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삼족오 사냥

고구려의 고분에서 발견되는 삼족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다. 태양에 까마귀가 산다는 고대신화는 태양 흑점을 형상화한 결과로 여겨지고 있다. 태양 흑점은 자기장 활동으로 발생하는 소용돌이에서 검게 보이는 부분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해를 신성한 완결체로 간주하던 풍조 때문에 이 검은색 결점에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늘 있었다. 태양 흑점은 약 11년 주기로 증감을 반복한다고 알려졌다. 이를 놓치지 않고 침체와 호황을 반복하는 경기변동에 갖다 붙여 태양 흑점설을 주장한 제번스(William S. Jevons) 같은 경제학자도 있다. 그는 한계효용이론, 일물일가의 법칙 등을 완성한 석학으로서 논리학, 통계학에도 탁월했다. 그래서인지 태양 흑점설은 나름 논거가 탄탄했다. 흑점의 수와 크기가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농업생산량을 비롯한 인류의 생산력에 변화를 가져와 경기변동이 일어난다는 학설이었다. 이후 흑점이 기후나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거나 없다고 밝혀지면서 태양 흑점설은 결국 폐기되었다. 흑점과 경기의 각 주기가 엇비슷하다는 우연을 필연으로 해석하면서 야기된 황당한 오류이다. 두 가지 사건의 발생빈도가 동시에 증감할 때, 우리는 그 둘을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해석하는 잘못을 자주 범한다. 먼저, 허구적 연관성에 유의해야 한다. 증감하는 수치나 패턴만 비슷하지 실제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경우다. 통계상으로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영화에 많이 출연하는 해에는 수영장에서 익사한 사망자가 유의하게 증가한다. 익사자 수를 줄이고자 니콜라스 케이지의 영화출연을 막는 일은 얼토당토않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는데 까마귀 잡자는 격이다. 둘째, 제3의 영향요인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1960년대 미국에서 탄산음료를 학교에서 판매금지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탄산음료 판매량이 늘수록 소아마비 발생률이 증가하는 월별 통계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탄산음료와 소아마비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다만 기온이 올라가면 탄산음료도 많이 팔리지만, 소아마비 바이러스의 활동도 왕성해진다. 기온이 제3의 영향요인으로서, 탄산음료 판매와 소아마비 발병에 영향을 준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교회가 늘어난 만큼 범죄자 수도 유사한 패턴으로 증가한다. 인구증가라는 제3의 영향요인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과관계의 역방향을 점검해야 한다. 학업성과에 자신감이 중요하다며 아이들 기를 죽이는 언행을 부모가 삼가도록 강권하던 시절이 있었다. 실제로는 자신감이 성적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적이 우수할 때 자신감이 높아진다. 더불어 자신감이 아무리 높아도 성실성이 낮은 학생은 좋은 성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밝혀졌다. 세 가지 이슈를 뒤섞어 인과관계가 악의적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곤궁했던 IMF 외환위기를 탈출하며 750을 오가던 종합주가지수는 지금 2천을 넘어섰다. 그동안 보수세력의 입에서 경제위기를 내려놓은 적이 없다. 소득주도성장에 날을 세우고 경제망국론으로 대응했던 작년에도 20대 기업은 128조 원의 영업이익을 거둬들였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한국경제가 몰락한다는 논평은 베낀 듯 천편일률인데, 새해에 최저임금이 작년 대비 44% 인상되는 주가 20개에 이른다는 미국발 소식에는 함구하고 있다.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다면 허술한 위기론, 어쭙잖은 망국론은 멈춰야 한다. 경제에 실제 영향이 없음에도, 사람들이 영향이 있다고 믿으면 실제 효과로 이어지는 현상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태양 흑점설에 비유, 이를 태양 흑점 효과라 칭하고 경계한다. 이제 애꿎은 삼족오 사냥은 걷어치우자.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김정은의 신년사와 한라에서 백두까지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던 2017년을 넘어 2018년 평화의 평창올림픽, 남북한 그리고 북미 간의 비핵화를 둘러싼 평화회담은 지난해 대한민국을 달궜다. 1년이라는 기간에 이러한 변화를 이룬 적은 남북한 분단 후 처음 있던 일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 외치던 아이들과 이산가족들의 작은 목소리가 뭉쳐 한반도 전체에 울려 퍼지고 같이 손잡고 춤을 출 날을 기다리는 것은 남과 북을 포함한 모든 냉전의 피해를 본 세계 시민들의 소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을 포함한 자유주의 국가들과 동맹 및 협력을 유지하며 시장경제를 통해 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이끌어냈지만 북한은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많은 주민이 배고픔에 고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서 북핵문제는 한반도의 평화ㆍ발전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 주민 모두가 외부의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외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와 민족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북한 제3세대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경제개발에 중점을 두고 한반도의 평화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단에는 북한의 주민과 국가라는 차원과 한반도와 세계라는 구도도 동시에 고려해야 할 것이다. 즉, 동북아 평화와 발전의 기본으로는 핵이 없는 한반도를 만들어야 남북한이 공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국 주민의 생명과 행복이 중요한 만큼 한반도와 세계 시민들의 평화와 발전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다리던 2019년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가 2019년 1월 1일 9시에 한국 방송에도 동시에 방영됐다. 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전달되었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남북한 교류와 북미회담을 통해 핵 문제를 포함한 북한의 안보 및 체제보장 및 경제개발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 TV에 비친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은 숨겨진 군부위주 국가의 지도자가 천천히 세계와 연결되며 평범한 국가의 지도자로 변화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인과 세계가 의심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적 의도와 핵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미국과의 회담에서 어느 정도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면 한반도는 다시 2017년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점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한국 정부도 가능한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가시적 해결점을 찾으면서 국내경제, 한국과 세계라는 측면에서 여러 가지 현안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시기에 들어서고 있다. 한국 국민도 대북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의 입장과 미국의 입장을 어는 정도 신뢰하며 객관적인 시각으로 우리와 한반도 그리고 북한 및 미국을 볼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이루어진 남북한 그리고 북미 간 진행되던 북핵문제를 포함한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주민들도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를 받아들이며 같이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 및 발전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비추고 있다. 이를 뒤집어 얘기하면 북한이 자신들이 원하는 평화적 해결문제가 효과를 보이지 않으면 다시 과거와 같은 대립적 후퇴의 단계로 갈 수 있다고 일갈하고 있다. 우리 정부와 미국의 협력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 됐다. 한국, 미국, 북한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가시적 목표를 이루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서로 평화적 교류가 이루어져야 멀게만 느껴지는 한반도 통일의 희망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당분간 통일이 힘들어도 같이 손잡고 나가봐야 하는 것은 한민족이 세계시민으로 거듭나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발전에 공헌할 길이 아닌가 한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아베 내각은 공공사업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내년 문재인 정부의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은 올해보다 8천억 원이 늘어난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집권 이후 유지하고 있는 SOC 예산 감축 기조를 수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에 증액된 SOC 예산에 대해서 생활 SOC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생활 SOC는 토목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라고 설명을 했다고 한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기존의 토목 SOC는 나쁜 SOC이고, 생활 SOC는 좋은 SOC로 구분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SOC의 효과는 무엇인가. 또한 SOC의 역할은 무엇인가. 공공사업 등 SOC의 역할 등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논쟁이 존재하며, 이러한 유사한 논쟁은 일본에도 존재한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자민당은 경기부양을 위해 공공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이에 대해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일본의 민주당은 불필요한 공공사업을 축소해 사회보장 등 육아지원의 재원에 활용하자는 공약(이른바 콘크리트에서 사람으로)을 제시했고, 이러한 주장은 일본 국민의 많은 지지를 얻었고 일본의 민주당은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공공사업 등 SOC 사업의 필요성이 재인식됐다.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대지진, 재난 등에 따른 사회 인프라 붕괴를 회피하기 위한 공공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이는 국민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현재 아베 내각은 국토, 경제, 재해, 사고 등에 의해 치명적인 피해를 보지 않는 강인한 국토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국토강인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아베 내각은 국토강인화의 기본목표로서, 인명(人命) 보호, 국가 기능의 유지, 국민의 재산 및 공공시설의 피해 최소화, 신속한 복구부흥을 설정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아베 내각은 무분별한 공공사업의 확대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고자 하는 최악의 사태를 특정화, 중점화해, 핵심적인 시책을 마련하고 있다. 핵심적인 시책을 결정함에 있어서, 일본 정부는 저출산에 따른 국민 수요의 변화, 사회자본의 노후화 등을 고려하고, 이와 동시에 일본의 재정위기적 상황을 고려해 시책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고 있다. 핵심 시책은 국가 역할의 중요성, 영향의 크기와 긴급성 등을 고려해, 최대한 피해야 하는 최악의 사태 중에서 15개의 중점화 시책이 결정됐다. 예를 들면 대도시 건물, 교통시설 등의 대규모 붕괴 또는 주택밀집지의 화재에 의한 사상자의 발생, 쓰나미에 의한 대규모 사상자 발생 등을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최악의 사태로 규정하고 있다. 즉 아베 내각은 공공사업을 단순히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수단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재난, 재해가 발생할 경우, 국민의 생활,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최악의 사태를 회피하기 위한 중요정책 수단 중의 하나로 보고 있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지진 등 재난, 재해가 별로 없는 지역으로 간주해 왔으며, 상대적으로 재난, 재해예방에 대한 투자를 충분히 해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수관 파열사고, KT 건물화재 등 SOC 사고가 계속되고 있으며, 또한 한국이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증대하고 있다. 즉 향후 공공사업 등 SOC의 필요성을 판단할 때, 경기부양에 따른 효과, 예산의 지속가능성 등의 고려뿐만 아니라, 재난, 재해에 따른 사회 인프라 붕괴의 사전방지 효과 극대화를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중국 문화예술의 힘

