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왜 박쥐는 진화를 멈추었을까?

지난주 국회는 새로 임명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있었다. 많은 국민들이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저런 사람이 하며 혀를 차기도 하고 보다 못해 TV 채널을 돌려 버리기도 했다. 최종호 건설교통부장관 후보자는 그의 눈부신 아파트 시리즈에 20차례 이상 반성하겠다는 말을 했고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됐던 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 역시 18번에 걸쳐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초등학교 어린이도 아니고 일국의 장관이 되겠다고 하는 인격을 가진 사람의 이런 모습은 씁쓸하기만 했다. 그는 천안함 폭침을 우발적 사건이라고 한 과거 발언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5ㆍ24 조치에 대해서도 과거 바보같은 제재라고 했던 말에 야당의원들이 물고 늘어지자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대응조치라고 태도를 바꾸었다. 특히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자신을 감염된 좀비라고 한 것에 사과를 요구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와 같은 미안하고 죄송하며 반성한다는 것이 그냥 그 자리만 모면하고 보자는 것인지, 정말 마음에서 울어 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것도 그 때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국회 청문회 때는 애도를 표한다고 생각이 바뀌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지성인으로서 그리고 공인으로서 그들이 걸어 온 길을 미루어 생각할 뿐이다. 흔히들 나약한 지성인을 박쥐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지성인으로서 정체성이 흔들리거나 애매할 때 그렇다. 신념 없는 말의 성찬을 늘어놓을 때도 그런 비유를 인용한다. 육지의 들짐승 나라와 새의 나라가 어느 날 전쟁이 붙었다. 이 싸움에서 구경을 하던 박쥐가 아무래도 새의 나라가 이길 것 같아 새들이 집결해 있는 캠프를 찾아 갔다. 그리고는 나는 당신들을 돕겠소하고 새들과 합류할 뜻을 비쳤다. 하지만 새들은 당신은 쥐를 닮았고 새끼를 젖으로 먹여 키우니까 들짐승이요. 받아들이지 않겠소하고 의심을 했으나 워낙 말을 잘하는 박쥐에게 설득된 새들은 그를 요직에 앉혔다. 그러나 이번에는 들짐승 나라가 이길 것 같으니까 박쥐가 슬며시 그쪽 캠프에 찾아갔다. 이곳에서도 박쥐가 새인가, 짐승인가로 논쟁을 벌였으나 결국 짐승 나라의 중요한 자리를 얻게 되었다. 들짐승임을 내세울 때는 쥐와 똑같은 머리와 가슴의 젖을 이용했고, 새에 속하는 것을 내세울 때는 그의 긴 날개가 결정적 증거로 내세운 박쥐, 그렇게 정체성이 없던 박쥐는 어떻게 되었을까? 새에게도, 들짐승에게도 속하지 못한 박쥐는 캄캄한 동굴 속 천정에 매달려 살 수 밖에 없었고 밤을 이용하여 먹이를 챙기는 운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박쥐같은 지성인은 있다. 자유당 캠프에 있던 사람이 4ㆍ19 혁명이 나자 민주투사가 됐고 5ㆍ16과 유신, 제5공화국을 미화하고 옷을 입힌 것도 소위 지성인들이었다.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영국에서도 중세 때 크롬웰이 집권하여 왕정을 뒤집고 공포정치를 실시하자 지식인들 중에는 그를 구세주로 떠받들었으나 그가 실각할 처지에 놓이자 왕당파에 가담, 왕정을 옹호했다. 정말 박쥐 지성인이 없는 시대는 요순시대만 가능했을까? 왜 박쥐는 진화를 멈추었을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세종보(洑) 해체는 긁어 부스럼?

중앙청이라고 불리 우는 옛 조선총독부 건물은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철거를 시작, 1996년 11월 완전 철거됐다. 일본 잔재 지우기. 그 건물이 지닌 역사성과 건축학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철거를 반대하는 소리도 국내외에 있었으나 일제 잔재를 지우고 민족 자존심을 찾는 대의명분으로 철거는 강행됐다. 사실 이곳에서 1948년 5월10일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는 제헌국회가, 그리고 그해 8월15일 정부수립선포식이 열리는 등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민족의 자존심 찾기라는 더 큰 명분 때문에 중앙청 철거는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이 결정을 하고 결단을 내린 것이지만 사실 초대 이승만 대통령도 6ㆍ25 수복직후 중앙청 건물의 해체를 추진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우리 기술이 감당할 수가 없어 취소됐다. 미군부대에서 기중기까지 빌려 중앙청 철탑부터 손을 보려고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철거기술과 장비가 크게 발전하여 이제는 해체 못할 건물이나 시설물이 없다고 한다. 최근 들어 환경부 4대강 조사ㆍ평가기획위원회는 금강, 영산강 3개 보를 896억 원을 들여 해체키로 했는데 세종보도 대상이 됐다. 세종보를 해체키로 한 것은 생태계와 수질개선 그리고 639억 원의 경제적 이득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런데 세종보 해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첫째는 세종보는 이명박 대통령과 상관없이 이미 노무현 대통령 때 세종시의 친수 공간 확보를 위해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세종시에는 우리나라 인공호수중 제일 큰 세종 호수 공원이 있다. 축구장 62배의 크기에 수상 무대, 다양한 수생식물과 생태습지가 있는 물꽃선 등 세종시가 자랑하는 명품중의 명품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행정수도로서 세종시 도시품격을 갖추기 위해 이와 같은 친수공간을 만들었는데 이 호수를 유지하기 위해 인근 양화취수장에서 1일 2만6천700톤의 물을 공급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 세종보가 해체되면 당장 용수공급에 문제가 생기고 호수는 실개천처럼 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년 5월에 완공될 국립 세종수목원 역시 1일 1천600톤의 용수가 필요한데 이것을 어떻게 확보하겠느냐는 것이다. 또 있다. 상류에 1천억 원을 들여 건설하는 금강 보행대교는 존재 가치가 소멸될 것이라는 우려다. 실개천 같은 물위에 초현대적인 보행교가 너무 어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물 없는 도시는 사막과 같다. 이래서 세종보 해체는 적은 것을 얻기 위해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제성을 이유로 들지만 전국 유일의 도심 속에 자리 잡은 호수공원과 세계적 명물이 될 금강 보행대교, 그리고 국립 수목원 등이 갖는 가치는 돈으로 계산할 성질이 아니잖은가? 물론 세종시는 이와 같은 용수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수장 확보 등 필요한 대책을 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다. 그러니 강을 다스리는 문제는 겨우 2년 정도의 짧은 시간에 결론을 내고 밀어 붙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정부가 미리 답을 정해 놓고 절차만 밟았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세종시 친수 공간 문제는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대원군, ‘대동여지도’에 놀란 것은…

우리나라 국토를 10리 단위로 표시 하며 상세한 지도를 만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그가 중인의 신분으로 나라의 도움도 없이 백두산을 여덟 번이나 오르는 등 삼천리 방방곡곡을 두 발로 걸어 다니며 지도를 작성했다는 것은 초등학교 때부터 들어 온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사실 김정호는 1861년(철종12년) 대동여지도를 많은 고초 끝에 간행 했고 1864년 고종1년 대원군의 집권이 시작될 즈음 재간행을 했다. 그런데 대원군이 이 지도를 들여다보고는 그 정확하고 상세한 내용을 보고 크게 분노하여 김정호를 체포하고 이적행위로 처형을 했다는 것이다. 이 지도가 일본 같은 적국의 손에 들어가면 침략의 길잡이가 된다는 것. 물론 이와 같은 주장은 요즘 들어 근거가 없는 것으로 학계에서 대두 되기도 한다. 일본 학자들이 조선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키기 위해 만든 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원군은 나름대로 국가안보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 쇄국정책도 그런 것이었고, 특히 임진왜란 때 고니시의 왜병이 부산진에 상륙하고도 서울을 점령하는데 20일 이나 걸린 것은 서울로 가는 길을 잘 몰랐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김정호의 정확한 지도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 무렵 조선의 지방도로는 도로라고 할 것도 없이 엉망이었고 좁아 터져서 병사들이 행군을 해도 두 줄로 걷질 못하고 한 줄로 걸어야 했다. 그래서 조선을 다녀간 서양인들은 조선 도로가 이렇게 엉망으로 방치된 것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가졌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외국의 침입로를 차단하는 것을 꼽기도 했다. 도로를 제대로 만들지 않은 것은 그것이 외국침략을 막기 위한 한 방안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외침을 당하면서 살았던 우리에게는 도로 하나에까지 국가안보의 개념이 배어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해서라도 나라를 지키려 했던 조상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질 뿐이다. 어디 그 뿐인가? 착한 백성들은 임진왜란 때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가자 그 행렬에 돌을 던져 분노를 표현하고 궁궐에 불을 질렸다. 그러나 나라가 적에게 밟히자 의병을 일으켜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리는 희생을 보여 줬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은 모든 가치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요즘 안보에 대한 미심쩍은 생각이 자꾸만 커지는 것은 왜일까? 새 한미연합훈련으로 실시한 19-1 동맹훈련이 지난 12일 1주간의 짧은 일정으로 끝냈다. 북한이 제일 무서워 한다는 B2전략폭격기를 비롯 핵항공모함등 전략자산의 움직임도 없이 훈련은 조용히 시뮬레이션으로만 끝내고 말았다. 그동안의 을지프리덤, 키졸브 등 한미연합훈련의 3대 축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고 이제는 컴퓨터에 의한 워게임만 하게 된 것.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린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해 체니 전 미 부통령은 그가 뉴욕에서 부동산 거래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지만 그 거래가 우리 한국에는 치명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잇따른 한미훈련의 취소, 또는 축소는 공허감을 주는게 사실이다. 이런 것이 미군 철수나 감축으로 이어 지지는 않을 까도 걱정이다. 거기에다 김연철 통일부장관 후보자의 천안함 폭침 등에 대한 발언과 안보의 긴장 끈을 느슨하게 하는 일련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다른 정책은 실패해도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국가안보는 한번만 실패해도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런 우려를 더욱 압박해 온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당구 열풍

