못했거나 인상했어도 시행을 보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이용 부담금까지 겹쳐 주민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이유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그동안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여 오다가 갑자기 수도요금 현실화로 방침을 바꾸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고충을 잘 모르는 중앙정부의 횡포가 아닐 수 없다. 상수도사업 적자보전을 시민부담으로만 떠넘기려하는 행자부의 ‘상수도요금 현실화 지침’은 마땅히 재고되어야 한다.

고통분담 외면하는 단체장

요즈음 경기도를 비롯한 각 시·군에서는 행정감사, 결산, 또는 예산심의 등이 실시되고 있다. 집행부서는 물론 의회는 지난 해의 살림살이를 점검하고 내년도 살림에 대한 각종 예산을 편성하며, 또한 이에 대한 타당성을 꼼꼼이 챙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경기도를 비롯한 일선 시·군의 행정감사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면 아직도 주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단체장들이 모범을 보이기는 커녕 오히려 낭비성 예산 편성 또는 고통분담을 외면하는 정책이 실시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정부발표에 따르면 경기·인천지역의 실업률이 4.9%와 5.7%대로 낮아졌고 또한 지난 3분기 GDP 성장률이 12.3%에 달해 경기과열까지 우려된다는 낙관적인 걱정의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IMF 체제에 있다. 더구나 IMF 체제이후 직장을 잃었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하루하루의 생계를 걱정해야 되는 상황인데도 단체장들은 절약이 가능한 관공비를 IMF 이전 수준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가하면 때로는 더욱 올린 것으로 나타나 과연 이것이 IMF로 인한 고통을 주민과 같이 하고 있는 단체장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고 있다. 경기도의회에 제출된 자료에 의하면 올해 도내 자치단체장과 부단체장의 판공비가 총 28억9천만원으로 IMF 이전 수준이고, 또한 수원 구리 용인 등에서는 삭감되었던 판공비를 오히려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인천지법에서 내린 단체장 판공비 공개 판결에서와 같이 단체장 판공비 사용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은 대단하다. 이런 상황에서 단체장 판공비 사용에 대한 공개는 생각지 않고 오히려 판공비나 올리는 것은 공개행정을 추구하고 주민과 고통을 함께해야하는 단체장의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주민들을 비롯하여 말단 공무원들이 겪는 어려움은 상당하다. IMF체제의 극복은 주민들의 절약만으로는 안된다. 오히려 단체장을 비롯한 지도급 인사들이 고통을 분담하는 성실하고 절약된 자세를 보일 때 주민들도 행정관청의 시책에 적극 호응하는 것이다. 단체장들의 고통분담을 촉구한다.

箕子의 처신

기자(箕子)는 단군조선의 뒤를 이은 기자조선의 시조다. 사기(史記) 한서(漢書)에 의하면 조선에 들어와 전잠, 방직 등을 일깨운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기자의 동래설을 부인, 기자조선 자체를 전설로 보는 견해가 있다. 기자의 묘도 두군데나 있다. 진(晋)의 두예에는 양나라 몽현에 기자의 묘가 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평양의 을밀대 아래에도 기자의 묘가 있다. 고려 숙종때 그러니까 800여년전 기자릉을 이장했고 조선시대들어 성종이 중수했다. 기자가 은(殷)나라 주왕 밑에 있을 때 일이다. 120일에 걸친 주지육림의 술잔치가 계속되던중 하루는 주왕이 문득 날짜를 물었다.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었으나 제날짜를 대는 신하가 아무도 없었다. 다같이 취해 세월가는 줄 모르고 지냈기 때문이다. 이윽고 기자가 대답할 차례가 되자 그 역시 “모르겠다”고 했다. 알고 있으면서도 거짓말을 한 것이다. 다 모르는 판에 자기만 알고 있으면 경계의 대상이 될 것을 두려워 해서였다. 주왕과는 가까운 친척이었으나 이처럼 몸을 도사렸던 것이다. 마침내 주왕이 망하고나서 그가 망명했다는 것이 동래설이다. 그같은 사람들 틈에 끼어 살자면 함께 그같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것이 기자의 처신이었던 것 같다. 권력의 잔치도 잔치다. 권력의 향연에서 다른 사람들과 인식을 달리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기자의 생각처럼 위험할 수가 있다. 권력의 향연 역시 취하기엔 매한가지다. 그래서 그런지 신선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白山

