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거시의 삶과 미시의 삶

이번 달 들어 갑자기 중국의 비자 발급 절차가 엄격해졌다. 중국 한 대학에서 2주간 연수를 받아야 하는 우리 학생들이 출국 준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짧은 연수라 작년까지는 여행 비자로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장기 유학생에게나 해당되었던 서류를 모두 준비해야 한다. 게다가 서명 대신 도장을 찍어야 해서, 태어나 도장을 찍어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졸지에 막도장 하나씩을 가지게 되었다.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에서 중국을 찾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불편해진 모양이다. 상용비자의 경우 체류 기간의 일정을 일일이 적고 명함을 제출해야 하고, 관광비자의 경우도 호텔의 영문명, 전화번호까지 기재해야 한단다. 물론 도장을 찍는 것도 불편에 한몫 거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왜 비자 발급 절차를 엄격하게 하는지 설왕설래다. 대개 언론들은 미중 무역 전쟁의 여파라고 짐작하는 모양이다. 물론 우리 정부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말이다. 중국 지인의 이야기로는 중국이 올해 건국 70주년을 맞으면서 안팎으로 질서를 엄정히 하고 여러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어느 것이 진짜 원인인지 콘텐츠를 가르치는 나같은 서생이 정확히 파악할 도리는 없다. 확실한 것은 중국 정부의 큰 그림 속에 민초들은 그것이 뭔지 정확히 모른 채 낯선 일의 파도에 떠밀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중국은 큰 그림의 나라, 거시(巨視)의 삶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우선 국가의 발전에 대한 큰 계획이 명확하다. 공산당 창건 100년 안에 샤오캉(小康) 사회, 삶의 질이 보장된 중진국에 들어서고, 건국 100년 안에 다퉁(大同) 사회, 모두가 잘 사는 선진국에 들어서는 것이 거시 목표이다. 덩샤오핑이 1987년 목표를 제시한 이래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한 나라가 백년대계를 세우고 간단없이 노력한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실제로 중국이 목표에 맞춰 발전해간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게 마련이다. 국가백년대계를 함께 하는 미시(微視)의 삶, 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은 그 큰 계획만큼 세밀하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워낙 인구가 많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검색을 당해야 하는 일상을 떠올려봐도 좋다. 사고 없는 나라라는 대의는 중국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적 불편을 야기한다. 통일 중국의 이상은 드넓은 중국 대륙을 하나의 시간대로 묶는다. 베이징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지역 개개인의 생체리듬과는 맞지 않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콘텐츠를 만들 때 여러 금기 사항을 마음에 새기게 만든다.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건 아니건 불순한 소재는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해서는 안 된다. 현실의 세세한 감수성을 포착하는 것보다 이상향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표현의 다양성은 다소 뒷전이 되는 듯하다. 중국은 곧 샤오캉 사회 달성을 발표하고 대동 사회로 나간다고 선언할 것이다. 중국의 대동 사회는 이제 거시의 삶뿐 아니라 미시의 삶도 살피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국가의 성장이 개인의 안락과 자유로 이어지는 사회, 개인이 국가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되는 사회 말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나라에도 해당하는 교훈이다. 선진국이란 거시의 삶과 미시의 삶이 다 같이 존중되는 나라라고 믿는다. 그래서 예기(禮記)에서 대동사회를 천하가 온 세상 사람들의 것인 세상이라 했을 것이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수출제조기업, 인도로 가자

지난달 인도에서 개최된 경기우수상품전 G-FAIR를 위해 2년 만에 다시 뭄바이를 찾았다. 필자는 뭄바이 신공항을 들릴 때마다 공항 천정에 설치된 스프링클러를 보며 기업 지원의 각오를 새롭게 한다. 초창기 어렵게 수출을 성사시킨 경기도 중소기업제품이기에 한-인도 교역의 상징처럼 느껴져서다. 얼마 전 끝난 지구상 최대 직접민주주의 선거인 인도총선에서 집권BJP연합이 승리해 현 나렌드라 무디 총리가 2024년까지 인도를 다시 이끌게 되었다. 무디 정부가 집권한 지난 5년간의 큰 변화를 꼽으라면 화폐개혁, 단일세제(GST)도입과 제조업육성이라는 경제부문의 개혁일 것이다. 이번 선거는 고질적으로 인도 경제의 발목을 잡아 온 아킬레스건에 대변혁을 시도한 무디 정부가 인도유권자로부터 평가를 받는 자리였다. 지역과 민족, 종교간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그를 다시 선택한 것은 궁핍에서 벗어나 잘 사는 인도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무디 정부에서의 경제성장률(GDP)이 평균 7%, 실업률도 3.53%로 안정적이다. 무엇보다 제조업 성장 없이는 인도경제의 발전이 없다는 인식하에 제조업육성에 집중한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라는 제조업 강화정책으로 제조업부문 종사자가 전체고용자의 22%까지 올라서게 되었다. 지난해 중국의 제조업종사자가 28.8% 수준임을 감안할 때 인도제조업의 성장 잠재력은 크다. 연임성공으로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메이크 인 인디아 제조업 육성정책은 더욱 강력하게 추진될 것이다. 인도의 제조업 육성 정책은 제조 강국인 한국기업들에 좋은 일이다. 제조업이 일정수준까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반 구축을 위한 산업재의 수요와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수요에 대응할 생산능력과 우수한 기술을 갖추고 있는 우리 기업의 입장에서는 직접 수출 혹은 합자 등을 통해 인도 진출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지난 5월15일부터 16일까지 뭄바이에서 개최된 제11회 G-FAIR에 4천여 명의 인도 바이어가 몰려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동안 비교적 한산했던 산업재 참가기업들의 부스가 금년에는 바이어들로 넘쳐난 것은 이런 인도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최근 국내외경제여건의 어려움으로 수출 동력을 잃고 불안감이 커가는 우리 중소 수출제조기업에 반가운 일이다. 정부에서도 신남방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인도를 꼽고 있다. 한-인도FTA격인 CEPA(포괄적동반자협정)를 내실화해 양국의 교역액이 현재의 200억 불 수준에서 향후 10년 내 500억 불로 확대시키려는 목표하에 정부차원의 지원이 뒤따를 것으로 기대된다. 다행히도 경기도가 한발 앞서 있다. 지난 2005년부터 인도에 GBC(경기비즈니스센터)뭄바이를 설립해 지속적으로 인도시장을 두드려 온 덕분에 넓어지는 인도시장의 최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GBC를 발판 삼아 시장 공략을 체계적으로 정비해야 할 때다. 우선적으로 인도가 주력으로 육성할 산업에 대해 양국기업의 메칭수요를 담당할 전문인력 보강이 시급하며, 영토가 큰 인도를 나누어 공략할 거점신설도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투명성이 높아지고 강력한 개혁개방으로 갈 길 바쁜 인도가 한국의 제조기업을 부른다. 과거처럼 인도의 시계는 늦게 돌지 않는다. 미-중 무역분쟁의 영향으로 수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금이 우리 중소 제조기업들이 인도로 가야 할 적기이다. 이계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글로벌통상본부장

