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2020년, 길 위에 놓인 바위 돌

아침마다 오르는 산에 조그만 암자가 하나 있다. 그런데 한 번도 그 암자의 스님을 보지 못했고 찾는 신도들도 어쩌다 한두 명 있을까. 언제나 조용하다. 재정이 어려운지 부처님 오신 날 암자 마당에 걸어 놓은 등(燈)이 몇 해가 돼도 그냥 달렸다. 이렇듯 가난하고 조용한 암자이지만 산비둘기나 부엉이 같은 새들이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암자로 가는 좁은 길에 낙엽이 쌓여도 누구도 그것을 쓸지 않고 있어 암자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적막하기까지 했다. 유일하게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귀여운 다람쥐.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좁은 길의 낙엽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낙엽이 걷힌 황톳길에는 빗자루로 쓴 흔적이 확연했다. 그래도 스님은 보이질 않았다. 그 다음 날도 밤새 떨어진 낙엽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리고 마침내 이 고요한 암자에도 첫눈이 내렸다. 그런데 내가 산을 오를 때는 이미 길에 눈이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역시 스님은 보이질 않았고. 하루가 지나도 한두 사람 다닐까 말까 한적한 산길을 이렇게 빗질하는 스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문득 정종수 시인의 길가의 돌이란 시가 떠오른다. 내 죽어 하느님 앞에 설 때여기 세상에서한 일이 무엇이냐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물으시면나는 맨 끝줄로 돌아가 설 거야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세상에서 한 일이 없어끝줄로 서 있다가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내 차례가 오면나는 울면서 말할 거야정말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그래도 무엇인가 한 일을 생각해 보시라면마지못해 울면서 대답할 거야하느님, 길가의 돌 하나 주워신작로 끝에 옮겨 놓은 것밖에 한 일이 없습니다. 참으로 인생을 들떠 살아온 사람들 마음을 겸허하게 해 주는 시다. 길가의 돌 하나 주워 신작로 끝에 옮겨 놓은 것밖에 한 일이 없다는 시인의 고백은 우리들 양심의 밑바닥을 강하게 때린다. 정말 우리는 길가의 돌 하나라도 옮기며 살았을까? 산속 암자의 스님처럼 겨우 한두 사람이 다니는 길 위의 눈을 쓸어 본 일이 있는가? 오히려 길에다 돌을 놓고 길 위에 눈을 깔아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지는 않았는가? 사실 우리는 너무도 많이 이런 악수(惡手)를 두며 살아왔다. 건물 비상구에 물건을 쌓아 화재가 났는데도 탈출을 못한 사람들이 귀중한 목숨을 잃었다면 이런 것이 길 위에 바위 덩어리를 놓은 것이다. 어린 제자에게 성범죄를 저질러 한 인생을 어둠 속에 던져 버렸다면 이 또한 길 위에 바위를 놓은 것이다. 대학 입학과 선거에서 그리고 취업에서 공정과 평등을 외면하고 지위와 권력의 음습한 방법으로 목적을 달성했다면 이것은 골목길이 아니라 고속도로에까지 바위를 깔아놓은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여기저기 바퀴벌레처럼 어두운 곳에서 이와 같은 공작을 꾸미는 세력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세력들은 그럴듯한 구호를 내걸고 있어 사람들의 눈을 홀린다. 더욱 올해는 총선이 있는 해인데 오사카 총영사 자리 제안 같은 역겨운 단어가 나오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2020년 길 위에 돌을 치우기는커녕 바위 덩어리를 놓지 않기를 기원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2019년 우리는 무엇을 보았나?

강원도에 있는 예맥문화재연구원이 얼마 전 양양군 오산리에 있는 신석기 습지를 발굴한 바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습지 유적에서 알뿌리를 발굴한 것, 지하 4m에서 발견된 이 식물은 연구원의 증류수에 담아 보관했는데 거기에서 싹이 나온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것을 7천 년 전 식물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함께 발굴된 토기의 연대를 봐서 그렇게 추리한다는 보도이다. 7천 년의 그 긴 세월을 땅속 깊이 숨겨져 있다가 물과 햇빛의 세상에 나오자 새싹을 움트게 한 그 위대한 생명력이 경외롭기만 하다. 7천 년은 아니어도 외국에서는 2천년 전 씨앗이 발아한 경우도 있다니 어쨌든 씨알의 생명력은 신비롭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인간이 간직하는 고귀한 씨앗은 무엇일까? 식물이나 동물에게는 없는 정신, 영혼이 그 대답이 아닐까? 이를테면, 인권, 자유, 평등, 정의. 이 같은 보편적 가치를 위해 인류는 강원도 양양에서 발굴된 7천여 년 전 식물의 씨앗보다 더 오랜 세월을 끊임없이 갈구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싹은 한꺼번에 발아하지 않고 오랜 갈등과 고난을 겪으면서 조금씩 잎을 피웠다. 유럽 백인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몰아내던 세월이 있었고, 아프리카 흑인들이 짐승처럼 노예로 팔려나가던 때도 있었다. 그것이 그때는 무의식적으로 자행되었지만, 이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반인륜적 행위로 치부된다. 종교의 자유, 남녀평등 같은 것도 그렇게 좌절과 도전 끝에 이만큼 성장해 왔다. 물론 아직도 인간의 보편적 가치가 아득한 중세시대에 머무는 나라도 있지만, 역사는 계속 진화를 멈추지 않는다. 이와 같은 역사의 진화 과정에서 2019년을 보내며 우리는 무엇을 감지(感知) 할 수 있는가? 나는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하다 지난주 문득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임기 3년의 절반을 남겨 놓고 사표를 던졌다는 보도를 보고 어떤 대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건리씨가 차관급인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것은 지난해 4월. 그런데 그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부인 정경심교수가 기소되자 남편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이해 충돌에 해당된다며 임명 반대의 의견을 제시했었다. 이해 충돌은 공직자의 사적인 이익과 공익 수호의 책무가 충돌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공직자윤리법에 이해 충돌 방지 의무를 못 박고 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법 정신에 충실한 소신이었는데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임명되었다. 또한, 전 청와대 김태후 특감반원의 폭로도 공익 신고자로 인정함으로써 유튜브를 통한 김태후씨의 활동이 가능해졌다고 하겠다. 이건리 부위원장이 자신의 소신과 양심의 벽에 부딪혀 비록 사표를 던지고 물러났지만 이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정의와 공정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데 점에 대해서는 의미가 크다. 이런 것이 결국 하나하나 모여 큰 물줄기를 이루는 것이고 그래서 역사는 진화하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2019년은 조국 사태로 소용돌이 쳤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우리 국민에게 공정, 평등, 정의가 얼마나 소중하며 그러나 그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 것임을 일깨워 준 소득이 있었다. 2019년, 우리는 그것을 보았고 절절히 깨달은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AI로봇에게 정치를 맡기면

