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정주영씨의 永眠

1981년 겨울, 어느날 오후 갑자기 폭설이 쏟아져 서울시내 교통이 금시 마비돼 차타고 가는 것보단 걷는것이 더 빠를 지경이 됐다. 제3한강교에서 차를 내려 측근의 만류를 뿌리치고 장충체육관까지 걸어 당도했다. 여자배구 정상의 숙적 미도파팀과 대전하는 현대팀 선수의 격려를 위해서 였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어떻게든 해내는 아산(峨山) 정주영씨의 성격은 그런데서도 나타났다. 어제 서울 중앙병원에서 7천 여명의 각계 조문객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된 영결식에 이어 하남 창우리선영에 안장됐다. 발인 전날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조화와 조전을 지닌 거물급 조문단이 특별기편으로 빈소를 다녀갔다. 중국은 국가차원의 애도를 표하고 주한공관의 많은 대사들이 조문했다. 국민경제 개발의 거목, 아산의 말년은 남북관계 민족화해의 시도에 이바지한 공로가 커 더욱 빛난다. 북측 조문단은 정부관계자와도 비공식 접촉을 가진것으로 알려졌다. 장관급 서울회담 무기연기이후 잠잠했던 남북간 접촉이 조만간 재개될 전망이다. 살아 생전에 남북소통의 물꼬를 튼 그는 죽어서까지 교량역할을 했다. 북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것은 금강산 근처인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다. 아호 ‘아산’은 강원도(북쪽) 통천군 아산리라는 산골 고향마을 이름이다. 소년시절의 고향 이름을 아호로 쓴것을 보면 얼마나 가보고 싶었는가를 알수 있을것 같다. 결국 고향에 다녀올수 있었던것이 오늘의 대북사업 계기가 됐다. 아산은 건설현장의 근로자들과도 씨름을 곧잘 했을만큼 무척 소탈했던 분이다. 한동안은 체험적 생활철학, 경영철학을 재미있게 얘기해 특강 초빙강사로 인기를 끌었다. 재미가 있었다는 것은 꾸밈이 없다는 것, 즉 진실이 듣는이의 시금을 울렸다는 뜻이된다. 20년전 제3한강교에서 장충체육관까지 눈길을 재촉해 걸었을때가 예순여섯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청춘이었던것 같다. 영면한 그를 돌이키면서 해맑은 웃음으로 온몸의 눈을 털며 갑자기 나타나 스포츠기자들을 놀라게 했던 모습이 새삼 눈앞에 선하다. 부디 편히 쉬소서.

생명띠

경찰청의 자체단속 결과 운전중 안전띠를 안맨 경찰이 무더기로 적발됐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운전문화 실상을 잘 말해 준다. 안전띠 미착용을 단속하는 경찰이 평소 안전띠를 안매고 운전을 한다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안전띠 착용은 모든 안전운전의 출발점이자 사고시 생명을 지켜줄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의무사항이다. 미국국가안전협회(NSC)의 연구결과를 보면 안전띠의 효과는 대단하다. 체중이 60㎏인 운전자가 시속 50㎞로 달리다 반대편에서 같은 속도로 달려오는 자동차와 정면 충돌했을 때 운전자는 18t의 쇳덩어리에 부딪히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지만 안전띠를 맸다면 그 충격은 2t으로 급격히 줄어든다. 또 안전띠를 매지 않은채 시속 70㎞로 차를 몰다 충돌할 경우 7층 높이, 시속 90㎞일 때는 무려 11층 높이의 건물에서 추락하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대형교통사고 발생시 안전띠를 착용한 운전자가 미착용자에 비해 생존가능성이 45% 더 높고 심한 부상없이 살아 남을 가능성도 50%에 이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운전자 10명중 7명이 안전띠를 매지 않는다고 한다. ‘ 나는 교통사고 당하지 않는다 ’는 안전불감증과 안전띠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기때문이다. 차에 불이 나거나 강물에 빠졌을 경우 안전띠를 착용하면 더 위험하다고 잘못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전체 사고의 0.5%도 안된다. 이 경우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아 차창밖으로 튕겨 나간다면 좌석에 고정된 상태보다 25배 더 위험하다고 한다. 굴러 떨어지면서 차 내부에 부딪혀 정신을 잃는 확률이 안전벨트 때문에 차문을 못여는 확률보다 높다는 것이다. 안전띠를 매야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어 나올 수 있기때문이다. 도로교통법은 고속도로 및 자동차 전용도로를 운행하는 운전자나 탑승자, 또 일반도로에서 운전자와 조수석의 승차자가 안전띠를 매지 않다가 적발된 경우 3만원의 범칙금을 물게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 사고가 났을 경우 피해자라 할지라도 5∼15%의 책임을 져야 하며 운전자가 보험사로부터 보상받는 자기신체사고 보험금의 5%를 공제당하게 된다. 4월 2일부터 ‘안전띠 미착용’에 대한 집중적인 단속을 벌인다고 한다. 자기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 안전띠 ’를 안맸다고 다른 사람(경찰)이 단속을 한다니 묘한 세상이다. / 淸河