[세계는 지금]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그리고 서울과 평양

한반도의 북쪽은 두만강에서 압록강이 백두산을 경계로 동과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 경계는 현재 한반도가 외부 세력과 접하고 있는 경계선이 된다. 과거 고대와 중세의 역사와 근대사에서 이 강역은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동토는 아직도 한반도를 남북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과 왕조간에 국가와 이데올로기적 마찰은 인간 기본정신인 서로에 대한 이해와 교류를 제한하고 있다. 물이 흘러 고이면 도랑이 만들어지고 이는 시내와 강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인간이 만든 제재는 도랑을 막고 강을 막고 사람의 정과 교류를 막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분단된 대만과 교류를 시작할 때, 홍콩과 대만의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회주의 인민이라고 중국 국민을 무시했다. 그러던 중국이 북경올림픽을 개최하며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루어내자 이제는 모든 국가나 국민들이 이들과 교류하기를 희망한다. 심지어 중국의 발전이 도약의 단계가 되자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는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 죽의 장막이던 중국이 이제 세계 생산 및 소비의 정글이 된 것이다. 이렇게 봉쇄와 개방, 교류와 마찰은 서로 교류하는 관계에서 필연적인 과정인 것 같다. 공자의 말에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라고 했는데, 이는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덕으로 교류하면 주위에 친구가 늘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북한이 사회주의 전제체제에서 왕조와 같은 국가체제를 유지하며 무력을 통한 대내외 경성권력을 강화하고 심지어 핵무력을 동원해 같은 민족인 한국을 위협하는 것은 덕이 부족한 행위이다. 그러나 일한 덕이 부족한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한국이 강 대 강의 대치로 덕을 베풀지 못한다면 우리는 덕과 사랑으로 이웃을 감화시킬 수 없어 대립은 더욱 강화대고 대립은 더욱 고착화 될 것이다. 한국의 북한에 대한 교류와 제재는 덕과 사랑이란 인본주의적 포용력과 국제세계질서의 균형적 제재가 같이해야 할 것이다. 두만강 방천에서 압록강 하구 단동을 다니다 보면 남북보다는 비교적 교류가 활발한 접경지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교류하는 입장이 이데올로기적 동맹과 인본주의적 이해가 같이하는 것에 우리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으로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한국에게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온정은 또 다른 의미의 연성권력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만하다. 요동치는 세계경제와 한반도 국제정세에서 우리는 항상 우리가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동북아지형은 어떤 지정학적 특징이 있으며,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 그리고 한중일 삼각관계는 어떤 역사적 과정, 이데올로기와 실용 그리고 어떤 국제관계를 지금 형성하게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은 단지 상상의 꿈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미래다. 기계와 수치적 계산으로 친구를 얻을 수 없다. 이데올로기와 사상만으로 대립에서 통합으로 가기 어렵다. 같이 하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현실 정치적 장래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 그리고 자손들의 미래비전과 관계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우회전만으로 혹은 좌회전만으로 혹은 직진으로만 서울에 평양까지 관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름도 넣어야 하고 장애물도 피하거나 해결하면서 트렁크에 온정을 가득 담아 상대방을 감동시켜야 길이 더욱 넓어질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올여름 日 국회의원 선거와 아베 내각의 향방

자민당 총재로서 연속 3선을 달성한 아베 수상은 내년 11월, 가쓰라 다로(2천886일)를 누르고 통산 재직일수 기준으로 일본의 헌정사상 최장기 수상이 될 전망이다. 가령 2021년 9월말까지 자민당 총재 임기를 채울 수 있다면, 통산 3천567일에 달하는 장기정권이 되지만, 기록달성을 위해서는 몇 가지 장애요인이 남아 있다. 최대 장애요인은 올해 여름에 있을 참의원(일본의 국회를 구성하는 양원 중의 하나) 선거이다. 가령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할 경우, 아베 수상은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진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다만, 이번 여름 참의원 선거와 관련해서는 아베 내각에게 유리한 조건이 조성되고 있다. 5월1일부터 사용되고 있는 신 원호(레이와)에 대해서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70% 이상이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내각 지지율도 52.8%로 3월의 직전 조사 대비하여 9.5%나 증가했다. 아베 내각 지지율의 개선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의 자민당의 승리 가능성을 높여준다. 일본경제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투표하고 싶은 정당이나 투표하고 싶은 후보자가 있는 정당을 물었더니, 자민당(43%), 입헌민주당(11%), 일본 유신회(7%), 공명당(5%) 등이었다. 지금 연립정권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과 공명당을 합치면 50%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그만큼 자민당이 이번에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아베 수상이 일본의 헌정사상 최장기 재임 수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아베 수상이 이번 참의원 선거 시에 중의원 선거를 동시에 실시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일본의 중의원 선거는 2017년 10월에 실시했으므로, 중의원의 임기는 최대 2021년 10월이다. 다만, 일본에서 중의원은, 임기 중간에 수상에 의해서 해산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일본경제신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올해 여름 참의원 선거와 동시에 중의원 선거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 47%가 찬성했다. 반대의 32%보다 높았다. 아베 내각,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아베 수상이 참의원 및 중의원 동시 선거를 결단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내각, 여당의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아무 명분 없이 중의원 해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기만료 전에 중의원 해산총선거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대의명분이 필요하다. 자민당의 이시바 전 간사장은 5월9일 밤 NNN 계열 뉴스에 출연하여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번 여름에 중의원과 참의원 동시선거는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아베 수상이 헌법 개정을 위해 발의에 필요한 의석을 여당에서 계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이번에 동시 선거를 결단할 가능성이 30~40%는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즉 헌법 개정 여부가 중의원 해산의 명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자민당 입장에서는 중의원 임기가 만료되는 2021년은 도쿄올림픽 개최 이후 경기 하락이 예상되므로, 중의원 해산 선거를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또한, 2020년은 도쿄 올림픽 준비 등 일정상 여유가 없으므로, 결국 올해(2019년) 중에 선거를 실시하는 것이 좋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올해 10월에 예정되어 있는 소비세(일종의 부가가치세) 증세(8%에서 10%로)와 관련하여, 소비세 증세 연기(또는 소비세 증세 실시)와 관련하여, 국민들의 지지 확인을 중의원 해산의 명분으로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아베 수상이 이번 여름 참의원(또는 중의원 동시) 선거에서 승리하여, 헌정사상 최장기 재임 수상이 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행정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한자와 동아시아 문화의 전통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근처 전통마을 등람 지역을 돌아보고 한 고즈넉한 고택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장이 서예를 하는 분이었다. 꼭 한옥같이 생긴 곳에서 여러 서예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고향에라도 온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시(漢詩) 한 자락이 문간에 적혀있었다. 내가 읽기 시작하자 주인장이 반가워하며 함께 읽어 내려갔다. 나는 우리 발음으로, 주인장은 베트남 발음으로 읽어가는데 마치 화음을 맞추듯 즐거웠다. 옛 베트남은 중화 질서의 한 축이었다. 당연히 모든 글은 한자로 쓰고 읽었다. 프랑스가 침탈하여 알파벳으로 표기를 시작한 이래 100여 년이 지나, 이제는 많은 베트남인이 한자를 읽지 못하지만, 베트남이 같은 한자문화권임은 분명하다. 현대 베트남의 국부인 호치민(胡志明)은 한시(漢詩)도 즐겨 썼다. 베트남 전통 유물 곳곳에서 한자를 만날 수 있다. 글자의 소리는 다르지만 뜻은 그대로 통한다. 지금도 베트남에서 한자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우리와 훨씬 더 많은 문화적 유대감이 생기리라 생각했다. 열도의 나라에서 한자를 만나니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이 얼마나 광대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동시에 한자가 지닌 생명력도 확인하게 된다. 상형문자요, 뜻글자인 한자는 바로 그래서 다양한 발음으로 아주 넓은 지역에서 사용될 수 있었다. 글자 하나를 놓고도 지린의 발음과 쓰촨의 발음이 다르고, 베이징의 성조와 광둥의 성조가 다르지만, 그래도 뜻은 통한다. 조선 시대 연행(燕行)을 간 선비들은 비록 중국어에 능통하지 못했지만, 필담(筆談)을 통해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었다. 필담은 그대로 속기록이 되어 당시의 대화를 그대로 후대에 전하는 이점까지 있었다. 사실 근대 이후 서구에서는 한자를 매우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었다. 언어의 발전 경로를 상형에서 표의, 표의에서 표음으로 보았을 때, 서구는 이미 표음언어체계를 구축한 데 반해, 중국은 아직도 잘해야 표의문자, 심지어는 상형 문자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구의 지식인들이 중국을 정체된 국가, 발전 없는 제국으로 설명할 때 그 근거로 한자를 들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대 문화권의 역설을 읽지 못한 서구 지식인들의 편견이었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수였고, 방대한 지역의 실제 표음 구조를 넘어서려면, 역설적으로 문자는 그대로 표의와 상형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나라 국(國)을 국으로 읽건, 구어로 읽건, 꾸옥으로 읽건 의미가 통할 때 동아시아는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 만약 한자가 표음문자로 변모했더라면 동아시아는 유럽처럼 수많은 나라로 쪼개졌을 것이고, 동아시아의 거대한 문화권은 일찍이 사라졌을 것이다.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로 나아가는 것은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다. 동아시아 질서의 언어로 한자가 선택되고 유지된 것이 잘 된 일이지 아닌지, 그 거대한 문명사적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한자 문화 속에서, 한자를 통해 매우 오래되고 아주 광범위한 문화 전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한자를 읽고 한자로 소통하는 것은 그저 지루한 공부의 일부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아시아 역사에 발을 담그는 일이며, 그 문화 전통의 일부가 되는 행위이다. 등람의 주인장과 내가 한시를 같이 읽으며 함께 웃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점에서 비롯한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세계는 한반도 남북교류, 국내는 총선 내홍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된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남북한, 한미, 북미, 북중, 북러, 중미, 중일, 중러, 미일 정상들의 만남이 이어졌고 남북한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점을 찾아가는 듯했다. 그러나 현실은 다시 북중러와 미일 그리고 한국이라는 현실로 드러났다. 통일이나 남북한 교류가 그리 쉽지 않은 것은 북핵문제 해결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며,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강대국들의 한반도에 대한 안보를 포함한 국가이익이 서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한국전쟁 후에 만들어진 동북아 냉전체제는 1980년도 후반 구소련의 해체와 사회주의국가들의 개혁개방과 달리 북한의 핵개발과 무력도발로 이어졌고, 한반도는 다시 신냉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동북아의 한반도에 있는 남북한이 서로 민족적 이익을 중심으로 힘을 합치자는 북한의 주장은 해방 후 한미동맹을 기축으로 군사안보, 정치, 경제, 사회문화가 발전해 온 한국사회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기에 한국 사회에는 아직도 북한의 도발적 행위를 징벌해야 한다는 전쟁 후유증과 정치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한다. 당신은 진보입니까. 보수입니까. 당신은 이번 정부와 지난 정부에서 어디에 가깝습니까라는 말은 한국의 국내정치 환경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혹은 당신은 미국을 좋아하나요 중국을 좋아하나요라는 표현은 냉전을 기반으로 한 반공(反共)을 표준으로 한 이분법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을 좋아한다거나 혹은 러시아를 좋아한다면 북한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미국을 통한 안보와 경제발전이 중요하다고 말하게 되는 것은 현재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멍에다. 내년에는 미국의 대선이 있고 아직 분단지역인 대만에도 총통선거가 있으며, 한국에는 총선이 있다. 다시 남북한 문제가 진보와 보수라는 정의(定意)로 분류되고, 현 정부이냐 전 어떤 정부이냐를 놓고 국민은 내홍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년 총선이 남북한문제를 포함한 한국의 국내정치와 대외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이 더 중시하고 있는 것은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안전한 사회분위기로 보인다. 우선 국내경기가 활성화되고 사회분위기가 밟아지면 국민은 남북한 문제를 포함한 한국의 대외관계에 긍정적인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광에서 인심 난다라는 말은 경제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의 단적인 표현일 것이다. 현재 북한은 북한대로 자국의 안보와 경제이익을 최대로 하면서 국내 사회분위기를 조성해 나가고 있다. 인민들을 배고프지 않게 하겠다라는 김정은의 결심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의 전통우호관계의 국가들과 관계를 강화하며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북한의 미국과 협상주제도 핵 문제를 중심으로 한 제재해결이었다는 것은 북한에서도 인민을 먹고살게 하는 것이 젊은 지도자 김정은의 매우 중요한 정치 의제임을 알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내년 중요한 선거가 있는 방면에 북한, 중국, 러시아에는 당분간 주요 선거가 없다. 북중러 3국은 안보이익과 경제발전이라는 주제로 냉전의 주적인 미국과 대립과 협상에 서로 협력하며 외교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에 다시 신냉전의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은 초강대국 미국의 세계정치에 동북아 사회주의진영이 자국의 국가이익을 위한 새로운 동맹의 분위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다시 한국의 국내정치를 다시 복잡하게 만들 수 있고,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한 한미일 동맹에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남북한 문제로 북한 지도부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능동적 외교력이 더욱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헤이세이 시대에서 레이와 시대로 바뀌는 일본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는 있는 가장 특징적인 제도 중의 하나는 천황제(天皇制)다. 이명박 전 대통령, 문희상 국회의장의 천황에 대한 발언에 대해서 일본이 그렇게 심한 반발을 하는지를 잘 이해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한국 입장에서 천황이라는 존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전후 천황의 법적 지위는 메이지 헌법 하에서의 지위와 전혀 다르다. 메이지 헌법(4조)에서 천황은 통치권을 보유하는 국가의 원수로 규정하지만, 전후 헌법에서는 천황에 대해 국가의 상징(1조)이며, 국정에 관한 권능이 없다(4조)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헤이세이 천황은 8월15일 전몰자추모식 등에서 과거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 등을 표명해 왔다. 이런 천황에 대해서 사죄를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 한국의 언론에서 천황이라는 용어 대신에 일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수상 간에 체결된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한국 정부는 천황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했다. 또한 중국에서도 천황이라는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표준 국어대사전에서는 천황의 의미를 일본에서, 그 왕을 이르는 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일본의 군주의 공식적인 명칭인 천황이라는 용어 대신에 한국에서 일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실익은 있을까? 일본에서 천황은 정말로 중요한 존재이며, 천황의 변경은 일본에서 정말로 중요한 변화이다. 일본의 원호법 제2조에 의거해, 일본에서는 황위 계승이 있는 경우 원호(연호)도 변경된다. 전후 헌법 제2조에서는 황위는 세습하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국회가 의결한 황실전범(皇室典範)에서 규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황실전범 제4조에서는 천황 사후(死後) 승계의 원칙을 규정한다. 다만 현재 헤이세이(아키히토) 천황은 생전(生前) 퇴위를 희망했으므로, 일본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헤이세이 천황의 생전 퇴위를 인정했다. 참고로 헤이세이 천황은 퇴위 이후에는 상황(上皇)이라고 불리게 되며, 기본적으로 천황의 지위에 준하는 위상을 가지게 된다. 올해 5월1일부터 기존의 헤이세이 시대는 끝나고, 레이와(令和, Reiwa) 시대가 시작된다. 지금까지 일본의 원호는 중국 고전을 출전으로 했는데, 새롭게 결정된 레이와라는 원호는 일본의 고전시가집인 만요슈(万葉集)를 출전으로 한다. 원호는 통상 한자 2글자로 구성되며, 국민의 이상(理想)이 담겨 있다. 아베 수상이 중국고전이 아니라, 일본고전을 인용한 원호를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레이와라는 원호의 사용에 대해서 일부 외국에서 일본의 우경화, 국수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한편 레이와라는 원호에 대해 일본에서는 주로 일본의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일본의 원호가 바뀌면 정부에서 발간하는 공식자료 등의 원호를 변경해야 하며, 기업 측에서 발간하는 자료의 원호 등의 수정도 필요하다. 아마도 일본에서 올해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소비세율 인상(2019년 10월)과 함께 원호 변경(2019년 5월부터)일 것이다. 일본은 원호 변경을 맞이해, 일본사회에서는 축하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앞으로 레이와 시대를 맞이하는 일본이 평화와 번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성빈 아주대 일본정책연구센터장 행정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북간도, 윤동주와 문익환, 통일

