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오만무도의 책임

최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내 불화설과 관련해 많은 국민들이 걱정과 실망을 한 것 같다. 특히 논란의 중심에 선 이강인 선수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표팀 선수들 사이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그 당시 그 장소에 있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기억이 다를 수 있으므로 필자의 입장에서 누구의 잘못인지를 짚고 넘어가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광고주들은 이미 발빠르게 이강인 선수와 관련된 사진이나 그래픽을 삭제하는 분위기다. 이강인 선수가 얼마나 잘못한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중들이 해당 사안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반응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대표팀 주장인 손흥민 선수가 탁구를 치고 있던 이강인 선수에게 탁구 그만치라고 하자 이강인 선수가 반발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관계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이강인 선수에 대해 ‘거만하고 버릇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를 표현한 사자성어로 ‘오만무도’라는 말이 있다. 물론 이강인 선수의 팬들 입장에서는 아직 어린 나이에 현재 상황에 대한 모든 비난을 이강인 선수가 오롯이 부담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강인 선수와 관련된 광고는 한동안 접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광고주와의 계약 관계가 어떻게 돼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필자가 경험한 연예인, 유명인과 광고주 사이에 체결된 계약서를 보면 이러한 사안이 발생한 경우 ‘위약금’ 조항이 있어 이미지 실추와 함께 경제적 타격도 불가피할 가능성이 높다. 연예인과 유명인은 일반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광고주도 거액의 광고출연료를 지급한다. 당연한 논리로 그렇게 큰 금액의 광고출연료를 받은 연예인이나 유명인은 그 ‘좋은 이미지’를 유지할 법적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책임을 망각한 채 ‘오만무도’를 저지르게 되면, 돈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돈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함께 발생한다. 일반인도 순간의 화를 못참고 폭행을 저지르게 되면 수습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람이라면 그 수습이 더욱 어렵게 된다. 솔직히 필자는 축구를 잘하는 이강인 선수와 손흥민 선수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서 계속 보고 싶다. 이번 사안을 교훈 삼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내에서 다시는 ‘불화설’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경제프리즘] 노토초 사람들과의 인연

새해 첫날에 일본 이시카와(石川) 현 노토(能登)반도를 강타한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고 많은 인명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는 뉴스 속보를 보고 크게 놀랐다. 노토지역이라면 26년 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곳이 아닌가? 곧바로 안부가 궁금해 전화했더니 연락이 되지 않다가 최근 어렵게 소식을 알 수 있었다. 지인 중 한 분은 건물이 파손돼 집에도 못 들어가고, 어느 분은 병원에 입원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필자가 이 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8년 7월 인천시청 문화예술계장으로 근무할 당시 일본의 조그만 소도시 ‘노토초(能登町)’에서 있었던 ‘한일 민속문화에 대한 포럼’에 참석하고 부터다. 일본 NHK방송에서 이 지역출신 사진작가가 촬영한 인천의 ‘황해도 평산 소놀음굿(국가무형문화재 제90호)’을 방영했는데 이를 보고 포럼에 필자를 초청한 것이다. 이후 인천에서도 이 사진작가를 초청해 사진전을 개최하기도 하고 이를 계기로 거의 격년제로 서로 다방면에 교류가 시작됐다. 현직에 있을 때는 물론 퇴직하고도 인천시의원으로 있으면서 계속해 한일 문화교류의 가교역할을 하게 됐다. 인상에 남는 것은 이 지역에서만 출토되는 희귀한 돌의 일종인 불석(佛石)을 전시하고 싶다고 해 ‘인천시수석협회’와 교류전을 갖기도 했고 2005년에는 ‘인천시립교향악단’을 초청해 이시카와현청 소재지인 ‘가나자와(金澤)’시와 시골마을인 ‘노토초’까지 찾아가 공연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2019년 11월 ‘노토초 문화협회 창립 15주년 행사’에 ‘한뫼 무용단’(단장 오은명)을 초청해 수준 높은 전통무용으로 이 지역 주민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인구 1만여명에 불과한 노토초 주민들과의 문화교류는 지속돼 왔다. 노토반도는 유명한 관광지가 많지만 이번에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노토의 아름다운 해변과 내륙의 작은 농촌마을들 그리고 갈 때마다 늘 묵었던 시골 한적한 ‘야나기다무라 국민숙사(柳田村國民宿舍)’는 지진 피해가 없었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26년 동안이나 교류가 지속돼 온 것은 서로의 믿음과 따뜻한 정이 통했기 때문이다. 한일 간의 갈등과 감정대립으로 어려움도 많았으나 그동안 쌓아 온 신뢰로 극복해 왔다. 당국의 지원과 협조 없이도 오직 일본 내 혐한 감정을 해소하고 국위선양에 앞장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이제껏 지속돼 왔다. 이제 지진 피해가 복구되면 다시 고통을 겪고 있는 노토초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찾아 나설 것이다.