한때 할리우드 영화를 휩쓸던 폴 뉴먼의 가장 매력적인 작품은 1987년 탐 크루즈와 함께 출연한 더 칼라 오프 머니(The color of money)일 것이다. 삐딱하게 눌러 쓴 모자에 담배를 꼰아 물고, 당구대 모서리에서 큐를 겨누는 모습, 한 방에 전재산이 날라가는 숨막히는 긴장과 적ㆍ백색의 공이 부딪히는 음향, 그야 말로 신의 한 수를 보노라면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른다. 이 영화는 많은 젊은이들을 당구장으로 끌어 들이는 붐을 이르켰다. 그런데 요즘 당구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는 보도다. 한때 사양사업으로 뒤로 밀려났던 당구장이 이제는 곳곳에서 신장개업을 하는가 하면 당구 전문 방송채널까지 생겨 날 정도. 스트레스 해소와 치매 예방에도 탁월하다는 건강정보도 넘쳐 나면서 노인종합복지관은 물론 직장에서도 동아리들이 생겨 나고 있고, 심지어 할머니들도 당구장 고객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만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저렴한 경비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당구열풍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당구에 빠진 50대의 직장인 M씨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병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의 부인은 서울에 사는 딸네 집에서 애기를 봐주느라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딸네 부부 역시 맞벌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아이 돌볼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가정은 해체상태가 되어 버렸고 집에 퇴근해야 혼자다 보니 자연히 당구장을 찾게 되더라는 것이다. 옛날 본 영화 더 칼라 오프 머니의 주인공 폴 뉴먼의 흉내를 내면서 땅-땅- 당구공을 치다 보면 모든 걸 잊고 쉽게 시간을 보낸다고도 했다. 또 한 사람, 세종시에서 만난 공무원도 당구를 즐기게 된 동기가 가족해체를 꼽았다. 그는 직장인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기러기 가족. 금요일 밤차로 서울로 올라갔다가 월요일 새벽 버스에 시달리며 세종시로 복귀하는 그의 삶은 그야 말로 고달프다. 그러나 자녀 교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말 가족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퇴근 후 청소년들처럼 TV나 스마트폰 거임에 몰두할 수도 없고 마땅한 소일거리를 찾다가 결국 당구에 빠졌다는 것이다. 하다 보니 당구가 가족 해체의 고독을 이기는 데 아주 좋은 명약이더군요하고 그는 웃었다. 또 어떤 사람은 당구 큐를 잡고 있으면 젊은 시절 자장면 내기, 생맥주 내기 등 친구들과 어둘리던 추억이 자기도 모르게 젖어 온다고 했다. 땀 흘려 정신없이 일하고 골목 당구장으로 달려가던 시절-그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게 없었는데 50, 60대가 되면서 내일이 불안해 지고 가족 해체마저 감내해야 하니 자꾸만 공허감 속에 빠져 든다는 것이다. 하긴 50, 60대만이 아니라 20~30대의 가족 해체 현상도 심각하다. 1인 가구 비중이 28.6%에 1인 가구 수가 561만8천이 넘는 통계를 보면 여기에 젊은 세대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정말 우리나라가 짊어진 위기의 하나가 가족해체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러니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50, 60세대 역시 그들대로 미래에 대한 불안, 거기에 가족해체까지 겹치다 보니 당구장의 땅-땅- 공 부딪히는 소리가 위안이 되어 주지 않을까. 특히 50, 60세대는 과거 열심히 일하던 추억까지 반추하게 될테고.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김정은 위원장의 재떨이

안동 김씨 세도에 숨죽이고 살던 대원군은 집권하자마자 쇄국정책과 더불어 몇 가지 적폐 청산을 내걸었다. 서원철폐는 물론 양반들의 허세를 상징하던 갓의 크기를 줄이고 담뱃대로 그 길이를 반으로 줄이도록 한 것이다. 특히 그 무렵 담뱃대의 길이는 신분의 척도이기도 했다. 상민들은 손바닥 크기를 넘지 못했으며 양반들은 한 자, 또는 두 자까지도 가능했다. 세도가들은 담뱃대와 담배에 불을 붙이는 도구를 들고 다니는 하인을 두기도 했는데 이들은 담배에 불을 붙여 두 손으로 공손히 상전에게 바치는 게 임무였다. 대원군은 이처럼 양반 행세의 상징물에 손을 댄 것은 파락호 시절 안동 김씨 세도 하에서의 적폐를 뼈아프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그것은 사회개혁을 위해 한걸음 나아간 것이기도 하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주 장장 66시간의 열차 여행 끝에 트럼프 미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나 아쉽게도 긴 시간 열차로 이동하면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선전효과는 가져왔으나 회담 실패의 쓴맛을 삼켜야 했고, 또 그렇게 긴 여행 끝에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비록 실패한 북미회담이지만 핵시설 같은 주제와는 별도로 김정은 위원장의 담배 재떨이 이야기가 계속 화제에 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김정은 위원장은 베트남으로 가는 도중 중국 난닝역에서 잠시 열차를 멈추게 하고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이때 그의 여동생 김여정이 재떨이를 들고 있다가 김정은 위원장의 담배꽁초를 받아 끈 것. 이것을 두고 세계 언론에서는 그의 절대적 권력과 북학의 가부장적 폐쇄사회를 말하기도 하고 혹시 그 꽁초가 미국이나 서방국가의 정보기관에 넘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등 화제가 되고 있다. 물론 김 위원장의 흡연은 이번만이 아니라 종종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른바 현장지도를 한다고 메기 양어장이나 생산 공장을 방문할 때도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북한 매체를 통해서 여과 없이 보도되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북한에서도 금연운동이 벌어져 TV 등에서 흡연의 해로움에 대해 캠페인을 벌이곤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런 금연 캠페인은 나하고는 상관없고 너희들이나 해라는 식이다. 담배뿐 아니라 김정은 위원장이 유치원을 방문했을 때도 신을 벗지 않고 그대로 실내에 들어가는 모습이 우리로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바로 이런 지도자의 모습이 하노이에서의 북미 정상 회담 실패 원인이 되지는 않았을까? 모든 인민위에 높이 있는 권력자 가부장적 권력자에게는 직언(直言)이라든지 다양한 소통이 없고 오직 경직된 일방통행만 있기 때문에 회담장에서 뜻밖의 소용돌이에 부딪히면 힘을 잃는다. 심지어 북한 언론의 대표적인 노동신문이 하노이로 떠나는 김 위원장을 향해 회담의 전략을 논하기보다는 온 나라 인민의 마음과 마음들이 우리 원수님께로, 원수님께서 계시는 먼 이국땅으로 끝없이 달리고 있다라고 한 것은 김여정이 재떨이를 들고 김 위원장 옆에 서있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 아닐까? 이렇게 되면 모든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한 사람을 떠받치고 집중시키다 보면 결국 그 자신도 불행해질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앞에서 우리는 1분도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렇게 절박한 상황이라면 아무 곳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고, 그러면 재떨이는 들고 옆에 서 있어야 하는 통치 스타일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서 답이 나올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세종시와 대통령 집무실

