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심폐소생술(CPR)

지난달 29일 밤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10만여명이 모였던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참사가 벌어졌다. 좁은 골목길에 인파가 서로 뒤엉키면서 수백명이 쓰러지고, 그 위에 또 쓰러졌다. 대참사로 150명 이상이 사망했고, 축제는 한순간 지옥이 됐다. 이날 압사 사고 현장에서 폴리스 라인 안쪽의 한 남성이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쳤다. “군대 갔다 오신 분 중에 심폐소생 할 수 있는 분 도와주세요. 여자분들 중에 간호사이신 분”이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20여명의 시민들이 폴리스 라인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수백명의 심정지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구급대원과 경찰 인력이 부족하자 시민들이 앞다퉈 심폐소생술에 나섰다. 심폐소생술(CPR·Cardio Pulmonary Resuscitation)은 병원 밖에서 심정지가 발생한 환자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심장이 멈추면 혈액 순환이 중단된다. 뇌는 4∼5분만 혈액공급이 차단돼도 영구 손상을 입게 된다. 정지된 심장을 대신해 심장과 뇌에 산소가 포함된 혈액을 공급해줄 수 있는 응급처치가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 및 자동제세동기(AED)를 이용해 응급처치를 하면 생존율이 80%까지 높아진다. 하지만 4분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1분 지연 때마다 생존 확률이 7~10%씩 낮아진다. 심폐소생술로 심정지된 사람을 살린 사례가 종종 있다. 지난달 14일 고령의 남성이 서울 강남구의 한 건물에 쓰러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간호사 경력이 있는 수서경찰서의 한 순경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고, 곧 도착한 119 구급대와 함께 응급조치를 해 남성은 의식을 되찾았다. 16일에는 올해 간호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간호사가 길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50대 여성을 심폐소생술로 구했다. CPR를 시행하면 하지 않을 때보다 환자 생존율이 3배 이상 높아지는 만큼, 일반 시민도 숙지해야 한다. 갑자기 쓰러진 심정지 환자의 생존은 목격자에 의해 좌우된다. 신속하고 정확한 응급처치가 내 가족, 내 이웃의 생명을 직접 구할 수 있다. 심폐소생술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핼러윈이 뭐길래

10월31일은 ‘핼러윈(Halloween)’ 데이다. 미국 어린이들이 1년 내내 손꼽아 기다리는 날 중 하나다. 핼러윈은 미국 축제로 알려져 있지만, 고대 켈트족이 새해(11월 1일)에 치르는 사윈(Samhain) 축제에서 유래됐다. 켈트족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사후 세계와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죽은 혼령이 돌아다닌다고 여겼다. 이에 음식을 마련해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려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았다. 이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핼러윈 분장의 원형이 됐다. 핼러윈의 특징은 사탕과 의상이다. 유령이나 괴물 등으로 분장한 아이들이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다니며 “간식을 주지 않으면 장난칠 거야(trick or treat)”라고 외치는 모습은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본 풍경이다. 어른들도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 미라 등의 특이한 의상을 차려입고 파티를 한다. 호박에 구멍을 파고 등불을 넣은 ‘잭오랜턴’과 해골 인형을 마당에 세워두는 등 동네에서 가장 무서운 집을 꾸미려 경쟁도 한다. 핼러윈은 한국과는 상관없는 날이지만 미국문화가 세계로 전파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상업주의와 결탁해 축제로 자리잡아 가면서 놀이공원·쇼핑몰은 물론 유치원에서도 파티를 연다. 핼러윈은 제2의 크리스마스가 됐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색다른 추억을 선물할 수도 있겠지만, 해외 직구를 통해 아이가 원하는 코스튬(옷)과 소품을 구매하느라 ‘핼러윈 스트레스’를 받는다. 20대 젊은층의 핼러윈 파티는 요란하다. 이태원이나 홍대 등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의 클럽이나 카페를 중심으로 핼러윈 파티가 열리면서 젊은층에게 빼놓을 수 없는 기념일이 됐다. 얄팍한 상술과 결합한 변종 외래문화가 자극적인 한국식 핼러윈 문화로 자리잡은 것은 씁쓸하다. 올해는 3년 가까이 이어져 온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젊은층을 거리로 이끌었다. 핼러윈을 앞두고 이태원에서 벌어진 대규모 압사 사태는 너무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더티봄

