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꿔’바람

최근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테크노댄스 가수 이정현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바꿔 바꿔 모든걸 다 바꿔”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 ‘바꿔’라는 노래의 열기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도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서기 2000년을 맞아 나무, 꽃, 새 등 시·군 상징물 교체바람이 갑자기 불고 있어 하는 말이다. 수원시의 경우 시의 상징나무를 은행나무에서 소나무로, 상징새는 비둘기에서 백로로 바꿨다. 상징꽃 역시 철쭉을 진달래로 바꿨으며 심벌마크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華城)을 새로 도형화했다. 의왕시도 시꽃(市花)을 종전의 개나리에서 철쭉으로, 심벌마크는 21세기 테크노 전원도시로 발전하는 의미를 담은 심벌로 바꿨다. 충남 금산군은 군 상징물이었던 까치, 목백일홍, 은행나무를 파랑새, 모란, 소나무로 바꿨으며, 전북 장수군은 종전 은행나무와 까치를 소나무와 비둘기로 바꿨다. 충북 충주시는 매화, 은행나무, 까치를 국화, 사과나무, 원앙으로 각각 교체했다. 묵은 때가 잔뜩 묻은 옛 상징물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새 상징물과 함께 새 천년을 시작해 보자는 각오이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는 뜻이라고 한다. 이러한 상징물 교체바람은 계속 불 것 같은데 시·군(市·郡) 이름들은 새 천년을 맞아 왜 바꾸지 않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수천년동안 이어져온 경기도 강화군이 인천광역시 강화군이 되었고, 다시 경기도 강화군으로 환원될지도 모르는 판국이니 시·군명이 바뀌지 말라는 법도 없다. ‘바꿔’ 열풍이 어쩌면 멀쩡한 애인과 친구들도 새로 바뀌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상황에 따라 자주 바뀌는 정당명처럼 나라이름을 새로 바꾸자는 엉뚱한 주장이 나오지 않는 것만도 천만 다행이다. /淸河

‘전부 싫다’

지난 날 선거에 출마했던 사람들은 기분 나쁘겠지만 대다수 기권자들은 찍을 사람이 없어서 그랬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찍어야 할 후보자가 마땅치 않아 기권을 하기는 했으나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고 한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현실정치를 비난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수록 더욱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는 이번에 출마한 후보가 전부 싫다”는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유권자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투표용지에 후보자 이름을 나열한 다음에 ‘전부 싫다’는 칸을 하나 더 만들어 거기에 찍을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그리고 투표 결과 ‘전부 싫다’의 표수보다 득표 수가 적은 후보자는 일정기간 동안 피선거권을 박탈하거나 제한하자는 것이다. 또 국회 및 지방의회 의원 선거에서 ‘전부 싫다’의 표 수가 1위가 되면 그 지역은 의회에 대의원을 못내게 하는 불이익을 준다. 지방자치 단체장선거에서 ‘전부 싫다’가 1위가 된 경우에는 중앙정부가 임명권을 갖게 하여 무책임하고 감정적인 투표행위에 제동을 건다. 대통령 선거의 경우 만일 ‘전부 싫다’가 1위가 되면 입후보했던 사람은 전부 실격되고 새로운 입후보자들로 재선거를 치른다. 이러한 주장들은 그럴듯 하고 일리가 있다. 기성개념에 굳어 버린 계층에서는 피선거권의 침해라고 하겠지만, 오죽하면 유권자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겠는가. 국회의원이건 지방의회의건, 심지어 대통령이건 ‘후보자 모두가 싫다’는 칸이 투표용지에 하나 더 만들어진다면 엄청난 숫자의 거부권이 행사될 게 분명하다. 16대 총선에 뜻을 둔 사람들은 ‘전부 싫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유권자가 많음부터 먼저 알고 출마채비를 갖춰야 한다./청하