초보 왕초보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니 뒤에 오는 운전자는 조심하라는 뜻으로 자동차 뒤에 스티커를 붙여 놓은 차를 흔히 본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하고 아기 그림을 그려 넣은 스티커도 있다. 아이가 타고 있으니 경적을 울리지 말고 추돌사고가 없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 면허 딴 지 한 달 됐어요. 양보해 줘서 고마워요. 등등 애교 넘치는 것도 많이 있다. 그런데 나는 어느 날 끔찍한(?) 경고의 스티커를 보고 섬뜩했다. 나도 내가 무서워요. 무슨 뜻일까? 그 자동차 뒤를 따라가며 생각해 보았다. 나는 초보운전이라 어떤 돌발 상황을 일으킬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뜻일까? 그럴 것이다. 다분히 협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내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알아서 조심해라. 사실 도로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교통사고는 처음부터 마음먹고 일으키는 것은 거의 없다. 한순간에 앞의 차를 추돌하여 엉뚱하게도 목숨을 잃거나 상해를 입히기도 하고 괜찮겠지 하고 끼어들기를 하다가 대형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인공지능(AI) 로봇이 운전하는 이른바 자율주행 자동차가 등장하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운행하기 때문에 추돌사고나 횡단보도의 사람을 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AI 로봇 택시가 등장할 판인데 택시 기다리는 사람 앞에 스스로 찾아가 목적지에 무사히 내려 준다. 물론 AI 로봇 운전은 아직 시험 중인데 곧 현실화될 전망이다. 지난 6일 동국대학교에서 AI 로봇 정치 강연이 있어 흥미를 끌었다. AI 로봇 나오(NAO)가 동국대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인공지능 사회에서 정치는 AI의 몫인가, 여전히 인간의 역할인가?라는 주제도 강연했는데 결론적으로 AI도 정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 언론 보도에 의하면 AI가 정치하면 불필요한 예산을 삭감하는 등 국민의 합리적 요구에 합당한 정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드디어 자율자동차, 산업용 로봇. 그리고 정치에까지 AI가 등장하는 것일까? 그러면 국회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일도 없을 것이고 모든 법률안은 AI가 척척 처리해 줄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와 같은 국민을 실망시킬 일은 물론 허위 인턴십이니, 논문표절 같은 시비도 없을 것이다. 시장 선거에서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하명수사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법을 어겼으면 처벌을 받아야지 감찰 무마 같은 것도 AI에게 절대 통하지 않을 것. AI는 가족도 없고 학교 동창도 없으며 모든 계파와 측근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AI 정치도 문제가 있다. 컴퓨터망을 뚫는 해킹이 있듯이 AI 전문가가 엉뚱한 조작을 해놓으면 정말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가령 어떤 법률을 만들 때 자기 조직, 자기 정당에 유리한 조문을 삽입하도록 AI를 조작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외국 은행을 해킹하여 손도 안 대고 수 많은 달러를 도둑질하지 않는가? 더 큰 문제는 어떻게 AI가 민주주의 체제에서 인간을 대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정치는 그것이 아무리 시끄럽고 부정직해도 인간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역시 인간이 문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한국에서 40년, 한센인을 돌본 스페인 신부

지난주 사단법인 존경ㆍ배려 모임 연말 행사가 대전에서 있었는데, 이 자리에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성심원 원장 유의배(74세, 루이스 마리아 유리베) 신부가 초청됐다. 파란 눈의 스페인 출신으로 1980년 이곳 한센인 마을에 들어온 지 40년, 이제 머리는 백발이 됐다. 성심원은 나환자라 일컫는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현대의학이 한센병의 완치에까지 이르는 수준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그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한센인들을 돌보며 그들과 함께 40년 삶을 같이해 온 유의배 신부는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우리말로 행복하다며 활짝 웃는다. 그는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의 음식, 문화 모든 것이 한국화 되어 있었다. 깊숙한 산골에 자리 잡은 성심원은 소록도 다음으로 규모가 큰 한센인들의 마을이다. 유의배 신부는 처음 한국말이 서툴러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앞에는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는 한센인들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했으며,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 심지어 한센인들과 얼굴을 비비기도 했다. 심한 병을 앓는 이들에게는 함께 밤을 새우며 간호하는 등 온몸을 던져 그들을 보살폈다.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한센인 마을 사람이 죽었을 때 직접 자신이 팔을 걷고 염을 해주는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을 그는 마다치 않고 한 것이다. 이렇게 그의 손으로 염을 한 사람이 40년 동안 600명 가까이 될 거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그는 2002년에는 아산사회복지재단 사회봉사상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2016년에는 적십자사가 주는 인도장 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최근 한 TV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해 준 것이 없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었을 뿐입니다. 겸손하고 의미 깊은 말이다. 자선은 물질적인 것보다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할 때 인간 유대의 깊은 에너지가 솟아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리를 두었던 한센인들을 스페인에서 온 파란 눈의 신부가 40년이나 함께 살아온 것이 감동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 한센인들은 죽을 때에도 임종을 지켜주는 유의배 신부님이 곁에 있어 편안히 눈을 감는다고 한다.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함께하는 것이다. 그날 모임은 밤 9시가 되어서야 끝났는데 그는 대전에서 잠을 자지 않고 먼 길 산청으로 서둘러 떠났다. 성심원 가족들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감히 누구도 그를 만류 할 수가 없었다. 지난주 서울 관악구청은 사회적 충격을 안겼던 탈북자 모자 아사(餓死)사건을 종결짓고 이들 모자의 장례를 치렀다. 한모(42세) 여인과 어린 아들이 지난여름 관악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굶어 죽은 것으로 보도 된 지 108일 만이다. 이들이 발견된 것도 죽은 지 2개월 후, 어떻게 이렇게 우리 사회의 관계가 단절된 것일까? 자유를 찾아 탈북한 모자의 최후가 그렇게 굶어 죽는 것으로 끝날 수 있을까? 산청 산골에서 40년을 한센인과 함께 살아온 스페인 신부가 함께를 강조한 말이 새롭게 느껴진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이 늘어난다

조선을 세운 것은 이성계이지만 실제적으로 조선을 설계한 사람은 정도전(1342~1398)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고려 말 9년간의 유배와 방랑으로 뼈아픈 세월을 겪었다. 그가 전라도 나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어떤 늙은 농부를 길에서 만나 꾸지람을 들었다. 당신들은 백성의 삶은 외면하고 녹봉만 축낸다는 것이다. 당신들(지도자) 은 이렇게 백성이 고통을 겪는 데도 이를 돌보지 않고 월급만 타 먹어 나라 재정을 축낸다는 질책이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백성의 고달픈 삶을 목격했지만, 산골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게 보이는 이들 농민도 정치가 잘 되는지, 엉망인지를 꿰뚫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국가도 이들 백성의 마음, 곧 신뢰를 잃으면 그 순간 무너져 버림을 깨닫고 1383년(고려 우왕 9년) 함경도에 있는 이성계를 찾아가 새 나라를 세워야 할 당위성을 설계한다. 조선 건국의 첫 걸음이다. 요즘 조국 장관 사태로 나라가 온통 불난 집 처람 시끄러운 데 그 시끄러움 속에 우려스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어 나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 국적을 포기한 사람이 무려 3만 3천5백94명에 이르고 있다. 예년의 6배이며 10년내 최고라는 것이다. 정부는 매년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부으며 출산을 독려하고 있는데 오히려 1년에 3만 명이나 빠져 나가서야 하겠는가? 이민은 여전히 미국이 가장 높지만, 최근에는 태국, 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 이민도 부쩍 늘고 있다. 태국은 80만 바트(한화 3천만 원) 이상을 3개월 정기예금하거나 월 6만5천바트(한화 246만 원) 의 수입이 보장된 50세 이상이면 이민이 가능하다. 그리고 말레이시아도 세컨드 홈이라는 정책을 내세워 예치금 1억 5천만 원만 내면 10년 장기 비자를 받을 수 있고 이 예치금은 나중에 환급받는 조건이니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베트남도 비슷한 여건. 이민에 못지않게 우려스러운 것은 기업의 한국 탈출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것을 보면 올 2분기 해외직접 투자는 150억 1천만 달러로 지난해 보다 13.3%가 증가했지만 기업의 국내 투자는 올 2분기 149조 6천억 원으로 1년 전 보다 0.4% 줄었다.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기업이나 기성세대만 아니라 젊은 청소년에게도 비슷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조사한 것을 보면 훗날 해외 이민을 고려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36%나 되었다. 참으로 놀랄 숫자다. 이미 일본에는 우리 젊은이들의 취업자가 7만 명에 이른다는게 일본 후생성의 발표다. 여기에다 유학생들을 포함하면 우리 젊은이들이 15만 명 상당에 이를 것이란 보도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떠나고 싶어 하는가? 이에 대해 이민을 준비하는 어떤 사람은 마음 편하게 살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취업 등 피 터지게 싸워야 하는 경쟁사회, 52시간 근로 규정, 조국 사태에서 보는 증오와 분열, 최저임금 같은 경영 압박, 자녀 교육의 불안, 심지어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문제, 65%에 이르는 상속세와 법인세의 인상. 이런 것에서 벗어나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이니 어디에 살든지 자유라고 하기에는 우리 현실이 안타깝다. 왜 우리 국민이 내 나라에서 마음 편하게 살지 못하고 외국으로 떠나야 하고, 외국에다 공장을 세우려 하는가? 정도전은 시골 농부에 꾸지람을 듣고 정치의 본질에 눈을 떴지만,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아예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는 것 같아 화가 치민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국민은 호랑이