서양인들은 비겁한 행위를 보면 곧잘 ‘더럽다(Dirty)’고 표현한다. ‘더티봄(Dirty Bomb)’이란 군사용어는 그런 연유로 만들어졌다. 하긴 무기 중에 ‘더럽지 않은’ 게 과연 있을까. ▶더티봄은 군사학적으로는 방사능 오염에 특화된 핵무기를 가리킨다. 폭발력보다는 방사능 확진에 치중한다. 서울에서 열렸던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이미 논의됐었다. 10년 전이었다. 개발하거나 사용하느니 그냥 핵무기를 만들어 발사하는 게 가성비가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더티봄은 정식 핵무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니트로글리세린의 화학반응에만 의존하는 폭탄도 아니다. 재래식 무기에 방사성 물질을 넣어 만들어서다. 그래서일까. 실제로 쓰이진 않았지만, 이를 이용한 테러가 시도된 적은 몇 차례 있었다. ▶맨 처음은 1995년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였다. 일촉즉발(一觸卽發)이었다. 당시 체첸 반군이 세슘-137과 다이너마이트를 조합한 더티봄을 모스크바 이즈마일로브 공원에서 터뜨리려다 미수에 그쳤다. 2002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장소는 미국이었다.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영향을 받은 미국인이 시카고에서 더티봄 테러를 모의하다 체포됐다. ▶러시아가 느닷없이 연일 우크라이나가 더티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그 배경이 석연찮다. 러시아가 핵무기 등 더욱 강력한 전쟁 수단을 동원하기 위한 꼼수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거짓 깃발(False Flag)’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서방의 지원 의지를 약화시키려는 술책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평판을 깎아내리기 위한 술책일 수도 있겠다. 우크라이나의 드미트로 쿨레바 외교장관은 “더티봄을 사용할 건지 조사해보라”고 주장했다. 물타기 전략이든 뭐든 더티봄 사용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순 없다. 그게 실체적 정의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민선 2기 체육회장 선거와 우려

12월 치러지는 민선 2기 지방체육회장 동시 선거가 2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 체육회장 선거는 12월5일 동시에 치러지며, 228개 시·군·구 체육회장 선거는 22일 치른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출마 예정자들의 막판 저울질과 물밑 활동이 한창이다. 경기도체육회도 현 회장과 더불어 다른 후보들이 하마평에 오르며 분주한 행보를 보이고 있고, 시·군 체육회 역시 현역 회장이 대다수 출마할 전망인 가운데 이에 도전장을 내미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3년 임기에 그마저도 코로나19로 활동이 적었던 1기 때에 비해 민선 2기부터는 4년 임기에 선거 관리 역시 체육회 자체 선관위가 아닌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와 해당 시·군 선관위가 위탁해 공정성을 기하게 된다. 일부 규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현행 선거인단 구성 방식은 현역에 유리하다는 여론이다. ▶경기도체육회와 시·군 체육회는 바야흐로 선거 모드로 접어들었다. 아직까지는 정중동(靜中動) 행보지만 선거일이 점점 다가오면서 각종 설과 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다. 대부분이 유력 후보끼리의 비방이나 지자체장과의 관계 부각, 내정설 등이다. ▶민선 1기를 경험한 도내 체육인들의 2기 선거를 바라보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체육회 예산 지원권을 쥔 지자체장의 재선이 5명에 불과한 데다 정당이 뒤바뀐 곳이 22명, 같은 당에서도 4명이 새 얼굴로 지방 정치 지형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1기에서 단체장과 체육회장의 정치 성향이 다른 체육회가 곤란을 겪는 것을 본 체육인들은 또다시 선거로 인해 체육계가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지방 체육회의 정치적인 독립과 체육단체 자율성 확립’이라는 일부 위정자들의 허울 좋은 잘못된 선택(법 개정)으로 지방체육회가 또다시 시험대로 오른 상황 앞에서 기대감보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후진타오의 ‘엉거주춤’ 퇴장

한때는 차세대 지도자였다. 올해 우리 나이로 여든 살이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중국 주석 얘기다. ▶대표적인 기술관료(Technocrat) 출신 정치인이었다. 간쑤(甘肅)성 수력발전소 노동자로 시작해 공산주의청년단 서기에서 중앙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 국가부주석을 거쳐 중앙위원회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도 역임했다. 기술관료답게 과학발전론도 주창했다. ▶그랬던 그의 행보를 놓고 요즘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최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에서다. 폐막식 도중 갑자기 퇴장했는데, 이를 두고 여러 추측이 나왔다. 움찔하고 주저하다 마지못해 수행원들에게 이끌려 나가는 모습이 포착돼서다. ▶건강 문제든, 정치적 제스처든 어색했다는 게 외신들의 지적이다.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판정을 받았다는 관측도 나왔다. 국내외 매체들의 카메라가 켜진 상황에서 사전에 짜인 정치적 행위였다는 추측도 제기됐다. ▶공산당은 유독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익숙하다. 그의 퇴장도 그런 측면에서 읽힐 수 있다. 문제는 그 쇼에 어떤 의미가 담겼느냐는 점이다. 철저하게 짜인 대본에 따라 연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허투루 하는 일은 없다”는 반응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시진핑 주석이 당 대회 개막식에서 후 전 주석 시절 정책에 불만을 표시했다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후 전 주석이 리커창(李克强) 등 그의 핵심 세력들의 최고 지도부 인선 탈락에 불만을 품고 벌인 일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가 공식적으로 물러난 시기는 2013년이었다. 이번 당 대회에는 당 원로 자격으로 참석했을 뿐이다. 아무튼 중국에선 후 전 주석의 엉거주춤이 한동안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장기 집권체제에 들어간 시진핑 주석의 미래도 딱히 다르진 않아 보여 하는 넋두리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접시깨기’ 행정