윤동주 시인의 고향은 용정, 예전에 북간도라 불리던 곳이다. 별 헤는 밤에서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를 노래한 바도 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용정 안에서도 명동촌(明東村)이고, 이곳은 김약연 선생이 함경도에서 여섯 가문을 이끌고 조국의 미래를 도모하려고 설립한 마을로, 간도 독립운동의 본산과도 같았다. 독립운동가치고 명동촌에서 밥 한 끼 먹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명동촌은 지금도 윤동주 시인과 북간도에서 독립운동을 벌이던 사람들을 기념하고자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이다. 명동촌을 일삼아 찾은 사람들은 윤동주의 생가에 이르러 꽤 놀라곤 한다. 대문 옆에 중국조선족 애국시인 윤동주라고 크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에게 중국조선족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니 우리의 값진 보물을 중국에 빼앗긴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리 언론에서도 이를 두고 소수민족의 역사를 제 나라의 것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해석하며 불편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최근 문익환 목사의 통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통일의 집을 방문하면서 이 문제를 달리 보게 되었다. 문익환 목사는 윤동주의 친구로 명동촌에서 함께 자라고 중등학교까지 동고동락한 사이다. 윤동주와는 비슷한 시기에 일본 유학을 가기도 했다. 태평양전쟁이 극에 달하자 일본에 유학 중인 학생들이 학병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윤동주는 일경에 체포되어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되지만, 문익환은 우여곡절 끝에 고향 북간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문익환은 기독교도에 대한 공산주의의 탄압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고, 한신대학교의 교수로, 성서번역자로, 독재에 맞서는 통일의 투사로 살아왔다. 이렇듯 문익환 목사가 한국인으로 우리나라의 역사 속을 살아오는 동안 일제 강점기에 유명을 달리한 윤동주는 영원히 북간도의 사람이 되었다. 명동촌의 사람 중 북간도에 남은 사람들 또한 그대로 중국의 조선족이 되었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그저 남하할 것인가, 머무를 것인가였지만, 결과는 국적의 변화로 나타났다. 이런 역사를 보면 대한민국 국민과 중국 조선족 사이에 엄청난 벽이 가로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또 북간도로 떠나기 전 명동촌 사람들의 고향은 함경도 회령이었다. 그들의 친척들은 북한의 주민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문익환 목사가 북한의 초청을 받아 갔을 때 다수의 친척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집안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북간도로 떠나지 않았더라면 윤동주나 문익환은 북한의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작은 변수들이 한집안의 사람들을 대한민국 사람으로, 조선족으로, 북한 인민으로 나누어 놓은 셈이다. 한국 국적, 중국 국적, 북한 국적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그러고 보면 30년 전에는 과격해 보였던 문익환 목사의 방북도 이해가 간다. 북간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의 입장에서 남과 북, 만주의 차이를 느끼기 어렵고, 남과 북이 하나라는 강렬한 믿음이 앞섰을 테니까. 그러니 윤동주의 이름 앞에 새겨진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명칭에는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적 현대사가 지닌 아픔이 깃들어 있다. 동시에 우리의 현대사를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라는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통일이란 단순히 남북 체제의 결합이 아니라, 민족 감성의 세심한 재결합이어야 한다는 당위이기도 하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용인하되 기억하라

