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화재의 참사

우리는 생전의 그들 노고에 얼마나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는가 생각해 본다. 사선을 넘나드는 위험수당이란게 고작 월 2만원이다. 지난 4일 서울 홍제동 화재에 인명을 구하려다가 집이 무너져 순직한 박동규소방장(46) 등 6명에 대한 영결식이 서울소방방재본부葬으로 오늘 치러진다. 시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위험을 돌보지 않은 분들이다. 아들 이름을 부르다가 실신한 늙은 아버지, 병든 어머니를 돌보느라고 노총각이 된 아들, 박봉에 어렵게 살면서도 직무에 묵묵히 충실했던 고인들의 눈시울 붉히는 사연 또한 가지가지다. 1계급 특진과 훈장이 추서되고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그것으로 고인의 넋을 달랠수 있을는지, 유족들은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걱정이다. 하루보통 14시간 근무에 10회 출동하는 고된 일과속에 작년 한해만도 100여명이 순직하거나 부상했다. 지난 5년동안 38명이 숨지고 735명이 다쳤다. 소방사상 초유의 최대순직을 낸 이번 화재사건을 계기로 소방공무원들에 대한 안전대책이 좀더 강화되면 좋겠다. 정부가 당장 처우는 개선해주진 못할지언정 위험으로부터 최대한 보호해줄 의무는 있다. 무전기가 달린 헬멧, 방열복, 방수복같은 개인장비 보강이 시급하다. 지난 4일 또 발생한 서울 세곡동 화훼단지 이일행씨(59) 비닐하우스 화재로 3대 일가족 10명이 숨진 참사역시 심히 안타깝다. IMF사태로 사업을 실패해 화훼재배로 마지막 재기를 노리며 집이 없어 비닐하우스에서 살다가 변을 당했다는 것이다. 가족중엔 백일을 갓지난 아기까지 희생됐으니 정말 참담한 일이다. 지난 일요일에 일어난 두 화재 사건의 집단희생은 인명의 소중함을 새삼 생각케 해준다. 삭막한 생활을 허겁지겁 살다보니 어디서 사람이 다쳤다고 해도 신경이 많이 무디어 지긴 했지만 사람사는 사회는 인명을 존중할줄 알아야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인간사회다. 서로 인명을 소중히 아는 인간사회가 사람다운 삶이라 할 것이다. /白山

전횡흔적 심각한 이천시 인사

이달초 조직개편에 따른 대대적인 전보인사를 앞두고 이천시 공직내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는 기획 등 능력을 갖춘 공직자라면 과감히 발탁, 적재적소에 기용한다는 시의 인사원칙이 뿌리째 흔들리는 그림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향후 2∼3년사이 승진체증 현상을 빚고 있는 5∼6급 중간간부들의 이탈현상이 그 어느때보다 심각해져 가고 있는 것 또한 한몫 거들고 있는 상태다. 우선 인사권을 장악한 총무부서의 경우 3개계 중간간부들의 장기집권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수년간 한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실무선상 총무·인사권을 전유하는 것은 물론 모 특정 국장이 주요 요직부서 몇몇자리를 자기사람으로 채우려는 흔적 또한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과거 자신과 연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 의회 모계장을 기감실 주요 부서장으로 배치하려는 것은 물론 과거 인사계 시절 직속 부하직원으로 있었던 모인사를 속칭 승진서열에 해당한 또다른 주요 부서장으로 앉히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공직내부의 불만이 팽배하다. 이와함께 본청내 근무중인 대부분의 5급 사무관의 경우 ‘속 편하게 나가 있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탓인지 읍·면·동 등 외곽지역 보직을 원하는 분위기가 팽배, 오는 8월 세계도자기엑스포를 앞둔 이천시의 공직내부가 술렁거리고 있는 실정이다. 인사는 시장의 고유권한이라 했던가. 속성상 상대성이 존재하는 인사는 그 성공율이 51%만 되어도 성공이라지만 최근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이천인사 그림은 눈총을 받기에 충분하다. 설령 실무선상에서 이뤄진 그림이라곤 하지만 최종 인사결정은 시장의 몫인 만큼 선거를 의식한 ‘떡 주기식 인사’가 되지 않길 기대해본다. /김동수기자<제2사회부/이천> dskim@kgib.co.kr