김국환의 노래 중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라는 게 있다. 30년 전쯤 노래다.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부엌으로 가서 놀자. (중략) 자 이제부터 접시를 깨자. 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때만 해도 설거지하는 남편이 드물었는데, 부엌일을 함께하자는 말을 ‘접시를 깨자’고 표현한 것이다. 공직사회에 ‘접시깨기’ 행정이란 게 있다. 새로운 일에 손을 댔다가 실패해 문책을 당하느니,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공직자들의 보신주의를 지적하는 말이다. 일하다 실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있으니 접시 깨는 시행착오를 두려워 말고 적극적으로 일하라는 주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신년 업무보고에서 “설거지를 하다 보면 손도 베이고 그릇도 깨고 하는데 그릇 깨고 손 베일 것이 두려워 아예 설거지를 안 하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2020년 1월 취임사에서 “일하다 접시를 깨는 일은 인정할 수 있어도,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지난 7월 취임하면서 “일하다가 접시 깨는 행정은 용인하겠지만, 일하지 않고 접시에 먼지 끼게 하는 것은 참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일하다 접시를 깨더라도 도지사가 책임지겠다”며 적극 행정을 주문했다. 경기도 감사관실은 김 지사가 강조하는 ‘접시깨기’ 행정을 적용해 감사한다는 방침이다.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게 하는 식의 소극 행정은 문책한다. 반면 경제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위기 극복과 민생경제 회복 등 공공 이익을 위해 적극적 업무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수는 면책 적용한다. 접시깨기 행정 주문이 이어지는 것은 공직자들의 복지부동(伏地不動) 행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접시를 깨뜨리자는 도지사의 적극 행정 주문이나 소극 행정 문책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정권마다 접시깨기 행정 주문이 많았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열심히 일하다 접시를 깨면 피부에 와 닿게 적극 보호해줘야 한다. 시늉만 해선 안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아동판 삼청교육대 ‘선감학원’

여명구는 1968년 7월 선감학원에 입소했다. 당시 열 살이었다. 원아대장에는 1972년 5월31일 무단 이탈로 제적 조치됐다고 기록돼 있다. 실제는 선감학원을 탈출해 바다를 건너다 사망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50년 만에 밝혀낸 사실이다. 지난 20일 진실화해위가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정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에서 여명구라는 이름이 나오자 안영호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부회장은 눈물을 쏟았다. 안씨와 여명구는 초등학교 친구였다. 백발이 돼서 친구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진 것이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안산시 선감도에 설립됐다. ‘부랑아 교화’를 명분으로 8∼18세 아동·청소년을 강제 입소시키고 노역·폭행·학대·고문 등으로 인권을 유린한 수용소다. 이곳에선 1946년 경기도로 관할권이 이관돼 1982년 폐쇄될 때까지 지속해서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진실화해위는 최근 유해 발굴작업을 했다. 이곳엔 선감학원 관련 유해 150여구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는 4천689건의 아동 수용기록을 확인했고, 피해 사망자 5명도 추가 확인했다. 위원회는 선감학원 사건은 “인간의 존엄과 신체 자유 등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며 정부와 경기도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선감학원이 문을 닫은 지 40년 됐지만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아직도 선감학원에 있는 악몽을 꾼다는 이들은 모두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피해자 생활·의료서비스 지원, 희생자 추모 및 기념사업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피해자와 유가족을 위한 배·보상 특별법을 국회와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 선감학원 사건은 ‘아동판 삼청교육대’나 다름없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1980년대까지 잔혹행위가 있었다니 충격적이다. 늦었지만 국가폭력에 의한 대규모 아동인권유린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 다행이다. 더 세밀한 진실규명 작업과 함께 국가의 사과와 피해복구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피해자들에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지구방어실험 그후

먼 우주에서 어떤 물체가 지구로 날아와 충돌한다? 생각만 해도 공포스럽다. 물리학적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엊그제 의미 있는 실험이 성공을 거뒀다. 외신에 따르면 지구와 부딪치는 코스에 있는 소행성에 우주선을 충돌시켰다. 해당 소행성의 궤도를 바꿔 지구와의 부딪침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인류 최초의 지구 방어 실험이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성과다. ‘쌍(雙)소행성 궤도수정 실험(DART)’이라는 명칭이 부여됐다. 해당 우주선과 맞짱(?)을 뜬 소행성의 이름은 ‘다이모르포스’였다. ▶NASA 측은 “해당 우주선이 (소행성의 공전주기를) 11시간55분에서 11시간23분으로 단축시켰다”고 발표했다. 특히 공전주기 단축 시간은 당초 NASA가 추정한 10분보다 긴 32분으로 측정됐다. 11시간23분은 지구 방어를 위한 분수령이었다. ▶우주선이 부딪친 소행성 다이모르포스의 크기는 지름 160m였다. 축구장 규모다. 다이모르포스는 그리스어로 쌍둥이를 뜻하는 디디모스를 11시간55분 주기로 공전한다. 앞서 연구진은 이번 충돌로 공전주기가 10분가량 짧아질 것으로 예상했었다. 디디모스와 다이모르포스는 지구에 4천800만㎞ 이내로 접근하는 지구근접천체(NEO)로 분류된다. 하지만 지구와의 충돌 위험은 없었다. ▶6천600만년 전 공룡시대가 마감된 원인도 소행성과의 충돌이었다. 이 같은 위험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기 위한 전략은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이 중에서도 우주선을 운동충격체로 활용해 충돌 코스 궤도를 바꿔 놓는 공정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으로 꼽히고 있다. “사랑으로 똘똘 뭉쳐 소행성과의 충돌 위험에서 인류를 지켜야 합니다”. 불현듯 앨버트 해먼드가 1972년 발표했던 ‘For the peace of all mankind’의 노랫말이 귓전에 맴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방탄과 예의 사이

