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투자회사 지점 사무실에는 아침에 중앙지, 지방지, 경제지 등 신문 7부가 배달된다. 그러면 제일 막내 사원이 신문을 부서마다 적절히 돌리고 일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막내 사원이 한 집회에 다녀오고 나서 신문 돌리는 일이 중단되고 한쪽에 그대로 쌓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점장이 막내 사원을 불러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사원은 근무규칙 수첩을 지점장 앞에 꺼내 보이며 “지점장님, 우리 근무규칙에 사원이 아침에 신문 돌려야 한다는 규정이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따졌다.
지점장은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에는 지점장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막내 사원이 외근을 하고 와서 보고를 하면 그가 만났다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하여 확인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 이 사원은 개인 볼일을 보거나 사우나를 다녀오는 것은 상상도 못하게 됐다. 결국 불편하기는 윗 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마찬가지가 된 셈이다.
형식은 달라도 요즘 우리들 직장이 이렇게 경직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주 52시간 근무가 시행되면서 어떤 직장은 오후 5시가 되면 회사 전체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져 버린다고 한다. 그러니 퇴근시간이 좀 지나도 남은 일을 마저 끝내야 집으로 가는 게 그동안의 관례였는데 이제는 아예 업무가 중단돼 버린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집에 가서도 못한다는 보고서를 쓰는 등 일은 해야 하기 때문에 ‘5시 셧다운’은 의미가 없고 오히려 일만 복잡하게 됐다는 것.
우리나라가 형편이 어렵다 해도 미래의 가능성에 대하여 외국인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몇 가지가 있다. 이를테면 한국인의 평균 IQ가 세계적으로 매우 높다든지, 부지런하다든지… 그중에서도 일본의 유명한 여행 작가 후지와라 신야 (藤原新也)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그가 우리 농촌을 여행할 때 마침 마을 공터에서 여러 명의 주부들이 김장을 담그고 있었다. 서로 모여 이웃의 김장 담그기 일손돕기를 했던 모양이다. 마침 그때 점심 식사가 차려졌는데 그들이 이 낯선 외국인에게 ‘밥 먹고 가라’고 권유하거라는 것이다.
후지와라 신야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감동을 받았다. 더욱 그의 마음을 적셔준 것은 식사 후에 나온 숭늉 맛.
‘밥 먹고 가라’는 한국 농촌 주부들의 인간미 넘치는 친절과 그 구수한 숭늉 맛에서 그는 한국인의 정서에 흠뻑 젖은 것이다.
그는 현대사회가 지나친 경쟁구도 때문에 ‘인간 냉동화 현상을 녹이는 것 역시 인간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그는 ‘밥먹고 가라’는 한국 농촌에서 인간 냉동화 현상을 녹이는 모습을 본 것 아닐까? 어느 외국 기업인은 오래전 한국의 또 다른 모습에서 감동받은 것을 털어놨다. 다름 아닌 도시의 기업과 농촌의 마을이 ‘1社1村’운동을 벌이는 것.
한 회사가 시골 마을 하나와 자매결연을 하고 그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사주는가 하면 농번기 때에는 회사직원들이 벼 베기 등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때로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이동 목욕시설도 해주는 것에 그 외국 기업인은 한국에 대해 미래가 밝다고 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대기업에서도 ‘갑질’시비가 잦았건 하청업체와 ‘상생협약’을 맺는 등, 서로 돕는 것이 서로 사는 길임을 보여주는 움직임이 있어 얼어붙은 우리 경제에 희망을 주고 있다. 또 하나 한국 경제의 가능성이다. 정말 얼어붙은 직장,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밥 먹고 가요!’하고 부르는 소리가 있어야 우리 미래도 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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