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오면 이상수<동수원초등4> 첫눈이 오면 아이들은 모두 나와서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지요. 첫눈이 오면 모든 것이 달라지지요. 크리스 마스도 빨리 오지요.
경기도 산하 출연기관들에 대한 개혁 외침이 요란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도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들 기관이 예산의 방만한 운영등 여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경기도는 이런 문제들이 대두될 때마다 획기적인 개선책을 약속하곤 했다. 그러나 경기도의회 기획위원회가 경기도 감사관실 사무감사에서 지적한 경기개발연구원 등 도 산하 4개 기관의 지난해 예산 부당집행 사례들은 이들 기관이 아직도 한심한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신용보증조합의 경우 업무추진비를 과다하게 편성한 뒤 접대성 경비를 업무추진비에서 지출했으며 특수활동비를 대표이사는 개인용도로, 직원들은 경조사비로 사용했다. 또 부실채권을 발생시켜 손실을 초래한 직원을 징계하지 않았으며, 금융기관 근무경력이 없는 비전문가를 경력직원으로 채용한뒤 근무평점도 하지 않고 승진시켰다. 이밖에 부채비율이 600%를 초과해 보증해줄 수 없는 업체에 보증서를 발급해주고 대위변제하는 등 10억여원의 손실을 냈다. 경기개발연구원은 연구활동비 등을 유흥음식점비용으로 사용했으며 연구공헌도가 없는 직원에게 자료수집비로 800여만원을 부당 지급했다. 경기문화재단도 업무추진비 등을 영수처리 않고 집행한 것은 물론 외부에 학술연구 용역을 맡기면서 원가계산을 제대로 하지 않아 예산을 낭비했다. 경기중소기업진흥재단 역시 특수활동비의 부당 사용외에 구조조정 자금 신청업체에 대한 부당한 평가로 적격업체를 탈락시키고 대상에서 벗어난 업체를 지원하는 등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처럼 이들 기관은 하나같이 예산을 부풀려 편성한뒤 자기 주머니돈 쓰듯 써왔으며 직무와 관련해서 여러 문제점을 야기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경기개발연구원과 경기문화재단은 IMF 관리체제에서도 예산과 인력을 늘렸다고 해서 지난해 국감에서 지적받은 바 있다. 그동안 경기도 당국과 해당기관 책임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제2의 IMF 위기설이 나도는 가운데 일선 시·군이 두번째 인력감축을 추진중에 있고, 공기업들 역시 구조조정의 진통을 겪고 있으며, 민간기업들도 뼈를 깎는 감량경영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아직도 남아 있는 거품제거 작업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도 산하 출연기관들은 거꾸로 가는 느낌이다. 해당기관들은 이제라도 자기개혁을 통해 경영효율을 높임으로써 도민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오늘로 사흘 말미의 상봉일정을 마치는 제2차 남북이산가족 교환방문이 전처럼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한데는 이유가 있다. 이산가족의 절실한 통한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인도주의적 상호방문이 앞으로도 지속돼야 하는 민족적 과제를 부정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런데도 비교적 냉랭한 사회반응은 당장 살기 어려운 경제난에도 원인이 있지만 정부의 대북 저자세에 식상한 국민정서의 반발로 보인다. 북측의 기피인물로 지목된 장충식한적총재의 모호한 도피성 일본외유, 평양방문단의 홍역백신 집단접종 등은 한마디로 이쪽 체면이 말이 아니다. 평양 방문단장인 봉두완한적부총재에게 북측 관계자들이 밝힌 간접비난 역시 여전한 남한 길들이기다. 화해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한 인내라 할지 모르겠으나 그래서 참기로 한다면 한량이 없다. 정도를 지나친 수모까지 견뎌야 하는 화해는 참다운 화해가 아니다. 이미 화해분위기를 위해 국군포로 및 납북자가족 상봉같은 예민한 문제는 감히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정부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않는 것이 아니다. 