구조조정의 모순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IMF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전반에 걸쳐 저비용 고효율을 위한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공직사회도 인원과 예산을 감축하고 직제까지 개편하는등 일대 개혁의 바람이 지금까지 불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들이 중앙부서의 틀에 맞추다 보니 일선 지자체의 직제가 자주 바뀌고 직위까지도 호칭키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나 이를 시정하려는 개선책이 나오지 않아 답답함과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다. 군 단위의 6급 계장 직위가 담당이라는 직으로 개편됐으나 이에 대한 업무는 달라지지 않았고 부르는 호칭도 개편전과 같이 계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위직의 경우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을 ‘이담당’‘김담당’하고 부를 수도 없어 계장이라는 직위를 호칭치 않으면 뾰족히 부를 수 있는 대안도 없어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공문서 기안시 최초기안자는 기안자 ‘홍길동’하고 서명하지만 정해진 틀내의 업무를 총괄하고 책임지는 담당은 협조란에 서명하는 모순의 행정이 행해지고 있다. 본연의 업무를 협조란에 서명하는 모순은 하루빨리 시정돼야 할 시급한 일이다. 이는 중앙부처의 직제와 공문서 규정을 지자체에도 똑같이 적용하고 사용토록 하고 있어 격에 맞지 않는 모순을 중앙부처가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직제의 개편이나 업무의 개선은 모두가 편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 타당성이 뒷받침돼야만 잘된 일로 평가받을 수 있고 좋은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하수도의 업무를 관장하는 사업소를 맑은물 관리사업소라는 명칭으로 바꾼 것도 한번쯤은 주민들이 부르기 편하고 기억히기 좋은 명칭을 다시 찾아 볼때다. 명칭이나 호칭이 업무추진에 큰 지장이 없다해도 공직자들이나 주민들이 불편하다면 개편전 알기쉽고 부르기 편했던 직위나 명칭으로 다시 바꾸는 것도 우리 모두를 위하는 개혁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장기현기자<제2사회부/연천> khjang@kgib.co.kr

요미우리신문 妄言

고려때 원나라, 조선땐 청나라에 공녀를 바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딸가진 백성은 공녀를 피하기 위해 조혼을 서둘렀다. 이와 비슷한 조혼풍습이 2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일제말에 있었다. 그들말로 ‘대이신다이’라고 했던 정신대로 뽑혀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일본경찰에 잘못보이거나 밉보인 힘없는 집 딸을 끌어가기도 하고 한창 심할땐 산나물캐는 댕기머리 처녀들을 싹슬이 해가기도 했다. 강제로 끌어가면서 하는 말이 ‘큰돈벌어 집안을 돕도록 한다’고 했으나 돈벌기는 커녕 목숨 부지하기가 어려웠다. 그무렵에 또 징병 학병으로 끌려간 우리 젊은이들이 많았다. 일본군으로 끌려가는 징병이나 학병들이 떠날땐 역에 군중동원을 하여 거창한 환송식을 하곤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지지대子도 일장기를 흔들며 ‘댄노해이까 반사이’(천황폐하만세)와 일본군가를 부르는 환송식에 자주 나갔다. (어른들도 많이 강제 동원됐다. 일제때 산 사람의 친일행각 한계를 폭넓게 보고자 하는 전후 지식인의 시각이 이점에서 항상 의문이다.) 이에비해 징병이나 학병과는 달리 정신대와 이밖에 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징용(전쟁터나 전쟁을 위한 강제노역)을 나가는 사람들은 환송식은 고사하고 되도록이면 남의 눈에 덜띠게 조용히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도(강변으로라도) 명분을 내세우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이 2일자 사설에서 ‘정신대는 전시 근로동원’이란 제하로 ‘우리의 역사교과서 정정촉구를 내정간섭’ 이라고 우긴것은 최소한의 인간적 양심과 지식인의 지성을 의심케 한다. 도대체 연약한 어린 처녀들이 전쟁터에서 무슨 근로동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죽음으로 내몬 일본군의 알량한 사기란 것을 위해 집단윤간의 성 놀이개로 삼은것이 전시근로란 것인지. 그들말대로 위대한 성전의 근로라면 ‘댄노’(천황)의 적자임을 자임한 일본인 여성은 왜 단 한명도 ‘대이신다이’에 안보냈는지 설명해야 한다. 같은 2차대전 패전국이면서도 일본과 독일은 너무 다르다. 독일은 나치의 만행을 다 인정하고 충분한 보상에 앞장섰다. 일본은 저들의 군벌이 저진 만행에 사과는커녕 오히려 복고적 향수에 젖어있다.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白山