고명한 역사학자가 원광대 총장을 방문했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대도 아닌 원광대까지 찾아간 것으로 봐서는 필시 긴요한 일일 테다. 뜻밖이지만 그의 목적은 이 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을 없애려는 것이다. 역사학자의 협작으로 이렇게 역사의 편린은 기어이 불태워졌다. 소각된 유물은 일본 왕이 내려준 어마무시한 작위가 붉은 글씨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정이위 대훈위 후작 우봉이공지구라고 적힌 널판자였다. 바로 친일매국의 대명사인 이완용의 묘에서 출토된 관 뚜껑이었다. 근대 사학계를 좌지우지했던 이병도 교수에 얽힌 어이없는 일화다. 이완용의 먼 친척으로 알려진 그가 이후에 뇌까린 매국노의 목관을 박물관에 전시하는 일은 부당하다는 변명은 석연치 않다. 평소에 그가 역설하던 역사관이 객관적 사료에 기초해 역사를 있는 그대로 서술하는 실증사학이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사료로 입증할 수 없는 역사는 인정할 수 없다던 사학자의 손에 역사 한편이 지워진 셈이다. 저명한 역사학자가 조선왕조실록에 두 종류가 있음을 모르지 않았을 터이다. 선조, 현종, 경종은 두 개의 실록을 남겼다. 붕당 정치와 당쟁이 극심했던 시기로, 정권이 바뀌면서 반대파 사람들이 이전에 작성한 실록 원본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실록을 별도로 낸 것이다. 당색으로 얼룩진 편향된 기록을 고친다는 표면적 이유 뒤에는 원본을 고쳐 자신들의 치적과 가치를 실록에 남기려는 욕망도 있었을 게다. 그러나 눈엣가시 같은 왜곡과 미심쩍은 오류를 비난할지언정 원본을 훼손하거나 없애지 않았다. 피아를 막론하고 기록자의 주관성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후대의 공정한 평가에 맡긴다는 조선 유학자의 건강한 기록정신을 엿볼 수 있다. 아파트 12층 높이에 달하는 총 2천77권의 방대한 분량 못지않게, 내키지 않는 족적과 견해마저 다음 세대에 오롯이 전하려 했던 올곧은 역사관이 조선왕조실록의 진가를 배가시켰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실패와 오점을 숨기거나 미봉책으로 모면하려고 들면 진정성을 되레 의심받고 발전의 기회를 잃게 된다. 장점뿐만 아니라 약점, 한계, 상처, 치부까지 용인함으로써 자신만의 특유한 가치를 한층 드높일 수 있다. 당대의 잘잘못은 시간이 지나면 진중한 성찰을 통해 고스란히 현재와 미래의 역량으로 적축되기 때문이다. 수치스러운 오점은 오점대로, 훌륭한 업적은 업적대로 나름의 교훈과 지혜를 물려줌으로써 역량을 강화한다. 우리가 아는 소수의 성공 사례 외에는 모두 실패로 간주해도 지나치지 않다. 누구나 실패를 싫어하고 숨기기 때문이다. 선진 기업에서 이를 다루는 대원칙은 용인하되 기억하라이다. 용인 없는 실패는 구성원의 행동과 사고를 위축시킨다. 실패를 범할까 두려워 목표를 낮추고 도전과 혁신을 회피하게 만든다. 용감한 시도, 기민한 실행보다 실속 없는 계획과 회의만 벌이게 된다. 무엇보다 실패는 무마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의 대상이어야 한다. 책임자를 가려 추궁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 원인과 과정, 재발 방지책 등을 철저히 기록, 학습해야 실패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실패를 용인하되 기억하는 목적은 학습을 통한 미래의 핵심역량 구축에 있다. 실패를 애초에 지우고 왜곡하는 행위는 미래를 망가뜨리는 패착이다. 실패는 용서하더라도 실패의 왜곡과 삭제는 용서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세월호 관련 항적이나 CCTV를 조작한 공무원, 듣도 보도 못한 디가우징 방식으로 행적을 파기했다는 총리실과 대법원을 보면서 개탄스러울 뿐이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한반도 국제관계와 한국 경제

한반도 국제관계는 지난 1ㆍ2ㆍ3차 남북한 정상회담과 3차례의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1ㆍ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바쁘게 돌아갔고 지금도 그러하다. 2017년 한반도의 최고 긴장은 2018년 한반도 평화와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주제 아래 여러 방면의 접촉과 일부 교류로 이어졌고, 올해 2월 말 다시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순탄치만 한 것도 아니었고 지금도 그러한 상황이다. 1년여의 한반도 관련 협상에서 미국과 북한은 서로 간극을 줄이지 못하고 자국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서로에 대한 신뢰부족이 핵 문제 해결과 국가 간 안보문제 및 북한 경제제재 해제와 체제안정 및 한반도 경제발전이라는 목적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많은 진적을 이룬 것이 남북한 관계이자 북중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전략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은 미국식으로 그 흐름을 이어오고 있다고 본다. 대체적으로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미국이 원하는 그리고 과거에 전 세계 핵위협을 처리해왔던 해결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미국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있어 핵 무력을 사용해 미국과 세계를 위협하는 것에 미국은 단호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지도자나 일부의 결정으로 미국 전체와 유엔을 포함한 전 세계 흐름을 바꾸기에는 중과부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남북한 문제를 포함한 북미 간 북핵 문제 그리고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한반도 핵 문제를 포함한 평화와 안전을 포함한 각국의 국가이익에 관련된 주제는 꾸준하게 논의될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남북한 문제는 이러한 여러 문제에서도 동북아 국제관계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데, 한국 내 여론의 보수와 진보 혹은 반공과 포용이라는 의미에서 국제관계에서 보는 북한과 한반도의 문제는 한국 내에서도 비슷하게 반응하며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1980년대 말부터 사회주의 국가들과 수교를 하며 1991년 구소련과 1992년 중국과 수교한 한국에 있어서도 한국은 소련과 중국이 한반도 평화와 발전을 위해 국제사회에 공조해야 한다는 생각과 소련과 중국은 북한편이라는 잣대가 우리의 의중을 복잡하게 한다. 중국과 베트남이 개혁개방의 성과로 국제사회와 연결되는 것을 보면 북한도 핵을 포기하고 경제발전을 통해 국제사회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론일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북한 지도부가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국가나 지역 간 교류와 경제적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중국과 대만도 경제발전이라는 주제에서 1980년대 교류를 시작해 아직 유지하고 있고, 베트남도 도이모이를 통해 경제발전을 통해 외부세계와 연결된 것을 보면 대립지역에서 교류와 경제발전 및 안보환경 형성에도 경제력이 밑받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한국의 경제적 성장 동력이 떨어질수록 주변 분쟁지역을 평화적 협력지역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한반도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사회 및 북한과 공조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경제동력을 더욱 강화시키고 이를 통해 국제적 외교력과 남북한 문제를 견인할 힘의 배양도 필요할 것이다. 국가와 사회의 각 산업 및 시설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증대하며 고용을 창출하고 동북아 지역경제에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아쉬운 것도 한반도 문제를 보는 시점과 같다. 평화적 환경건설과 경제부흥에는 여와 야가 없어야 할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확대되는 일본의 외식배달시장