하나, 이로도 모자라 줄곧 길들이기에 순치 당한다면 그 종착이 어디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산가족상봉 또한 지금같이 계속돼서는 안된다. 마치 남북의 정권이 무슨 선심이나 쓰듯이 몇달만에 겨우 100명씩 뽑아 데려가고 데려오는 반짝상봉의 모양새가 돼서는 이산가족들 숙원에 제대로 부응한다 할수 없다. 지금같은 형태의 상봉은 처음 시도된 몇차례로 그쳐야 한다. 내년부터는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이 당연시되는 제도적 전환이 요구된다. 이를 위한 장치가 이산가족상봉의 정례화, 남북면회소 설치 등인데도 이에 대해서는 조금도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남북이 진실로 민족화해를 위한다면 남북면회소설치, 이산가족상봉의 정례화에 인색하지 않는 적극적 추진이 있어야 한다. 모든 이산가족들의 상봉예정이 점차적으로 가시화돼야 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서는 서신왕래, 더 나아가서는 장차 자유로운 교류의 왕래가 가능해져야 한다. 이같은 이산가족의 만남이 제대로 성취해가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정치색을 떠난 인도주의적 차원으로 이행돼야 한다. 서울방문의 평양측 이산가족들 가운데는 정치색 발언이 잦은데도 북측에 이를 제지못하는 것은 유감이다. 본란은 적어도 이산가족 상호방문만은 철저한 상호주의원칙에 의해 추진되기를 촉구해마지 않는다. 아울러 국군포로 및 납북자에 대해서도 조속한 문제제기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초기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은 대부분 지금은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작가들이 많다. 그러나 레프 톨스토이, 베르톨트 브레히트,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마르셀 프루스트, 프란츠 카프카같은 대가들은 모두 노벨상을 타지 못했다. 노벨상 선정의 행정적인 문제가 그 원인이었다. 노벨문학상 선정은 1786년 ‘스웨덴어의 순수성과 활력, 위엄’을 지키기 위하여 설립한 스웨덴 학술원의 18인 선정위원회에서 이루어진다. 종신직인 스웨덴 학술원화원을 원로들이 대부분이다. 지난 1989년부터 문학상 선정위원회의 커스틴 에크맨, 라르스 길렌스텐, 크누트 안룬트 등 3인의 위원은 스튜르 알렌 사무총장의 직권 남용에 항의, 선정위원회 활동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알렌 사무총장은 스웨덴 문단에서 ‘책이라고는 읽지 않는 지적인 경리사원’으로 묘사되는 인물로 노벨상 선정의 모든 위원회에 관여하며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올해는 ㅅ너정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선정위원이 스캔들에 휘말렸다는 소식이다. 은퇴한 중국문학 전공 교수인 고람 맘키비스트 위원이 올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오싱젠(高荇健)의 번역자이며 도 노벨상 수상발표전에 출판사를 옮긴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요즘 영·미문학권에서는 노벨문학상을 과거처럼 그렇게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노벨문학상이 너무나 정치적으로 선택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위안하는 소리같지만 한국문인들이 노벨문학상을 아직 받지 못한 것은 그러한 실정에서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淸河
구름 김애지<군포초등2> 구름도 옷을 입나봐요 아침에는 파란 줄무늬 옷 점심에는 하얀 티셔츠 저녁에는 빨간 잠옷 진짜 우리처럼 옷을 입나봐요. 화가 나면 검은 옷 입고 눈물도 흘리고 우르릉 쾅쾅 소리도 지르지요.
바람 이지혜<평택 덕동초등3> 바람은 개구쟁이 나뭇잎 하나 또옥 떨어 뜨리고 바람은 개구쟁이 감 하나 뚜욱 떨어뜨리고 바람은 개구쟁이 아기 치마 사알짝 들어 올린다.
별 김보윤<평택 지장초등2> 노오란 초승달 배를타고 옥토끼 두마리가 별구경 하다 길을 잃는다. 별들이 부끄러워서 별들이 미안해서 반짝반짝 등대가 되어준다.
첫눈 장희수<수원 인계초등1> 처음으로 눈이 내리는 날 눈 하나는 동글동글 또 하나는 둥글둥글 또 하나는 반짝반짝 여러 눈 모습이 달라요. 아이들은 즐겁게 눈싸움해요.
