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

동무, 벗, 친구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민중서림 국어대사전은 ‘늘 친하게 어울리는 사람’(동무), ‘마음이 서로 통하여 친하게 사귄 사람’(벗), ‘오래두고 가깝게 사귄벗’(친구)이라고 풀이했다. 그말이 그말같아 구분이 잘 안된다. 지지대子의 일상개념으로는 동무나 벗은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친구(親舊)는 한자 외래어가 아닌가 싶다. 또 동무는 유·소년시절의 친구이며, 벗은 성년이후의 친구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동무따라 강남간다’고도 했고 ‘어깨동무’란 말이 있다. 이 좋은 ‘동무’란 낱말이 마치 금지곡처럼 금기시된 것은 이데올로기시대의 산물이다. 광복직후 좌우익의 격동, 한국전쟁전후 북측 노동당과 남측 남로당 사람들 사이엔 서로의 호칭을 ‘동무’라고 불렀다. ‘김동무…’ ‘박동무…’하는 바람에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동무!’라고 하는 웃지못할 일이 잦았다. 같이 힘써 일한다는 뜻의 조어로 ‘同務’라고 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진 않다. 아무튼 이바람에 유·소년간의 동무소리가 차츰 사라지면서 친구라고 부르게 됐다. 중국에서 이데올로기용어인 ‘퉁즈’(同志)라는 말이 퇴조하고 있다고 한다. 공문서나 공식행사에서는 아직도 ‘퉁즈’가 쓰이긴 하지만 공산당원들까지 일상생활은 ‘셴성’(先生) ‘뉘스’(女史) ‘샤오제’(小姐)등 호칭이 보편화 됐다는 것이다. 동무란 말이 이데올로기 용어로 들리지 않은지는 벌써 오래됐다. 이 좋은 우리말을 활성화시켰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에서 부터 사용돼야 한다. 아이들간의 동무를 ‘친구’라고 부르는 것은 정서상 걸맞지 않다. ‘동무’란 말보단 아무래도 정감이 덜하다./白山

마녀사냥

마녀란 유럽의 전설에 나오는 요녀를 말한다. 악마와 결탁하여 마약(魔藥)을 쓰거나 주법(呪法)을 행하여 인명을 해치는 것으로 믿었다. 마녀재판이라는 것이 있었다. 중세말기 이후 이단자를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한 종교재판으로 로마교황의 공인아래 시행됐다. 가장 심했던 1590년∼1680년사이엔 약 10만명이 처형되었다. 이단으로 몰리면 남자든 여자든 모두 마녀로 다루어졌다. 쇠로 만든 반장화를 불에 달구어 신기거나 두 팔을 뒤로 결박한채 발목에는 무거운 추를 단 다음 두 겨드랑이를 로프로 묶어 도르레로 천장높이까지 매달았다가 갑자기 땅바닥으로 떨어뜨리는 가혹행위를 자행했다. 100년 전쟁을 프랑스의 승리로 이끈 구국의 소녀 잔 다르크가 1455년 영국에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이단이라는 선고를 받고 화형에 처해졌다. 이단의 누명을 벗고 성녀(聖女)에 오른 것은 465년만인 1920년이다. 마녀재판은 18세기들어 계몽사상의 영향으로 없어지게 됐다. 근래 ‘마녀사냥’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마녀재판을 빗댄 말로 이를테면 언론보도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권력층에서 즐겨쓴다. DJ가 옷사건을 두고 ‘마녀사냥식으로 몰면 안된다’고 말한적이 있다. 무혐의 허위보고내용을 그대로 믿어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과적으로 이만저만한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마녀사냥’질책을 보며 옷사건 관련자들이 내심 얼마나 쾌재를 불렀겠는가 생각하면 너무나 잔인한 코미디다. 지금 세상에 ‘마녀사냥’이란 당치않다. 언론보도의 여론을 ‘마녀사냥’으로 몰아치는 권력의 속성이 두렵다. 현자(賢者)는 권력에 중독되는 것을 스스로가 부단히 경계한다./白山

