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목소리 커야 출세하는 세상

M군은 축구 선수답지 않게 수줍음이 많고 말이 없다. 그런데 운동경기 중에 상대팀과 몸싸움이 붙을 때는 여느 때의 M군이 아니다. 한 번은 TV에서 그의 축구팀과 다른 팀이 경기하다 몸싸움이 벌어지는 장면이 중계되고 있었다. M군은 경기에 뛰지는 않고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몸싸움이 벌어지자 용수철이 튕기듯 쏜 살처럼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싸움 한 가운데서 동료 선수들을 거드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후 우연히 M군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네 같이 순한 사람이 그렇게 격할 때도 있는가? 하고 물었다. 마침 옆에 있던 다른 선수가 그렇게 해야 팀 정신이 강한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감독이? 구단주가? 그들 눈에 팀 정신이 강한 선수로 보이려고 그렇게 했다는 뜻이다. 대학교수로 있다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B의원도 비슷한 경우다. 그 역시 TV 토론 같은 때 패널로 출연해서는 차분한 논리로 학자적 식견을 잘 보여 주었었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고서는 그런 논리나 식견은 어디로 내팽개치고 투사처럼 행동한다. 언어도 거칠고 논리도 없다. 목소리가 커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를 아끼던 사람들 입에서 국회의원 되더니 사람 변했네 소리가 자연스레 나오는 것은 물론이다. 그 역시 관중보다는 감독이나 구단주로부터 충성심 있다는 평을 들어야 하는 M군처럼 국민 보다는 그 정당의 대주주 눈에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변질을 한 것일까? 이처럼 우리 조직문화가 중도에 익숙지 못하고 강경파가 득세하는 현실을 우리의 계절 때문으로 풀이하는 사람도 있다. 추위와 더위의 중간 역할을 하는 봄과 가을이 너무 짧고 여름과 겨울로 우리의 네 계절이 양분된 데서 그 원인을 찾는 것이다. 서울 특파원으로 오래 근무한 일본 공동 통신의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는 몇 년 전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책을 썼는데 한국의 봄이 바로 여름으로 뛰어가고, 가을 역시 짧게 끝나며 겨울이 되듯, 한국인은 1을 얻으면 2가 아니라 5, 10을 잡으려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중간은 없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공감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계절이 주는 조직문화를 그 나름 관찰한 것이 이채롭다. 그래서 우리의 계절이 그렇게 중간이 짧고 더위와 추위, 두 계절로 양분되듯이 정치 투쟁이나 노동운동도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 로 나뉘고, 중도는 설 자리가 없는지 모른다. 오히려 중도는 기회주의자로 매도되고 국회의원 선거 때는 공천도 못 받는 신세가 되는 것이 우리 현실이 아닌가. 사실 처세하기는 강경노선에 서기 쉽다. 목소리만 크게 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도는 처세하기가 매우 어렵다. 중도는 원칙의 포기가 아니며 원칙에서 합리적인 공간과 시간을 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강경파가 주도하는 것 같지만 결국 용기 있는 중도파가 역사를 이끈다는 사실을 수없이 보아 왔다. 진보든, 보수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는 강경파보다 중도의 자리가 넓어져야 하고 중도의 목소리가 커져야 한다. 용기 있는 중도의 목소리를 이 짧은 가을 기대해 본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당직 士兵’의 자존심

광주지방법원에서는 2년 넘게 전두환 전(前)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계속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2017년 전 전(前) 대통령이 발간한 자서전에서 시작됐다. 그는 이 책에서 5ㆍ18 광주 민주항쟁 때 군 헬기가 시위대를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다는 광주 조비오 신부의 주장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로 반박했는데 조비오 신부 유가족이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 죄로 전씨를 고소한 것. 조비오 신부는 1989년 5ㆍ18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와 헬기 발사를 목격했다고 진술했었다. 이후 법정에서 이 증언이 전씨 측 주장대로 거짓말인지, 아니면 정말 헬기가 기관총을 발사했는지 관계자들의 증언이 계속됐고 문제의 전일빌딩 벽에 있는 탄흔 감정까지 있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그러니까 재판의 핵심은 거짓말이냐, 사실이냐이다. 조비오 신부의 유가족 측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도 거짓말쟁이라고 한 전씨의 주장이 평생을 성직자로 살아온 분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것. 이렇듯 거짓말이라는 것은 이 재판의 핵심이지만 또한 인간사회에서도 가장 기피해야 할 덕목이다. 민주주의의 어머니라고 자부하는 영국 의회에서 제일 금기시하는 것도 상대방을 공격할 때 거짓말쟁이(Liar)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다. 옛날에는 이런 단어를 쓰면 결투를 신청할 정도였다. 그만큼 영국 정치에서 거짓말은 터부시 되었고 정직을 생명처럼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윈스턴 처칠이 독일과의 전쟁으로 영국이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위기에서 수상이 되었을 때 나는 나라를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치겠다는 의회 연설에 영국국민은 큰 용기와 희망을 품을 수 있었고 전쟁에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었다. 말에 거짓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연설에 우리 국민은 얼마나 용기와 희망을 얻고 위로를 받을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그의 아들 휴가 미복귀 의혹을 폭로한 소위 당직 사병 현모씨(26)를 속칭 이웃집 아저씨라는 표현을 써가며 가짜 뉴스로 몰고 갔었다. 현씨는 추 장관 아들 서모씨와 같은 카투사 부대에 근무했으며, 문제의 2017년 6월25일 당직 근무를 서다 부대에 복귀하지 않은 서씨에게 부대 복귀를 독촉한 것을 폭로한 것인 데 추 장관 측은 서씨는 현씨와 통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의혹을 제기한 현씨를 거짓말쟁이로 낙인찍은 것. 현씨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가는 데는 민주당 황희 의원도 가세했지만, 그는 현씨에게 사과했고 현씨도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추 장관 등은 추석 연휴까지 기다려도 사과가 없어 고발을 통해 자신이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것. 당직사병 현씨가 이렇게 굳은 결심을 한 것은 서울동부지검이 서 일병 관련사건을 불기소 처분을 했지만, 자신의 당직 근무일에 추 장관의 아들에게 부대복귀 하라는 전화를 한 사실, 그래서 추 장관의 아들로부터 최모 보좌관이 전화를 받고 지원 장교 김모 대위에게 휴가처리 여부를 문의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결국당직 사병현모씨의 주장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이 검찰에서 인정해 준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아(自我)의 정체성을 잃고 산다고 걱정하는 소리가 높은 데 현씨가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거대한 권력 앞에 섰다는 것이 정말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거짓말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게 이 가을 윤동주 시인이 읊은 청명한 서시 한 줄을 권하고 싶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秋史가 귀양살이 때 걷던 길을 걸으며