지난 2월7일, 세종시 어진동에 있는 빌딩에 이삿짐을 나르는 차량과 사람들로 붐볐다. 설 연휴가 끝난 첫 월요일이어서 인지 유달리 추위가 느껴지는 아침, 행정안전부 직원들은 새 사무실로 이사를 하느라 바빴다. 그러나 이 건물도 행정안전부 건물이 아니어서 새로 건립되는 정부 세종3청사가 완공되면 또 한번 이사를 해야 할 형편이다. 어쨌든 이렇게 행정안전부가 이전해 오고 오는 8월에는 경기도 과천에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려오게 되면 대한민국 행정기능의 70% 이상이 세종시에 몰리게 되는 셈이다. 세종시에 근무하는 공무원과 관련 종사자까지 합치면 3만명 이상이 한 공간을 점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행정수도로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 행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번잡함으로 많은 예산이 거리에 버려지고 비효율이 누적되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세종시에서 국회상임위원회를 열수 있게 국회분원을 설치하자는 것. 사실 세종시의 공무원들이 서울을 가야할 가장 큰 이유는 국회 출장이다. 특히 수시로 열리는 상임위원회에 장관이 출석하면 국ㆍ과장이 따라 가게 되고, 국ㆍ과장이 움직이면 그 밑의 실무급 직원들도 덩달아 쫓아가야 한다. 이렇게 하여 지출되는 출장비가 1년에 200억 원 이상이 되고 있으니 길에다 버리는 국민세금이 5년이면 1천억 원이 된다는 놀라운 계산이 나온다. 금전적 문제 뿐 아니라 그에 소요되는 시간낭비까지 따지면 정말 그냥 눈감고 지나갈 문제가 아니다. 다행이 세종시 의사당 기본설계비로 10억 원의 예산이 통과되었으니 보다 빠른 속도로 국회분원이 추진되리라 본다. 그것이 기왕 세종시를 만든 지금, 세종시를 위해서도 그렇고 국가기능의 효율화를 위해서도 절실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과연 세종시에 대통령 집무실을 두느냐 하는 것이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연말 국무회의에서 새로 건립되는 정부 세종3청사에 대통령 집무실의 필요성 검토를 말한 바 있다. 물론 이 역시 행정의 효율성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나온 발언이라 본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청와대 집무실의 광화문시대가 사실상 무산된 마당에 세종시 집무실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사실 청와대의 광화문시대가 나온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의 불통(不通)을 불식시키고 국민곁으로 다가서려는 것 이였으나 광화문이 갖고 있는 문제점, 이를테면 경호나 헬기장, 영빈관 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 따라서 이참에 세종시에 대통령 집무실이 마련된다면 그 상징성으로도 행정수행의 큰 에너지 역할을 할 것이다. 상징성 뿐 아니라 때때로 국무회의를 주재하거나 주요 국가 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세종시를 활성화 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정말 42개 중앙행정기관이 밀집해 있고 대한민국 행정기능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세종시를 지금처럼 두고 만 볼 수는 없다. 이것은 이념의 진영논리도 없고, 여야전쟁도 아니며 20년 세월을 이어온 그동안의 땀과 비용에 대한 국가 미래를 위한 대답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유관순

지난해 6월 이화여고 학생들이 홍대역 입구에서 국민청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의 선배인 유관순 열사의 상훈 등급을 현재의 3등급에서 더 높여 달라는 것이었다. 선배를 생각하는 후배들의 순수한 마음이 참 아름다웠지만 그런 선후배 관계를 떠나 이 나라 항일독립운동사에 끼친 유관순 열사의 행동이 제대로 평가 받아야 한다는 데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이와 같은 서명운동은 천안시 병천에 있는 유관순기념관에서도 방문객을 상대로 벌이고 있다. 국가 서훈에는 1등급에서 5등급까지 나뉘어 있다. 그런데 유관순 열사는 3등급인독립장. 독립운동에 등급이 있을 수 없으나 유 열사가 3등급이라는 데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 반응이다. 1919년 3ㆍ1 운동의 지도자 33인에 대한 일본 식민지하의 법정선고가 1년6개월에서 3년 정도였는데 비해 유관순 열사는 1심에서 5년형 2심에서 3년형을 선고 받은 것을 보더라도 3ㆍ1운동에서 그의 역할이 얼마나 크게 평가되었는지 알 수 있다. 더욱이 유관순 열사는 꽃다운 18세 여학생의 몸으로 모진 고문 끝에 생명을 조국에 바쳤다. 그는 숨을 거두면서도 나라에 바칠 목숨이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이라고 유언을 남겼다. 정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 가슴을 숙연하게 하는 유언이다. 그래서 3ㆍ1운동하면 유관순을 생각할 만큼 그는 항일 독립운동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데 어떻게 3등급인지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외국에서 보는 시각도 비슷한 것 같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미국 뉴욕주가 1월14일을 유관순의 날로 지정하기로 한 것이다. 주 단위로 특정 외국인을 이렇게 기념일로 정하는 것은 미국에서도 매우 이례적이라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권위지 뉴욕타임즈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기획연재물을 싣고 유열사는 일제 저항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인들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에도 비폭력으로 항거한 것을 높이 기리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측은 뉴욕주 상ㆍ하원이 유관순의 날 제정에 반대하며 여러 방면에서 로비를 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관순을 이야기할수록 자연이 일제의 폭력과 잔학성이 들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1919년 4월1일 천안 시골의 아우내장터에서 벌어진 만세운동때 일본헌병들은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을 총으로 쏴 죽였고, 이를 보고 달려드는 어머니도 칼로 찔러죽이는 만행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이것을 목격한 유관순열사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뿐만 아니라 김구응이라는 사람에는 총을 쏘고 다시 두개골을 박살내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이날 조그만 시골장터에서 만세를 부르다 일본 헌병에 의해 피살된 사람이 19명이나 되었고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리고 유관순 열사는 천안으로 압송되었다가 다시 공주감옥으로 이송되면서 모진 고문을 당했고 마지막에는 서대문 형무소에서 1920년 9월28일 18세 소녀의 몸으로 숨을 거두었다. 이제 우리는 올해로서 3ㆍ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그리고 우리는 3ㆍ1운동이 독립운동에 대한 민족적 자각을 일깨웠다는 데 이의가 없다. 그렇다면 그 중심에 있던 인물들에 대한 서훈 등급도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3등급의 유관순 열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선수촌에 스크린 도어?

