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김민지<성남 분당초등3> 작년 작은 아버지 휴가때 양지 리조트에 갔다. 그래서 수영복, 비치볼, 튜브 등을 가지고 갔다. 아빠는 바쁘셔서 데려다 주시기만 하셨다. 양지 리조트에 있는 콘도 앞에 도착 하자 민혜와 작은 어머니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아빠는 금방 가시고 난 오빠와 엄마와 민혜, 작은 어머니는 콘도로 들어 가서 수영복을 챙기고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수영장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난 민혜와 비치볼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미끄럼틀도 탔는데 물을 먹었다. 그래서 이제는 미끄럼틀을 안타기로 하였다. 민혜는 작은 아버지께서 잡아 주셔서 그런지 정말 재미있게 탔다. “민혜야, 미끄럼틀 타는게 재미있니?” “어” 난 심심해서 수영연습을 하고 있었다. 민혜가 미끄럼틀 타는 것이 싫증이 나는지 나에게로 놀러왔다. 한참을 놀다가 기다란 의자에 누워서 쉬기도 하였다. 그때 정말 좋았다. 저녁시간이 되자 오락실과 노래방도 갔다. 캄캄한 밤에는 별자리도 볼수 있었다. 나는 북극성과 북두칠성 등을 찾아 보았다. 그곳은 참 좋은 곳이다. 자전거도 빌려서 탈 수 있고 콘도 안도 너무 넓어 뛰어 놀수도 있었다. 또 놀이방에서 공도 가지고 놀고 미끄럼틀도 타고 엄마놀이도 했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래서 다음에 또 오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는 재미가 없다고 하신다. 그렇지만 아빠께 졸라서라도 양지 리조트에 꼭 오고야 말테야. 꼭 와야지.
‘안네의 일기’를 읽고 이혜연<평택 이충초등6> ‘안네의 일기’는 많은 사람들이 명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안네의 일기’는 안네의 가족이 2년 동안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히틀러를 피해서 은신처에서 생활하는 동안의 일이 잘 드러나 있다. 안네는 그 곳에서 생활하는 때에 우리와 같이 그냥 일기에 자신의 생활을 담았는데,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읽혀지고 있다. 지금 안네가 살아 있었다면, 조금은 부끄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죽었기 때문에 더 자랑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런 전쟁속의 생활을 온 세계인들에게 알렸을 테니까 말이다. 나는 안네가 참 무서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전쟁이 나지 않는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안네는 바로 옆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그런 것을 경험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얼마나 조마조마 했을까? 들키면 바로 수용소에 끌려가서 죽임을 당하니까 말이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느꼈을까를 생각하면 나도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데 안네가 지금 살아 있다면 조금은 창피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렸을 때이더라도 자신의 비밀을 쓴 일기이기 때문이다. 안네는 일기 속에서 이런 생각을 자주 밝혔다. 전쟁이 끝나면 이 일기를 토대로 해서 ‘은신처’라는 제목으로 책을 쓸거라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더 희망을 가졌을 것이다. 안네의 이런 생각이 드러났기 때문에 안네의 아버지도 처음에 책 제목을 ‘은신처’라고 했을 것이다. 안네가 조금만 더 살았더라면 전쟁이 끝나는 걸 보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언니도 없고, 어머니도 없기 때문이다. 전쟁은 무서운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안네의 일기’를 통해서 전쟁의 무서움을 알게 해준 안네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일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 같아서 나도 일기를 앞으로 안네처럼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오후에는 서울과 평양에서 역사적인 겨레 상봉이 이루어 진다. 지난 85년 이후 15년만에 재개되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이번 상봉은 지난 6월 15일 남북정상간의 발표된 공동선언문의 구체적 이행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 다른 사항의 실천에 있어서도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과거와는 달리 이산가족들은 항공기를 이용, 사상 처음 합법적으로 서해상의 휴전선을 넘어 서울과 평양을 방문하여 50년이상 떨어졌던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남북교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산가족의 슬픔은 겨레의 슬픔으로서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우선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이산가족의 슬픔은 당사자 이외에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사항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이산가족들이 연로한 세대이기에 조속한 시일 내에 해결되지 않으면 사실상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때문에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최우선 과제로 삼기를 남북 양측에 강력히 요구한다. 이산가족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가족간의 상봉이다. 그러나 지금같이 100여명 수준으로 상봉을 추진해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지난 주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 언론사장단에게 남북이산가족 상봉을 9∼10월에도 추진할 것으로 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정도의 수준으로는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수십만명의 가족 상봉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 기회를 대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산가족 상봉을 확대하는 방안은 우선적으로 판문점에 면회소를 조속 설치하는 것이다. 