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경제자유구역과 송도

일반적으로 휴가를 의미하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 심신을 달래며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는 개념으로 읽힌다. 보통 도심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거나 자연 속에서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 휴가의 개념이 일찍 확립된 서구사회에서는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휴가가 자리 잡고 있다. 몇 년 전부터 호캉스라는 조어가 등장했다. 호텔과 바캉스라는 단어의 합성어로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휴가기간이 겹치다 보니 전국이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래서 비용을 더 내더라도 국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아니라면 몇 년 전부터 도심의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다. 쾌적한 숙박시설에서 심신을 달래는 것이 휴가라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휴가 대신 도심의 호텔에서 머물며 시간을 보내는 휴가를 호캉스라고 한다. 얼마 전 휴가를 국내 휴가지나 국외로 갈까 고민하다 멀리 떠나지 말고 지역 탐방을 겸할 수 있는 휴가를 갖기 위해 호캉스 즉, 송도신도시의 호텔로 정했다. 그동안 송도신도시에 여러 번 회의나 행사 때만 가봤기 때문에 송도를 좀 더 자세히 볼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 휴가기간을 활용하며 호캉스라는 조어가 뜻하는 것처럼 송도의 호텔에서 2박 3일간 머무르며 맛집 투어를 겸해 도보로 송도의 여러 곳을 둘러봤다. 송도의 센트럴파크와 국제상가를 목적으로 조성된 커널워크, 국제업무지구, 경제자유구역이 아닌 신도시로 보이는 대규모 아파트단지, 채드웤 스쿨과 현대아울렛, 큰 기업이 아닌 대부분의 작은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곳을 둘러봤다. 송도의 인천경제자유구역은 외국인 투자기업의 경영환경과 생활여건을 개선하고, 각종 규제완화를 통한 외국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외국기업 경제활동의 자율성과 투자유인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특별경제구역을 의미하며, 2003년 인천을 시작으로 전국 여러 곳이 조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송도의 경제자유구역에는 외국기업의 유치가 그리 많지 않다. 일부 있어도 소규모이거나 국내법인과의 합작법인이다. 그것도 지분 일부만 투자한 사례들이 대다수다. 또한 대규모의 일반 아파트단지와 백화점들이 우후죽순처럼 매장을 설립하거나 계획을 갖고 있다. 결국 송도신도시를 둘러보게 되면 경제적 효과가 발생하는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가 아니라 그저 일반적인 송도신도시만 보인다. 작년부터인가 송도신도시가 송도국제도시로 명칭이 바뀌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의 목적에 맞는 성과들이 나타나야 송도가 단순한 신도시가 아니라 경제자유구역에 맞는 송도국제도시가 될 수 있다. 국제도시로서의 내용이 부족함에도 인위적으로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송도의 가치가 오르는 것은 아니다. 앨버트 허쉬만(AlbertHirshman)은 불균형성장 이론에서 “거점지역의 성장 초기에는 주변지역의 사람과 자본을 흡입함으로써 역류 효과가 발생하고, 15~20년이 지난 후에야 거점지역의 성장이 주변지역에 확산하는 파급효과가 발생한다”고 한다. 2003년 법제화된 인천경제자유구역은 구도심의 세원을 본격적으로 투입한 지 올해로 15년이 되었다. 그러나 구도심의 침체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쯤이나 균형성장을 이룰지 모르겠다. 곽경전 前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함께하는 인천] 국가의 존재 이유와 인권감수성

지난 4일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최영애 위원장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으며, 인권교육과 홍보활동을 통해 사회 전반에 인권 감수성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인권감수성은 한마디로 인권 문제가 개재된 특정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의 복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인식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인권감수성의 개념은 인권에 대한 지식이나 기술, 태도가 아니라 인권 관련 상황을 해석하고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을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의 인권의식과는 차별화되는 개념이다. 인권의 한자말 ‘권’ 자는 ‘권리 권’으로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정의할 수 있지만, 또 다른 한자말은 ‘저울추 권’이다. 법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각 나라마다 법원에서 정의의 여신이 한 손에 경전이나 칼을, 또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다. 또한, 특이한 점은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감는 경우도 있지만, 눈을 뜨는 경우가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은 눈을 뜨고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을 법 앞에 평등하게 대우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눈을 떠서 형평성 있게 대우하라는 뜻이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이 있기 때문이며, 국가는 국민을 차이와 차별 없이 행복하게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일본 오사카에 연수를 갔다 올 기회가 있었다. 오사카는 노인인구가 28%가 넘는 초고령사회가 됐다. 오사카뿐만 아니라 일본은 소득에 상관없이 모든 노인들에게 70~80만 원의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연령이 올라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일본은 65세가 되는 노인 시점부터 도리어 자살률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세미나를 마치고 주제발표를 했던 일본 공무원에게 일본이 경제 대국 2위에서 인구 고령화와 생산 및 경제활동인구 감소로 서열이 점점 낮아지는 것에 대한 국가적 대책을 물었을 때, 그는 오히려 경제 대국 서열을 매기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반문했다. 국가는 국민의 행복이 최우선 과제이고 목표이지, 경제문제는 국민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요인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늘어나는 노인인구와 함께 그들에게 지급되는 연금이 급격히 상승하기는 하지만, 그 연금은 지금까지 일본을 경제 대국으로 만들어 준 보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후생성 담당 공무원의 당찬 답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과 발전이라는 경제논리 덫에 잡혀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뒤로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기에 지위 또한 대통령 직속이 아닌 독립기구로서 그 고유하고 독립적인 가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권력에 의해 그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인권 또한 자국민의 행복이 최고의 가치이므로 지역사회와 국민에게서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또 이를 어떻게 제도나 정책으로 또는 개인의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갈지 생각하는 인권감수성은 중요한 문제이다. 정희남 인천시 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함께하는 인천] 진정한 군인

지난달 31일 국군외상센터 기공식에서 대한외상학회를 대표해 축사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 중 청중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미국 대통령이 아프면 어느 병원에 가는지 퀴즈를 냈다. “부상병을 본격적으로 헬기로 이송하기 시작한 전쟁은 언제였을까요?” 여자 대령이 손을 번쩍 들었다. “1950년도 한국전쟁입니다.” 정답이었다. 한국전부터 헬기를 이용한 환자후송 체계와 혈관수술기법의 발전으로 팔다리에 상처를 입은 환자가 다리나 팔을 잃지 않게 된 것을 아는 청중들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욱 고무돼 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군이 전열의 맨 뒤에 수백 대의 ‘날아다니는 구급차’들을 배치해, 병사들은 혹시 다치더라도 의무부대가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높은 ‘사기’를 가지고 용감하게 전장으로 나갔다는 역사를 말해줬다. 또 군인 환자들이 민간병원보다 훨씬 신뢰하며 제일 먼저 찾아가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선 ‘전장에서 살아오는 병사를 다시 전사(戰士)로 부활시키겠다’는 의료진의 의지와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군인은 학자와 마찬가지로 명예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군 발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기’라고 말하고 끝맺었다. 폐회사 직전에 식순에 없던 연설이 추가됐다. 맨 앞줄 복도 측에 앉아있던 내빈이 마이크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듯 지팡이를 짚은 초로의 신사는 자리에서 뒤돌아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데요. 저는 2000년도에 지뢰를 밟아 이 병원으로 실려와 수술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치료받았으며, 지금 착용하고 있는 의족도 여기서 만들었습니다. 제 후배들은 새로 짓는 이 외상센터에서 더 좋은 치료를 받고 다시 복귀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자 오래 전에 접했던 뉴스가 생각났다. 비무장지대 수색 대대장 인수인계 시 후임 대대장이 지뢰를 밟아 다치자 “위험하면 내가 간다”며 부상자를 구하려다가 자신도 지뢰에 다리를 잃은 그 중령이 기억났다. 청중들은 모두 일어나 크게 박수를 쳤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고, 부상에서 재활해 의족과 지팡이에 의지하고서도 후배 군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석한 그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다.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런던 그리니치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에서 본 영국 화가 가이 헤드가 그린 ‘해군소장 넬슨 경’이 내내 눈에 어른거렸다. 1794년에는 코르시카 섬 점령 때 오른쪽 눈을 잃고, 1797년 테네리페 해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오른팔 없이 오른쪽 눈은 붕대로 동여매고 거기서 흐르는 피가 어깨로 흘러내리는 가련하고도 인간적인 모습이다. 오른팔을 잃고 감염으로 고생하기는 했으나 넬슨 제독은 1년 뒤 다시 함대를 지휘해 나일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휴전선에서 다리를 잃은 중령도 재기해 의족을 착용한 불편한 몸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정년퇴임을 했다. 역경을 극복한 진정한 군인들에게 존경을 바친다. 진정한 군인은 오직 명예에 의지해 산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환경과 공존, 그리고 가이아 이론

