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한국외교,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에 대비해야

최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는 용어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며 작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글로벌 사우스의 목소리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중국도 2022년 제20차 당 대회에서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2023년 이후 시진핑 주석의 정상외교 역시 글로벌 사우스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올해 6월9일에는 중국판 수능인 가오카오(高考) 사상정치 과목에서 글로벌 사우스 개념과 중국의 입장에 대한 문제가 출제됐다. 글로벌 사우스는 통상적으로 지구의 남반구, 즉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남쪽 지역에 위치한 ‘제3세계’ 및 개발도상국을 지칭하는 지리적 개념이었다. 하지만 글로벌 사우스에는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중국과 인도 및 중동 산유국 등과 같이 상대적으로 부강하고 부유한 국가들이 포함돼 있고 개별 국가마다 역사적으로 고유한 정치·경제적 위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지정학적이고 역사적이며 경제학적인 개념인 글로벌 사우스를 단순한 지리적 개념 내지 하나의 단일한 블록(block)으로 인식하고 접근한다면 전략적인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글로벌 사우스 개념은 1955년 반둥회의 이후 결성된 ‘비동맹 운동’과 ‘77그룹’에서 시작됐고 최근 강대국 간 경쟁이 치열하고 국제질서의 불안정성 및 국가 간 관계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다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열린 유엔 총회의 결의안 표결에서 많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기권 내지 반대 표결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전 세계에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그동안 글로벌 사우스라는 개념이 갖고 있는 모호함과 자의적인 구분 방식에 회의적이던 미국 등 서방국가들도 글로벌 사우스의 영향력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국은 글로벌 사우스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을 위시한 소위 ‘글로벌 노스’ 국가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냉전 시기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 온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인구와 자원 분야의 강점을 기반으로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및 불공정 무역 등과 같은 글로벌 어젠다에 동일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사우스의 부상은 글로벌 국제질서 변화를 촉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은 자국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글로벌 사우스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글로벌 사우스 내 인도와 중국 등 핵심국 간의 영향력 경쟁도 치열하다. 특히 글로벌 사우스의 핵심 5개국으로 구성된 브릭스(BRICS)가 2024년 5개국(에티오피아, 이란,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사우디아라비아)을 추가해 BRICS+로 변모했고 향후 회원 규모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글로벌 사우스 및 핵심 국가들과 외교적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시급한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와 정권 교체 가능성

리시 수낵 영국 총리가 조기 총선을 결정했다. 영국 하원은 임기가 최대 5년이다. 지난 총선이 2019년 12월 치러졌으므로 올해 하반기에 총선이 행해질 것이라 추정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2021년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보수당의 지지율로 인해 수낵 총리는 이번 총선을 예상보다 훨씬 빠른 7월4일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지지율이 더 떨어지기 전에 선거를 치르는 것이 그나마 유리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반대로 노동당의 지지율은 2021년 이후로 계속 올라 현재 40%를 웃돌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이번 총선에서 정권이 교체될 확률이 높아진다.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는 노동당의 현 당수인 키어 스타머다. 이번 총선으로 정권이 바뀐다면 영국은 8년간 6명의 총리를 맞게 되는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에 따르면 보수당의 지지율은 지난 3월 기준 20% 정도로 46년 만에 최저 수준이라 한다. 이렇게 지지율이 낮아진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영국은 보수당 집권 아래 2016년 브렉시트를 결정한 이후 팬데믹까지 맞으면서 원래도 좋지 않았던 경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브렉시트는 유럽연합에 대한 영국의 불만과 복합적인 이유들로 인해 정해졌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럽연합에서 벗어나 영국이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였다. 영국이 유럽연합에 납부하는 회비가 만만치 않고, 회원국 간의 자유 이동으로 이민자가 급증해 일자리 경쟁의 부담이 커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렉시트 이후 영국에서는 오히려 물가가 급등하고 일자리가 감소하면서 서민들의 생활이 심각해졌다. 2022년에는 그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에너지 요금을 50%나 인상하는 등 경제 상황은 이후로도 계속 악화됐다. 물가와 세금은 크게 인상됐지만 임금은 과거와 큰 차이가 없었기에 2022년 겨울부터 2023년까지 몇 개월에 걸쳐 일어난 모든 분야의 대규모 파업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의 대규모 파업에는 대학 노조도 참여했기 때문에 많은 수업이 취소되기도 했다. 그러나 불안정한 정부에 대한 전국적인 불만은 학생들과 보수당 지지자들까지도 파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파업과 시위는 지금도 영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극심한 경제난은 런던에서 가장 극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지난 1월11일 발표된 케임브리지 이코노메트릭스의 보고서에는 런던에서만 감소한 일자리 수가 29만개가 넘는다고 조사됐다. 지역에 따라 달라지지만 런던에서는 혼자 살 집을 구하려면 작은 원룸이라도 공과금을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월세만 150만원이 넘는다. 월급의 절반 또는 이상이 월세로 지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민이 런던에서 홀로 생활을 유지하면서 저축까지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학교 기숙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개인 공간에 침대만 있고 주방과 화장실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가장 싼 방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런던의 대학 기숙사들은 보통 일주일에 25만원에서 35만원이 든다고 볼 수 있다. 지난 4월부터 최저 시급이 그나마 11.44파운드(약 2만원)로 인상됐지만 지금까지 나열된 영국의 현 경제 상황 서민의 생활비를 보면 이는 런던에서 여유를 가지고 살기엔 여전히 부족하다. 2016년 브렉시트가 국민투표로 결정된 이후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2022년 10월 총리가 된 수낵은 인플레이션 완화와 일자리 창출 등의 내용을 다룬 다섯 가지 공약을 내걸었다. 하지만 그 공약들은 현재까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게다가 뜬금없이 의무복무제를 부활시키겠다는 정책을 이번 총선 공약으로 내건 다거나 르완다 정책이라는 국제난민협약에 반하는 위법적인 법안을 제시하는 등 보수당으로서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는 분위기이다. 수낵은 현재까지 영국의 물가 상승률을 조금 낮추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국민들이 정권의 변화를 절실하게 원한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세계는 지금] 이란 대통령 사망, 차기 지도자는?

지난 19일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불의의 헬기 사고로 사망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한 상황 속에 앞으로 전개될 이란의 정치 구도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유력시되던 라이시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강경 보수 이슬람 세력이 장악해온 이란 정치권을 흔들고 있다. 라이시 대통령은 36년째 이란의 정치, 종교 수장으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제자이자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돼 왔다. 1960년 이란 마슈하드 인근에서 독실한 종교적 기반을 갖춘 가정에서 태어나 10대 때 하메네이에게 신학을 배웠다. 이슬람혁명 발발 후 1981년 검사 생활을 시작해 검찰총장에 이어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사법부 수장으로 일하는 등 법조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1988년 반체제 인사 수천명의 처형을 명령한 소위원회 일원으로 활동했고 검사 시절 숙청 작업을 주도한 라이시 대통령을 서방과 이스라엘은 ‘테헤란의 도살자’라 불렀다. 2017년 대선에서 하산 로하니 전 대통령에게 밀려 낙선한 라이시는 2021년 재도전 끝에 대통령이 됐고 임기 중 중동의 무장세력을 지원하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및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가동하는 등 중동지역 내 이란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지휘, 감독해 왔다. 대통령직을 맡은 다음 해인 2022년 9월, 히잡을 느슨하게 썼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돼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으로 이란 내부의 격렬한 시위가 격화됐고 국제사회의 제재와 높은 실업률로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는 이란 내부에서는 수십년 만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달에는 이란이 사상 처음으로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한 이스라엘 본토 보복 공격을 감행하면서 중동의 긴장이 위기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라이시 대통령의 급서(急逝)로 대통령 유고 시 50일 내에 선거를 치르게 돼 있는 헌법 규정에 따라 이란은 오는 6월28일 대통령선거를 치른다. 신정 일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이란은 종교 지도자 ‘라흐바르(최고지도자)’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최고지도자로 가는 발판으로 1989년 사망한 루홀라 호메이니의 뒤를 이어 최고지도자가 된 하메네이도 직전 8년간 대통령을 지냈다. 사법부 수장과 대통령까지 지내며 사실상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인정받던 라이시 대통령의 사망으로 차기 권력 후보군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55)다. 종교 도시 콤의 이슬람 신학대학에서 강의 중인 신학자이지만 아버지 하메네이의 후광 속에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세습왕정을 무너뜨리고 수립된 이슬람 신정 체제에서 최고지도자가 권력을 세습한다는 비판 여론이 큰 변수다. 새 대통령 선출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고 라이시 못지않은 하메네이의 최측근인 모함마드 모크베르 수석부통령도 후보군으로 꼽힌다. 그리고 2013, 2021년 두 차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고 서방과 이란 핵합의(JCPOA)를 이끌었던 사에드 잘릴리 전 핵협상 수석대표도 후보로 거론된다. 테헤란시장을 지낸 바게르 칼리바프 현 국회의장의 출마도 예상된다. 또 하산 로하니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임 두 대통령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이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총 12명 위원으로 구성된 이란 헌법수호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이 중 6명(종교법 전문가)을 하메네이가 임명한다. 나머지 6명은 대법원장이 임명하지만 최고지도자의 의중을 거스르기 어렵다. 결국 차기 대권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의중에 달려 있다. 이란 차기 대통령 선출이 현 중동지역 정치 지형의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할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중-러 관계와 북한, 반미 국방 생태계

