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스케치 여행] 남해 다랭이 마을

푸른 바다를 등 뒤에 두고 양광이 온몸을 파고드는 산에 오른다. 잡사에 꾸질 해진 마음을 봄볕에 꺼내 말릴 때, 절망의 절벽위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산새소리가 들려왔다. 언덕위에 걸친 집들은 산토리니보다 아름답고, 나는 사유를 놓아버린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퉁명한 자유를 방목한다. 가파른 설흘산을 타고 내려오다가 다랭이 마을을 보았다. 마늘잎 싱그러운 진초록 밭이랑 아래 노란 유채꽃이 산뜻한 유사대비를 이룬다. 나는 비파나무집과 조약돌집을 거쳐 촌할매 막걸리 집에서 농주 한잔 걸친 후 무슨 이상주의자처럼 바다로 갔다. 파도가 플라톤의 수염 같은 거친 포말을 공허한 열망처럼 흔들며 소리친다. ‘인생이란 짧은 기간의 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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