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도 성춘향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그린 한국고대소설 ‘春香傳’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여러가지 고본과 영역본, 그리고 판소리로도 전해져 내려온 ‘춘향전’은 최장기 베스트셀러라고 할 수 있다. 이 ‘춘향전’은 무려 14번이나 영화화된 사실에서도 그 ‘위력’을 알 수 있다. 1923년 일본인이 처음 제작한 ‘춘향전’에서 ‘춘향’역을 맡은 첫 배우는 기생 한룡이었다. 한룡은 이몽룡역의 미남 변사 김조성과 함께 경성 사람들의 수많은 발길을 극장으로 끌어 들였다. 한국인 이명우가 감독한 1935년의 두번째 ‘춘향전’에는 문예봉이 춘향역을 맡았고 그후 조미령 박옥린 고유미 김혜연 김지미 최은희 서양희 홍세미 문희 장미희 이나성 이효정이 출연했다. 영화속의 성춘향은 시대에 따라 이미지가 바뀌었다. 1920년대에는 기생의 이미지가 강했고 1950년대에는 청순가련형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 전반에는 현모양처형으로, 후반에는 쾌활한 춘향으로 탄생했다. 조미령이 주인공으로 나선 1955년도의 ‘춘향전’은 서울에서만 3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1961년에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 김지미(춘향전)와 최은희(성춘향)가 연기대결을 펼쳤는데 현모양처형을 부각시킨 ‘성춘향’에 관객이 더 많이 몰렸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에서 14대 춘향역을 맡은 이효정은 역대 춘향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리고 춘향과 같은 나이인 16세 때 1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그야말로 이팔청춘 여고 1년생이다. 2000년도 춘향의 이미지는 사랑을 즐길 줄도 알면서 지배계층에 항거할 줄도 아는 당찬 여인의 모습이라고 한다. ‘춘향전’을 사람들이 여전히 좋아하는 현상을 보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성춘향처럼 정절을 지킨 여인의 사랑은 영원한가 보다. /청하

TV중간광고

프로그램을 마치고 한참동안 나오는 제공광고에 이어 지루한 토막광고가 그치는가 싶으면 이번엔 새로 시작되는 프로그램 제공광고가 또 줄을 잇는다. K1TV를 제외한 모든 텔레비전 채널이 이모양이다. 프로그램 중간광고가 생긴다하여 논란이 있었다. 오는 3월13일 발효될 방송법시행령에 프로그램 중간광고를 허용할 방침이어서 말썽이 됐던 것이다. 60∼90분 프로는 1회, 90∼120분 프로는 2회, 120분이상 프로는 3회씩, 매회 15초짜리 광고4개를 내보내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찮아도 텔레비전 광고홍수에 시달리는 시청자들을 더욱 짜증나게 할 일이다. 문제는 광고방송의 총량에 있다. 지난 80년대 방송기본법규에는 광고방송시간을 1일 방송시간의 1백분의 6으로 정했었다. 그러던 것이 1백분의 8이 되더니 이제는 1백분의 10으로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텔레비전 방송도 중간광고를 하긴 하지만 광고방송시간이 1백분의 10까지는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TV방송 3사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아니다. 15초 광고마다 수백만원씩 벌어들이는 광고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황금의 A타임시간대는 광고대행업체가 선점해두는 예약까지 하는 실정이다. 중간광고 허용은 전파의 공개념에 어긋난다는 반발이 거세지자 공청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들어보겠다는 것으로 일단 주춤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방송정책권은 새로운 방송법에 따라 방송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런데도 방송위원회가 구성되기에 앞서 서둘러 중간광고 허용을 추진하는 문화관광부의 처사가 이상하다. 권한이 넘어가기전에 써먹자는 것은 재량권의 남용이다. /백산

적십자회비 모금에 동참을

일부로부터 준조세라는 지적을 받아온 적십자회비가 올해부터 시민들의 자진납부제로 바뀌었다. 지난 날 모금과정에서 불합리했던 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진납부 제도로 인해 대한적십자사가 겪는 애로사항은 이만 저만한 게 아닐 것이다. 현행 적십자회비는 적십자사 모금위원들이 나눠준 지로용지를 갖고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금융기관에 납부하도록 돼있다. 과거와는 달리 읍·면·동사무소 등 행정기관이 모금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이같은 제도변경에 따라 시지역은 4천원, 군지역은 2천5백원으로 정해 지로용지를 배부, 지난 10일부터 수납하고 있으나 당초 우려했던대로 모금액이 너무 적다고 한다. 적십자회비 모금에 초비상이 걸린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는 국제적십자회의에서 결의된 모든 원칙에 입각, 인도적 임무의 달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법인이다. 1905년 10월 27일 고종 황제의 칙령 제47호로 탄생한 이래 대한적십자사는 우리 겨레와 운명을 함께 하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그러나 대한적십자사는 재난으로부터의 구호사업, 보건사업, 사회봉사사업, 청소년사업 등 수많은 사업에 소요되는 막대한 예산을 국민들이 내는 회비에만 의존한 고충이 있어왔다. 일부의 여론때문에 모금방법이 자진납부로 바뀌긴 했지만 소기의 목표액을 달성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예전처럼 기업체들이 특별회비를 많이 내지 않을 것이고 대다수의 국민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의 경우 5천여명의 봉사원과 RCY(청소년적십자단)회원으로 홍보단을 구성, 올해 모금이 마감되는 3월말까지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하나 아직도 호응도가 낮다고 한다. 적십자정신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서로 돕자는 박애정신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적십자 회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어려울 때 일수록 서로 돕는 아름다운 인본정신을 갖고 있다. 조금 덜 쓰고 아껴서 적십자회비 자진납부운동에 동참하는 것만이 위기에 직면한 적십자운동에 원동력을 제공하는 일이다. 적십자회비 납부는 곧 미래의 나를 돕는 일과 마찬가지다. 적십자회비 자진납부의 발길이 모든 금융기관에 답지하기를 기대한다.