지난 16일 중국을 국빈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양국은 전략적 협조 동반자 관계의 심화를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반도 문제와 관련, “미국과 그 동맹국의 군사 영역에서의 위협 행동과 북한과의 대결 및 유발 가능성 있는 무장 충돌 도발로 한반도 형세의 긴장을 격화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명시했다. 이 기간 김정은은 일주일간 중요 군수공장을 돌며 단거리 미사일에서 장거리 미사일까지 대량생산체계를 과시했다. 중-러 정상회담 기간 무기 공개 및 미사일 발사 행보를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중-러, 북-러, 북-중 사이의 관계는 논쟁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러의 협력이 완전한 전략적 일치나 동맹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서로의 중요성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커졌다는 점이다. 미국이 대중국 포위·압박,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한 이후 파트너십은 더욱 공고해졌다. 러시아는 중국군의 군사 하드웨어 및 국방기술의 중요한 공급원이 됐으며 중국 역시 러시아의 전쟁 경제에 중요한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 2023년 중-러 무역은 전쟁 전보다 60% 이상 증가한 2천401억달러를 기록했으며 중국은 러시아 수출의 30%, 수입의 거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의 위완화는 양국 무역의 주요 통화가 됐으며 미국의 제재로부터 자유로운 금융시스템을 중국의 은행들이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 기술, 교육 등에서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중-러 관계가 이처럼 밀착한 시기를 찾기 어렵다. 중-러는 미국 중심의 질서를 변경해 중국 또는 러시아의 이익이 관철·지속될 수 있는 질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국가전략 차원의 최상위 목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물론 이들 사이엔 긴장의 여지도 있다. 미국의 전력과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미국의 외교적 곤경을 만드는 데 있어 중-러는 장기간 전략적 협력을 필요로 한다. 중-러의 전략적 협력에서 주목할 부분은 러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반미 국방 생태계다. 러시아는 반미 코드 국가들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해 왔다. 미얀마는 2023년 5월 러시아 전투기를 인수했고 말리, 토고, 우간다도 최근 러시아의 공격헬리콥터를 조달했다. 2023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육군-2023 군사포럼’에서 러시아 관리들은 아프리카를 상대로 군용 드론을 적극적으로 홍보, 아프리카 대륙에 영향력 강화하는 수단으로 무기를 활용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 북한의 관계도 예사롭지 않다. 2023년 7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북한 열병식에 참석해 북한 신형 무기들을 둘러본 데 이어 9월에는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무기전시회를 참관하는 등 북한 및 이란과 러시아의 군사적 교류를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 2023년 여름부터 러시아는 이란의 전투용 드론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란은 전투기와 방공시스템을 포함한 다양한 러시아 무기 구매를 지속하고 있다. 북한으로부터는 포탄, 다연장로켓(방사포)과 단거리 미사일 등을 공급받은 바 있다. 러시아가 북한산 포탄과 미사일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미얀마에서 탱크와 미사일 자재를 충분히 사들이고, 이란의 도움으로 드론 공장을 건설할 수 있다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오랜 소모전을 훨씬 더 쉽게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와 반미 코드 국가들 사이 상호 군사적·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상호 교육으로 특징 지어지는 광범위한 국방 생태계 형성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북한의 잠수함 개발 프로그램, 이란과 북한의 미사일 및 우주 프로그램에 대한 러시아의 지원은 크건 작건 전력에 기여할 것이다. 중국 역시 이런 국방 생태계를 방조하거나 사실상 묵인하는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러시아가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행보까지 나아간다면 이들 국방 생태계는 정치적 결속의 형태를 띨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중·러 정상회담 기간 김정은의 군수공장 현지지도 행보는 핵무기 개발·생산 명분과 핵 보유의 정당성을 강하게 메시지로 발신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반미 국방 생태계의 중요한 행위자로 자신을 각인시키려는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세계는 지금] 시진핑 유럽 순방의 전략적 의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부터 프랑스와 세르비아 및 헝가리를 순방하고 있는 가운데 5년 만에 유럽연합(EU)을 방문한 중국의 전략적 의도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다음 두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번 시 주석의 유럽 순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강대국 간 경제안보 갈등으로 대표되는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전략적 대응 차원에서 이뤄졌다. 시 주석이 EU를 방문했던 2019년과 비교할 때 현재의 국제질서는 대변혁을 경험하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고 미중 기술패권경쟁은 격화됐으며 2022년 러-우 전쟁 발발로 유럽은 냉전 이후 최대 안보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과 EU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디커플링과 디리스킹(de-risking)의 필요성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중국의 ‘생산 과잉’ 및 불공정 무역에 대한 비난과 함께 보복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작년 9월 EU가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대한 대규모 보조금 조사를 포함해 중국 기업 대상의 통상 관련 조사를 진행함으로써 이번 시 주석 유럽 순방의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시 주석은 지난 6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의 3자 회담에서 EU가 향후 좀 더 긍정적인 중국 정책을 채택할 것과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요청하는 등 EU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중국의 경제적‧외교적 영향력 확대 시도 역시 이번 시 주석의 유럽 순방의 중요한 목적이다. 헝가리는 중동부 유럽에서 중국의 최대 투자국이자 중국 ‘일대일로 국제협력’의 핵심국이며 양국은 신에너지 및 전기자동차 분야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헝가리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유럽연합의 홍콩 문제에 대한 성명을 차단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유럽연합의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지연시킨 적이 있다. 따라서 이번 시 주석이 헝가리 방문을 통해 ‘일대일로 국제협력’과 관련된 추가적인 프로젝트에 합의함과 동시에 향후 EU 차원에서 전개될 수 있는 대중국 제재를 막기 위한 전략적 협력을 요청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시 주석의 세르비아 방문 역시 발칸반도 핵심 국가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외교적 영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시 주석은 1999년 미영 주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의 베오그라드주재 중국대사관 폭격 사건 발생 25주년이 되는 7일 세르비아를 방문함으로써 중국이 강조해온 유엔헌장과 국제법 원칙에 기반한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을 강조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시 주석의 유럽 순방이 국제질서 변화에 대한 전략적 대응 및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미중 전략경쟁 추세에서 중국은 러시아와 전략적 협력을 유지하고 EU와는 개별국가의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하며 개발도상국이나 ‘글로벌 사우스’에는 경제적‧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영국의 문화적 특성과 기후의 영향