JP(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국회의원 9선으로 최다선 기록을 세웠지만 10선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역사에 남기려는 욕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비례대표 1번으로 등록을 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되어 주었던 충청권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충청도 유권자들은 영원한 2인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국무총리를 두 번이나 역임한 JP를 외면했고, 단 4명의 당선자를 냄으로써 비례대표 1번까지도 낙선(落選)하는 이변을 일으켰다. 큰 충격을 받은 JP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말과 함께 국민은 호랑이라는 말을 남겼다. 9선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정치 10단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끝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그리고 국민을 무시했다가 그 결과가 얼마나 무참히 무너지는 것인지를 그는 깨달은 것이다. 결국,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조용히 살다가 지난해 여름 92세를 일기로 운명하였다. 더욱더 일찍 정계은퇴를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그래도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든지 국민은 호랑이라고 말을 했을까? 요즘 우리 정치판에 불출마가 화두가 되고 있다. 특히 여권에서는 임종석 前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과 야권에서는 3선의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임종석 前 비서실장은 이른바 586세대와 친문(親文) 핵심 세력을 대표해 왔는데, 의외로 불출마 선언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체로 민주당의 주류를 이루어왔던 586세대를 필두로 인적쇄신의 의견이 탄력을 받고 있고 이에 따라 3~4선 의원들이 퇴진압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10여 명의 의원이 불출마 여부를 고민한다는 보도도 있다. 물론 같은 586세대 중에서도 남아서 일 할 사람은 일하고하며 반발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사실 가장 충격적인 불출마선언은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의 경우이다. 김 의원이 자유한국당의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라고 한 것은 가히 폭탄선언이다. 그러면서 그는 황교안 당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까지도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와 같은 호재 속에서도 당의 지지율을 높이지 못한 것은 당을 이끄는 지도층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며 이대로는 대선 승리는커녕 총선 승리도 어렵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자유한국당은 이에 대해 찬ㆍ반 양론으로 갈라지는 현상을 보이고 황교안 당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하면 물러날 각오라고 했다. 이를 두고 당장 선거 결과가 나쁘면 책임을 지는 게 당대표인데 뻔한 소리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러자 황 대표는 돌연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이 추위 속에 죽기를 각오하고 공수처 설치와 선거법 개정 등을 막겠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당(黨) 쇄신의 목소리는 황 대표의 단식투쟁 모드에 묻힐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해서 공수처 설치, 선거법 개정 저지에 성과를 올린다면 황 대표의 리더십도 살고, 자유한국당도 힘을 받게 될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모처럼 3선 의원의 자기 희생적 불출마선언과 당 쇄신에 대한 간언(諫言)이 준 감동이 사그라지는 것은 아닐까? 국민이 바라는 것은 여ㆍ야 정치행태에 신선한 바람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애써 국민의 바람을 무시하고 자기들만의 정치게임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JP가 뒤늦게 깨우쳤던 국민은 호랑이라는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후회할 때는 늦을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제방에 바닷물이 샌다고?

네덜란드 스파르담의 한 소년이 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길에 댐에서 물이 새어나는 것을 발견한다. 이 댐은 바다보다 낮은 마을을 지켜 주는 것이어서 만약 댐이 무너지면 대참사가 빚어진다. 소년은 책가방을 내려놓고 물새는 구멍에 손을 넣어 막는다. 소년은 몹시 춥고 배가 고파 지쳤지만 마을을 지키려고 그대로 버티다 정신을 잃는다. 댐 붕괴를 몸으로 막은 네덜란드 소년의 이야기는 미국에 이민 간 네덜란드 사람들에 의해 알려졌고 1865년 아동문학가 메리 메이프스 도지에 의해 동화로 출판되어 세계적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우리나라 교과서에까지 소개되었고 네덜란드에는 이 소년의 동상이 세워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코스가 됐다. 네덜란드는 이름 자체가 바다보다 낮은 땅이라는 뜻을 지닐 만큼 국토의 27%가 바다보다 낮아 생존을 위해 댐(제방)을 많이 만들었다. 수도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등, 지명 끝에 담이 붙은 곳이 많은 것도 댐을 막아 이룩한 도시임을 뜻한다. 그들은 이렇게 바다에 제방을 쌓아 만든 땅이 매우 척박했지만, 여기에 튤립을 심는 등 화훼농업을 일으켜 세계 최대 꽃 수출국이 되었고 저녁에 채취한 튤립이 이튿날 새벽 뉴욕, 파리, 도쿄 등 세계 꽃시장에 배달될 만큼 신속한 물류 시스템을 자랑한다. 또한, 네덜란드의 상징이 된 풍차도 매우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물과의 싸움에서 탄생된 생존의 도구다. 이렇듯 네덜란드는 바닷물을 제방으로 막으며 그 역경을 관광대국, 해양대국으로 탈바꿈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유명하다. 톱니바퀴처럼 굴곡과 침강(沈降)이 심해 불편한 점이 많지만, 오히려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거나 양식업을 하는 데는 활용도가 높다. 경기도, 충남 등 서해안은 항만으로의 기능까지 갖추고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도 살린다면 미래의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평택당진항은 앞으로 동북아의 물류중심을 이룰 것으로 전망되며 현재의 38개 부두를 2020년까지 74개를 더 확충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경기도가 이곳 관리를 위해 경기평택항만공사를 만든 것도 이와 같은 전망을 뒷받침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경기일보 11월4일자 1면에 큼직하게 실린 사진은 경기도민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1천700억 원을 투입해 조성한 평택ㆍ당진항 외곽 호안이 바닷물이 새면서 외곽 일부는 이미 붕괴되고 무너진 모습이 그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5.8km의 평택항 내항 외곽 호안 공사는 2007년에 준공되었으며 2015년 다시 보수공사를 시행했다.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호안 일부가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이 보수공사는 올해 6월 준공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두 번에 걸친 준공검사를 통과했음에도 또다시 바닷물이 유입되고 보도된 사진에서 보듯 일부는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왜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는가? 우선 제기되는 것은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바다는 그 밑을 흐르는 조류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심한데 특히 리아스식 해안의 서해안이 매우 민감하고 복잡하다. 그런데 과연 제방설계가 이와 같은 특성을 살려 이루어진 것인지 전면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어찌 된 일인지 1천700억 원이나 투입된 공사가 이렇게 되었음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답답한 노릇이다. 몸을 던져 물새는 제방을 지킨 네덜란드의 소년이 생각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헛발질과 ‘자살골’