한국에서는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치킨, 피자, 자장면, 족발, 햄버거, 한식 등 대부분의 음식 배달이 가능하다. 또한 스마트폰 등을 통해 편리하게 음식주문을 할 수 있으며, 음식 배달 대행회사 등이 증가하고 있다. 외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이러한 배달 문화는 정말로 놀라운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도 외식배달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종래 일본에서는 외식배달은 피자, 초밥 등 일부 음식에 국한되며, 배달 가능한 지역의 범위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외식배달시장이 급격하게 확대하고 있다. 일본의 유명패밀리레스토랑 체인인 스카이락은 2020년까지 배달서비스를 제공하는 점포를 1. 5배로 증가시킬 예정이며, 최근 배달 기사 채용을 늘리고 있다. 규동이나 중국요리점포 등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이를 반영해 최근 일본에서 외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배달 기사 부족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아르바이트 구인 사이트인 au에 의하면 지난 1월 배달 기사 구인 수가 전년 동월 대비 30% 증가했으며, 2월에는 2배가 되었다. 일본에서 외식배달시장이 확대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고령화의 진전은 외식 수요를 증가시킨다. 일본의 전체 인구에서 고령자(65세 이상)가 차지하는 비율은 1985년 10.3%에서 2016년에는 27.3%로 증가했다. 두 번째로 맞벌이 가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함에 따라 배달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맞벌이 세대의 숫자는 2001년에는 각각 951만 세대에 불과했지만, 2012년에는 1천만 세대를 돌파했으며, 2017년에는 1천188만 세대이고, 현재도 맞벌이 세대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세 번째로 우버이츠(UberEats)와 같은 배달대행 서비스의 보급으로, 배달 가능한 음식의 종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네 번째로 올해 소비세율 인상(8%에서 10%)을 계기로, 외식배달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소비세(일종의 부가가치세)율 인상과 외식배달서비스 확대의 관계를 살펴보면 2012년 이후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이후 경기회복이 진행되면서 세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재일본의 재정건전성이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심각한 재정상황(일본의 GDP 대비 누적채무 잔고는 200%를 넘는 위기적 상황)을 고려하려면 증세가 필요하다. 이에 아베 수상은 2014년 4월에 소비세율을 기존 5%에서 8%로 인상했지만, 8%로의 소비세율 인상 이후 소비감소 등에 따른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는 가운데 아베 수상은 경기회복을 우선, 10%로의 소비세율 인상시기를 2차례에 걸쳐 연기했다. 다만 올해 10월에는 예정대로 10%로의 소비세율 인상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간접세인 소비세율을 인상하면 계층 간 소득분배를 악화시키는 문제(이른바, 역진성)가 있다. 일본 정부는 10%로 소비세율 인상하면서 있어서 저소득층을 배려해 음식료품을 대상으로 경감세율(8%)을 도입한다. 올해 10월 이후 외식(음식점 내 식사)에는 10%의 표준세율이 적용되지만 배달 음식 또는 테이크아웃 음식에는 경감세율(8%)의 대상이 된다. 즉 식당에서 외식하는 것보다 배달 음식에 적용되는 소비세율이 낮으므로, 배달음식에 대한 경감세율의 적용은 일본에서 외식배달시장의 확대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편의점 도시락의 경우 원칙 경감세율의 대상이 되지만 편의점에서 마련한 장소(실외를 포함)에서 도시락을 먹는 경우 표준세율(10%) 대상이 된다고 한다. 일본에서 올해 10월 소비세율 인상 이후에 음식배달시장이 얼마만큼 확대될지, 소비감소 등으로 경기침체가 오지 않을지 이목이 주목된다. 박성빈 아주대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한중, 항일의 공통 기억

상하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인 신톈디에 중국 공산당이 처음으로 전국대표대회를 연 일대회지(一大會址)가 있다. 현대 신중국의 출발을 알리는 장소라 당국이 정성스레 보존하는 곳이다. 일행들에게 장소를 설명해주고 있을 때였다. 관리인이 우리에게 다가와 반갑게 한국인이냐고 묻더니, 전시된 사진들 가운데 너희 조선 사람이 있다고 일삼아 알려주었다.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혁명전사로 중화인민공화국 혁명공동묘지에 안장된 이, 바로 전남 광주 출신의 정율성이었다. 관리인이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순간만큼은 한중 사이의 거리가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정율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되었지만, 많은 사람에게 회자된 것은 아무래도 2014년 시진핑 주석이 우리나라에 와서 강연할 때 언급한 이후일 것이다. 그때 시 주석은 한중 사이의 인적 교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근현대 인물로 정율성, 김구 두 사람을 들었다. 각각 항일투쟁에 나섰던 좌우의 대표 인물로 삼은 듯하다. 좌우를 망라하고 중국이야말로 우리나라 항일투쟁의 저수지 같은 곳이었다고 강조한 셈이다.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중국이 김구 선생을 보호하기 위해 피난처를 마련해 주었던 항저우 인근에 기념비를 세우면서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때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한다고 새겼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중국은 곳곳이 우리 항일투쟁의 무대다. 임시정부가 있던 상하이와 충칭이 그렇고,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던 하얼빈이 그렇고, 김좌진 장군이 승리한 지린의 청산리가 그렇다. 북경도 초기 독립운동이 뿌리내리던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 우리가 광야라는 시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육사도 항일투쟁 중 베이징의 감옥에 잡혀와 순국했다. 그가 공부하던 곳이 베이징의 공립 중국대학이었고, 광복을 위해 군사 교육을 받던 곳은 난징의 군사학교였다. 윤태옥 작가가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말했듯이, 쑨원, 장제스, 마오쩌둥과 같은 최고 권력자에서 대도시와 농촌 구석구석의 중국 인민들에 이르기까지, 상하이에서 베이징, 광저우 그리고 만주에 이르기까지 우리 독립운동의 첫 번째 동맹은 중국과 중국인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우리에게 잘 알려졌지는 않아 보인다. 우리가 우리의 항일투쟁을 볼 때 여전히 이념의 틀 안에서만 바라보는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이육사의 중국 행적이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은 그가 중국에서 깊게 사귄 인물이 사회주의 계열인 김원봉이고 이육사 자신도 사회주의에 상당히 경도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중국이 영웅으로 인정하는 정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중국의 공산혁명에 적극 가담했고, 후에 북한 정권의 수립에 관여한데다 북에서 중요 직책을 맡기도 했기 때문에, 내전을 겪은 우리의 정서에서 다루기 어려운 인물로 판단되었고 그래서 널리 알려지지 못했던 것 아닌가. 이념 대결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현대사를 관통한 우리로서는 20세기 초 자유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 아래서 실천되었던 항일투쟁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는 것이 쉽지 않다. 동족상잔의 비극 6ㆍ25가 끝난 지 육십여 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그렇다. 올해가 3.1운동,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21세기가 열리고도 두 번이나 강산이 변했다. 이제는 우리의 항일투쟁을 더 큰 시야에서 조명하고, 한중을 아우르는 항일투쟁의 공통 기억을 의미 있게 기리는 일에도 더 큰 진전이 있었으면 한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불편한 진정성