亂世 유감

난세다. 자고나면 또 뭣이 불거진다. 김태정 전검찰총장 부인 연정희씨가 주었다는 옷로비관련 문건이 터져 큰 파문이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특검이 옷로비 검찰조사를 뒤엎자 검찰은 정일순 라스포사 사장이 특검을 고소한 피고소사안으로 대응할 태세다. 서경원 전의원 사건은 검사가 검사를 불러 검사가 조사한 내용을 다시 조사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언론대책문건의 진실규명은 막상 미진한채 흐지부지 끝났다. 이같은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마치 미로를 헤매는 것같다. 사회 위기수준이 심각하다. 정권의 도덕성 결핍현상이다. 정직하지 않은 탓이다. 현 정권을 가리켜 김영삼 전 정권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세간의 우려가 높다. 그러나 지금같은 사태는 김영삼 정권에서도 없었다. 정권의 부도덕성은 권력의 부도덕한 행사에 기인한다. 그 사례의 하나로 검찰을 들 수 있다. 검찰위상이 전례없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실추된 것은 정권의 책임이다. 대체로 권모술수가 지나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정치보복을 않겠다던 말을 곧이들을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정치개혁은 순수성이 의심되어 신수구세력으로 등장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청와대 비서실을 개편했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기란 불가하다. 내각이 바뀌어도 변화가 있을 수 없는 터에 비서실 개편으로 새삼 국정쇄신의 의미를 둘 수는 없다. 아랫사람 의견과 민중의 소리를 진언하기보단 오로지 윗분의 뜻을 알아서 헤아리기 바쁜 경직된 풍토가 계속되어서는 달라질 수 없는 것이다. 국가조직이든 당의 조직이든 자기책임의 재량이 용인되지 않고 수직선상의 한 사람 눈치만을 살펴서는 조직의 민주화가 이룩될 수 없다. 국정의 혼돈은 필연적으로 민생불안을 가져오고 민심이반을 가져온다. 현 정권이 이같은 항간의 비판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 겸허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첫손꼽히는 정치덕목이다. 정직한 사람이 우대받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정권의 도덕성이 시범돼야 한다. 이는 집권자부터가 진솔해야 가능하다. 난마처럼 얽히고 설킨 오늘의 사회위기는 결국 누굴 탓할 수 없는 김대중 대통령 자신의 책임이다. 이반된 민심을 돌이키기 위해선 대통령 스스로가 진실된 면모를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깊고 깊은 불신의 골을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가 없다.

국산茶도 환경호르몬인가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녹차 두충차 둥굴레차 등 침출차에서 인체에 유해한 환경호르몬이 검출됐다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 보건연구팀이 수원 성남 안양 등 도내 백화점과 대형상가 등에서 판매하고 있는 녹차와 두충차 등 14개 회사제품 29종과 외국산제품 5종을 검사한 결과 국산 침출차와 낱개 포장재 27종에서 환경호르몬인 DEHP와 DBP 및 DEHA 등이 다량 검출됐다는 것이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은 이같이 국산 침출차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된데 대해 침출차 낱개를 싸는 겉포장재 인쇄면의 잉크성분과 포장지 제조과정에서 스며든 약품이 내용물에 녹아 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건강을 위해 커피대신 녹차 등 국산 침출차를 즐겨 마셔온 국민들의 건강에 미칠 영향을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불리는 환경호르몬은 다른 공해물질이나 독극물과는 달리 동물의 생식기능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암수교란과 면역력을 저하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환경호르몬이 인체에 지속적으로 흡수 축적될 경우 정자수를 줄이고 성장억제, 생식이상, 면역력저하 등의 작용으로 결국 종(種)의 절멸(絶滅)을 초래할 수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류재앙을 초래하는 독성물질을 국민 상당수가 국산차와 함께 마셔왔으니 앞으로 닥칠지 모를 건강 위해(危害)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불안케 하는 것은 우리 보건당국이 이번에 검출된 환경호르몬중 DEHP만 식품위생법상 극소량도 허용하지 않고 있을 뿐 나머지 DBP나 DEHA 등 물질들은 허용기준치도 정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분야에 대한 투자와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 우리는 환경호르몬의 정확한 현황은 물론 피해사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전혀 없는 원시적인 수준이다. 당국은 이 시점에서 환경호르몬에 대한 감시 및 대책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하루빨리 국가차원에서 선진국의 연구동향을 파악하고 우리현황을 조사하는 등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마음이 따뜻한 공무원들

고양시 덕양구청 공무원 1백여명으로 구성된 ‘사랑의 가정도우미’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선 듣기에 반갑다. 가정간호와 물리치료, 영양관리 등 자원봉사에 필요한 이론·실습교육을 모두 마쳤다는 이들 가정도우미 공무원들은 매월 둘째주 금요일 오후를 봉사의 날로 정하고 5개조로 나누어 생활보호대상자나 양로원 등 복지시설을 찾아간다고 한다. 집안청소와 빨래 등 자질구레한 일에서부터 물리치료, 영양관리, 말벗상대 등 정서적인 서비스 제공이 이들이 봉사의 날에 하는 일이다. 지난 여름 휴가 때는 대구시 칠곡에 있는 나환자촌을 방문, 가족과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는데 아직도 나환자촌에서의 봉사는 여간한 정성이 없이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용인시청 사회진흥과 공무원들의 봉사활동도 보기에 아름답다. 시청내 자동판매기에 설치한 잔돈함을 운영하고 공무원들이 십시일반으로 기탁한 성금으로 매월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비인가 장애인 시설인 생수사랑회와 자매결연을 맺고 봉사활동을 자원해 왔는데, 생수사랑회는 40대초반의 처녀원장이 부모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정신 및 지체장애인들을 돌보고 있는 곳이다. 매월 1회씩 생수사랑회를 방문, 아이들을 목욕시켜주고 빨래, 음식만들기, 청소 등을 하면서 대화의 시간을 함께 가져왔다.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는 공무원들이 비단 고양시 덕양구청과 용인시청 공무원들만은 아니지만, 요즘 일부 시장·군수·구청장들이 판공비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는 때여서 일선공무원들의 선행이 더욱 값지게 생각되는 것이다. 지자체장들이 판공비를 불우이웃돕기 등 공적으로 떳떳하게 썼다면 사용처 공개를 꺼려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봉사는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시작하려면 매우 힘든 사랑의 실천이다. 공무원들의 봉사활동 범위가 넓어질수록 일부에 남아 있는 공무원 불신풍조가 사라짐은 물론 우리 사회분위기가 훈훈해 질 것이다. 박봉에 쪼달리고 격무에 시달리면서도 어려운 이웃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공무원들의 봉사활동에 박수를 보낸다.