‘나라(國)를 위한 단 감(枾)은 없었다.’ 국정감사 얘기다. 예상대로 경기도민과 경기교육 가족, 경기경찰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제는 도지사도 아닌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위한 ‘단일 국감’이라는 오명만 남겼다. 오죽하면 지난 14일 국토교통위원회에 이어 18일 진행된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감을 ‘李차 대전’이라고 명명했을까. 또 행안위 국감에서 김동연 도지사는 “왜 자꾸 이재명 얘기만 하냐. 난 김동연이다”라고 외쳤을까. 예상은 한 번쯤 어긋나서 경기도의 발전과 안전, 교육의 초석을 삼는 공론화의 장이 되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답답할 노릇이다 ▶무엇인가, 상황 파악도 못한 채 대화를 이어 가다 보면 “쟤는 왜 이렇게 감이 없냐”라는 말을 하곤 한다. 시대적 흐름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각 정당의 논리만 내세우는 ‘감 떨어지는’ 의원들의 수준은 현장에 있는 기자들뿐만 아니라, 유튜브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국감을 시청하는 국민들에게 실소를 자아내는 것도 모자라 짜증만 유발할 뿐이었다. 수원지검 국감을 지켜보던 후배 기자가 계속 어이없는 웃음을 짓길래 “무슨 일 있어?”라고 물었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국감이 아니라 코미디 프로 같다”였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라면 예의라도 지켰어야 했다. 맹탕 국감,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방탄 국감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감사 시작 20분 만에 감사 중지를 띄우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논리만 내세우다 언성을 높이면 정회다. 더욱 가관인 것은 피감 기관이 바뀌었는데 이전 기관에서의 위원장 발언에 항의하며 시작 전에 민주당 의원들이 다 퇴장해 버렸다는 것이다. 경제는 어렵고, 국민 안전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이다. 교육은 다시 바로잡아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이를 공론화하라고 세금 줘 가며 일하라고 선출했더니 정쟁만 난무하는 감 떨어지는 판만 만들고 떠났다. 그걸 알아야 할 것 같다. 1년5개월 후 국민들은 냉정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을 말이다. 김규태 사회부장

[지지대] 여전한 한국사 왜곡

장난감이 없는 나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한국을 이렇게 소개했었다. 고(故) 김수영 시인도 그렇게 한탄했었다. 1960년대 얘기다. ▶한국서 민주주의를 기대한다는 건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비유도 있었다. 지금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K-팝과 영화 등으로 위상도 높아졌다. ▶최근 세계인들이 한국을 제대로 봐주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세계 유명 영어사전 검색 결과다. 콜린스나 아메리칸 헤리티지 등의 한국사 왜곡이 심각하다고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밝혔다. ▶최근 이들 영어사전 15권에서 ‘Korea’를 입력한 뒤 나오는 검색 결과를 분석한 결과 15권 중 11권이 동해(East Sea)를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했다. 동해 병기 표기가 20년 전 3%에서 현재 40%로 늘었지만 영어사전에선 여전히 동해는 일본해다. ▶역사 왜곡은 더 심각하다. 아메리칸 헤리티지는 한국 역사가 기원전 12세기부터 시작한다고 기록했다. 콜린스 영어사전은 “1876년 이전에는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기술했다. 다른 영어사전에선 한국 역사를 일제강점기부터 서술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아예 국가가 없었던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높다. ▶라임존 닷컴 영어사전 등은 ‘Korea’의 한국어 이름을 ‘Choson’이라고 표기한다. ‘Daehanminguk’(대한민국) 또는 ‘Hanguk’(한국) 등으로 표기해야 한다. 반크 관계자는 “영어사전의 한국사 왜곡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영어사전에 단어를 실을 때 올바른 정보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 비슷한 오류가 계속 검출되고 있다. 한류열풍으로 ‘Korea’를 검색하는 횟수도 늘고 있다. 잘못된 정보가 제공되면 그동안 쌓은 위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지구촌에서 한국 역사 왜곡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가.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마약과의 전쟁