오전 내내 김 부장의 속이 타 들어간다. 팀원들과 며칠 밤을 새워 만든 사업계획서를 들고 상사인 최 전무가 회장에게 보고하러 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 번씩이나 퇴짜를 맞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계획서를 작성한 팀원들에게 면목이 없어서다. 이번에는 최 전무의 의견이 대폭 반영되었으니 무리 없이 승인되리라 믿고 싶다. 사실 최 전무가 회장의 의중이라며 강력히 내세운 이번 사업계획은 미심쩍고 불합리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워낙 확고한 주장을 펼친 데다 직급이라는 권위에 눌려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회장과 독대를 마치고 싱거운 표정으로 최 전무가 나오고 있다. 김 부장과 팀원들을 소집하더니 처음 내뱉는 말이, 도대체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업계획을 짠 거야! 직장 내 뒷담화를 듣자면, 의외로 최 전무 같은 관리자가 허다하다. 그들은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데 망설임이 없다. 조변석개(朝變夕改)는 임원의 필수역량으로 통한다. 여러 사람 앞에서 명백히 밝힌 말을 번복하는 데 스트레스를 받는 보통사람은 임원이 되기 어렵다고들 한다. 일관성 없는 자신의 언행에 고뇌하며 주춤거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조직에서 도태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회사가 어떻게 안 망하고 있는지 신기하다는 직장인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역설적으로 한국은 기업하기 참 좋은 국가인 셈이다. 최근 진정성(authenticity)이란 용어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학계에서도 연구가 활발하다. 최 전무의 경우도 진정성의 결여로 조직구성원의 신뢰를 잃어 버린 예이다. 진정성은 원래 복제, 모조에 대응하는 진짜를 뜻한다. 그렇다고 진정성이 단순히 거짓, 가짜의 상대적인 개념은 아니다. 타인으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고 신망을 얻으려면 몇 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우선 진정성은 심층적 성찰을 통한 자기이해에 기초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명구로 유명한 소크라테스도 관습, 율법에 얽매이지 말고 내면의 본성을 따르라고 설파했다. 자기를 바르게 인식해야 자신에게 먼저 진실할 수 있다. 진정한 자기이해는, 나를 남처럼 돌아보는 데 거치지 않고 남을 나처럼 배려하는 경지로 귀착된다. 자기중심적인 야망, 권력성취, 쾌락이 진정성의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정의, 자유, 박애와 같은 자기초월적 대의가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와 신념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확립된 가치와 신념은 언행일치의 원동력이 된다. 자신의 가치와 신념에 따라 소신껏 행동하므로 주위의 기대, 이해득실에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언행일치가 한결같아야 주변의 신뢰,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서양의 진정성 개념을 중용의 성론(誠論)에서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誠은 말(言)과 이루다(成)가 결합해 말한 것을 성취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를 오롯이 달성하려면 거짓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하므로 진정성과 맥이 닿아 있다. 인간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 중용에서는 성(誠) 그 자체는 하늘의 순리고, 성(誠)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라고 분별한 모양이다. 인간이 진정성을 단방에 이룰 수 없으나, 진정 어린 삶을 면면히 추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천만 명 이상인 선진국들을 3050클럽이라고 부른다. 최근에 우리가 7번째 국가로 합류했다. 이에 비해 사회지도층의 음험한 부정비리, 기업인의 표리부동은 우리를 암울하게 만든다. 천성에 부합하는 진정한 삶의 방법론으로 제시된 중용의 다음 경구가 예사롭지 않다. 옳은 일을 택해 굳게 지켜라(擇善固執)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북미정상회담과 한반도 현안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보란 듯이 우리들의 예상외 결과에 도달하고, 북미관계를 포함한 동북아 국제관계는 다시 복잡한 환경에 처하게 됐다. 미국과 북한이 다시 대화를 바로 이끌어가기도 어려울 것이고, 김정은 위원장의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경제개발과 관련된 국내외정치에 대한 심정 변화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 미국 국내정치에서 수세에 몰린 트럼프대통령이 동북아국제정치와 북한 비핵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를 어떻게 추진할 의사가 있는지도 판가름하기 어렵다. 여기서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기다리며 북미회담의 순조로운 결과 도출을 기다리던 한국 정부나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그늘이 들었다. 앞으로 북미회담이 그리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과 현재 정부가 집권 중반기에 들어선 현 시점에서 내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주장하는 한국의 보수세력은 트럼프의 결정을 사필귀정으로 본다. 즉, 이번 북미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국내 여론이 한국 정부의 역할을 주장하는 부류와 미국 트럼프의 결정을 지지하는 부류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여론은 한반도 비핵화보다는 트럼프 스캔들에 대한 지지와 반대 및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정치에 대한 미국인의 자긍심이 주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에서 자국이 배제되던 것을 걱정하던 일본은 안보의 한숨을 쉬며 트럼프의 결정을 지지하고 있다. 이번 북미회담에서 북미관계의 개선에 대해 걱정하던 중국은 일단 한숨을 돌렸지만, 한반도 비핵화와 미군 영향력 약화라는 자신들의 숨을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모순된 아쉬움을 갖고 있다. 이번 북미정상회담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날 것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남북한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 모두 같았을 것이다. 평화와 인류 번영을 존중하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 가치관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정치 환경이 보편적 인간의 가치관과 모두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이번 회담결과는 미국의 여론이나 보수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이 쉽게 협의를 해 그가 미국 국내정치에서 열세인 위기를 해결하려 하는 행위가 미국의 국익을 해친다는 걱정이 결국 미국인으로서 트럼프의 결정에 도달한 것 같다. 미국이 주장하는 것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이고 이는 한반도에 미군이 주둔하는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이다. 반대로 김정은이 생각했던 비핵화는 한반도에서 핵과 전략무기를 제거하는 한반도 평화체제와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이다. 즉, 미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정치에서 한 국가의 비핵화를 다룬 것이라면 북한은 자국과 주변환경이라는 상황에서 체제안정 및 주변의 평화적 환경조성을 통한 경제발전에 그 목적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국내정치 상황이 이런 방향으로 나가는 현실에서 우리 정부의 역할에도 한계가 있었을 수 있다. 이는 강대국 국제정치에서 강대국들의 이익이 약소국의 환경을 결정하는 악습과도 비슷하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무역협상을 포함한 여러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각자의 국가이익과 부합되는 일들을 다루는 것이지, 미중을 뛰어넘은 세계정치와 경제를 고려하지는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다음에 진행될 미중협상에서 북한문제는 어는 정도 미국과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걱정이 든다. 한국과 북한의 동력이 미국이나 중국 그리고 일본에 줄 수 있는 이익보다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간에 교역할 수 있는 국가이익이 크다는 것은 우리를 더욱 걱정스럽게 한다. 이제 한반도의 문제는 주변국들과의 문제 외에도 남북한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국내 정계와 시민사회의 교류와 통합을 기반으로 한 역량도 중요하다고 본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지역균형 발전과 지방공항, 일본 사례가 주는 시사점은

최근 예타 면제(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발표에서 새만금공항이 포함되어 많은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에서 관리하는 14개의 공항 중에서 순이익(2017년 기준)을 내고 있는 공항은 4개 공항(제주, 김포, 김해, 대구)뿐이고, 그 외 14개 공항은 적자를 내고 있다. 특히 182억의 운용비용이 투입된 무안공항은 139억 원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시급한 지역인프라 사업에 대해 예타 면제 제도를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새만금공항과 같은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인프라 사업의 시행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새만금공항은 오랜 기간 전라북도의 숙원사업 중의 하나이다. 지방공항 설치에 따른 순기능도 있지만, 채산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과거 노태우 대통령 시절 개항한 예천공항은 지난 2004년 문을 닫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일본에도 지역발전이라는 명분 하에 많은 지방공항이 만들어져왔다. 일본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26개의 공항의 경상손익(항공사업과 비항공사업의 합산 기준, 2017년 기준)을 살펴보면 흑자 공항은 하네다 공항(도쿄), 신치토세(북해도)를 비롯한 4개 공항에 불과하다. 일본에는 전국에 98개의 공항이 존재하는데, 대부분 지방공항이 적자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정치 주도로 지방공항이 설치된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결과 만들어진 지방공항은 채산성이 없다. 일본을 대표하는 항공사인 일본항공(JAL)은 지난 2010년 1월에 실질적인 경영파산상태에 빠지게 됐다. 그 이후 일본항공은 관민펀드인 기업재생지원기구의 관리 하에 경영 재건이 이루어졌고, 2012년에는 도쿄증권거래소에 재상장하는 등 재생에 성공했다. 당시 일본항공이 파산한 것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의 영향, 방만한 기업경영, 복잡한 사내 복수노조의 문제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설명할 수 있지만, 지방공항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공항노선에 대한 규제권한을 가지고 있는 정부와 여당은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는 거점공항인 하네다공항 등에 대한 노선인가를 내는 조건으로 항공사에 채산성이 없는 지방공항의 취항을 강요했다. 즉, 지방공항 설치와 항공노선 인가 등의 과정이 과도하게 정치화돼 경제성, 수요 등이 거의 고려되지 않았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채산성이 없는 지방공항의 존재가 일본항공을 파산시켰다. 파산한 일본항공을 구제하기 위해 대규모 재정자금이 투입됐고, 지금도 적자 지방공항에는 공적자금의 투입이 계속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의 필요성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또 공공성이 높은 지역공항에 대한 항공노선을 공급하기 위해 적자노선과 흑자노선을 동시에 운용하도록 조정하는 것은 일종의 교차보조효과를 이용한 것으로, 그 정당성이 일정부분 인정된다. 또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재정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재정을 어느 분야에 어떻게 어느 정도 투입하느냐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하고, 그 과정이 과도하게 정치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지방공항의 설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요, 경제성, 전략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공항 등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방공항을 설치하는 대신, 거점공항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질 수 있도록 공항과 지역을 잇는 버스 등 대중교통을 확충하고 이러한 부분에 적절한 보조금을 주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박성빈 아주대국제학부장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상하이의 몇 가지 풍경