[경제프리즘] 금융투자소득세와 글로벌 스탠더드

“국민과 투자자, 우리 증시의 장기적 상생을 위해 내년에 도입할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추진하겠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2일 한국거래소에서 개최된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러자 지난 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모든 상장주식에 금투세를 도입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및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 차원의 후속조치다. 윤 대통령은 이날 “대한민국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계적 기업이 많이 있지만 주식시장은 매우 저평가돼 있다”며 “임기 중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은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강조했다. 내년에 도입할 예정이었던 금투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은 규제라고 본 셈인데 과연 그럴까? 금투세는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에 투자해 얻은 연간 수익이 일정 금액(국내 주식∙펀드 5000만원, 해외 투자 250만원)을 넘으면 초과한 소득의 20~25%만큼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자.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크고 선진 자본시장으로 평가받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등에서는 금투세와 비슷한 과세장치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세부 방식엔 차이가 있지만 모두 상품별 수익을 통합적으로 계산해 과세하는 손익통산(損益通算) 방식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투자에서 수익을 얻더라도 다른 투자에서 손실을 입은 경우 모든 금융상품의 수익과 손실을 합산해 이익을 거둔 경우에만 과세를 한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하나의 계좌에서 이뤄진 매매라도 손익통산이 되지 않는다. 손해를 보더라도 국내주식은 매도할 때 양도가액의 0.3%에 해당하는 증권거래세를 무조건 내야 한다. 한편 이들 국가들은 투자 손실을 이월해주는 이월공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해 금융투자를 통해 손해를 봤다면 올해 이익을 보더라도 이를 합산해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영국은 무제한 이월, 미국과 독일은 일정 기간, 일정액 범위에서 무제한 이월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3년까지 이월을 인정해 준다. 반면 한국은 수년간 손실을 입었어도 올해 이익이 발생하면 세금을 내야 한다. 금투세는 이상한 규제가 아니다. 다양한 금융상품, 수년간 손해와 이익을 모두 고려해 종합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합리적인 과세 방식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세제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금투세 도입이 바로 글로벌 스탠더드다.

[경제프리즘] 코리아 디스카운트

정부가 다음 달부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가동해 국내 증시의 해묵은 현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문제 해결에 나선다고 한다. 정부 주도의 증시 부양 정책에 힘입어 주식 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한 조치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 노력을 독려∙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상장사 주요 투자지표인 PBR(주가순자산비율), ROE(자기자본이익률) 등을 시가총액∙업종별로 비교 공시하고 상장사들에 기업가치 개선 계획 공표를 권고한다. 기업가치 개선 우수 기업 등으로 구성된 지수 개발 및 상장지수펀드 도입 등이 담길 예정이다. 사실 한국 증시의 저평가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4일 종가 기준 코스피 상장사의 평균 PBR는 0.9배로 나타났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4.58배), 일본 닛케이평균주가(1.41배)보다 현저히 낮은 수치다. 지난 10년(2012~2021년)간 한국 상장사의 평균 PBR는 선진국의 52%, 신흥국의 58% 수준이다. 국내 증시의 저평가 원인은 다양하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낮은 배당성향과 주주환원 정책 미흡, 기업의 낮은 수익성과 성장성,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및 기업지배구조의 취약성, 회계불투명성, 낮은 기관투자자 비중, 지정학적 위험 등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특히 주주환원은 주요 45개국 중 최하위권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평균 주주환원율은 고작 29%에 불과하다. 가장 높은 시장은 미국으로 92%에 달했고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68%), 신흥국(37%), 중국(32%) 순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근 정부의 관심과 노력은 고무적이고 일단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원인을 분석하고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단편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올해 초 활황 중인 일본 닛케이지수는 정부 주도의 증시 부양책도 영향이 있겠지만, 엔저 현상과 이로 인한 일본 기업들의 실적 호조가 결정적이다. 지난 17일 민생토론회에서 경제 유튜브 ‘슈카월드’의 슈카 전석재씨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관련 질문에 상속세 완화와 같은 과도한 세제들을 개혁해야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답변도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다. 어설픈 진단은 치명적인 부작용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문제는 주주환원,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경제프리즘] 문화의 단서, 시민참여 도시경관

도시를 평가하는 항목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도시에 참여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 살기 좋은 도시의 지표로 활용되기도 한다. 도시에 대한 시민의 참여는 결과적으로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감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도시의 문화적 가치를 확고히 한다. 문화는 다름 아닌 시민에 의해 형성되고, 강화되고, 발굴되기 때문이다. 경관은 문화의 단서이며, 문화는 한 시대와 한 집단이 모여 살면서 보이는 총체적인 삶의 양식을 일컫는다. 따라서 도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다양한 시각적 요소뿐 아니라 도시가 추구하는 공동체적 목표와 관습 등이 표현된 문화적 단서로서 경관은 도시의 변화 속에서 공동체로서 모두가 함께 지키고 누려야 하는 도시의 공적 개념에 부합될 수 있도록 합의를 통한 일련의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 분명 우리의 자연경관을 보호하려는 노력도 경관계획에서 다루는 주요 목표지만, 같은 시대를 같은 도시공간에서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의 문화적 표현이 경관을 통해 구현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자연 상태를 인위적으로 변화시킨 것을 의미하지만 변화를 어떤 한 사람의 막강한 지도자가 이끌던 시대는 지나갔다. 시민들의 의식은 단순히 기호에 맞는 어떤 선택지에 투표하는 것을 넘어 아이디어의 주체가 되고 명료한 적극적 참여의 주체가 됐다. 시민의 참여, 그리고 선택, 사용방법의 폭을 늘리는 방안을 통해 도시문화를 강조하는 경관, 도시경관에 더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를 형성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시가 문화적인 가치, 의미 있는 이미지를 갖는 것은 각 개체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나고, 이 상호작용과 관계형성 과정은 그 자체로 도시의 문화적인 가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인천의 경관제도는 지역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시민참여형 경관계획을 추구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을 보면 아직 그 참여의 수준이 소극적이라 판단된다. 시민참여 경관제도의 대표적인 예인 경관협정은 주도적인 참여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공청회, 워크숍 등 다양한 의견수렴의 창구 역시 보편 시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고 하기엔 참여도가 소극적이고 편향적이다. 시민의 참여가 소극적이라는 뜻은 도시경관이 아무리 외연적으로 탄탄히 형성돼 있어도 문화적 가치가 약하다는 의미다. 물론 중요한 과제가 남는다. 어떻게 서로 다른 의견들을 조율해 합의를 통해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들이다. 그러나 경관에 대한 통합적인 인식과 애착의 형성은 결과적으로 도시경관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소극적인 참여에서 적극적 참여자로 변화할 방안에 대한 구체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경제프리즘] 비트코인과 금