음식이나 물건을 홍보할 때 ‘마약’이란 단어를 많이 쓴다. 마약 김밥·마약 떡볶이·마약 토스트가 있는가 하면, 마약 베개·마약 매트리스도 있다. 중독성 강한 맛이나 큰 만족감을 마약에 빗댄 듯하다. 마약을 좋게 표현했지만 그렇게 가볍게, 함부로 사용할 단어는 아니다. 마약 중독과 범죄가 급증해 심각한 사회 문제다. 마약에 취한 60대 딸이 80대 노모를 둔기로 살해하려 한 사건, 마약을 투약하고 대낮에 길 한복판에서 지인을 살해한 사건 등 강력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다. 유엔은 마약류 사범이 10만명당 20명 미만일 때 마약 청정국으로 지정한다. 한국은 2016년 25.2명으로, 이미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지난해엔 인구 10만명당 마약범 수가 32명으로 늘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1년 마약류 범죄 백서’를 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은 1만6천153명에 이른다. 올해 1~7월 통계는 1만575명으로 전년 동기(9천363명)보다 12.9% 증가했다. 지난해 압수된 마약류는 1천295.7㎏에 달한다. 2017년 154.6㎏의 8배다. 마약의 대중화 속에 10대, 20대 젊은층의 마약범죄도 크게 늘었다. 10대의 경우 5년 전보다 4배나 늘었다. 대도시 등 일부에서만 유통되던 마약이 지방과 학생, 회사원, 주부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됐다. 관물대에 필로폰을 보관해온 병사가 적발되는 등 군부대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SNS를 통한 마약판매, 가상화폐 등을 통한 대금결제 등 마약유통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면서 일반인 마약사범이 급증했다. 피자 한 판 값으로 SNS에서 마약을 살 수 있으니 마구 퍼지는 추세다. 검찰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특별수사팀을 설치, 유통조직을 뿌리 뽑아 마약 청정국 지위를 되찾겠다고 밝혔다. 강력한 수사와 엄한 처벌 없이는 마약 확산을 막을 수 없다. 여러 부처가 공조하는 대응책도 절실하다. 마약류 반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는 관세청에 마약전담국을 신설하고 전문인력을 키워야 한다. 텔레그램이나 다크넷 등 온라인 마약 유통을 근절할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김문수의 극단 발언

신영복(1941~2016)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으로 꼽힌다. 개인에 따라 견해차가 있겠지만 그를 존경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숙명여대 교수를 지내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아 복역하다 1988년 특별 가석방돼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했다. 출소하던 해 20년간 옥중살이를 하며 썼던 편지와 글을 모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했다. 이 책은 스테디셀러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 신영복이 소환됐다.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지난 12일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한다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라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발끈하면서 환노위는 파행됐고, 결국 김 위원장은 퇴장당했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13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과거 “문재인은 총살감”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여전히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제도권에서 멀어진 이후 SNS 공간에서 극단적 정치성향으로 진영 갈등을 증폭시키는 언행을 계속했다. ‘민주노총은 김정은 기쁨조’, ‘쌍용차노조는 자살 특공대’ 등의 색깔론과 반노조 발언으로 논란을 불렀다. 본인은 ‘소신 발언’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과격한 언행과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이 많다. 개인의 사상은 자유지만 공직자라면 때와 장소, 발언 수위 등을 가려야 한다. 특히 정부와 기업, 노동계의 첨예한 대립을 조정하고 타협을 이뤄내야 하는 경사노위 수장이라면 누구보다 절제와 균형을 갖추고 발언에 신중해야 한다. 경사노위는 노사정 대표가 모여 노동정책과 노사관계 등을 논의하는 기구다. 김문수 위원장 인선은 노동현장 경험과 국회의원·도지사를 지낸 경륜 등을 살려 노사정(勞使政) 대화를 이끌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김 위원장은 취임식에서 “겸허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며 나아가겠다”고 했지만 또 ‘막말’ 논란에 휩싸였다. 소신을 앞세워 과격한 발언을 이어가며 한쪽으로 치우치면 대타협은커녕 갈등과 분열의 골만 깊어진다. 김 위원장은 말조심에 책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제비, 꼬까참새, 쑥새, 노랑턱멧새, 멧새.... 이들 조류의 공통점은? 우리 곁을 떠나는 새들이다. ▶지구촌 생물종 다양성 감소는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물론 그 까닭은 환경파괴다. 이런 가운데, 한반도에서도 새들의 감소가 급속도로 진행 중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의 발표를 통해서다. 최 교수는 13일 열린 세계자연기금(WWF)의 지구생명보고서 발표회에서 이렇게 주창했다. ▶그는 보고서를 통해 1987년 10㏊당 2천289마리씩 발견됐던 제비가 2005년 들어 같은 단위면적에 22마리씩밖에 보이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18년 새 10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셈이다. 특히 제비 개체 수 감소에 대해선 이들의 주된 먹이이자 생태계 기반을 구성하는 곤충이 그만큼 감소했음을 보여준다는 게 학계의 분석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의 변화를 살펴보면 생태계 전체 다양성의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국내에서 서식 중인 일부 조류의 개체 수 급감은 최 교수 등이 2020년 5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한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논문에 따르면 1970년대 연구 목적으로 4만6천826마리씩 포획했던 꼬까참새는 2010년을 전후해 2천422마리밖에 잡히지 않았다. 포획량이 94.8% 줄어든 것이다. 꼬까참새처럼 참새목 되샛과 조류인 쑥새도 같은 기간 포획량이 6만1천55마리에서 2천572마리로 95.8% 줄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텃새인 노랑턱멧새와 멧새 등도 각각 연간 1.82%, 2.99%씩 감소했다. ▶최 교수는 “개체 수가 많아 생태계를 지탱해주는 흔한 종의 개체 수 감소는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언제까지 제비들이 남아 있을까”. 황지우 시인이 40여년 전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통해 읊조렸던 절규가 아직도 묵직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정쟁 국감’ NO, ‘민생 국감’ YES