안성·화성 재보선

오늘부터 이틀간 입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안성·화성의 시장·군수 재보선이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오는 12월 9일 투표가 실시되기 전날까지 치열한 선거공방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지방선거에서 가장 우려되는 중앙정치의 대리전 양상이 심화할 조짐이다. 이같은 대리전 양상이 다른 재·보선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번 재·보선은 각별한 시기가 맞물려 주목된다. 옷로비의혹, 서정원 전의원의 DJ관련 사안은 정치쟁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생각하면 이는 불행한 현상이다. 우리는 지방선거야말로 순수한 지방축제가 돼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런데도 그같은 정치쟁점이 이번 재·보선에서만은 정치수단이 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불행하게 여긴다. 쟁점의 진위는 앞으로 두고 평가될 일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은 유권자들에게 본연의 지방자치외 사항에 판단을 요구하는 것이 이번 선거다. 그만큼 이번 재·보선은 정치적 의미가 강하다. 하나, 분명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정치공세는 인정하지만 탈법사태는 여야 그 어느쪽도 용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지금은 정기국회 개회기간이다. 우리는 행여 지방자치의 수단인 시장·군수선거 과정에서 발생할 지 모르는 그 어떤 과잉대응으로 인해 정기국회 자체가 경색국면으로 휩싸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여권이나 야당이나 중앙정치의 당리당략을 위해 지방자치가 희생되는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믿어 이를 미리 경고해 둔다. 중앙에서 보기엔 지방의 기초단체장 선거쯤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선 무심코 던지는 돌맹이쯤으로 여겨 희생시킬 수 있다고 믿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정치 와중에 휩싸이는 지방자치의 주민심리는 그렇지가 않다. 말하자면 시장·군수는 그 어느 정당의 소속이 당선되던 그것은 유권자들에게 실질적으론 큰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인물됨이 큰 관심이지만 소속정당, 또는 무소속 여부에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은 상징적 의미다. 어느때보다 어려운 정치적 의미에 떳떳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여야 정당의 정치적 수단부터 떳떳해야 함을 일러두고자 한다.

특검 칼날 무디게하는 요인

최근 옷로비 특별검사팀이 연일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다.당초 사직동팀이나 검찰수사와는 상이한 수사결과들을 도출해내고 있다는 말이다. 이 과정에서 고위층 부인들이 지난 8월 옷 청문회에 나와 국민앞에서 ‘떳떳하게’ 거짓증언을 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성경에 손을 얹겠다거나 목숨을 걸겠다던 증인들의 맹세가 거짓이었음을 국민들은 다시한번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역풍도 만만치 않다. 사법부는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씨에 대한 특검팀의 구속영장을 반려했고, 여야는 특검팀의 중간수사발표에 정치적 시각으로 접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또 청와대측은 지난 18일 특검의 권위를 인정한다면서도 특검의‘수사비밀보호’ 조항을 들먹이는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며, 검찰도 21일‘특검팀이 불확실한 근거로 기존 검찰수사가 조작된 것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설상가상으로 정씨조차‘특검의 중간발표를 위법’이라며 검찰에 고소하는 아이러니도 일어났다. 모두가 특검의 칼날을 무디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 9월 제정된‘특별검사법’제8조에 따르면‘특별검사팀은 수사진행상황을 공표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위반시 해임 및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는 여야가 특검제법 제정 당시‘특검의 수족을 묶는 조항’이라는 이유로 진통을 겪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국민적 의혹사건에 대해‘투명한 수사’를 당부하던 정치권조차 이제와서 국민의 알권리를 우선한 특검의 중간발표에 대해 토를 달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국민적 의혹해소를 위해서도 특검팀이‘외압’에 시달리지 않고, 더욱 엄정한 칼날을 세울 수 있도록‘숫돌’까지 내주는 배려를 해야한다. 사소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 특검팀의 칼날을 무디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이민봉기자 mblee@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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