상하이는 화려한 밤 풍경으로 유명하다. 황푸강을 끼고 서쪽으로는 와이탄의 서양식 건물들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개화기 서구 열강의 조차지 흔적, 다행히 다시 중국의 것이 된 웅장한 건물들이 장관이다. 강의 동쪽으로는 동팡밍주를 비롯한 최첨단 고층빌딩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할리우드 영화 에서 미래 도시로 등장하는 곳이다. 루자쭈이역에서 내려 원형육교를 걷노라면 백 층이 넘는 휘황찬란한 건물들 사이에서 정말로 먼 미래로 온 기분이 든다. 하지만 상하이에서 찾아봐야 할 것이 황푸강 부근의 화려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하이 외곽으로 조금 나가보면 중국의 전통과 관련해 눈여겨 볼 것이 몇 가지 더 있다. 상하이 시내에서 전철 11호선을 타고 끝까지 가면 디즈니랜드를 만날 수 있다. 아시아에선 가장 크고 미국에 있는 디즈니랜드에 이어 세계 2번째 규모이다. 입장객 수로는 단연 세계 최고. 규모보다 놀라운 것은 디즈니랜드의 중국 색채이다. 디즈니가 외국에 개설한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중국적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다. 명물인 디즈니 퍼레이드에서는 가장 화려하게 꾸며진 애니메이션 뮬란의 행진을 보게 된다. 디즈니가 중국의 목란(木蘭) 설화를 훔쳐가 영화를 만들었지만, 중국은 완성된 캐릭터를 통해 몇 배의 이익으로 되돌려받고 있다. 범세계적 캐릭터 왕국 디즈니에서 쓸 수밖에 없는 중국 고유의 캐릭터, 이런 것이 바로 중국 전통의 힘이겠다. 상하이 중심부에서 대략 4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처둔(墩) 지역에 가면 상하이잉스뤄위엔(上海影)이라는 테마파크가 있다. 1930년대 개화기의 상하이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다. 여기서 색계를 비롯해 근대를 다룬 수많은 중국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지금도 운이 좋으면 영화 촬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우리 영화 암살 등도 이곳을 활용했다. 중국은 서구 열강에게 완전히 지배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근대유산을 자기 전통화하는데 훨씬 자유롭다. 우리 군산, 목포의 근대유산 개발과 비교해보면 금방 체감할 수 있다. 이런 인프라를 기초로 중국은 근대 항일투쟁의 스토리를 끊임없이 생산해내며 근대의 전통을 만들어 나간다. 상하이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통샹(桐)시에 가면 우전()이라는 오래된 수향(水鄕)마을이 있다. 중국 강남 지역에는 수많은 수향마을이 자태를 뽐낸다. 그중에서도 우전의 풍광은 남다르다. 수로를 따라 작은 배를 타고 야경을 즐기다 보면, 이탈리아의 베니스나 베트남의 호이안보다 뛰어나다는 생각이 든다. 성정부와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1998년부터 우전 보호기획안을 마련해 중국의 10대 아름다운 전통마을로 발전했고, 2014년에는 아시아도시경관상을 수상했다. 우전을 개발하기 위해 만들어진 우전관광개발유한공사는 후에 베이징 외곽에 구베이수전(古北水)이라는 인공 수향마을 만들어 또 다른 관광명소가 되게 했다. 잘 정비된 우전은 한 지역이 전통의 모습을 살리면서도 얼마나 현대적인 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10여 년에 걸친 전통지역 재생의 과정을 살펴보면 우리가 배울 점이 많아 보인다. 상하이 인근만 돌아보아도 중국이 전통을 현대화하는데 많은 성공사례를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실경공연 등 중국의 전통문화 현대화의 사례들을 배우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이 앞으로 문화 전통의 현대화에서 어떤 사례를 만들어갈지 자못 흥미진진해진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세계는 지금] 지금, 몇 시인가요

두 사람이 대화 중이다. A가 B에게 지금 몇 시냐고 시각을 묻는다. 그러자 B는 A의 손목에 있던 시계를 들춰내 자기에게 달라고 말한다. 시계를 건네받은 B는 시각을 읽어 주고는, 그 시계를 자기가 차고 떠난다. 다소 각색되었지만, 피터 블록(Peter Block)이 저술한 오점 없는 컨설팅(Flawless Consulting)의 첫 장에 나오는 삽화다. A는 고객이고, B는 A에게 사업상 이슈를 자문해 주는 경영컨설턴트다. 얼핏 봐도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컨설턴트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고객이 자각하지 못하는 문제 및 해결책을 시계와 시각에 빗댄 점이 흥미롭고, 어느 기업에서나 통하는 엇비슷한 결과물을 던져주고 떠나는 컨설턴트의 소용없는 모습이 실감 난다. 항간에 인기 절정인 SKY캐슬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입시컨설턴트가 주목받고 있다. 둘러보니 중고차컨설턴트, 부동산컨설턴트 등, 말 그대로 컨설턴트가 만연하는 사회다. 앞선 경험과 노하우를 주고받는다는 관점에서 우리는 누구나 컨설턴트가 될 수 있으니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이 장래를 논의하거나 팀장이 팀원과 업무를 협의할 때도 궁극적인 두 가지 입장은 컨설턴트와 고객이다. 그렇다면 효과적인 컨설팅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까. 피터 블록은 컨설턴트에게서 오점을 찾았지만, 컨설팅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를 한번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먼저 투명성이다. 혼자 모든 일을 해내던 단조로운 시대는 지났다. 내, 외부를 막론하고 협력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개방성이 현시대가 요구하는 경쟁력의 기초이다. 다시, 개방성의 시작은 투명성이다. 부정과 오류를 감추려 들면 개방성은 위축되고 협력과 참여는 왜곡되거나 쭈그러들 뿐이다. 피터 블록의 만담에는 지금이 몇 시였으면 좋겠습니까?라고 대놓고 질문하는 컨설턴트도 등장한다. 고객이 원한다면 사실조차 왜곡할 태세다. 투명성 없는 고객은 컨설팅 효과가 반감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런 몰지각한 컨설턴트와 결탁할 수도 있다. 2001년 엔론의 몰락이 상기되는 대목이다. 엔론은 당시 경영혁신의 아이콘으로 통하던 굴지의 기업이었다. 개리 하멜(Gary Hamel)을 비롯한 경영구루들이 엔론의 성장가능성과 기업가정신을 칭송했다. 그러나 희대의 분식회계라는 오명을 남기고 파산한다. 여기에 아더앤더슨이라는 회계법인이 감사와 컨설팅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자산과 실적을 부풀리는 일을 도왔다. 사태가 불거지자 심지어 관련 문서를 파기해 버리는 비리를 자행해 원성을 샀다. 다음으로 주체성을 들고 싶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하겠다는 주도적 의지이다. 주체성이 결여되면,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지나치게 신경 쓰고 그 정보에 의지하게 된다. 일류를 본받겠다고 벤치마킹이나 모범사례에 몰두하지만, 여건과 맥락이 다르므로 자신에게 적합할 리 없고 실행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정답만 손쉽게 얻으려는 조바심은, 과정에 천착한 해답을 무시한다. 현란한 보고서, 고도의 분석기법에 매료되지 말고, 실행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스로의 상태, 수준, 환경을 직시하여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졸부는 청소 깨끗하게 부탁합니다하고 외출하지만, 진정한 부자는 오늘도 깔끔하게 부탁 드리고요, 특별히 전등갓과 커튼 챙겨봐 주세요라고 콕 찍어 요청한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세계는 지금] 한반도 국제관계와 진보·보수의 갈등