그리스의 아테네를 여행하다 보면 재미있는 조각상 하나를 보게 된다. 파나티나이코 육상 경기장에 서있는 돌 하나에 두 얼굴이 세겨 진 것.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네를 기리기 위해 축제 경기를 개최한 곳인데, 돌 한면의 노인은 성기가 발기돼 있고 다른 한 면의 젊은이 성기는 그렇지 못하여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까 이 조각상의 뜻은 운동을 하면 노인이라도 육체적으로 젊어 지고, 젊은이라 해도 운동을 안 하면 육체가 노인처럼 된다는 것이다. 과연 올림픽 발상 국가다운 메시지다. 고대 그리스는 이처럼 스포츠가 국가의 절대적인 지표가 되었다. 다른 점은 아테네가 육체와 문화, 예술 등 정신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스포츠가 발달되었다면 스파르타는 군사적으로 강한 국민을 육성하기 위해 투창, 원반 던지기, 달리기 등의 스포츠가 동원되었다. 심지어 스파르타는 아기를 낳았을 때 검사를 하여 신체적 결함이 있으면 스파르타 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여 죽이기까지 했다. 7세가 되면 집을 떠나 20세까지 아고게(Agoge)라는 조직에 들어가 강한 시민으로서의 훈련을 받아야 했는데 아무 때나 싸움터에 뛰어들 명예롭고 용감한 전사로 육성하는 것이다. 아테네의 스파르타의 대조적인 스포츠정신이지만 공통점도 있었다. 경기 때는 옷을 입지 않고 맨 몸으론 한다는 것과 교육과정에는 몸이 부서질 정도의 강훈련이 주를 이루지만 음악과 시를 즐기는 것도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은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는 그대로 그들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스포츠를 로마 시민들의 볼거리로 탈바꿈시켰다. 대형 경기장을 만들어 매일 같이 시민들에게 정치싸움보다 경기에 열광케 하는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하게 한 것이다. 시민들을 열광시키기 위해 검투사가 등장하고 영화 벤허에서처럼 네 마리의 말이 하나가 되어 긴박하게 달리는 전차 경기도 서슴치 않는다. 심지어 사자 같은 맹수를 풀어 놓아 관중들을 전율과 흥분속으로 몰아 넣었다. 이와 같은 그리스와 로마의 다양한 형태의 스포츠는 올림픽의 탄생과 함께 전세계적으로 보편화 되고 정화되어 왔다. 그러나 기록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스포츠 신앙이 등장하고, 승리가 곧 돈으로 연결되는 상업주의가 등장하면서 많은 역기능을 일으키고 있다. 기록을 위해, 돈을 위해, 병역 면제를 위해 옷을 벗고 운동경기를 하던 아테네의 그 순수했던 스포츠는 사라지고 선수촌에서 스파르타식 도제식 훈련을 강행하고 로마식 폭력까지도 불사하는 것이다. 급기야 성폭력이 꼬리를 무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진정 우리가 바라는 스포츠의 모델일까? 스포츠계의 미투 운동을 보는 국민의 눈은 참으로 착잡하다. 쇼트 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에 대한 조재범 코치의 상습적 성폭행인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0일에는 남자 기계체조 국가대표 선수 한 사람임 선수촌 불미한 사건으로 퇴촌 명령을 받은 것으로 보도 되었다. 눈앞에 동료선수들이 미투 운동으로 비틀거리는 걸 보면서도 자기 멋대로 놀아난 것이니 참으론 한심할 뿐이다. 이것이 소위 성적지상주의, 엘리트체육이 가져온 결과다. 어떤 사람은 선수촌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했다가 지나친 인권침해라는 반대에 부딛혔다는 보도도 있다. 어쩌다 우리 스포츠가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이제 우리 스포츠가 거듭나지 않고는 선수촌과 경기장에 어떤 첨단 보안기를 설치해도 그건 허수아비에 불과할 것이다. 스포츠가 한 사람의 세계 기록이나 챔피언 보다 국민 모두의 건강과 건전한 정신의 중심으로 돌아와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변평섭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부산 ‘초원복국’과 목포의 ‘창성장’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 다리에 빠져 죽자. 1992년 12월11일 이른 아침, 부산시 남구 대연동 소재 초원복국에는 부산시장, 검사장, 교육감 등 부산의 기관장들이 거의 모두 모여 눈앞에 닥쳐온 대통령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태우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김기춘 씨가 소집한 자리였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우리가 남이가하는 것이었고, 김영삼 후보가 안 되면 영도 다리에 빠져 죽자는 것이었다. 김영삼, 김대중, 정주영 3파전으로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권력설계사 소리를 듣는 김기춘 씨가 무엇을 노리고 이런 자리를 만들었을까? 이 회식 자리에 정주영 후보 측 운동원이 전날 설치해 놓은 도청장치를 통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들이 고스란히 녹음되었고 이것은 즉시 언론사에 전달되어 신문과 TV 뉴스를 장식했다. 그 파문은 그야말로 일파만파였다. 김영삼 후보 측은 이제 선거는 끝났다며 낙심했고, 아파트 반값 공약을 내걸었던 정주영 후보 측은 기세등등했다. 그러나 결과는 김영삼 후보가 크게 승리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대구경북의 소위 TK 측 분위기가 부산경남의 PK에 잘 융합되지 않고 있었는데 우리가 남이가하는 초원복국 사건이 엉뚱하게도 영남권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고 그것이 김영삼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유권자들은 이성보다 감성에 흐른다는 것을 김기춘은 잘 알았고 그 설계는 100% 적중하고 만 것이다. 선거를 지역구도의 프레임으로 치른다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역행하는 것이었지만 요즘 흔히 말하는 정치 마케팅은 그런 고상한 논리는 팽개치고 오직 승리만을 위해 치졸한 변칙도 불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 되면 영도 다리에 빠져 죽자라는 자극적인 선동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것 아닌가. 요즘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투기 의혹 등 일련의 사건들이 밤낮없이 뉴스를 점유하고 있다. 손혜원 뉴스의 홍수 속에서 느끼는 것은 초원복국 사건처럼 현란한 정치 마케팅의 위력이다. 정말 손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을 짖고 유명 소주의 작명을 한 선전의 대가답게 그로 하여 빚어진 무대를 마음대로 조명도 하고 주연배우와 의상도 바꾸고 배경음악을 내보내는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 일개 목포 구도심의 창성장을 유명 관광명소로 만들기도 했다. 여의도 문법쯤 집어 던지고 직설적으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에게 의원직을 걸자고 하더니 정치 9단 소리를 듣는 박지원 의원을 향해서도 모든 걸 걸자고 도전한다. 심지어 박 의원을 향해 우리나라 정치사를 오염시킨 저분과 관련해 제 이름이 나오는 것조차 불쾌하다라며 배신의 아이콘이라고까지 몰아붙였다. 아마도 장관과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낸 박 의원의 정치 일생에 이처럼 뼈아픈 수모를 겪기는 처음일 것이다. 결국, 박 의원을 정면으로 받아친 것은 박 의원보다 목포를 더 사랑한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목포 유권자들에게 주었고,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함으로써 당은 당대로 우군으로 확보된 상태에서 언론을 비롯 모든 적대 관계자들과 자유롭게 싸울 무장을 갖추었다. 그는 200여 언론기사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투기논란이 벌어진 목포 현장, 그 낡은 건물 안에서 구름떼처럼 몰려든 기자들을 상대로 회견을 하며 국가헌납을 외친 것이다. 혀를 찰 수밖에 없다. 이런 현란한 정치 마케팅은 땅 투기 여부를 떠나 초원복국 사건처럼 얼마든지 정치무대를 조정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 민주주의는 이 정치 마케팅에 취약한 약점이 있고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오늘 채명신 장군이 생각나는 것은…

우리 국군 역사상 최연소 참모총장은 정일권. 그는 약관 32세에 육군 뿐 아니라 대한민국 육해공군의 총참모장이었다. 정일권 참모총장의 취임식은 당시 피란정부가 와있던 충남도청 회의실에서 있었다. 그는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한국전선에 맨 먼저 파견된 미24사단장 딘 장군과 함께 전방으로 달려갔다. 긴박하고 숨 가빴던 시절, 철모에 그려진 장군 계급 별은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 이후 세월이 가면서 별은 수없이 늘어났고 때로는 그 별들이 정치에 관여하기도 하고, 때로는 비리의 대상이 되는 등 영욕을 거듭했지만 그러나 그 별들이 있어 국가를 부위할 수 있었다. 그렇게 흘러간 많은 별들 중에 특별히 내가 존경하는 장군이 있다. 채명신(蔡命新). 그는 육군 보병소위로 625를 맞으면서 줄곧 최전방에서 싸웠으며 그가 받은 훈장이 28개나 되어 전신(戰神)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전공을 세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월남파병을 추진하자 채명신 장군은 완강히 반대했다. 그래도 박 전 대통령이 파병을 결정하고 그를 주월사령관으로 임명하자 대통령의 명령을 받아들여 3년 8개월간 월남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그는 잠깐 귀국하게 되면 청와대로 가서 신고를 하기 전 동작동 국군묘지에 달려가서 거수경례를 하며 앞서간 부하들의 명복을 빌었다. 이 모습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박대통령 측근들은 채명신이 대권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1969년 4월 주월군사령관에서 해임되어 귀국했는데 그때도 역시 국립묘지부터 달려갔고 그곳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1972년 유신헌법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등 계속 갈등을 빚었다. 이 때문에 채명신은 1972년 5월 대장승진 심사에서 탈락의 고비를 마시고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고 말았다. 그리고 한동안 외국대사로 나가 있다가 2013년 11월 25일 88세를 일기로 파란 많은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의 군인으로서의 정신은 죽어서 더욱 빛났다. 당연히 장군묘역에 묻힐 권리가 있고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릴 수 있는데도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자신과 생사를 함께 했던 사병묘역에 묻혀 달라고 유언을 한 것이다. 정부는 그가 남긴 공적을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 없다며 장군묘역 안장을 권유했으나 결국 본인의 유언에 따라 월남파병 사병묘역에 안장했다. 우리 군 역사상 장군이 사병묘역에 묻힌 것도 처음이지만 사병묘역에 묻히려면 화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죽어 화장을 한 첫 장군이 되기도 했다. 연세대 김동길 명예교수는 한 언론에서 채명신 장군은 죽지 않았다며 맥아더 장군이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라고 한 말을 상기시켰다. 요즘 육군참모총장이 청와대 4급 행정관과 집무실도 아닌 동네 카페에서 만나 군인사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눈 사실이 보도되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별 둘을 달고도 위급한 전선을 지휘했던 선배 참모총장, 별 넷을 달지 못하고 별 셋으로 예편했음에도 존경을 받았던 채명신 장군이 오늘 별 넷의 참모총장 처신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국가 간성의 꿈을 안고 오늘도 사관학교 연병장을 뛰는 젊은 후배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별은 빛나야하고 그 빛은 자존심이요 명예가 되어야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대마도 정벌 600년