▲ 곽경전 일반적으로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첫 이미지가 천연의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이미지다. 그 중의 제주도의 아름다운 비자림로는 지난 2002년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제1회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됐다. 몇십 년 동안 잘 가꾼 삼나무 숲을 지나는 2차선 도로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드라이빙 코스에 속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가장 아름다운 도로 중 하나로 선정한 것이다. 이러한 청정 이미지의 제주도가 얼마 전부터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비자림로의 2차선을 왕복 4차선으로 확장하고자 30년생 삼나무를 베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베어내는 작업공간 사진을 보면 왕복 4차선을 훨씬 넘어서는 공간의 삼나무까지 베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도로를 파괴하고 도로를 확장하는 것은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과 차량의 이동시간 줄이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코스로 가리왕산을 정하고 이를 위해 500년 된 나무들도 가차 없이 베어냈다. 가리왕산은 조선 초기부터 임금의 명으로 보호하게 되어 있던 산이었다. 이처럼 가리왕산은 다양한 생태의 보고였으며, 환경단체와 일반 시민들의 강력한 반대여론이 있었음에도 칼날에 의해 배어나 간 것이다. 올림픽위원회조차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가리왕산으로 코스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와 조직위는 가리왕산의 희귀 생태환경에 큰 상처를 낸 것이다. 비록 평창에서 거리가 있지만 용평스키장이나 무주스키장 들을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굳이 가리왕산의 생태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진행한 것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러한 환경파괴 행위가 인천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경제청은 영종2지구 개발계획 초안에 대해 환경부에 협의를 요청하며 갯벌매립 추진을 확정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2013년 영종2지구와 인접한 영종도 2단계 준설토기장 협의 조건으로 최대한 넓은 습지생태공원 조성을 요구했었다. 이 지역이 알락꼬리마도요와 저어새, 도요물떼새 등 멸종위기조류의 세계적인 서식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송도신도시, 청라지구, 영종도와 수도권쓰레기매립지 등 많은 갯벌이 매립되며 갯벌에 서식하던 생물들이 사라졌지만 더 큰 문제는 바닷물의 흐름이 달라지면서 향후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1972년 영국의 제임스 러브록에 의해 주장된 생태환경 이론이 가이아 이론이다. 가이아 이론에 의하면 지구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이 상호작용하면서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해 나가는 하나의 생명체이자 유기체임을 강조한다. 가이아 이론에서는 인간도 이런 생태환경 체계의 한 일원으로 보고 있으며, 인간의 이익을 위해 생태환경을 파괴할 경우 인류에게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즉 요즘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폭염현상과 지구 온난화 현상 등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제기와 점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굳이 가이아 이론을 거론 않더라도 토목공학이 중심이 된 개발론만이 우리의 주 가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편리함과 편의를 위해 생태환경을 파괴하는 대신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속가능사회를 향해 나간다면 인류 사회가 기후적 재앙을 겪지 않으며 공존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곽경전前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함께하는 인천] 폭염 속 쪽방 노인들을 위한 주거복지 정책 시급하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기온 기록을 연일 경신할 정도로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더위는 우리나라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이상고온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올해만 반짝 기승하는 기이한 현상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 현상과 맞물려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지난 8일 사후관리 차원에서 쪽방에 사는 사례관리 대상인 김 모 할머니를 찾아갔다. 2평 남짓한 할머니 방은 낮인데도 깜깜했다. 창문이 없는 데다 더울까 봐 할머니가 전등을 꺼 놨기 때문이다. 온도계로 재보니 방 안 온도는 바깥보다 2.5도가 높은 36.5도였다. 김 할머니 방에는 선풍기 1대가 돌고 있었지만 가열된 모터의 더운 바람만 뿜어져 나왔다. 방 한쪽의 냉장고에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정부가 폭염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경제력이 취약한 독거노인 등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복지부는 지난달 11일 폭염에 취약한 노인 보호대책을 발표하면서 동사무소와 은행·교회 등을 무더위 쉼터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인천시 또한 이달 2일 폭염 장기화로 인명피해가 우려된다며 취약계층과 시민을 대상으로 특별관리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번 폭염 특별관리대책은 쪽방촌 주민과 독거노인들이 냉방시설이 잘 갖춰진 무더위 쉼터에서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셔틀차량을 운행하고, 시는 간부공무원 지역전담제를 실시해 10개 군·구의 폭염 현장을 점검한다는 계획을 핵심내용으로 담았다. 여름철 도심 열섬화 방지 대책으로 가장 뜨거운 시간인 오후 2~5시에 살수차를 총동원해 도로 살수도 실시키로 했다. 하지만 폭염대책은 이러한 한시적인 대책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노력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보호가 필요한 노인들에게 생계지원 및 보충적 소득보장을 위한 수급비 증액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20만∼30만 원씩 매월 지급되는 월세비용과 공공요금 등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노인들을 위한 맞춤형 전용주택 마련이 절실히 필요하다. 보통의 노인들은 나이가 들어도 자신이 살아온 곳에서 떠나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것을 원한다. 그래서 노인이 고향이나 가정을 떠나 요양시설에 입소하게 될 경우, 최대한 살던 곳과 비슷한 분위기나 구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환경을 만들기 위해 일본은 15년 전부터 ‘유니트 케어’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가정과 비슷한 환경에서 거실을 공유하고 입소자를 소그룹으로 묶어 개인의 사적공간을 존중하는 케어 방식을 말한다. 일본의 유니트 케어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형 노인전용주택 및 아파트는 노인들에게 작은 평수에 소규모로 공동생활 할 수 있도록 한 공간이다. 5평 규모의 개인 생활공간과 그 이외의 거실과 주방과 같은 공동생활 공간은 월 10만 원 내외의 임대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노인 전용주택을 통해 우리 노인들은 개개인의 사생활을 존중받으면서 노인들 간의 건강한 상호작용을 통해 정서적 지원과 궁극적으로 노인 삶의 질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함께하는 인천] 저자와 독자