경찰, 고질적 관행 왜 못고치나

경찰 공직사회의 못된 관행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공직중에서도 그 조직의 특성상 구성원의 기강과 사기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선 경찰서가 예산은 한푼도 지원하지 않은 채 관내 파출소 내외의 시설개보수 등 환경정비를 지시하는 행태가 여전해 민폐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부천중부경찰서의 경우 얼마전 새로 부임한 서장이 일선 파출소에 환경정비를 지시하면서 그 비용을 파출소 운영비에서 쓰든지 다른 방법으로 충당하고 말썽이 나면 파출소장이 책임지라고 했다니 파출소직원들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월 200만원 남짓한 파출소 운영비로는 직원 급식비나 여비·공공요금 등의 지출로 여유가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이같은 지시를 내린 것은 유지들에게 손을 벌리거나 부정을 저지르라는 것과 같다는 일선 경찰관들의 항변을 들을 만도 하다. 이런 사례는 비단 부천중부경찰서만의 일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일 것이다. 만일 경찰관들이 파출소 환경정비 비용을 핑계로 지역유지나 업소들에게 찬조금 협조를 구하는 일이 잦게되면 민폐를 끼칠 우려가 있고, 여기에 비리가 끼어들 소지도 없지않아 있게될 것이다. 사회공공유지자로서의 경찰권을 바르게 행사하기도 어려울 것이며, 공정성을 잃은 경찰권은 국민의 불신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경찰관계자는 비예산사업으로 환경정비를 하라고 했다고 하나 파출소내 바닥 타일 공사와 책걸상 교체·창문 커튼설치 그리고 파출소앞 콘크리 포장공사 등 어느것 하나 돈 안들이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일부 파출소에서는 소요경비 400만∼500만원을 파출소장이 충당했다고 하니 그 돈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다. 일선 공무원들의 기강확립과 비리척결은 공직사회가 풀어야 할 절실한 과제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듯이 공무원들이 직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그들의 처우와 근무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한 공직쇄신은 공염불에 그치게 마련이다. 국영 기업체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보수와 비현실적인 사무실 운영비 그리고 자금지원 없는 예산사업지시 등 부정 비리를 유발할 수 있는 원인을 개선하지 않은 채 공직쇄신만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국은 이제 비뚤어진 경찰위상을 바로 세우고 치안유지자로서의 직분에 충실할 수 있도록 고질적인 묵은 관행들을 속히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峨山’을 보내면서