행정사무감사장에서

의왕시의회가 지난 26일부터 시의 각 실·과·소·동에 대해 행정사무감사를 벌이고 있다. 1년동안 펼쳐온 행정에 대한 평가를 받는 행정사무감사장은 열기로 가득차 있다. 잘못된 행정에 대해 예리하게 파고들어 지적하는 일부 시의원과 잘못된 행정의 지적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소신있는 답변으로 감사를 받는 일부 공무원들의 수감태도 또한 보기좋은 모습들이다. 하지만 감사장에서는 감사가 한창 진행중인데도 여기저기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전화를 받기위해 밖으로 나가는 시의원이 있는가 하면 슬리퍼를 신고 감사장을 왔다갔다하며 산만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시의원의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감사를 받는 일부 공무원들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 업무파악이 제대로 안돼 뒤에 앉아있는 담당들의 쪽지에만 의존하는 일부 과장들. 언제 시로 승격됐는지, 허가사항인지, 신고사항인지 등 기본적인 업무조차 파악이 안돼 질문에 대해 얼버무리는 모습에 동료공무원들조차도 낯을 붉히는 모습을 볼때는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저녁식사도 거르며 감사에 열중이던 지난 29일에는 시의 고위간부가 어디서 마셨는지 거나하게 한잔하고 감사장에 들어와 벌개진 얼굴을 하고 앉아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까지 있다. 이같은 일부 잘못된 모습들은 감사에 열심인 시의원과 공무원들의 사기를 한꺼번에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오전일찍부터 감사장에 나와 감사를 마치고도 업무에 복귀하지 못하고 다른과의 감사를 흥미없이 들으며 감사가 끝나는 밤늦게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것도 개선돼야 한다. 또한 시의원들의 지적만 있고 대안제시가 없는 감사 역시 시의 발전을 위한 감사가 아닌, 지적을 위한 감사로 전락하는 점을 고려할때 개선돼야 할 것이다. /의왕=임진흥기자(제2사회부) jhlim@kgib.co.kr

금세기말, 12월을 맞으며

1999년 12월 첫날이다. 금세기를 보내는 마지막 달이다. 새천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느달과 다른 소회가 없을 수 없다. 무엇에 쫓기듯 허겁지겁 살아왔다. 세태는 하루가 멀다하고 깜짝깜짝 놀랄일이 터져 온통 뒤숭숭하기만 하다. 지구촌은 더욱 치열한 21세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싹수 있는 나라에선 저마다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에게 21세기의 희망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국가나 사회적으로 아무리 돌아봐도 뾰족한 희망이 없다. 그날이 그날이고, 그달이 그달이며, 그해가 그해라면 새천년인들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서민들은 무던히도 열심히 살았다. 세태를 탓하기에는 당장 살아가는 일이 절박해 누굴 탓할 틈조차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 각자의 생업에 충실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공헌이며 국가에 대한 기여다. 그런데도 중산층이 붕괴돼 영세민화한 서민은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참고 견디면 앞날이 새롭게 트일 조짐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사회도의는 피폐하고 나라기강은 극도로 문란해져 일탈현상이 우심하다. 사회위기 수준은 구심점을 갖지 못해 마냥 치닫는 양상이다. 타락한 권력의 부도덕성은 아무리 그럴싸한 말잔치에도 신뢰를 상실했다. 정직한 사람이 대우받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는 세상이 제대로 된 국가사회다. 그렇지 못한 현실은 오로지 상층구조의 난맥에 그 책임이 있다.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고 내일의 희망을 제시하는 것은 먼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제반의 민생을 당장에 다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 다만 바라는 것은 가능성만을 보여주어도 희망을 걸 수 있는데 있다. 상층구조에서부터 뼈를 깎는 의식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는 더이상 국민에게 개혁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이젠 정부가 국민에게 그 무엇을 요구하기전에 정부가 먼저 그 무엇인가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설득력을 갖는다. 지배계층이 앞서 의식을 개혁하고 실천에 옮길때 비로소 우리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말로만이 아니고 행동으로 옮겨보일 것인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하지만 기왕 그러고자 하는 비장한 결심이 선다면 이 해가 가기전에 새천년이 오기전에 신뢰가 가는 그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등록금 대폭인상 재고해야