어제 모르는 새내기 성형외과의사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최근에 발표한 눈꺼풀 처짐 수술방법 논문에 대해 자신이 사용하는 방법과 유사한 점과 그가 가지는 의문점에 대해 질문했다. 흥미를 가지고 논문을 읽어준 후배 의사에 성실하게 답해야 하기에 우선 수술을 담당한 공저자에게 메일을 전달했다. 나는 내가 쓰는 논문이나 칼럼들을 통해 독자들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몇 주 전에 관람한 영화가 생각났다. 백승빈 감독의 ‘나와 봄날의 약속’은 지구 종말을 예상한 외계인들이 4명의 인간들을 찾아가 벌이는 기괴한 생일파티의 네 가지 에피소드로 이뤄진 독립영화였다. 그 중 세 번째 에피소드에는 평생 연애도 제대로 한 번 못해 본 ‘의무’라는 이름을 가진 영문과 교수가 등장했다. 강의실에는 젊은 여자가 혼자 햇빛을 받으며 있다. 불치병에 걸린 그녀는 ‘노래와 소네트’를 읽고는 이 아름다운 시들을 번역한 그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그녀의 부탁대로 그는 교정을 안내해 주며 둘은 도서관과 강의실을 돌아본다. 한 강의실에는 칠판에 영시 등으로 채워져 있는데, 원을 그리는 컴퍼스도 하나 그려져 있었다. 이 배경으로 그들은 그가 번역한 시에 나오는 구절들을 주고받는다. “우리 두 영혼은 하나여서 나는 가야 하지만, 단절이 아니라 공기처럼 얇게 쳐진 금박처럼 확장될 뿐이오. 곧은 컴퍼스의 다리가 둘인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둘이오; 그대의 영혼은 고정된 다리여서 중심에 있지만, 다른 다리가 멀리 돌 때엔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그 다리가 집에 돌아오면 다시 곧게 선다오.”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컴퍼스로 상징되는 시에 대해 찾아봤다. 영화에서 영시를 번역한 교수와 애독자가 주고받은 구절들은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던의 ‘고별사: 슬픔을 금하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세대들은 한 번쯤 읽었을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도 이 시인이 출간한 시집(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에서 제목이 유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일 뿐이다. 누구를 위해서 저 조종(弔鐘)이 울리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일지니.” 연구자로서, 묵묵히 연구할 때, 그 누가 읽어주길 바라며 투고할 때 나는 바다에 떠 있는 한 점 섬이라고 생각한 때가 많았다. 독자의 편지를 읽거나 논문이 인용될 때, 나는 섬이 아니라 육지의 일부라고, 저자와 독자는 둘이 아니라 몸통으로 연결돼 있으며 서로를 향해 귀를 기울이는 컴퍼스의 두 발이라고 느끼게 됐다. 메일이 또 하나 왔다. 모 대학병원의 조교수가 여러 해 전 내가 발표한 것과 유사하게 환자의 수술부위에 물이 찼다고, 논문에는 기술되지 않은 나의 경험을 물었다. 외래 진료가 끝나면 연구실에서 투고한 옛날 파일을 찾아보련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문화지구의 허와 실

최근 들어 각 지역별 문화의 프레임을 내건 문화의 거리 등이 광역단체, 지자체별로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지역문화의 정체성과 지역경제 활성화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그 가치성은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지역의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무형의 가치와 유형의 가치가 조화를 이루고 역사와 전통을 지닌 특화된 미래의 유산으로써 보존되고 발전돼야 한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 한다. 자본소비의 형태가 바뀌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그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도로 및 기간시설의 확충을 통해 새 단장을 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서울의 인사동은 한국 근현대 미술의 산실로써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 멀게는 조선시대 화가를 양성하고 선발하던 도화서로부터 일제 강점기 고미술품 시장의 형성과 1970~80년대 화랑과 표구사 등의 상가가 형성되면서 대다수 화가의 등용문과 중견작가들의 작품 전시로 성황을 이루었다. 1997년 ‘차 없는 거리’ 지정과 2009년 재정비 사업으로 주말이면 일반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인사동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했다.과거 미술인과 미술애호인의 특화되었던 인사동 거리는 일반인들의 유입과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로 일주일 내내 생기를 띠며 상권의 활성화에는 기여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사동의 상징이었던 1층에 위치한 화랑과 화방, 각종 재료가게들은 높은 임대료 탓에 하나 둘 문을 닫게 되고 그곳에 액세서리 매장들이 들어서며 박리다매의 저가의 상품만을 파는 거리로 변모되고 있다. 이제 인사동에는 한국의 골동품을 찾아보기 어렵고 그나마 값싼 중국산으로 영업을 하는 어쩌면 외국관광객에게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외국관광객들은 인사동을 찾을 때 인사동만의 가치를 보고 사기 위해 방문하지만 만원짜리 중국산 상품들의 진열장으로 변모된 인사동 거리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2002년 문화지구로 지정됐지만 그 취지에 무색하게 인사동은 ‘만원의 거리’로 전락되어 전혀 문화지구로서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다. 고급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한 세기, 반세기에 걸쳐 이룩한 인사동은 재평가되고 그 가치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문화를 모르는 문화정책은 문화 말살정책과 다를 바 없다고 본다. 경제의 논리만을 앞세우기보다 진정으로 그 가치성을 들여다봐야한다.필자의 눈에만 문화지구인 인사동 거리가 ‘만원의 거리’로 보이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이 어디 인사동뿐이겠는가? 근시안적인 안목으로 한번 잘못된 정책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함을 명심해야 한다.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광역단체나 지자체의 문화지구 지정은 인사동의 사례를 반면교사 해야 할 것이다. 문화를 만들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파괴는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은 한 가지만 생각하면 어쩌면 쉬울 수 있다.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황태현 미술가

[함께하는 인천] 환경정책을 우선하는 새로운 인천

연일 무더위가 전 세계를 찜통과 같이 달구고 있다. 유난히 극심한 더위는 올해에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 누적된 지구 온난화의 절정으로 나타난듯하다. 그동안 이러한 환경문제는 지구적인 관심으로 고조되어 세계적 차원의 변화와 노력을 하였으나 그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같은 상황에서 동시에 개별도시는 환경행정에서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됐다. 우리나라는 특히 1995년 지방자치제의 전면적인 실시와 개발연대의 종식으로 생활환경과 지구환경에 대한 도시정부의 책임성이 한층 강화됐다. 지역주민의 삶의 질 제고와 소득증대에 따른 새로운 가치 추구에 대한 책임성이 증대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환경정책의 효과성이 약화하는 등의 새로운 과제도 나타났다. 자치단체 간의 치열한 경쟁과 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역개발 공약의 남발은 환경정책의 우선순위가 밀려났다. 아울러 환경정책에 수반되는 비용과 편익 부담의 갈등 및 환경관련 공익시설에 대한 지역이기주의는 더욱더 환경정책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상황이다. 또 다른 여건의 변화는 급속히 전개되고 발전하는 빅데이터 시대의 도래이다. 정보수집 및 시민참여 기반의 다양화와 빅데이터 분석 활용기술 중요성이 증대되고 친환경 융합기술 및 시장이 발달하는 등 새로운 환경행정으로 급변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행정 변화와 더불어 인천은 지정학적으로 환경행정의 요충지로써 오래 묵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서해안의 산업도시로서 중국의 미세먼지가 유입되고, 국가 및 지방산단이 집중되어 주공 혼재의 열악한 생활환경 민원이 상존하고 있다. 수도권 일원으로 쓰레기매립지, 영흥화력 발전소, LNG인수기지, 대규모석유화학단지 등 환경오염시설이 집중되어 있다. 항만공항도시로서 석탄과 곡물의 수송에 따른 미세먼지와 대량수송에너지 소비 그리고 항공기 소음 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 가운데 매립지를 통한 신도시 개발로 갯벌이 훼손되고 인구가 증가하는 등 환경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이처럼 어떤 도시보다도 인천은 환경행정의 부담과 책임이 막중한 도시임에도 그 위상은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개발공약의 남발로 주민의 개발이익 기대심리를 부추겨 환경에 대한 관심을 저하시켰다. 인천시 환경행정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협치를 통해서 환경행정의 시너지효과를 거두려면 맨 끝에 머무는 환경정책의 위상을 맨 앞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도시계획에 부차적으로 수반되는 환경정책이 아니라 환경우선의 통합적 환경도시계획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미 선진국의 많은 대도시에서는 환경기준을 최우선으로 하는 계획시스템을 구축해 도시개발과 정비에 활용하고 있다. 개발 논리를 과감하게 버리고 환경 우선논리의 정립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통합환경행정을 전담하는 부서를 설치해 지위를 격상시키고 안정적인 예산도 확보해야 한다. 환경 행정도 전문성을 통한 정책수단의 고도화를 도모해야 한다. 빠르게 변화는 정보사회에서 주민의 맞춤형 수단을 적절히 모색하여 공급할 수 있는 선진 행정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도시개발이 경쟁력이 아니라 환경이 곧 도시경쟁력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우리 삶과 문화권리