2006년 광주비엔날레의 대상 공동수상작 중 하나는 중국 쑹둥의 버릴 것 없는이었다. 어머니가 버리지 않고 쌓아둔 물건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이다. 국민당을 지지하던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하게 자라던 쑹둥의 어머니는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몰락한 집안에서 힘겹게 삶을 지탱했고, 대약진운동문화혁명을 거치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가난을 견디면서 시작된 수집벽은 남편의 사망을 계기로 강박증으로 악화해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첩첩이 쌓아두는 지경에 이른다. 이런 어머니에게 작가는 당신의 모든 물건들을 미술관에 값지게 보관해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물건들을 종류별로 정리해서 늘어놓은 설치물이 바로 이 작품이다. 작품에는 수십 년 간의 파란만장한 중국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거기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근현대사를 만났다. 그래서 가장 개인적인 전시이자 가장 보편적인 전시라는 찬사를 받으며 전 세계 순회 전시를 할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중국 예술의 힘은 중국의 역사와 전통 그 자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베이징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된 798예술구에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그곳은 신중국이 건설되면서 군수물자를 만들던 냉전의 상징과 같은 공간이었다. 798이라는 이름도 군수를 생산하던 공장의 비밀스런 번호이다. 이 공간을 철거하는 대신 예술가의 창작과 전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키니, 오히려 냉전의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매우 독특한 공간으로 재탄생 되었다. 상하이의 모간산루 50호도 유사한 사례이다. 상하이 외곽의 허름한 강촌 마을이었던 이곳은 상하이가 중요 무역항이 되면서 방직공장단지가 되어 발전한 곳이다. 이후 단순제조업이 쇠퇴하면서 퇴락한 마을이 되어갔다. 상하이 시가 완전히 폐쇄하려고 했던 지역을 살린 건 역시 예술이었다. 이 공간을 창작과 전시 공간으로 변모시키자 상하이가 자랑하는 예술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방직공장의 외형은 중국이 겪은 근대화의 과정을 증언하면서, 거기서 활약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과 어우러져 시대를 아우르는 창조성을 보여준다. 사실 중국은 자체의 역사와 전통을 현대 예술의 보고로 인정해온 지 오래다. 작년 중국 경매시장에서 1억 위안 이상의 가격으로 팔린 미술 작품 중 대부분이 국화(國畵), 즉 전통 방식의 작품들이었다. 피카소의 그림 가격을 능가하고 있는 치바이스, 경매 총액에서 서양 화가들을 앞서는 장다첸 등이 모두 국화 작가들이다. 두 작가의 특징은 중국의 전통을 지키면서 현대적 화풍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장다첸의 경우 청대의 작품부터 북송시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남종화와 북종화를 가리지 않고 모사하며 수련했다. 특히 개발이 거의 안 되어 사람 살 만한 곳이 못 되었던 돈황에서 2년에 걸쳐 벽화를 모사해낸 일은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수없이 많은 중국 화파(畵派)가 지닌 특성과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거기에 서양에서의 생활이 더해지면서 세계 예술 속에서 중국 전통화를 재정립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자기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예술 풍토야말로 중국 문화의 힘 중 하나이다. 우리가 문화산업에서 중국을 앞선다고 하고 한류를 자랑하고 있지만, 문화예술 분야에서 중국만큼 자기 역사를 긍정하고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지 자신하기 어렵다. 앞으로 중국은 세계적 문화 강국이 될 것이다. 그 힘은 단순히 시장의 규모나 정부 정책 덕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역사와 전통에서 길어올리는 저력 때문일 것이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자유를 훼손하는 자유경쟁

어제까지 서로 경쟁하던 재벌 총수들이 의기투합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에게 반하는 진보당 후보를 저지하려는 꿍꿍이속이다. 이 청년 후보는 빈부격차를 줄일 뿐 아니라 유전무죄의 불공정성을 타파하고 독점을 규제해야 한다며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맨손으로 일궈 놓은 거대제국이 자칫 하루아침에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독점금지법이 제정된 지 오래지만 사법부 판사들이 기업에 우호적이라 한 번도 처벌된 적은 없었다. 우선 보수당에서 재벌 입장을 적극 대변해 줄 인물을 물색해 대선주자로 만들었다. 선거자금을 각출했는데 진보당 후보에 15배는 족히 될 두둑한 금액을 후원했다. 그래도 미덥지 않아, 언론을 되는대로 매수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데 직접 나섰다. 직원들에게, 규제강화로 회사가 문 닫으면 모두 실업자 신세가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정ㆍ경ㆍ언 유착을 다룬 한편의 한국 드라마 같지만 미국 실화다. 1896년 대선에서 석유왕 록펠러, 금융왕 모건, 철강왕 카네기도 이 모사에 가담했다. 석유, 전기, 기차, 철강을 중심으로 전 산업이 급속히 성장했지만, 산업발전의 결실은 소수 부자에게만 집중되었고 빈부격차가 극심해 서민경제는 파탄지경이었다. 36세의 탁월한 언변가였던 민주당의 브라이언이 이런 사회병폐를 부각시켜 민중을 결집시켰다. 그는 총 29만㎞를 달려, 무려 600번의 미대륙 순회연설을 통해 청중을 사로잡았다. 은(銀) 화폐 사용을 공약하며 황금십자가에 인류를 못 박지 마라는 명언으로 빚에 쪼들려 살아가던 서민을 매료시켰다. 금본위제에서 부를 축적해 온 금융자본가에게도 브라이언은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브라이언은 석패했다. 대기업과 은행을 등에 업고 공화당의 맥킨리가 25대 대통령이 된다. 규제는 완화되고 독점재벌은 날개를 달았다. 출혈경쟁으로 경쟁자를 내몰아 파산시키거나 흡수해 더욱 몸집을 불리는 독점이 자행되었다. 주요 산업의 80%가 300여 개의 독점기업에 의해 장악되었다.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공화당 내에서 반기업적 소신이 뚜렷했던 루즈벨트를 유명무실한 부통령에 앉혀 무력화시켰던, 나름 꼼꼼한 계략이 패착이었다. 분노에 찬 퇴출노동자가 쏜 총탄에 맥킨리가 사망하자, 루즈벨트가 대통령직을 승계한 것이다. 루즈벨트 정부는 묻혀 있던 반독점법을 부활시켜 북부증권회사, US스틸을 해체하고 연이어 40여 개의 독점기업을 제소한다. 루즈벨트는 독점기업 사냥꾼(trust buster)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건전한 경제구조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독점기업의 과도한 시장지배력을 견제하자, 중소기업과 창업자에게 기회가 열리고 활력과 혁신이 움텄다. 빈부격차 완화로 형성된 강건한 중산층은 역동적인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100년 전 산업화 초기에 겪었던 미국의 성장통에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당시 록펠러의 인식을 아직도 뇌까리는 인사들을 보면 개탄스럽다. 스탠더드오일이 34개 회사로 분리될 때, 그는 독점도 사업역량이라고 항변하며 규제 없는 자유경쟁을 요구했다. 자유의 상반된 개념이 구속이었던 천박한 독재 시절은 지났다. 자유가 평등과 상충하는 선진국 문턱에 있음을 자부하자. 자본주의에서 자유는 언제나 부유층에 힘을 실어 빈익빈 부익부를 야기하고 기회균등, 나아가 타인의 자유까지 훼손했다. 압축성장으로 간과되었던 공정경쟁에 주목할 때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싶다면, 100년 전 미국처럼 지금 묻혀 있는 법이라도 올곧게 집행하라.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김정은 답방