얼마 전 가까운 친구와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다. 제주도 나들이야 여러 번 있었지만, 이번에는 대정읍에 있는 추사 김정희 유배지를 돌아보며 몹시도 마음이 무거웠다. 추사가 귀양살이 9년 동안 수없이 거닐었을 언덕길을 걸으며 걸음마다 맺혔을 그의 한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니 그 아픔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이되는 것 같았다.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정치는 무서운 것이란 생각도. 마패를 쥔 암행어사가 어사 출두요!하고 벼락같이 나타나면 산천초목도 떨었다고 한다. 국보 제180호 세한도(歲寒圖)를 그렸으며 추사체(秋史體)라는 독창적인 글씨체를 통해 동양 최고의 서예가로 이름을 떨친 김정희(金正喜)도 한 때 암행어사 활동을 했다. 강직한 성품의 추사 김정희는 충청도를 암행하던 중 지금의 서천군 비인현감으로 있던 김우영의 비위 사실을 적발했다. 김우영은 요즘 정치로 말하면 집권 여당, 그러니까 안동 김씨 세도가의 인물이었다. 여기서 김정희가 적당히 눈을 감아주었으면 앞으로 닥쳐올 고난의 길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회유와 압력도 있었을 것인데 김정희는 그를 파직시켜버렸다. 그렇게 암행어사로서 정의롭게 권한을 행사했는데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1840년(헌종 6년) 6월 김정희는 동지부사로 청나라에 가려고 여장을 꾸렸다. 그리고 막 출발하려는데 난데없이 의금부에서 나졸들이 들이닥쳐 그를 포박해 갔다. 그리고 혹독한 국문이 시작됐다. 10년 전 있었던 윤상도 옥사(獄事)에 관여한 죄를 자백하라는 것이다. 그 시절 고문은 가혹했고, 정치적 사건은 사실 여부를 떠나 무조건 결론을 내놓고 엮어 지는 것이어서 김정희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윤상도 옥사란 윤상도라는 선비가 1830년 안동 김씨 세도를 질타하는 상소를 순조 임금께 올린 것이 말썽이 되어 처벌받은 사건이다. 그런데 순조 임금이 세상을 떠나고 헌종이 즉위하여 안동김씨 출신의 순원왕후가 수렴청정하게 되자 안동김씨 김우영이 10년 전 문제를 꺼내 김정희를 탄핵한 것이다. 윤상도가 올린 상소의 거친 표현 등이 추사 김정희가 부추겼기 때문이며 뒤에서 조종했다는 것이 탄핵의 요지이다. 탄핵을 올린 김우영은 바로 김정희가 암행어사 시절 비위사실을 적발하여 파직시킨 인물. 그러니까 김우영은 안동 김씨 세도의 그늘에서 추사 김정희에 대한 정치적 보복의 칼을 갈아 온 셈이다. 김정희는 국문이 얼마나 혹독했던지 죽음 직전까지 이르렀는데 우의정으로 있던 조인영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주도 귀양살이를 해야 했는데 무려 9년이라는 긴 세월, 유배지 제주도에서 죽은 듯 외롭게 보내야 했다. 그 고난 속에 탄생한 것이 국보 제180호 세한도가 아닌가. 초라한 집 한 채, 보기만 해도 찬바람이 피부를 할퀼 것 같은 추위 속에 쓸쓸히 서 있는 몇 그루 고목(古木), 이것이 세한도다. 마치 그 찬바람에 떠는 고목이 추사 김정희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사실 그는 제주도 귀양살이를 하는 동안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고, 친구마저 세상을 떠나는 슬픔을 맞이했다. 그러면서도 9년이라는 긴 세월, 그에 대한 정치적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안타까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정치는 상대를 후벼 파고, 진영을 갈라 내 편은 무조건 선(善)이고, 반대편은 악(惡)이라는 논리로 피의 굿판을 벌이는 것이 아닌가. 추사 김정희처럼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 세한도를 그리는 사람은 없어야 하는데 제2, 제3의 김정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무서운 이웃

개팔자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사람만 아니라 개에게도 팔자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요즘 북한에서는 애완견을 모두 잡아다 살 처분하고 있다는 보도인데 우리들 애완견은 그런 걱정 없이 사랑을 받고 있으니 좋은 팔자가 아닌가. 김정은이 애완견 사육까지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것에 대한 자본주의 바람이 북한 가정에 스며드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있고 심각한 식량난에 개까지 키우는 것은 낭비라는 판단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우리 드라마가 암암리에 북쪽에 들어가면서 애완견을 키우는 게 평양 가정에서 유행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국에서는 먹방이 서리를 맞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먹방이 중국 공산당의 표적이 된 것은 지난 8월11일 시진핑 국가주석이 음식낭비 현상을 지적하면서 시작됐는데 중국 공산당 전국인민대회(全人大)는 남는 음식(殘飯)을 법으로 막는 절차에 들어갔다. 먹방 단속도 시작됐다. 전인대(全人大)는 시진핑 말 한마디에 즉시 행동에 나섰고 거대 중국 대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것은 중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으로 신종 코로나를 세상에 알린 젊은 의사 리원량, 우한 현지에서 마구잡이로 환자들이 죽어 가는 장면들을 취재하던 천추스, 팡빈, 리쩌화 등 소위 시민기자 3인방의 최후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보면, 그리고 홍콩의 끈질긴 자유 투쟁을 끝내 제압하는 과정을 보면 중국 공산당이 무서움을 넘어 공포스럽다. 젊은 의사 리원량은 신종 코로나를 발설했다가 괴담 유포자로 공안에 체포돼 고초를 겪었으며 결국 코로나에 목숨을 잃었다. 지난주 그의 부인은 아기를 낳았는데 남편 리원량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34세의 젊은 변호사로 시민 기자의 한 사람인 천추스 역시 유튜브를 통해 우한 코로나 실태를 세상에 알리다 지난 2월 6일부터 실종됐다고 CNN 등 외신이 전하고 있다. 그는 1월30일 그의 SNS에 올린 글에서 무섭다. 내 앞에는 바이러스가 있고 내 뒤에는 공안이 있다고 실토하여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그는 재앙이 있는 전선으로 달려가지 않는다면 내가 무슨 기자냐?며 거침없이 현장을 누볐고 마침내 2월7일 새벽 우한의 한 병원에 취재하러 갔다가 행방불명 된 것이다. 한 때 사명감도 있었으나 지난 3월 후베이성 정부, 공안, 우한시 공산당이 천추스를 공공질서 문란죄로 재판에 회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게 했다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의 SNS 계정도 폐쇄 조치했음은 물론이다. 리쩌화 시민기자 역시 중국이 우한의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며 맹열한 활동을 하다 행방불명 됐다가 다시 등장했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의 태도를 돌변하여 중국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며 중국 정부를 지지하고 나서 주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행방불명 된 기간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말을 바꿨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 무서운 것 아닐까. 더 무서운 것은 사법부가 자유 민주주의의 원칙인 완전 독립이 아니라 공산당 지휘 아래에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여기에서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 받겠는가. 밥상의 남는 음식까지 통제할 수 있고 하루아침에 먹방문을 닫게 하는 나라, 진실을 말하는 기자가 행방불명되는 나라, 그리고 북한처럼 애완견까지 통제되는 나라. 정말 우리는 무서운 이웃을 옆에 두고 사는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정치인 아버지와 아들

보 버그달 병장은 2014년 아프간에서 탈레반에게 포로로 잡힌 지 5년 만에 석방되어 미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은 버그달 병장을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있던 탈레반 다섯 명을 석방하는 것과 맞바꾸었다. 버그달 병장의 귀환은 미국 정부의 비밀 교섭의 성과였다. 그러나 버그달 아버지의 숨은 이야기가 공개되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큰 화제가 되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로서 아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정부는 정부이고 아버지는 아버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탈레반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며 남자는 턱수염을 길게 기른다는 것을 알고 자신도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수염이 길어지자 자신의 동영상을 유튜브 등 SNS에 띄워 탈레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당신들 문화를 존중한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는 아프간어를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아프간 언어로 그들에게 친절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아버지의 아들 구출작전은 마침내 탈레반에게도 호감을 주었고 미 정부의 비밀 교섭에 큰 힘을 보탰다. 또 하나의 아버지와 아들이야기이다 웰 컴 투 비디오라는 세계 최대 아동 성(性) 착취물 사이트를 운영하던 손모씨(24)는 1년 6개월이라는 감옥 생활을 마치고 지난 5월 석방됐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형기 만료된 아들 손씨를 검찰에 고소했다. 아들이 가상화폐 계좌를 개설해 범죄 수익금을 거래했고 그 돈으로 입원 중인 할머니의 치료비를 지불하여 할머니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내용이었다. 왜 아버지는 아들을 처벌해 달라고 고소를 했을까. 여기에는 아들을 위한 고차원의 전략이 있었다. 아들 손씨는 2018년 미국 연방 배심원에서 성범죄 등 6개의 혐의로 한국 사법당국에 송환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만약 손씨가 미국에 송환되어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최대 20년의 징역형과 50만 달러의 벌금을 내야 한다. 평생 교도소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미국의 형량이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5년 징역에 3천만원 벌금이 전부이다.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인 것이다. 민주당 김홍걸 의원은 세상이 다 아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그는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와 서울 강남에 아파트 2채 등, 4채의 주택을 가지고 있는데 아파트 한 채는 매각하겠다고 공언했었다. 그런데 뒤늦게 밝혀진 것은 그 한 채가 매매를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아들에게 증여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어린 아들의 미래를 위해 욕을 먹더라도 고육지책(苦肉之策)을 선택한 것일까. 더욱 국민에게 충격을 준 것은 재산신고에서 10억원을 누락한 것이다. 지난 총선 때 58억원으로 재산신고를 했는데 실제로는 67억7천만원이 된 것이다. 그래서 그의 총재산은 그동안 특별한 소득도 없이 100억원대에 이른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라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두고 호부견자(虎父犬子)라는 평도 나왔다. 즉, 민주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아버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욕 먹이지 말라는 것이다. 정말 아버지와 아들은 무엇이고 어떤 관계이어야 하는가. 탈레반으로부터 아들을 구하고자 이슬람 율법에 따랐던 아버지, 미국 송환을 막고자 아들을 고발한 아버지, 대통령을 아버지로 두어 그 명예를 누리면서 어울리지 않는 처신에 눈총을 받는 아들. 역시 가장 조심해야 할 관계는 정치인 아버지의 명예를 지켜야 할 정치인 아들인 것 같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변 사또의 性인지 의식