하나의 문화와 민족의 성격에 영향을 끼치는 많은 것들 중에서 날씨를 무시할 수 없다. 문화라는 것은 언어, 예술, 의복 등 인간이 만들어온 다양한 산물이다. 이러한 문화는 각 나라의 지형과 날씨로 인해 많이 달라진다. 달라지는 것은 문화뿐만이 아니다. 날씨의 영향으로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일 또한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날씨와 문화의 관련성에 관해 다양한 방면으로 연구가 진행돼 왔고 여러 연구에서 온도가 아주 높은 환경에서 범죄율과 범죄의 수위가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도 한다. 기후와 인간의 관계성은 이렇게 중요하다. 영국의 경우는 어떨까. 영국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날씨가 흐리고 비가 많이 온다. 지형적으로 위도가 높지만 난류의 영향으로 추운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난류의 따뜻한 공기와 북유럽의 찬 공기가 만났을 때 생기는 기온차로 안개가 발생한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에서는 해를 보기가 힘들고 특히 가을과 겨울이 되면 하늘은 회색빛에 항상 비가 온다. 하지만 비가 많이 온다고 해서 모두 우산을 쓰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부슬비이거나 안개비이며 바람이 함께 불기 때문에 우산을 쓰는 것보다는 비를 막아주는 바람막이를 입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가장 날씨가 좋은 여름이라도 갑자기 추워지거나 비가 올 수 있기 때문에 관광객에게는 꼭 따뜻한 옷과 우산을 가지고 다닐 것을 추천한다. ‘날씨’라는 주제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영국인들에게 중요하며 문화적으로 매우 큰 지분을 차지한다. 이런 기후적 환경을 가지고 있는 영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살다 보면 몇 가지 재밌는 문화적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인들은 항상 날씨에 대한 불평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또 그날의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2004년 영국에서 베스트셀러였던 인류학자 케이트 폭스의 책 ‘영국인 발견’은 영국인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다. 그녀는 책의 첫 번째 챕터에서 영국인의 대화 패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녀에 따르면 영국인에게 날씨는 너무나도 관례적인 대화 주제이며 하루도 불평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라고 설명한다. 그들은 왜 이렇게 날씨를 좋아할까? 기후학자이자 인류학자인 마이크 흄 케임브리지 교수는 이러한 영국인의 날씨에 관한 대화가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한 낯섦을 극복하고자 하는 관습적 형식의 상호작용 방식이라고 분석한다. 영국인과 스몰토크를 하고 싶다면 오늘의 날씨 이야기를 꺼내면 된다. 영국 음식은 옛날부터 맛없기로 유명하다. 예상 가능하겠지만 기후환경이 큰 영향을 끼쳤다. 열악한 기후조건으로 다양한 농산물과 향신료를 키우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좋은 음식 문화를 만들기가 힘든 환경이었을 것이다. 현재 영국에서 사람들이 보통 즐겨 먹는 음식들은 대부분 제국 시절 식민지 국가에서 들여온 음식 문화들이다. 대영제국이 식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다른 나라를 침범하고 플랜테이션 농업을 강행했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 정도로 영국에서는 내놓을 만한 전통음식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에서 최근 출판된 알렉스 존슨의 ‘100 Words for Rain’이라는 책이 있다. ‘비에 대한 100가지 단어’라고 번역될 수 있는 제목의 이 책은 비와 날씨에 관련된 영국의 문화적 연구를 담는다. 영어에는 비를 표현하는 단어가 굉장히 많다. 그중에서 예를 하나 들면 영국에서 자주 쓰이는 은어 중에 ‘spitting’이라는 표현이 있다. 직역하면 ‘침을 뱉는’다는 뜻이다. 빗줄기가 굵진 않지만 얼굴에 부슬부슬 내리는 부슬비를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 책의 저자는 비에 대한 영어 표현뿐만 아니라 날씨가 투표 결과에 미치는 영향 같은 문화적 기후심리학 등의 내용도 설명한다. 영국의 문화적 민족성은 이렇듯 날씨가 큰 영향을 끼친다. 영국인이 가지고 있는 민족으로서의 회복력과 문화적 특성은 예상하기 힘든 날씨에 대해 매일 불평을 하면서 견뎌냈기에 발전한 능력으로 보인다. 이러한 영국인의 날씨에 대한 재밌는 흥미와 민족의 성격은 필자 같은 외국인 유학생에게는 항상 흥미로운 부분이다. 더 자세하게 알고 싶다면 위에 언급된 책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세계는 지금] 이스라엘-이란, 제5차 중동전쟁으로 확대되나

지난 19일 새벽 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공격은 제5차 중동전쟁 발발에 대한 두려움을 전 세계에 확산시켰다.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을 넘어선 시점에서 이집트, 카타르 등의 중재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던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는 이란과 이스라엘의 상호 공격으로 전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이달 초 1일 이스라엘의 시리아 주재 이란영사관 공격으로 이란의 혁명수비대 정예 쿠드스군 사령관 등 최소 13명이 사망했다. 이란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13일 미사일과 드론을 동원한 사상 첫 이스라엘 본토 공격을 감행했다. 이로부터 엿새가 지난 19일 새벽 이스라엘은 이란 중부 이스파한을 전격 공격함으로써 재보복에 나서 양국이 상대방 본토를 서로 공격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스파한은 이란 이스파한주의 주도로 수도 테헤란 남쪽 440㎞에 위치한 이란에서 인구가 세 번째로 많은 도시로 이란의 가장 중요한 시설 중 하나인 우라늄 전환시설(UCF)과 핵기술센터(INTC), 그리고 공군기지가 등이 있는 전략적 도시다. 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공격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신형 초음속 미사일 ‘램페이지(Rampage)’는 이스라엘이 자체 개발한 공대지 미사일로 GPS 체계에 의해 유도돼 먼 거리에서 발사돼도 표적을 정밀 타격할 수 있으며 초음속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탐지해 대응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당국자들도 이스라엘의 공격 당시 이스파한에 드론이나, 미사일, 전투기 등 그 어떤 것도 이란 영공에 침입한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을 통해 이란 내부를 성공적으로 타격할 수 있다는 강력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이란에 보낸 것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맞대응성(tit-for-tat) 보복 주고받기는 일단 소강 상태에 접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양측의 공격은 ‘제한된 군사옵션’으로 최대한 자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양측의 공격이 상대 영토를 처음으로 공격했다는 점에서 갈등이 심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5차 중동전쟁으로의 확전 가능성에 크게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것은 이란과 이스라엘 내부의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사태 이후 인질 구출과 하마스 소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아직도 달성하지 못한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이스라엘 국민들의 반감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영사관을 공격하기 하루 전인 3월3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는 10만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모여 네타냐후 정부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한편 이란은 최근 수년간 발생한 반정부 시위와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인한 경제 불황으로 내부 상황이 점점 악화돼 가고 있어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에 대한 부담을 안고 있다. 중동은 세계 원유 생산의 3분의 1을 담당하고 있고 이란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세 번째로 원유 생산량이 많은 만큼 중동지역의 긴장 상황은 세계 경제에 큰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국제 유가 변화에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란의 보복과 이스라엘의 추가 공격으로 중동의 안보 지형은 더욱 불안해졌다. 중동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객관적이고 냉철한 판단과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北 극초음속 미사일, 전략적 대응 시급