이는 남북정상회담과 장관회담에서 이미 합의한 사항이기 때문에 양측이 실무적인 접촉을 통하여 구체적인 사항만 합의하면 큰 어려움이 없다. 따라서 면회소의 조속 설치를 위한 실무자회담이 속히 추진되어야 한다. 면회소에서의 이산가족 상봉은 자유롭게 이루어져야 하며, 또한 많은 신청자가 면회할 수 있도록 매일 실시되어야 한다. 이산가족을 위한 면회소가 조속 설치되어 한(恨) 많은 이산가족들의 슬픔이 다소나마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담화는 남북관계개선에 강한 의지를 발견케 한다. 6·15 공동선언 이전엔 김위원장의 생각을 들을 기회가 없었으므로 잘 알수 없었다. 지난 12일 평양목란관에서 가진 방북 언론사 사장단과의 오찬간담회는 평양정상회담에 이어 두 번째 김위원장의 생각을 듣는 기회가 됐다. 약 3시간 30분동안에 걸쳐 예정시간을 훨씬 넘겨가며 가진 간담회는 비록 깊이는 있을 수 없었으나 폭넓은 대화의 자리였다. 가히 파탈의 면모를 보인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담화내용은 적극적인 변화의 의욕을 보여주었다. 군부의 반대를 물리친 직항로 이용의 언질, 로동당 강령의 과격 및 전투적 표현의 언급 등은 혁명 1세대 등과의 감각차이를 드러내는데 주저치 않았다. 판문점을 50년도 열강각축의 상징으로 보아 기피하는 성향 또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과거에 대한 계산(집착)은 그만하여 덮어놓을 것은 덮어놓고 그보다 통일의 대업을 강조한 것은 과거보단 현재, 현재보단 미래의 중요성을 의미한다. 과거의 통일문제는 남북 양측의 정권에 모두 잘못이 있었다는 과감한 지적은 특히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도 대미수교, 대일국교 정상화와 미사일문제에 민족정신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이밖에 개성개방, 경의선복원 착공일자 촉구 등 여러분야에 걸친 대남문호의 빗장열기는 종전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일이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이같은 변화는 오히려 듣는 이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이때문에 대남선동선전용으로 보는 사회 일각의 의구심이 없지 않다. 남조선혁명이라는 절대불변의 기본전략속에 구사하는 무한가변의 전술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당장 중요한 것은 어떻든 남북냉전구도의 해빙, 민족화해의 대의명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변화를 의심하기보단 그대로 수용, 협력관계를 가져야 하는 것이 민족적 염원의 지상과제인 것이다. 북측은 올 가을에 당대회를 열어 로동당규약을 개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조선의 적화통일을 규정한 당규약 전문도 바뀔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되도록이면 이를 개정, 의구심을 없애는 실체적 증후를 보여주면 좋겠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조속한 서울답방 역시 호상간 신뢰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두정상 만남이 반세기가 넘도록 얼룩진 동족간의 불행에 종지부를 찍는 새로운 민족사의 희망이 되기를 거듭 간곡히 기대한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삼각산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그날이 오면’의 시 한구절이다. 민족소설가이며 시인인 심훈은 이토록 간절히 ‘그날’을 염원했으나 끝내 광복을 못본 채 1936년 서른 다섯의 나이로 요절했다. 1910년 8월 22일 일본에 의해 대한제국(조선조)이 강제 병합된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보기까지의 36년은 끝없는 광복운동의 연속이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 삼국동맹국과 싸웠던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소련 등 연합국의 승리가 안겨준 선물이 광복으로 알려졌으나 광복운동의 주체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던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강제합병 직후 대한제국의 해산된 군대가 중심이 되어 한동안 제국회복운동을 벌인 복벽운동을 비롯해 1919년에는 마침내 200만 민중이 들고 일어선 3·1독립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3·1운동은 국내인사의 해외망명, 해외독립운동가들이 결집하여 선포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따라 그해 4월 10일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는 계기가 됐다. 이시영의 신흥무관학교, 이동휘, 김좌진, 홍범도 등의 독립군과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맹활약을 보였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영향으로 민족세력이 민족주의 노선과 사회주의 혁명노선으로 양분되면서 공산주의자들도 크게 활약한 이 무렵의 광복운동은 민족주의자나 공산주의자끼리도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광복의 기쁨속에 비운의 38도선이 그어져 남북으로 분단된 것은 미·소 점령군의 군사편의에 의했던 것이 그대로 굳어져 무려 55년이 흘렀다. 이로인해 6·25 전쟁을 치르는 등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 설움을 안고 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이산가족상봉도 한반도에서만이 볼 수 있는 세기적 비극이다. 통일의 제2 광복절을 맞이할 날은 과연 언제쯤일는지. /白山
새 연필 정정우<수원 신곡초등3>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서 한우리 독서문화원에 가는 길에 새 연필을 샀다. 연필이 다 몽당연필이 되고 조금뿐이 없어서 샀다. 연필이 몽당연필로 되어서 못 쓰는 볼펜에 끼어서 쓸려고 했더니 엄마께서 못 쓰는 볼펜이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몽당연필로 썼다. 그러다가 오늘 연필 한 다스를 사게 되었다. 토끼 연필로 샀다. 연필 한 다스를 샀으니 오늘 깎아서 내일 학교에서 쓸 거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연필 한 다스를 샀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연필 한 다스를 내가 직접 사본 적도 처음이다. 그것도 포함돼서 기분이 좋은가보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만약에 나중에 연필 한 다스를 샀다면 그 때도 똑같을 것이다. 오늘처럼.