‘비트코인’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긍정’보다는 ‘부정’이미지가 아직까지 강한 것 같다. 초고위험 자산이라거나 돈세탁에 이용된다거나, 각종 금융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여러 부정적인 의견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해 다양한 기관 투자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이 포함될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이 열렸다. 우리나라 금융위원회에서는 가상자산 ETF에 대한 투자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가, 다시 투자의 길을 열어 줄 필요성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이 처음 세상에 나온 이후 거의 15년의 세월이 흘러 사람들의 인식에 ‘가치 있는 무엇’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비판적인 시각도 많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사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지만 현실에서는 비트코인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다. 아마 인류가 처음으로 금을 발견했을 때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나중에 이런저런 곳에 사용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그 가치가 점점 더 올라갔을 것이다. 비트코인이 앞으로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아직 잘 모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현금을 비트코인으로 바꾸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블록체인 기술이 향후 금융시스템에 혁신을 가져올거라 예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 가치가 계속 하락하는 현금을 비트코인으로 바꾸지 않고 있는 것이 어리석은 행동으로 보일 것이다. 각자의 경험과 지식에 따른 입장 차이는 있을 것이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한 이상 비트코인의 가치가 0원으로 수렴될 가능성은 극히 낮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했다는 것 자체가 비트코인에 어떠한 ‘가치’가 있음을 확실히 인정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과거 우리나라는 가상자산 산업이 매우 빠르게 성장하던 나라였으나, 부정적인 시각과 명확한 규제의 부존재 등으로 인해 그 산업의 주도권을 갖지 못한 상황이 됐다. 부정적 선입견으로 인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은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이며 그로 인한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므로 지금부터라도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자산의 미래 모습에 대해 깊이 숙고해 적어도 다른 나라보다 많이 늦지 않도록 관련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

[경제프리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한 해가 되길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인천시 복지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의 책임자로서 올해 목표는 “더 많은 연결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10여년 전 인천시의원으로 ‘문화복지위원회’에서 복지정책을 챙기던 때만 해도 고립이나 외로움은 빈곤이나 노령, 장애 등에 비해 다분히 부차적인 이슈였지만 2022년 ‘인천시사서원’에서 복지업무를 다시 시작하고 보니 어느새 사회적 고립과 그로 인한 외로움이 복지 분야의 핵심적인 문제가 돼 있었다. 여기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존을 위한 규범으로 만든 코로나19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지만 비대면 환경을 일상화한 디지털 기술의 확산과 조금이라도 뒤처지는 구성원은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극심한 경쟁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속담처럼 우리의 전통적 가치관은 일반적 기준에서는 좀 모자라 보이는 개체들도 나름의 몫을 하며 어울려 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IMF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반듯한 나무 외에는 애초에 베어 버리는 팍팍한 세상이 됐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다고 느끼면 사회적 관계를 끊어 버리거나 부끄러운 내 모습을 드러내기 싫어 집으로, 방으로 숨어들게 됐다. 2023년부터 부평구와 함께 ‘중장년 고위험군 대상 통합사회서비스 체계 구축·운영 사업’을 해오고 있다. 즉, 50~64세 남성 1인 가구를 100명 가까이 발굴해 가사·돌봄· 밑반찬 지원, 주거환경 개선, 병원동행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했다. 서비스 자체도 도움이 됐지만 서비스 제공 과정을 통해 사회적 관계가 살아난 것이 무엇보다도 큰 성과였다. 외부활동을 전혀 하지 않던 대상자가 밑반찬을 받기 위해 동 주민센터로 찾아오면서 정기적으로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됐고, 돌봄서비스를 통해 제공 인력과 정서적 유대를 형성할 수도 있었다. 올해는 ‘돌봄서비스를 매개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내는’ 이러한 사업을 더 확대해 나가고자 한다. 혼자 살다 홀로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2020년 3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한창 나이에 사회와 단절된 채 보내는 ‘고립·은둔 청년 지원정책’도 올해부터 본격화된다. 하지만 정부나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우리 사회 곳곳에 흩어져 사는 외롭고 고립된 분들을 모두 연결할 수는 없다. 모든 시민이 자기의 자리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을 만들어내는 일’에 동참할 때 외로움이라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프리즘]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한 여자가 15~49세의 가임기간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2018년부터 현재까지 1명 이하로 기록되고 있다. 합계출산율이 1명 이하라는 것의 의미는 한 세대가 지나면 출생아 수가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인구 감소가 일어나고 있다. 정부가 무려 200조원 이상을 저출산 대책에 사용하고 있어도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연령대의 사람들(이하 ‘가임세대’라 칭한다)과 이야기 해보면 ‘자신의 아이가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미안해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고, 그러한 희생이 결국 나 자신의 인생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아서’, ‘나라의 미래를 위해 아이를 낳는다고 생각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한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고, 결국 나만 희생하는 꼴이 될 것 같아서’ 등 나름대로의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다. 기성 세대는 위와 같은 가임세대의 이유가 매우 이기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기성 세대의 경우 가임세대에 대해 아이를 키우면서 얻게 되는 기쁨이 크고, 노후에 자식들이 돌봐준다거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당연히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드는데, 필자는 이러한 이유가 가임세대로 하여금 죄책감이나 분노를 유발시킬 뿐, 아이를 낳는 이유로 작동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가지고 오게 될 ‘미래상’은 매우 암울하다는 이유도 현재의 삶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한 상당수의 가임세대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 저출산 문제는 가임세대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아이들이 가임세대보다는 훨씬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고, 가임세대도 아이들과 함께 행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 때문에 영끌을 해서 빚더미에 앉게 되는 나라, 사교육을 받지 못하면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매우 어려운 나라, 부모가 누구인지에 따라 삶의 방향과 질이 크게 달라지는 나라, 빚을 지지 않고 대학을 다니기 어려운 나라, 가진 것이 없다면 생존하기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해도 크게 나아지는 것이 없는 나라, 가난을 대물림하기 아주 쉬운 나라. 가임세대의 입장에서 대한민국은 그런 나라다. 누구라도 이러한 나라에서 내 아이가 크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임세대는 묻고 있다. 아이를 낳는다면 ‘기성 세대’에 좋은 것 말고, ‘가임세대 또는 그 아이들’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저출산 대책을 논의하려면 위와 같은 가임세대의 질문부터 깊이 숙고해야 할 것이다.

