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저자와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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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모르는 새내기 성형외과의사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최근에 발표한 눈꺼풀 처짐 수술방법 논문에 대해 자신이 사용하는 방법과 유사한 점과 그가 가지는 의문점에 대해 질문했다.

 

흥미를 가지고 논문을 읽어준 후배 의사에 성실하게 답해야 하기에 우선 수술을 담당한 공저자에게 메일을 전달했다. 나는 내가 쓰는 논문이나 칼럼들을 통해 독자들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실감하며, 몇 주 전에 관람한 영화가 생각났다.

 

백승빈 감독의 ‘나와 봄날의 약속’은 지구 종말을 예상한 외계인들이 4명의 인간들을 찾아가 벌이는 기괴한 생일파티의 네 가지 에피소드로 이뤄진 독립영화였다.

그 중 세 번째 에피소드에는 평생 연애도 제대로 한 번 못해 본 ‘의무’라는 이름을 가진 영문과 교수가 등장했다.

 

강의실에는 젊은 여자가 혼자 햇빛을 받으며 있다. 불치병에 걸린 그녀는 ‘노래와 소네트’를 읽고는 이 아름다운 시들을 번역한 그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했다. 그녀의 부탁대로 그는 교정을 안내해 주며 둘은 도서관과 강의실을 돌아본다.

 

한 강의실에는 칠판에 영시 등으로 채워져 있는데, 원을 그리는 컴퍼스도 하나 그려져 있었다. 이 배경으로 그들은 그가 번역한 시에 나오는 구절들을 주고받는다.

 

“우리 두 영혼은 하나여서 나는 가야 하지만, 단절이 아니라 공기처럼 얇게 쳐진 금박처럼 확장될 뿐이오. 곧은 컴퍼스의 다리가 둘인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둘이오; 그대의 영혼은 고정된 다리여서 중심에 있지만, 다른 다리가 멀리 돌 때엔 그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그 다리가 집에 돌아오면 다시 곧게 선다오.”

 

영화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컴퍼스로 상징되는 시에 대해 찾아봤다. 영화에서 영시를 번역한 교수와 애독자가 주고받은 구절들은 17세기 영국의 시인 존 던의 ‘고별사: 슬픔을 금하며’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세대들은 한 번쯤 읽었을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게리 쿠퍼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도 이 시인이 출간한 시집(Devotions upon Emergent Occasions)에서 제목이 유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은 아무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일 뿐이다. 누구를 위해서 저 조종(弔鐘)이 울리는지 알아보려고 하지 말라. 그것은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일지니.”

 

연구자로서, 묵묵히 연구할 때, 그 누가 읽어주길 바라며 투고할 때 나는 바다에 떠 있는 한 점 섬이라고 생각한 때가 많았다.

독자의 편지를 읽거나 논문이 인용될 때, 나는 섬이 아니라 육지의 일부라고, 저자와 독자는 둘이 아니라 몸통으로 연결돼 있으며 서로를 향해 귀를 기울이는 컴퍼스의 두 발이라고 느끼게 됐다.

 

메일이 또 하나 왔다. 모 대학병원의 조교수가 여러 해 전 내가 발표한 것과 유사하게 환자의 수술부위에 물이 찼다고, 논문에는 기술되지 않은 나의 경험을 물었다.

외래 진료가 끝나면 연구실에서 투고한 옛날 파일을 찾아보련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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