최근 ‘정쟁 국감’을 진행하는 거대 양당의 행태가 심히 못마땅하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국정 전반에 관한 조사를 행하는 것으로 본연의 입법 기능 외에 정부를 감시 비판하는 기능을 하자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헌법과 ‘국정감사및조사에관한법률’에서 정하는 ‘국정’의 개념은 ‘의회의 입법작용뿐만 아니라 행정·사법을 포함하는 국가작용 전반’을 뜻한다. 대상 기관은 국가기관, 특별시 광역시도, 정부투자기관, 한국은행, 농수축협중앙회, 그리고 본회의가 특히 필요하다고 의결한 감사원의 감사 대상 기관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는 오는 14일 국토교통위원회와 18일 행정안전위원회로부터 국정감사를 받는다. 지난해 경기도 국감은 이른바 ‘대장동 국감’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저격하고 민주당 의원들은 이 지사를 보호하는 모습의 국감이었던 것이다. 올해 국감도 여야만 바뀌었을 뿐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맞서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 처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 특혜 의혹을 공격 대상으로 삼을 듯하다. 정작 국감을 받게 될 김동연 경기지사는 자신과 관계없는 사안에 대해 감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의 이 대표를 향한 공격에 대해 김 지사가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 지사가 이 대표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적극적 방어냐 소극적 방어냐도 관전 포인트다. 여당과 야당의 정쟁이 없는, 도민의 삶과 직결되는 ‘민생 국감’이 되는 걸 바라는 것은 사치일까. 이번 경기도 ‘국감’은 여야의 ‘정쟁 국감’이 아닌 지방 행정기관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하는 모범적 ‘민생 국감’이 되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정치부장

[지지대] 콜럼버스 데이 논란

이탈리아 젊은이가 삼각 돛을 단 범선을 타고 여러 항구를 돌아다녔다. 대항해 시대가 열리던 15세기 후반이었다. 그는 항해술과 먼 바다에 대한 정보 등을 익혔다. 지구 구체설(球體說)에도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더욱 서쪽으로 나아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포르투갈 국왕 주앙 2세에게 요청했지만 거절 당했다. 영국과 프랑스 왕도 문전박대했다. 마침내 에스파냐의 이사벨 여왕의 동의와 재정 지원을 받아 항해를 시작해 신대륙에 도착했다. 530년 전 오늘이었다.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얘기다. ▶그는 오늘날의 미국을 있게 한 인물이다. 미국은 매년 10월 두 번째 월요일을 ‘콜럼버스 데이’로 기념하고 있다. 1971년부터 연방공휴일로 지정돼 기념일로 운영되고 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의 로비가 의회를 움직였다. ▶요즘 이날을 놓고 논란이 심화하고 있다. 외신은 ‘콜럼버스 데이’를 향한 엇갈린 여론으로 미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고민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놓고 민족 간의 시각차 때문이다. 원주민들 입장에선 “비극의 시작이었다”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이전부터 존재했었다. 하지만 미국 전체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사건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백인 중심의 역사관에 대한 문제 의식이 확산하면서 미국 각지에서 콜럼버스 동상 철거 주장이 터져 나왔다. 시카고는 2020년 콜럼버스 조각상 2개를 철거했다. 볼티모어에선 시위대가 콜럼버스 조각상을 끌어내린 뒤 바다에 던졌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도 대응에 나섰다. 이탈리아계 단체들은 뉴저지와 펜실베이니아 등지에서 콜럼버스 조각상 철거 등에 반대하는 소송을 냈다. 이민으로 비롯된 미국 사회의 민족 간 갈등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때는 ‘아메리카 드림’으로 부풀려졌던 나라의 냉혹한 민낯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LG 의인상’ 故 현은경 간호사