남원 군수 변 사또는 요즘 말로 성(性)인지 의식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그는 매관매직(賣官賣職)이 횡행하던 시절, 어렵게 남원 군수 자리를 차지했으니 천하를 얻은 기분이었고 두려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과 도전을 물리치고 목표하던 경지에 오르게 되면 그 성취감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례가 변 사또에게서 나타난 것. 춘향이를 불러 수청을 들라 하면 좋아하겠지 기생 딸의 신분 주제에 거부할 처지도 아니고 이것이 변 사또의 성인지 의식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한양에 간 이 도령을 사랑하기 때문에 춘향이가 변 사또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변 사또의 그릇된 성인지 의식이 또다시 발생한다. 하찮은 신분의 여자에게 무슨 사랑 같은 것이 존재하겠느냐는 의식이 그것이다. 그러나 춘향이는 사랑이란 권력으로도 빼앗길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옥에 갇혀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그 사랑의 가치를 끝내 지켰다. 몇 년 전 한 지방자치 단체장의 일탈이 큰 충격을 주었다. 그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군수 한 번 하는 게 소원이었다. 군수 그것은 그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다. 그것이 그가 사는 인생의 유일한 가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자리에 오르게 되자 천하를 얻은 듯 기쁨에 넘쳤다. 어느 날 그는 보건소에 들렀다가 예쁜 여직원에 눈이 팔려 군수 비서실로 발령을 냈다. 관계 국장들이 그 여직원은 보건직이라 안된다고 했는데도 파견근무라는 편법을 동원해 발령을 내고 말았다. 무리수를 강행한 것이다. 군수가 하는 일에 누가 감히 반대를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여직원과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 결국 잘못된 인생 가치관이 그릇된 공직 인지 왜곡을 가져왔고 그것은 또한 성인지 왜곡을 동반했으며 그 인생 종말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춘향이에 대한 성인지 왜곡으로 인생을 망친 변 사또처럼. 그런데 이와 같은 성 인지 왜곡은 시대가 몇 번 바뀌었어도 변하지 않고 있다. 최근 뉴질랜드에 근무하던 우리 외교관의 성추행 문제가 그런 것을 말해 준다. 우리 국회 중진 의원은 같은 남자끼리 엉덩이 한 번 툭툭 치는 사이라며 사건을 과소평가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자 해명을 했지만 바로 이런 것이 성인지 왜곡인 것이다. 아무리 남자끼리라 해도 남자든, 여자든 성추행은 성추행이다. 특히 뉴질랜드는 동성애 문화가 존재하는 하는 만큼 그곳에 주재하는 외교관이라면 그런 의식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더욱이 피해자라고 하는 뉴질랜드 남성은 한국 외교부의 조사과정이 부당했다며 공정하고 정당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고 뉴질랜드 총리까지 우리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가 하면 부산의 어떤 시의원은 식당 여직원 어깨에 손을 얹는 등 성추행을 한 협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있고 민주당은 그를 제명 처분했다. 그 역시 성추행이 아니고 격려하는 뜻으로 어깨를 한번 잡았다고 변명을 했다. 역시 성인지 왜곡이다. 어깨 한 번 잡은 것, 엉덩이 한 번 툭 친 것이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높은 분들의 성인지 의식의 왜곡이 결국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그리고 최근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부끄러운 자화상 시리즈를 만들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영끌이’ 30代들의 응어리

세계 석유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국적 석유재벌 쉘(SHELL)의 창업자 마커스 사무엘은 1870년대 일본 땅에 첫발을 들여 놓았다. 일본이 막 개방을 한 때여서 미지의 땅에 무엇인가를 찾아보겠다는 뜻에서 영국의 부모 곁을 떠난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쇼난 이라고 하는 지방의 바닷가에서 어촌 사람들이 조개를 잡아 속 살 만 그릇에 담고 조개껍데기는 백사장에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문득 그 조개껍데기에서 희망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래 저 조개껍데기를 가공하여 단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즉시 서둘러 조개껍데기로 단추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 단추들을 영국에 보내 판매하게 했는데 불티나게 팔렸다. 조개껍데기 단추로 돈을 벌게 된 마커스 사무엘은 일본에서 마커스 사무엘이라는 상회를 차리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때 그의 나이 25세. 그러면서 그는 석유를 들여와 일본과 중국에 팔아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중동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석유를 운반해 올 때 큰 드럼통 같은 용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매우 불편을 겪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고민하던 사무엘은 화물선을 통째로 석유를 채워 운반하는 것을 고안했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유조선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세계 최대의 석유 왕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20대에서 30대에 이루어냈다는 것이다. 미지의 땅 일본에 건너온 것이 큰 도전이었고 어부들이 내버린 조개껍데기를 부(富)의 발판으로 삼았으며 통째로 석유를 싣는 유조선을 만들어낸 것 역시 도전이었다. 공자가 30대를 일컬어 이립(而立)이라 한 것도 30대가 가진 폭발적 에너지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30대는 대학교 학번으로 치면 1998~2010학번들이고, 수능시험을 사회탐구영역과 과학탐구영역을 동시에 치른 세대이다. 결혼 후 막 육아의 짐을 짊어지기 시작했고 직장에서는 대리급이거나 주임급으로 밤새워 일해도 피곤을 모를 만큼 왕성한 세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은 30대들을 매우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마커스 사무엘이 30대에 폭발했던 그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우리 젊은이들은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주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노인 일자리는 늘었으나, 30대 일자리는 4만 7천 개 감소했다. 당장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는데 사무엘처럼 조개껍데기에서 부(富)를 창출한 도전 정신이 생겨날까. 정치와 공정에 대한 불신이 큰 30대. 당장 급한 것이 주택 문제이다. 자고 나면 바뀌는 부동산 정책은 젊은 세대들에게 공포, 그것이다. 금 수저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수도권에서 내 아파트를 마련한다는 것은 절망에 가깝다. 세월이 가면 기회가 오겠지 했는데 세월이 갈수록 내 집 마련은 더 요원해진다. 그래서 퇴직 연금 깨고, 신용대출 받고, 양가 부모 도움받고 할 수 있는 것 모두를 그러모아 집을 장만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일생 내 집 가질 기회가 없다는 공포가 사로잡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을 일컬어 영 끌이라고 하는데 영혼까지 끌어 모은다는 뜻이다. 지난주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은 법인 등이 내 놓은 것(아파트)을 30대가 영끌 해서 샀다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 장관은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사는 이 딱한 현실을 알고서 하는 말일까. 시무7조라는 상소문 형식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글이 큰 반응을 보여 화제인데 글을 쓴 사람이 바로 30대 가장이라는 사실이 우리 30대들의 응어리를 잘 말해주는 것 아닐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국치일에 생각하는 ‘경찰권’ <國恥日>