[경제프리즘] 내 삶의 멘토

지난달 새로 입사한 신규 직원에 대한 교육이 있었다. 새내기 직원들을 보면서 50여년 전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첫 직장에 대한 기억은 누구나 오래오래 남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격려도 해주시고 채찍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첫 직장의 ‘유경준(兪慶濬)’ 동장님을 잊을 수 없다. 처음 발령받던 날, 구청에서 발령장을 받고 찾아간 곳은 일선 동사무소였다. 처음 업무를 맡은 것은 청소비 수납 업무였다. 이런 일들은 대개 통장이나 반장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이럴 때는 가끔 이분들과 대낮부터 선술집에 들러 퇴근이 지나도록 퍼마시기 일쑤였다. 청소비를 받으면 그 다음 날에는 입금해야 하는데 가끔 이 돈을 유용해 친구들에게 한턱 쏘며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어떤 날은 식당에서 직원들끼리 점심 내기 화투를 치기도 했다. 하루는 동장님이 부르시더니 젊은 사람이 앞길이 창창한데 벌써 그런 데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단단히 주의를 주시든가, 잘못을 지적해 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장래를 걱정해 주며 인생경험을 전해 주시기도 해 잘못을 깊이 깨닫고 그때부터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수인선 기차를 타고 통근을 했다. 집에서 기차역까지는 근 한 시간을 걸어서 타기도 하고 버스가 있긴 했지만 제때 다니지 않고 고장이라도 나는 날이면 한나절이나 돼서야 출근할 때도 있었다. 지각도 어쩌다 한두 번이지 밥 먹듯이 한다면 누군들 좋아할 리 있겠는가? 어느날 또 지각을 하게 돼 사무실 들어가기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을 때 문 앞에 동장님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동장님은 나를 앞세우며 문을 열고 들어가시면서 생뚱맞은 소리로 나와 함께 아침 일찍 관내를 한 바퀴 순찰하고 돌아온다며 직원들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선수를 치며 감싸 주시기도 했다. 내 책상 위에는 이미 청소비 수납부와 서류철이 놓여 있었다. 동장님이 미리 꺼내 놓은 것이다. 그때의 동장님은 하늘처럼 위엄이 있었고 아버지처럼 자상했으며 동네 아저씨처럼 푸근하고 어린애처럼 가식이 없었다. 40여년간을 큰 과오없이 퇴직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 공직을 시작했을 때의 동장님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생각한다. 공직자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분명히 가르쳐 준 내 삶의 멘토 ‘유경준’ 동장님. 그 가르침은 공직생활뿐만 아니라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도 가슴속에 담아 살아갈 수 있기를 다짐해 본다.

[경제프리즘] 챗GPT 1년, 세계는 AI 패권전쟁 중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을 일으킨 챗GPT가 출시 1년을 맞았다. 17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챗GPT. 지난 1년 동안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고 혼란을 자아내기도 했다. 세계 곳곳에서 미래엔 ‘AI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로 갈릴 것’이란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2024년은 AI가 세계인의 일상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2024 세계대전망’에 따르면 내년 키워드는 ‘현실이 된 AI’로 많은 기업들이 AI를 업무에 도입할 예정이다. 글로벌 대기업들이 앞다퉈 AI 적용 방법을 테스트했고 상당수 기업이 이를 응용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한계가 없는 AI의 능력은 가공할 만하다. 구글이 지난달 29일 네이처에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AI ‘GNoMe’는 17일 만에 안정적인 무기화합물 구조 220만개를 생성했고 이 중 38만개는 안정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인류가 800년 동안 축적한 지식과 맞먹는 것으로 AI가 신소재공학에서 세상에 없던 물질을 단 며칠 만에 내놓고 있다. AI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부작용, 위협도 상당하다.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인 40개국, 40억명이 일제히 투표소로 향하는 2024년, 70여건의 선거가 치러지는 과정에서 AI가 여론 조작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획일적 AI 이용으로 연구 다양성이 감소하고 고임금·고학력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성형 AI 시장을 주도하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세계 빅테크 기업들은 AI 군비 경쟁에 박차를 가하고있다.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도 기업용 AI 챗봇 경쟁에 돌입했다. 모두가 AI 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려 전력질주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세분화 및 수익화에 대한 고민도 늘어나고 있다. MS는 오픈AI의 협업을 통해 챗GPT를 엑셀·파워포인트 등 자사의 다양한 기초 인프라에 집중 배치하고 있다. 구글은 검색엔진 자체에 AI를 탑재하는 방식으로 챗봇, 바드(Bard)를 전면에 내세웠다. 클라우드 업계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실제 아마존웹서비스(AWS)에 이어 업계 2·3위를 차지하고 있는 MS의 애저(Azure)와 구글 클라우드의 챗봇은 이를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바야흐로 생성형 AI 패권전쟁이다. 국내에선 네이버가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하며 한국형 AI로 MS, 구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카카오, KT 역시 AI에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정부는 개발 환경 지원에 그치지 않고 국산 AI 파운데이션 모델 활용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한다. AI 시장은 미래 유망 먹거리 사업으로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다.