지난해 7월 베를린 선언 구상에서 올해 평창올림픽을 시발점으로 지금까지 이어지는 남북한 및 북미관계에서의 변화는 참으로 대단하다. 그러나 올해 안 목표였던 한반도 종전선언과 김정은 답방 및 남북철도 착공 등의 목표는 아직 그 최종 결과를 알 수 없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제재 완화의 관문이 될 북미정상회담은 내년 1월 이후 예정이지만 그 진행상황을 미리 판가름하기는 쉽지 않다. 미국과 북한의 조율 및 협상이 한반도 평화와 발전에 어느 정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지는 알 수 없다. 요즘 세계경제의 침체와 한국경제의 좋지 않은 상황은 황사와 미세먼지처럼 우리 국민의 생활을 편치 못하게 하고 있다. 사회 여러 곳에서 나오는 소리와 반응이 우리의 연말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정치 현상이나 한반도 평화분위기가 바로 우리 국민의 경제적 숨통을 트이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현실에서 국민에게 희망이나 기대를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것이 있다면 한국의 연말연시는 그리 춥지만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한국 경제와 사회문제를 모두 한미동맹을 통한 한국의 안보 확보와 북핵문제의 해결로만 연결할 수는 없다. 동북아 국제관계를 대립과 협력이라는 이분법으로만 생각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안보나 경제라는 이분법적 구분보다는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라는 주제 아래 미국을 포함한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실용 외교도 중요하다고 본다. 안보와 경제 발전을 종합한 청사진을 갖고 국내 문제도 해결해야만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한반도를 위시한 전 세계에 의미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외화내빈의 모습을 벗어나려면 손님을 맞이할 우리나라 사회에 희망과 역동하는 모습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국민이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꾸준한 추진과 북한 지도자가 진정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답방을 환영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가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을 언제 답방할 것인지는 그 시간이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한국의 안보와 경제상황을 모두 바꾸어 줄 수도 없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에는 도움을 줄 현상이 될 수는 있으나, 국제관계에서 손실과 국내정치에서의 향방은 예측하기 어렵다.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북미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북미 간 회담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동시에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회의 동력 확보를 통해 국민에게 현실적 희망을 선물해야 할 것이다. G20 정상회담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회담의 골자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전까지 지금의 경제제재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대목이다. 이는 남북 간 각종 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는 한 북한 경제제재를 풀어주지 않는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원칙을 말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미중정상회담에서 양국은 대북문제에서 공조를 이루겠다고 한다. 이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김정은의 답방 그리고 북미회담도 한미동맹의 공조하는 틀에서 주변국의 상황도 엿보며 가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한다. 정부가 대외관계를 잘하기 위해 우선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고 마음에 기쁨을 줄 수 있는 정책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행하는 일과 같이 중요한 일이다. 올겨울은 조금 더 따듯한 대한민국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닛산 곤 회장의 체포 배경은

지난 19일 일본의 도쿄지검 특수부는 카를로스 곤 닛산자동차 회장(프랑스의 르노자동차 회장 겸무)을 금융상품거래법 위반(유가증권보고서의 허위기재) 혐의로 체포했다. 곤 회장은 2011년 3월기부터 2015년 3월기까지(5년분)의 임원 보수 약 100억 엔(약 1천억 원) 중에서 유가증권보고서에는 약 절반 정도(약 50억 엔)로 보수를 축소해 허위기재한 용의를 받고 있다. 한편, 유가증권보고서의 허위 기재에 대한 책임이 곤 회장 개인에게만 있다고 보기 어렵다. 일본에서는 곤 회장의 체포와 관련해, 도쿄지검특수부와 닛산 집행임원들 간에 수사에 협조하는 대신에 형사처분을 경감하는 합의(이른바 사법 거래)를 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아직 닛산자동차가 법인으로서의 책임을 추궁당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번 곤 회장의 체포 직후인 11월 22일 닛산자동차는 임시이사회를 개최해, 체포된 곤 회장의 회장직을 해임하고, 대표권도 회수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번 곤 회장의 체포와 그 이후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르노자동차와 닛산자동차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거품경제의 붕괴 이후 경영위기에 직면했던 닛산은 르노와 자본 제휴 등을 통해 르노-닛산 동맹을 체결했다. 명목상 양자 관계는 동맹이다. 다만 르노는 닛산의 43.4%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으며, 닛산자동차는 르노자동차의 주식을 15% 보유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양자는 주식을 상호보유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르노가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닛산이 가진 르노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즉 닛산은 실질적으로 르노 지배하에 있는 기업이다. 그러나 닛산은 자동차 판매 대수나 수익 면에서 르노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배당을 통해 르노의 이익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르노의 15%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통해, 르노 자동차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닛산-르노 자동차의 연합은 국경을 넘는 자동차 회사 간의 성공적인 기업연합 모델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는데, 사실 그 이면에는 양자 간에 적지 않은 갈등 요인이 존재한다. 르노의 대주주인 프랑스 정부는 닛산에 대한 지배력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곤 회장은 르노와 닛산의 합병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 닛산 내부에서는 닛산자동차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이번 곤 회장의 체포로 인해, 기존 르노-닛산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이번 곤 회장의 체포에 대해 프랑스와 일본의 양국 정부는 닛산과 르노 연합의 협력관계 유지를 양국 정부는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이미 르노와 닛산은 부품의 공통화를 상당 부분 추진했다. 이러한 점에 주목한다면, 적어도 단기적으로 르노-닛산 동맹이 완전히 해소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러나 닛산과 르노 간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해 닛산 내부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 아래에서 일본의 경제산업성(산업정책을 관할하는 중앙정부조직) 등 일본 정부 내에서 일본 자동차 회사를 지키자는 논리가 고조되면 일본 정부가 닛산의 독립성 강화를 도모할 가능성도 있다. 향후에 국경을 넘은 다양한 형태의 기업 간 제휴 등이 증가할수록 국가 간의 협력관계가 증진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할 수 있지만, 자국우선주의로 인해 기업 간 갈등이 국가 간 갈등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점차 기업에는 국적이 없다는 시각이 확산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업의 국적은 국가 간 마찰을 가져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중국의 미래, 빅데이터

바야흐로 빅데이터의 시대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인터넷의 공간으로 몰려들면서 엄청난 데이터가 쌓인다.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열광하게 되는지 점점 더 잘 알게 되어간다. 택시를 많이 부르는 지점을 따라 심야버스 노선을 짜고, 한 지역에서 많이 주문되는 상품을 미리 보내 배송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일상의 변화들이 다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다. 우에다 모치오가 말한 대로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신의 시점에서 세계를 이해하게 되어 간다. 빅데이터로 일상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중국과 같이 넓고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회, 정치, 경제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중국의 거대기업 알리바바를 만든 마윈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빅데이터 기술이 중국 계획경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고 주장했다. 2030년 세계는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놓고 대논쟁을 다시 벌이게 될 것이다. 꼬박 100년 전엔 미국이 주장한 시장경제가 이기고 러시아가 졌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2030년엔 계획경제가 더 우월한 시스템이 될 것이다. 사실 빅데이터 기술 자체가 중국 친연적이다. 엄청난 인구, 특히 7억 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사용자가 낳는 중국의 데이터는 그 자체가 빅데이터다. 넒은 영토로 인해 지역, 기후, 종족, 생산기반 등 표본의 다양성이 커 빅데이터의 질도 높다. 인터넷 보급률이 높아질수록 중국은 그야말로 신의 시점에서 중국 사회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중국 중앙 및 지방 정부에서도 빅데이터 활용을 위한 여러 정책을 만들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민간 사업자들과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빅데이터 응용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구이저우, 산동, 충칭, 푸젠, 광둥, 저장, 지린, 광시장족자치구 등 여러 지역에서 아예 빅데이터 관리국을 신설해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대체로 경제 부문을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고 있지만, 경제발전뿐 아니라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베이징에서 스모그 등 환경문제를 위해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중국은 빅데이터 기술을 통해 더욱 부자가 되고, 생활이나 사회문제의 해결에도 큰 진전이 있을 것이다. 선진국의 보수 언론에서는 중국의 데이터 기술이 감시, 탄압의 도구로 활용되고 권력 강화에 악용될 것을 걱정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런 흐름을 디지털 레닌주의라 규정하기도 했다. 중국 인권에 대한 미국의 시각은 지나치지만, 기술의 위협에 대한 경고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인간은 생각보다 환경에 의존적이어서, 환경의 변화를 통해 사람의 행동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하다. 빅데이터 기술은 사람을 분석해서 그들을 쉽게 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된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비단 중국에만 일어날까. 미국의 경우 정부보다는 거대 플랫폼 기업의 빅데이터 전용 문제에 직면해 있다. 심리학까지 동원해서 대중들을 과소비로 이끄는 문제가, 정부가 특정 이념으로 유도하는 문제보다 덜 심각하다고 볼 수 없다. 결국 관건은 자본이건 권력이건 기술을 바른 목적을 위해 쓰느냐에 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빅데이터 기술 발전의 최적지인 중국에서 빅데이터가 인간을 위해 훌륭히 복무하는 사례가 만들어지길 바란다. 중국의 미래는 빅데이터에 달렸고, 밝거나 어두울 그 미래는 인류 전체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성과 없는 성과주의