북한이 지난 2일 활공체형 극초음속 미사일(HGV) ‘화성-16나’형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금까지 총 3종 극초음속 미사일의 다섯 차례 발사를 공개했다. 또 최근 주일 미군기지부터 괌 기지를 비롯한 역내 전시증원을 억제하는 지역 투발 미사일에 집중하고 있다. 기존에 한반도를 사정거리에 두는 전술핵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실전화에 집중했다면 지난해 이후 주일미군, 괌 미군기지 투발 미사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극초음속 미사일 역시 같은 선상에 있다. 이번 공개한 고체연료형 극초음속 미사일은 요격을 회피하며 기동성을 갖춘 1천~4천㎞급 미사일 모델이 보강됐음을 의미한다. 김정은은 “모든 전술, 작전, 전략급 미사일들의 고체연료화, 탄두조종화, 핵무기화를 완전무결하게 실현했다”고 주장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모든 사거리 미사일에서 엔진연료계통은 고체연료화가 실현됐다. 이런 발언들은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이 필요하다. 미국 대선과 차기 미국 행정부의 출범을 의식해 최대한 핵무기 고도화의 성과를 과시하려는 의도가 강하게 깔려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핵무기 고도화는 불가역적이며 비핵화는 불가하다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한 대미 메시지 차원의 언술과 행보다. 이번 극초음속 미사일 실험발사에서 몇 가지 군사기술적 의미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우선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의 효과로 한미의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회피 능력을 일정 수준 보여준 측면이다. 이미 실전화됐다고 밝히고 있는 전술핵 탑재가 가능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변칙기동, 낮은 고도에서 저공 비행하는 전략순항미사일, 은밀성을 살린 수중전략무기체계 ‘해일’ 등과 더불어 신형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실험을 하게 됨에 따라 한미 방어체계를 회피하기 위한 무기들의 실전화가 빠르게 가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한미의 전략적·전술적 대응이 시급해진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 향상과도 연관성이 있다. 대기권 재진입 기술에 중요한 고온을 견디는 재질과 소재 기술이 극초음속 활강체에도 비슷한 도전 기술이 될 수 있는 점이다. 취약했던 소재 기술에서 모종의 기술적 진전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추진하는 미사일 개발의 최종 상태는 고체연료화, 다양한 사거리의 다종화, 수중 및 공중을 포함한 다양한 플랫폼 확보 등으로 보인다. 이 경우 러시아 킨잘 극초음속 미사일처럼 향후 개선된 항공기 플랫폼과 항공기 발사 극초음속 미사일에도 관심 보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북-러의 공군력 관련 기술협력 가능성도 이런 차원에서 예의주시해야 한다.

[세계는 지금] 대만 지진과 지정학적 리스크

지난 4월3일 대만에서 규모 7.2의 지진이 발생하자 국제사회의 관심은 유명 반도체 기업인 TSMC에 집중됐다. 이번 강진(强震)으로 인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TSMC의 일부 공장 가동이 일시 중단됐다가 복구 중이라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TSMC 측은 피해가 크지 않고 조만간 조업이 재개될 것이라고 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전쟁이나 정치불안 등과 같은 비경제적 요인이 글로벌 경제와 기업 비즈니스에 미치는 위험을 말한다. 북한 핵•미사일 도발의 한국 경제에 대한 영향, 최근 미중 전략경쟁 심화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의 불안정, 그리고 올해 11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글로벌 통상 질서에 대한 영향 등이 지정학적 리스크의 대표적 사례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4년 보고서는 ‘국가 간 무력 충돌’을 글로벌 공급망과 경제적 안정성을 뒤흔들 단기 리스크로 지목했고 영국은행(Bank of England)의 2024년 설문조사도 기업 비즈니스에 대한 가장 큰 도전으로 지정학적 리스크를 꼽았다.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주요국의 대응도 매우 빨라지고 있다. 미국은 2022년 8월 ‘반도체 과학법’을 제정해 인텔과 삼성을 포함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대만 지진 발생 이후 4월8일에는 TSMC가 애리조나주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설립하는 데 총 116억달러 수준의 보조금을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일본도 이미 2021년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을 수립해 반도체 강국으로의 부활을 선언한 상황에서 TSMC와 일본 구마모토현에 현지 공장을 설립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대만 지진 이후 4월6일에는 기시다 총리가 직접 TSMC 1 공장을 방문한 데 이어 TSMC의 일본 내 2공장 설립 및 대규모 보조금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유럽연합(EU) 역시 2023년 9월 ‘유럽반도체법’을 제정해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의 20%를 역내에서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대규모 보조금 지급 및 투자지원 방안을 마련했고 이번 지진을 계기로 대만에 집중된 반도체 공급망의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소위 ‘리스크(risk)’는 확률적 개념이며 결코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는 점에서 이를 잘 완화할 경우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대만 지진을 계기로 재점화되고 있는 지정학적 리스크 및 반도체 공급망 다각화 추세에 대해 우리 정부가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주요 국가들의 보조금 지원 및 반도체 기업 유치 전략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지 등을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기업 차원에서도 현지국 내부와 지역적 차원 및 초국가적(transnational) 리스크에 대한 평가를 통해 현지 네트워크 구축과 시장 다각화 등을 특징으로 하는 ‘기업외교(Corporate Diplomacy)’를 좀 더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다.

[세계는 지금]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와 근대의 시작

한국의 총선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선거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누리는 일상적인 일들 중 하나가 됐지만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선거를 통해 투표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한 사람의 기초적인 권리를 인정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담는다. 중세를 지나 근대에 돌입하면서 발전된 의회와 국민의 권리가 없었다면 누리기 힘든 일들이었을 것이다. 지난달 필자는 국제 여성의 날을 맞이해 여성의 투표권과 영국의 여성 투표권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이번에는 다가오는 선거를 맞이해 영국 헌법상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법 관련 문서들과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인간의 역사가 근대로 들어서기 위해 거친 몇 가지 일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는 바로 ‘권리장전(Bill of Rights)’의 탄생이다. 마그나카르타, 그리고 권리청원과 함께 영국 헌법의 3대 성서라고 불리는 문서다. 권리장전이란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를 이야기하는 성문법적 문서다. 영국의 권리장전은 세계 최초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인권이 중요하지 않았던 중세에는 절대군주제를 바탕으로 왕권에 힘이 많이 쏠렸다. 한마디로 말하면 왕은 헌법 위에 있었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30년 전쟁이 끝나고 교황의 권위는 이전보다 많이 하락했으며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각 나라의 왕권이 강력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당시 영국에서는 찰스 1세가 국왕으로서 의회의 견제를 무시하고 권력을 남용하려 했고, 이러한 국왕과 대립해 크롬웰을 중심으로 한 의회파는 1642년 청교도전쟁을 일으켜 왕권을 무찌르고 공화당을 세웠다. 하지만 크롬웰이 죽은 뒤 찰스 1세의 아들인 찰스 2세가 왕으로 복귀하고, 그의 아들인 제임스 2세가 즉위해 다시 전제정치를 시작했다. 이때 일어난 1688년의 명예혁명은 그 누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제임스 2세를 쫓아낼 수 있었으며 영국의회는 자신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권리장전을 통과시키도록 요구했다. 이는 영국이 절대왕정 시대를 끝내고 의회와 국민의 권리를 확보할 수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다. 권리장전의 대표적 내용은 의회의 동의 없이는 왕권으로 법을 만들 수 없고 의회의 자유로운 선거와 발언권을 보장하며 의회의 승인 없이 과세를 하거나 국민에게 잔혹한 형벌을 내리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 등이다. 따라서 영국의 권리장전은 지금의 현대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기초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후의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의 인권선언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권리장전이 있기 약 400년 전에는 영국 역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서라 말할 수 있는 ‘마그나카르타(Magna Carta)’가 등장했는데 이는 라틴어로 ‘대헌장’이라는 뜻이다. 마그나카르타는 근대적 의미의 인권선언과는 의미가 다르지만 역사적으로 왕권을 최초로 법에 종속시킨 사건이기에 민주주의의 초석이라고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의의가 있다. 마그나카르타는 1215년, 당시의 국왕이었던 존 왕이 왕으로서 봉건 제후들인 귀족들에게 신뢰를 얻지 못해 결국 강제로 서명하게 된 문서다. 이 대헌장의 내용은 왕의 과세권 제한, 자유민으로서의 보증 등이며 이 사건으로 인해 왕권이 큰 제한을 받게 됐다. 따라서 13세기 이후부터는 ‘의회’라는 형식이 서서히 자리 잡히기 시작했으며 의회의 통과 없이는 왕의 마음대로 법을 만들거나 과세를 할 수 없는 약속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후 영국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양원제로 의회가 발달하게 됐다. 긴 시간 동안 싸워 쟁취해낸 민주주의는 이렇듯 인류의 역사가 중세에서 근대로 발전하는 큰 역할을 했으며 한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를 대표한다는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투표와 선거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자신의 권리를 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행위인 것은 당연하다. 총선이 다가오는 중대한 시기인 지금,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고 선거에 임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으로 더 나은 사회와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이어나가는 것은 현대인의 마음가짐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세계는 지금] 러시아 테러와 IS, 그 비극의 고리