[경제프리즘] 치유의 도시, 집과 이웃

출생률은 가파르게 줄고 나 홀로 가정이 늘고 있다. 세상살이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수록 누구를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에서 자유롭고 나만 생각해도 되는 나 홀로 삶은 점점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나 홀로 삶에도 집은 중요하게 존재한다. 그러면 집이란 무엇일까. 건축적 공간으로서의 집은 외부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은밀하고 독립된 공간을 의미한다. 또 그곳은 나 이외의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로서의 가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도시를 형성해 사회적 목표를 공유하며 함께 모여 살기 시작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는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전체 가구수의 50%를 넘었고, 인천은 2021년 통계를 보면 약 65%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파트나 연립, 다세대 등 일정 토지 위에 밀도가 높은 수직적 형태의 집합적 주거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켜켜로 쌓인 공간 위에서 같은 토지를 공유하는 이웃으로 살고 있지만, 우린 얼마나 이웃을 공동체로 인식하고 있는가. 미국의 도시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사회가 진보할수록 제1의 장소인 ‘가정’과 제2의 장소 ‘직장’에 이어 사람들이 교류할 수 있는 ‘제3의 장소’로서의 지역사회 커뮤니티가 중요해진다고 설명한다. 제1의 장소인 가정과 제2의 장소인 직장 외에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나 교류하는 데 필요한 장소, 즉 제3의 장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사람은 가정이나 일터에서 주어지는 사회적 역할만으로는 본연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고,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교류 활동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파트 등의 공동주택단지에서 거주하면서 우리들에게 이러한 제3의 장소인 지역사회와 커뮤니티는 더욱 중요한 삶의 요소가 되고 있다. 도시민으로서의 삶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사회적 역할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치유할 공간으로서 나 홀로 집은 매력적인 공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도시에서 사람들과 겪는 다양성이 갈등과 스트레스로 인식돼 고립된 삶을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당한 갈등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며, 차이를 뛰어넘는 의사소통으로 문화적인 공감대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고 그 안에 치유의 의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나 주차장, 단지 코너의 횡단보도 앞에서도 서로를 알아봐 주고 인사를 건넴으로써 우리는 사회적 가치를 발견하기도 한다. ‘한 아이를 훌륭히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격언처럼 집으로부터의 치유가 이웃과 더불어 이루어진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며,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이웃과 인사를 나눠야겠다.

[경제프리즘] 공매도 전면 금지, 그 방향과 시기

지난 6일 정부는 주식시장 개장 직후부터 내년 6월 말까지 약 8개월간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다. 공매도 금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2020년 코로나 사태 등 주식시장이 크게 출렁일 때마다 한시적으로 단행됐고 이번이 네 번째다. 개인투자자에게만 불리하다는 지적이 계속돼 온 한국의 공매도 제도.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있었던 기존 공매도 제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불법 무차입 공매도 실시간 차단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공매도 금지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고수해 왔다. 한국의 공매도 규제가 해외 주요국보다 높은 수준이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공매도가 필요하다며 발표 전날까지 금융위의 공식 입장은 “공매도 금지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없다”였다. 그러나 하루 만에 신중론에서 돌연 입장을 바꿨다. 이 같은 입장 선회는 최근 하락장에서 1천4백만명에 이르는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이 극도로 높아진 데다 정치권, 특히 여당인 국민의힘 압박 때문일 것이란 관측이다. 총선용 포퓰리즘이 아니냐는 비판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불법 공매도로부터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특히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다”라며 이를 일축했다. 오래전부터 정부 내부에서 점검하고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요 외신들은 연일 비판적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한국 정부는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이번 조치가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개인투자자의 표심을 얻기 위해 ‘뜬금없이’ 취해졌으며 그로 인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시각의 보도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역사적으로 공매도 금지는 시장 활동에 지속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실제 한국 증시는 공매도 금지 당일 하루 급등했지만 다음 날부터 급락했다. 특히 금지 시기가 ‘특이했다(peculiar)’며 총선을 앞둔 정치적 목적을 의심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공매도 금지 조치가 MSCI 선진국지수 편입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금융위기나 코로나 사태와 같은 외부 충격이 없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례적이라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번 조치가 취해진 데 주목했다. 상환 기간, 담보비율 등 공매도 조건을 개인과 외국인·기관투자자 간 일원화하고 무차입 공매도를 막기 위한 내부 전산 시스템과 통제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정부의 이번 조처는 일단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매도 제도 손질에 미온적이던 금융당국이 갑자기 정반대 결론을 내리는 모습은 ‘총선용 졸속 정책’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방향은 바람직하나 그 시기와 의도가 의아스럽다.

[경제프리즘] 청춘이 다시 인생의 황금기가 되려면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로 시작하는 ‘민태원’의 ‘청춘예찬’은 오래도록 청년기를 묘사하는 가장 대표적인 수필이었다. 이 글이 쓰인 것이 1929년이니 엄혹하던 일제강점기에조차 청년기는 빛나는 시기였나 보다. 하지만 어느샌가 우리나라에서 ‘청년’은 실업, 빚, 고립, 심지어 자살이라는 너무도 마음 아픈 단어와 연결되는 호칭이 됐다. 오죽하면 “초경쟁사회에 출생해서, 능력주의 사회, 저성장 사회에서 자라고,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한 첫 세대로 청년기에 들어서서, 척박하고 차가운 사회에서 고독생으로 발을 딛고 있다가, 고독사하는 세대(김현수 외, 2022, 가장 외로운 선택)”라는 평가까지 받게 됐을까?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됐던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청년, 특히 20대 청년 자살자가 늘어났고 청년의 고립도 심화됐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우리나라의 초저출산 현상은 주거비 상승이나 취업 실패 같은 경제적 요인보다는 ‘나같이 불행한 인생을 내 자녀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청년들의 마음 상태 때문이라고도 한다. 정부도 청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20년 청년기본법을 제정한 이후 여러 가지 청년 정책을 만들고 있다. 지난 9월19일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청년 중에서도 특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돌봄청년, 고립·은둔청년,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지원 방안에 초점을 맞춘 청년 복지 5대 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인천에서는 2021년 청년 기본조례를, 올 4월에 은둔형 외톨이 지원조례, 7월에는 자립준비청년 지원조례를 제정했고 10월에는 가족돌봄청소년·청년 지원 조례를 발의하는 등 청년 지원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갖춰가고 있다. 하지만 청년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나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청년기를 바라보는 인식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청년은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 처지와 형편이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시기다. 모든 청년이 일정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며 저마다의 속도와 지향점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음을 사회에서 받아들여 줘야 한다. 무엇보다도 오늘날의 부모세대에 비해 성인이행기가 훨씬 길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나긴 청춘’(장 비야르, 2021)이라는 책 제목이 보여주듯이 청년이 한 명의 성인으로 사회에 뿌리 내리기까지 필요한 시간이 길어진 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오랜만에 일가친척이 모인 날, ‘대학은 붙었니, 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가 아니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뭔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뭔지, 최근에 행복했다고 느꼈던 순간이 언제인지’ 물어봐 주는 어른들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그런 어른이 많아지는 만큼 청년기를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니라 누려야 할 황금기로 받아들일 수 있는 청년도 많아질 것이다.