지난 8월5일 이천시 관고동에 위치한 4층짜리 건물 3층에서 불이 났다. 4층에 있는 병원은 순식간에 유독가스와 연기로 가득 찼다. 화재 신고를 받고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33명의 환자가 치료받고 있던 병원으로 진입해 진화에 나섰다. 소방대원들이 병원 안으로 들어갔을 당시, 병원 관계자들은 고령의 환자들을 대피시키느라 분주하고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중 숨진 현은경 간호사(50)도 있었다. CCTV 영상을 보면 4층 신장투석전문병원에 근무 중이던 현 간호사는 유독가스에도 마지막까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대피를 도왔다. 현 간호사는 병상에 누워 움직일 수 없는 환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투석기와 연결된 튜브를 제거하고 있었다. 대한간호협회는 현 간호사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접하고 온라인 추모관을 개설했다. 추모관에는 ‘숭고한 이타적 자기희생 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등 3천여개에 달하는 글이 게재됐다. 현 간호사를 의사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천시는 간호협회와 함께 고(故) 현은경 간호사의 의사자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의사자(義死者)는 자신의 직무가 아닌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돕거나 구하다가 숨진 사람이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정부가 관련법에 따라 고인과 유족을 예우하고 지원하게 된다. 현 간호사가 의사자로 지정됐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의사자 지정 절차가 얼마만큼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이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고 현은경 간호사가 ‘LG 의인상’ 수상자로 결정된 것이다. LG 의인상은 2015년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한다’는 고 구본무 회장의 뜻을 반영해 제정됐다. 현재까지 LG 의인상 수상자는 총 181명이다. 충분히 대피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투석 환자를 보살피느라 자신을 희생한 현 간호사는 의인(義人)이다. 이제 의사자 지정을 통한 국가적 예우가 남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Y2K 감성 부활

Y2K. Y는 연도(Year), K는 아라비아숫자 1천을 뜻하는 킬로(Kilo)의 첫 철자다. 2000년을 1900년으로 인식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오류를 뜻한다. ▶20세기 말에 사용됐던 컴퓨터는 연도(年度)를 끝의 두 자릿수만 인식했다. 이 때문에 2000년이 되면 ‘00’으로 인식해 1900년과 혼동이 일어났다. 천년대(代) 오류란 의미에서 ‘밀레니엄 버그’라고도 불렀다. ▶같은 이름의 록밴드가 있었다. 고재근, 마쓰오 유이치, 마쓰오 코지 등 3인조로 구성된 한일 합동 다국적 그룹이었다. 1집 타이틀곡 ‘비련’으로 1999년 4월 데뷔했다. ‘헤어진 후에’도 사랑을 받았다. 한일 합작 록밴드라는 점과 꽃미남 친형제 등이라는 점도 독특했다. 2000년 서울 잠실에서 열린 한일 축구대표팀 친선경기에도 초대받아 공연했다. ▶최근 가요계에 Y2K 바람이 불고 있다.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감성의 복고(復古)다. 엑소, 아이브, 뉴진스 등이 Y2K 감성을 자신들의 콘텐츠에 녹였다. 이전의 가요계 복고 감성이 1970년대와 1980년대 사이 유행한 디스코 장르의 음악과 의상 등이었던 점과 차별화된다.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엑소의 시우민이 있다. 그는 솔로 데뷔 음반 ‘브랜드 뉴(Brand New)’를 발매하면서 1990~2000년대 초반 음악감성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했다. 걸그룹 트와이스도 가세했다. 미니 음반 ‘비트윈 원앤투(BETWEEN 1&2)’의 타이틀곡 ‘톡 댓 톡(Talk that Talk)’ 뮤직비디오를 통해 Y2K 영상미를 선보였다. ▶가요계 트렌드는 팬들과 그들이 구축한 팬덤에 의해 형성된다. 보통 10년을 주기로 바뀐다. 가요계는 1990년대 당시 10대들이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로 성장한 점이 맞아 떨어져 복고풍 스타일이 유행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시나브로 20년 전 대중가요 정서가 부활하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경력보유여성

어머니는 결혼 전 작은 공장에 다녔다고 했다. 아버지와 결혼한 뒤 직장을 그만두고 우리 삼형제를 낳고 키우며 전업주부의 삶을 살았다. 1960~70년대 직장에 다니던 여성은 결혼한 뒤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흔했고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설령 결혼하고 회사에 다니더라도 임신을 하면 퇴사하고 전업주부로 삶을 시작했다. 공장 근로자는 물론 교사나 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여성이나 은행, 대기업 등에 다니는 이른바 고학력 전문직 여성까지 업종별 차이는 있지만 직장인 여성은 일단 결혼하면 자의든 타의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그만큼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경제적 역할보다는 가정의 어머니 역할을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시대는 변했다. 남녀 평등을 넘어 양성 평등, 젠더(사회적 의미의 성) 개념까지 등장한다. 여성들의 사회적 목소리가 커지며 경력단절여성에 대한 개념도 나왔다. 경력단절여성은 육아, 가사, 돌봄 등으로 경제활동이 중단된 여성을 말한다. 경력단절여성의 경제 활동 재개를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며 한때 자주 사용했다. 최근에는 ‘경력단절’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자는 움직임까지 활발해 눈길을 끈다. 안양시의회가 여성고용가치를 재정립하는 차원에서 조례를 개정하면서 기존 조례에 있던 경력단절여성이란 용어를 경력보유여성으로 변경했다. 시의회는 최근 ‘경력단절여성 등 경제활동 촉진 조례’를 ‘경력보유여성 등 존중 및 경제활동 촉진 조례’로 변경하는 개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조금씩 양성 평등의 방향으로 걷고 있는 듯하다. 아직도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이고, 여성운동가들은 양성 평등이 아직 멀었다고 말하지만 남녀 차별에서 남녀 평등, 양성 평등, 경력단절여성에서 경력보유여성 개념까지 왔다. 때론 남녀 간 갈등이 격화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우리 사회가 발전해 가는 성장통이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스타링크