지난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벌어진 잔혹한 테러는 25일 현재 137명의 사망자와 15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충격적 사건이었다. 이 테러사건의 용의자는 모두 11명으로 그중 4명이 검거돼 조사를 받고 있는데 검거된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잔혹한 고문 영상이 공개되며 또 다른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ISIS-K로 알려진 IS-호라산은 텔레그램을 통해 이번 테러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혔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IS-호라산에 대한 언급은 철저히 배제한 채 테러의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해 이번 사태를 서방에 대한 외교정책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번 테러의 배경에 관해 우크라이나 배후설에서 러시아 자작극까지 여러 추측이 난무한다. 테러사건의 배경에 여러 층위의 상황과 원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현재까지 파악된 이번 테러의 가장 유력한 주체는 IS-호라산이다. 그렇다면 IS-호라산은 왜 거대한 러시아를 대상으로 승산 없는 테러를 자행한 것일까? 이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배경은 향후 보다 심도 있는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현재까지 파악된 테러의 명분과 배경은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우선 러시아와 무슬림 세력과의 구원(舊怨)이다. 1979년 공산국가인 소련이 이슬람국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미국의 지원을 받은 무슬림들이 세력을 규합해 소련에 맞서 싸웠다. 이들이 바로 ‘무자히딘’이며 이들의 일부가 후일 ‘알카에다’로 9·11테러의 주체가 된다. 1990년대 체첸은 지하드의 제1격전지가 된다. 소련 붕괴 후 체첸 등지에서 발생한 무슬림 지역 분리독립운동을 러시아는 강경 진압했고 이는 중앙아시아 무슬림 사이에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고조시키는 원인을 제공했다. 2011년 발생한 시리아 내전에서 시리아 정부군과 맞서 싸웠던 세력이 알카에다와 IS였는데 붕괴 직전에 있던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도와 이들을 물리친 것이 바로 러시아였다. 특히 최근 2년간 무슬림에 대한 탄압으로 푸틴에 대한 원한이 더욱 깊어진 상황도 무슬림 세력의 러시아에 대한 반감 증가 요인으로 분석된다. ISIS-K, 즉 IS-호라산은 어떤 세력인가? 호라산은 현재 이란, 아프가니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의 일부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이었다. 2014년 발흥한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지역에서 세력을 넓히자 호라산지역의 무슬림 세력이 IS에 충성을 맹세하며 하부 조직으로 편입돼 현재의 IS-호라산이 됐다. 2019년 IS의 수장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의 사망과 더불어 IS 세력은 급격히 소멸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잔존 세력이 본국으로 흘러들어 각 지부를 중심으로 명맥을 유지해 갔고 이번 러시아 테러 사태의 배후를 자처한 IS-호라산 또한 그 세력 중 하나다. 한때 소멸된 듯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서방과 대립으로 취약해진 러시아를 테러 무대로 삼고 국제사회에 다시 존재감을 드러낸 IS 세력은 서방, 비서방을 막론하고 반이슬람 국가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로 어수선해진 국제 정세가 IS-호라산의 등장으로 다시 흔들리고 있다. 테러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과 대응만이 더 이상의 잔혹한 테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지금] 국제질서의 전략적 지형 변화 속 한반도

미국 전략경쟁이 가열되는 와중에 터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서방과 러시아의 대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은 국제질서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이슈들이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힘으로 패권을 차지하려는 자국 중심주의의 부상,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판’ 위에서 상대를 압도하려는 제로섬적 경쟁, 민주주의와 권위주의라는 진영논리의 전면화, 치열한 핵군비 경쟁 등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적, 지역적 패권을 꿈꾸는 힘들의 대치는 곧 국제질서의 다극화를 의미한다. 이런 구도는 한반도 평화에 치명적인 저해 요인들이다. 국가 및 진영 간 대치, 상호 대결과 혐오의 프레임이 지배하게 될 때 한반도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지역 및 국제 협력의 가능성은 위축되고 평화적 해법의 가능성은 더욱 복잡한 함수관계와 미궁으로 빠져들 수 있다. 한반도 문제는 기본적으로 지역 및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한반도 문제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만나는 열강의 지정학적 힘 겨루기 판 위에 놓여 있다. 문제의 틀 자체가 주변 열강의 이해와 직결된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사안들의 구성물이다. 남북한의 구조화된 장기 분단체제, 군사적 대치 및 군비경쟁,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 미북 적대관계 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중국, 러시아, 일본의 협력, 국제적 지지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한미일과 북중러의 진영전선이 강화되고 동북아 군비경쟁이 과열될수록 한반도 대치 전선 역시 강화될 수밖에 없다. 대결 논리 및 동맹 논리에만 의존할 경우 한반도 평화의 구조적·현실적 한계는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우선 미국, 중국, 러시아는 물론 지역 강국들의 군비경쟁은 이미 냉전기를 압도하고도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갈등 구도가 표면화되면서 핵 군비경쟁의 조정과 국제적인 군비통제 강화의 길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형국이다. 오히려 미국은 대(對)중국 포위·압박을 강조하면서 핵무기 증강과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둘째, 미국의 대중국 포위·압박전략이 거세지면서 북러의 전략적 협력, 북한의 대중국 동조화가 강화되고 있다. 미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이나 북한의 위협 인식에서 큰 변화가 없는 한 북한의 대러시아 협력, 대중국 동조화는 가속화될 것이다. 이런 구도는 결국 북러, 북중의 전략적 제휴 속에서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가 묵인·방조, 진영 내 핵보유국 승인 등으로 현실화될 가능성을 높인다. 셋째, 미중 전략경쟁, 미러 대치의 장기화는 북한의 ’전략적 지위‘ 인식과 남북관계를 수단화하는 경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 능력과 전략적 지위를 과시하면서 남북관계에 대한 일대 전환을 꾀하고 있다. 핵보유국 지위 인정과 미북 핵군축 협상에 반대하는 한국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장애가 되는 민족관계를 폐기하고 적대적 교전국으로 한국을 대상화했다. 전쟁 준비 완성을 외치며 긴장을 조성하며 한국을 인질로 한 대미 억제력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볼 수 있다. 미중 전략경쟁은 물론 유럽과 중동의 두 전장에 대응해야 하는 미국의 상황을 이용한 북한의 전략적 압박이라고 볼 수 있다. 지정학적 특수성, 구조화된 분단, 동북아 군비경쟁 및 진영화 구도 등으로 인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새로운 전환적 발상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와 동북아 조성된 대결구도에 편승한 접근은 남북 모두를 안보 딜레마의 늪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한반도형 협력안보’ 구상을 신중하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협력안보는 적대하는 상대와도 다양한 협력을 통해 안보를 증진시키는 접근이다. 핵심은 ‘상호안전보장’이다. 협력적으로 위협을 감소시키기 위한 북핵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핵군축은 기본적으로 비핵화를 포함한다. 궁극적 목표는 핵 폐기다. 다만 핵 폐기로 가는 과정을 현실화해 단계를 부여하는 것이다. 낮은 단계의 핵군축에서 높은 단계의 핵군축으로 정치기술적인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2024년 양회, ‘중국 논쟁’의 새로운 변화