끝없는 교도소 비리

교도행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구치소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을 상대로 담배를 팔아오고, 구치소에 히로뽕이 반입된 사실이 드러난 것은 과거에도 흔한 일이어서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교도관들이 조직폭력배 출신 등 재소자들에게 휴대폰 반입을 묵인하거나 빌려주는 등 편의를 제공하고 돈을 받은 사실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충격적이다. 교도소 비리가 앞으로 어떤 양태로, 또 어디까지 이어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 수원지검에 구속된 안양교도소 전·현직 교도관 3명은 재소자 가족들로부터 400만∼600만원씩을 받고 재소자들의 휴대전화 반입을 묵인하고 이의 사용을 눈감아 준 것으로 조사됐다. 교도관 묵인아래 휴대전화를 사용한 재소자 중 특히 안양지역 폭력조직 두목은 작년 1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무려 3천회 이상(1일 평균 40회이상) 외부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부 통화자중엔 수원지역 폭력조직 두목과 조직원들도 포함돼 있어 교도소내에서 조직을 관리해오지 않았나 하는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사기혐의로 수감된 재소자도 휴대전화를 이용, 외부 관계자와 뒷일을 상의하는 등 업무를 처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외부와 격리된 교도소에서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생활해야할 재소자들이 이처럼 휴대전화를 이용, 제사무실이나 제집에서 처럼 하고 싶은 일을 다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교도소 안에서도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 재소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게 된 것도 괜한 일은 아니다. 교도소의 구조적 비리가 얼마나 깊고 부패했는가를 잘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기야 출소자가 재소자들을 상대로 담배장사를 했던 교도관을 협박, 돈을 뜯어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할말을 잃을 정도다. 이같이 교도소 비리가 비밀아닌 사실로 널리 퍼져 있는데도 교도행정을 책임진 법무부와 검찰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부조리는 오래전부터 여러 사건과 출소자 설문조사 등을 통해 잘 알려졌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법무부와 검찰은 이제 교도소가 비리의 온상이라는 인상을 씻으려면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열악한 교도관들의 근무여건 및 처우 개선은 물론 철저하고 부단한 지도 감시로 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민사재판의 획기적 개선