수도권 산업空洞化 막아야

수도권내 기업들의 역외(域外)이탈 러시로 경기 인천지역이 산업공동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정부가 수도권 인구집중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7월부터 지방이전 기업에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를 감면해주는 조세특례제한법을 시행하면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수도권에서 공장을 신증설할 경우 취득세와 등록세를 다른 지역보다 3배나 중과, 수도권 유입을 억제해오던 것을 지난해 부터는 한술 더 떠 조세감면 특혜를 미끼로 지방이전을 유도하고 있다. 수도권 기업을 타지역으로 이전시키기 위한 ‘규제’와 ‘특혜’의 양면작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로인해 작년엔 대한펄프(의정부)와 두산기계(화성) 등 4개업체가 충북등 타도로 이전했고, 수원의 삼성코닝 평택의 경동보일러 인천의 동양화학 화성의 동양매직 등 기업들이 이전채비를 하고 있다. 수원지역 제조업체가 97년 615개 업체에서 98년엔 541개 업체로 감소한 것을 보더라도 기업의 이탈현상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물론 정부로서는 세금의 중과 및 감면조치가 수도권 인구집중억제와 산업의 지방분산을 위한 방편이라고 하겠으나 이는 조세의 일반원칙인 공정성과 공평성을 해침은 물론 지방자치시대에도 걸맞지 않는 것이다. 지역자치가 진전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돼야 진정한 지방자치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진대 수도권지역에 대한 일방적 차별정책으로는 참된 ‘자치’를 구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지역 기업들의 공장신증축에 대해서는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에 의해 2·3중으로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거기다 지방세 중과로 부담을 가중시킨 상황에서 세제혜택을 미끼로 기업을 타지역으로 이전시키려는 것은 시장원리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수도권내 기업들이 이같은 정부의 ‘규제’와 ‘당근’정책으로 이 지역을 떠나게 되면 지방자치단체들의 경제기반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IMF쇼크로 지방기업들이 집중적으로 몰락해 지역경제의 신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수도권의 산업공동화는 역내(域內)지자체의 재정악화를 초래하고 결국 국가전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당국은 기업배치를 시장원리에 맡겨야 할 것이며, 경기도와 인천시 역시 기업의 이탈을 막는 특단의 방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만 살자’는 주한미군

주한미군은 과연 필요한가. 미군은 무엇 때문에 한국에 주둔하는가. 인근 미군부대에 강력한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첩보에 따라 5일 새벽 1시30분부터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 주민 1천89가구 3천여명이 공포와 추위에 떨며 긴급대피한 소동은 주한미군 불신을 증폭시킨 사건이다. 수색결과 거짓 첩보로 밝혀져 5일 오전 9시13분 주민대피령이 해제됐지만, 해프닝이라고 넘기기에는 주한미군의 처사가 너무나 비인도적이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주한 미군기지 ‘캠프 에드워드’에 폭발물이 설치됐다는 첩보가 입수된 것은 지난 4일 오전 10시였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주한미군에 근무했던 마약사범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파주의 캠프 에드워드에 폭발물을 설치했고 5일 폭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이는 즉각 주한미군사령부에 통보됐다. 이 부대에는 유류 60만ℓ와 폭약, 탄약 등 각종 위험물이 많아 폭발할 경우 반경 1㎞지역 내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됐었다. 주한미군사령부는 4일 낮 12시쯤 미 2사단에 관련내용을 통보했고, 미 2사단은 이 때부터 밤 10시쯤까지 캠프 에드워드에 상주하는 주한 미군 및 군속 2백여명을 각종 물자와 함께 다른 미군기지로 대피시켰다. 미 2사단은 그러나 이 사실을 지난 4일 오후 5시10분쯤에야 인근 한국군 부대에 알렸고 주한미군사령부는 오후 5시30분쯤 합참 지휘통제실에 공식 통보했다. 파주시는 이보다 늦은 오후 7시10분쯤 미군 관계자와 경찰정보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했으나 5일 0시를 훨씬 넘긴 뒤인 새벽 1시10분쯤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해 주민대피령과 함께 통일로와 경의선 일부를 통제하고 차량통행을 금지시킨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한미군의 파렴치한 조치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미군들이 먼저 떠난 후 7시간이나 지난 뒤 대피하라고 통보했다니 가슴이 뛴다. 테러가 예고된 5일 0시에 실제로 폭발물이 터졌다면 수천여명의 한국인이 살상됐을 것이 아닌가. 상상조차 하기 싫은 참상이다. 주민대피령 발동권한이 있는 파주시가 사태의 심각성을 잘 몰라 우왕좌왕한 것도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나 이번 폭발물 대피소동은 한국에 정확한 첩보상황을 즉시 전해주지 않은채 ‘우리만 살면 된다’고 사지에서 벗어난 주한미군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 당국은 이번 파주 미군부대 폭발물 첩보에 따른 주민들의 정신적 피해와 도의적 책임을 엄중히 항의함은 물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긴급상황 돌발시의 체계를 굳건히 해야 한다.