중국의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가 8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양회는 중국공산당에 대한 국정자문 역할을 하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우리의 국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지칭하며, 전년도 경제사회정책 추진 성과를 평가하고 올해 실현할 경제사회적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자리이다. 2024년 중국 양회에서는 중국의 경제성장률 목표를 작년과 마찬가지로 역대 최저 수준인 5.2%로 제시하고, 침체된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 촉진 정책과 청년 고용 촉진 정책, 그리고 ‘새로운 질적 생산력’을 위한 과학기술정책과 첨단산업정책 추진 방향 등을 제시했다. 매번 양회에서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올해도 경제사회 분야별 목표는 명확하게 제시했지만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은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이번 양회에서 ‘새로운 질적 생산력’ 개념을 강조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새로운 질적 생산력’이라는 표현은 지난해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헤이롱장성을 방문했을 때 처음 언급했던 ‘시진핑 브랜드’이고, 중국이 제조업을 포함한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을 통해 미국과의 기술패권경쟁에 장기적으로 대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2024년 양회의 또 다른 특징은 ‘시진핑 1인 우위’ 체제 강화를 위한 법․제도적 조치가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은 이미 2018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주석 연임 제한을 철폐해 시진핑 권력 강화를 위한 법적 정당성을 확보했고, 2023년 3월 시진핑은 국가주석 3연임에 성공했다. 올해는 매년 양회 폐막 직후에 진행하던 국무원 총리의 외신 기자 초청 기자회견을 취소함으로써 총리의 위상을 약화시켰고, 국무원 26개 부․위원회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지도와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무원 조직법을 개정함으로써 국무원 총리의 권한을 제한했다. 2024년 중국 양회는 국제사회의 ‘중국 논쟁(China Debate)’이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즉, 기존에는 소위 ‘중국의 부상’에 따른 경제․군사․외교 분야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라는 차원에서 ‘강대국’ 중국에 대한 논쟁이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중국경제의 장기 침체 및 외부 위협요인 증대에 따른 ‘쇠퇴할 수 있는’ 중국이 국제사회에 미칠 파급영향에 대한 논쟁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피크차이나’ 논쟁과 ‘디커플링’과 ‘디리스킹’ 논쟁 등이 있으며, 이번 양회 의제 역시 이와 관련성이 높다. 2024년 양회 종료 이후 중국은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후속 조치를 취할 것이고 다양한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한국도 이번 양회가 남긴 ‘중국 논쟁’과 관련된 새로운 의제들-즉, 중국경제 중속(中速)성장 추세, 소비 진작 및 투자 촉진 조치와 산업구조조정, ‘시진핑 1인 우위’ 체제 강화에 따른 ‘집단사고’ 가능성, ‘새로운 질적 생산력’ 강조와 미중 기술패권경쟁 대비 등-에 대한 논의를 통해 중장기적 대응 방안을 마련할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영국의 여성 인권운동과 여성 참정권의 의미

오는 8일은 1975년 유엔이 공식적으로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날은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들이 용감하게 쟁취한 정치, 경제, 사회적 업적을 국제적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1909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국 여성의 날이 선포된 것에 고무돼 1910년 독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이 코펜하겐에서 국제 여성의 날을 제안한 것으로 유럽에도 여성의 날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여성 인권운동의 역사에서 여성이 얻어낸 아주 최소한의 평등한 권리를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 예는 바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투표권의 인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참정권이 최초로 주어진 것은 약 130년 전인 1893년 뉴질랜드에서였다. 대한민국에서는 광복 이후인 1948년에, 다른 선진국들 또한 20세기가 넘어서야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당연한 권리인 참정권이 여성에게 주어진 것이 이제 겨우 100년 넘었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매우 긴 시간 동안 목숨을 걸고 싸워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영국은 여성 참정권 운동의 대표 국가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1850년대부터 시작됐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20세기 초 이 운동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조직해 온몸으로 투쟁했는데 그 당시 이런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참정권’이라는 뜻의 ‘suffrage’ 와 여성형 접미사 ‘-tte’를 합친 ‘suffragette(서프러제트)’라 불렀다. 수많은 서프러제트들이 싸웠지만 그중에서도 에밀리 데이비슨이라는 여성은 1913년 더비 경마대회에서 당시 국왕인 조지 5세의 경주마에 몸을 던져 사망함으로써 여성 참정권 운동에 가장 강렬한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장례 행렬이 자연스럽게 시위 행렬이 되면서 세계적으로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 언론화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1928년 긴 시간 끝에 영국 의회는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승인했다. 대한민국의 여성 인권운동과 참정권운동이 영국 같은 나라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제의 식민지가 되기 바로 이전까지 여성들은 뿌리 깊은 유교문화로 인해 인권운동은커녕 최소한의 교육조차 받을 수 없었다. 조선시대 여성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교육은 소혜왕후가 엮어 만든 여성의 행실에 대해 다룬 ‘내훈(內訓)’이라는 교양서를 읽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식민지 시절 그 누구보다도 나라의 독립과 여성의 인권을 위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투쟁한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기에 현재 대한민국 여성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 여성이 오늘날 당연하게 누리는 여성의 권리는 이렇듯 전 세계 여성들이 목숨을 건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구조적으로 남성 중심인 사회에서 내재된 성차별을 겪고 있으며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여성 인권은 지금도 처참하다. 우리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면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여성의 권리와 참정권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한 여성들의 노력을 기리고, 그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앞으로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투쟁을 멈춰선 안 된다.

[세계는 지금] K-방산, 세계 4대 방산강국을 향해

지난 6일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는 리야드에서 열린 한-사우디 국방장관 회담을 계기로 지난해 11월 한국 LIG넥스원과 사우디아라비아 국방부 간에 체결한 한국형 패트리엇 M-SAM2(천궁-2) 10개 포대 32억달러(약 4조 2천500억원) 규모의 계약 사실을 공개했다. 2022년 아랍에미리트(UAE)와 체결한 35억달러(약 4조7천300억원) 규모의 천궁-2 수출에 이어 중동지역에서 이룬 K-방산의 쾌거다. 지난해 폴란드는 한국방산 업체들과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천무 다연장로켓 등에 대한 124억달러(약 17조원) 상당의 무기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또 지난해 말 K2 전차와 K9 자주포의 초도분 현지 인수 행사에 이례적으로 폴란드 대통령과 부총리 등 정부 및 군 고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것은 한국산 무기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 방산시장에서 K-방산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는 가운데 한국은 2027년 4대 방산 강국을 향한 목표에 성큼 다가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한국은 세계 무기 수출시장 점유율 2.4%로 세계 방산 수출 상위권 9위 국가로 급성장했다. 2023년 수출액은 130억달러로 2022년 173억달러와 당초 목표액 200억달러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수출 대상국은 2022년 폴란드 등 4개국에서 2023년 UAE, 핀란드, 노르웨이 등 총 12개국, 수출 무기체계도 6개에서 12개로 다변화됐다. 세계 방산 수출 시장은 미국이 40%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러시아(16%)와 프랑스(11%)의 뒤를 이어 중국(5.2%), 독일(4.2%), 이탈리아(3.8%), 영국(3.2%), 스페인(2.6%) 등의 순으로 한국(2.4%)과의 점유율 격차는 크지 않다. 세계가 K-방산을 주목하게 된 것은 최근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발발로 인한 국제정세의 불안정성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군에 대거 자국 무기를 제공한 폴란드는 이에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무기 도입을 추진했지만 주요 무기 수입국인 미국과 독일 등의 무기 수급에 몇 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신속한 공급과 뛰어난 가성비를 자랑하는 한국산 무기는 미국과 독일을 대체할 수 있는 주요 시장으로 부상했다. 최근 발생한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는 이란과 예멘 후티반군 등에 의한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의 위협 체감 증가로 이어지면서 중동국가의 한국산 무기에 대한 관심과 구매 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동 정책 변환도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의 한국산 무기 구입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 세계가 K-방산을 주목하는 몇 가지 이유는 안정적 생산능력과 우수한 기술력, 높은 가성비, 신속한 납기와 더불어 국제정치 상황에서 한국이 갖는 긍정적 이미지와 안보충돌 위험이 적은 국가라는 점이다. 그러나 K-방산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도 공존한다. 방산 수출에 대한 금융지원 확대를 위한 수출입은행법 개정이다. K-방산의 4대 강국 진입을 위해 여야 모두 뜻을 모아야 할 때다.