구한말 총리대신 이완용은 1909년 12월22일, 서울 명동 성당에서 베르기 국왕 추도식에 참석하고 나오다 이재명 의사의 습격을 받고 상처를 입었다. 겨울이어서 두꺼운 외투를 입어 상처만 입고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그는 이 충격으로 이듬해 봄 서울을 떠나 충남 온양에서 장시간 요양에 들어갔다. 그러나 6월에 이완용은 뜻하지 않은 방문객을 맞이한다. 통감부에서 내려온 오꾸라 비서관이다. 그는 이완용에게 대한제국의 경찰권을 일본에 이양한다는 조서를 내밀며 서명을 강요했다. 이완용은 아무리 친일파 매국노 소리를 들어도 경찰권을 갑자기 내놓으라는 일본에 대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보다시피 요양 중이고 박제순 총리대신이 정무를 포괄하고 있으니 그와 상의하라며 완강히 버티었다. 그러자 오꾸라는 이완용의 방을 나와 서울 통감부에 전보를 보내 이완용의 후속조치에 대한 훈령을 요구했다. 통감부에서 곧 연락이 왔다. 새로 부임하는 데라우치 통감의 뜻이라고 이완용에게 말하라는 것이다. 데라우치(寺內正毅)는 초대 조선총독을 거친 육군 대장으로 일본 총리를 지낸 거물이며 강경파였다. 이완용도 데라우치라는 말에 두려움을 느껴 오꾸라 비서관이 내민 경찰권 이양에 대한 조서에 서명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1910년 6월24일 오후 8시 대한제국 경찰권을 일본 통감부에 이양하는 조인식이 거행됐다. (山邊建太郞 日韓 합병小史 참고) 경찰권을 빼앗은 일본은 순사(巡査)라고 부르는 경찰을 전국에 배치, 철저한 국민 감시와 탄압에 들어갔고 그래서 우는 아이에게 순사온다고 하면 울음을 그치게 할 정도의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8월29일 강압적으로 한일 합방을 실현한 것이다. 그러니까 경찰권을 서둘러 빼앗은 것도 한일 합방을 위한 정지작업의 하나였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1910년 8월29일 그래서 우리는 이날을 국치일(國恥日)로 정하였고 110주년을 맞는다. 합방에 앞서 일본이 우리의 국권을 빼앗은 것이 경찰권뿐만 아니지만 실제로 강탈의 도구로 쓴 것이 경찰권이었다. 우리나라가 국권을 회복하고도 경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해 왔다. 공공질서의 수호자였고 6ㆍ25때는 수많은 희생을 치르기도 했다. 반면 우리의 권력은 경찰을 본연의 임무에서 권력 보위의 도구로 악용한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 자유당 정권하에서 빚어진 3ㆍ15 부정 선거 개입을 비롯해 사찰, 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남영동 대공분실, 부천 성고문 사건 등 그 불명예스런 행적은 끝이 없다. 최근에도 울산시장 선거개입의혹이 수사 중이거나 기소되기도 했으며 소위 드루킹 관련자들의 불법 댓글 작업에 대한 경찰의 수사기법이 명쾌한 공감을 얻지 못하는 등 사례들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제 검ㆍ경 수사권이 새롭게 조정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관련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도 국회를 통과했다. 그야말로 지금까지의 검경 관계가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엄청나게 그 영역이 넓어졌고 그 권한도 막강해질 것이다. 과연 우리 경찰이 이 막강해진 영역을 정치권력에 흔들리지 않고 민주경찰을 지향해 나갈 것인가. 과거의 모습으로 회귀하지는 않을지.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볼 뿐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일기예보만 탓하랴

누가 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일까?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븐 호킹을 꼽는데 분야에 따라 스티븐 호킹을 꼽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천재적인 물리학자 호킹은 희귀병인 루게릭병으로 50여 년을 누워서 뒤틀린 육체와 싸워야 했다. 그러면서도 과학계에 불후의 업적을 남긴 호킹 박사는 2018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생전에 인류의 가장 큰 위기로 세 가지를 경고했다. 첫째는 소행성의 지구 충돌(Asteroid Crash)이다. 우리 지구에 위협을 줄 수 있는 행성은 2천84개. 사실 이 땅에서 공룡이 멸종된 것도 소행성의 충돌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중생대 시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여 화산 활동으로 인한 재와 먼지가 지구를 뒤덮었고, 그로 하여 빙하기가 도래해 그에 적응을 못 한 공룡은 멸종했다는 것이다. 호킹 박사가 경고한 두 번째 위기는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Pandemic)이다. 이미 인류는 유럽 인구의 30%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페스트나 1918년 스페인 독감을 경험했다. 특히 스페인 독감은 전 세계 5억명이 감염되어 최소 1천700만명에서 최대 5천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는 세계대전 때의 사망자를 능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14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우리의 인구를 생각하면 엄청난 희생을 당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다. 코로나 방역 모범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도 1만4천여명이 확진 상태고 사망자도 3백 명을 넘었다. 세계적으로는 2천만명 이상이 감염돼 75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이와 같은 인명피해 말고도 세계 경제를 크게 위축시켰고 우리 사회생활 역시 비대면(Untact) 체제로 급속히 전환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코로나19의 불을 끄는 백신이 나온다 해도 또 다른 전염병 바이러스가 언젠가 도전해 올 것이라는 것이다. 호킹 박사가 인류생존을 위협하는 세 번째 경고 중 마지막 것은 기후 변화(Climate Change). 기후변화하면 지구 온난화, 온실 가스 배출, 탄소 배출량 등의 단어가 우리 귀에 익숙하지만 실제로는 실감을 못 하는 경향이 있다. 환경운동가 앨 고어 전 미 부통령은 이와 같은 원인의 총체적 위기를 설명하면서 1년에 미국 코로나도 강 6개가 불어 바다 수면이 높아져 머지않아 중국 상해가 물에 잠기고 이 지역 2천만명이 피해를 당할 것이며, 미국은 플로리다 주가 사라지고 덴마크, 네덜란드 등 여러 나라가 물속에 빠져 세계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징조들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어 북극 얼음이 녹아 북극곰의 생존을 위협하고 유럽에 가공할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사막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2019년 UN 기후변화총회 발표에 의하면 기후변화 대응지수에서 61개 대상국 중 58위를 차지했고 탄소 배출량은 세계 7위나 되고 있다. 지구를 지키는 일에 낙제점수를 받는 것이다. 정말 2020년 우리나라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재난을 맛보고 있다. 코로나19가 그렇고 기록적인 장마와 폭우, 태풍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 있음이 그렇다. 특히 이번 비 피해를 두고 일기예보를 하는 기상청이나 댐 관리를 하는 수자원공사를 원망하기도 하는 데 중요한 것은 기후환경에 대한 우리의 각성이 아닐까? 변평섭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다시 불붙은 세종시 천도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2004년 국정감사장에서 의원들로부터 행정수도를 세종시로 옮기는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서울시 예산을 지원해서 라도 수도 이전을 막겠다. 차라리 휴전선이 있는 DMZ로 옮기면 몰라도그는 대통령이 되고도 세종시의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했지만 이미 대세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고 세종시는 탄생했고 이제는 대한민국 행정기능의 70%가 작동하는 행정수도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허허벌판에 세워진 세종시는 이제 인구가 30만 명을 뛰어넘어 국회의원도 2명이나 배출했다. 모든 도시기능이 스마트화되고 호수공원과 수목원의 과감한 배치로 세계 20대 명품도시 반열에 올랐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세종시 전부는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과연 세종시로 서울 인구의 과밀화가 해소되었는가. 지난해 말 통계를 보면 세종시에 유입된 인구는 62.4%가 대전, 충남ㆍ북에서 들어온 것이고 서울, 경기도 등 수도권 인구 유입은 5만4천600여 명으로 26.4%에 불과했다. 그래서 세종시 건설에 엄청난 세금을 쏟아 부었지만 그것이 수도권 인구분산에서는 실패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행정수행은 능률적인가. 여기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중요한 정책 이슈가 여전히 서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실이 있고 총리공관이 세종시에 있지만 총리가 세종시에서 집무를 한 날을 꼽으라면 거의 기억이 나질 않을 정도다. 그러니 청와대나 총리가 주재하는 회의와 보고는 서울에서 행해지고 각 부처 장ㆍ차관과 고위 공무원들은 주로 서울에 머물러야 한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원회가 열릴 때는 각 부처 실무자들까지 모두 서울로 올라간다. 이런 날 국회 로비는 각 부처에서 올라온 공무원들이 의자도 없어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그래서 고속도로에 버리는 돈(출장비)이 몇백억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고 서울로 출장 간 공무원과 세종 청사에 남아 있는 공무원 사이에 카톡으로 업무 연락을 하는 바람에 카톡 행정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비능률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도 이런 불합리하고 낭비적인 정부 운용이 계속돼야 하는가.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 또는 자녀 교육 때문에 주말 기러기 부부가 되는 공무원도 많다. 따라서 이 미완성의 세종시를 완성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청와대와 국회를 통째로 세종시로 옮기자는 주장이 민주당에서 공론화 되면서 집값 파동의 출구전략아니냐는 비난을 받지만 사실은 이것이 정답이다. 기왕 시작한 세종시인데 완성을 시켜야 한다. 그것은 행정력과 혈세의 낭비를 막는 효과뿐 아니라 국토의 균형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이 때문에 야당에서도 원칙적으로 동의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처럼 워싱턴이 정치ㆍ행정의 중심으로, 뉴욕이 국제 금융과 경제 중심역할을 하듯 그렇게 지역균형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헌법상의 문제, 막대한 재정 부담, 국민적 합의 등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따라서 우선 국회부터 옮긴다면 행정력과 재정의 낭비를 막을 수 있고 세종시는 외로운 공무원의 섬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검찰과 ‘자가 면역질환’