동해를 일본해라니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일부 주민들이 우리나라 독도(獨島)로 호적을 옮긴 사실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정부의 무대책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우리 정부가 보낸 항의서한에 일본 정부는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명)는 일본 땅’이라는 공식회신을 보내왔다고 한다. 일본의 이같은 처사는 한·일 우호관계를 심각하게 해치는 일이다. 물론 일본인의 독도 호적이전이 국제법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후일을 위해 명분축적과 기록축적을 위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래 저래 정부의 온건한 대처가 못마땅한 터에 얼마 전에는 철도청이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홍보책자를 제작·배포한 기가 막히는 일을 벌여 놓았다. 지난 10월 서울의 한 디자인 회사에 1천8백50만원을 주고 5천부를 제작·배포한 홍보책자 ‘철도화물운송’표지에 그려진 지구본에 동해를 ‘Sea of Japan(일본해)’으로 표기한 것이다. 그런데도 철도청은 이같은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채 이 책자를 전국 주요 역과 화물운송업체 등에 배포했다. 철도청이 뒤늦게 그것도 철도청 인터넷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에 실린 글을 읽고난 뒤에야 사태를 파악, 홍보책자를 부랴부랴 수거하면서 영문표기를 모두 뺀 그림을 다시 제작해 표지를 바꾼 뒤 재배포하는 소동을 한바탕 피웠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독도문제와 동해문제로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는 판국에 철도청이 대국민 홍보물을 제작하면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 지구본 형상을 이용한 것은 실수라고 하기에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국제적인 실수가 과연 철도청에만 있을 것인가. 대국민, 대외적인 홍보물에는 더욱 세밀하고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독도’를 ‘죽도’로 표기하는 실수가 또 생길 것 같아서 안심이 되지 않는다. /淸 河

선진화된 노사관계 정립을

서울 지하철노조가 만성적인 노사분규에서 탈피하려는 시도로서 무쟁의(無爭議)를 선언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10월 온건노선을 표방하여 제9대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된 배일도(裵一道) 위원장은 파업을 위한 파업을 지양하고 성실교섭의 원칙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말하고, 이는 사실상 무쟁의 선언으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고 했다. 서울지하철 노조는 민주노총의 전위대로 인식될 정도로 그동안 있었던 많은 노사분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87년 노조 결성 이후 서울지하철 노조는 7차례의 파업 선언이 있었으며, 실제로 5차례에 걸쳐 파업을 단행함으로써 파업을 일삼는 강성노조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파업시마다 수백만명의 지하철 승객에게 불편을 주어 시민들로부터 비난도 많이 받았다. 이번 무쟁의 선언은 오는 11일에 있을 협약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효력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그동안 집행부의 협약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동안 대립적 노사관계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노사분규가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되어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높여야 됨에도 불구하고 극단의 방법으로 인하여 갈등만 양산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합의제도를 만들어 IMF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관계 정립을 시도하였으나, 현재 많은 난관에 봉착하여 선진화된 노사관계 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사관계 역시 21세기에 걸맞는 방식으로 변해야 된다. 갈등과 강경일변도의 투쟁 방식은 20세기적 사고이다. 희망의 새천년을 맞이하여 선진화된 노사관계를 정립함으로써 국가발전의 동력을 찾아야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지하철노조의 무쟁의 선언은 앞으로의 노사관계 설정에 있어 많은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소모적인 투쟁이 아니라 타협과 협상을 통한 노사관계를 정립함으로써 사회발전에 기틀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휴진파업 자제해야 한다

