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북한이 대남전략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남한을 적대적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며 대남 ‘단절’을 구체화하고 있다. 동북아 진영화 구도와 미국 대선을 염두에 둔 단기적 정세 대응인지 장기적인 근본적 전환 행보인지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북한의 이런 행보는 ‘핵무기 고도화’의 큰 그림 속에서 보면 예상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실리적 차원의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일관되게 핵무기 고도화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 왔다. 대내외 전략 모두 핵전략과 상호 조응하며 움직여 왔다. 핵무기 고도화의 기술적 성취는 곧 대외 전략의 변화로 나타났다. 핵무기와 대남·대미 전략의 변화가 어떻게 상호 조응하는지를 들여다보는 하나의 ‘창’이 ‘전략국가’라는 용어다. 이 용어는 2017년 11월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발사 성공 직후 처음 등장했다. 애초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실제 타격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의미였다.
이후 지역 및 동아시아의 핵전쟁을 방지하고 세계의 전략적 균형을 가져오는 ‘전쟁억제력’을 가진 국가로 개념이 확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가진 국가라는 뜻에는 변화가 없다. 핵무기 보유로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가 됐고 미국이 북한을 함부로 대하기 어려워졌으며 북한의 전략적 지위에 맞는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는 대미 ‘요구’와 기대’를 함축한 ‘자기규정’의 용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미 전략 차원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일까. 북한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설명한다. 첫째, 핵보유국의 대등함, 둘째, 대미 억제력 확보, 셋째, 북미관계 개선이다. 우선 미국이 핵무기로 일방적으로 위협하던 시대는 끝났고 이제 핵보유국가 대 핵보유국가로 대등해졌다는 메시지다. 둘째,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메시지다. 셋째,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하고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북미관계 개선을 주장하는 메시지다. 종합하면 ‘전략국가’ 용어를 통해 핵무기의 기술적 성취에 따라 궁극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들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향후 북한의 대남·대미 전략과 관련해 크게 세 가지 측면의 예상이 가능하다. 첫째, 미국의 인식 변화 및 북미관계 개선이다.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가 돌이키기 어렵고 비핵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미국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미국이 취했던 대북정책의 실패를 부각하고 대북한 인식 및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에 이 메지시를 더욱 강렬하게 전달하기 위해 올해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역대급으로 과시할 가능성이 높다.
둘째, 미국의 대북 군사적 위협을 완화하는‘북한식 안전보장’으로 핵군비통제나 핵군축 주장을 구체화할 가능성이 있다. 소위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의 대등함 속에서 북미 핵군비 통제, 핵군축 협정을 위한 구도 만들기다. 주한·주일 미군기지, 괌기지, 미 본토를 모두 사정거리화하는 북한의 행보는 대미 억제력 확보와 대등한 협상 구도를 만들기 위한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협상이 어려울 경우 러시아, 중국 등의 진영화에 편승한 핵보유국 지위 기정사실화는 지속할 것이다.
셋째, ‘북한식 현상변경’이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를 북미 구도로 제한하고 핵보유국 위상 속에서 북미관계 개선을 끌어내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국가 대 국가 관계로 설정하고 한국과의 철저한 ‘단절’을 시도하는 것은 북미 담판 구도에 방해가 될 수 있는 한국의 존재를 지우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북미관계 개선이라는 목표에 민족이나 남북관계가 개입되면 문제를 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방해가 된다고 볼 수 있다. 향후 한반도 정세는 이런 북한의 의도들, 미국 차기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향방과 맞물리며 일대 전환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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