지난 5월10일, 이란 해군 함정이 훈련 중인 아라비아해 오만만에서 자기 나라의 해군 함정에서 발사한 미사일을 맞고 19명이 죽고 15명이 다치는 참사가 빚어졌다. 미사일의 레이더 오작동이 원인이다. 이와 같은 사고는 올해 1월에도 있었다. 이란의 테헤란 공항을 이륙한 우크라이나 항공기를 적기로 오인,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로 인해 민간인 176명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레이더가 오작동을 일으키면 적과 아군을 구별 못 하고 엄청난 참사를 빚어낸다. 우리 몸도 그렇다. 레이더가 오작동하여 아군을 적군으로 공격하듯 우리 몸을 지켜 주는 면역세포에 이상이 생기면 건강한 세포를 적이 침투한 것으로 오판, 내 면역세포가 내 몸을 공격하는 것이다. 자가 면역질환이라는 것인데 정상 세포를 바이러스처럼 인식하여 끊임없이 공격을 가하여 조직을 크게 손상시킨다. 현대 의학에서도 아직은 뾰족한 치료 방법이 없다. 류머티즘이 대표적 질환인데 스테로이드 같은 치료법이 있으나 일시적 증상완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서 음식이나 식품을 통해 이상 세포나 손상된 세포를 정상세포로 교체하는 치료법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어쨌든 아군을 적군으로 공격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고 비극적이다. 아군 함정을 적의 함정으로 오인하여 미사일을 발사하고, 정상 세포를 적(바이러스)으로 인식하고 공격, 오히려 인체를 망가뜨리는 자가 면역질환 그런데 이런 현상이 우리 검찰 시스템에도 일어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성윤 서울 중앙지검장 간의 갈등은 이미 세간에 회자 된 지 오래다. 어떻게 검찰조직에서 이런 갈등이 외부에까지 퍼져 나갈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더니 마침내 세련되지 않은 장면이 연출됐다. 정진웅 부장검사가 지난주 한동훈 검사장의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 부장검사는 채널A 이모기자와 한 검사장의 이른바 검언유착 혐의를 수사하고 있어 한 검사장 휴대전화의 유심 칩을 압수하러 간 것. 그런데 한 검사장의 휴대전화 압수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이때 정 부장이 다쳤다며 병원 응급실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등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한 검사장은 정 부장검사를 독직폭행 혐의로 고소를 하는 한편 그에 대한 감찰을 요구했다. 물론 정 부장검사도 한 검사장을 무고 및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시골 파출소에서도 보기 어려운 모습이 이 나라 최고 엘리트 조직이라는 검찰 간부들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다. 서울고등검찰청은 한 검사장을 불러 조사를 한데 이어 정 부장검사에 대한 조사도 착수했다. 이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곱지가 않다. 앞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장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는데, 이렇게 조급하게 서둘러야 할 절박한 이유가 무엇인지, 여기에 정치적 변수는 없었는지 쉽게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라는 것이 검찰의 기소권 남용을 견제하려고 검찰 스스로 만든 제도다. 비록 구속력은 없지만 거기에서 나온 결론은 국민의 객관적 판단이라는 데서 적어도 최소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정당한 사유의 설명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기 몸을 공격하여 자기 조직을 망가지게 하는 자가 면역질환 같아 민망하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디지털 교도소

독일의 18세기 위대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의 시계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 아침 5시에 일어나 홍차 한 잔을 마시는 것에서부터 9시에 집필, 오후 3시에 산책 나서는 것까지 1분1초가 정확했다. 그리하여 칸트에게 주어진 별명이 인간 시계. 오후 3시30분 보리수나무 옆을 회색 코트에 지팡이를 짚고 칸트가 지나가면 이웃 사람들이 시계를 거기에 맞출 정도였으니 그의 시간관념은 짐작할만하다. 그런데 이웃 사람들이 칸트의 움직임에 따라 시곗바늘을 돌린 것은 아날로그 시계여서 가능하다. 옛날 시계는 그렇게 바늘이 계속 움직여 시간을 나타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계와 함께 산 세대를 아날로그 시대라고 한다. 이처럼, 아날로그와 디지털 그 차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시계다. 요즘은 거의 숫자가 자판에 뜨는 디지털시계지만 사람들의 생활 속에 이제 아날로그는 거의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과연 아날로그 시대는 끝났고 디지털 시대가 인간 의식을 지배하는가. 공장에서 생산되어 아직 판매되지 않은 일본 자동차 4대의 모델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어떤 차가 가장 성능이 뛰어 난지를 가려내게 했다. A그룹에는 프린터 용지에 사진을 넣고, B그룹에는 컴퓨터 화면으로 자동차 모델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테스트 결과 A그룹은 66%가 정답을 맞혔지만 B그룹은 43%에 그쳐 23%나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니까 비디지털 방식인 프린터 용지가 디지털 방식의 컴퓨터 영상보다 직관(直觀)능력에 있어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이것은 2016년 미국 컴퓨터협회(ACM)가 사람과 컴퓨터 간의 새로운 경험들이 어떻게 창출되고 있는지를 실험한 사례 중 하나다. 이 실험은 다트마스 대학에서 20~24세 연령층 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것. (The Science Times. 2016. 5. 이강복 디지털이 인간사고 방식을 바꾼다 참조) 이와 같은 실험에서 아날로그의 집중력과 인간 사고의 아름다운 여유 같은 것을 증명했으나 시대는 더욱 디지털화하고 있다. 디지털이 갖는 신속성, 정보의 대량 생산과 처리가 주된 무기다. 이런 가운데 드디어 디지털 교도소가 탄생했다. 사법제도의 교도소와 상관없이 사회의 지탄을 받는 사람을 이 디지털 교도소에 가두고 모든 신상을 공개한다는 것이다. 교도소처럼 감시망도 없고 교도관이 지키지도 않지만, 디지털 그 자체가 교도소 높은 담장이 되어 시간과 장소 구애 없이 작동한다는 것. 아동 성 착취의 세계 최대 음란물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러자 디지털 교도소는 그를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그렇게 판결한 판사까지도 여기에 집어넣었다. 고 최숙현 선수를 폭행, 죽음으로 몰고 간 경주시 철인 3종의 감독 등 가해자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밖에도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디지털 교도소에 들어가 신상 털기를 해야 한다. 이와 같은 디지털 교도소에 대해 신상 털기 등 개인의 인권침해가 심각할 것이라는 차원에서 경찰이 내사를 벌이는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디지털 시대가 탄생시킨 사회정의 운동이라며 환영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가 디지털 교도소에 끝나지 않고 이미 세상을 놀라게 했던 N번방처럼 또 어떤 디지털 변종이 나타날 것인지가 두렵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K-’에 희망을 걸자

한국에 여행을 가서 화장품과 인삼을 많이 사고 싶어요. 중국 최대 온라인여행사 씨트립이 오랜만에 한국관광상품 판매에 나서자 중국 젊은 여성이 TV에서 한 말이다. 우리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 정부가 3년 동안 한국 관광에 빗장을 걸었었는데, 소위 한한령(限韓令) 해제 신호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특히 주식시장에서 화장품 관련주가 10% 이상 급등하는 추세를 보이기도 했다. 왜 이처럼 중국 사람들이 한국 화장품에 열광하는 것일까. 중국만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우리 화장품과 화장술이 큰 인기다. 특히 10~20대 여성들이 눈이 커 보이는 식의 한국식 화장법, 소위 얼짱 화장이 열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해외에서 우리나라의 미용 산업이 각광을 받자 K-뷰티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한국식 미용을 특징 있게 표현하는 것인데 유럽 미용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에까지 상륙하고 있다. 요즘 야구의 종주국이라 할 미국에서는 K-야구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코로나 때문에 미국 야구가 잠자고 있을 때 우리나라 프로야구를 미국 스포츠 전문 TV ESPN이 미국 전역에 중계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코로나 감염의 방역 차원에서 무관중으로 게임을 하되 관중석에는 유니폼을 입힌 인형을 앉히고 특히 한국 선수들이 잘 하는 빠던 행위 같은 것이 미국 야구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빠던은 야구 방망이 빠따와 던지다의 앞글자로 만든 야구에서의 속어로 미국에서는 배트플립(bat flip)이라고 하는 데 금기시되고 있는 것. 이처럼 금기시되는 빠던이 한국 선수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것이 오히려 야구 경기보다 더 흥미를 끌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창의적인 한국 야구의 한 모습, 이른바 K-야구다. 이어 K-골프도 세계 골프계에 선을 보였다. 역시 무관중으로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30억 상금을 걸고 출발하여 큰 관심을 끌었다. 특히 이번 골프투어는 무관중이었지만 원하는 선수만 따라다니며 밀착 방송을 하는 등,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팬서비스까지 등장해 창의적 대회 운영이라는 평을 받았다. K-팝은 이미 세계적 인정을 받은 지 오래다. 서태지, HOT, 그리고 최근의 방탄소년단(BTS)까지. 특히 방탄소년단은 미국 대통령 선거판에까지 영향을 주는 존재로 부각 되었다. 지난 6월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100만명을 동원, 기세를 올리려던 유세 계획이 방탄소년단 팬들 때문에 골탕을 먹었다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우리나라의 방역체계와 의료 시스템이 세계적 찬사를 받아 K-방역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 가령 감염 여부를 자동차에 탄 채로 빠르게 검사를 받는 이른바 드라이브 스루 진료 같은 것이 K-방역의 주요 핵심인데 이런 모든 것의 특징은 창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창의성이 대단히 높다는 이야기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것 역시 그렇고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23번 완승을 한 것도 탁월한 창의적인 전술 때문일 것이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창의력을 가진 민족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정치는 그렇지 못하고 계속 조선시대의 패당(牌黨)적 행태를 벗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정치마저 세계가 감탄할 K-정치가 탄생할 날이 있을까. 변광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외로운 국회의장