[세계는 지금] 북한의 전략국가론과 향후 행보

최근 북한이 대남전략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남한을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며 대남 ‘단절’을 구체화하고 있다. 동북아 진영화 구도와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둔 단기적 정세 대응인지 장기적인 근본적 전환 행보인지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북한의 이런 행보는 ‘핵무기 고도화’의 큰 그림 속에서 보면 예상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실리적 차원의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일관되게 핵무기 고도화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왔다. 대내외 전략 모두 핵전략과 상호 조응하며 움직여 왔다. 핵무기 고도화의 기술적 성취는 곧 대외 전략의 변화로 나타났다. 핵무기와 대남·대미 전략의 변화가 어떻게 상호 조응하는지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이 ‘전략국가’라는 용어다. 이 용어는 2017년 11월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발사 성공 직후 처음 등장했다. 애초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실제 타격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의미였다. 이후 지역 및 동아시아의 핵전쟁을 방지하고 세계의 전략적 균형을 가져오는 ‘전쟁억제력’을 가진 국가로 개념이 확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가진 국가라는 뜻에는 변화가 없다. 핵무기 보유로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가 됐고 미국이 북한을 함부로 대하기 어려워졌으며 북한의 전략적 지위에 맞는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는 대미 ‘요구’와 기대’를 함축한 ‘자기규정’의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미 전략 차원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일까. 북한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한다. 첫째, 핵보유국의 대등함, 둘째, 대미 억제력 확보, 셋째, 북미관계 개선이다. 우선 미국이 핵무기로 일방적으로 위협하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 핵보유국가 대 핵보유국가로 대등해졌다는 메시지다. 둘째,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다. 셋째,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하고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북미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메시지다. 종합하면 ‘전략국가’ 용어를 통해 핵무기의 기술적 성취에 따라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들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향후 북한의 대남·대미 전략과 관련해 크게 세 가지 측면의 예상이 가능하다. 첫째, 미국의 인식 변화 및 북미관계 개선이다.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가 돌이키기 어렵고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국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미국이 취했던 대북정책의 실패를 부각하고 대북한 인식 및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에 이 메지시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올해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역대급으로 과시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미국의 대북 군사적 위협을 완화하는‘북한식 안전보장’으로 핵군비통제나 핵군축 주장을 구체화할 가능성이 있다. 소위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의 대등함 속에서 북미 핵군비 통제, 핵군축 협정을 위한 구도 만들기다. 주한·주일 미군기지, 괌기지, 미 본토를 모두 사정거리화하는 북한의 행보는 대미 억제력 확보와 대등한 협상 구도를 만들기 위한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협상이 어려울 경우 러시아, 중국 등의 진영화에 편승한 핵보유국 지위 기정사실화는 지속할 것이다. 셋째, ‘북한식 현상변경’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를 북미 구도로 제한하고 핵보유국 위상 속에서 북미관계 개선을 끌어내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설정하고 한국과의 철저한 ‘단절’을 시도하는 것은 북미 담판 구도에 방해가 될 수 있는 한국의 존재를 지우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목표에 민족이나 남북관계가 개입되면 문제를 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방해가 된다고 볼 수 있다. 향후 한반도 정세는 이런 북한의 의도들, 미국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향방과 맞물리며 일대 전환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는 지금] 미중 간 ‘관리된 경쟁’과 전략적 소통

최근 미중 두 강대국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한 용어는 전략경쟁(strategic competition)이다. 2017년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이후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미중은 경제통상과 군사안보뿐만 아니라 첨단기술 및 체제, 이데올로기 분야에 이르기까지 치열한 경쟁과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심화된 미중 전략경쟁은 2023년 2월 ‘정찰 풍선’ 사태로 인해 더욱 악화됐다. 하지만 2023년 5월 이후 미국과 중국의 상호 전략적 필요성으로 인해 전략경쟁 국면이 다소 완화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6월부터 미국 국무장관과 재무장관 및 상무장관 등이 중국을 방문해 협력의 필요성을 타진했고 왕이 외교부장과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은 세 차례의 만남을 통해 협력의 범위와 어젠다를 조정했으며 11월 샌프란시코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관리된 경쟁(managed competition)’이라는 새로운 틀을 모색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처럼 미중은 ‘관리된 경쟁’이라는 새로운 틀을 모색함으로써 양국 간 경쟁이 대립이나 군사적 충돌로 비화되지 않도록 하고 국내 경제사회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 과정에서 양국은 전략적 소통 채널을 가동하고 다양한 워킹그룹을 활성화했다. 미중은 2023년 외교안보 영역에서 아태사무협의체(9월), 외교정책협의체(11월), 해양사무협의체(11월) 등을 신설했고 경제 영역에서는 경제워킹그룹(10월)과 금융워킹그룹(9월)을 신설·운영했으며 11월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군 소통 채널 복원에도 합의했다. 2024년 1월에는 마약퇴치협력워킹그룹이 출범했고 1분기에 양국 상무부 차관을 대표로 하는 통상·무역워킹그룹도 가동할 예정이다. ‘위기관리’ 관점에서 볼 때 미중이 양국의 경쟁을 ‘책임 있게’ 관리할 필요성을 인식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중 전략경쟁이 이미 장기화, 구조화 추세에 접어든 상황에서 양국이 전략적 소통 채널을 가동해 오판을 방지하고 실무 차원의 워킹그룹을 활성화해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4년 2월 초 베이징에서 열린 경제워킹그룹 제3차회의에서 중국은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한 우려를, 미국은 중국의 산업정책 관행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개최될 통상무역워킹그룹에서는 미중 상호 간 첨단기술 수출 통제 및 상대국에 대한 시장·투자 확대 등과 관련된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 최근 국제질서의 구조 변화와 지정학적 요인 등으로 인해 한중관계가 경색 국면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조태열 신임 외교부 장관이 중국 외교부장 및 러시아 외교차관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고위급 소통을 시작했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한중 간 기존의 전략적 소통 채널을 복원하고 협력 가능한 경제통상 분야에서 워킹그룹을 신설하는 등 한중관계의 새로운 전환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성이 있다.

[세계는 지금]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의 역사와 건강한 ‘공생’을 위한 길

1990년대에 들어서야 동물보호법을 제정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유럽에서는 200여년 전부터 동물복지법을 제정했다. 유럽에서는 19세기에 동물보호에 대한 관심도가 증가했는데 그중에서도 영국에서 약자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인식과 교육이 당시 관심을 받기 시작해 동물 보호의 관심도 또한 폭증했다. 이후 영국은 1822년 세계 최초의 동물복지법을 제정하게 된다. ‘마틴법’이라고도 불리는 ‘가축학대방지법(Cruel Treatment Cattle Act )’이다. 이 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말과 거세된 동물, 새, 소, 양 등의 가축을 학대하거나 잔인하게 대하면 10실링 이상 또는 5파운드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11년 영국은 포괄적인 동물보호법을 제정했고 프랑스와 독일이 각각 1850년, 1871년 동물을 학대한 사람을 처벌하는 내용의 법을 제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1991년 동물보호법이 처음으로 제정됐다. 서양에서 동물과 가축에 대한 인식이 대중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과거의 일은 아니다. 기록에 남아 있는 최초의 동물권 옹호자는 기원전 530년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동물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가르쳤으며 채식을 지지했다고 한다. 동양에서는 불교가 발전하면서 가축과 동물을 보호하고 채식을 지향하는 이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소수의 생각이었으며 인간의 역사가 18세기에 이를 때까지 동물은 재산이나 물건이라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 같은 17세기 서양 철학자들은 동물이 영혼도 생각도 없다고 생각해 고통도 못 느끼는 존재라 여겼다. 18세기가 되자 프랑스 철학자 장자크 루소와 영국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이에 반대해 각자가 믿는 가치관과 철학 내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구조적으로 동물권이 무시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공장식 축산과 대량생산 시스템이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시급하게 바뀌어야 하는 것은 동물복지의 대상 확대다. 예를 들어 미국과 영국에서는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는 동물의 범위를 ‘인간을 제외한 모든 척추동물’로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과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무척추동물도 법의 보호 대상으로 인정한다. 우리나라는 2018년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보호 대상인 동물의 범위를 넓히고 올해 동물보호법을 동물복지법으로 개편하는 등 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가축에 대한 대우를 발전시키는 데 최근 몇 년 동안 큰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많은 논란을 빚어냈지만 결국에는 통과된 ‘개 식용 금지법’도 그 노력이 엿보이는 케이스다. 하지만 법보다 더 시급한 것은 국민의 인식이다. 영국도 1800년대 초 최초의 동물복지법을 제정하고 법이 제대로 실행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사회의 인식이 나아지지 않는 한 법의 제정이 큰 의미를 갖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과 똑같이 고통을 느끼는 다른 존재들과의 건강한 공생을 위해 더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춰선 안 될 것이다.