[경제프리즘] 고액 연봉을 받는 사기꾼

최근 시끄럽게 오르내리는 이름이 하나 있다. 전청조. 성별이 무엇인지부터, 출생, 가문, 경력 등 뭐 하나 사실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필자가 법률가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다른 죄명은 그렇다 치고 ‘사기’는 분명하게 성립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사기죄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발생하고 지속되는 범죄인데 우리 형법은 사기죄에 해당하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만약 사기죄로 얻은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50억원 이상일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5억원이 상당히 큰돈인데, 사기꾼들의 경우 조금만 성공하면 사기로 금방 5억원 이상의 이득을 보는 경우가 많다. 사기죄를 범하면 이렇게 높은 수준의 형벌을 받게 되는데 왜 사기 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날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사기를 치더라도 실제로 선고받는 형벌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사기죄를 범하더라도 10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은 경우가 거의 없기에 사실 사기꾼들은 크게 사기를 치고 돈세탁을 해서 검찰이 범죄수익을 찾을 수 없도록 해둔 후, 국민의 세금으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운동도 시켜주는 교도소에서 몸관리 잘하고 나와 피해자들의 돈으로 부유하게 사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검찰이 끝까지 재산을 찾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검찰 수사인력의 한계로 사기꾼들이 은닉한 모든 범죄수익을 찾아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100억원을 사기쳤는데 징역 5년을 선고받으면 1년에 20억원을 번 것과 같다. 현실이 이러하기에 사기꾼들은 늘 새로운 사기 콘텐츠를 개발해 사람들을 속이는 일에 혈안이 되고, 자신들을 ‘고액 연봉을 받는 경제사범’으로 생각한다. 사기꾼이 사람을 속이겠다고 마음먹고 달려들면 속지 않기가 매우 어렵다. 현행법에 따른 사기죄의 실제 처벌 수준이 피해액에 비해 그리 높지 않으니 다들 사기당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행 법률이 약하게 처벌할 수밖에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약하게 처벌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제라도 사기죄에 대해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법률이 정한 최고 수준의 형을 선고해 ‘고액 연봉을 받는 경제사범’을 선택하려는 자들이 나오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

[경제프리즘] 노인 빈곤 해법은 없나?

통계청은 26일 기초·국민·직역(공무원·군인·사학·별정우체국)·주택연금 등 공·사적 연금 11종의 데이터를 연계한 통계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21년 65세 이상 내국인 862만명 가운데 연급 수급자는 777만명으로 90.1%를 차지했고 월평균 연금 수급액은 60만원으로 집계됐다. 현재 노인 10명 중 1명은 연금을 아예 받지 않고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연금 수급자의 절반가량은 월 39만원 이하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는 1인당 최소 노후생활비 124만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50대 이상 장·노년층들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노후 준비는커녕 오히려 세 곳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 증가율이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소득하위 30% 또는 신용등급이 7~10등급인 취약차주 수 역시 50대 이상만 증가했다. 사실 한국의 노인 빈곤율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의 상대적 노인 빈곤율은 43.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 중 가장 높다. 미국(23%)과 일본(20%)은 20%대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고 영국과 독일은 각각 15%, 11%를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덴마크·노르웨이는 4%대에 불과하다. 일각에선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매우 높은 한국 사회의 특징이 반영되지 않은 상대적 빈곤율로 통계의 함정, 착시라고 주장한다. 매월 들어오는 가처분 소득만 따질 것이 아니라 고령층의 부동산 자산을 포함할 경우 노인 빈곤율은 21%로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실제 한국 고령세대의 부동산 집중은 주요국 중 이례적 현상이다.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 등 실물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4%를 넘는다. 미국(28%)의 두 배가 넘고 일본(38%)보다도 훨씬 높다. 풍요로운 노후를 위해 비금융자산을 줄이고 금융자산 비중을 늘리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상황에서 부동산으로 빈곤을 해결하긴 쉽지 않다. 이 같은 요인들은 한국의 노인자살률(인구 10만명당 46.6명)이 OECD 국가(평균 17.2명) 중에서 압도적 1위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하고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가난한 한국 노인의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준비 안 된 ‘노인공화국’, 더 이상 노인 빈곤 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국가 과제다. 빈곤과 고립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을까? 노년층의 실질적 소득을 고려해 기초연금은 꼭 필요한 곳에 집약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여러 연금의 다층 보장 체제를 확대하고 자산 처분을 통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저소득 고(高)자산 노인에 대한 선별적, 맞춤형 지원도 중요하다. 주택연금이나 농지연금, 산지연금을 확대하고 세제 혜택도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경제프리즘] 안전한 도시, 찰나의 반성과 후회