오는 7월 의약분업 시행을 앞두고 정부와 의료기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크게 우려할 일이다. 의약분업 시행방안에 이의를 제기하고 집단행동을 선언한 의사회가 이를 실행에 옮길 태세여서 진료체계에 엄청난 문제가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말 왜곡된 의약분업 분쇄를 위한 전의료인 규탄대회를 갖고 하룻동안 휴진파업을 한 바 있는 의사회는 보험수가 현실화와 약사들의 임의조제 근절책 마련 등 7개항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오는 16일부터 진료거부 등 집단행동에 돌입한다는 입장이다. 대정부 투쟁을 위해 수원 등 지역별로 젊은 의사를 주축으로 비상대책위도 결성해놓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는 환자를 볼모로 한 진료거부행위는 명백한 의료법 위반으로 관련법에 따라 강력히 제재할 방침이어서 정부와 의료기관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의사들이 의약분업의 한 주체로서 그 방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진료거부라는 집단행동은 그 행동방식에 있어 적지않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사실상 ‘휴진파업’이라는 수단을 택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게는 당치도 않은 일이다. 국민건강을 강조하면서 환자들의 건강권을 일시적 또는 상당기간 봉쇄한다는 것은 스스로 ‘의사’이기를 포기하는 행위라는 비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의약분업 결정과정을 보더라도 의사들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오는 7월 시행이 확정된 의약분업안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의·약단체의 이기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시민단체 통일안이 골격이 됐고, 심의과정엔 의사와 약사들도 참여해 마련된 것이므로 또 발목을 잡으면 직역(職域)이기주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37년만에 시행되는 의약분업은 의료서비스 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인 만큼 첫술에 배부를 리 없고, 시행과정에서 예상못한 착오가 빚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문제는 그때 보완하면 될 것이다. 이제 의약분업은 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명제다. 의약분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약업계가 집단이기주의를 버리는 일이 시급하다.

조령모개

작은 정부를 표방했다. 구조조정을 한다고 했다. 재경부와 통일부 장관의 부총리제를 없앴다. 총리실의 조정기능으로 없앤 부총리 역할을 대신한다고 했다. 2000년 들어 신년 벽두에 한다는 것이 이를 뒤엎는 일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신년사가 많은 희생을 낸 정부 구조조정을 번복하는 것이었다. 그럼 그간의 희생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재경부와 교육부 장관의 부총리제 부활은 한마디로 조령모개다. 여기에 한술 더 떠 대통령직속의 여성특위를 여성부로 신설한다고 했다. 잘은 몰라도 세계 어느나라 정부조직에 여성부가 있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다. 여성전담부처가 없어 여성문제의 개선에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비서실도 축소시킨 직제를 슬금슬금 늘리더니 이젠 정부조직을 늘린다. 이같은 몸집 불리기는 국민의 세부담으로 돌아간다. 일언반구의 국민들 눈치는 살피지 않고 속된 말로 ‘누구 맘대로’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중앙정부부터 이렇게 나오면 각급 자치단체에서 구조조정으로 줄인 기구를 부활하겠다고 나설 경우 무슨 말로 막을 것인가. “나는 바담풍이라고 해도 너희들은 바람풍이라고 해야 한다”고 했던 어느 시골 훈장처럼 말할 것인지. 국민과 한번 약속하고 제도를 고쳤으면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극복해 내는 것이 정권의 참다운 권위다. 조령모개가 되어서는 신용을 잃는다. 재경부와 교육부 장관이 부총리가 아니고 여성부가 없어서 정부가 일을 제대로 못한다고 볼 사람은 별로 있을 것 같지 않다. /白山