여성들의 미니스커트가 전 세계로 번지던 1972년 1월, 근엄하기로 이름난 영국 의사당에도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 의원이 등장했다. 비나데트 데블린이라는 이 여성 의원은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23세의 미혼인데다 노출이 심해 큰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다 이 젊은 여성 의원은 하원에 출석하여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는 내무장관에게 달려들어 뺨을 때리는 사건이 발생하여 소동이 벌어졌다. 그의 출신 북아일랜드의 신구교도 유혈충돌에 대한 보수당 정부의 내무장관 보고가 편파적이라는 이유로 장관의 뺨을 때린 것인데 의사당은 금세 엉망이 되었다. 여성 의원은 계속 장관을 향해 돌진하려 몸부림쳤고 동료 의원들은 이를 제지하려는 바람에 그야말로 난장판. 그 순간 하원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오더! 오더!라고 소리쳤다. 오더(order)는 질서를 의미하는 것. 그러자 기세등등하던 여성 의원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시끄럽던 장내도 조용해졌다. 뺨을 맞은 내무장관은 발언대에서 나는 집에서도 손주 녀석이 가끔 내 뺨을 때린다고 말해 살벌했던 장내 분위기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검찰에 고소하거나 징계에 회부하는 일도 없었고 오직 의장이 오더!가 갖는 위력만 돋보였다. 이렇듯 그 권위가 존중되는 의장이지만 그 활동은 매우 제한적이다. 어느 당에 소속돼서도 안 되고 엄정한 중립을 지키려고 동료 의원들을 만나거나 식사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영국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은 하원 의장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이른바 브렉시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하원 의장이 파장의 중심에 있었다. 2009년부터 무려 10년간이나 의장을 지낸 존 바쿠어. 그가 의장직을 수행하는 10년 동안 오더!를 외친 게 1만4천번이나 되는데 그만큼 의장으로서 직권과 권위를 행사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브렉시트에 대한 세 번째 승인 안을 바쿠어 의장이 직권으로 표결에 붙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두번째 부결시킨 것과 내용이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게 이유였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브렉시트를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렇게 의장은 정부에서 보내온 안건의 표결 여부를 결정할 권한도 있고 의원들의 발언권 부여와 토론 주제 설정 등에 대한 권한도 있다. 물론 의장의 브렉시트 투표 거부권 행사에 지지하는 여론도 많았다. 그러나 의장의 중립이라는 영국 의회의 오랜 전통을 훼손했다는 비난은 면할 수 없어 의장직에서 물러났고 새 의장으로 린지 호일의원(노동당)이 당선됐다. 우리 국회의 박병석 의장이 6월19일 본회의를 열어 12명의 상임위원장을 선출하고 원 구성을 마무리 하겠다고 했으나 막상 6월19일 본회의를 목전에 두고 이를 전격 취소했다. 그러나 6월26일에도 지루한 협상이 결론 없이 진행되자 박 의장은 본회의를 6월29일로 연기했다. 여야가 더 협상하라는 것. 그러나 막상 6월29일 마지막 담판은 깨졌고 민주당은 단독으로 국회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 원 구성을 마쳤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있어 네가 있고, 네가 있어 내가 있다라는 상생의 원리를 우리 국회는 포기한 것 같다. 여가 있어 야가 있고, 야가 있어 여가 있으며 그래서 두 바퀴가 한 몸을 이뤄 민주주의를 이끌어 가는 것인데 앞날이 걱정이다. 결국, 국회의장은 고독한 자리라는 것만 각인시켜준 21대 국회 개원이 됐다. 의장의 오더! 한 마디에 국회가 바로 잡히는 것을 우리는 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부러진 연필과 公正

역사 속으로 사라진 어느 대기업 총수에 대한 숨은 이야기를 최근 그 기업에서 임원으로 있던 분에게서 들었다. 사업 확장에 열을 올리며 과감한 투자도 서슴지 않았던 그 총수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술자리라는 게 어느 정도 분위기가 익어 가면 여러 사업 이야기, 직원들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차장급에 있는 직원이 입담 좋게 총수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고 그것이 총수의 마음을 움직이면 그 자리에서 너 내일부터 부장으로 승진이야!하고 즉석 결정을 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그 반대로 비위에 상하는 말을 하면 자리를 옮기거나 불이익을 받는데 이런 것이 어떤 절차나 원칙 없이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분 주위에는 항상 예스 맨만 모이게 되더라는 것. 더 심한 것은 그 총수의 해외 출장 때 일이다. 한 번은 총수가 머무는 숙소에 나무가 우거져 새들이 많았다는데 새벽이면 새들 소리 때문에 그 총수가 잠을 설친다며 불평을 했다. 그러자 직원들이 교대로 조를 짜서 새벽에 새 쫓는 작업에 나섰는데 그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말하면 공정과 정의가 무너진 기업으로 사회적 문제가 되는 소위 갑질의 횡포이다. 그런가 하면 그 총수의 라이벌 기업은 인사에 엄격한 것으로 유명했다. 친척들은 회사에 절대 관여하지 못하게 하고 차라리 금전적 지원을 할지언정 회사에는 발도 들여 놓지 못하게 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결과는 뻔하다. 원칙이 없는 기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친인척들을 회사에 절대 관여치 못하게 한 기업은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 人事가 萬事라는 말이 그래서 생겼는지 모른다. 요즘 청장년을 막론하고 제일 예민한 것이 취업이다. 코로나 19 전염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교회, △△교회 등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도 이러한 취업과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이들 교회는 대개 개척교회. 매년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는 숫자는 많은 데 사역할 교회는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서는 것이 개척교회이다. 전세를 얻어 교회를 시작했으니 재정의 어려움은 뻔한 것이고, 거기에다 당국이 시키는 대로 교회 문을 닫거나 거리두기를 강행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그래서 예배를 강행하고 그러다 보니 코로나 방역에 취약해져서 감염자가 속출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고생하는 사목자의 눈에 큰 교회 목사의 아들이 세습하여 목사직에 오르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겠는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고 하겠는가. 그래서 아버지의 권력에 의해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 잡는 것을 아빠 찬스라 하고, 선배 잘 만나 출세하면 선배 찬스니 하는 말이 생겨난 것도 결국 이와 같은 공정, 정의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공정, 평등, 정의일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미화원 공채나 철도 보수직 등 가리지 않고 취업 공고만 나오면 달려드는 것도 최소한 그런 가치를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내가 대학을 졸업했지만, 우선 미화원이 되고 거기에서 미래의 꿈을 찾자는. 요즘 인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 역시 바로 그 공정과 정의, 평등에 대한 실망 때문이 아닐까. 청와대 국민게시판에 올라온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에 반대하는 글이 25만 명을 넘었다는 것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 번지는 부러진 펜 운동, 로또 취업반대 캠페인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정부 여당의 설명이 아무리 합리적이라 해도 연필을 부러뜨리고 싶은 청년들의 마음을 달래 주기에는 미흡한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아톰 할배’들, 국회에 호소하다