일본(日本)이라기 보다는 왜(倭)로 통하던 고려 말부터 해적과 같은 왜구는 매우 성가신 존재였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나 고려 말 충신 최영장군의 전설적 무용담도 부여 홍산 전투 등 왜구를 격퇴시킨 것이 많은 걸 보면 얼마나 그 피해가 막대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 고려 수도 개성이 위협받을 때도 있었고 남해안, 서해안 주민들은 산속으로 숨어들어 살았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그래서 이들을 격퇴하기 위해 화약을 사용한 대포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그 시대로서는 신무기였다. 그러고 나서 조선조에 들어와 왜구는 한동안 잠잠한 듯 했으나 세종 때에 이르러 다시 우리 해안을 드나들며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심지어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해상을 통해 한양으로 운송하던 조운선(漕運船)을 약탈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에 세종 임금은 1419년 5월 왜구의 소굴이던 대마도를 정벌하기로 하고 그해 6월 이종무를 삼군도체찰사로 하고, 227척의 병선과 1만 여 명의 군사로 하여금 대마도 정벌에 나서게 했다. 계획에서 출병까지 불과 1개월 만에 이루어진 것을 보면 매우 긴박한 가운데 속전속결로 진행된 것 같다. 이것이 고려시대 몽골의 강요로 일본침공에 나섰지만 실패했고,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일본을 군사적 공격에 나선 최초의 사건이다. 우리도 일본을 칠 수 있는 나라임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꼭 올해로 600년 전의 일이다. 이때 우리 군은 왜구가 갖고 있던 배 129척을 불태웠고 100척을 포획했으며 114명의 왜구를 붙잡았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 억류해 있던 우리 조선인과 중국인들을 모두 풀어 주었다. 통쾌한 정벌이었다. 그러나 그 후부터 우리는 일본의 침략에 시달렸고 나라를 잃기까지 했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한국과 일본의 레이더 갈등이 새해 들어서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20일 우리 해군이 동해 중간수역에서 북한 조난 선박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함정 레이더 가동이 우리 함정 가까이 접근한 일본 초계기를 공격용 레이더로 위협했다는 것이 일본 측 주장이고, 우리 해군은 조난 선박 수색을 위해 매뉴얼대로 했을 뿐 공격용 레이더를 가동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것은 일본이 초계기 영상을 공개한 것. 일본 언론은 이것이 방위성 반대에도 아베신조 총리의 일방적 지시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러면 아베총리는 왜 이렇게 강경노선을 택했을까? 물론 우리가 위안부재단을 해산한 것이라든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판결 등에 대한 일본 측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그 뒤에 가려져 있는 중요한 사실은 한국도 일본과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임을 일본 국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협적인 인식은 한국이 북한과 급속히 가까워지는가 하면 한국이 미국보다 중국에 가까워지는 상황이 되면 더욱 복잡하고 민감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베총리로서는 이런 것을 은연중에 표출함으로써 일본의 헌법 개정 추진에 활력을 얻고 방위비 증액에도 상승효과를 노린다는 것. 한국까지도 일본과 전쟁할 수 있는 나라라는 신호를 보여줌으로써 아베총리가 노리는 계산,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기에 우리가 말려들지 않는 것이다. 핵무장된 북한을 머리에 얹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 좌우에 중국에 이어 일본까지도 군사대국이 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600년 전 우리가 대마도를 기습 공격하던 시대와는 지금의 동북아정세가 매우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막힌 곳 뚫겠다던 어떤 總理

1980년 9월20일. 제10대 국회가 계엄령 속에 임기도 마치지 못하고 폐회되는 날이었다. 의장석에는 백두진 의장이 전 해에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사임하고 민관식 부의장이 의장직무대리로 의사봉을 잡았다. 그해 봄, 소위 5ㆍ17사태로 국회의원 29명이 구속되거나 의원직을 잃는 등 수난을 겪으며 국회는 죽은 시체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이날 마지막 국회에 출석한 의원도 재석 231명 중 202명만이 자리를 지켜 더 없이 침통한 분위기였다. 이날 마지막 10대 국회를 마감하면서 행한 민관식 부의장의 연설은 지금도 역사적인 명연설로 평가될 만큼 감동적이었다. 의원 여러분! 우리 의사당 바로 옆에는 태고(太古)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민족의 영욕과 애환을 싣고 소리 없이 흐르는 한강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저기 비어있는 많은 의석을 바라보면서 이 자리에 서있는 본인의 심경은 지난날에 대한 비감으로 어둡고 그늘져 있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은 의원들이 지그시 눈을 감고 이 연설에 귀를 기울였으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의원들도 있었다. 그런데 이날 의사당을 떠나면서 대부분의 의원들이 그동안 벌였던 원색적인 정쟁을 뼈아프게 후회했다고 당시 언론들은 보도했다. 그러나 다시 11대 국회가 시작되고 12대, 13대 국회가 계속되지만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회가 변한 것은 세비가 많아졌다는 것뿐 정쟁은 변함이 없다. 지난 19대 국회 때 회기 중 발의됐으나 처리를 못해 자동 폐기된 법안이 1만 96건이나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 국회가 정쟁에 묶여 꼼짝도 못했음을 말해준다. 그들 대부분이 민생법안이라는 데서 더욱 울화가 치민다. 이번 20대 국회 역시 1년여 남은 임기 중 얼마나 민생법안에 올인할 것인지, 그리하여 또 얼마나 많은 법안이 자동 폐기될지, 지금으로서는 비관적이다. 건전한 정쟁이야 민주주의 발전에 필수 영양제다. 문제는 조선 왕조를 병들게 하고 무너뜨린 사색당파-그 고약한 악성 DNA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이고, 살리고, 끝없이 되풀이 되는 사색당쟁에 사도세자까지 제물로 바친 영조 임금이 탕평책을 내걸고 그 악성 DNA를 퇴치하려고 했지만 실패로 끝나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는 모두가 꽉 막혀 있는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입학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문제가 그렇고, 북한 핵문제에서부터 안보에 이르기까지 밤길을 걷는 마음이며, 고용과 경제문제는 가장 심각한 지경이다. 어느 것 하나 시원하게 뚫리는 것이 없다. 거기에다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화재를 비롯한 안전사고는 더욱 불안하게 한다. 무엇 하나 시원하게 뚫리지 않는 이 현실에서 우리는 2019년 새해를 맞는다. 그리고 삼부요인과 정치인들부터 지방, 군수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새해 희망을 역설한다. 그러나 국민들 귀에는 해마다 새해가 시작되면 으레껏 되풀이 되는 이벤트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오래전 어떤 고명하신 국무총리가 총리 취임사에서 막힌 곳을 뚫겠다고 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자리를 물러날 때 막힌 곳을 뚫겠다더니 오히려 더 막혔다는 반응이 나왔고 너무 막힌 곳이 두터워 뚫다 말았다는 평도 나왔다. 그렇게 우리 정치의 벽이 두텁다는 이야기다. 정치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당쟁의 고약한 DNA, 그 벽을 뚫는 새해가 되길 소망해 본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밥 먹고 가요’