그 얘길 믿었더라면, 길을 막았더라면, 아니 그때 거기에 가지 않았더라면.... 도시민으로서의 운명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대단한 역사적 사건들도 생각지 못한 작은 일들로 비롯되기도 하고, 순간의 반복된 여러 선택이 모아져 역사적 비극이 되기도 했다. 공동체 속에서의 삶이란 개개인의 의지와 선택보다 시대와 상황으로 운명지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지난해 이맘때쯤, 이태원 참사로 기억되는 핼러윈데이에 소중한 생때같은 생명들을 잃었다. 어제와 같이 그 아픔이 기억되는데 벌써 1년이 성큼 갔다.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의 심정은 어떠할까.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없었을 테고, 그날 이후 가족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을지 감히 짐작된다. 우리는 도시의 활력을 얘기할 때 사람들의 통행량 등 밀도를 얘기한다. 분명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축제들은 도시의 매력도를 높이는 도시브랜드 역할을 한다. 공적 공간이든 사적 공간이든 도시를 디자인할 때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도시의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싱가포르를 방문하면 같은 모양의 건축물이 거의 보이지 않고, 거리마다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구성한다. 이는 싱가포르 도시개발청 URA의 엄격한 도시관리 덕분이다. 사적으로 소유된 건축물에도 사람들의 안전을 고려한 다양한 형태의 오픈스페이스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러한 오픈된 공간은 거리와 광장이란 이름으로 공적영역에서 철저히 관리된다. 체계적인 도시관리는 색채나 디자인 등 건물의 외관에서 비롯되는 하드웨어적인 경관관리를 넘어선다. 지역 커뮤니티의 공간이용 측면까지도 철저히 기획하고 관리되기에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뛰어넘어 안전한 도시로서의 체계적인 도시 이미지로 인식된다. 도시는 토지나 건축물 등 하드웨어로 만들어진 그릇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문화와 감성들이 그릇의 형태를 만들어내고 유기체처럼 살아서 변화한다. 무엇이 담길 그릇인지, 또 담아야 할 내용에는 우선순위가 있으며, 구성원을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안전이 당연 1순위일 것이다. 어쩌면 지난해 그날의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후의 억눌렸던 청춘들의 함성을 가슴으로 이해해야 했고,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닌 청춘들의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들어줘야 했다. 존중과 이해로 함께 준비하고 즐길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다양한 문화가 위협받지 않도록 모든 공간의 미비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안전한 도시는 미리 준비되고 계획돼야 함을 잊지 말자.

[경제프리즘] 전쟁, 재난 그리고 가상자산

현재 진행 중이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전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들 수 있다. 전쟁은 그 대의명분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에게 매우 큰 피해와 비참함을 경험하게 한다. 전쟁뿐만 아니라 지진이나 산불, 수해 등이 발생한 경우에도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이와 같은 큰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기부나 지원 형식의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싶어도 정치적 이슈로 인해 국경 간 화물 운송을 금지하거나 달러 등 자금의 이체를 금지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지역 사람들을 돕기 어렵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 가상자산은 매우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마약, 도박, 전쟁 등 범죄를 위한 자금에 가상자산이 사용되는 어두운 면이 있지만, 피해를 회복하기 위한 도움의 방법으로 가상자산을 활용하는 밝은 면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008년 비트코인이 최초의 가상자산으로 알려진 이후 사기, 투자실패, 범죄악용 등의 이유로 아직도 제도권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위와 같이 피해회복을 돕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보면 결국 시기의 문제일 뿐 가상자산도 우리의 경제생활에 활용될 수 있는 자산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사기성이 농후한 프로젝트를 대단히 유망한 것으로 포장하고 그와 관련된 가상자산을 발행해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원화나 달러 체제에서도 그와 같은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하면, 가상자산을 이용한 사기가 발생한다고 해서 가상자산 자체를 이용할 수 없게 하는 것은 해결 방법이 될 수 없고,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가상자산은 시간적, 장소적 제약이 기존 화폐에 비해 현저히 적고, 위기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가상자산 사용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그 활용의 이점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에서 그리고 우리나라도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현재 우리에게 가상자산이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미래의 자산 유통의 틀이 될 것임은 명확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가상자산에 관해 현재까지 익숙하지 않은 것의 ‘나쁜 점’에 주목했다면, 이제부터는 익숙하지 않은 것의 ‘좋은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경제프리즘] 우문현답

올 추석연휴는 길었다. 직장 다니는 샐러리맨들은 환호할 일이나 사회복지시설 근무 종사자들에게는 크게 좋아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사회복지시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특히 장애인 생활시설 등에서 장애인들을 돌보는 생활지도사들은 휴일도 없이 장애인 돌봄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일상생활이 어렵거나 규칙적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연휴라고 돌봄에 공백이 생긴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례를 지난 여름 약 한 달간 겪었다. 우리 사회서비스원(사서원)이 운영하고 있는 ‘미추홀푸르내’라는 중증장애인 시설이 있다. 중증장애인 남녀 각 6명이 생활지도사 각 3명의 돌봄으로 생활하고 있는데 지난 6월 말 갑자기 남성 생활지도사 3명 중 2명이 사직했다. 주야간, 휴일을 교대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한 명이 하루도 못 쉬고 24시간 근무하게 된 것이다. 채용될 때까지 비상수단을 써서라도 돌봄 공백을 막아야만 했다. 우리 사서원의 남자 직원 중에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소지한 10명이 2인1조가 돼 일주일에 3일씩 야간근무를 지원하고 나섰다. 거주자 중엔 장루환자와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는 발달장애인, 볼일을 보고도 뒤처리를 못하는 장애인도 있었다. 야간에 근무하면서 여성 거주자들을 돌보는 생활지도사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3년째 근무하고 있다는 한 생활지도사는 거의 휴일도 쉬지 못하는 불규칙한 생활과 세 명이서 교대로 근무하면서 그중 누가 갑자기 아프거나 집안에 애경사가 있으면 계속 근무해야 하는데 이때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이런 근무환경이라면 이들의 처우는 만족스러운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에 대한 처우는 국비로 운영되는 시설과 지방비 시설이 다르고 시설 종류별로 각각 다르다. 인천시의 경우 국비시설에 지원되는 보건복지부 임금 가이드라인보다 높은 수준에 있으며 전국 최초로 소규모 시설까지 호봉제를 실시하고 유급병가, 장기근속 휴가, 대체인력지원, 건강검진비 지원 등 복리후생제도는 타 시·도의 모범이 되고 있다. 그러나 중증장애인 생활시설의 경우 노동의 강도나 고난도, 위험 수준에 비하면 처우가 상당히 미흡한 편이다. 우리 사서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현장 근무요원인 요양보호사, 활동지원사. 생활지도사들의 평균연령은 50세가 넘고 근무연한도 5년을 넘지 못한다. 이는 근무여건이나 임금 수준이 낮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번 중증장애인시설 돌봄 체험을 통해 시설종사자들이 열악한 근무조건과 충분치 못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보듬지 못하고 있는 취약계층에 대해 오직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보며 많이 배우고 느꼈다. 우리의 문제는 바로 현장에서 답을 얻을 수 있음을 알게 됐다.