우리 사회는 과거와 비교하면 조금씩 향상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부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회현상에 대해 과격한 행동과 표현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 사회가 자신의 부족감을 채우기 위한 행위로 갈등과 분노, 자신만이 옳고 타인의 의견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형태가 주가 되면 수용과 통합이라는 사회구성체의 기본 방향과도 거리가 멀어진다. 이와 같은 현상은 미래가 불확실하며 사회적 낙오자로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타인보다 우월해야 하며 끊임없는 성과 결과를 요구하는 사회가 구성원들을 한계치까지 몰아세우므로 인해 타인에 대한 수용 등은 존재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너와 나의 통합이나 타인을 수용하며 함께 살아가자는 목소리는 공허하게 울릴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이런 사회가 된 것은 경제발전과 개발논리로 정리되는 정치와 경제가 우리 사회를 결과논리로 지배했기 때문이다. 10여년 전 한 광고의 구호가 돈버세요~ 였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전이라면 상상도 못할 광고내용이었지만, 그런 구호가 버젓이 광고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경제가 아니면 어떤 논의도 힘을 얻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의 1인당 GDP는 선진국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부족해서 갈구하며 사는 세상이 된 것은 여전히 결과논리로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는 우리 삶의 밸런스가 깨진 상태로 우리 삶이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상태로 우리 삶이 지속된다면 우리 스스로 삶 자체를 망가트리며 사회를 망가트릴 수 있다. 유엔은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서 경제와 사회와 더불어 문화적 권리를 규정했다. 문화활동을 통해 사회적 갈등 해소와 소통과 통합, 수용 등의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문화권리가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1966, 12, 16) 유엔은 단순히 문화활동을 소비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화민주주의의 개념처럼 문화소비자에서 벗어나 문화예술의 주체로 참여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우리 자신의 문화권리를 통해 문화예술의 주체로 참여한다면 사회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문화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행사하게 되면 점진적으로 내 삶의 풍경이 바뀔 것이며,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다. 이제 시민 스스로 문화권리의 주체로서 문화예술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시민 스스로 문화예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면 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문화의 자주적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 일반 시민들의 문화의 자주적 역량은 문화예술로의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문화예술을 통해 일반 시민이 문화권리의 주체이자 문화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화사회를 만들어 나간다면, 우리 사회는 통합과 수용의 가치가 작용되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곽경전 前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함께하는 인천] 연명치료와 안락사 사이의 딜레마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는 매년 ‘장례 엑스포’가 열린다. 올해 열린 장례 엑스포에는 ‘안락사 캡슐’이라고 하는 사코가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사코라는 기계는 호주의안락사활동가인 필립니슈케박사와네덜란드의 디자이너 알렉산더바닝크가3D프린터로만든 기계로, 캡슐 안에 들어가 버튼만 누르면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한다. 2년 전 영국의 한 전직 간호사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20년간 노인들을 돌보면서, 노인이 돼 병들어 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면서 안락사를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스위스로 가게 됐다. 그 곳에 가기 며칠 전 가족들과 임종 파티를 하면서 본인의 의지로 죽음을 맞는 아내를 남편이 축복해주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모 대학 간호학과 교수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는 우리사회에서 연명치료 중단 및 의향이 법제화된 것이 의학계에 있어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고 죽음이 임박한 말기환자가 의료기구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가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는 연명치료에 대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웰다잉 법)’이 국회를 통과되기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우리사회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있을 것이고 법 제정으로 안락사가 추진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안락사는 2002년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허용됐으며, 전 세계적으로 벨기에·룩셈부르크·스위스·콜롬비아·캐나다 등 6개 국가에서 합법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미국 내에서는 5개 주정부에서 허용하고 있는데, 북유럽 선진국가를 중심으로 안락사를 허용되는 국가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근래에는 노인 인권에 대해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다보면, 안락사에 대한 인식이 점점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2년 전 사랑하는 아버지를 췌장암으로 하늘나라로 보내 드리면서 시간이 갈수록 밤마다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차라리 그 아픔을 내가 대신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렇게 고통을 호소하시면서, 하나님께서 하루라도 빨리 호흡을 거두어 가셨으면 하는 바람의 슬픈 얘기를 하셨을 때는, 지켜보는 자식으로서 가슴이 시리도록 아픈 마음이 지금도 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사람들은 오래 살고 싶어 한다. 다만 건강하면서도 물질적인 여유와 풍요 속에서 말이다. 그래서 지역사회 노인복지관이나 경로대학 등에서 다양한 웰다잉 프로그램을 통해 마지막 노후를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지를 고민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전문적인 웰다잉 프로그램으로 보기에는 부끄럽고 미약한 수준이다. 또 우리사회 노인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OECD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노인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 속에서 복지 선진국들은 행복한 노후의 마무리 차원의 웰다잉를 위해 안락사를 얘기할 때, 우리사회 노인들은 기본적인 생계를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함께하는 인천] 일면불 월면불(日面佛 月面佛)