대법원이 민사재판 진행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한것은 높이 평가된다. 민사소송법개정의 복잡한 과정을 피하면서 예규로 운용의 묘를 기했다. 국민에 대한 법률서비스의 노력이 크게 돋보인다. 사실 지금까지의 소송진행방식은 일제시대부터 해온 내용이 주된 것이었다. 시대적 생활문화가 바뀌어도 몇번이나 바뀌었다. 유독 재판문화만 발전을 머물러왔다. 그동안 부분적 시도가 없지 않았으나 미흡했던 재판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 이번에 마련된 민사재판의 새 모델이다. 쟁점정리를 위한 법정공방에 앞서 원·피고간에 서면공방을 갖게하는것은 재판기일을 절감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법정공방의 쟁점정리에서 원·피고에게 충분한 자기주장의 기회를 주고, 법정증거 조사때 관련 증인을 한자리에 불러 대질신문 하는것은 재판 진행의 효율화, 사건의 실체접근에 효과적이라 할수 있다. 이 제도는 소가 2천만원 이상으로 3월1일이후 접수된 사건부터 적용,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더 신속·충실하게 진행함으로써 두어번 출석하고 판결이 가능한 것은 민사재판에 대한 종전의 불만을 크게 해소할 것으로 믿는다. 보통 10여차례 법정에 나가 그때마다 몇시간씩 기다린 끝에 기껏 몇분동안 말하며 1∼2년을 끌게 마련이었다. 이때문에 ‘송사나면 이기든 지든 집안 망한다’는 보편적 사회관념은 법익의 생활화가 멀게 인식됐던것이 이젠 가깝게 다가설 것으로 보여진다. 당면한 법원의 고충은 판사의 과중한 업무량으로 알고있다. 자택에까지 기록을 가져가 검토하고 판결문을 써야할 만큼 사건에 파묻혀 산다. 이로인해 판사의 이직률이 해마다 증가하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현상이다. 새 민사재판제도는 업무량의 폭주를 다소나마 덜수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종전의 절차가 다수의 민사재판을 한꺼번에 다뤄가면서 사건마다 조금씩 심리하는 분산식진행으로 비유할 수 있다면 새 절차는 원·피고간의 서면 및 법정 소명을 집중적으로 심리, 단기간에 종결해 나간다고 볼수가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제도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이해다툼이 첨예한 재판에 예기치 못한 문제점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모든 증인을 한꺼번에 출석시키는데도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보완해 가면 새 제도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나갈수가 있다. 아울러 소송당사자주의에 의한 원·피고의 법정 노력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의한 법원에 대한 협력 또한 가일층 요구되기도 한다.

畵仙 장승업

畵仙 장승업 안견(安堅·생몰년 미상)· 김홍도(金弘道·1760∼?)와 함께 조선시대 3대 화가로 꼽히는 오원 장승업(吾園 張承業·1943∼1897)은 술과 여자를 몹시 좋아하여 미인이 옆에서 술을 따라야 좋은 그림이 나왔고 아무 것에도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방만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전해진다. 오원의 호방한 기질은 강렬한 필법과 묵법(墨法), 그리고 과장된 형태와 특이한 설채법(設彩法)을 특징으로 하는 그의 작품들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오원은 산수·인물·영모(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기명절지(器皿折枝·여러가지 그릇 붙이와 화초의 가지를 섞어서 그린 그림)·사군자 등 여러 분야의 소재를 폭넓게 다루었다. 일찍 부모를 여읜 오원은 매우 가난하여 의탁할 곳이 없다가 수표교(水標橋) 부근에 살고 있던 이응헌(李應憲)의 집에 기숙하면서 어깨너머로 글공부와 중국 원(元)·명(明)이래의 명적(名蹟)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신(神)이 통한 듯 그림을 능숙하게 그리게 되어 화명을 날렸다고 한다. 40세를 전후하여 명성이 더욱 높아져 왕실의 초빙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감찰’이란 관직을 제수받기도 했다. ‘삼인문년도·三人問年圖)’ ‘산수도’ ‘귀거래도’ ‘기명절지도’ ‘호취도·豪鷲圖 ’ ‘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등 우리나라 근대회화의 토대를 이룬 수 많은 걸작을 남긴 오원은 조선시대 당시 암울한 정치적 배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순수예술만을 고집해 숱한 오해와 비판을 받았다. 술을 예술처럼 사랑한 오원은 구한말에서 일제초기 산수화를 거쳐 현대 한국화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이러한 오원의 예술인생을 임권택 감독이 스크린에 담는다고 한다. 판소리 영화 ‘서편제’ ‘춘향뎐’을 만든 ‘예술영화의 거장’임감독이 화가의 삶을 스크린에 옮기기로 했다는 소식은 영화계뿐만 아니라 미술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쏟고 있다. 제목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지만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천재 화가의 삶을 담아낼 이 영화의 영상미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영화로 부활하는 화선(畵仙)의 예술혼과 인생이 기다려진다. /淸 河