아산(峨山) 정주영 전현대그룹명예회장의 부음에 외국의 언론들도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한국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큰 손실’이라며 해설 기사와 함께 타계 소식을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늘 새로운 도전으로 경제기적을 이룬 주인공’이었다고 평가,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오늘에 이른 입지담을 아울러 보도했다. 생전에 거처한 방안의 책상 모서리가 닳고 닳아도 그대로 썼을만큼 생각보다 검소했던 청운동자택에 차려진 빈소엔 연일 수많은 조문객 행렬이 물결을 이루고 있다. 사회 또한 대체로 애도의 정서가 깔렸다. 고인은 ‘경제의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던 체험적 보릿고개의 빈곤추방을 시작으로 기간산업의 고도 성장을 이끌어낸 국민경제의 거목이다. 실제로 60년대의 정주영기업인은 박정희대통령의 경제동지였다. 많은 사람이 불가능하다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일신의 명운을 걸고 박대통령에게 결행의 용기를 주기도 했다. 근래에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것도 그였다. 역사적 전기의 남북정상회담을 가능케했던 것은 수차 평양을 왕래하며 주도한 대북사업에 힘입은바가 크다. 정주영씨의 타계는 남북관계의 변수로 등장하고 있긴하나 가능한 한 유지를 살리는 것이 민족의 이익일 것으로 생각한다. 대선출마를 두고 흠을 말하긴 한다. 국민당을 조직, 15대선거에 나선것은 경제인으로 외도임은 틀림 없지만 그로써도 평소 정치권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있었던 한(恨) 풀이로 해석하면 못할것도 아니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다 그런것처럼 흠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파란많은 한 생애의 관을 닫는 마당에선 부정적 측면보단 긍정적 대의가 더 우선해 평가받는 것이 마땅하다. 인생은 유한하여 찬연했던 ‘불도저의 신화’는 꺼졌다. 그러나 맨주먹으로 시작해 어지간히 열심히 산 불굴의 도전의식은 비록 시대가 달라도 후세의 교훈이 되기에 충분하다. 내일이면 역시 빈몸으로 유택에 묻히지만 그가 남긴 큰 족적은 길이 남을 것이다. 현대그룹은 어차피 계열분리가 불가피하게 돼있다. 경영2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행여 더 이상의 집안 싸움으로 고인에게 누(累)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향년 여든여섯이면 아쉽긴 하나 천수를 누렸다 할수가 있다. 삼가 명복을 빈다.

은행 = 전당포?

항간에 “은행이 물건을 잡고 고리(高利)로 돈을 빌려 주는 ‘전당포’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져 나온다. 올 들어 전세값 폭등으로 서민가계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는 판국에 은행들이 주택담보 대출자들만 우대하고 담보없이 신용으로 돈을 빌리는 서민들에게는 고금리를 물려 이중고를 겪게 하기 때문에 떠다니는 말들이다. 무주택자들은 신용대출을 받기 위해 보증인은 물론 신용카드 가입, ‘꺾기(구속성예금)’등을 강요하는 은행들의 횡포(?)를 거절할 수가 도저히 없다. 연체기록이 없고 신용도가 높은 고객이라도 아파트 등 그럴 듯한 담보물을 제공하지 않으면 고금리의 올가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요즘 시중금리의 하락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이 적용하는 신용대출금리는 일반 회사원을 기준으로 연11∼12%에 달한다. 대출금 한도내에서 수시로 입·출금할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의 경우는 최고 연11.5∼13%의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신용대출자들에게 적용하는 금리는 1년전에 비해 거의 변동이 없다. 집 없는 서민들은 최근의 초저금리 혜택을 전혀 입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주택을 소유한 가계에 빌려주는 담보대출금리는 3월 들어 사실상 연6.7∼7.2%까지 인하됐다. 거기다가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자들에게는 고객확보 차원에서 담보설정비와 인지대 등 각종 수수료까지 면제해주는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 비율의 위험가중치가 50%에 불과하지만 신용대출은 100%에 달해 금리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은행측의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은행들이 신용대출에 대한 위험관리 부담을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는 것이어서 집 없는 서민들은 이래 저래 더욱 서럽다. 그렇다고 은행에서 신용대출 받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니다. 신용대출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오죽하면 패가망신 당할줄 알면서도 사채를 쓰겠는가. 물론 은행은 이익을 남겨야 하는 곳이다. 대출 안받으면 될 거 아니냐는 고약한 은행도 있다고 하니 실은 따질 일도 못된다. 하지만 적어도 돈 놓고 돈 먹는다는 식의 비난은 듣지 말아야 한다. 은행은 ‘ 일반인의 예금을 맡고 그것을 기업 등에 대부하거나 어음 할인 등을 해주는 금융기관임 ’을 잊었는지 돈 급한 사람들의 시계나 금반지를 잡는 옛날의 전당포처럼 돼 가는 것 같아 참 씁쓸하다. /淸河