축구 때문에 전쟁을 벌여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1969년 7월 남미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월드컵 예선전. 양국 모두 치열한 경기를 벌였고 응원도 과열되어 예선전에서 이긴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 공군기지를 공격하면서 100일간 전쟁을 벌인 것이다. 이 축구전쟁으로 양국 모두 4천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남미는 그렇게 축구에 다혈질이다. 1994년 월드컵 A조, 미국과 콜롬비아 경기에서도 그런 불상사가 빚어졌다. 콜롬비아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 선수가 그날 실수로 자기 골문 안으로 공을 찬 것. 이 자살골 때문에 콜롬비아는 16강 진출에 실패했고 격분한 콜롬비아 국민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선수들을 비난했다. 이런 와중에 자살골을 넣은 안드레스에스코바르 선수는 귀국해 한 나이트클럽에 들렀다가 총에 맞아 죽고 만다. 분노한 시민이 총을 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축구 감독은 국민이 무서워 귀국을 못하고 한동안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만큼 자살골의 충격이 엄청났다. 축구에서 자살골은 왜 일어날까? 앞에서 말한 콜롬비아 선수는 헛발질한 게 그만 볼을 자기 골 문안으로 집어넣은 결과를 가져왔다. 통한의 헛발질이다. 이와 같은 헛발질은 아마추어들의 축구 경기에서 많이 보게 된다. 연예인들의 친선경기, 특히 코미디언 팀에서는 관중을 웃기게 하려고 일부러 자살골을 넣는 애교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정치에서 보여 주는 헛발질과 자살골은 국민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의 국회 해프닝. 그는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청와대 안보실장과의 질의응답에 당사자도 아니면서 별안간 끼어들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똑바로 하라며 나경원 대표를 나무랐다. 어처구니없는 장면이었다. 이 때문에 국회가 파행을 빚었고 국무총리가 사과하는 모습까지 보여야 했다. 그런 가운데 강 수석이 김재원 국회 예결위원장과의 맥주 회동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은 또 한 번의 헛발질이었다. 관중석의 국민감정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최근 계속된 자유한국당의 헛발질도 보기에 딱할 정도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조국 전 장관 사퇴 후 패스트트랙 수사 대상의원들에 공천 가산점을 부여하겠다고 했다가 당 안팎의 비판을 받았고, 조국 인사청문회대책 TF유공 의원에게 표창장과 상품권을 증정한 것 역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자살골이 되고 만 것이다. 여기에 끝나지 않고 박찬주 전 육군대장의 영입도 매끄럽게 처리되지 못하고 평지풍파만 일으켰다. 외연 확장을 위한 합리적 보수층과 무당 층을 끌어들이는 방법이 너무 어설프고 아마추어들 같다. 대한민국 전통 보수당으로서 어떻게 동네 축구 같은 헛발질만 하는가. 결국, 이런 헛발질 때문에 한국당은 조국 사태와 정부 여당의 경제정책 등으로 한때 민주당과의 오차범위에까지 상승했던 여론조사 지지도가 그 상승세를 이어 가지 못하고 조국 사태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황금어장에 나간 고깃배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다. 정치는 그렇다 하더라도 국가 안보는 헛발질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되는데 이 역시 불안한 것은 왜 그럴까? 외교와 안보는 자기 골문에 공을 넣는 동네 축구의 아마추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다시 ‘공짜’의 맛에 빠진 아르헨티나

통신 3사의 5G 가입자 유치경쟁이 뜨겁다. 가히 출혈 경쟁이다. 이런 경쟁 분위기를 타고 어떤 스마트폰 시리즈는 기기 값을 0원으로 내렸고, 전폭적인 지원금을 설정, 사실상 공짜폰 구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핸드폰 가게 앞을 지나노라면 쇼윈도에 공짜폰 구호가 큼직하게 쓰여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통신 3사뿐 아니라 불경기가 장기화하자 소비자들의 공짜 선호 심리를 자극하는 상술(商術)이 점점 확대되고 있다. 어떤 식당에서는 3인분 이상이면 막걸리 무제한 공짜를 써 붙였고, 어떤 삼겹살 식당은 소주 1병을 공짜라고 광고를 하는 등 그 공짜의 형태도 다양하다. 옛날부터 얼마나 공짜를 좋아했으면 공짜는 양잿물도 좋다는 속담이 생겨났을까. 양잿물은 옛날 세탁용으로 사용하던 독약이다. 이와 같은 공짜 심리를 경제학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던 밀턴 프리드먼의 이른바 공짜 점심 같은 것은 없다(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이다. 공짜로 점심을 얻어먹어 마음에 빚을 지게 되고 다른 형태로 그 호의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공짜 점심은 아니며, 상거래에서 공짜 점심값은 이미 거래내용에 포함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삼겹살 3인분을 주문하면 소주 1병이 공짜라고 했을 때 그 소줏값은 계산서에 숨어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짜가 갖는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비단 상거래뿐만 아니라 정치에까지 위력을 발휘하게 되고 결국 나라를 혼돈에 빠지게 한다. 남아메리카, 그리스 등에 부는 포퓰리즘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아르헨티나는 지난달 대통령선거에서 4년 동안 버텨오던 우파정권을 물리치고 과거 포퓰리즘의 극치를 이루었던 페론 대통령 시대로 되돌아갔다. 아르헨티나는 한때 세계 경제 7위의 선진국 대열에까지 갔으나, 대통령까지 무기 밀매를 하는 등, 부패가 극심해 졌고, 페론이즘으로 불리는 대중 영합주의가 이어지면서 끝없는 추락을 계속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재임했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집권기간에는 산업의 국유화, 실업문제 해결 방안으로 공무원 대폭증원, 모든 대학생에게 노트북 공짜 지급, 연금확대,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대폭지원 등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제가 엉망이 되어 국가 부채가 2천955억 달러에 이르렀으며, 그럼에도 정부예산 19%를 서민생활보조금으로 쏟아 부었다. 결국, 2015년 우파 대통령으로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당선되어 집권했으나, 전임자들이 벌려 놓은 포퓰리즘의 뒤치다꺼리를 감당할 수 없어 IMF에 560억 달러(한화 66조 원)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IMF 역대 최고 금액이다. 그만큼 아르헨티나 경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은 이번 선거에서 페론이즘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는 IMF와 협상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과거에 페론이 했던 것처럼 산업의 국유화 등 국가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고, 복지예산도 오히려 확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렇게 국민은 우파 대통령의 정부부처 축소, 공공요금 보조금 삭감, 등 고통분담 요구를 거부하고 포퓰리즘에 열광했다. 공짜에 대한 추억, 그 단맛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정치의 고민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왜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가렸나