[세계는 지금]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 예루살렘

‘하나의 신이 사는 집, 두 민족의 수도, 세 종교의 사원’. 이보다 예루살렘을 잘 묘사하는 표현이 있을까?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자국법상 수도로 이스라엘 중부 유대평야 남단에 위치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각자 예루살렘을 자국의 수도라고 주장하지만 유엔 결의안 194조에 의하면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소유도 아니다. 예루살렘은 유일신을 섬기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주요 성지 중 하나다. 그리스도교인에게는 예수가 인간을 위해 고난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승천한 성지이며, 이슬람교도에게는 무함마드가 승천해 선지자와 알라를 만나고 내려온 성스러운 장소인 것이다. 그러기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예루살렘을 자신들의 신앙적 중심, 언젠가 한 번은 순례하고 싶은 목적지로 여긴다. 역사적으로 종교적 기능으로 도시가 유지돼 왔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예루살렘은 종교의 도시이자 순례의 도시였다. 하나의 신을 섬기며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둔 세 종교가 각각 예루살렘을 차지했던 시대를 구분해 본다면 유대인이 지배하던 시대가 약 550년, 기독교도가 다스리던 기간이 약 400년, 이슬람교도인 무슬림이 통치하던 기간이 약 1천200년이며 나머지는 외세에 의한 통치가 이뤄졌다. 가나안 시대로 알려진 기원전 14세기,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의 우루살림으로 불렸다. 성서에는 예루샬라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예루’는 수메르어로 ‘토대’, ‘거주’, ‘지역’을 뜻한다. 고대 가나안 신앙에 등장하는 평화의 신인 샬림을 모시는 사원이 이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살렘’이 ‘평화’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와 달리 예루살렘에서는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유대교 잡지 ‘모멘트 매거진’ 2008년 6월호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두 번 완전히 파괴되고, 23회 포위됐으며, 52회 공격을 받았고, 44회 점령과 탈환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처럼 약 3천년의 역사를 품은 예루살렘은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종교 및 영토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 동서양의 문명사와 글로벌 정세에 지속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오늘날에도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영토 분쟁이 여전히 전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638년 이슬람 정통 칼리파 중 제3대 칼리파 우마르가 예루살렘에 입성했고, 7세기와 8세기에 예루살렘 성전 내에 바위 사원과 알아크사 사원이 건립되면서 예루살렘은 메카와 메디나에 버금가는 이슬람의 성지가 됐다.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건국으로 시작된 아랍과 이스라엘의 전쟁은 현재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잉태하며 끊임없는 분쟁과 갈등을 양산해 왔다. 하나의 신과 세 개의 종교가 공존하는 예루살렘은 평화가 아닌 갈등이, 이해가 아닌 반목이, 사랑이 아닌 미움이 상존하는 도시가 됐다. 각자의 상흔을 보듬어 주며 공존하는 하나님의 도시 예루살렘을 꿈꿔 본다.

[세계는 지금] 김정은의 건설정치, 욕망의 모노리스

김정은 집권 10년을 가장 함축적으로 특징 짓는 용어는 핵무기 고도화와 함께 ‘건설’일 것이다. 2012년 집권 이후 거의 매년 대규모 아파트 건설 외에도 굵직한 건축물들이 전국 도시 곳곳에서 건설됐다. 집권 12년 내내 북한은 ‘공사 중’이었다. 특히 코로나19 비상방역 속에서도 매년 1만가구씩, 2025년까지 평양에 총 5만가구의 살림집을 지었다. 2021년 제8차 당대회 이후 핵무기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과 동시에 평양과 지방에 대규모 살림집 건설이 이뤄지고 있다. 김정은식 건설정치는 ‘사회주의문명국론’ 및 ‘핵강국론’과 표리일체로 담론화돼 왔다. 사회주의문명국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2013년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선언하며 그 지위에 걸맞은 문명국의 위용을 강조해 왔다. 대규모 건설과 거리 조성 등을 통한 통치 공간의 스펙터클화, 도시의 경관화는 ‘핵강국’의 위상과 정당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각적 담론에 해당한다. 이 용어들은 이후 강성국가, 전략국가 등으로 변용되지만 뜻하는 본질은 동일하다. 다시 말해 건설정치는 ‘핵정치’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또 대규모 건설사업은 시장메커니즘과 결합된 ‘김정은식 경기 부양’ 및 ‘시장 효과’와도 관련돼 있다. 도시 건설사업 붐은 정권의 이해, 주민 및 관료들의 이해, 그리고 시장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아파트 건설은 정치적인 경관 또는 통치전략과도 관련이 있다. 북한에서 아파트는 과거부터 체제의 우월성을 전시적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인공물이었다. 여기에 건설 ‘속도’를 강조하면서 도시의 경관을 빠른 시간에 전변시키는 ‘기적’의 상징이었다. 대규모 아파트로 가득 찬 경관과 건설 실적은 발전 또는 체제 우월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간주됐다. 보여주기 위한 계획적 미화, 권력의 상징으로서 기념비적인 것, 연극으로서의 건축에 해당한다. 북한에서 아파트 건설이 대규모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1972년에는 평양을 ‘혁명의 수도’이자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선전도시로 선포하고 본격적인 대형 건축물 축조, 주택 및 신시가지 건설에 돌입했다. 1974년 김정일은 후계자로 공식화된다. 김정일은 후계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 본격적으로 아버지 김일성의 우상화와 유일지도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한다. 대규모 살림집 건설은 김정일의 업적 쌓기 차원에서 구상되고 실행됐다. 경제난으로 인해 1990년대 초 중단됐던 북한의 아파트 건설은 2008년 재개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 대규모 아파트 건설은 결과적으로 ‘부동산 열풍’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투자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의 등장은 이제 새롭지 않다. 아파트 부동산 시장의 번성은 음성화돼 있던 부동산 거래 시장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김정은의 집권 이후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양과 주요 도시에서 지위가 높은 간부와 부유층 사이에서는 아파트를 통해 자신이 가진 권력과 위세를 과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로 인해 아파트 실내장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실내장식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권세를 과시하는 측면 이상으로 자신의 사적 공간을 꾸미는 욕구와도 관련 있어 보인다. 북한에서 아파트 건설은 권력기관들이 자신의 기관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개별 관료들이 자신들의 개인 이익을 챙기는 차원에서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또 위로부터 자신들에게 할당된 건설 할당량을 없는 능력 속에서 달성하고 한편으로 이익 역시 내려는 도시 내 주요 권력기관·기업소의 생존논리,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통해 통치 능력과 치적을 과시하려는 당국과 최고 지도부의 정치적 욕구, 아파트 부동산 거래를 통해 보다 많은 차익을 남겨 부를 축적하려는 민간 자본의 경제적 욕구, 그리고 아파트 건설에 들어가는 각종 자재, 강재, 시멘트, 장비, 인력 등으로 인해 활성화된 각종 생산 및 유통시장의 관계자들이 결합돼 북한의 건설시장이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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