무허가 신용정보업체 단속하라

금융 신용불량자에 대한 채권 추심을 해주는 무허가 신용정보업체가 난립하면서 채무자의 사생활 침해가 형언키 어려운 지경이라고 한다. 이들 불법 신용정보업체가 폭력조직과 연계해 채권 추심과정에서 채무자에게 온갖 협박과 폭력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정식허가를 받은 신용정보업체는 모두 10개에 불과하고 무허가 업체가 전국적으로 3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용정보업체 거의가 무허가인 셈이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다. 현재 금융 신용불량자는 모두 243만명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7년 말 148만명에 비해 64.2%나 증가했다는 게 은행연합의 집계다. 이처럼 폭증하는 신용불량 고객을 보유한 채권 금융기관들이 채권 추심을 무허가 업체들에 위임하고 있다면 적절치 못한 방법이다. 금융기관으로부터 채권 추심을 위임받은 불법업체들이 정식 신용정보업체로 가장해 위협적인 내용의 안내장을 보내거나 심지어는 폭력까지 동원해 협박하고 있다니 보통 심각한 민생문제가 아니다. 이에 금융당국이 3월초 신용정보업법 개정을 통해 앞으로 채무자에게 허위사실을 알리거나 심야방문 등으로 사생활을 침해할 경우 3년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고 하지만 개정법안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금감원 지침이 마련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개정법 발효 이전에 집중적인 단속을 벌이지 않으면 불법 업체들의 가해는 여전할 게 뻔하다. 무허가 신용정보업체의 난립은 채권 금융기관들과도 전혀 연관이 없지 않다고 본다. 무허가 업체인줄 알면서 채권 추심을 위임하는 것은 무허가업체 난립을 부채질하는 동시에 무허가 업체를 인정해 주는 처사와 같기 때문이다. 불법 신용업체와 관련된 피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 채권 추심을 위임한다는 것은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장삿속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무허가 업체가 300여개가 달하는 사실을 알면서도 단속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금융기관들은 합법적인 신용정보업체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고 특히 서민들이 고통을 받는 무허가 신용업체에 위임하는 채권 추심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 특히 금감원은 신용정보연합회 등에 신고센터를 하루 빨리 설치, 채무자의 사생활 침해가 적발될 경우 수사기관에 즉시 고발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

은행의 소액예금 홀대 역작용

시중은행의 소액예금자 차별제도가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최근 시중은행들이 소액예금에 이자를 주지 않거나 오히려 계좌유지 수수료를 부과하는 소액예금자 차별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소액 고객들로부터 큰 불만을 사고 있다. 소액예금 무이자 통장제를 시행하고 있는 한빛은행은 이미 지난 19일부터 매일 최종 잔액이 50만원 미만인 보통·저축예금 등에 이자를 주지 않고 있으며 서울은행도 3개월 평잔이 20만원 미달 저축예금에 이자를 주지 않고 있다. 국민·주택·한미은행도 다음달부터 비슷한 제도를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은행은 아예 지난 1월부터 보통·정기예금 등 4개 예금의 월 평잔 합계액이 10만원에 미달할 경우 매월 2천원의 계좌유지 수수료를 물리고 있다. 결국 수익성 없는 고객은 버리겠다는 경영전략이다. 물론 은행들은 통장을 개설하고 계좌를 유지하는 데 적지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일정기준 이하의 통장에 대해 이자를 주지않거나 계좌유지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소액예금자에 대한 푸대접이 장기적으로 저축률 하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목전의 수익성에만 급급한 영업방식의 이같은 변화는 우선 우리의 금융정서에도 맞지 않다. 이 제도가 자칫 저축심 저해로 이어지면서 그동안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높은 저축률을 끌어내리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가계저축률은 해마다 계속 떨어지고 있다. 94년 33%였던것이 95년 29.9%, 99년 24.6%, 지난해엔 22.3%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이자를 주지 않거나 수수료를 부과하는 소액고객 홀대는 저축률 하락을 부채질 하는 것 밖에 안된다. 저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저축이 넉넉해야 해외차입 없이도 투자재원을 뒷받침해 성장잠재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IMF사태도 투자과잉에다 그 재원의 상당부분을 해외에 의존한 데서 빚어졌다. 해외차입에 의한 투자가 얼마나 무서운가는 환란때 우리가 몸소 겪어서 잘 알고 있다. 이제 재도약의 발판을 다져야 하는 현 상황에서야말로 저축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다시 저축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합리적인 소비생활 패턴을 정착시키는 기반조성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저축을 유도하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소액예금에 이자를 주지 않거나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은 저축장려와는 상반되는 일이다. 금융계의 사려깊은 재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부당한 醫保인상 안된다