끝없는 교도소 비리

교도행정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구치소 교도관들이 재소자들을 상대로 담배를 팔아오고, 구치소에 히로뽕이 반입된 사실이 드러난 것은 과거에도 흔한 일이어서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교도관들이 조직폭력배 출신 등 재소자들에게 휴대폰 반입을 묵인하거나 빌려주는 등 편의를 제공하고 돈을 받은 사실이 적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충격적이다. 교도소 비리가 앞으로 어떤 양태로, 또 어디까지 이어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엊그제 수원지검에 구속된 안양교도소 전·현직 교도관 3명은 재소자 가족들로부터 400만∼600만원씩을 받고 재소자들의 휴대전화 반입을 묵인하고 이의 사용을 눈감아 준 것으로 조사됐다. 교도관 묵인아래 휴대전화를 사용한 재소자 중 특히 안양지역 폭력조직 두목은 작년 11월부터 지난달 말까지 무려 3천회 이상(1일 평균 40회이상) 외부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부 통화자중엔 수원지역 폭력조직 두목과 조직원들도 포함돼 있어 교도소내에서 조직을 관리해오지 않았나 하는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사기혐의로 수감된 재소자도 휴대전화를 이용, 외부 관계자와 뒷일을 상의하는 등 업무를 처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외부와 격리된 교도소에서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생활해야할 재소자들이 이처럼 휴대전화를 이용, 제사무실이나 제집에서 처럼 하고 싶은 일을 다하고 있었으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교도소 안에서도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 재소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게 된 것도 괜한 일은 아니다. 교도소의 구조적 비리가 얼마나 깊고 부패했는가를 잘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기야 출소자가 재소자들을 상대로 담배장사를 했던 교도관을 협박, 돈을 뜯어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할말을 잃을 정도다. 이같이 교도소 비리가 비밀아닌 사실로 널리 퍼져 있는데도 교도행정을 책임진 법무부와 검찰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부조리는 오래전부터 여러 사건과 출소자 설문조사 등을 통해 잘 알려졌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법무부와 검찰은 이제 교도소가 비리의 온상이라는 인상을 씻으려면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열악한 교도관들의 근무여건 및 처우 개선은 물론 철저하고 부단한 지도 감시로 비리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민사재판의 획기적 개선

