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푸어’ 전성시대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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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빈털터리가 된다’는 ‘베이비 푸어’가 있다. 고용 불안 및 전셋값 폭등으로 경제난에 시달리는 젊은 부부들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면서 더욱 허덕이게 됐다. 특별히 사치를 부리지 않아도 아이 한 명 낳고 키우는데 한 가정 소득의 40%가 넘게 들어간다면 베이비 푸어가 된다.

‘졸업하자마자 부채자가 된다’는 ‘워킹 푸어’도 있다. 대학 졸업 후 어렵게 취직을 했지만 대부분 임시직이나 비정규직이어서 학자금 대출도 갚기 어렵고 저축은 꿈도 못 꾼다. 일을 해도 소득이 충분하지 않아 늘 빈곤에 허덕인다. 경기침체로 고용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

‘결혼해서 깨가 쏟아져야 하는데 빚이 쏟아진다’는 ‘웨딩 푸어’도 있다. 결혼식 비용에 혼수, 전세 대출이 고스란히 빚이다. 이들은 사랑만으로는 결혼하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결혼을 미루거나 안 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푸어(poor)’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슨 무슨 ‘~ 푸어’ 하나쯤은 갖고 있다. 대출을 받아 집은 마련했지만 원리금 상환 등으로 가난한 생활을 면치 못하는 ‘하우스 푸어’, 과열된 교육열에 자녀 사교육비로 등골이 휘는 ‘에듀 푸어’, 노후대비를 제대로 못해 은퇴 후 빈곤하게 사는 ‘실버 푸어’, 몸이 아파도 경제력이 부족해 병원에 갈 수 없는 ‘헬스 푸어’ 등 별의별 ‘푸어’가 다 있다. 우리 시대 빈곤의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푸어’가 2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수조원의 자산을 가진 대기업 회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식들이 속을 썩이는 ‘자녀 푸어’, 소크라테스처럼 아내 때문에 늘 스트레스를 받는 ‘와이프 푸어’ 등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도 정서가 메마른 ‘감정 푸어’일 수 있다.

‘푸어’로 살다 ‘푸어’로 인생을 마감하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푸어’ 신세가 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가난함ㆍ빈약함ㆍ부족함 등의 의미를 가진 ‘푸어’는 우울하다. 멋진 인생을 살고 싶지만 갚아야 할 빚을 생각하면, 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우울하고 씁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삶의 그늘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희망과 대안이다. 어렵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마음만이라도 ‘푸어’가 아닌 ‘리치(rich)’로 살 수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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