금년도 의료보험에서 예상되는 적자가 약 4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없다면 의료보험재정은 파탄을 맞을 것이며, 그 동안 정부에서 자랑하던 의료보험은 오히려 국민들에게 원성의 대상이 될 것이다. 대책 마련이 얼마나 어려우면 정부·여당의 준비 미흡으로 국회보건복지위가 회의 자체를 연기시키겠는가. 정부는 현재의 의보 재정 적자를 타개하기 위하여 우선 의료보험료 인상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쉬운 방법이 아니겠는가. 일단 월급쟁이들의 봉급에서 자동으로 공제하는 의료보험료를 인상하면 일정기간 원성은 듣겠지만 그 이상의 안이하고 효율적인 대책이 있겠는가. 항상 봉급쟁이들을 ‘봉’으로 알고 있는 관료들의 무책임한 발상이 새삼 되새겨진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더 이상의 의료보험료 인상은 절대 안된다. 지난 7월과 금년 1월에 걸쳐 두차례나 보험료를 인상하여 월급봉투가 얼마나 얇아졌는데, 또 손쉬운 보험료 인상이나 하려고 한다면 이는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다. 그 동안 건실하게 운영되던 직장의보를 통합시켜 부실하게 운영하고 이제 와서 다시 보험료를 인상한다면 이는 지극히 잘못된 발상이다. 만약 이번에 또 보험료를 인상하게 되면 정부는 격렬한 저항을 면치못할 것이며, 나아가서 조세저항도 예상된다. 이번 의보재정 파탄은 정부의 정책실패이다. 정부는 의료분쟁이 야기되었을 때 재정문제에 대한 심각한 검토없이 분쟁 해결 그 자체에 초점을 두어 의료계의 의보수가 인상요구를 받아주어 이와같은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어떻게 정책수행에 있어 재정적 고려없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가. 정부 당국자는 지난해 의료파동때 국회에서 의보재정을 추궁했을 때 문제가 없다고 답변하고 이제 와서 변명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정부는 부당하게 월급쟁이로부터 손쉬운 보험료나 인상하려하지 말고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의료보험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수술을 통하여 장기적 대책을 마련해야 된다. 방만하게 운영되는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도 과감하게 수술하여 전문성 있는 인사로 교체해야 된다. 총체적 정책 실패의 표본인 의료보험 정책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히 요구된다. 시급한 것은 개각이 아니라 파탄직전에 있는 의보재정 대책마련이다.