저런 멍청한 놈이 어떻게 검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하 평검사를 두고 푸념하던 어느 부장검사의 말이었다. 경영자문을 해주던 창원에 있는 어느 기업에서 경영진과 식사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가 짐짓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어느 조직이나 저성과자 문제가 있다는 차원에서 별생각 없이 들려준 말이었는데, 인사담당 임원이 너무 염치가 없다며 열변을 토했다. 대한민국 검사 정도면 지적 능력이 최상위 수준일 텐데 육성은 못 해 줄망정 비난하는 건 누워서 침 뱉기라는 게다. 일반기업은 그보다 못한 친구들을 데려다 교육하고 인재로 양성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관리자로서 본분을 망각한 배부른 소리라는 항변이었다. 저성장 경제국면에 고착되면서 우리 사회가 성과에 유독 민감해졌다. 비용이나 생산성을 보다 진중하게 다루면서 성과와 관련된 오류도 적잖이 불거지고 있다. 우선, 대부분 기업의 성과평가는 비과학적 분포를 가정한다. 예를 들어, 고성과자 S등급은 10%, A부터 C등급은 각각 20%, 40%, 20%, 저성과자 D등급은 10%로 각각 강제할당하는 식이다. 그러나 신뢰성공학에서 일찍이 밝혀낸 성과분포의 전형은 파레토 분포라고 불리는, 완만한 L자 모양을 띤다. 소수 직원이 특출한 고성과를 달성하는 반면, 대다수 직원의 성과는 도긴개긴이다. 많아야 1, 2%인 슈퍼스타 외에는 성과수준이 비슷해 등급으로 구분 짓는 일이 무의미하다는 뜻이다. 성과평가의 객관성ㆍ정확성에 대한 원론적인 의심을 차치하더라도, 대부분 스스로 등급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설상가상 직원이 실제 창출한 성과와 어긋나 버린 평가등급을 기준으로 급여인상, 성과급, 승진 등의 보상이 차등적용되는 경우다. 성과 있는 곳에 보상 있다고 역설하는 성과주의는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의 성과보상제도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성과 없는 곳에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게다가 건전한 경쟁의식을 조직 내에 조성하려던 성과주의는 위화감 조성, 사기 저하, 협력 저해, 불신을 가져왔다. 친구가 다른 회사에서 1천만 원 더 받는 것은 용납해도, 같은 회사에 다니는 동료가 1만 원 더 받는 것에는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 인간이다. 하물며 상대평가등급에 따라 하위직원들을 기계적으로 퇴출하는 랭크앤양크(rank and yank)를 지향하는 기업이 아직도 늘고 있다니 개탄할 일이다. 해고의 두려움은 직원들이 달성하기 쉬운 일에만 치중하게 만들어 도전적인 시도, 창의성을 가로막는다. 무엇보다 일이란 자존감이어야 하는데, 처벌은 일을 생존에 얽매인 자존심으로 쭈그러뜨린다. 이를 주도했던 GE뿐만 아니라 어도비, 마이크로소프트, 골드만삭스, 갭, 액센츄어 등 강제할당식 상대평가를 폐지하는 기업은 이미 늘고 있다. 소통과 협력의 가치를 절대평가에서 모색하고, 평가로부터 보상을 분리하여 역량개발의 피드백으로만 활용한다. 돌이켜, 성과를 의미하는 영어는 퍼포먼스(performance)다. 공연, 연극, 연주라는 뜻도 있어 배운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래서 학습 및 성장의 관점에서 수행으로도 번역된다.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위, 계획을 실천하는 과정이 강조된 개념이다. 이에 비해 성과는 수행의 결과, 업적을 강조하는 관리 및 통제의 관점이다. 평가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평가의 목적은 퍼포먼스, 즉 수행개선과 성과제고이다. 성과통제에만 경도되어 수행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 행정편의에 빠져 평가와 보상을 어쭙잖게 얽고 있는지, 그로 인해 오히려 수행이 훼멸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美中 무역마찰과 동북아 국제관계

미중 무역전쟁이 상대국 상품에 대한 관세부과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한반도 남북한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보다 전 세계의 정치경제에 영향을 미친 것이 미중 무역전쟁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미중 무역마찰과 그 정책의 대립은 한반도 남북한 문제에서도 나타나는데, 한때 한반도 문제에서 강경한 태도를 취했던 중국이 일단 뒤로 물러서는 모습으로 드러나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강대국이 국가이익과 국가안보전략을 한반도 지역정치 이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결과가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남북한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이다. 북중 관계를 보면 양국은 국가 건국 전인 항일전쟁이나 사회주의 국가건설시기에도 협력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북한이 소련의 신탁통치를 받아 중국과의 관계와는 단절된 시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당시 소련 주도의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중국과 북한은 모두 소련의 지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서로 유대관계를 가진 것이다.한국은 해방 후부터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공고해졌다. 2차 세계대전의 태평양전쟁에서 미국과 소련 그리고 중국의 협력이 일본을 패전으로 몰아넣었고 냉전시기 미일 관계는 동맹의 관계로 변화됐다.한국은 승전국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으며 미국과의 굳건한 안보협력관계를 이루어오다가 공산세력의 침공인 한국전쟁부터 국가의 안보와 재건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적 관계에서 동북아는 현재 러시아, 중국, 북한 그리고 한국, 미국, 일본의 대립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새 정부 들어 비핵화 및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 두드러지지만, 동북아 국제정세에서 강대국들의 안보, 경제 이익과 관련된 대립은 종식되지 않고 있다. 모든 전쟁의 원인 중 하나인 경제적 마찰과 대립은 결국 안보동맹이나 협력체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데, 미중이라는 강대국들의 경제적 마찰은 결국 동북아 국제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아직도 점입가경인 상태인데, 이는 어느 정도 절충을 위한 마지막 힘겨루기로 볼 수도 있다. 중국의 부상은 세계 패권강국 미국의 위협이 되는 측면에서 동아시아에서 나타나는 미중간의 갈등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경제가 꾸준히 성장해 나간다는 것과 중국이 군사력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미중갈등의 주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 중에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중국의 경제적 공세가 미국 경제와 영향력을 약화시킨다는 우려에 따른 결정이었다고 본다. 중국의 동아시아에서 영향력 강화는 기존 동아시아 체제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미국은 자국경제를 강화시키며 중국 경제성장을 억지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미중을 포함한 강대국들의 대립에 동북아 국제관계도 요동치는 것이다. 여기에 북핵문제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대외전략은 항상 수면 위와 아래에서 꾸준하게 진행되며 대립과 협력의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이 중간선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북미회담 일정을 발표하며 미중 정상 간 통화를 하며 이달 말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미중 양국 정상 회동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에 미중 경제 갈등이 어느 정도 봉합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기는 하지만, 미중 간 경제마찰의 모순의 해결방향을 찾았다고 볼 수 있지만 미중간의 안보 및 국가이익을 중심으로 한 대립이 끝났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 동아시아의 역사에서처럼 동아시아 지역이 강대국들의 이익에 의해 좌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반도의 남북한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적절한 대응도 필요할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남은 3년간 아베 수상이 하고 싶은 것은