미국 뉴욕시 교육청은 학교에서 시행하는 모든 시험에서 사용해서는 안 될 어구(語句)로 50개를 지정했다. 알코올, 학대, 포르노, 마약, 특정종교의 축제, 정치 등 모두가 수긍이 가는 어구들인데 그 속에 정치가 들어 있는 것이 주목을 끈다. 교육 본질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어떤가? 지난달 부산에서는 중간고사 시험에 검찰개혁과 연관된 인물을 골라내는 문제를 낸 교사가 있어 말썽이 되기도 했다. 도대체 어린 학생들에게 이런 정치적 문제를 낸 교사가 평상시 수업시간에도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이 사건 말고도 서울인헌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정치에 이용하여 말썽이 되는 등 비슷한 사례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심지어 스포츠에까지 정치의 잣대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 15일 평양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경기는 무관중(無觀衆), 무중계(無中繼)의 기괴함 속에 치른 우리 축구선수들은 안 다치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했고, 손흥민선수가 그 구체적 내용을 이야기했다. 정말 공포의 평양축구장이라는 섬뜩함 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일부 SNS에서는 손흥민선수를 축구만 잘하자 정치의식이 부족하다고 비난했다. 그런 내용을 이야기하면 남북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것까지 북한 눈치를 봐야 하는 게 정무적 감각일까? 지난 15일 국정감사에서 이승도 해병대사령관은 한 의원의 질문에 답변하면서 함박도를 초토화 시킬 수 있도록 2사단 화력 계획을 세웠다고했고 안보를 위협하는 우리의 적이 북한이라고 했다. 한동안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어물쩍 넘기던 안보 관계자와는 달리 해병대답게, 야전군 사령관답게 시원한 소신을 밝힌 것이다. 적어도 군인은 그렇게 정치색이 없이 소신을 밝혀야 한다. 그런데 정경두 국방부장관은 해병대사령관의 발언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야당 의원들은 문제의 발언으로 이승도 사령관이 위로부터 질책을 받지 않았는가 물었지만, 이 사령관은 그런 일 없다고 했다. 이런 질의와 답변이 나오는 우리의 현실 자체가 안타깝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무감각 역시 우리 정치현실이기에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정치 9단이라고 하는 박지원 의원이 검찰의 정경심 교수 기소가 과잉 기소가 아니냐며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공격성 질의를 했는데 오히려 언성을 높여 특정인 보호성 말씀을 삼가라고 역습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윤석열 총장은 예나 지금이나 정무적 감각이 없다는 것은 똑같다고 실토했다. 정무적 감각이 없는 검찰총장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사건 수사에서 정치적 계산을 따져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닐까? 사실 검찰개혁, 공수처 신설 등이 대두되는 발단의 하나는 그동안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많이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검찰이나 법원에 정치가 스며들면 공정한 사회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리스 신화의 법과 정의의 여신을 아스트라이어(Astraea)라고 하는데 손에 칼과 법전, 그리고 저울을 들고 서 있다. 특이한 것은 헝겊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렇게 눈을 가렸을까? 자신의 주관에 의해 법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법전과 공정한 저울 외에는 정치적 색깔 등 어떤 것도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청사에도 아스트라이어 여신상(女神象)이 있다. 그리스 신화의 복장이 아니라 우리 한복을 입은 여신상으로, 한복을 입는 것은 좋지만, 그 여신상(女神象)이 정치를 입으면 눈을 가리되 정의마저 가리게 될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부끄럽고 창피했다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최희준의 대표곡이라 할 하숙생 가사 일부다. 그는 지난해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가요계에서는 보기 드문 명문대 출신에다 매혹적인 저음으로 오랫동안 가요계의 큰 별 역할을 했고 제15대 국회의원에도 진출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생전에 국회의원 한 것을 크게 후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버지가 정치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불효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금배지를 단 것이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 불효를 저지른 것으로 생각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지난주 더불어 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21대 국회의원에 불출마를 선언해 화제가 되고 있다. 국회의원 공천받으려고 현역이건 정치 지망생이건 눈에 불을 켜는 판에 불출마 선언은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의원이 밝힌 내용을 보면 이해가 되고 남는다. 그는 양질의 사람이 국회에 들어와도 당의 구속을 받다 보니 이상해진다라고 했다. 우리 정당정치의 현실을 솔직히 고백한 것 같다. 사실 우리 정치풍토에서 소신 있게 의정 활동 하기는 어렵다. 당의 방침과 다른 소신 발언을 할 경우 벌떼같이 문자 폭탄을 퍼붓는 정치 환경이 대표적 예다. 김해영 최고위원도 지난 16일 광장 정치 가 일상화된 현실에 대해 집권 여당 지도부의 일원으로서 대단히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했다가 문자 폭탄을 맞았다는 보도도 그런 것이다. 같은 당의 금태섭 의원 역시 소신 발언을 잘했는데 이번엔 당에서 추진하는 공수처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냈다가 역시 저항을 받는 것 같다. 금 의원은 공수처 설치는 새로운 권력기관을 만드는 것이며 권력기관인 사정기구를 또 하나 만드는 것은 시대적 과제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는 것. 우리나라뿐 아니라 아시아 바둑계의 황제로 불리던 조훈현 자유한국당 의원(비례대표) 역시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한 데도 이와 같은 우리 정치현실과의 내적 갈등 때문이 아닐까? 조 의원은 한 인터뷰에서 바둑은 고수(高手)였지만 국회의원으로서는 하수(下手)였다며 나 같은 사람이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가 타협이란 게 없고 흑백논리로 모든 게 정해지는데 그걸 알았다면 애당초 안 했을 것이라 했다. (김지은의 삶도 인터뷰) 이런 분위기 속에 이철희 의원은 아예 국회의원 불출마를 선언해 버리니 놀랄 수밖에 없다. 이철희 의원은 이번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그리고 국정감사장에서 연출되는 해프닝들에 크게 실망한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정치는 공동체의 해악이다. 국회의원으로 지내면서 어느새 저도 무기력에 길들여지고 절망에 익숙해졌다. 국회의원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우리 정치를 바꿔놓을 자신이 없다.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이런 정치는 정치가 아니다 그러면서 부끄럽고 창피하다라고 했다. 숨김없는 양심의 소리다. 이와 같은 양심을 가진 정치인들이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빠져나오는 것은 우리 정치발전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 실망하고 출마를 포기하는 국회의원이 늘어나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치풍토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성과 고뇌의 모멘텀이 되어 줄테니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꿈을 가지라고? 꿈을 꿀 거리가 없는데…

지방의 모 국립대학 캠퍼스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00과 졸업생 김00, 박00 등이 9급 지방직 공무원에 합격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이다. 과거 본교 몇 회 졸업생 또는 졸업반 누가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든지, 육군 소장으로 승진했다든지 하는 플래카드는 더러 보았으나 말단 9급 시험에 합격한 것 까지 경축이라며 과시하는 것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경축이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자랑할 만하다. 그만큼 공무원 되기가 너무도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 가운데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이 100만 명 정도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중 40만 명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소위 공시생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의 뜻) 이 그것. 신설된 국가직 9급 일반 행정 경찰청 모집에서 344명을 선발하는데 1만 5천894명의 인원이 몰렸다. 46.2대 1을 기록했으니 그야말로 바늘구멍이다. 지방공무원이건 세무직이건 앞에 공무원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응시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서울에만 이런 공무원 응시생들을 위한 고시촌이 4곳이나 된다는 사실이 우리 젊은이들의 혹독한 취업 현실을 웅변해 준다. 그래서 공무원들이 점심때에 목에 신분증을 걸고 밖으로 나올 때 사람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젊은이들이 공무원에 집착하는 것인가? 무엇보다 신분보장이다. 60세까지 보장된 직장이 공무원 말고는 찾기 어렵다. 인생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사느니 돈은 적더라도 안정된 삶을 영위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고 월급이 적은 것도 아니다. 2017년 국세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 직장인의 연봉이 평균 3천519만원이었는데 비해 공무원의 평균 연봉은 6천120만원이나 되었다. 얼핏 9급 공무원은 월 159만 원밖에 안되지만, 상여금, 가족수당, 주택수당, 특근수당 간은 것을 합치면 월급봉투가 두툼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정부는 2020년 2.8% 급여 인상을 계획하고 있으니 9급이면 어떻고 7급이면 어떻겠는가? 하지만, 이렇게 바늘구멍 같은 공무원 취업문을 통과하는 젊은이가 과연 몇 %나 될까? 아예 공무원 시험장 문턱에도 못 가고 하늘만 쳐다보는 젊은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취업박람회만 열리면 구름떼처럼 몰려드는 젊은이들, 그 일자리를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헤매는 모습은 너무 황량하다. 그런데도 정치 지도자들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한다. 도대체 꿈꿀 건더기가 있어야 꿈을 꿀 것 아닌가. 이것이 오늘 꿈을 가져야 할 우리 젊은이들이 꿈을 갖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지난 1일 경남 김해에서 30대 젊은 가장이 경제난으로 고통을 겪다가 처자식을 살해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택했으나 살아났다. 이 뉴스를 보면서 또 한 번 우리 젊은이들이 안은 아픈 현실을 실감했다. 이렇게 삶이 팍팍한데 어떻게 아이를 낳으라고, 결혼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무리 세금을 쏟아 부어도 자꾸만 인구가 감소하는 이유를 정치인들은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 정치판이 이래서는 더욱 심각한 사태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나 아니면 안 된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3월20일 5개 부처 장관을 전격적으로 경질했는데 그 가운데 내무부장관으로 임명된 최인규가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불과 43세의 젊은 장관인데다가 장관 중에 가장 실세인 내무부장관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내무부장관은 시ㆍ도지사 임명권은 물론 경찰조직까지 총괄하는 데다 선거를 주관하는 막강한 위치에 있었다. 특히 그는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강하여 내무부장관 취임식에서 다음과 같은 취임사를 할 정도였다. 지금 형편으로는 이승만 대통령 각하께서 이 나라에 안 계신다면 나라는 망하고 만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아니하고 그러니까 최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만이 대한민국을 이끌 유일한 인물이라고 믿고 있었고 그 신념은 종교적일 정도로, 이승만이 아니면 나라는 망한다고까지 생각한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다가올수록 그는 노골적으로 공무원의 선거개입을 독려했고 치안국장(지금의 경찰청장), 지방 경찰국장을 선거용으로 개편했다. 그런데다 자유당은 그에게 자유당을 위해 총알이 되어달라는 메시지를 날린 것으로 훗날 재판과정에서 밝혀졌다. 그리고 그는 기꺼이 총알 역할을 했고 1960년 3월15일 정부통령선거에서 사상 유례없는 관권선거, 부정선거로 이승만과 이기붕을 정부통령에 당선시켰다. 그러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419가 발생했고 곧이어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는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이 재판은 516 군사재판에까지 이어져 1961년 12월21일 사형이 집행되었으며 총알 역할을 자임했던 그의 인생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승만이 아니면 나라가 망한다는 그의 잘못된 신념이 결국 그 자신도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아집 때문에 불행한 말로를 맞이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현재 정치 지도자는 물론이고 사회단체, 심지어 종교단체에서조차 그 아집 때문에 교단의 분란을 일으키는 일도 흔하다. 어떤 시(市)의 A 시장은 주위에서 재출마를 말렸는데도 내가 한 번 더하면 우리 시를 완전히 개혁할 수 있다며 출마를 강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낙선이었고 무리한 출마로 선거 빚만 잔뜩 떠안고 살다가 신병(身病)까지 얻게 되어 병원 신세를 졌다. 오히려 새로 시장에 당선된 사람이 행정을 개혁하며 칭송을 받았다고 하니 정말 물러날 때가 중요하다. 88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이었으며 서울시장을 역임한 고 박세직 씨의 경우는 이럴 때 좋은 교훈이 된다. 그는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1990년 서울시장에 임명되었다. 정치인이면 누구나 한 번쯤 하고 싶은 서울시장. 그런데 그는 두 달 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취임하자마자 수서 택지 비리사건이 터져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는데 자신은 책임이 없지만, 사태를 수습하려면 시민 앞에 시장으로서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결심이 서자 출근하는 길에 곧바로 총리실에 들러 사표를 내고 미련 없이 물러났다. 총리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만류했지만 나 아니어도 시장할 사람 많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선한 감동이었다. 요즘은 신선한 감동이 보기 어려워 안타깝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性인지 감수성’의 위력이 시작됐다