실업대란, 땜질 처방 안된다

제2의 실업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지난달 실업자수가 11개월만에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우리나라 국민 10가구당 1가구는 실업의 고통을 겪게 됐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2월중 실업자수가 106만9천명으로 전달보다 8만7천명이 증가했다. 실업률도 4.6%에서 5%(경기 4.7% 인천 5.5%)로 크게 높아졌다. 실업자가 또 다시 100만명 시대에 진입한데다 당분간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으로 보여 고용 불안 심화가 염려되고 있다. 특히 이번 고용동향 통계에서 걱정되는 부문은 청년층 실업의 급증현상이다. 107만명에 가까운 실업자중 고졸·대졸자 등 청년(만15∼24세)실업률이 12.3%를 차지, 지난해 1월(14.0%)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대졸자 취업률이 53%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이고 보면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젊은이들이 ‘실업’이라는 엄청난 벽에 부딪혀 느꼈을 좌절감 등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이다. 구조적 실업의 고착화도 심각한 문제다. 구직기간이 1년이상인 장기실업자가 2만8천명에 달해 1월보다 7천여명이나 늘었다. 이 결과 일할 의사와 능력은 있지만 일자리 찾기를 아예 포기한 구직단념자가 지난해 10월(13만명) 이후 계속 늘어 지난달 15만 3천명으로 늘었다. 가계를 꾸려 나가야 할 이들이 겪는 실업의 고통이 안쓰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정부의 자세는 너무 낙관적이고 안이하기만 하다. 정부는 2월중 실업자가 급증한 것은 계절적 요인 때문이어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실업자가 최근 넉달 만에 무려 30만명이나 늘어 계절 탓으로 돌리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 또 정부의 예측은 빗나가기 일쑤여서 신빙성도 낮다. 기업퇴출이 한창이던 지난해 11월 정부는 올 2월달 실업자수를 96만명(4.4%)으로 전망하고 취업알선·직업훈련 등의 대책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지난 1월 정부는 100만명에 육박할 수 있다며 전망을 수정, 청년실업자의 IT(정보기술) 인력화라는 보완책을 내놓았다. 정부가 실업자수 전망 수정을 거듭하면서 그때마다 보완대책을 내놓았지만 별로 나아진 것은 없다.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분석에 기초한 대책이어서 단기 대증적 요법에 그쳤기 때문이다. 당국은 이제 기존의 대책들을 그때그때 복사해서 내놓는 것으로 그치기 보다는 그 대책들이 효율적으로 운용되는지 점검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또 효과 분석을 엄밀히 해서 개선해야 할 점은 즉시 보완해야 한다. 정부의 실업대책이 형식적이고 비효율적인 요소로인해 공연히 시간과 돈만 낭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고마운 물

지난 1999년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 100여개국 대표가 모인 가운데 ‘물부족 대책 국제회의’가 열렸었다. 아브제이드 의장은 “아프리카·중동 등지에서 3억명이 심각한 물부족을 겪고 있다”며 “2050년에는 10억∼24억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은행도 20세기 국가 분쟁의 원인이 ‘석유’라면 21세기는 ‘물’이 될것이라고 지적했다.이 ‘물부족 우려’는 아프리카·중동 이야기만이 아니다. 한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미 유엔 산하 국제인구행동연구소(PAI)가 한국을 ‘물부족 국가군’으로 분류한 바 있다. 우리 정부도 2004년부터 물부족 현상이 나타나 2011년에는 연간 20억t이 모자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과 5년 후인 2006년에는 연간 4억t의 물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물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는 물절약과 함께 해수의 담수화,인공강우, 중수도(中水道) 등 대체 수자원 개발 사업을 진행중이다.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해 민물로 만드는 ‘해수의 담수화’는 국내에서도 전남 홍도, 경남 진해 등 40여곳에 시설이 있다. 인위적으로 구름씨(cloud seed)를 뿌려 비를 내리게 하는 ‘인공강우’는 1946년 미국에서 처음 실시했는데 국내에서는 1963년 양인기박사 이후 30여년간 중단됐다가 1995년부터 수자원공사가 주축이 돼 다시 착수했다. 한번 쓰고 난 물을 깨끗하게 해서 허드렛물로 다시 쓰는 ‘중수도’는 일종의 ‘자원재활용’이다. 중수도는 수원 삼성전자, 서울 롯데월드 등 대형건물들을 중심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선진국의 40% 수준인 수자원 기술수준을 2010년까지 80% 이상으로 개선하는 한편 기술격차를 5년 이내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수자원 기술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기본은 물을 아끼는 생활습관이다. 물 절약이야말로 댐 건설보다 효과적인 대책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그리고 수질보호다. 지금 이 지구상에서 더러운 물로 죽어가는 어린이의 수가 5천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죽어가는 하천을 살리는 일은 사람의 피를 맑게 하는 일과 마찬가지다. 마실 물이 없는 상황은 상상만해도 숨이 막힌다. 물 문제는 우리를 위협하는 시한폭탄과 같은 것이다. 3월22일, 오늘은 ‘세계 물의 날’이다. 물이 사람은 물론 모든 생물의 생명임을 재삼 인식하는 날이다.고마운 물을 주는 자연에 감사하는 날이기도 하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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