올해 9월 아베 수상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경쟁자인 이시바 전 자민당 간사장을 물리치고 자민당 총재로서 연속 3선에 성공했다. 자민당 규칙에서는 당 총재임기를 ‘연속 3기 9년’까지로 규정하고 있어 아베 수상의 최대 재임기간은 2021년 9월까지이다. 내년 11월20일에 아베 수상의 재임기간은 기존 가쓰라 다로 수상(2천886일)의 최장수 재임기록을 누르고 일본 헌정사상 최장 재임 수상이 된다. 일본 내에서는 점차 아베 수상의 레임덕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다와라 소이치는 AERA에서 “아베 수상의 레임덕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다만 아베 수상의 레임덕이 시작된다고 해도, 이는 한국에서 대통령 임기 후반 관찰되는 레임덕과는 조금 다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본에서는 통상 내각 지지율이 30%보다 낮아지면 내각 자체를 유지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 즉 아베 수상이 30% 이상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다면 수상의 리더십이 극단적으로 약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또한 차기 수상 역시 여전히 자민당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3년간 아베 수상이 어떠한 정책을 추진할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시각이 존재하지만, 이를 짐작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은 이달 24일 국회에서 이루어진 아베 수상의 소신 표명 연설이다. 아베 수상은 동 연설 서두에서 “격동하는 세계를 한가운데에서 리드하는 일본을 만든다”고 설명하고 “다음 3년간 그 선두에 서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아베 수상 자신도 본인의 남은 임기 3년을 강하게 의식하고, 소신 표명 연설을 통해 본인의 역점 정책과제를 명시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판단된다. 아베 수상은 일본의 현행 헌법은 GHQ(연합군 최고사령부) 점령기에 GHQ의 강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므로, 이제는 일본인 스스로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고, 이번 연설에도 기존처럼 자민당의 헌법개정안의 국회 제출에 대한 의욕을 표명했다. 헌법 개정에 대해서는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이 소극적이며,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강렬하게 반대하고 있으며, 또한 개헌에 대한 일본 여론의 지지도 확고하지 않다. 아베 수상이 남은 임기 3년 안에 헌법 개정을 실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두 번째로 아베 수상은 외국인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위해서 입국관리법을 개정해 취로(就, 취업)를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체류자격 신설을 강조한 것이다. 일본은 ‘아베노믹스’(아베 수상이 추진하는 일본경제 활성화 정책) 등의 영향으로 노동력 부족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지난 7월 기준의 유효 구인배율(구직자 1명당 일자리 수)은 1.63배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수용에 소극적이었지만, 저출산ㆍ고령화가 진전되고, 호경기가 지속하는 가운데 기업 측의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에 대한 요청을 일본 정부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향후 아베 수상의 국정 장악력이 어느 정도는 약해질 것으로 예상하지만, 한국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여전히 아베 내각과는 협력관계는 중요하다. 특히 한국이 직면한 고용 현실을 고려한다면 한국 인재의 일본에서의 취업기회가 확대될 수 있도록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할 것이다. 다만 외국 인재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한국도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공맹의 꿈은 계속되는가

얼마 전 중국 산동여대 학생들과 식사를 같이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논어(論語)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논어가 인기 있는 책이라고 하니 반가워했다. 학생들은 고교 시절 열심히 논어를 배우고 암송했다고 한다. 내친김에 같이 논어 첫 머리를 낭송해보았다. 내가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하니, 학생들은 “시에얼스시즈 부이위에후”라고 했다. 한순간 지리와 시대의 거리가 사라지는 즐거움을 나누었다. 이처럼 오늘의 중국에서 유교 교육은 익숙한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교과 과정에 상당 부분 포함되었을 뿐 아니라, 유교경전을 익히는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산동의 성도(省都) 제남을 비롯해 공자의 흔적이 있는 곳에는 거대한 공자상들이 즐비하다. 불과 오십 년 전 곡부의 공자 사당을 부수며 질풍노도의 비공(非孔) 운동을 전개했던 나라가 맞나 싶다. 공묘(孔廟)를 부순 것도 중국공산당이지만, 유교를 다시 부활시키는 것도 그들이다. ‘중국몽(中國夢)’은 더 이상 다른 나라를 따라하거나 배울 필요 없이 스스로 최강의 나라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인데, 그러려면 자기 정체성의 정립이 필수적이다. 그들은 유교의 전통을 통해 스스로 국가 이념을 창출할 뿐 아니라 세계 질서를 선도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일찍이 철학자 리쩌허우는 유교의 전통이 인류문명에 중요한 공헌을 할 것이고 그 시기는 빠르면 21세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들은 유교의 공동체주의와 사회주의 가치관을 조화시켜 중국만의 정치 가치를 재구축하려고 한다. 그래서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 창당 이래 처음 공자묘를 참배하고 공자연구원에서 연설했다. 핵심공산당원을 교육하는 중앙당교에서는 유교의 원리와 통치를 연결하게 하는 강의가 이어지고 있다. 나아가 현재 중국 통치체계의 근원을 유교 시대 관료제에 연결하기도 한다. 유교 엘리트들이 과거를 통해 관계에 진출해 천하를 다스린 것처럼, 중국공산당도 잘 훈련된 엘리트들이 중심이 되어 안정적 통치체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은 엘리트 관료체제에 훨씬 가깝다. 중국공산당의 핵심인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 중 석사 이상이 72%를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 문치(文治)가 강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중앙위원은 문과계열이 80%를 차지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중국은 고래의 중앙집중적 관료체제 국가가 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통치 차원의 필요가 있고 국가 이념의 가치로 요청된다 해도, 유교 자체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면 어떤 정치적 시도도 무위로 끝나고 말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공자의 어짊(仁)이나 맹자의 의로움(義)을 말할 때 여전히 감동한다. 공맹의 어록에는 먼 옛날 농경 사회의 따뜻한 전통이 간직되어 있고,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삶의 아름다움이 공맹의 유가 사상 안에 있는 한, 사회 구성의 원리로 공맹이 소환되는 일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그것은 중국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중국이든 우리든 부디 공맹의 진짜 가르침에 주목하길 바란다. 공맹의 꿈이 그저 국가 강성의 도구로 쓰이지 않고, 어짊과 의로움으로 구성되고 유지되는 대동(大同) 사회 그 자체에 대한 비전과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 중국 학생들과 같이 읊조린 또 다른 논어의 구절,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예를 행한들 무엇하며, 곡을 연주한들 무엇하리”에서 말한 것처럼.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전류전쟁과 주주자본주의

지난 6월 제너럴 일렉트릭(GE)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의 구성 종목에서 퇴출당했다. 일명 다우지수로도 불리는데 S&P500지수, 나스닥 종합주가지수와 함께 미국 증권시장의 동향을 가늠하는 주요 잣대 중 하나다. 다우지수는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가장 우량한 30개 상장사의 주가로 산출된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나이키, 코카콜라, 맥도날드 등 미국을 대표하는 쟁쟁한 기업들이 포함됐다. 지금까지 다우지수에 들었던 기업들이 그 영예를 누렸던 평균 기간은 29년 11개월에 불과하다. 중간에 잠시 탈락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GE는 다우지수가 출범했던 1896년부터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더욱이 1907년 이후로는 줄곧 다우지수를 지켜온 명실 공히 최장수 초우량기업이다. GE는 사업 초기에 석권한 전구 및 가전제품 시장을 토대로, 세계대전을 거치며 항공, 무기 및 방위산업으로 사업부문을 무려 7배 확장하는 기회를 잡았다. 2000년 전후로 ‘세계 1위 아니면 2위’의 기치 아래 과감한 매각과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려 복합기업으로 변신했다. 전 세계가 GE의 변화와 혁신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 행보는 ‘경영의 교과서’로 불렸다. 흔히 GE는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기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에디슨이 배제되면서 지금의 GE가 탄생한다. 당시는 전기산업의 표준을 두고 교류와 직류가 맞붙은 ‘전류전쟁’이 한창이었다. 직류 진영은 왕(!)들의 연합이었다. 금융왕 JP모건의 자본이 발명왕 에디슨을 지원했다. 경쟁자는 교류를 개발한 풍운의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였다. 에디슨은 개, 말, 코끼리를 교류로 감전시켜 죽이는 공개실험을 펼쳤다. 급기야 사형집행용 전기의자를 개발하는 데도 교류를 적용했다. 교류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비열한 비방마케팅을 벌인 것이다. 모건은 더욱 악랄했다. 주식시장에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막강한 자금력으로 테슬라를 압박해 결국 교류 특허권을 포기하게 한다. 갖은 흉계에도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의 전기시설에 교류가 채택되면서 전류전쟁은 일단락된다. 장거리 송전에도 전력 손실이 적은 교류의 경제성이 인정받은 결과였다. 그러나 특허권을 포기한 테슬라에게 돌아온 경제적 이득은 없었다. 패배한 에디슨은 과학기술자로서 자존심을 구겼고, 부실한 전기의자로 사람을 태워 죽였다는 오점까지 남겼다. 최후의 승자는 모건이다. 모건은 파산위기에 처한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을, 교류기술을 보유한 ‘톰슨-휴스턴 일렉트릭’을 합병해 회생시킨다. 이 과정에 에디슨을 회사에서 내쫓고, 회사 간판에서도 에디슨 이름을 지워 ‘제너럴 일렉트릭’만 남겼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GE는 창업기술자의 기업가정신보다 자본을 투자한 금융의 권력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 ‘안 하는 일이 없다’는 거대 복합기업의 위용 뒤에는, 주주의 입맛에 맞춘 ‘돈 되는 일은 다 한다’는 유전자가 도도히 작동하고 있었다. 사뭇, 주가부양과 배당을 목적 삼아 단기실적에 경도되었던 셈이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전략으로 잘못 생각했었다. 주주가치는 성심껏 일한 노력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다”라는 회한은 이를 반증한다. 1981년부터 20년간 GE를 이끌었던 잭 웰치의 말이다. 그는 ‘경영의 신’이자 GE 주가를 40배로 끌어올린 ‘주주가치운동의 아버지’였다. 작금은 주주뿐 아니라 고객, 조직구성원, 협력사를 아우르는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높일 새로운 철학이 절실한 때다. GE는 이번 달에 순혈주의 전통을 깨고 외부인사인 로렌스 컬프를 회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그가 새로운 가치와 돌파구를 제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북핵문제와 동북아 국제관계속 국가이익의 경영