만해 한용운의 정신을 기렸던 조오현 스님은 당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복합문화공간 ‘만해마을’을 동국대학교에 기증하시고, 장학재단을 만들어 인제군 주민 자녀의 학비를 지원하는 등, 가진 것을 다 나눠 주시고 훌훌 떠나셨다. 몇 년 전 일이다. 오랜만에 오현스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이번 부처님 오신 날은 흥천사에서 맞으려 한다. 어머니 모시고 연꽃 보러 와라.” 주차장부터 붐볐다. 줄을 서서 절밥을 받아먹고, 주지스님의 법어를 멀리서 듣고는, 물어물어 삼각선원으로 걸어 올라갔다. 고명한 문인들이 모여 있었다. 도지사와 국회의원도 다녀갔다. 큰 선원에 식탁이 준비돼 공양이 나왔다. 오현스님이 물었다. “니는 왜 안 먹나?” “저는 저 아래에서 먹고 왔는데요.” “어무니하고 줄 서서 기다려 먹었나?” “네.” “봐라, 황건이는 명문대 나온 대학교수 박사인데도 저 밑에서 줄 서서 먹었다 아이가?” 목청 높여 좌중에게 한 말씀하시자 내가 도리어 몸 둘 바를 몰랐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하다가는 문득 “나는 이제 갈 때가 되었다. 어서 가고 싶다”고 하셨다. 노스님이 돌아가시고 싶다는 말씀을 하자 좌중이 조용해졌다. “황건이 니는 어떻게 생각하노?” 스님의 말씀에 동의하면 빨리 죽으세요 라는 말이 되고, 오래 사셔야 한다고 하면, 바람에 거스르는 셈이 되었다. 왜 하필 내게 물으셨는지? 중국 송나라 때 간행돼 선종(禪宗)의 중요한 공안집(公案集)으로 내려오는 ‘벽암록’의 한 부분이 생각났다. 옛날 마조스님이 몸이 편치 못했을 때 원주(院主)가 물었다. “화상께서는 요즘 몸이 좀 어떠하십니까?”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다.” 일면불은 장수하는 부처님이고 월면불은 하루를 사는 부처님이다. 조오현 스님은 해설에 ‘일면불 월면불’의 의미는 ‘오늘 죽어도 괜찮고, 내일까지 살면 더 좋고’라고 쓰셨다. 나도 되뇌었다. “일면불 월면불입니다.” 뜬금없는 소리에 좌중은 조용해졌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스님이 주석을 달았다. “일면불 월면불이라고 있어, 내가 벽암록에 소개한 화두야.” 오현스님이 떠나시기 4주 전 경기일보에 쓴 내 글을 읽으시고 이런 문자를 보내셨다. “자네가 62세라니 놀랐다. 사십 중반으로 기억하는데….. 나는 요즘 정신이 왔다 갔다 한다. 설악무산.” 신문을 보고 문상은 다녀왔으나, 수술하느라 다비식에는 못 갔다. 수술 중간 중간에 창문으로 하늘만 내다보았다. 닷새 뒤에 건봉사 연화대를 찾았다. 넓은 황토밭에 타고 남은 검은 숯과 재가 헬기장처럼 동그랗게 펼쳐져 있었다. 구름 한 점 없이 햇살이 따가웠다. 관을 모셨던 자리의 흔적은 있으나 관은 사리수습을 위해서 떠가고 그 자리엔 황토만 보였다. 쭈그려 앉아 고운 재를 손끝으로 느껴보았다. 다비식 때 반쯤 녹은 못들이 손가락 사이에 걸렸다. 못들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돌아오며 만해의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라는 구절을 외웠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예술은 슈츠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모 방송국의 ‘슈츠’라는 드라마가 있다. 로펌의 변호사들의 일상을 담은 내용으로 흐트러짐이 없는 말쑥한 정장차림의 남자배우의 모습에서 옷이 지니는 상징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에게 슈츠는 단순한 옷의 의미에서 벗어나 상대에게 던지는 신뢰를 기반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돈된 모습은 의뢰인에게 사건처리 또한 빈틈이 없을 것 같은 믿음을 심어준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는다는 건 그 사람의 반영일 수도 있다. 슈츠(정장)는 소재, 디자인, 메이커에 따라 가격의 폭이 매우 큰 편이다. 특히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해외명품의 경우 고가에도 불구하고 메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으며, 명품백의 경우 수천만원을 호가하는데도 부유층들은 비용을 지불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왜 대다수의 사람들은 명품을 선호하고 가지려 하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을 지니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가치를 사는 것인지 모른다. 그 가치를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품격을 유지하려고하는 허영의 심리와 맞닿은 결과로도 보인다. 명품브랜드의 경우 브랜드별 컨셉이 명확하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만큼 브랜드의 정체성이 명확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예술의 본고장하면 프랑스를 떠올리게 된다. 이러한 명품들의 탄생배경으로 사회 전반적인 예술 인프라를 들 수 있다. 예술이 일부 특권층의 소유가 아닌 국민 대다수가 향유할 수 있는 공감대의 형성은 예술가들만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사회적 관심과 그것을 유도해낼 수 있는 미래를 내다보는 항구적 정책의 입안과 실천이 요구되어지기도 한다. 가시적 성과에만 치중하는 정책은 불필요한 재원만 충당하고 결과는 미미한 전시행정에 불과할 뿐이다. 수많은 예술가를 보유한 나라들의 국격은 매우 높다 할 수 있다. 오랜 전통을 기반으로 한 유럽, 세계 2차대전 후 새로운 패권국가로 급부상한 미국, 최근의 신흥강국인 중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예술에 대한 관심과 예술가에 대한 투자와 육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자본가의 지원 등은 분명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문화적 동물 이기도하기 때문이다. 슈츠가 외형적 품격이라면 예술은 내면적 품격이라 할 수 있다.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이나 가치를 논하기에 앞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미술인의 입장에서 자성의 시간 또한 절실하다고 느껴진다. 최근에는 종래의 화랑전시를 벗어나 각종 아트페어, 온라인을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대중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일부의 쏠림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그 쏠림현상이 명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와 맞닿아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허영의 산물이건 분명 그들은 가치를 소유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가 스스로 마음을 명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고가의 옷을 구매할 때 까다롭게 체크하는 구매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적당한 관념미와 조형미로 명화로 인정되길 바라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 할 수 있다. 황태현 미술가

[함께하는 인천] 인천 도시정체성을 회복하자

지방선거가 여당인 민주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리는 가운데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곳이 인천이다. ‘이부망천’이라는 신조어가 연일 인터넷 검색 상위에 랭크하면서 인천시민의 자존심을 한껏 상하게 하고 있다. 인천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추락하면서 도시정체성까지 훼손하는 심각한 후유증을 안게 되었다. 이러한 선거잔재를 어떻게 치유하고 구겨진 이미지와 도시정체성을 어떠한 방법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도시정체성이란 다른 도시와 차별화되는 그 도시의 자기다움이다. 도시내적으로는 지속적으로 변하지 않는 요소를 가지거나 그 도시에 대하여 느끼는 자부심 또는 소속감의 정도로 나타난다. 도시외적으로는 다른 도시에 비해 고유하거나 우수한 요소가 존재하여 차별화될 때 형성된다. 따라서 도시정체성을 확립한다는 것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서 이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적절한 방법으로 홍보하고 주민과 외부인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 관건이다. 인천은 1883년 개항 이래 자장면의 탄생과 최초의 감리교예배당, 최초의 천일염전 등과 같이 한국 최초라는 수식어가 가장 많이 동원되는 도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도시정체성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오히려 부정적인 도시로 지목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러한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은 시민의식이며 그 다음은 이를 적극 끌어가는 리더십과 지역정책이다. 시민의식을 언급할 때 투표율은 빼놓을 수 없는 핵심요인이다. 인천의 역대 지방선거 투표율은 1995년 제1회 이후 지속적으로 전국 시·도 중 최하위권을 기록했고 지난 13일 치르진 제7회 선거는 55.3%로 꼴찌를 기록했다. 역대 총선과 대선에서도 예외 없이 13-15위권에 그쳤다. 이러한 낮은 투표율을 인구통계학적 이유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주민의 자부심과 소속감이다. 애착을 가지고 지역의 일꾼을 뽑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축제의 장을 외면한 것이다. 이렇게 낮은 투표율로 표출되는 것을 인천시민의식만 탓할 수 있을까? 급변하는 도시에서 시민의 자부심과 소속감은 강요하거나 추궁해서 인위적으로 형성되는 것도 아니지만 자유롭게 방임해서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 도시간의 경쟁이 심화되는 지방화와 세계화시대에 차별적인 도시경쟁력의 확보는 필수적인 전략이다. 차별적이고 매력적인 도시정체성의 확립을 통해 도시경쟁력을 확보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천은 고도성장의 과정에서 나쁜 잔재만 고스란히 떠안아 왔다. 인천은 다른 어떤 도시에 비해 성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고 변화를 경험하였다. 300만 도시로 성장하면서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은 등한시 해온 리더십과 정책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한 신도시의 양적 팽창은 주민의 90%가 살고 있는 기성시가지에는 허탈감과 위화감을 안겨주었다. 이러고서도 시민에게 자부심과 소속감을 요구할 수 있을까? 시민의 마음속에 진정한 자부심과 소속감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리더십과 정책으로 다가가야 한다. 지도자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절대 다수의 시민이 원하고 시민이 살고 싶으면서 찾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데 모든 능력을 동원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때다.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문화다양성