황해도 송화군 출신인 72세의 Y씨는 1953년 전북 군산에서 미군부대 노무자로 일하다가 육군 첩보부대 제1교육대 2기생으로 북파공작원 길에 들어섰다. 6·25전쟁이 일어난 직후 피란길에서 가족과 헤어졌다.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직장 구하기가 어려운 Y씨에게 “돈 많이 주고 미래도 보장해 준다”는 조건은 꿈만 같았다. 3개월간 훈련 끝에 강원도 속초의 36지구대에 발령받아 ‘활동’을 시작했다. 계급이나 군번은 없었다. 정전을 목전에 두고 ‘숨겨진 전쟁’에 투입된 Y씨는 1959년 7월 ‘해고’될 때 까지 10여차례 북방 한계선을 넘나 들었다. Y씨는 마지막 공작이었던 1958년 3월 고성지역 작전에 투입됐다. 새벽녘 동료 4명과 함께 인민군과 총격을 벌였고, 왼쪽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성남시에서 살고 있는 Y씨는 이때 왼쪽 무릎에 박힌 파편을 빼지 못해 지금도 주사제와 약을 복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는 참으로 비정했다. 공사장 인부와 경비원 자리도 다리를 절룩거리는 Y씨에게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파출부, 식당일 같은 허드렛일로 아내가 생계를 꾸려가고 세 남매는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다. 사회적응에 실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동료들의 소식이 간간이 전해져 왔다. 6·25 전쟁중이던 1952년부터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때까지 활동한 ‘북파공작원’은 1만여명에 달한다. 이 중 실종자 7천726명을 제외한 사람 가운데 상당수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무관심과 사회적 냉대 등으로 대부분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으며, 가족에게조차 과거를 털어놓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 한계를 넘는 훈련을 받고 생명을 바쳐 국가에 헌신한 북파공작원 출신들을 홀대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959년 이전 활동자에 한해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은 그래서 하루 빨리 개정돼야 한다. /淸河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지석묘 등 강화지역 127기의 고인돌군(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크게 환영할 일이다. 호주 케언즈에서 개최중인 세계유산위원회(WHC)가 지난달 29일 총회를 열어 강화·고창·화순고인돌 유적 및 경주역사 유적지구 등 우리나라 문화유적 2건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키로 의결한 것이다. 주지하고 있는 바와 같이 강화 고인돌은 동양에서 가장 완벽한 건축조형미를 갖춘 북방식으로 일명 ‘작은 국토 박물관’으로도 일컬어져 온 만큼 당연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995년 불국사와 석굴암·종묘·해인사 장경판전, 그리고 1997년 수원의 화성, 서울 창덕궁에 이어 모두 7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세계유산등록 심의에서 강화일대 고인돌유적은 선사시대 기술 및 사회발전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세계문화유산 등록과 함께 이들 유적은 그 가치와 우수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동시에 훼손방지와 과학적 보존을 위한 기술·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어 더욱 다행스럽다. 더불어 이들 유적안쪽과 주변에서의 건축행위 등은 엄격히 통제된다. 그동안 강화군은 고인돌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수 있도록 1998년 세계유산잠정목록에 등재를 신청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정식 등록절차를 거쳤다. 특히 강화 고인돌군 유적에 대한 학습장과 관광자원 활용을 위해 10억여원의 예산을 들여 고인돌군 주변 사적지(21,487㎡)를 매입한데 이어 내년까지 나머지 사유지를 매입, 휴식공간 조성 및 선사유적 박물관 건립 등 고인돌 사적 공원화 조성을 위한 종합개발계획을 수립, 추진중에 있다고 한다. 국가적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강화군의 이러한 노력에 대하여 치하의 뜻을 표해 마지 않는다. 몇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세계유산 등록 전 보다 등록 후의 철저한 관리이다. 문화재청과 강화군은 인류전체를 위해 보호돼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된 고인돌군을 강화의 지역적 특성과 각각의 차별성을 부각하여 보존·정비를 실시하고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고품격 역사문화유적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강화군은 특히 이번 세계유산 등록으로 개발과 파괴 위협에서 벗어난 만큼 보다 철저한 보전·관리에 힘써 관내의 세계문화유산이 훼손·파괴 안돼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