스타링크(Starlink). 일론 머스크의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제공하는 저궤도 위성통신 서비스다. 고도 300~1천500㎞에 위성을 띄워 통신 서비스를 제공한다. ▶취지는 기존 위성 통신망 및 수중 광케이블의 단점 개선이다. 유선 인터넷과 이에 기반한 무선 통신망 한계 극복도 중요하다. 2029년까지 4만2천개가 넘는 위성을 발사해 지구촌 어디서나 최대 1Gbps에 달하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러시아 침공으로 통신망이 파괴된 우크라이나에서 그 진가(眞價)를 발휘했다. 시민들이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던 건 상당 부분 신기술 스타링크 덕분이었다. 글로벌 시장 공략을 앞두고 테스트베드 성격으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지난 몇 달 동안 위성 인터넷 서비스와 단말기를 제공했다. 통신 두절 위기에서 가족·지인 간 안부 확인과 외국으로 전황 전달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우크라이나군이 포병과 드론부대 작전 등에 활용하면서 저궤도 위성 인터넷의 무한 가능성에 세계인의 시선이 쏠렸다. ▶저궤도 위성통신은 지상망이나 정지위성만으로 한계에 봉착한 6G기술 개막에 필수 요소다. 국내에서도 저궤도 위성통신 상용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평택 저궤도 위성 제조사 인텔리안테크놀로지 본사에서 개최한 디지털 국정과제 현장 간담회에서도 저궤도 위성망 구축 관련 기술경쟁력 확보가 건의됐다. ▶해당 서비스가 이미 상용화를 이뤄 국내 기업들도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지궤도 위성보다 이용 속도가 빠르고 지연 시간을 단축해 도심 항공교통과 자율운항 선박 등을 뒷받침하는 기술로도 꼽힌다. 도서, 산간 등 통신사각지대도 최소화하고 재난과 전쟁 등에 따른 지상 통신망 파괴에도 대응할 수 있다. 제2의 스타링크 개발이 시급하다. 그래야 인터넷 선진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인문학과 폐과

인문학(人文學·Humanities)은 인간의 삶과 사고, 인간다움 등 인간의 근원 문제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자연과학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현상을 다룬다면, 인문학은 인간의 가치탐구와 문화, 표현활동을 대상으로 한다. 문사철(文史哲)로 대표되는 인문학이 대학에서 찬밥 신세다. 최근 관련 학과의 통폐합이 가속화되고 있다. 인문계열 학과를 졸업하면 취업이 안된다는 게 이유다. 취업시장의 이공계 인력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문·이과 학과 간 불균형이 심화됐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서울 소재 대학들에서 인문사회계열 학과 17개가 사라지고 공학계열 학과 23개가 신설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어문계열 통폐합이 많았다. 한국외대는 2020년 지식콘텐츠전공, 영어통번역학전공, 영미권통상통번역전공이 융합인재학부로 통합됐다. 삼육대는 지난해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를 통합해 항공관광외국어학부를 신설했다. 이는 공대 학과 신설 증가세와 대조된다. 지난해 공대 학과를 신설한 대학은 고려대 3개, 중앙대 3개, 한양대 2개, 세종대 2개로 파악됐다. 삼육대는 인문사회계열이었던 경영정보학과를 IT융합공학과와 통합해 공학계열인 지능정보융합학부를 신설했다. 인문계열 학과의 폐과·통폐합은 지방 대학도 마찬가지다. 이로 인해 전임교원 수가 줄어 강의 선택 폭과 강의 수준 저하가 우려된다. 인문계열 학과의 축소는 대학을 ‘취업률’로 평가하는 정량지표도 문제다. 이런 문제를 제기한 강득구 의원(민주·안양만안)은 “폐과나 통폐합이 아닌 인문학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평가지표를 바꾸고 예산 지원과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문학은 사고력의 바탕이 된다. 그 자체로도 중요하고 융복합의 근본이 되는 소중한 학문이다. 대학들이 지나치게 효율성만 추구하고, 교육부까지 취업률로 대학을 평가하다 보니 인문학이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는 인문학의 실용화가 필요하다. 대학에선 인문학을 외면하는데, 기업과 자치단체 등에선 인문학 강좌를 늘리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느라 열공하고 있으니 뭔가 잘못됐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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