문화에 대한 개념을 이야기할 때마다 등장하는 개념 중 하나가 문화다양성(Cultural Diversity)이다. 문화다양성은 언어나 의상, 전통, 사회를 형성하는 방법, 도덕과 종교에 대한 관념, 주변과의 상호작용 등 사람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 즉 수용과 공존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문화다양성이라는 개념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생태학 분야에서 비롯되었다. 생물다양성협약 제2조에 따르면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이라는 개념은 “육상·해상 및 그 밖의 수중생태계와 이들 생태계가 부분을 이루는 복합생태계 등 모든 분야의 생물체간의 변이성을 말하며, 이는 종 내의 다양성, 종간의 다양성 및 생태계의 다양성을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개념이 인류역사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져 간 다양한 문화들을 설명할 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초기인류는 점차 세계로 퍼져 나갔고, 서로 다른 다양한 상황과, 지역적, 전 지구적인 기후의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였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인류는 도태되었고, 변화를 수용하여 자기만의 문화를 만들어 낸 인류는 현대 인류 문명으로 이어졌다. 현생 인류에 존재하는 문화의 다양성은 인류 진화의 역사이며 인류 문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 흩어진 많은 인류사회는 시간이 지나며 서로 달라졌고, 이들 중 다수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문화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다. 문화다양성은 개인이나 집단의 창조적 사고, 사회 발전의 원천으로서 생물다양성이 생물들의 환경에 미치는 것과 같이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래서 특정 민족, 유적, 유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은 소극적 의미의 문화다양성이라고 한다면, 적극적 의미의 문화다양성이란 새롭게 떠오르고 창조되는 문화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함으로써 열린 문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즉 문화가 정체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조건에 따라 수용과 공존에 이어 새로운 문화의 등장이 인류 문명의 역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다양성은 얼마나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가 하는 수적인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문화적 권리를 얼마나 보장할 수 있는가와 이런 문화들을 주류 문화가 얼마나 수용하고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관련된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의 문화를 수용하거나 공존하지 않고 배제하거나 배타적으로 접근하면 문화다양성은 사라지고 오직 문화패권주의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2005년 문화계에 의해 제정된 우리 문화헌장은 “문화다양성은 개인적 집단적 정체성과 자주성의 토대이고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다원성의 원리이며, 평화와 공존의 기틀이다. 시민은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의미를 생산하고 가치를 표현하며, 자신이 원하지 않는 가치, 이념, 관습에 대해서는 무조건적 순종만을 강요받지 않는다. 시민은 나라 안팎의 다양한 문화들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세계의 문화다양성과 평화를 증진하는 데 기여한다”(문화헌장 제4조)고 선언하며 ‘다양성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곽경전 前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함께하는 인천] 은퇴는 타이어를 교체하는 시기다

은퇴는 영어로 리타이어먼트(retirement)이다. 즉 타이어를 교체하는 시기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은퇴는 차를 바로 폐차시키는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2016년 인천에서 자살노인에 대한 데이터를 기초로 인구사회학적 특성에 따른 자살실태를 역학적으로 분석했을 때다. 상식선에서 아는 바와 같이 독거노인이 가족과 동거하는 노인에 비해 자살률이 높다는 기존 연구와 달리, 실제 결과에선 배우자가 있는 노인이 배우자가 없는 독거노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살률이 높게 나왔다. 특히, 남자 자살노인의 65%가 배우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냈다. 이를 유의적으로 해석하면 남자는 은퇴 후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 가족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돈만 버는 기계로만 작동해왔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가 은퇴 후 집에 돌아왔을 때, 가족 성원들 간에 건강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기가 힘든게 현실이다. 우리가 흔히 우스갯소리로 은퇴 후 필요한 것에 대해 여자는 돈, 건강, 취미, 친구, 딸 순으로 얘기하고 남자는 아내, 배우자, 부인, 처, 마누라 순으로 얘기한다고 한다. 그만큼 남자는 은퇴한 상황에서는 사회적 관계망이 좁아지고 집에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하루 세끼를 모두 집에서 챙겨 먹는 속칭 ‘삼식이’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올해는 특히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는 원년이다. 이 세대는 우리나라 한국전쟁 직후인 1955년부터 1963년에 태어난 사람들로 이 시기에 출생률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됐고,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세대는 724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4%를 차지하고 있다. 이토록 열심히 살아온 우리나라 베이비부머가 올해부터 갑자기 쓰나미에 휩쓸려 준비 없이 가정으로 복귀하는 ‘대략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들은 가정과 직장을 위해 쉼 없이 앞만 보고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려오신 분들이다. 이들에게 은퇴는 타이어를 교체하는 시기가 돼야 하는 것이다. 은퇴를 하게 되면서 예전 삶과 비교하면 소득도 줄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차량이 필요할 것이다. 쉼 없이 고속도로를 달렸다면, 이제는 타이어가 교체된 차량으로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다니면서 여유롭게 길거리에 피어난 꽃구경도 하고 동네 맛집에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시기다. 은퇴자들도 마찬가지로 예전에 큰 차로 운행하던 시절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의 환경과 앞으로의 노후를 대비하면서 적절한 차량으로 교체하면서 기름값도 아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의 사회와 가정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이며, 가족 구성원들간에도 예전의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의사소통 방식은 가족갈등의 주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타이어를 교체하고 국도를 다니면서 여유를 즐길 때, 그 차량에 함께 할 가족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쉼 없이 가족들을 위해, 달려오셨던 그분들이 이제 편히 쉬면서 백세시대에 제2인생의 후반전을 맞이할 수 있도록 가족들의 따뜻한 응원과 정부의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한 때다.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함께하는 인천] 단명인가 영원인가, 브론테 자매들