동북아 국제관계의 변화가 북핵문제로부터 야기됐다는 것은 일반론이다. 즉, 북한의 핵개발과 도발이 한반도와 국제사회를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이에 한미동맹을 기초로 한 한국의 대북 억제력이 강화되고, 국제사회도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 나갔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다. 이러한 한반도 문제를 동북아 국제관계의 질서에 편입해 본다면 북의 도발과 한미동맹의 강화는 동북아국제사회의 국제관계를 한미일과 북중러의 대립관계로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미중간의 대립이 이 동북아 국제관계의 주요변수로 보이는 것도 맞는 내용일 것이고, 여기에 국제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럽, 러시아, 일본을 포함한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자국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상관 국가들의 이익이 복잡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과거 중소 냉전구도가 변형된 형태의 강대국과 국가 간 국가이익이라는 문제로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여기에 핵 문제를 포함한 안보이익이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국제사회는 국가들의 경제이익과 국내외적 안보가 동맹구조라는 틀에서 서로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핵심이익은 경제와 안보가 결합한 국가이익이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존재와 발전에는 국가이익이라는 국가경영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아시아, 유럽 등지에서 대립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미국이 중국을 태평양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것이나 무역분쟁을 벌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은 핵무기를 활용한 안보이익을 통해 국가경영에서 경제이익을 도모하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고, 동북아 국제관계의 대립과 협력이라는 구조를 적절히 활용하며 자신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에 한국도 국가이익이라는 문제를 지정학적 측면과 동맹과 협력국가와의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며 움직여야 한다. 한국의 북핵문제와 한반도와 동북아국제관계에서의 역할론이 부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관계의 복잡함 속에서 현재 세계는 경제상황의 악화라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의 미국을 제외하고 고용지수가 향상되고 경제적 발전을 이룬 지역은 많지 않다. 과거 기적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뤄왔던 중국도 국내외 경제 환경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제 환경도 그리 녹녹한 상황은 아니다. 남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우리 정부가 그리 쉬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은 아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한국의 입지를 굳히면서 평화와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현 정부의 부담도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면 경제지표와 이론적 해결방안보다는 더 실제적인 시장 밀착한 경제정책으로 국민경제를 향상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 북미회담이 다시 순풍을 타고 있다. 북한은 핵개발과 도발에 대한 처분으로 경제적 제재를 받는 상태다. 이 제재가 시작될 때 북한이 경제적 문제로 얼마 버티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내성이 생긴 북한은 자체 장마당 경제를 활용해 과거보다는 그리 더 어렵지 않은 경제상황을 유지하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고, 그 안에는 안보이익과 경제이익이라는 두 개의 목적이 있다. 우리 정부도 북핵 문제 해결과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지분을 찾는 데 있어 안보이익과 경제이익을 동시에 고려해야 할 시기일 것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려는 이유도 경제이익이라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우리도 안보이익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국가경영의 기본이 되는 경제이익과 국민경제를 절대 소홀히 하면 안 될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일본의 초식남 현상

‘초식남(草食男)’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본래 초식남이라는 용어는 일본에서 건너왔다. 초식남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자와 마키다. 그녀는 2006년 여성에게 인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연애에 소극적인 남성을 초식남이라 명명했다.초식남이라는 용어가 일본 사회에서 폭넓게 사용된 것은 2008년부터다. 기존 일본의 여성잡지의 연애기사에서는 어떻게 하면 남성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여성이 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즉 기존의 남성은 이성에 대해 관심이 있으므로, 복장 등을 귀엽게 꾸미면 사랑스러운 여성이 될 수 있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남성과의 연애기회가 생긴다고 본 것이다.그러나 여성지 ‘non-no’는 2008년 4월 5일호에서 더 이상 일본의 남성이 여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접근해오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향후 초식남과 사귀기 위한 다음 3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초식남은 남자로서의 능동성이 없어서 여성이 연애를 리드해야 한다. 둘째 과도한 밀당(밀고 당기기), 연애 기술은 금물이고 대신, 알기 쉬운 호의를 표현해줘야 한다. 셋째 초식남은 여성 내면의 매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인간성을 높여야 한다. 초식남은 2009년 유행어 대상에서 탑 10에 뽑히는 등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초식남의 출현과 함께, 일본에서는 여성 자신이 연애나 결혼상대를 적극적으로 ‘사냥’하러 가는 ‘육식계 여성(육식녀, 肉食女)’이라는 단어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에서는 여성이 결혼하고자 한다면 여성 자신이 보다 적극적으로 남성을 ‘꼬실’ 필요가 생긴 것이다. 최근 일본의 남성은 초식남을 넘어서 ‘절식남(絶食男)’으로 불린다. 절식남이란 여성에 대해서 전혀 흥미가 없는 남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일본 사회에서 초식남과 육식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결혼정보회사인 파트너 에이전시의 조사에 의하면, 13%의 남성이 ‘본인은 완전히 초식남’이라고 답했으며, 61%가 ‘본인도 굳이 말하자면 초식남에 해당한다’고 답했다. 즉 일본 남성 대다수가 자신을 초식남으로 인식하고 있다. 동 조사에 의하면 여성들은 초식남에 대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39%)’, ‘냐약하다(11%)’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한편 육식녀에 대해서 여성들은 ‘품격이 없다(20%)’, ‘거슬린다(26%)’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경우가 적지 않지만, 남성은 육식녀에 대해 ‘믿음직스럽다(13%)’, ‘사귀고 싶다(22%)’ 등 긍정적인 의견이 과반을 넘었다. 일본에서 초식남, 육식녀 현상은 과도하게 여성잡지 등에 의해서 그 이미지가 부풀려진 측면이 있지만, 많은 사람이 그 용어에 공감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즉 이러한 용어의 등장은 남성은 남자다워야 하며, 여성은 여자다워야 한다는 일본 사회의 상식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는 한류 드라마나 영화의 영향으로 한국 남성은 열정적이고 남자다운 면을 가지고 있는 남자(이른바 육식남)로 인식되고 있다. 즉 일본 여성들은 일본 남성이 초식화해 나약해지고 있는 반면 한국 남성들은 지금도 연애와 일 등에 대한 적극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만 최근 한국에서도 남성들이 점차 초식화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회든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 양자의 관계라는 것도 항상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서 주의 깊게 접근해야 한다. 초식남, 육식녀는 갑자기 나타난 돌연변이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 변화의 결과다. 그들의 등장을 기성세대가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나갈 젊은 세대의 변화에 대해 기성세대는 사고의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대륙의 기상, 제대로 보기