큰 스님이 젊은 스님과 길을 가다 개울을 만났다. 마침 개울가에는 물이 깊어 건너질 못하고 도움을 기다리는 여인이 있었다. 큰 스님은 여인의 부탁을 받고 그녀를 등에 업어 개울을 건넜다. 그리고 스님 등에 업혀 물을 건넌 여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길을 갔다. 잠시 후 젊은 스님이 큰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어찌하여 부처님 도를 닦는 스님으로서 여자를 등에 업었습니까? 그러자 큰 스님이 대답했다. 나는 이미 물을 건너자 그 여자를 등에서 내려놓았는데 너는 아직도 그 여자를 등에 업고 있느냐? 어떤 분이 요즘 성범죄에서 큰 이슈가 되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큰 스님은 성인지 감수성에서 초월했고 젊은 스님은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세간에 결정적으로 등장한 것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 여비서 성폭행사건 재판이 진행되면서다. 때마침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청문회 파동이 정점에 달할 때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대법원 판결이 나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사실은 그 속에 대단히 중요한 핵심이 들어 있었다. 성인지 감수성이 그것인데 대법원이 이것을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앞으로의 모든 형사재판, 특히 성범죄를 다루는데 절대적 존재로 떠오른 것이다. 안 전 지사는 1심에서는 위력은 존재하나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2심에서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 및 강제추행이 인정되어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그리고 마침내 9월9일 대법원은 2심의 판결을 확정 짓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성차별 없는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데 있어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했으며 앞으로 비슷한 사건은 이번 대법원 판례가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가령 안 전 지사의 수행 여비서 김모씨가 성폭행을 당하고서도 지사가 순두부 식당을 알아보라고 한 것을 이행하였고 지사 부부와 와인바에 함께 간 것 등이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답지 않다는 반론에 대해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위장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입장이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도지사 수행비서라고 하지만 별정직 지방공무원인사규정에 의하면 도지사는 아무 때고 임명, 휴직, 면직, 징계에 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 무형의 힘을 가진 존재 앞에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2차 피해를 두려워해야 할 입장에서 김씨의 행동을 봐야 한다는 것. 성인지 감수성에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어느 여대생이 중국 문화탐사 여행 중에 지도교수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여대생은 저항하지 않았고 항의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탐사여행을 마쳤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었지만 그럴 때 탐사여행은 망가져 버리고 탐사보고서에 대한 점수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탐사 보고서는 곧 학점에 반영되는 것이었다. 이 여학생이 사법당국에 문제를 제기했다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재판에서처럼 위력은 있었으나 행사되지않았다는 것으로 그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을 수도 있다. 즉시 항의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여행을 계속한 것이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이제 이와 유사한 재판에서도 양성평등의 실현 차원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어떻게 적용돼야 하는지를 보여줬다고 하겠다. 그동안은 유사한 사안에 대해 판사마다 인식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자살한 싱가포르 장관 유서

한 나라에 국가(國歌)가 네 번이나 바뀐 경우는 싱가포르가 유일할 것이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는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였고, 2차 대전 때는 일본에 점령되어 기미가요를 국가로 불렀다. 그러다 말레이시아에 통합되면서는 말레이시아 국가를 불렀고 1965년 독립하면서 국가도 전진하라. 싱가포르여!가 되었다. 그러니 국가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국가 구성원도 중국 76.8%, 말레이 13.9% 등 다양하며 공용어만 해도 중국어, 영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 복잡하다. 거기에다 종교 역시 유교,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가 엉켜 있다. 이처럼 혼란스런 국가 정체성을 똑바로 세운 사람이 싱가포르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리콴유 전 총리였다. 어떻게 그는 싱가포르를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었는가? 그 대답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986년 리콴유 총리는 자기 친구이면서 국가개발부장관으로 있던 태 치앙완이 40만 싱가포르 달러(한화 2천4백만 원) 뇌물을 받아 수사에 착수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그리고 잠시 뒤 그 개발부장관이 리콴유 총리를 찾아와 면담을 요구했다.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서 였다. 총리는 평소 신임하던 장관이었으니 해명쯤 들어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총리는 문밖에서 면담을 거절하고 돌려보냈다. 만약 개인적 정리에 이끌려 장관을 만나 해명을 듣는다면 국민의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고 수사의 공정성을 해칠 우려도 있다는 것. 그래서 총리는 면담마저 냉정히 잘라버린 것이다. 총리로부터 면담마저 거절당한 태 치앙완 장관은 그 길로 자살하고 만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유서를 남겼다. 명예를 존중하는 동양의 신사로서 나는 잘못에 대하여 가장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유서 또한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뼈 아픈 통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살한 장관의 부인은 총리에게 마지막 청원을 올렸다. 자살의 경우, 타살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경찰이 시신부검을 하게 되어 있는데 부디 이것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한 것. 그런데 리콴유 총리의 답변이 너무도 훌륭했다. 의사의 사망 진단서에 자연사라고 진단하면 부검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사는 원칙대로 사망 원인을 독약이라고 기록했다. 총리도 의사도 원칙대로 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유족들은 장례를 치른 후 싱가포르를 떠났다. 리콴유 총리는 그렇게 원칙과 공정, 정직과 검소를 자신이 직접 실천하며 싱가포르의 국가 정체성을 세워나갔다. 그리고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국가, 세계 금융의 중심지, 물류관광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도덕적으로 강한 정부가 역시 경제발전도 이룩한다는 본보기가 된 것이다. 지금 조국 법무장관 사태로 국가가 분열과 혼돈에 빠져 있다. 나라의 공정과 정의가 실종된 위기에 빠져 가고 있음도 사실이다. 왜 국민 다수가 아니오하는데 대통령은 밀어붙였고 마침내 이렇게 큰불을 번지게 했는가 이해할 수가 없다. 백성이 하늘이고, 민심이 천심이라 했는데 왜 하늘과 천심을 외면했을까? 중국 고사에서도 제갈량이 군율을 바로잡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아끼던 부하 마속의 목을 베었다는 이른바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공의로운 국가를 만드는 데는 사적인 희생, 그 결단이 필수적임을 싱가포르의 자살한 장관 유서에서 읽을 수 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비상 걸린 과학·기술자 지키기