어느 투자회사 지점 사무실에는 아침에 중앙지, 지방지, 경제지 등 신문 7부가 배달된다. 그러면 제일 막내 사원이 신문을 부서마다 적절히 돌리고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막내 사원이 한 집회에 다녀오고 나서 신문 돌리는 일이 중단되고 한쪽에 그대로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점장이 막내 사원을 불러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사원은 근무규칙 수첩을 지점장 앞에 꺼내 보이며 지점장님, 우리 근무규칙에 사원이 아침에 신문 돌려야 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따졌다. 지점장은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지점장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막내 사원이 외근을 하고 와서 보고를 하면 그가 만났다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여 확인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이 사원은 개인 볼일을 보거나 사우나를 다녀오는 것은 상상도 못하게 됐다. 결국 불편하기는 윗 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마찬가지가 된 셈이다. 형식은 달라도 요즘 우리들 직장이 이렇게 경직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되면서 어떤 직장은 오후 5시가 되면 회사 전체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져 버린다고 한다. 그러니 퇴근시간이 좀 지나도 남은 일을 마저 끝내야 집으로 가는 게 그동안의 관례였는데 이제는 아예 업무가 중단돼 버린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집에 가서도 못한다는 보고서를 쓰는 등 일은 해야 하기 때문에 5시 셧다운은 의미가 없고 오히려 일만 복잡하게 됐다는 것. 우리나라가 형편이 어렵다 해도 미래의 가능성에 대하여 외국인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몇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한국인의 평균 IQ가 세계적으로 매우 높다든지, 부지런하다든지 그중에서도 일본의 유명한 여행 작가 후지와라 신야 (藤原新也)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그가 우리 농촌을 여행할 때 마침 마을 공터에서 여러 명의 주부들이 김장을 담그고 있었다. 서로 모여 이웃의 김장 담그기 일손돕기를 했던 모양이다. 마침 그때 점심 식사가 차려졌는데 그들이 이 낯선 외국인에게 밥 먹고 가라고 권유하거라는 것이다. 후지와라 신야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감동을 받았다. 더욱 그의 마음을 적셔준 것은 식사 후에 나온 숭늉 맛. 밥 먹고 가라는 한국 농촌 주부들의 인간미 넘치는 친절과 그 구수한 숭늉 맛에서 그는 한국인의 정서에 흠뻑 젖은 것이다. 그는 현대사회가 지나친 경쟁구도 때문에 인간 냉동화 현상을 녹이는 것 역시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그는 밥먹고 가라는 한국 농촌에서 인간 냉동화 현상을 녹이는 모습을 본 것 아닐까? 어느 외국 기업인은 오래전 한국의 또 다른 모습에서 감동받은 것을 털어놨다. 다름 아닌 도시의 기업과 농촌의 마을이 1社1村운동을 벌이는 것. 한 회사가 시골 마을 하나와 자매결연을 하고 그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사주는가 하면 농번기 때에는 회사직원들이 벼 베기 등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이동 목욕시설도 해주는 것에 그 외국 기업인은 한국에 대해 미래가 밝다고 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대기업에서도 갑질시비가 잦았건 하청업체와 상생협약을 맺는 등, 서로 돕는 것이 서로 사는 길임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있어 얼어붙은 우리 경제에 희망을 주고 있다. 또 하나 한국 경제의 가능성이다. 정말 얼어붙은 직장,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밥 먹고 가요!하고 부르는 소리가 있어야 우리 미래도 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하얀 명주실이 물드는 것을 슬퍼하랴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 미국 워싱턴 광장이나 일본 도쿄에서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면 지나던 시민들이 그 흔한 1인 시위꾼의 하나이거나 유사종교의 홍보맨으로 여기고 그냥 지나쳐 버릴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신문에 보도되는 기삿거리로 취급도 않을 것이다. 나라가 분단되어 수십 년 피터지게 대결하지도 않았고 자유 민주주의가 튼튼하게 뿌리내려 있어 그런 소리쯤 모깃소리 정도로 치부해 버리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위인이다! 하고 외쳐도 그저 희화한 어느 집단의 구호로 생각하고 말 것이다. 사실 그동안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의 이미지는 그렇게 희화화됐다. 공영방송에서 오늘밤 김제동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김정은 서울 답방을 환영하기 위한 단체 위인맞이 환영단 김 모 위원장의 김정은 찬양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낸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분란을 일으켰지만, CNN이나 NHK, BBC에서 만약 그랬다면 이야깃거리에 오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 교실에 북한 인공기가 20일이나 걸려 있는 상황까지 이르렀어도. 하지만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과 다르다. 우리는 북한의 남침으로 국토가 처참하게 짓밟혔고 엄청난 국민이 피를 흘렸으며 휴전 이후에도 그 도발을 멈추지 않아 고통을 겪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교실에 인공기가 등장하고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김정은이 위인이며 공산당이 좋다고 떠드는 것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물론 통일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남북화해를 반대할 사람도 없다. 김정은의 서울 답방이 비핵화에 도움이 된다면 더욱 좋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통일이 되고 북한의 핵폭탄이 없어질 것인가. 오히려 남북 관계에 환상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층이나 청소년들에게는 교실에 걸려있는 인공기, 광화문 광장에서 외치는 김정은 찬양, 그런 방송을 접할수록 핵무기는 아무것도 아니고 김정은 그 자체에 빠져들 위험성이 있다. 이것이 핵무기보다 더 무서운 공산주의의 선동선전술이기 때문이다. 묵비사염(墨悲絲染)이라는 말이 있다. 글자 그대로의 뜻은 깨끗하고 하얀 실이 검은 먹물에 물드는 것을 슬퍼한다는 뜻이다. 또는 실이 검게 물드는 것을 묵자(墨子.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기의 사상가)가 슬퍼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정말 하얀 실이나 옷감이 검은 먹물에 닿으면 아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실오라기 하나에서부터 스며들어 어느 사이에 모두를 검게 물들어 버리는 것을 보게 된다. 인간의 사념(思念)도 이와 같이 물들게 된다는 것을 비유한 것인데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사실 한 단체나 조직의 슬로건이나 구호를 계속 반복하여 외치면 구성원 의식 속에 먹물이 실을 물들이 듯, 어느 사이에 그렇게 의식화된다. 후진국이나 독재국가일수록 구호가 많은 것도 그런 목적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이름 앞에 위대한 ○○○ 또는 영도자 ○○○하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묵비사염(墨悲絲染)처럼 그렇게 국민의 뇌를 물들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지난 10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발생한 초대형 유류탱크 폭발사고로 국민들이 크게 놀랐지만 사고 원인은 한 외국인 근로자가 날린 풍등 불씨, 아주 조그만 불씨가 옮겨붙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이런 것이 묵비사염(墨悲絲染)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김정은 답방 전부터 이런 식으로 시작된 남남갈등이 어떻게 번질까 하는 것이다. 남남갈등의 또 하나의 묵비사염(墨悲絲染)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경찰의 고민

매국노 이완용이지만 일본 통감부가 대한제국의 경찰권 위탁을 요구했을 때 처음에는 이를 거절했다. 을사보호조약으로 우리의 외교권을 빼앗은 일본은 1910년 한ㆍ일합방을 추진하기 앞서 경찰권을 장악할 필요성에 따라 친일 내각수반 이완용에게 경찰권 위탁을 요구했다. 이완용은 1909년 12월22일 독립열사 이재명의 칼을 맞고 충남 온양온천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다. 일본 통감부는 1910년 6월23일 요양 중인 이완용에게 사람을 보내 경찰권을 위탁하는 문서에 서명을 받아 오도록 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가 거절하자 일본은 데라우찌 통감의 위력을 빌어 겁박하는 전보를 보내는 등 물러서지 않았다. 이에 이완용은 1910년 6월 24일 대한제국의 경찰권을 일본에 위임하는 문서에 서명했고 친일 내각은 즉시 이를 의결, 오후 8시 우리의 경찰권은 일본에 넘겨졌다. 그리고 그 후 두 달 만인 8월29일 한ㆍ일합방을 강행한 것이다. 일본이 그렇게 우리의 경찰권에 집착한 것도 바로 한ㆍ일합방 과정에 일어날 국민 저항을 그들 손으로 제압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경찰은 군과 함께 주권국가의 체제를 수호하는 힘이다. 그것은 곧 주권의 모체인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경찰의 처지를 보면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달 22일 유성기업 임원에 대한 노조원들의 집단폭행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태도에 여ㆍ야를 떠나 개탄의 소리가 높다. 국민의 한 사람이 집단폭행을 당하고 있는데도 경찰의 공권력은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장관이나 윗분들은 법질서와 공권력을 엄정하게 확립하라 고 지당한 지시를 하고 있지만 그런데도 막상 일선 경찰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마디로 위에서는 원론적인 말을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 자칫 내 신상만 망가질 수 있다는 현실론 때문이 아닐까? 지난 9월 서울 동대문 경찰서 용산지구대 소속 홍모 경감이 정복을 입은 채 경찰청사 앞에서 행한 1인 시위. 그는 경찰이 한 시위대에 청구했던 손해배상을 포기한 데 대한 항의를 한 것이다. 문제의 시위 때문에 경찰 수십명이 부상을 입었고, 경찰 버스에 불을 붙이는가 하면 줄로 묶어 끌어내는 사태까지 있었는데도 손해배상을 포기하라니 공권력을 집행하는 일선 경찰관으로서는 납득할 수 없다는 것. 손해배상 포기만이 아니다. 시위진압에 나섰다가 거꾸로 시위대에 배상을 해야하고, 때로는 직권남용 등으로 피소되어 경찰복을 벗어야 한다. 피소된 시위자들은 법원의 무죄 판결로 경찰만 헛발질한 꼴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위에서 엄정한 공권력 집행을 강조해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몸을 던질 경찰관이 얼마나 될까? 과거 우리 경찰은 권력에 흔들리고 영혼이 없다는 비난을 많이 받았다. 유신정권 시절, 안동의 한 경찰관은 서울 명동성당의 시국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한 신부를 추적하여 저지시킨 공로로 1계급 특진을 한 일이 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공권력의 부당한 사용 지금의 우리 국민 눈높이로는 이해가 안되는 일이 과거에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우리 경찰이 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공권력 행사에 눈치 보는 일이 있어야 되겠는가. 경찰에 대한 신뢰의 척도가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라 믿는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탈 원전’ 소 대신 양이 될까?