연례행사처럼 진통을 겪고 있는 사립대 등록금문제가 내년에도 예외는 아닐것 같다. 서울소재 대학들이 이미 내년도 등록금을 15%인상키로 한 가운데 도내 대학들도 10∼15%정도 올릴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측은 IMF관리체제 이후 경제난을 감안한 정부의 등록금 동결권고에 따라 2년간 동결했기 때문에 내년엔 10∼15%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학생측은 올해의 물가인상률보다 훨씬 높게 잡은 등록금 인상은 학부모들의 가계부담을 가중시킨다며 반대운동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전체 사립대 80% 이상이 등록금에 의존하는 실정에서 등록금 인상은 불가피한 일이다. 더욱이 지난 2년간 등록금을 동결했던 대학들로서는 내년도 인상폭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등록금 동결은 IMF관리체제에서 고통분담이라는 취지에서 이루어진 만큼 이를 보충이라도 하듯 대폭 인상하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등록금 인상의 기준이 되어온 물가인상률을 따져볼 때 올해는 1%미만으로 예상되고 있고, 내년은 3% 이하로 억제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을 10∼15%나 올리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도내 일부 대학에선 지금도 학생들이 기성회비 납입 거부운동을 벌여 학교측과 마찰을 빚고 있는 중이다. 이런 터에 내년 등록금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대폭 인상한다면 대학가가 등록금 인상반대투쟁으로 다시 분규가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교육부가 지난 89년부터 등록금 인상을 완전 대학에 맡긴 등록금 자율화가 곧 대학의 일방통행식 인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율화에 따른 대학경영의 투명성과 재원확보에 대한 별도의 노력없이는 학생들의 반발만 키울 수가 있다. 등록금 문제는 어느 일방의 고집과 주장만으로는 풀 수 없다. 먼저 대학은 예산집행의 공개성·투명성을 확보해야 하고, 등록금을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게 결정할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 후에 인상의 불가피성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득함으로써 학내분쟁의 소지를 사전에 막아야 할 것이다.

‘노인 작가’들의 걸작

수원에 본부를 둔 치매미술치료협회와 영실버아트센터가 마련한 ‘나의 사랑 나의 가족展’이 어제 끝났다. 서울 인사동에 있는 부남(扶南)미술관 대전시실에서 열린 ‘나의 사랑 나의 가족전’은 끝날에도 관람객들이 적지 않았다. 부남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은 노재순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노재순, 류삼렬·강상중·서해창·선희규·장인희·이태희 화백 등 34명의 한국화단 중견들 작품을 둘러 본 뒤 다른 벽면에 걸린 ‘어린이들의 그림’을 유심히 관람했다. ‘설날’ ‘가을 들판의 허수아비’ ‘가을 운동회’ ‘동지팥죽’ ‘호박넝쿨’ ‘진달래꽃’ ‘팽이치기’ ‘연날리기’ ‘정월대보름’ ‘오월 단오절’ ‘빈대떡’ ‘단풍놀이’ 등 화제(畵題)들도 각양각색이었다. ‘사람은 늙으면 어린 아이가 된다’고 하였다. ‘어린이들의 그림’은 실은 치매에 걸린 노인들이 그린 작품들이었다. 70대는 보통이고 80대, 90대의 노인들이 그린 작품은 사람들을 흐믓하게 행복하게 만들었다. 화가들로 구성된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원들의 지도를 받고 있는 이들 노인들의 그림을 신현옥 회장은 ‘추억의 간이역’이라고 이름 지었다. 추억의 간이역? 과연 그렇다.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원들은 그림 그리는 치매노인들을 ‘노인 작가’라고 존칭했다. ‘치매미술치료’는 인지기능이 떨어진 노인에게 미술을 통해 현재 또는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영혼의 예술’이다.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는 데 며칠이 걸린 어르신도 계시지만 도화지와 크레파스만 주면 신통하게도 과거를 그림으로 표현합니다. 버드나무 아래서 남녀가 고개 숙이고 있는 그림은 ‘첫사랑’이고, 젊은 시절 군인이었던 어르신은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들을 그립니다”라고 했다. ‘봉숭와꼿’ ‘오욀 단워 근녜탄는 광경이요’라고 그림설명을 써 놓는 노인들의 작품도 보였다. ‘나의 사랑 나의 가족전’은 제목 그대로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해 봉사하는 치매미술치료협회 봉사 활동의 한 과정이다. 한국미술협회·영실버여류작가회·촛불봉사단연합회·평화의 모후원·동서문화교육원·현우도회의 후원도 큰몫을 했지만, 14일간 전시회를 무료사용토록 하고 도록까지 제작해준 부남미술관의 협조가 특히 컸다. 봄날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훈훈한 이야기다./ 임병호 논설위원