병원 장재희<성남 서현초등1> 매일 코가 아프고 또 지난번에 미끄러 졌을때 혀를 다쳐서 병원에 다닌다. 한신 상가에 있는 이재민 이비인후과에 다니는데 오늘도 혼자서 갔다. 병원에 내가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내이름을 말했다. “장재희에요.” “알았다. 너희 아버지 성명이 장일성 맞지.” “네.”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선생님께서 이상한 기계로 약을 넣고 치료를 해주셨다. 그 치료를 받으면 코가 시원하다. 내가 선생님에게 오늘도 주사를 맞느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하셨다. 그리고 물리치료를 받고 주사실로 갔다. 주사실로 가니 커다란 주사로 엉덩이에 주사를 놓았다. 조금은 아팠지만 꼭 참았다. 약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
야구장 김민지<성남 분당초등3> 2000년 4월 5일 수요일 날씨 맑음.오늘 우리식구와 유현이랑 세형이 오빠 식구와 잠실 야구장에 갔다. 두산과 해태가 하는 경기를 보려고 갔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선수 정수근 선수도 있었다. 제일 첫번째 공은 개그맨 이휘재 아저씨께서 던지셨다. 응원단이 춤을 출때는 염경환 아저씨께서도 여자옷을 입고 응원단 언니들과 재미있게 춤을 추셨다. 야구를 볼때 야구선수들이 실수를 하여서 점수를 얻지 못했다. 잘 할수 있었는데… 하지만 내가 응원하는 두산팀이 2대1로 이겼다. 엄마께서 장원진선수 덕분에 이겼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내가 너무 열심히 두산을 응원해서 이긴것 이라고 생각했다. 운동장을 청소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주위에 쓰레기가 없나 살펴보았다. 그런데 나의 주변에는 쓰레기가 없었다.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열심히 응원을 하였다. “정수근 안타”“장원진 홈런”이라고 외쳤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외쳤다. 해태팀은 두산팀이 지고 있을때 얼마나 좋아 하던지 그래서 우리팀이 “해태 꺼져버려”라고 외쳤다. 경기가 너무 빨리 끝났다. 이제는 행운권 추첨 시간이었다. 그 번호에 당첨이 되면 마티스차를 받을 수 있었다. 아깝게도 우리는 해당되지 않았다. 마티스를 받지 못하니 안타까웠다. 경기가 끝나고나니 두산이 이기지 못할 까봐 떨렸던게 다 없어졌다. 쉬는 날에 식구들과 오니 정말 즐거웠다. 다음에 또 왔을때도 이겼으면 좋겠다. 정말 즐거운 날 이었다.
우리 엄마 박경아<평택 이중초등3> 우리 엄마는 요리사 요리사 처럼 음식을 잘 만들지요 우리 엄마는 깨끗한 박사 빨래도 깨끗이 청소도 깨끗이 설거지도 깨끗이 무엇이든 깨끗하게 만드는 깨끗한 박사
사진첩 이수빈<수원 조원초등4> 사진첩엔 친구가 들어 있어요. 방글방글 웃는 친구가 있어요. 사진첩엔 가족이 들어 있어요. 싱글벙글 웃는 가족이 있어요. 사진첩엔 추억이 있어요. 과거를 전시해논 꿈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