대법원이 민사재판 진행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 한것은 높이 평가된다 민사소송법개정의 복잡한 과정은 피하면서 대법원은 예규로 운용의 묘를 기했다. 국민에 대한 법률서비스의 노력이 크게 돋보인다. 사실 지금까지의 소송진행방식은 일제시대부터 해온 내용이 주된것 이었다. 시대적 생활문화가 바껴도 몇번이나 바꼈다. 유독 재판 문화만 발전을 머물러왔다. 그동안 부분적 시도가 없지 않았으나 미흡했던 재판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것이 이번에 마련된 민사재판의 새 모델이다. 쟁점정리를 위한 법정공방에 앞서 원·피고간에 서면공방을 갖게하는것은 재판기일을 절감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법정공방의 쟁점정리에서 원·피고에게 충분한 자기주장의 기회를 주고, 법정 증거 조사때 관련 증인을 한자리에 불러 대질신문 하는것은 재판 진행의 효율화, 사건의 실체접근에 효과적이라 할수 있다. 이제도는 소가 2천만원 이상으로 3월1일이후 접수된 사건부터 적용,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더신속, 충실하게 진행함으로써 두어번 출석하고 판결이 가능한 것은 민사재판에 대한 종전의 불만을 해소 하게 될 것이다. 보통 10여차례 법정에 나가 그때마다 몇시간씩 기다린 끝에 깃껏 몇분동안 말하며 1∼2년을 끌기가 마련이었다. 이때문에 송사나면 이기든 지든 집안 망한다는 보편적 사회관념은 법익의 생활화가 멀게 인식됐던것이 이젠 가깝게 다가설 것으로 보여진다. 당면한 법원의 고충은 판사의 과중한 업무량으로 알고있다. 자택에까지 기록을 가져가 검토하고 판결문을 써야할 만큼 사건에 파묻혀 산다. 이로힌해 판사의 이직률이 해마다 증가하는 것은 실로 안타까운 현상이다. 새 민사재판제도는 업무량의 폭주를 다소나마 덜수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종전의 절차가 다수의 민사재판을 한꺼번에 다루면서 사건마다 조금씩 심리하는 분산식진행으로 비유할 수 있다면 새 절차는 원·피고간의 서면 및 법정 소명을 집중적으로 심리, 단기간에 동결해 나간다고 볼수가 있다. 물론 아무리 좋은 제도도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이해다툼이 첨예한 재판진행에 예기치 못한 문제점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모든 증인을 한꺼번에 출석시키는데도 어려움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보완해 가면서 새 제도의 장점을 충분히 살려 나갈수가 있다. 아울러 소송당사자주의에의한 원·피고의 법정 노력과 산의성실의 원칙에 의한 법원에 대한 협력 또한 가일층 요구되기도 한다.

여자박사

박사학위를 따는 데 걸리는 기간은 남자가 62개월, 여자 65.7개월로 여자가 더 길다고 한다. 박사취득에 든 등록금, 책값, 논문심사비 등 직접 경비는 평균 2천422만원, 생활비는 4천439만원, 여기에 공부하느라 취업을 유보한 기회비용과 생활비 등을 합치면 1억4천만원 이상 드는 것으로 추산됐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박사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의뢰해 조사한 ‘여성고급 인적자원의 활용실태 및 개선 방안’보고서를 보면 ‘박사님들 세계’에서도 성차별이 나타난다. 1980년 한해 동안 배출된 여자박사는 50명이었는데 2000년에는 1천503명으로 30배 늘었다. 또 2000년 국내파 여자박사는 20년 전에 비해 52배로 증가했다. 여자박사의 연평균 증가율은 22%로 11%인 남자박사의 2배에 이르고 있다. 남자박사는 1980년 780명에서 2000년 5천661명으로 7.3배 늘었고 국내박사는 8배 증가했다. 1945년 8·15 이후에 배출된 박사는 모두 9만여명이고 이 가운데 여자박사는 1만2천500여명으로 13.7%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여성들의 ‘고급두뇌’가 탄생하는 현상은 좋지만 문제는 ‘취업’이다. 여자박사의 취업현황은 대학교수(42.5%), 개업 등 자영업(11.5%), 연구소(3%) 등의 순이며 40%인 5천여명이 시간강사 등으로 불완전 취업했거나 취업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최근 고사위기에 처한 인문 사회분야 전공자가 37.7%나 되지만 수요는 계속 줄어 취업난이 가증되고 있다. 여자교수는 한해 340명 정도 채용되는데 매년 640명의 박사가 배출돼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 흡수되지 못한 박사들이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박사의 연평균 소득도 너무 적다. 남자 2천668만원, 여자 1천620만원이며 시간강사의 소득은 남자 956만원, 여자 866만원으로 월수입이 70만∼8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안이라는 것도 난감하다 대학의 전임교원 수를 늘리고 대학 재정지원 평가 때 ‘성평등 교수고용 우수 대학’에 가산점을 줘 여자박사의 과도한 실업난을 완화토록 요청하는 정도다. 강사료 현실화와 함께 기초연구소 증설, 민간업체 취업확대 등도 필요하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박사라는 최고 석학들이 이렇게 푸대접 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한국의 박사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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