2016년 세상을 떠난 신영복 교수의 마지막 저서 담론에 맹자의 이양역지(以羊易之)에 대한 해석이 나온다. 제나라 선왕(宣王)이 제물로 끌려가는 소가 너무 불쌍해 살려주고 소 대신 양으로 바꾸라고 했는데 왜 그랬을까? 그것은 선왕이 끌려가는 눈물 흘리는 소는 보았지만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는 소 대신 양으로 바뀌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온다는 내용으로 요약됐다. 우리들 생활속에서도 그리고 정치를 하는데도 보이는 것만 선택하여 보이지 않는 것으로 바뀌는 이양역지(以羊易之)의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얻는 이득도 있고 손실도 있다. 한 공무원 퇴직자는 연금으로 빠듯하게 생활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그의 삶이 확 달라졌다. 골프도 치고 심심찮게 외국여행도 떠나는 등 활기가 넘친다. 시골에 있는 밭에다 태양광 전기시설을 했는데 그것이 효자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퇴직자는 태양광이 노후생활에 좋다는 말만 듣고 빚을 얻어 땅을 샀는데 여러 절차가 비용을 초과하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 요즘 이렇게 지방에는 태양광 바람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심지어 새만금에도 태양광 1천만개를 세운다는 것이고 저수지 3천400개에도 추진 대상이 되고 있다. 산과 바다, 저수지이러다간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거북이 등 같은 판넬로 덮일 날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미 여의도의 9배에 달하는 면적이 태양광 전기생산을 위해 제공됐고 저수지와 호수를 덮은 발전시설은 수중환경파괴, 심지어 카드륨이나 수은 등 발암물질 오염으로 국민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수십년 소나무가 무차별 베어지고 이로인한 산사태나 홍수시 토사범람을 걱정하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주민들의 반발이 터져 나오는 곳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탈원전정책에 따른 재생에너지사업 때문에 일어 나는 것이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육성을 위해 2026년까지 80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이니 이제 원자력의 자리에 재생에너지가 차지할 것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국민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국원자력학회와 에너지합리화추구 교수협의회가 최근 국민 1천명을 상대로 원자력 발전 찬반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69.5%가 찬성했고 반대는 25.0%로 나타났다는 보도다. 그러니까 국민 대다수는 원자력 발전에 찬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고 그 뜻을 존중한다면 정부가 선택할 카드는 분명하지 않을까. 우리만 원자력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원자력을 포기하겠다며 국민투표에 붙인 대만. 그러나 국민들은 원자력을 선택했으며, 2차대전때 원자탄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이나 미국, 영국 등에서도 가장 값싸고 깨끗한 청정 에너지로서 원자력 발전을 선호하고 있다. 특히 영국 같은 나라는 장기간 원자력발전소를 짓지 않고 있다가 15기의 원전을 건설할 계획이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막상 원전건설을 하려니 전문인력이 없어 외국에 의존해야 할 딱한 형편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왜냐하면 벌써 대학의 원자력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맹자의 이양역지(以羊易之)를 생각해 봤으면 어떨까? 탈원전을 국민투표로 부결시킨 대만의 경우도 타산지석이 되지 않을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왜 그들은 ‘공짜 점심’은 거절했을까?

길 바닥에 100달러 지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중국 사람은 우선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본다. 러시아 사람은 일단 주워서 호주머니에 집어 넣고 주위를 살핀다. 독일 사람은 주워서 경찰에 신고한다. 그런데 스위스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 버린다. 내돈이 아닌 것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 이태리 사람은 누가 그것을 주어서 가면 자기 것이라고 우긴다. 이것은 그냥 우스갯 소리로 하는 이야기지만 숨겨진 뜻도 있는 것 같다. 특히 스위스 사람들의 돈 관련 이야기가 재미있다. 결국 스위스 은행하면 세계적으로 철저한 비밀과 예금자 보호로 유명한 것은 이런 국민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작은 나라의 은행이지만 미국과 같은 강대국의 압력에도 예금주 보호에는 끄덕 없으니 말이다. 또 스위스 사람들은 대화 중에 다른 사람의 재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매우 금기시한다고 한다. 이런 돈에 대한 신뢰가 쌓여 검은 돈까지도 맡기는 세계의 비밀금고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한 나라에 불어, 독일어 등 4개 국어가 공존하지만 탄탄한 번영을 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스위스가 2016년 6월5일 수요진작을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성인 1인당 매월 2천500 스위스프랑 (한화 300만원 상당), 미성년자는 한화 80만원을 지급하지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외국인 까지도 스위스에 5년 이상 거주하면 똑같이 지급한다는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스위스의 국민투표에 관심이 쏠린 것은 물론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데 스위스 사람들은 국민투표에서 76.9%라는 압도적 반대로 부결시켰다. 역시 실에 떨어진 지폐는 관심도 보이지 않는 국민성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부결의 저변에는 부지런한 국민성을 해치고 그렇게 많은 돈을 뿌리기 위해서는 재원이 지금의 3배에 달하게 되며, 결국 그것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것과 또 이런 복지정책이 실현되면 많은 이민자가 몰려 온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공짜 점심은 싫다는 것. 특리 이런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이기전에 치열한 논의를 거치는 과정을 밟았다. 치열한 논쟁-이것이 스위스 국논을 이끄는 힘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이런 국민적 합의도출을 위해 치열한 논쟁의 광장이 얼마나 준비되어있었던가. 국회에서 다루어지는 새해 예산에서 내년에는 현금 수혜자가 1천만명으로 늘어나고 그 현금 복지도 33조 원으로 올해보다 10조 원이나 대폭 늘어난다고 한다. 그 수혜자도 기초연금 539만명, 아동수단 230만명 등 50여 가지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지방정부도 마찬가지다. 경기도의 경우 올해 보다 1조6천996억 원, 23.5%가 증가하게된다. 또 정부의 복지사업확대로 지방 정부의 재정 부담도 가중되는 것은 물론이다. 야당인 자유 한국당도 저출산복지 명목에 7조 증액을 요구하고 나섰다. 더 주기 예산 경쟁에 나선 셈이다. 더 주고, 더 베풀어 나쁠 것은 없다. 문제는 그것이 국민 세금에 100% 의지한다는 것이다. 스위스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파격적 복지시혜를 국민투표에서 부결시킨 것. 그리고 아르헨티나, 베네쥬엘라, 그리스 같은 나라의 경제파탄을 타산지석으로 바라 보는 것 아닐까? 우리 역시 유권자들의 표를 겨냥해 경쟁적으로 공짜 밥상차리기 경쟁을 벌인다면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일본 여성이 본 한국 남성의 징병제도

세계사적으로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을 능가하는 영웅은 흔치 않다. 정말 그는 영웅이었다. B.C. 218년 한니발은 남부 프랑스를 석권하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반도를 침공했다. 칼라에 전투에서는 로마군을 섬멸했다. 그러나 카르타고의 한니발은 위대했지만 병사들은 그렇질 못했다. 결국 최후의 승리는 로마에게 돌아갔고 한니발은 패장이 되었다. 적을 한 곳에 모으지 않고 분산시켜 한니발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로마의 전술이 빛나기도 했지만 로마군은 이탈리아의 시민군이었는데 비해 카르타고는 용병이 주력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시민군과 용병의 차이는 무엇인가? 시민군은 애국심으로 싸웠고 용병은 돈을 벌기 위해 외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애국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용병도 군기는 있었지만 그들은 소속 부대에는 충성을 하고 국가에는 충성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용병은 외인부대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세계 2차대전 때까지도 이어졌다. 특히,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에 주둔했던 프랑스 외인부대는 매우 유명했다. 625 전쟁 때 참전했던 프랑스군 지휘관 몽클라르 중령도 한때 프랑스 외인부대를 이끌었다. 그는 육군 중장에까지 진급, 예편했는데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스스로 중령으로 강등해 경기도 양평군 지평리 전투에서 큰 전과를 세우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용병이란 말도 외인부대란 말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1989년 국제연합이 용병의 모집, 사용, 자금제공, 훈련 등을 금지하는 국제조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정말 국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 국가를 방위할 군대를 어떤 방법으로 유지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병역을 국민의 기본 의무로 신성시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병역을 필하지 못한 정치인이나 고위층 이사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국민정서도 그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군 병역문제가 자꾸만 이슈화되고 있어 걱정스럽다. 운동선수에 대한 병역면제 논란도 그렇고 양심이라는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무죄가 되고 그에 대한 대체 복무까지도 시비가 그치질 않는다. 병역에 대한 가치관이 자꾸만 혼미해지는 것은 아닌가? 그렇잖아도 안보에 대한 걱정의 소리가 나오고 있는 요즘이라 이런 사태가 우려스럽기만 하다. 나는 화끈한 한국이 좋다라는 책의 저자로도 알려진 일본의 고야마 이쿠미라는 여성이 몇해전 군복무가 한국 남성의식에 끼친 영향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신문에 보도된 그 논문에 의하면 한국 남성들은 군복무를 통하여 인내심을 기르고 의리와 협동심을 존중하게 되며 사회에 나와서는 추진력과 리더십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기업문화에까지 군문화가 이어져 선후배 의식, 윗사람 받들기 등의 풍토가 강하다고 했다. 솔직히 나 개인적으로도 군대에 갔다온 지 50년이 넘었는데 생활습관 속에 몇 가지 그런 것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고야마 이쿠미의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어쨌든 고야마 이쿠미의 결론은 일본도 한국처럼 징병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사람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징병제가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애국심 강한 군이 있어야 평화도 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싸우면