[경제프리즘]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선택 아닌 필수

정부가 1인당 5천만원인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이지 않은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새마을금고 사태를 계기로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조정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저축은행을 비롯한 제2금융권으로 급격한 자금 쏠림과 건전성 우려, 예금 보험료 증대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근 예금자보호제도 정비를 위해 활동해 온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는 지난 21일 최종 회의에서 △현행 유지 △단계적 상향 △일부 예금 별도 한도 적용 등 여러 방안을 두고 논의한 결과, 현행 유지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는 잘못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예금자보호제도는 금융회사가 파산 등으로 고객의 금융자산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예금의 일부 또는 전액을 돌려주는 제도를 말한다. 예금자보호한도는 2001년 1월 2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상향 조정된 이후 23년 동안 동일하게 유지돼 왔으나 소비자 보호 실효성을 두고 줄곧 지적을 받아 왔다. 특히 지난 3월 SVB 파산에 따른 뱅크런(Bank-run·대규모 예금인출)을 계기로 예금자보호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금융위원회와 예보도 우리나라 경제 현실과 규모에 맞게 보호한도, 목표기금, 예보요율 등 예금보험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검토를 추진해 왔다. 실제로 2022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금자보호한도 비율은 1.2배로 미국(3.3배), 영국(2.3배), 일본(2.3배), 독일(2.2배)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기준(1인당 GDP의 1~2배)을 간신히 맞추는 수준이다. 금액으로 치면 미국은 25만달러(약 3억4천만원), 영국 8만5천파운드(약 1억4천만원), 일본 1천만엔(약 1억원), 독일·프랑스·이탈리아는 10만유로(약 1억4천만원)로 모두 1억원을 상회한다. 중국과 홍콩도 1억원에 근접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역시 지난 6월 기존 7만5천에서 10만싱가포르달러(약 1억원)로 보호한도를 높이겠다고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은 예금자를 두텁게 보호하고 있는 데 반해 우리 정부와 금융당국만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한도 확대에 따른 불이익이 예상되는 은행의 반발을 의식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경제 규모와 금융소비자 편익에도 맞지 않는다. 일각에선 인터넷뱅킹과 모바일뱅킹 확산으로 유사시 뱅크런 속도가 눈부시게 빨라진 요즘, 낮은 수준의 예금자보호는 오히려 시스템 리스크 유발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3년째 5천만원에 머물러 있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경제프리즘] 후손에 물려줄 지속가능한 도시 실현

최근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 앞에서 오만했던 인간의 행위를 반성하며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휴지장처럼 구겨진 튀르키예의 도시, 삶의 터전을 쓰레기더미로 파괴시킨 시리아의 지진, 도시를 형체도 없이 날려버린 리비아의 대홍수 등등. 인간은 자연을 향해서는 파괴자이며 정복자이기도 했다. 마르지 않을 샘으로 여겼기에 지구를 과잉소비했으며,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를 치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해 결국 그 아우성이 지금 우리에게 기후변화의 재앙이 아닐까. 뒤늦은 반성으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말한다. 그 의미에서처럼 미래의 후손들에게 되돌려줘야 할 살 만한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해 지금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반복되는 지구촌의 재앙을 접하며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만신창이의 도시에서 자식을 낳고 그 아이들에게 책임지고 살아내라고 하는 것이 두려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젊은이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유행처럼 도시재생이란 말이 쓰나미처럼 스쳐 지나갔다. 도시재생이란 말은 도시의 쇠퇴를 경험한 도시들이 풀어내야 할 과제이기에 정치적이거나 스쳐 지나가는 유행어가 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집 지을 땅이 부족해지니 도시재생 사업 현장에서는 크고 작은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게다가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지난 정부의 핵심 정책이었으니 평탄하게 지속되기 어려운 뜨거운 감자 같아졌다고나 할까. 지금 구도심에서는 새로운 기능을 더해 쓰던 것을 유지하려는 사람들과, 새로운 신도시로 거듭나려는 재개발사업이 충돌하고 있다. 큰 의미에서는 둘 다 도시재생일 것이며, 옳고그름의 문제보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당연히 시대적인 상황이 반영돼 풀어내야 할 과제임에 틀림이 없지만, 너무 과밀해지는 아파트 중심의 도시가 앞으로 몇십 년 후에도 그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우리 것이 아닌 후손들에게 빌려 쓰는 것이므로, 온전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리에게 닥친 수많은 도시적 과제를 경제적 가치에만 편중되지 않도록 풀어내는 일이다. 좀 늦더라도 다양성이 존중되는 도시로서 일시적인 유행처럼 도시가 마련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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