중국은 큰 나라다. 영토는 우리나라의 96배 정도고, 인구는 25배를 넘는다. 다수를 차지하는 한족을 비롯해 55개의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산다. 한 나라 안에 열대기후부터 냉대기후까지 모두 나타난다. 서남쪽 운남성의 경우 고도가 높은 북쪽에선 만년설을 만날 수 있고 남쪽 평지에선 열대 과일 바나나를 살 수 있다. 이 정도면 거의 하나의 나라라기보다는 옛말 그대로 천하(天下)에 가깝다. 넓고 사람 많고 다양한 환경의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인구만 놓고 단순 계산을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일어날 일의 25배의 일들이 발생할 거로 예측할 수 있다.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수십 배로 일어나고 있고, 그 일들의 다양성도 수십 배에 달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아주 놀랍고 이상한 일도 중국의 규모라면 일어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중국에 대한 관심이 이 기이한 일에 집중된다는 점이다. 중국 어딘가에서 가짜 계란을 만들고, 엽기적인 싸움이 일어나고, 부실 건물이 붕괴하고, 위험한 백신이 돌아다니고, 불량 분유가 팔리고, 온갖 엽기적인 일들이 벌어진다는 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 삼아 돌고 돌면서 중국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는 괴이한 나라처럼 여겨진다. 네티즌들은 그런 일들을 ‘대륙의 기상’이라고 지칭하며 열심히 네트워크상에 퍼뜨린다. 이때 ‘대륙’이라는 말은 공간의 웅혼함을 뜻하지 않는다.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는 가상의 공간이라는 뉘앙스이다. ‘기상(氣像)’이라는 말도 그렇다. 타고난 기개, 씩씩한 마음씨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기이한 인상이요(奇相), 무모한 만용에 가까운 개념이다. 다시 말해 ‘대륙의 기상’은 판타지 공간의 무모한 일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고, 중국이 바로 그런 나라라는 비아냥이 담겨 있다. 그러니 그의 대응으로 ‘대륙의 실수’라는 말이 동시에 쓰인다. 중국의 좋은 제품, 중국의 좋은 제도를 일컫는 말이다. 제대로 된 일은 실수로 나온 것이라고 하니 당연히 실수가 아닌 일이 기이한 일, 잘못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이라는 판타지 공간은 기이함이 일상이라는 인식이 저변화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그들의 일상이 아니라 그들에게조차 낯설고 이상한 일들을 중심으로 중국이 소개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중국의 어떤 소식에도 놀라지 않게 된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서 기괴한 것, 특별한 것, 익숙하지 않은 것에만 주목하는 해외뉴스에 대해 비판한다. 그런 태도 때문에 정작 그들이 겪는 놀라운 일, 아픈 일, 비정상적인 일에 대해 연대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우리가 다른 나라의 일상, 그 인간적인 면에 더 주목하고 공감할 때 그들에게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도 놀라운 일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원칙에서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대로라면 진정 인간적 연대를 가져야 할 그곳의 재난이나 고통, 반대로 칭찬해 마땅할 그들의 업적에 대해서 우리는 희화화한 시선을 거두지 않을지 모른다. 나아가 그런 시선은 우리 국민에게 중국을 실제 이상으로 혐오하거나 꺼리거나 두려워하는 기제로 작동하기도 한다. 우리가 그 넓고 사람 많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낯선 일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상에 대해 공감할 때 중국은 우리에게 진정한 실체를 드러내 줄 것이다. 그럴 때 우리 자신도 한 이웃 나라를 동등한 세계로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의 세계인이 될 수 있다. 최민성 한신대학교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통계왜곡과 문해력

스탈린 집권기의 대외홍보용 통계는 왜곡된 사례로 잘 알려졌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사업에서 철강생산량 목표는 1천30만t이었고, 사업 시작연도인 1928년의 생산량은 420만t이었다. 즉 610만t의 생산량 증대가 이루어져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업이 끝난 후 실제 생산량은 590만t에 그쳤다. 초기 기준치 420만t에 비해 실제 증가량은 170만t에 그쳐, 목표달성률은 27.9%에 불과했다. 하지만 스탈린 정권은 목표달성률을 57.3%라고 선전했다. 기준을 1천30만t으로 설정하고 실적치인 590만t을 나눈 값이다. 이 황당한 계산법대로라면 사업 초기의 420만t은 이미 목표의 40.8%(420÷1030)를 달성해 버린 상태가 된다. 우리 가까이에도 국가통계 관련 꼼수는 허다하다. 통계청은 국민생활 양식의 변화를 반영하여 5년마다 물가조사의 품목과 가중치를 개편한다. 2011년 개편에서 캠코더, 전자사전, 공중전화통화료 등과 함께 금반지가 조사대상에서 제외됐다. 국제 금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국내 가격도 전년 동월 대비 20~30%씩 폭등하던 시기였다. 금반지 한 돈(3.75g) 값이 25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금반지 같은 물가상승 품목을 배제한 물가지수는 당연히 이전보다 낮아지게 된다. 이전 방식으로 대략 4.4%이어야 할 물가상승률이 4.0%로 최종 공표됐다.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나빠졌는데 물가상승률은 오히려 내려갔다는 불신은 말할 것도 없고, 물가지수 개편으로 야기된 하락폭으로는 역대 최고였다. 게다가 물가상승률 4%는 당시 정부의 목표치였다. 공교롭게도 통계청이 정부의 목표달성을 만들어 준 꼴이 되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통계는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데 통계만큼 좋은 재료도 없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숫자에 속내를 쉽게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통계를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폄훼한다. 그렇다고 통계를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다. 국가통계는 특히 그렇다. 통계로부터 얻은 정보는 모든 의사결정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출근하면서 버스가 좋을지 지하철이 좋을지 선택하는 일도, 결국 경험데이터에 의해 통계적 확률로써 내리는 의사결정이다. 9월8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해(文解)의 날’이었다. 문맹이란 글자를 읽고 쓰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 덕분에 우리나라 문맹률은 매우 낮다. 그러나 글을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는 인구비율, 문해율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신문에 찍힌 글자는 읽어내려도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문자로 소통할 수 없는 실질적인 문맹자들이 많다는 의미다. 오늘날 다양한 매체로부터 쏟아지는 정보는 문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보가 함축된 통계도 문자 못지않다. 통계를 이해하고 올곧은 정보를 읽어내는 능력, 일명 통계문해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맹자가 어려운 단어를 마주 대하듯, 통계나 숫자와 맞닥뜨릴 때 건성건성 넘어가는지 스스로 반추해 볼 일이다. 통계 생산자뿐만 아니라 정보중개자인 언론마저 통계정보를 날조하는 세태다. 통계 소비자인 국민의 문해력이 취약하기 때문에 얕잡아 보는 행태다. 보다 정밀한 통계기법, 정보윤리만으로는 악의적 통계왜곡을 막을 수 없다. 국민의 통계문해력이 제고되어야 견제할 수 있다. 일찍이 문맹은 기만과 착취, 차별의 토대였으며 문해는 자신의 기존 생각과 신념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아집과 직결된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폐해이자, 문해력 증진에 시급히 나서야 할 이유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이번에는 일본의 소비세 인상될까