학창시절에 에밀리 브론테가 쓴 ‘폭풍의 언덕’과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한국어 번역본을 읽은 적이 있다. 몇 년 전에는 영화 ‘제인 에어’를 보며 약 40년 전에 받았던 감동을 상기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런던의 국립초상화박물관에 들러 ‘샤롯 브론테 탄신 200주년 기념전’을 관람했는데, 브론테 세 자매의 인물 사진과 육필원고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세 자매의 흑백 초상화는 모두 젊은 모습이었으며, 중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의 유일한 남자형제 브란웰이 그린 채색된 그림에는 세 자매가 함께 그려져 있었는데, 이상한 것은 이들 사이에 사람이 하나 들어갈 공간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자매들 사이에 자신의 모습도 같이 그려 넣었는데, 나중에 자기 얼굴은 지워버려 세 자매만 남은 그림이 됐다고 한다. 전시장를 보며 나는 이 세 자매가 모두 40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샬럿은 단명했지만, 그녀의 문학작품은 오래도록 남아 탄생 200년을 맞게 됐다. 브론테 세 자매는 자손을 남기지 못했으나, 그들의 작품은 여러 독자에게 여전히 영감을 주고 있으므로, 그들의 문학적 DNA는 여전히 복제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요절한 훌륭한 작가인 브론테 자매들과 마찬가지로, 학자나 연구자도 또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학술적 DNA를 후대에 남길 수 있을까? 나는 우리의 지식이 과학 논문을 통해 불멸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오래도록 남는 논문을 쓸 수 있을까? 오래 남는 논문은 오랜 기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기억되는 논문일 것이다. 독자에게 기억되고 사랑을 받으려면 독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의사에게 유용한 논문은 실제 의료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에게 도움이 되는 논문일 것이다. 연구의 순서(첫째로 연구하라, 다음 증명하라, 그리고 기술하라)는 앤 브론테가 ‘윌드펠 홀의 세입자’에서 이야기한 사랑의 세 단계(첫째 공부하라, 다음 증명하라, 그리고 사랑하라)와 비슷하다.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고 이전의 연구에 대해 상세히 살펴봐야 한다. 다른 연구자의 논문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시작할 수 있다. 논문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증명해야 한다. 남이 한 것을 모방해 실험하고 ‘나도 해봤더니 그렇더라’는 논문(Me-too paper)은 논문 수는 채울 수 있을지언정 단명할 수밖에 없다. 실험을 해보면 연구 결과가 기대했던 것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작성된 논문은 독자들이 읽기가 수월하다. 고찰에서 사고의 비약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학자가 ‘독자 친화적’으로 논문을 쓰면, 독자는 읽기에 편하게 느끼고, 따라서 인용될 기회가 더 생길 것이다. 브론테 자매들의 작품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기 때문에 수백 년 동안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학자가 쓴 논문이 ‘실제 현장’ 독자들에게 도움된다면, 그 논문은 기억될 것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인용될 것이다. 이 원고는 [Hwang K. Ephemeral or Timeless?: The Bront Sisters. J Craniofac Surg. 2016;27:1923]를 한국어로 번역하여 2차출판한 것임.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함께하는 인천] 원도심 재생은 혁신적 행정체계 구축부터

오늘날 전 세계 모든 지역과 도시에서 당면한 문제 중의 하나가 다양한 측면의 양극화 현상이다. 예외없이 인천도 여러 도시문제 중에서 도시내 양극화 문제는 그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다양한 해법을 제시하고 추진하였으나 그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고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어 발상의 전환을 비롯한 혁신적 접근을 고민할 때다. 인천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이유를 논할 때 경제자유구역의 공과를 빼놓을 수 없다. 인천은 경제자유구역을 선두로 주변의 신도시가 활발하게 발전하였다. 대규모 신도시 개발이 인천의 부동산개발과 지역경제에 다소 기여하고 수도권의 부동산 시장을 하나로 통합하고 주도하는데 송도 등 경제자유구역이 기여한 바는 있다. 부동산 시장의 서울 의존성을 탈피하고 시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가격이 동반상승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그러나 시민의 관점에서 가장 예민하게 관심을 가지는 주택가격의 양극화를 살펴보면 송도와 청라의 아파트에 비해 기성시가지와의 가격차이가 최대 3배 이상이 되어 위화감과 상실감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주택가격외에 안정적인 노동력의 확보관점에서 인구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300만명을 돌파한 것을 자축할 수 있으나 내적으로는 심각한 양극화를 보여주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기성시가지인 중·동·남구에 집중해서 급격히 증가한 것은 원도심의 자주재원 확보를 악화시키고 노인복지에 대한 재정부담은 가중되어 양극화를 가속화시키는 심각한 문제다. 사회 전반의 병폐로 파급되는 양극화 현상을 어쩔 수 없는 성장의 그림자로 치부하며 간과할 때가 아니다. 그동안 행정력을 경제청에 집중한 것에 대한 과감한 혁신적 개혁이 필요하다. 정부에서 도시재생 뉴딜정책을 국정 어젠다로 설정하고 집중하는데 이에 부응하는 지방정부의 변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주거혁신을 통해 지역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으로 지방정부의 현장행정이 요구되는 절실한 사업이다. 공무원이 주민과 함께 대상사업을 발굴하고 효과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 주민·기업·활동가·전문가 등을 추진체계로 역어가는 지원의 역할을 하고 그 동력을 확보하는 현장사업가가 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경제청을 능가하는 도시재생본부 설치를 적극 검토할 때다. 그동안 경제청은 인기있는 선호부서로서 기능이 시 본청과 중첩되는 등 조직과 규모가 다소 비대해졌다. 2022년까지 5년여 남은 동안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면서 다이어트를 통해 점진적으로 우수한 인력을 도시재생사업에 투입해야 한다. 경제청에서 확보한 150여 명과 본부조직을 통합해 250명 규모로 부시장이 본부장를 맡으면서 4명 정도로 구성된 50개 현장팀이 사업을 발굴, 추진체계를 구축하고 성과를 내도록 하여야 한다. 도시재생특별회계를 통해 각 팀별로 200억원 정도를 사업자금으로 지원해 주민과 기업, 그리고 전문가 및 활동가들이 함께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공동체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마중물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물론 이의 효과를 극대화해 풍부한 도시재생 우물을 만드는 행정을 직접 현장에서 수행하는 조직으로 혁신해야 한다. 인천의 양극화 해소를 통한 균형발전을 위해서 이러한 행정의 혁신이 절실히 요청되는 때다. 서종국 인천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함께하는 인천] 자치분권과 뮤지엄파크

