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인천] 진정한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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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국군외상센터 기공식에서 대한외상학회를 대표해 축사할 기회가 있었다. 발표 중 청중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미국 대통령이 아프면 어느 병원에 가는지 퀴즈를 냈다. “부상병을 본격적으로 헬기로 이송하기 시작한 전쟁은 언제였을까요?” 여자 대령이 손을 번쩍 들었다. “1950년도 한국전쟁입니다.” 정답이었다.

 

한국전부터 헬기를 이용한 환자후송 체계와 혈관수술기법의 발전으로 팔다리에 상처를 입은 환자가 다리나 팔을 잃지 않게 된 것을 아는 청중들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더욱 고무돼 나폴레옹 시대에 프랑스군이 전열의 맨 뒤에 수백 대의 ‘날아다니는 구급차’들을 배치해, 병사들은 혹시 다치더라도 의무부대가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높은 ‘사기’를 가지고 용감하게 전장으로 나갔다는 역사를 말해줬다.

 

또 군인 환자들이 민간병원보다 훨씬 신뢰하며 제일 먼저 찾아가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선 ‘전장에서 살아오는 병사를 다시 전사(戰士)로 부활시키겠다’는 의료진의 의지와 능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군인은 학자와 마찬가지로 명예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군 발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기’라고 말하고 끝맺었다.

 

폐회사 직전에 식순에 없던 연설이 추가됐다.

맨 앞줄 복도 측에 앉아있던 내빈이 마이크를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듯 지팡이를 짚은 초로의 신사는 자리에서 뒤돌아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지팡이를 짚고 있는데요. 저는 2000년도에 지뢰를 밟아 이 병원으로 실려와 수술받았습니다. 오랫동안 치료받았으며, 지금 착용하고 있는 의족도 여기서 만들었습니다. 제 후배들은 새로 짓는 이 외상센터에서 더 좋은 치료를 받고 다시 복귀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자 오래 전에 접했던 뉴스가 생각났다. 비무장지대 수색 대대장 인수인계 시 후임 대대장이 지뢰를 밟아 다치자 “위험하면 내가 간다”며 부상자를 구하려다가 자신도 지뢰에 다리를 잃은 그 중령이 기억났다.

 

청중들은 모두 일어나 크게 박수를 쳤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고, 부상에서 재활해 의족과 지팡이에 의지하고서도 후배 군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참석한 그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다. 가슴 뭉클한 순간이었다.

 

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런던 그리니치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에서 본 영국 화가 가이 헤드가 그린 ‘해군소장 넬슨 경’이 내내 눈에 어른거렸다.

 

1794년에는 코르시카 섬 점령 때 오른쪽 눈을 잃고, 1797년 테네리페 해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오른팔 없이 오른쪽 눈은 붕대로 동여매고 거기서 흐르는 피가 어깨로 흘러내리는 가련하고도 인간적인 모습이다.

 

오른팔을 잃고 감염으로 고생하기는 했으나 넬슨 제독은 1년 뒤 다시 함대를 지휘해 나일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휴전선에서 다리를 잃은 중령도 재기해 의족을 착용한 불편한 몸으로 후배들을 가르치고 정년퇴임을 했다.

 

역경을 극복한 진정한 군인들에게 존경을 바친다. 진정한 군인은 오직 명예에 의지해 산다.

 

황건 인하대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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