선거철 기강해이 걱정된다

일선 행정기관의 공직기강이 총선과 인사철을 앞두고 몹시 흐트러지고 있어 걱정스럽다. 특히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인사 명단 발표로 정치권이 긴장한 가운데 정치개혁바람이 사회전반에 번지고 있는 중에도 나사풀린 공직자들을 보게 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에 처해 있다. 16대 총선을 78일 앞두고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낙천운동으로 나라전체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이럴 때일수록 공직사회가 중심을 잡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야 할텐데 오히려 한술 더 떠 기강이 극도로 해이해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일보 취재망에 나타난 공직자들의 근무행태를 보면 우리 공직사회기강의 현주소를 잘 알수 있다. 수원의 어느 구청에선 직원들이 점심시간 20여분전에 외식을 위해 이미 자리를 비웠고 점심시간이 20여분 지났는데도 외출중이었다. 구청장 역시 점심시간이 끝난 1시30분 이후에도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일부 시군 교육청 직원들은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가 하면 시간대별 주식시세표 파악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느 경찰서 간부는 근무시간에 외출이 잦아 결재가 밀린 직원들의 눈총을 샀고, 또다른 간부는 업무는 제쳐둔 채 하루종일 인사정보파악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래 위 가릴것 없이 근무태만은 물론 무책임 무소신 무기력 등 ‘3무’ 현상에 정치권과 단체장 기관장 눈치보기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유독 이들 기관에서만 일어난 일이라고 보지 않는다. 지금 전국 도처에서 비슷한 행태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공직자들의 마음이 딴 곳에 가 있으면 행정이 제대로 될리 없다. 공직자는 국민의 공복이며 국가기관의 근간으로서 언제나 국민전체에 봉사하고 책임지는 공직자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총선분위기가 어수선하고 인사철이 됐다고 해서 상급자의 눈치나 보며 무사안일과 적당주의로 세월을 보내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흐트러진 분위기를 바로 잡기 위해선 공직자들의 투철한 사명의식과 공무담당자로서의 엄격한 기강이 확립되어야 한다. 특히 오늘같은 시국에서는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게 공직자들의 투철한 시대상황인식과 역사의식이 요구되고 있음을 명념해야 한다.

[일기문]강원도 여행

김창범 <수원 파장초등2> 2000년 1월 10일 월요일 날씨, 지붕밑에 고드름이 얼었어요. 토요일날에 우리식구와 우람이 형네가족, 태영이네 가족, 또 시골에서 온 식구와, 강원도에 있는 콘도에 갔다. 강원도에 있는 콘도에 가려면 꼬불꼬불한 길로 가야 한다. 그런데 난 멀미를 잘 해서 엄마께 “엄마, 언제까지 가야 해?”라고 여쭈어 보았다. 그런데 엄마께서 “이제, 다왔어.”라고 말씀을 해 주셨다. 그런데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그럴수록 더 멀미를 했다. 콘도에 도착하자 마자 멀미가 다 없어졌다. 흰색의 콘도가 멋있었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볼수록 더욱 더 멋이 있었다. 우리 집은 몇호냐면 551호다. 집에 불이 켜지려면 열쇠 꽂이에다 꽂아야 된다. 밤에 자려고 하니까, 시골에서 온 아저씨께서 “컹, 프르르, 컹, 프르르.”하고 코를 고는 바람에 밤을 하얗게 새 버렸다. 그래도 아침에 졸리지 않았다. 일어나서 아이들과 형들이 어른들께 “눈썰매장, 가요. 네?” 라고 졸랐다. 그래서 어른들께서“그래, 알았다. 알았어.”라고 말씀해 주셨다. 눈썰매장에서 눈썰매를 타고 있는데, 시골에서 온 애들은 너무나 높아서 무섭다고 콘도로 가버렸다. 집에 오면서 어른들께서 “여름방학 때, 또 올래?”라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우리들은 큰 소리로 “네-에.”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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