세계2차대전 후 미국이 확보한 독일 과학자들 중에는 독일이 전쟁에서 위력을 떨친 V-2로켓 개발자 폰 브라운박사가 있었다. 그때 미국으로 압송해 온 폰 브라운박사를 심문한 사람이 첸 쉐썬 박사. 대학신문이 얼마 전 보도한 것을 보면 첸 쉐썬 박사는 중국인으로 미국 유학, 명문 MIT와 켈리포니아대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36세에 이미 미국 최고의 제트 추진체 연구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1949년 중국의 모택동정부가 들어서자 조국에 가서 봉사하고 싶다며 미국에서의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귀국을 서둘렀다. 그러자 미국 FBI는 스파이 혐의로 그를 체포해 버렸다. 모택동이 이렇게 되자 주은래 총리로 하여금 첸 쉐썬을 데려 오도록 강력히 지시하였고 결국 6ㆍ25때 중국에 잡혀있는 미군 조종사 11명과 맞교환하는 형식으로 5년 협상 끝에 결실을 보았다. 결국 그는 중국에 와서 항공우주개발의 아버지로 칭송받으며 연구 시작 15년 만에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고 유인 우주선 개발 등 미국을 바짝 뒤 쫒는 성과를 올렸다. 지금에 와서 미국이 후회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기 이름도 못쓰는 몽고제국 징기스칸이 세계정복의 영웅이 된 이야기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물론 군사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기술자들을 존중했다는 것이다. 그는 점령지에서 붙잡은 포로들 가운데 어떤 분야던 기술을 갖고 있으면 죽이지 않고 몽고로 데리고 와서 활용을 했다. 사실 유목민에서 나라를 일으킨 징기스칸으로서 기술 분야는 가장 절실한 것이었으리라.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제 역시 악명 높은 폭군으로 역사에 기록되어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분서갱유(焚書坑儒) 즉 서적을 불사르고 학자들은 땅에 묻어 죽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서적을 모두 불태운 것은 아니었다. 농업에 관한 서적, 의약을 다룬 서적, 천문서적들은 오히려 잘 보관케 했다. 말하자면 기술에 관한 것이나 과학서적은 불태우지 않고 존중했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과학 기술의 힘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다. 최근 중국이 미국을 비롯 세계의 이름 있는 고학 기술자들을 거액을 들여 스카웃에 나서자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과학자 지키기에 나섰고 미국 언론들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경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이 미국 세금으로 쌓아 올린 과학 기술을 빼내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이와 같은 기술 사냥은 미국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심상치가 않다. 중국이 우리 기업을 인수 합병하려는 것은 그 기술력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지만 지난 1월 중국 화훼이 한국법인 임직원이 소프트개발 정보를 빼내고 이직한 혐의의 항소심 재판도 깊이 눈여겨봐야 할 사항이다. 혐의를 받고 있는 임원이 1심에서는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 집행유예 8월을 받았고 항소심에서는 무죄, 그리고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국정원이 기술정보 유출에 바싹 신경을 쓰고 있지만 남은 이공계 박사나 기술인들이 기회가 되면 해외로 나가려고 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왜 그럴까? 연구 환경의 열악함과 처우, 지나친 단기 실적주의, 연구 독립성 등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이래서는 4차 산업혁명은 고사하고 당장 한일간의 경제자원 격차도 좁히기 힘들다. 역시 과학 기술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조국 파동’이 남긴 상처

스위스 14세기 초 게슬러라고 하는 독재자가 있었다.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가운데 횡포가 극심하여 시민들의 원성이 높았다. 그런 어느 날 거리 한복판에 말뚝을 세우고 그의 모자를 얹어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경의를 표하게 했다. 시민들은 게슬러가 무서워 거리를 지날 때마다 모자를 향해 절을 했는데 빌헬름 텔(영어로는 윌리암 텔)이라는 사람만은 언제나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게슬러는 그를 체포하여 처형키로 했다. 그러면서 사형을 집행하기 전 빌헬름 텔로 하여금 그의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하나 올려놓고 활을 쏘아 맞히면 살려주고 못 맞히면 죽인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 빌헬름 텔에게 걱정 말고 그렇게 하시라고 과녁대에 올라섰다. 그러자 빌헬름 텔은 독재자 게슬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활을 잡았다. 모두가 숨죽여 손에 땀을 쥐고 있는데 빌헬름 텔은 차분히 시위를 당겼다. 순간 날아간 화살은 바람을 가르고 날아가 아들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정확히 맞혀 떨어뜨렸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달려가 포옹을 했고 수많은 시민들은 박수와 환성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게슬러를 끌어내고 스위스 독립국을 세웠다. 이 전설은 1804년 독일 쉴러가 희곡으로 발표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신뢰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활 솜씨를,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깊이 신뢰했다는 것이다. 이런 신뢰가 없었다면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존재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 조국 법무장관 청문회와 기자회견, 검찰수사 등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우리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대로 무너져 버렸을 것이다. 그가 법무장관에 임명되고 안 되고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지도자들 모습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얼마나 그가 정의를 외쳤던가. 얼마나 많은 미사여구로 공정사회를 외쳤던가. 그런데 베일을 벗겨보니 너무 처참했다. 링컨 미 대통령은 모든 이가 인생의 경주에서 경쟁을 벌일 수 있도록 열린 공간과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링컨이 위대한 것은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이 말로 끝나지 않고 실천하다 죽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2017년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링컨 대통령의 연설과 같은 취지의 공정과 평등이 핵심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단어들이 가슴으로 공감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조국 법무장관은 교수 시절 모두가 용이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없다고 했다. 공정, 정의, 평등이 그들만의 것이니 개천의 개구리나 붕어 따위는 꿈도 꾸지 말라는 말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그렇다고 해도 개천의 붕어나 개구리에게 상처는 주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 상처가 너무 크다. 바로 정치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 실망, 분노 때문이다. 이걸 진보보수 진영논리로 모는 것은 잘못이다. 최소한의 인간사회의 신뢰, 양심 문제이다. 임진왜란 때 서울을 버리고 평양으로 피난갔던 선조가 다시 왜군이 가까이 오자 또 피난길에 나섰다. 그때 백성들이 평양 성문을 에워싸고 만류를 했다. 그러자 임금은 정행(停行)이라는 글을 써 붙여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피난가지 않고 평양에 남겠다는 것이다. 이 말을 믿고 백성들이 흩어지자 선조 임금은 의주로 급히 피난을 가고 말았다. 임금이 내건 정행(停行)을 믿었던 백성들은 얼마나 실망하고 분노했을까? 그렇게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는 데는 신뢰가 생명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지도자는 거울 앞에 서시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군인이었다는 것은 얼핏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아테네 군인으로서 세 번이나 전쟁에 참전했다. 특히 BC 431년부터 BC 404년에 걸쳐 있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그에게 결정적인 인생 전환점이 되었다.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를 했지만 철제 갑옷에 창을 든 보병으로 참전한 소크라테스는 전염병으로 많은 군인이 죽어갔고 시신들은 들판에 방치되었으며 시민들은 굶주림에 짐승처럼 돌변하는 장면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소크라테스는 이 참담한 비극을 아포리아(Aporia)라고 정의했다. 아포리아는 그리스어로 배가 좌초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절박한 상황을 뜻한다. 길을 잃은 캄캄한 상태 우리나라에서도 연세대학교 김상근 교수가 대한민국의 아포리아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EBS의 특강에서 이같이 주장하며 세월호 침몰사건 때 선장이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하는 것을 보고 우리의 아포리아임을 생각했다고 했다. 배안에서는 시시각각 지옥 같은 절박한 상황이 조여 오는데 어떻게 선장은 배를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탈출을 할 수 있었을까? 그 마비된 양심, 그 배신감,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정말 세월호 침몰 사고는 대한민국의 숨막히는 아포리아를 여과없이 보여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그 아포리아는 곳곳에서 도깨비 유령처럼 나타나고 있다. 조국 법무장관 후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소요, 이 역시 길 없음의 아포리아다. 사실 이 경우 길 없음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길이 있다. 검찰 수사를 받는 법무장관의 모양이 국민정서에 맞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안보환경도 그렇다. 북한 김정은이 우리 대통령을 향해 막말을 퍼부으며 단거리 발사체를 펑펑 쏘아 댄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얌전하고 미국 트럼프는 그것이 미국을 겨냥한 ICBM(장거리 미사일)이 아니라며 김정은을 좋아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동맹국 대통령으로서 취할 자세인가? 북한의 그 단거리 미사일이 미국에는 도달하지 않지만 한반도 전체가 위협이 되는 데 말이다.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로 일본은 물론 미국까지도 우려와 불만을 계속 표출하는 것도 우리 안보가 고립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일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친구는 도대체 누구인가? 경제 상태는 더욱 우려스럽다. 65세 이상의 노인 일자리를 제외하고 취업상태는 나아지질 않는다. 수출 전망은 더욱 어렵다. 강력범죄는 사람을 죽이고도 모자라 시신을 무자비하게 훼손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정치, 안보, 경제, 사회, 교육 정말 모두가 막혀 있는 아포리아인가? 대한민국의 아포리아를 지적한 김상근 교수는 아포리아 시대, 지도자는 거울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매일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오바마 전 미 대통령 역시 거울을 통해 자신은 물론 등 뒤에 비치는 미국을 이끈 지도자들의 초상을 보면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를 자문했다는 것이다. 역시 오늘 대한민국의 아포리아시대 지도자들은 거울 앞에 서서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후쿠시마원전, 태평양에 放流마라