장애인 의무고용 지켜야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은 올해부터 고용부담금을 상향조정키로 했다는 정부의 방침은 진일보한 장애인 복지정책이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은 상시근로자의 2% 이상을 장애인으로 의무 고용토록 돼있으나 현재 사업장 평균 장애인 고용비율은 0.54%로 너무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장애인 고용촉진을 위해 고용비율이 1% 미만인 업체에 고용부담금을 1인당 최저임금의 60%(21만6천원)에서 70%(25만3천원)로 인상한 것이 그래서 이해가 간다. 그러나 사업장이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고용부담금 상향 조정으로만 장애인 고용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기업체들이 상시근로자의 2%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해야하는 의무규정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노동할 자격과 의사가 있는 모든 국민에게 고용기회를 창출해주어야 하는 것은 혼합경제체제 국가가 이행해야 하는 가장 큰 책무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90년 법제정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고용을 위한 정책기반을 마련하였고 법추진을 위한 기구로서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이 설립됐다. 법제정의 기본취지에 따라 91년에는 300인 이상 고용사업장에 대하여 1%의 장애인고용을 의무화했고, 92년에는 1.6%, 93년에는 2%의 고용률을 규정하여 장애인 고용의무 비중을 점차 확대했다. 그러나 추진실적은 고용의무제도 실시 첫해인 91년의 경우 고용의무인원의 43%인 9천1백명 수준에 머물렀다. 추진실적이 기대에 못 미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문제는 장애인 고용에 대한 기업체와 사회전반의 인식이 크게 부족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질병,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장애인 문제는 언제 내 문제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앞으로 장애인 고용문제를 생각할 때 장애인 일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아울러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올 7월부터 시행되는 공무원 신규채용시 장애인 의무채용비율 5%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동안의 의무채용비율 2%는 너무 형식적이었다. 만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는다면 기업체에 고용부담금을 물리게 할 권한이 없다.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착실히 시행될 때 진정한 복지사회는 이룩되는 것이다.

대통령과 총재의 차이?

대통령과 집권당 총재의 차이를 한마디로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렇다해서 같은 것은 아니다. 분명히 다르다. 대통령은 집권당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다. 국민의 대통령이다. 이를 혼동할 경우 정치가 혼탁하고 나라가 시끄럽다. 신년사는 대통령으로서 그 해의 시정방침을 국민에게 밝히는 국정백서다. 연두기자회견 같은데서 집권당 총재로서 질문받은 내용에 답변하는 것과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년사는 오직 대통령의 입장에서만 국정지표를 피력해야 하는 것이 상궤다. 김대중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신당을 언급한 것은 그같은 상궤를 일탈했다. ‘국정이념을 실현하고자 신당을 창당한다’고 말한 것은 국정지표와 정권목표를 혼동했다. 대통령의 위치에서 집권당 총재의 모습을 보인 것은 불가하다. 신당창당은 정권차원의 작업이지 국정일 수가 없다. 정권목표의 신당을 대통령의 위치에서 운운하는 것은 대통령의 직무를 무기삼아 엄호하는 것으로 보여져 심히 부당하다.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위해 신당 의석안정의 정치수단으로 언급할 수 있다는 강변은 어디까지나 강변이다. 그같은 얘기는 총재로서 당의 행사에서나 가능하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정당기능과 국가기능을 능히 식별할 줄 아는데 있다. 이를 혼동하면 민주주의가 위협받는다. 대통령과 집권당 총재의 혼선은 전에도 있었다. 역대 정권의 집권자들이 대개는 그랬다. 재야의 김대중씨가 민주화운동을 벌인 것도 그같은 정권의 부도덕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만은 전철을 답습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 그 역시 구태를 못벗은 것은 유감이다. 중임제도 아닌 단임제에서 대통령과 총재 구분의 도덕성이 축적되지 못하는 것은 정치발전의 정체로 불행한 현상이다. 진정, 다가오는 4·13총선이 걱정되면 새로운 면모를 국민에게 보여주는 성찰이 필요하다. 총재가 대통령의 입장에서 신당을 자꾸 들먹이는 것은 공정치 못한 게임으로 국민들이 보기에 썩 보기 좋은 것은 못된다. 신당은 분명히 국민회의 총재가 만드는 정권목표의 작업이다. 국가기관으로써의 대통령과는 어디까지 별개다. 본란이 이를 굳이 언급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수준이 그만큼 낙후돼 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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