일본의 소비세(부가가치세)는 현재 8%이지만, 2019년 10월에는 10%로의 소비세 인상이 예정되어 있다. 참고로 일본의 소비세에 해당하는 한국의 부가가치세는 일본보다 높은 수준인 10%이다. 이번에 예정대로 소비세를 인상(또는 인상 시기를 연기)해야 할지를 둘러싸고 일본에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2012년 성립된 소비세 인상 법안은 2014년 4월1일과 2015년 10월1일에 각각 기존 5%에서 8%, 8%에서 10%로의 소비세 인상을 규정하였다. 2014년 4월에는 예정대로 8%로 소비세 인상이 이루어졌지만, 10%로의 소비세 인상은 아베 내각 하에서 2번에 걸쳐 연기되었다. 그렇다면 이번에야 말로, 10%로의 소비세 인상이 이루어질까? 우선 일본의 재정상황을 고려한다면, 10%로의 소비세 인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일본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누적채무잔고는 200%를 넘는 수준이다. 2018년 기준으로 보면, 미국, 영국, 독일의 GDP 대비 누적채무잔고는 각각 108%, 86%, 59%에 불과하지만, 한편, 일본의 GDP 대비 누적채무잔고는 236%이다. 2018년 기준으로 일본의 일반회계 세출은 97조 엔인데, 그 중에서 23조 엔인 국채비(국채 상환 비용)를 제외하면, 실제 활용 가능한 세출 규모는 73조에 불과하다. 또한 세입의 구성을 보면, 조세 등 수입은 59조 엔에 불과하고, 33조 엔은 국채 발행 등에 의해서 충당되고 있다. 일본의 재정상황은 그야말로 심각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일본정부가 지금까지 2번에 걸쳐 10%로의 소비세 인상을 연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로서는 우선, 소비세 인상이 아베 내각 등장 이후에 회복되고 있는 일본경기를 다시 후퇴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기존에 아베 내각은 2번에 걸쳐 10%로의 소비세 인상을 연기하였지만, 이번에는 예정대로 10%로의 소비세 인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부총리 겸 재무대신을 겸직하고 있는 아소 타로 재무대신은 2018년 8월27일에 “2019년에는 예정대로 10%로의 소비세 증세가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에 있다”는 인식을 표명하였다.단, 아소 재무대신은 소비세 증세에 따른 경기침체를 방지하기 위해서 2019년 예산안에 경제대책을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소비세는 간접세의 하나로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등 역진성을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에서는 소비세를 10%로 인상함과 동시에 식료품 등에 대해서 경감세율제도를 적용할 것을 정하고 있다. 참고로 한국에서 비가공 식료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제도를 두고 있는 것도, 부가가치세가 가지고 있는 역신성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소비세 인상에 따른 리스크는 일본의 경기 침체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고, 한편, 소비세 인상 연기에 따른 리스크는 일본의 재정건전성이 점차 악화되어, 명시적인 재정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발행한 국채의 90% 이상은 일본 국내에서 소화되고 있으며 외국인 투자자 소유 비율은 높지 않다. 즉 현재로서는 일본에서 국채상환 등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편, 장기적으로 본다면, 저출산고령화는 의료, 연금 등 사회보장지출의 증가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으며, 일본의 재정상황은 점차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세계 3위의 경제규모(명목 GDP 기준)를 가지고 있는 일본 경제의 동향은 한국 등 세계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므로, 그 동향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OECD 국가 중에서도 높은 수준에 속하지만,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의 진전을 고려한다면, 재정 건전성의 문제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서귀포 이전

▲ 이시형 외교부 산하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KF) 본부가 서귀포 이전을 완료했다. 10년 전 시작된 공공기관 지방이전 결정 과정에서 제주도가 국제평화의 섬, 국제교류의 메카를 꿈꾸며 유치한 기관 중 하나인 KF가 제주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밀집돼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을 포함한 지방 균형발전 정책은 피할 수 없는 대안이나, 이전에 따른 비용과 비효율을 극복하고, 취지를 살리려면 이전기관과 지자체간 창의적인 협력이 지속해야만 한다. KF는 1991년 설립 이래 세계 100여 개 대학에 한국어, 한국 관련 학문을 강의할 수 있도록 교수직이나 교수 요원을 지원하고, 도서관에 자료를 제공하며, 영국박물관 등 28개 박물관에 한국실(Korea Gallery)을 설치했다. 인적교류를 통해 거의 모든 나라에 한국의 친구들을 만들고, 1.5트랙 대화 등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외국의 여론주도층 인사들에게 우리 외교정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세계의 구석구석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한국 문화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왔다. 2016년 발효한 공공외교법에 따라 KF는 공공외교 수행기관으로 지정될 만큼 이 분야에서 독보적 전문성을 인정받게 되었다. 공공외교란 세계에 한국의 문화, 역사, 정책 등을 두루 알려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향상시키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영국의 Portland Communications와 미국 남가주대학(USC) 공공외교센터는 매년 주요국 소프트파워 역량을 평가하는데, 최근 발표한 2017년도 순위에서 한국은 20위를 차지했다. 우리의 소프트파워가 근래 상당히 향상되고는 있지만, GDP, 무역, 군사력 등 하드파워 역량이 세계 10위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공공외교의 첨병인 KF의 역할은 여전히 막중하다 하겠다. 막중한 국가적 과업을 수행하는 KF의 서귀포 혁신도시 이전 계획이 확정된 후 지금까지 서울을 떠날 수 없어 부득이 재단을 떠난 직원도 적지 않아 종합적인 역량의 누수도 만만치 않다. 이전기관 전례에 비추어 제주 근무 초반 재단을 떠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서울과 제주의 차이는 대체로 상상할 수 있었으나, 제주시민이 느끼는 멀고 먼 서귀포는 새로운 발견이며, 심지어 서귀포 구시가지와 혁신도시가 있는 신시가지 간의 여러 가지 차이는 외지인으로서 알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전 기관의 일반적 어려움에 더해 KF의 일상사인 해외출장이 ‘서귀포-제주-김포-인천-해외’와 그 역순으로 전개되면서 여러모로 추가부담이 예상된다. 고위급 방한초청인사의 관리, 주한외교단과의 협업, 외교부와의 회의 등 서울에서 전개되는 업무를 위해 한 주에도 두세 차례 서울을 오가는 간부직원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도 전처럼 쉽지만은 않게 되었다. 제주 이전에 따라 복합적 도전에 직면한 KF에게 부여된 임무는 분명하다. 첫째, 여느 이전 기관과 마찬가지로 재정적·시간적 추가비용을 감내하면서도 업무의 질은 개선하고 그 양은 확대해야 한다. 둘째, 지방에 정주하면서도 공공외교 전문기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국가사업의 주체라는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셋째, 정체성을 유지하는 동시에 지역 내 다양한 기관들과 협업 가능성을 함께 모색하면서 지방이전의 취지에 부합하는 새로운 업무영역을 개척해야 한다.이시형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前 주OECD대사

[세계는 지금] 한일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 신 선언 나올까

한일 관계는 지금 ‘위기’에 놓여 있다. 2012년부터 한일 관계의 악화가 본격화되었는데 그 이전의 관계를 되돌아본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 때에 한일 관계는 전성기를 맞이했었다. 1997년 외환위기에 빠진 한국 입장에서 보면, 일본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만큼 당시 대통령으로서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필수적인 선택이었다. 단 김 전 대통령이 당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김 전 대통령의 일본과의 오랜 인연이 작용했다. 김 전 대통령만큼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일본에 알려진 인물은 없다. 이는 일본에 망명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이 1973년 8월 일본 도쿄의 호텔 그랜드팰리스에서 납치된 사건(김대중 납치사건) 때문이다. 그 이후 일본에서는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구명 운동이 확산했고,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의 상징으로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일본어에 능통했으며, 오랜 일본생활 등으로 일본에 풍부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나서, 1998년 10월8일 일본의 오부치 수상과 한일공동선언(21세기의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했다.1998년 한일공동선언에서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래 구축되어 온 한일 간의 긴밀한 우호 협력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통의 결의를 선언했으며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수립했다.2002년 한일공동월드컵은 한일관계를 더욱 발전시켰다. 공동선언 직후 김 전 대통령은 일본대중문화 전면개방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 일본대중문화가 속속 들어왔으며, 한편 일본에서는 ‘한류’ 붐이 형성되었다. 특히 2002년 한국에서 히트를 친 ‘겨울연가’는 2003년부터 일본에서 방영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는 일본 내 ‘한류’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올해 한일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해, 신 한일공동선언을 발표하고, 이를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로 활용하자는 구상이 확대되고 있다. 사실 이러한 구상에 대해서 한국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일본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달 일본 외무성에는 한국을 전담하는 북동아시아1과가 신설되었다. 새롭게 설치된 북동아시아1과의 과장으로 임명된 나가오씨는 주한 일본대사관 근무경험이 있는 등 일본 외무성 내 한국통으로 알려졌다. 고노 다로 외무대신은 지난달 27일 올해 10월 1998년 한일공동선언이 20주년을 맞이하는 것을 고려해 문화ㆍ인적 교류확대에 관해서 논의하는 전문가 회의를 설치할 것을 발표했다. 실제로 올해 10월에 한일 정상 간에 ‘공동선언’이 발표될 수 있을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한일 양국 내에서 신 공동선언 준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등 긍정적인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하다.20년 전과 비교해 한일 관계를 둘러싼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했으며,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1998년 한일 공동선언이 지금도 주목을 받는 것은 이를 계기로 실제 한일 관계가 급격하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행력이 있는 신 한일공동선언이 발표되기를 기대해 본다.신 한일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고 해서, 한일관계가 이것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한일 간에는 정치적 갈등이 반복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일 간의 정치적 갈등이 있는 경우에도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유지하고, 경제문화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박성빈 아주대 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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