지난 3월21일 청와대는 1차로 자치분권 개헌안을 정부안으로 발표했다. 국회가 여야합의로 개헌안을 발의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안을 국회에 보낸다며 개헌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6·13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국회에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자치분권 개헌안에는 지방정부에 대한 주민참여 강화를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크다. 자치분권 개헌안에는 행정의 독단과 독주를 제어하기 위한 방법으로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방법을 제시했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주민발안·주민투표·주민소환을 제시했다. 이처럼 정부발표 자치분권 개헌안에 담은 주민참여의 개념은 선출직과 행정의 독단과 독주를 제어하기 위한 내용이다.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이야기처럼 권한이 강화된 행정권력은 주민에 의해 제어되지 않으면 인천시와 행정 자체를 위해서라도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치분권 개헌안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주민참여 개념은 현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조례를 제정 또는 개정을 해서라도 인천시가 도입해야 한다. 자치분권 개헌 이전에 행정권력을 제어하기 위한 방법으로 각종 위원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인천시가 조직한 대부분의 위원회는 행정을 위한 형식적인 자문위원회가 대부분이라는 말들이 많다. 작년부터 불거진 인천 문화계 최대 현안의 하나로 남구 용현동 동양화학 부지에 건립될 뮤지엄파크를 들 수 있다. 뮤지엄파크를 최대 현안 중 하나로 보는 이유는 제어되지 않은 행정기관의 일방적인 독주의 대표적인 사례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천지역에는 제대로 된 시립미술관이나 시립박물관 등이 건립되지 못했다. 당연히 동양화학 부지에 시립미술관을 건립하겠다는 인천시의 초기 계획은 미술계를 떠나 문화계의 많은 지지를 받았다. 시립미술관의 역할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타 문화 분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문화계의 많은 지지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난데없이 동양화학부지에 시립미술관과 시립박물관도 함께 건립되는 것으로 변경되어 추진되었다. 이 때문에 미술계뿐만 아니라 인천지역의 거의 모든 문화계의 반발이 일어났다. 물론 시립박물관도 필요하다. 그러나 시립미술관 자리에 시립박물관도 함께 건립할 수밖에 없다면 충분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의사를 모았어야 했다.국가의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헌법은 말하고 있다. 그런 개념으로 본다면 인천시의 권력은 인천시민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뮤지엄파크 추진 결정과정이 인천지역 문화계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가운데 일부 행정권력의 결정에 따라 일방적으로 추진되면서 큰 논란이 된 것이다. 만약 문화예술과 관련된 위원회가 행정의 독주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는 체계였다면 작년과 같은 뮤지엄파크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6월13일 선거를 통해 인천시에 새로운 체제가 등장할지 아니면 기존 체제가 연속될지 모르겠지만, 형식적이지 않은 진정한 민관의 거버넌스가 이루어진다면 좀 더 나은 인천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곽경전 前 부평구문화재단 기획경영본부장

[함께하는 인천] 부모 존속살해, 다음 차례는 누구입니까?

지난달 5일 인천 부평에서 치매를 앓던 70대 노모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50대 남성이 구속됐다. 9년 전으로 기억한다. 췌장암 말기 환자인 60대 남성이 90대의 아버지를 살해했으나, 정상이 참작돼 징역 4년의 형을 받았다.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60대 아들은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 90대 치매 아버지의 부양문제와 자신의 치료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건강이 악화되고 사후에 아버지의 간병 및 부양문제를 걱정해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긴 병에는 효자가 없다고 한다. 치매는 남의 나라, 남의 가정사만이 될 수는 없다. 치매 유병률 조사에 따르면 작년 말 노인인구 중 치매 환자는 72만5천명, 유병률은 전체 노인의 10.2%로 추산되며, 2050년에는 노인 치매인구가 271만 명까지 늘고 유병률은 15.1%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정부는 치매를 가정의 문제가 아닌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치매국가책임제를 지난해 8월 발효한 이후 전국 250여 곳에 치매안심센터를 설치했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던 기존 치매지원센터와 달리 검사뿐만 아니라 인지재활프로그램, 치매가족을 위한 자조모임, 치매노인 임시보호시설도 추가로 운영될 예정이다. 또 정부가 치매 관리 종합계획의 일부로 ‘치매안심마을’을 시범 조성키로 했는데, 이는 치매환자와 가족이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고 원래 살던 마을에서 안전하게 일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지역 사회를 만든다는 것이다. ‘치매안심마을’ 사업은 고령·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선진국들에서 이미 추진되고 있다. 일본에선 독거노인 혹은 노인부부 단독가구가 점점 늘어나면서 ‘개호(介護)의 사회화’가 주창되면서, 2004년부터 치매안심지역 만들기 사업이 진행 중이며 치매 환자에 대한 성년 후견인 제도 확대를 위한 교육과 치매 서포터 양성사업이 실시되고 있다. 영국도 영국알츠하이머학회와 정부가 나서 2012년부터 ‘치매 친화 공동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원봉사자가 치매 환자와 1대1로 동행해 공원이나 상점, 카페를 방문하는 등 일상생활을 지원하고, 교통경찰관들도 대중교통 승차권 구매 등을 돕는 도우미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에선 용인시가 전국 최초로 ‘치매행복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 처인구 역삼동, 기흥구 기흥동에서 시작해 점점 확대되고 있으며, 우리 인천에서도 남구의 문학동, 주안7·8동, 학익2동을 중심으로 약국·미용실·세탁소·음식점 등 지역주민이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주변 업소를 치매안심업소로 지정해 치매 친화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치매환자 실종예방교육 및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희망한다.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잘 살다가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치매라는 질병처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에 대해 어찌할지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제는 부양을 자녀에게 의지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렇다면 불가항력적으로 찾아오는 치매를 지역사회가 어떻게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의식전환이나 사회 안전망이 절실할 때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치매를 앓고 있는 부모를 존속살해 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집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희남 인천시노인보호전문기관 관장

[함께하는 인천] 늙은 수학자와 늙은 외과의사

얼마 전 맷 브라운(Matt Brown)이 감독한 ‘무한대를 본 남자’라는 영화를 보았다. 인도의 수학자 Srinivasa Ramanujan (1887~1920)의 삶과 학업 경력, 그리고 스승 하디교수(Godfrey Harold Hardy, 1877~1947)와의 사제지간의 정에 대한 실화였다. 의예과 시절 생물학 시간에 배운 ‘하디-와인버그 법칙(Hardy-Weinberg principle)’이 생각났다. 다른 영향이 없다면 대립 유전자와 유전형 빈도가 대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법칙에 나오는 하디가 생물학자가 아니라 수학자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집에 돌아와서는, 나는 하디의 저서 ‘수학자의 사과(A Mathematician’s Apology)’를 찾아서 읽다 보니 그의 성격이 특이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1896년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칼리지(Trinity College)에 입학해 졸업했다. 그는 거울 속의 비친 자신의 모습을 절대로 보지 않으려고 했다. 호텔에 묵게 되면 거울을 모두 수건으로 덮어 버렸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활동과 기술, 즉 자신의 수학적 능력이 줄어들 것이므로 자신의 늙어가는 얼굴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책에서 그는 선배 수학자 가우스(Gauss)가 쓴 한 구절을 인용했다.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고 대수론(number theory)은 수학의 여왕이다.” 그는 수학이 ‘젊은 남성의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 수학에 재능있는 사람을 찾아서 발전시켜야 하며, 중년이 되면 수학적 재능은 떨어진다는 의미다. 올해 62세가 되는 나는 성형외과 의사에게서 나이 드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았다. 성형외과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길리스 박사(Sir Harold Delf Gillies, 1882~1960)가 떠올랐다.하디보다 5살 어린 길리스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길리스는 78세 때 18세 소녀의 손상된 다리를 재건하는 수술을 하다가 대뇌에 혈전증이 생겨 이후로는 수술에서 손을 놓았다고 한다. 길리스 박사의 사례를 보면 성형외과 의사는 눈만 잘 보이고 손을 떨지만 않으면 나이가 들수록 그간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술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춘추오패의 으뜸인 제나라 환공과 명재상 관중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어느 해 봄, 환공은 고죽국(孤竹國:하북성(河北城)내)을 정벌했다. 그런데 전쟁이 뜻밖에 길어지는 바람에 그해 겨울에야 끝이 났다. 그래서 혹한 속에 지름길을 찾아 귀국하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전군(全軍)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떨고 있을 때 관중이 “늙은 말의 지혜를 사용할 수 있다(老馬之智可用也)”고 하며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았다. 그 뒤를 따라 행군한 지 얼마 안 돼 큰길을 찾았다. 나이 드는 것이 과연 나쁘기만 할까? 이 글은 “Hwang K. Aging in Mathematics and in Surgery. J Craniofac Surg. 2017;28:1131” 을 번역해 이차출판한 것임.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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