김장

김장김치가 발효식품으로 비타민의 보고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조상들이 겨울식품으로 과학적인 김치를 생각해낸 것은 생활의 지혜라 할 것이다. 비록 과학이 뭣인지는 몰라도 오랜 체험으로 생활과학을 응용할 줄 아는 슬기를 터득했던 것이다. ‘김장김치는 반 겨울양식’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배추만도 한·두접(접당 백포기)씩 담궜다. 여러가지의 무·배추 김장을 했다. 초겨울 이맘때쯤이면 품앗이로 김장을 담는 동네 아낙들의 노고가 컸다. 요즘은 김치보다 햄버거를 더 좋아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김장은 여전히 빠뜨릴 수 없는 겨울채비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 김장 담을 일부터 먼저 생각하곤 한다. 전같지 않아 먹거리가 많으며 채소 또한 철을 가리지 않고 나오므로 이젠 김장을 적게 담는게 보편화됐다. 보통 열포기 스므포기 정도다. 김장을 이처럼 적게 담다보니 되도록이면 늦게 담는다. 괜히 일찍 담갔다간 따뜻한 날씨로 국물이 부풀어 오르고 김치가 시어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김치공장이 김장김치 주문으로 꽤나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맞벌이 부부나 신세대 주부들의 주문이 많다는 것이다. 편리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좀 생각해 볼 일이다. 김치맛을 보면 그 집안의 음식솜씨를 안다고 했다. 가족들을 위한 주부의 정성과 솜씨가 흠뻑 담긴게 김장김치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가족들을 위해 김장김치를 손수 담그는 노력이 있으면 좋겠다. 가뜩이나 인스턴트식품이 식탁을 잠식하는 시대가 돼가고 있다./白山

실패한 로비도 ‘로비’다

옷사건은 마침내 김태정 전 검찰총장 및 법무부장관, 박주선 전 청와대법무관, 김 전 총장부인 연정희씨 등을 사법처리하는 단계에 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전혀 상관없다”던 사람들이 더는 사건의 배후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옷사건은 신동아 ‘구명로비’의 깃털에 불과하다. 단순히 옷사건에 그치지 않는 몸통접근이 필요하다. 신동아로비스트 박시언씨는 지난해 6·7월 김 전총장과 박 전 비서관을 수차 만나 최순영 회장의 구명운동을 활발히 벌였다. 나중엔 보고서 사본을 복사해 갔을 정도였다. 박씨는 이 과정에서 금품로비를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하지만 그같은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이 그간 보아온 경험법칙이다. 신동아측의 금품로비가 확인될 경우 정치권까지 불똥이 튀어 일파만파로 번질 공산이 있으나 이를 두려워해선 안된다. 외화 유출혐의가 드러나자 학맥·인맥을 총동원, 구명운동을 전방위로 벌인 적이 있다. 외자유치를 구명카드로 제시하기도 했다. 검찰수사가 유보됐다가 재수사로 반전하는등 한동안 혼선을 벌인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옷사건이 나왔으나 사직동팀에 이어 검찰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한통속 종결을 지었다. 그러나 특검수사로 옷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건은 역순으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신동아로비의 실체를 벗겨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문책하겠다’(11월 25일)고 했다. 이에 앞서서는 ‘잘못 없는 것으로 수사결과 판명됐다’(6월 10일)고 했고, ‘마녀사냥식으로는 안된다’(6월 1일)고도 했다. 사태를 잘못 파악한 책임을 진실로 지고자 한다면 옷사건에 국한하지 않는 로비 전반에 걸친 지위고하 불문의 엄중 문책이 있어야 한다. 검찰은 우선 수사범위를 보고서 유출에만 국한하고 있는듯 하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검찰의 은폐수사에 대한 자체조사와 신동아 로비의혹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 이는 실추될대로 실추된 만신창이의 검찰위상을 회복하는 마지막 기회이며 국가기강확립의 길이기도 하다. 만약 이마저 잘못되면 검찰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맞게 될 것이다. 실패한 로비도 로비다. 실패했다고 하여 덮어두어서는 거센 국민적 저항을 면치 못한다.