우리나라 원자력 연구의 1세대들로 생존해 있는 다섯 분의 과학자가 있다. 원자력 연구원장을 지낸 장인순 박사, 원자력 건설처장 출신의 전재풍 박사, 영광 3ㆍ4호기 설계책임을 졌던 김병구 박사, 원자력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이었던 이재설 박사, 원자력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박현수 박사 등이 그들이다. 모두 80대이거나 70대 후반의 소위 할배들이다. 할배이지만 아톰, 즉 원자력과 함께 일생을 보낸 분들이라 하여 아톰 할배라는 애칭이 붙여진 것이다. 물론 1세대 연구원 사람들 가운데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다. 그 가운데 한필순 박사는 원자력계의 전설적 인물.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로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원자력이라는 이름도 꺼내기 어려웠던 시절에 연구원들을 토닥이며 원자력의 꿈을 살려 냈다. 특히 그는 1986년 12월14일 연구원들을 미국 컴버스천 기술 회사에 파견하면서 어떻게든 원전기술을 배워라. 그렇지 않으면 돌아올 생각하지 마라며 뜨거운 사명감을 불어 넣은 일화로 유명하다. 그 미국 회사는 우리나라의 영광 원자력발전소 34호기의 원자로 계통설계를 맡았던 곳인데 우리 연구원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에까지 기술 습득을 터득하고 귀국해 탄생시킨 것이 한국형 원자로이다. 1987년의 중수로용, 1989년 경수로용 국산화 성공, 이렇게 원자력 기술식민지에서 독립해 해외까지 수출하는 원자력 최강국이 되는 데는 이런 아톰 할배들의 땀과 고통이 있었다. 원자력연구원장 출신의 장인순 박사는 초창기 부품이 없어 서울 청계천 상가를 수없이 들락거렸다. 그곳에 가면 박격포까지도 구할 수 있을 만큼 온갖 장비들이 거래됐다. 그래서 장 박사는 서울시가 청계천 상가를 철거할 때 그곳에 조국근대화 공적비라도 세워 놓자고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건의할 정도였다. 장 박사는 원자력연구원장에 취임하자 연구원 건물 옥상에 국기를 달았는데 그 국기가 국내 공공기관의 게양 국기 중에는 제일 크다. 지금도 그 큰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원자력 연구에 임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이렇게 원자력연구에 일생을 쏟은 다섯 과학자가 지난해 한필순 박사 5주기를 맞아, 아톰 할배들의 원자력 60년 이야기라는 책을 발간했다. 특히 지난해는 10년 전 아랍 에미리트(UAE)에 첫 한국형 원자로가 수출한 날을 기념해 만든 원자력의 날 행사가 정부의 탈 원전정책 분위기에 제대로 기념식도 못한 상황에서 책이 나왔다. 책의 내용은 탈원전에 반대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이들 아톰 할배들은 21대 국회가 개원되자 다시 국회의원들에게 탈원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호소문을 작성했다. 발전 단가를 보면 원자력 60원, LNG 120원, 태양광 180원으로 경제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세계에서 유일하게 3가지 원자로를 수출하는 우리나라가 이를 포기하면 제일 기뻐할 나라는 중국 등 경쟁국이 아니겠느냐고 이들 원로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특히 이들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경험한 러시아, 미국, 일본이 왜 탈원전을 하지 않고 계속 원자력 발전을 추진하고 있는지도 생각하라고 촉구했다. 사실 하루에 태양광 발전시설로 축구장 10개의 숲이 사라지는가 하면 석탄 등 화석발전의 환경파괴가 심각한 상황이다. 그리고 7천억 원을 들여 월성 1호기를 보수까지 했음에도 이를 폐쇄하는 등 이해 못할 탈원전 정책에 회의를 가진 시점에 아톰 할배들이 국회에 보내는 호소문은 깊이 새겨 볼 필요가 있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신비한 7대 3의 법칙

이스라엘은 인구 865만 명으로 경기도보다 훨씬 작다. 그런데 정당은 13개나 되는 다당제 국가이다. 지난봄 국회(크네세트)의원 총선거에서 정원 120명을 13개 정당이 골고루 차지했는데 제1당인 리쿠르당이 36석, 청백당이 33석, 그리고 7석, 5석, 심지어 1석을 얻은 정당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상 처음으로 히잡을 쓴 이슬람교 신분의 여성 의원 1명이 탄생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이스라엘 국민의 정치의식이 다양해졌다는 표시이다. 이렇듯 과반을 넘는 정당이 없자 리쿠르당의 네타냐후 총리가 청백당과 연립내각을 구성, 재집권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네타냐후는 2009년 이래 10년 넘게 집권을 하게 되고 연립에 참여한 청백당 당수이며 전 육군참모총장인 간츠가 2021년 11월부터 총리직을 바꾸어 하게 된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정당 간 정책과 이슈를 절충해가며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순탄하게 국정을 운영해 간다. 원래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7대3이라는 처세훈이 이어져 오고 있다. 100%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70% 선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상술이 뛰어나다고 하는 것도 거래할 때 목표의 100%가 아니라 70%만 되면 30%는 기꺼이 포기하는 데 있다고 알려졌다. 정당끼리의 연립내각 구성이 잘 운영되는 것도 이런 정신이 밑바탕에 깔렸기 때문이고 유대인들이 극히 종교적이면서도 광신자가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 총선에서 이슬람교 신자가 당선되는 현상까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은 7대3의 처세훈을 우주 원리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 인체는 물이 70%이고 기타 유기질이 30%인데 지구 역시 물이 70%이고 육지가 30%로 이루어진 신비의 구성 비율이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겠느냐, 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구를 구성하는 육지와 물의 비율,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과 무기질의 비율 7대3이 깨지면 생존이 파괴되듯이 모든 거래나 삶의 방식도 여기에 맞춘다는 것이다. 우주와 인체의 구성 비율, 그 신비의 법칙을 실생활에서도 적응하는 것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우리 정치가 참 답답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21대 국회에 와서는 순탄한 의회정치를 기대했는데 역시나 마찬가지다. 특히 180석 가까이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큰 몸집에 맞는 여유와 아량을 보여주지 못해 안타까웠다. 국회의장 선출도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이루어졌고, 6월8일 출범을 해야하는 국회 원구성도 기일을 어겼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 법사위원장 하나에 매달려 원구성도 날짜 안에 못했다면 정치 협상기술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여당은 일하는 국회가 되려면 발목 잡기의 과거 법사위 형태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인데 꼭 그렇게 해야만 일하는 국회가 되는가? 법사위의 기능 조정 등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야당인 통합당은 주호영 원내대표가 11대7로 국회 상임위원장 여야 배분을 협상안으로 의총에 회부했으나 부결시켰다. 그러면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원내대표의 입장은 무엇인가. 원내대표가 권한 없는 메신저에 지나지 않는다면 국회의장이 협상기일을 3일 더 연장했다 해서 원만한 결과가 나오리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정치, 7대3의 원리를 배웠으면 어떨까. 변평섭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쟁기 맨 농부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자영업을 하는 A씨는 나이가 들면서 왼쪽 볼에 검은 점이 생겼다. 처음에는 좁쌀만 하던 작은 점이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커졌다. A씨는 온종일 잊고 살다가도 가끔 거울에 비치는 얼굴을 볼 때마다 그 검은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하루는 병원에 전화해서 상담을 했더니 5만원이면 깨끗이 해결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용기를 내어 5만원을 챙겨들고 가게 문을 나서려다 순간 발을 멈추었다. 하루 종일 벌어도 10만원 이익 내기도 어려운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점 하나에 5만원이 너무 아까웠던 것이다. 그런데다 코로나 때문에 하나 있던 아르바이트생까지 내보내야 하는 등 고통을 겪었고 얼굴 점 빼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5월 들어 정부에서 긴급재난자금이 나온 것이다. 그는 그동안 미뤄왔던 기회라 생각하고 병원에 달려가 얼굴의 검은 점을 빼버렸다. 그러고서 얼굴을 보니 마음이 개운하고 기분도 좋았다. 점을 뺐으니 장사도 잘될 거라며 국가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솟아났다. 가족조차도 신경 써 주지 않던 얼굴의 검은 점을 이렇게 단번에 없애 버리다니 정말 좋았다. 그러나 그는 생각해 봤다. 자기 가게에서 번 돈에서 5만원을 꺼낼 때처럼 부담스럽지 않고 막연히 국가가 베푸는 시혜로만 생각했는데 전 국민에게 얼마나 많은 돈이 지출됐을까를 생각하니 눈이 번쩍 뜨였다. 이래도 국가의 곳간이 버텨 낼 수 있을까. 결국, 곳간을 채워야 할 사람은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이 아니라 국민이고 좁혀서 말하면 나이고 내 아들 딸이라는 생각을 하면 A씨가 왜 눈이 번쩍 뜨였는지 이해가 된다. 우리는 이미 세금, 연금, 보험료 등 국민부담액이 고령화와 폭발적인 복지수요로 지난해 처음 1천만원이 넘은 상태이고, 국가 부채 역시 40.7%나 되고 있다. 1년간 움직이는 정부 자금의 절반 가까이 빚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독일 64%, 미국 136% 등 선진국들의 국가채무 비율이 우리보다 높다는 것을 지적하며 우리의 국가채무 관리는 어렵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는 자국의 화폐가 기축통화이기에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며 반론을 제기하는 측도 있다. 어쨌든 빚은 빚이다. 빚은 갚아야 하고 그것은 국채발행, 세금 같은 경색된 길밖에 없다. 이것이 제대로 안 되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남미의 악몽을 떠올리게 된다. 이들 남미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포퓰리즘에 빠져 현금 살포를 서슴지 않다가 급기야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에 이르고 있다. 거기에다 코로나 사태는 갈수록 악화돼 브라질의 경우 34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올 정도로 통제 불능 상태다. 그렇다. 코로나도 그렇고 정부 재정운용 역시 효율적 통제가 절대적이며 그 모든 진행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코로나의 큰불은 꺼진 듯했으나 여기저기 숨은 불씨로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가운데 2차 추경 12조 2천억원에 이어, 35조 상당의 제3차 추경도 국회에 상정할 태세다. 그리고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포스트 코로나의 성장동력을 구축하고자 앞으로 5년간 76조를 투입할 계획이다. 한국형 뉴딜이 그것이다. 정말 엄중한 시기에 놓여 있다. 따라서 180석 거대 여당이 이 문제에 올인해야 국민 여망에 부응하는 것인데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집착한 모습, 이념 싸움에 동력을 쏟는 모습은 자칫 국가 생존이 달린 경제문제와 코로나 사태를 소홀히 한다는 우려를 줄 수 있다. 소에 쟁기를 잡은 농부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발과 잣대

