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잔류에 ‘격앙’...민·관 투쟁 배수진

동두천 미군기지 잔류 검토 계획에 뿔난 동두천시민사회단체가 총 참여해 구성된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가 2일 본격적인 대정부 투쟁을 위한 실무협의에 나섰다. 지난 2월 창립총회와 함께 구성된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위원장 한종갑)는 이날 오전 시청회의실에서 임원회의를 열고 대정부 요구사항을 비롯한 당면한 향후 활동방향 등에 대해 논의를 했다. 대정부 투쟁 수위에 이목이 집중된 임원회의에는 오세창 시장과 박형덕 시의회의장을 비롯한 대책위 임원 등 21명이 참석했다. 대책위는 협의를 통해 △반환예정 미군기지의 신속한 반환 △반세기 국가안보 희생에 대한 정부차원의 획기적 지원 △동두천 미군기지 잔류시 충분한 협의 등 3개항의 대정부 요구사항을 확정했다. 이를 위해 우선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위한 충분한 설명과 함께 시와 시의회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범시민적 투쟁의 강도를 높여 나가기로 했다. 또 국방부와 환경부 간 환경치유 문제에 따른 이견으로 2016년 개교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는 캠프캐슬(동양대학교 부지)의 조기 반환을 촉구하는 대책위 명의에 건의문을 환경부에 우선 전달키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대책위는 한미 연합사령관의 기지잔류 검토 발언 이후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항이 없는 만큼 국방부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당분간 기지잔류와 관계없이 중앙정부에 동두천지원을 촉구키로 해 우려됐던 64지방선거 관련, 극단적 대정부 투쟁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종갑 위원장은 국가 안보로 희생된 동두천시가 자력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이제 대책위의 활동에 달려있다며 하나된 시민의 힘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미군 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해 커티스 스카파로티 한미 연합사령관의 한강이북 미군잔류 필요성 언급에 반발, 지난 2월27일 동두천시민과 42개 사회단체가 총 참여하는 창립총회를 통해 구성됐다. 동두천=송진의기자 sju0418@kyeonggi.com

동두천시의회 전국 첫 ‘곤충산업 육성 조례’ 제정

동두천시의회가 전국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새로운 고부가가치 농가소득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곤충산업 육성을 위한 조례를 제정한다. 지난 2010년 8월 곤충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 이후 경기도의회와 전남도의회 등 일부 광역의회 차원에서 곤충산업 육성지원 조례를 제정한 적은 있으나 기초의회의 조례 제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27일 동두천시의회에 따르면 박형덕 의장이 대표발의한 동두천시 곤충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안은 곤충산업의 산업화를 촉진하고 지원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다음달 4일 열리는 제241회 임시회에 상정해 의결할 예정이다. 조례안은 동두천시장으로 하여금 곤충산업의 기반조성 및 경쟁력 강화에 필요한 시책과 세부 실천계획을 수립시행토록 하는 시장의 책무를 규정했다. 또 필요한 전문인력의 양성과 생산가공유통 등에 대한 기술교육을 실시하고 기술개발의 촉진을 위한 동향수요조사, 연구개발과 개발된 기술의 권리확보 및 실용화를 위한 노력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곤충생산단지 및 체험학습장 조성은 물론 곤충농가와 생산자단체의 기술개발과 사육가공유통시설 구축 등 상품화 사업에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사항도 담고 있다. 박 의장은 국내 곤충시장의 규모가 지난 2009년 1천600억원에서 2015년 3천억원 수준으로 크게 증가되는 등 지속적인 성장이 전망되고 있다며 곤충산업의 지원을 통해 곤충농가의 소득 향상과 일자리 창출 등으로 침체에 빠진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례를 발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동두천=송진의기자 sju0418@kyeonggi.com

“몸이 아파도 꿈나무들 악기교육 봉사는 멈출 수 없어요”

한국전쟁 고아 출신으로 암과 투쟁하며 40년간 고아들을 대상으로 실천해 온 음악 재능기부 봉사의 끈을 이어가는 이가 있어 화제다. 동두천시 소요동(안흥동) 야산의 무허가 오두막집에서 홀로 생활하는 우학재(71) 할아버지가 그 주인공. 우씨는 8살 때인 1951년 14후퇴 때 고향인 개성을 떠나 임진강을 넘으면서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고 동두천에 소재한안흥보육원에 맡겨졌다. 공민학교 5년과 지금의 신흥 중고교를 다니며 틈틈이 배운 노래와 기타 등 다양한 악기 연주는 서글픈 인생역정의 외로움을 달래는 친구였다. 고교 졸업 후 보육원을 떠나 양계장 막일 등 힘든 일도 모두 경험했다. 그의 본격적인 음악 재능기부의 삶은 1973년 자신을 키워준 안흥보육원에 복지사(생활지도자)로 근무하면서부터. 그는 당시 23명의 보육원생으로 구성된 안흥어린이합창단을 창단했다. 자신이 갈고 닦은 음악적 지식을 통해 원생들이 미래의 청사진을 그리는데 작은 등불이라도 되고 싶다는 의미에서였다. 1978년부터 1994년까지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은 미2사단 내 어린이합창단, 한ㆍ미연합합창단, 흙인찬양단 창단의 주역도 그다. 그는 노인복지시설과 군부대 위문 등 당시 어린이합창단의 활동은 대단한 인기였다고 회고했다. 1980년부터 1991년까지 이어진 노숙자보호시설인 광해원과 혜성보육원의 원생들을 위한 노래 및 악기지도 역시 그의 몫이었다. 1985년부터는 주경야독 늦깍이 공부를 통해 전공한 성악을 통해 보영학교에서 음악강사로 봉사하고 있다. 주민들을 위한 소요동 주민자치센터 기타교실과 2013년 자신이 창단한 소향중창단의 지휘활동은 최근 눈물을 머금고 중단한 상태다. 2010년 직장암3기를 선고 받은 후 건강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주1~ 2회 찾는 애신보육원과 행복꿈터 원생들에게 지도하는 꿈나무들을 위한 핸드벨,키타,오카리나, 우클렐레 등의 악기교육 봉사만은 손을 놓치 못하고 있다. 몸은 피곤하지만 정서적으로 항상 불안한 아이들이 구김살 없이 바르게 크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며 KBS 이산가족 찾기로 만난 누나를 통해 실제 나이가 43년생이란 사실을 알게됐다는 그는 70세가 넘도록 결혼도 하지 못한 모테 솔로다. 더 낮아지고 더 가난해져야 된다는 브라질 선교사의 말을 돼새기며 힘이 있는 한 재능나눔을 계속하겠다는 그는 진정한 봉사로 신의 은총에 보답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동두천=송진의기자 sju0418@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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