한반도 남북한 문제는 북핵과 미사일이라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한미동맹을통한 국내안보 그리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남북한, 북미회담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런 구조 속 동북아에서 역할이 약해지는 일본이 한일관계에 이상한 신호를 보내는 것은 일본 국내 개헌문제와 미일 동맹을 강화해 서태평양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우리는 일본 아베 정부가 현재 북미회담이 준비 중인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로 일본 국내여론을 형성하며 미일 유대를 강화했던 전략에서 변화된 전략을 보이는 그 속내를 읽을 필요가 있다. 즉, 북미관계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고, 한일관계를 흔들어 자국이 동북아국제관계에서 미국을 등에 업고 그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보면 냉전과 탈냉전시기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국은 구소련(러시아)와의 안보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1971년 비밀리 교섭해 1979년 국교정상화를 이루어냈다. 당시 이를 눈치 챈 일본은 미국보다 1년 일찍 중일 국교정상화를 성사시켜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여기서 중국이 중일 국교정상화를 빨리 이룬 이유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일본과 중국의 전략적 필요에서 일 것이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이미 구소련과의 사상과 체제 경쟁이 아닌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실리적 동맹(협력)외교로 바뀌었다. 즉, 미국 대외정책이 전통 냉전체제의 안보관에서 실리주의에 기반을 둔 국가이익과 그 영향력이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이런 국제정치 환경의 변화와 한반도 남북대립에서 나타난 남남갈등이 한반도의 촛불이나 태극기로 나타나는 것에 우리는 이미 익숙해졌다. 이런 이분법적 남남갈등은 진보세력을 종북 세력 혹은 빨갱이로 확장해 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특징도 있다. 사고를 확장해 보면 북핵문제 해결 없이 북한과 교류를 원하는 세력도 종북 세력이 되고 북한과 같은 진영에 있는 중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는 세력도 빨갱이나 나쁜 의미의 친중파로 보게 되는 것이다. 친중파라는 의미에는 사드문제로 한국에 보복했던 중국을 나쁘게 보는 민족 애국주의가 포함되어 있고, 친중파, 종북 세력, 빨갱이는 전통 안보적 입장에서 공산주의 북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한국전쟁에서의 냉전적 판단의 연장일 것이다. 진보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분단된 지역과의 교류와 평화적 환경조성은 안보위협을 줄일 수 있다는 입장에서 해당 지역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협상을 미국과 공조로 남북미협상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진보나 보수나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여기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봐야 할 것은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보는 입장이 과거 냉전체제의 경쟁이 아닌 미국의 이익과 핵 문제 해결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앞으로 북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미관계가 발전해 나간다면 우리 태극기를 사랑하거나 한민족의 가치를 존중하던 사람들에게 또 어떤 혼동을 줄지 많은 고민이 된다. 한반도 주변의 국제관계와 남북한 대치문제 이상으로 복잡한 것이 남남갈등이 아닌가 한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한일관계의 복원

최근 한일 관계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황에 있다. 2012년부터 한일관계는 거의 매년 최악의 상황을 갱신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 한일관계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으므로 그 해법을 찾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한일 국방당국 간의 레이더 갈등은 한일 간의 갈등의 양상이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본은 한국이 사격통제 레이더를 수 분간 지속적으로 조사했다고 주장하고, 한국에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일본이 해상 초계기 저공비행으로 위협했으므로 일본이 이를 사죄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런 가운데 1월 21일 일본의 방위성은 한국 측과 계속 실무협의를 해도, 진실규명은 어렵다고 판단해 한국과의 교섭중단을 표명했다. 다만 1월 22일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은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상시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 정부ㆍ여당 내에서도 한일 갈등에 대한 신중대응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것은 다행스럽다. 이번 한일 국방당국 간 레이더 갈등은 한일 간에 긴밀한 신뢰관계가 구축된 상황이라면, 이 상태까지 양국관계를 악화시킬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 최근 한일 갈등 요인으로서는 레이더 갈등 이외에도 위안부 문제가 있다. 위안부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화해ㆍ치유재단은 이미 재단 해체가 결정된 상황이다. 일본 측에서는 한국에서 국가 간 합의를 파기했다고 해, 비판을 가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중요한 현안이지만, 사실 일본 정부가 가장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강제징용에 대한 한국 대법원 판결이다. 한국의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30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인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한편, 일본의 최고재판소(대법원에 해당)는 2003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결론을 확정 지은 바 있다. 한일 사법당국이 동일한 사안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린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문제는 1965년 청구권협정을 통해 강제징용문제는 이미 해결이 된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한일간에는 위안부 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지만 이번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특히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 압류에 대해 일본 정부의 반발이 커지고 있는데, 이번 강제징용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향후 일본기업의 한국투자결정, 그리고 양국 간 통화스와프, FTA 등의 경제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또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려면 국제사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일본의 지지는 중요하다. 향후 한국 정부 입장에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면서도 일본 측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관계 개선을 도모해야 하는 외교적 해법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있다. 한일 갈등은 외교적 타협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한일청구권협정 3조에 의거한 중재재판 또는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등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한일 갈등 속에서도 일본 내 한류는 여전히 활발하고, 한국 내 일본의 문화에 대한 관심은 높고, 2018년에 한국인 700만 명 이상이 일본을 방문했다. 한일 갈등 속에서도 경제교류, 문화교류가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 양국이 서로 실리주의적 외교를 통해 한일관계를 서둘러 복원해야 한다. 이는 동북아질서를 주도하는 핵심국가인 한일 양국의 국제적 책무가 아닐까. 박성빈 아주대국제학부장 일본정책연구센터장

[세계는 지금] 중국, 세번의 통일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중국 요리가 인기를 얻고 있다. 자장면으로 대표되는 한국식 중국 요리 말고 중국 본토의 요리 말이다. 처음에는 양꼬치 정도가 유행하는 것 같더니 훠궈로 이어지고, 꿔바로우가 인기를 얻더니 최근에는 딤섬 등 좀 더 다양한 중국 요리들이 사랑받고 있다. 여기저기 중국 요리 거리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우리는 뭉뚱그려 중국 요리라고 말하지만 방대한 중국의 크기만큼이나 그 요리의 원천은 다양하다. 양꼬치만 해도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서북쪽 이슬람교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이 중국 전역으로 퍼져 나가 보편화된 것이다. 훠궈는 서쪽 쓰촨의 음식이 대중화된 것이고, 꿔바로우는 동북의 음식이 널리 퍼진 것이다. 딤섬은 남동쪽 광둥에서 즐기던 음식이다. 이들 음식 고향들 사이의 거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멀어서 예전에는 서로 음식을 맛볼 수 없었다. 이들 요리를 중국 어디에서나 맛볼 수 있게 된 것은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혁개방 이후의 일이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따라 배울 모델을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 선전을 필두로 샤먼, 광둥, 주하이 등을 거쳐 상하이에 이르기까지 발전의 시작점들을 만들고 이를 선으로 잇고 면으로 확대시켜 나갔다. 때마침 확산하던 텔레비전 등 대중매체와 교통 인프라는 이들 모범을 중국의 표준으로 만들어 확산하기에 용이한 조건이 되었다. 중국은 이로써 지역 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하나의 표준을 향해 일사불란하게 걸어가는 통일된 행보를 보이면서 중국 내 자원들이 풍부하게 유통될 수 있었다. 중국의 음식은 그 와중에 지역을 넘나들게 되었다. 중국의 개혁개방이야말로 거대한 중국을 하나의 국가로 통합시키는 일이었던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덩샤오핑 평전을 쓴 에즈라 보걸이 덩샤오핑의 업적을 한 마디로 중국을 재통일시킨 것이라고 주장할 만하다. 진시황 이래, 가장 놀라운 대륙의 통합이었기 때문이다. 진시황은 전국 시대를 끝내고 영토를 통일하자, 나라 안의 문자를 하나로 정비하고 도량형과 화폐를 통일시켰다. 통일 국가다운 단일한 인프라를 갖추었다. 이를 통해 중국 내부가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중국을 진의 영어 이름인 지나, 즉 차이나로 부르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덩샤오핑은 소통의 인프라를 넘어 중국을 비슷한 꿈, 비슷한 목표를 가진 구성원의 나라로 탈바꿈시켰다. 그가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 인민들을 경제발전이라는 통합적 사고로 이끈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G2 시대를 연 중국의 발전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중국은 진시황과 덩샤오핑이 이끈 두 번의 통일을 넘어 세 번째 통일로 향해가고 있다. 변화의 요인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인터넷의 발달이다. 인터넷은 예전의 대중매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이른 시일 안에, 아무리 먼 곳이라도 비슷한 생각을 실어 나른다. 이 인프라를 통해 시진핑 시대 중국몽이라는 하나의 꿈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중국이 무시당할 때 분노하는 애국의 정서가 보편화했다. 상하이의 패션이 동시에 충칭에서도 유행하고, 수도인 베이징의 프랜차이즈 음식이 윈난의 가정집에 배달되고, 중국 공산당의 단일한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레 자리 잡는다. 시간도 없고 거리도 없는 인터넷이 중국의 거대함, 중국 인구의 방대함을 무효화시키고 있다. 이 세 번째 통일이 중국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가늠하지 못하겠다. 일사불란해진 14억 인구가 가진 힘, 그것이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길 바랄 뿐이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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