지난달 미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코로나 대처가 잘되고 있다며 자화자찬을 했다. 그때 CBS의 중국계 여기자가 트럼프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질문을 했다. 그러자 발끈한 트럼프는 그런 형편없는 질문은 중국에다 하라하며 여기자의 질문을 뭉개 버렸다. 자신의 폐쇄적 인식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대구 가톨릭대학 교수로 있는 박병규 신부는 최근 한 가톨릭 간행물에서 유다인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아서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반대편이라는 폐쇄성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즉, 유다인들은 그 누구보다 하느님을 열심히 믿었지만, 바빌론 유배를 거치면서 모든 이의 모든 것이신 하느님을 유독 자신들만의 하느님으로 포장하는데 열심이었고, 민족주의 폐쇄성이 하느님의 개방성을 가로막아 버렸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반대편이라는 폐쇄성은 기독교 안에서도 많은 교파로 분열하게 했고, 같은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교파가 다르면 이단 취급을 하는 극단주의까지 존재하기도 한다. 이슬람 역시 시아파냐 수니파냐에 따라 전쟁도 서슴지 않는 종파적 폐쇄성이 계속된다. 마음에 안 들고, 미워도 함께 머무르는 사랑과 포용이 아니라 하나의 잣대로 줄세우기를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 잣대야 말로 인류 평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옛날 중국 정나라에 차치리(且置履)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 자신보다 잣대를 더 믿는 사람. 하루는 그가 신발을 사러 가면서 자기 발의 크기를 잣대로 재고 본을 떴다. 그런데 막상 시장 신발가게에 도착하여 신발을 사려고 하니까 본을 뜬 것을 집에 놓고 왔음을 발견했다. 차치리는 다시 집으로 가서 그것을 가지고 왔는데 와서 보니 저녁때가 되어 신발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의 발로 신발을 신어 보면 될 텐데 왜 집에까지 가서 그걸 가져와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차치리는 잣대는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은 믿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처럼 이념과 사고를 잣대에 맞추면 모든 것은 이분법적으로 나뉘며 그 폐쇄성은 마침내 자신마저 그 잣대의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불행한 일이다. 이렇게 오(度)와 족(足)의 신뢰가 뒤바뀌면 검은 고양이를 본 사람에게 너는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 흰 고양이를 본 것이다고 사실을 뒤집어 반복하면 자기도 모르게 검은 고양이가 흰 고양이로 의식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러므로 강요된 이분법적 사고방식과 폐쇄성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정치가 조선시대의 사화(士禍)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네 편, 내 편을 가르는 이분법적 폐쇄성이며 그 잣대의 포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뻔한 사실도 어느 편이냐에 따라 흰 고양이가 검은 고양이가 될 수 있고 검은 고양이가 흰 고양이로 뒤바뀔 수 있다. 트럼프가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것처럼 내 편이 더욱 많아질수록 이와 같은 현상은 더욱 강해지고 이의 있소!하고 감히 손을 든 사람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대표를 향해 할머니들을 팔아 먹었다라며 절규에 가까운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것을 두고도 검은 고양이니 흰 고양이니 하는 식으로 편을 가르는 것을 보면 차치리의 잣대가 실감 난다. 그래서 정치는 무서운 것인가.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처칠, 전쟁에는 승리했지만 선거에는 패배했다

런던에 있는 영국 의사당 입구에는 영국이 배출한 위대한 인물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영국인이 아닌 유일한 동상은 2015년에 세워진 인도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 그런데 이들 동상 옆을 지나면서 유난히 구두가 반짝이는 동상 하나를 발견한다. 윈스턴 처칠의 동상이다. 그만큼 처칠이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래서 사람들은 그 옆을 지나갈 때 처칠의 신발을 쓰다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설명할 필요 없이 그는 세계 2차대전 시 영국 총리로서 승리를 이끈 인물이다. 그가 전쟁 중에 국민을 향해 피와 눈물과 땀밖에는 내가 바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 연설은 지금까지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이 애용하는 명연설이다. 독일 폭격기들이 런던을 폭격하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몸을 피하지 않고 우뚝 서서 전쟁을 지휘했고 마침내 1945년 승리를 쟁취했다. 5월8일, 독일이 항복한 날, 온 국민이 열광했고 그는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2개월 후, 그러니까 1945년 7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시행됐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처칠은 당연히 선거에서도 압승하여 다시 총리직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너무 뜻밖이었다. 처칠은 패배했고 총리직에서 물러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세월을 보내야 했다. 왜 국민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처칠에게 표를 던지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역사가들은 전쟁이 오래 계속되면서 국민이 정신적 피로감이 쌓였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전쟁 중에 겪었던 수많은 고통과 불안에서 해방되었으니 이제 좀 쉬고 싶고 즐기고 싶은 욕구가 치민 것이다. 이것이 솔직한 인간심리라는 것이다. 여기에다 상대 당은 우리 모두 미래와 마주하자는 달콤한 슬로건으로 유권자들을 유혹했다. 이제 그 무섭던 전쟁의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의 복지국가를 향해 나가자는 데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것이 민심이고 정치다. 그런데 처칠은 전쟁 후의 계획에 소홀했다. 요즘 세계가 한창 코로나와 싸우면서도 코로나 이후의 문제를 서둘러 다루기 시작했다. 소위 포스트 코로나가 그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사회 시스템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은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가장 큰 변화는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교육의 온라인화와 비대면 의료시범사업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이제는 기업체에서 재택근무의 장점을 살려 비대면 근무체제로의 전환 등 여러 분야에서 코로나가 가져온 변화의 물결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정부가 발표한 한국판 뉴딜 정책이 나온 것도 이런 코로나 이후에 대한 준비로 보인다. 과연 이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밖으로 눈을 돌려 보자. 코로나로 인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선택의 짐을 지울지 모른다. 이미 미국은 중국 내 자국 기업의 철수와 중국에서의 자원공급을 동결하고 동맹국들의 동참을 요구할 태세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고 자원을 중국 등 외국에 의존하는 입장이니 큰 문제이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바로 이런 외적 환경의 변화다. 이것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코로나 사태를 선방했다고 찬사를 받고 있지만 이와 같은 코로나 이후의 급변하는 문제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하면 전쟁에서 이기고도 선거에 패배한 처칠처럼 될 것이다. 더욱이 국민은 코로나와 싸우면서 피로감이 누적된 상태다. 그래서 처칠의 교훈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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