신(神)도 도깨비도 없었다. 국가도 믿을 수 없었다. 일본의 세계적인 사진작가 후지와라 신야(藤原 新也)가 2011년 3월에 있었던 후쿠시마 쓰나미 현장을 둘러보고 절망적인 상황을 그렇게 토해 냈다. 그는 그보다 앞선 1995년의 일본 고베지진 때를 회고하며 그래도 고베 지진은 고베라는 마을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 후쿠시마 대지진은 아무것도 없고 쓰레기뿐이라고 한숨지며 정부에 대한 비판도 서슴치 않았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일본이 이기고 있다고 했는데 참혹하게 패배했고 이번 후쿠시마 지진에 대해서도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수준을 오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믿을 수 없다는 것. 얼마나 그 당시 상황이 처참했으면 같은 일본인이면서 이렇게 분노를 터뜨렸을까? 동일본대지진으로 표기되는 이 지진은 진도 9.0으로, 2004년의 인도네시아 스마트라 지진에 이어 세계 4번째 규모였으며,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원자탄의 2천700배 위력을 가진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이었다. 이 지진으로 사망자 2만명, 실종자 2천여명 등 막대한 인명손실이 있었으며 이로 인한 피난민은 47만명이나 되었다. 특히 지진의 직접 피해는 쓰나미로 가중되었는데 센다이시가 직격탄을 맞아 해변의 시가지와 산야를 초토화시켰다. 그러나 그 피해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마저 쓰나미의 직접 피해를 입게 됨으로써 해양오염이라는 세계적인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공기와 해수오염에 대한 일본측이 취한 전문적 대책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그러나 2011년 4월7일 우리나라 전역에 내린 비에서 요오드, 세슘 등이 검출되었는데 KINSC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다행이 인체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것이 공기로는 편서풍을 타고 왔으며 인근 중국은 물론 유럽에 까지도 퍼져 나가는 이동성에 유의해야 할 상황이다. 역시 이런 이유로 우리 정부는 후쿠시마원전 인근 8개현에서 잡히는 수산물 수입규제를 하고 있고 일본은 오염수치가 국제규정에 위반되는 것이 아니어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변하며 WTO에 제소까지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이 곧 원자로 냉각과정에서 나온 오염수와 지하수를 태평양으로 배출시킬 것으로 알려져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로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보도에 의하면 올해 또는 도쿄 올림픽이 끝나면 약 110만톤의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한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7개월안에 제주도 해역과 동해까지 오염이 확산될 것이라고 독일 킬 해양과학연구소는 전망했다. 국제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도 100만톤의 오염수를 방류하면 1년안에 쓰시마 난류를 타고 우리 동해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이와 같은 해수오염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해양에 까지 해당되지만 가장 인접한 우리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당장은 인체에 영향이 없다 해도 바다생물체에 축적된 오염이 결국 우리 몸 안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가? 따라서 우리는 과학적이고 팩트(FACT)에 근거한 논리로 일본환경단체는 물론 국제 환경단체와 협력하여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며 일본도 오수 처리에 대한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오수 방류는 부메랑이 되어 일본에도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1천400년전 日本이 한반도에서 치른 첫 전쟁

660년 7월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를 정복시켰지만 전후 처리가 신라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신라 입장에서는 생포한 백제 의자왕을 서라벌(경주)로 압송하여 처형을 해야하는데 당나라는 그렇지 않았다. 소정방은 의자왕을 비롯 왕자 및 신하 93명 그리고 1만2천여 백제 요인을 끌고 660년 9월3일 당나라로 떠났다. 신라는 전승국이지만 아무것도 차지 못하고 구경만 해야했다. 당나라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백제를 신라에 돌려 주지 않고 웅진도독부를 세워 의자왕의 왕자 융으로 하여금 백제 땅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러니까 친(親) 당 정권을 세운 것이다. 나아가 지금 공주 취리산에 올라 제단을 쌓고 백마를 잡아 그 피를 나누어 마시며 신라 문무왕, 백제 왕자 융, 그리고 당나라 장군 유인원이 화해와 국경 존중의 맹세를 했다. 신라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랐으나 어쩔수 없었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취리산회맹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결국 백제 땅이 중국(당)의 새로운 영토가 된 것에 일본도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백제로부터 문화를 고스란히 전수받으며 각별한 친교를 누렸는데 그 백제가 당나라 지배하에 들어 가다니.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그런데다 일본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백제의 부흥운동이 활발하게 전개 되어 200개의 많은 성(城) 들이 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부흥운동의 중심지는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 있는 주류성(周留城), 부흥군을 이끄는 지도자는 왕족 복신(福信)과 승려 도침(道琛) 그리고 장군 흑치상지 였으며 이들은 일본에 있던 왕자 풍을 모셔와 부흥 백제의 상징이 되게 함으로써 더욱 기세를 높였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한반도에서 당나라 군사를 중국으로 몰아내고 다시 백제왕국을 세울 기회라고 판단하고 663년 8월, 2만7천명의 군사를 파병했다. 그리고 이들 대규모 선단은 금강하구를 통해 사비성(부여)을 향했는데 이것은 강 양편 산과 계곡을 우군이 확보해 주지 않는 한 매우 위험한 작전이었다. 그런데 나당 연합군이 먼저 이 지형지세를 선점했으니 일본군은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다 한참 기세가 오르던 부흥군은 내분에 휩싸였다. 주도권 싸움에서 왕족 복신이 승려 출신 도침을 살해하여 부흥군 진영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부흥군의 상징이던 왕자 풍이 도침을 살해한 복신을 죽이고 고구려로 도피했고 부흥군의 최고 장군이던 흑치상지마저 진영을 버리고 당나라 유인원장군에게 항복을 했으니 부흥군은 그야말로 지리멸렬되고 말았다. 따라서 금강 양안의 안전루트를 확보하지 못한 일본군 2만7천명은 나당 연합군의 협공에 제대로 싸워 보지 못하고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8월28일 백강전투는 그렇게 끝났다. 이것이 한반도 역사상 한일중이 이땅에서 벌인 최초의 국제전이었다. 그 후에도 벌어질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의 신호탄이기도. 오늘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사면초가가 된 우리 입장에서 되새겨 볼 역사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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