高3 학생들에게 당부함

수능시험이 끝난 수험생들은 앞으로 정시모집 등 대학입시전형에 지원해야 하지만 실제 학교에서 보내야하는 시간은 별로 없다. 논술고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전체 186개 대학 가운데 논술을 반영하는 대학은 서울대 등 31개 대학에 불과해 면접을 제외할 경우 사실상 추가시험이 없는 상태다. 여기에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아 90여만명에 달하는 전국의 고3수험생들은 사실상 ‘학생이면서 학생이 아닌’애매한 신분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불과 3∼4개월 후면 대학생 혹은 직장인이 될 이들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없고 건전한 놀이문화 공간도 제대로 없다. 일부 시민·사회단체에서 고3학생들을 위한 각종 행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홍보부족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같은 내용을 모르고 있거나 또 주최측에서는 지속적인 예산과 인력부족으로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일선 고등학교의 담임교사들이 특차와 정시모집 등 전형일정에 쫓겨 생활지도는 엄두도 못낸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 오전에 교양프로그램 비디오를 보여주고 귀가시키거나 학부모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것으로 생활지도를 대신하는 정도다. 그렇다고 고3 수험생들 모두가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건전하게 지내려고 해도 술 마시는 일 아니면 마땅히 할 일이 없다고 유흥가나 록카페 등을 전전하는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수능시험이 끝났다고 해서 학생시절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려웠던 고3까지의 학창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생각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그동안 시험공부때문에 읽지 못했던 양서들을 찾아 읽고 좋은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또 대학을 안가는 학생들은 취업진로를 모색하면서 청년시절을 설계하여야 한다. 잘못된 사회환경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거기에 동화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이 사회를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아름다운 청년들이 되어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해외여행

광복이후 50년대까지 외국여행은 상상조차 못했다. 정부관료들의 제한된 공무외 외국여행은 있을 수 없었다. 60년대 들어 다소 완화된 것은 경제교류에 기인해서였다. 기업인들의 해외여행이 이무렵에 허락됐다. 70년대 들어서는 사정이 좀 달라졌다. 외환사정의 압박으로 금지된 해외여행이 조금씩 풀리면서 일반인의 외국왕래가 있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무렵까지는 외국에 다녀온다는 것이 쉽진 않았다. 우선 신원조회가 무척 까다로웠다.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은 80년대 들어서였다. 90년대 들어서는 외국여행쯤은 보편화됐다. 요즘 외국 다녀온 것을 자랑삼아 말하다가는 ‘팔불출’소릴 듣기에 딱 알맞다. 그런데도 유별나게 외국여행을 못가서 안달인 사람들이 있다. 지방의원들이다. 그들이 ‘팔불출’에 드는 외국여행 타령을 아직도 늘어놓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공짜인 탓이다. 지역주민이 부담하는 세금으로 다녀오기 때문이다. 행자부가 내년도 예산지침으로 지방의회의원들이 해마다 다녀오던 해외여행을 임기동안 한번으로 규정한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고양시의원들이 이에 발끈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지방자치단체 예산편성에 행자부가 관여하는 것도 부당하고 지방의원의 해외여행을 제한하는 것은 국제화에 역행된다는 것이다. 말인즉슨 그럴싸 하지만 씨알이 먹혀들지 않는 소리다. 일찍이 지방의원들이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공감이 가는 출장보고서 한장 내는것을 볼 수 없었다. 그저 적당히 꾸며내거나 그나마도 내지 않은 사례가 수두룩하다. 해외출장명목에 걸맞는 방문은 겨우 한두가지일뿐 그저 구경하며 사진찍는 것이 고작인게 지방의원들의 해외여행이다. 그러니 행자부가 예산편성지침으로 관여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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