아무리 유명한 식당에 가더라도 주방은 보지마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주방의 지저분함은 일류식당이나 조그만 식당이나 마찬가지라 실망한다는 뜻이다. 맹자는 다음과 같은 말로 사람의 본질을 설명했다. 50보 도망간 사람이 100보 도망간 사람을 욕한다. 도망가기는 50보나 100보나 마찬가지인데 조금 더 도망친 사람을 욕하는 어리석음을 간파한 것이다. 더 독한 일화도 있다. 충청도 최고의 갑부였던 김갑순옹이 살아 있을 때 입버릇처럼 한 말이 모두가 도둑놈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그는 곧잘 일본어로 민나 도로보데스!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엔 믿을 사람이 없고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 똑같다는 말이다. 사실 서슬 퍼런 일본 총독도 김갑순의 황금 명함을 받고는 손을 잡아주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김갑순의 체험적 욕설이 이해가 될 만하다. 지난 달 28일, 경찰이 음주 운전의 처벌을 강화하기로 발표한 날, 그리고 그 즉시 전국적으로 음주운전을 단속한 날,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서울 경찰청 소속 A경위가 면허정지 수준의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신호등 앞에서 잠들고 만 것이다. 도로를 가로 막고 잠든 차 때문에 한동안 차량소통이 엉망이 된 것은 물론이다. 더 기막힌 사건은 국회의원의 음주운전. 민주평화당 이 모의원은 음주운전에 철퇴를 가해야한다는 사회정의의 투사처럼 보였다. 전역 4개월을 앞두고 휴가 나온 20대 청년을 음주운전자가 덮쳐 죽게 한 사건에 격분, 소위 윤창호법을 공동발의하기도 했다. 그는 음주운전을 살인행위나 마찬가지이니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국정농단을 다루는 국회 청문회에서도 스타 역할을 했는데 그만 음주운전이 먹칠을 하고 말았다. 도대체 이 허탈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청소년 학생들에게 국회의원의 역할을 무어라 해야하는가? 현역 국회의원 중에는 과거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경우가 17명이나 된다는 것도 참으로 민망하다. 인디언 마을의 한 노인에게 손자가 물었다. 저기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싸우는데 어떤 늑대가 이길까요? 할아버지가 손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밥을 준 늑대가 이긴다. SNS상에도 여러 형태로 소개된 이야기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 마음속에는 착한 늑대, 나쁜 늑대 두 마리가 항상 싸우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 두 마리 늑대는 우리에게 밥을 달라고 유혹을 한다는 것이다. 이 때 나쁜 늑대의 꾐에 넘어가 밥을 주면 나쁜 늑대처럼 되고 착한 늑대에게 밥을 주면 착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그러니까 늑대인 것은 똑같지만 선택에 따라 그 결과는 큰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이 아닐까? 가령 내가 술을 마셨는데 대리운전을 부를까 하는 생각이 마음에서 일어났다면 착한 늑대가 밥을 달라고 한 것이고 아니야. 그냥 운전해! 내가 경찰 간부고, 국회의원인데 설마 어떻겠나하고 핸들을 잡으면 나쁜 늑대가 유혹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참 나쁜 늑대가 너무 많다. 여신도를 꼬여 나쁜 짓을 한 목사님, 제자를 성추행 한 선생님, 성매매 단속을 하면서 성상납을 받는 경찰관, 취업대란시대에도 끄덕 없이 어머니, 삼촌과 동생까지도 정규직의 고용세습을 하는 힘 센 사람들, 비리를 저지르고도 진정있는 사과는커녕 어떻게 위기를 피하고 보자는 공직자들, 체인점에 대한 갑질의 회장님들처음 이들은 착한 늑대보다 더 착한 양의 탈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착한 양 마저 믿을 수 있으랴!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닥터헬기’와 잔디밭에 길을 낸 총장님

세계 2차대전 때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 장군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어 영웅이 되었다. 그는 귀국하여 미국의 명문, 컬럼비아대학의 총장을 거쳐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가 컬럼비아대학 총장 시절에 있었던 일화 한 토막. 하루는 그가 대학 캠퍼스를 돌아 보고 있는데 인부들이 잔디밭 둘레에 말뚝 박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왜 여기에 말뚝을 박는가?”하고 총장이 물었다. 그러자 작업반장이 “총장님, 학생들이 자꾸만 이 잔디밭을 가로질러 강의실로 가는 바람에 잔디가 엉망이 됩니다. 그래서 학생들 못들어 가게 이렇게 말뚝을 박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총장은 이 말에 빙긋이 웃으며 “그러면 잔디밭에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내주면 되겠네”하며 즉시 길을 만들어 주도록 지시했다. 그러자 학생들도 죄의식 없이 떳떳하게 강의실로 갈 수 있어 좋아했고, 잔디도 잘 보존된 것은 물론이다. 나는 가끔 정부의 개혁정책이 지지부진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이젠하워의 이 일화를 생각한다. 바로 개혁은 멀리 있지 않고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규제개혁이 앞에서는 손뼉을 치고 뒤에서는 꼼짝달싹 못하게 묶여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공무원에 묶이고, 국회에 묶이고… ‘묶는 것’에 익숙해 온 나쁜 관례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실감나는 사례가 지난 국정감사에서 공개됐는데 바로 이국종 교수가 증언한 닥터 헬기 문제다. 사고현장에서 병원 수술실까지 응급환자를 옮기는데 보통 7시간30분 소요되어 귀중한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많지만 닥터 헬기를 이용하면 30분밖에 걸리지 않아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이국종 교수의 주장이다. 그런데도 왜 닥터 헬기를 띄우지 않는가? 정해진 인계점(장소)에서만 이착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급한 환자가 발생했어도 허가된 장소가 아니면 착륙이 거부되는데 이런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지난 9월, 전남 여수에서 해경 승무원 박모씨가 훈련 중 사고로 다리가 절단되었으나 닥터헬기를 띄울 수 없었고, 결국 그는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해경은 물론 119, 그리고 외상센터 등에 닥터헬기가 있었으나 바로 이런 인계점 때문에 헬기를 띄우지 못했다는 것이 당시 국정감사에서 문제를 제기한 국회의원의 주장이다. 이처럼 인계점 문제로 닥터헬기를 띄우지 못한 케이스가 지난 2015년부터 지난 8월까지 80건이나 되고 있다니 믿어지질 않는다. 그러면 이와 같은 불합리한 구조가 왜 개선되지 않는가? 이국종 교수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높은 분께 이야기하면 시정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간급 관리자의 선에서 막힙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겁니다. 심지어 무전기도 없어 카카오톡으로 직원들과 업무연락을 합니다.” 이것이 현실이다. 높은 사람은 생색을 내지만 그 뒷감당이 두려운 실무급 간부들은 ‘복지부동’을 하는 것이다. 또 헬기의 소음으로 인한 민원도 문제다. 선진국에서는 닥터 헬기가 동네마당에 착륙하면 ‘사랑의 천사’가 왔다고 반기는데 우리는 집값 떨어진다고 반발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주민들의 의식전환도 절실하다. 어디 닥터헬기만 문제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규제의 족쇄. 오늘 풀겠다고 하지만 내일은 잊어버리고 국회에서는 낮잠을 잘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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