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생명표 위의 아이들

생명표라는 게 있다. 한국에서 사람이 나고 죽는 일에 대해 국가가 조사해 발표하는 자료다. 조사 당시 태어난 출생아들이 앞으로 몇 살까지 살고 어떤 원인으로 삶을 마감할지를 예측한다. 통계청이 작성한 2022년 표가 최신이다. 자료를 보면 2022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약 82년이다. 주요 사인은 암이다. 여러 요인 중 18%로 가장 높다. 암이 없다면 기대수명은 3년 넘게 증가한다. 2022년 사망 원인 통계만 봐도 악성 신생물, 즉 암이 사망 원인 1위다. 한창 뛰어놀 아이들을 암과 연결하는 것은 꺼림칙하다. 두 단어를 함께 배열시키고 싶지 않지만 현실에서 그런 법할 일이 벌어졌다. 지난 여름 경기일보 기자들이 땀나게 뛰어다니며 취재한 결과 아이들이 발암물질 놀이터 위에서 뛰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충격적이었다. 특히 부모들이 분기탱천했다. 기자들은 유럽으로 건너가 대안을 찾았고 국정감사에도 알려졌다. 그러던 11월 첫날, 경기도의회에서 ‘경기도 안전한 어린이 놀이터 조성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발암물질 놀이터의 직접적인 당사자이자 미래의 이해관계자라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나타났다. 유치원생들은 어른들 앞에서 ‘안전한 놀이터를 만들어 달라’는 피켓을 들고 섰다. 아이들은 피켓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몰랐을 것이다. 암이, 발암물질이 뭔지도. 단지 놀이터에서 못 논다는 게 억울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젠가 사실을 깨닫는다. 발암물질 놀이터는 이제 해결해야 한다.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원망을 듣고 싶지 않다면 지금부터 손을 봐야 한다. 아이들이 발암물질에서 벗어나 생명표가 보여준 수명보다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말이다.

[지지대] 올해도 김장 비용 올랐다

김장철이 돌아왔다. 김장은 엄동(嚴冬) 3~4개월간을 위한 채소 저장 방식으로 늦가을의 중요한 행사다. 이때 담근 김치를 보통 김장김치라고 부른다. 배추와 무가 주재료다. 부재료는 미나리, 갓, 마늘, 파, 생강 등이다. 소금, 젓갈, 고춧가루 등으로 간을 맞춰 시지 않게 겨우내 보관한다.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도 등재됐다. 이런 가운데 올해도 김장 비용이 예사롭지 않다는 분석이 나왔다. 어김없이 오를 전망이어서다. 4인 가족 김장에 드는 비용이 41만9천130원으로 예상됐다. 물가당국이 17개 시·도 전통시장에서 김장 재료 15개 품목 가격을 조사한 결과다. 지난해보다 19.6% 더 든다는 분석도 나왔다. 배추와 무 가격이 강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특히 주재료인 배추와 무 가격이 1년 전과 비교해 60% 이상 오르면서 전체 비용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배추 소매가격은 포기당 평균 7천50원으로 예상됐다. 당초 11월 전망치인 5천300원보다 비쌌다. 1년 전 가격과 비교하면 61.1% 비싸다. 무와 미나리 소매가격도 1년 전보다 각각 65.9%, 94.5% 올랐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지난 여름 폭염 여파다. 채소값 강세의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생육이 부진해 생산량이 감소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생강 소매가격은 1년 전보다 각각 29.9%, 21.9% 떨어졌다. 그나마 다행인가. 국내산 공급이 안정적인 데다 수입 물량도 늘어서다. 반가운 대목이다. 대형마트에서 김장 재료를 사면 4인 가족 기준으로 52만1천440원이다. 전통시장에서 구매할 때보다 10만원가량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물가의 어느 한구석에도 편한 대목이 없다. 서민들에겐 이래저래 힘든 계절이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드는 쓸데없는 상념이 있다. 김장 비용이 하락하는 일은 혹시 없을까.

[지지대] K라면 수출 10억달러

한 외국 소녀가 ‘까르보불닭볶음면’을 생일선물로 받고 기뻐서 눈물을 흘렸다. 이 영상이 지난 4월 숏폼 ‘틱톡’에 올라오자 단숨에 조회수가 5천만회를 돌파했다. 삼양과 농심이 각각 ‘플레이 불닭’, ‘푸팟퐁구리’란 이름으로 댄스 챌린지를 진행해 대박을 터뜨렸다. 플레이 불닭은 영상 조회수가 7억회에 달했다. 전 세계 참가자가 5만명을 넘었다. ‘K라면’ 돌풍이 대단하다.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 서양인의 입맛도 사로잡았다. K라면의 폭발적 인기로 올해 라면 수출이 10억달러를 넘어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1∼10월 라면 수출액이 10억2천만달러(1조4천억원)로, 작년 동기보다 30%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10억달러는 라면 20억7천만개에 해당하고, 면을 이으면 지구를 2천600바퀴나 돌 수 있는 정도다. 세계 인구 80억명 중 4분의 1은 한국 라면을 먹은 셈이다. 수출은 연말까지 12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라면의 폭풍 성장은 케이팝과 드라마, 영화 등 한류 열풍 덕분이다. 2020년 영화 ‘기생충’에 나온 농심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섞은 짜파구리가 K라면 주역이 됐다. 농심 SNS 계정에 전 세계 소비자들의 짜파구리 출시를 기원하는 글이 이어졌고, 농심은 짜파구리 신제품을 출시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온 삼양라면의 인기도 한몫했다. BTS 멤버 정국이 라이브방송에서 불닭볶음면을 즐기는 모습과 미국의 유명 여성 래퍼 카디 비가 불닭볶음면을 먹는 영상도 세계적 화제가 됐다. 식품업계에선 K라면의 폭발적 인기 비결로 한류 열풍 효과, 해외 입맛에 맞춘 현지화 전략, 발 빠른 생산·판매망 구축 등을 꼽는다. 특히 현지인 입맛에 맞는 제품 개발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서양식 풍미를 가미한 까르보불닭볶음면은 품절 대란을 빚을 정도였다. 요즘엔 ‘한강 라면’이 인기다. 한강 라면은 한강공원에 위치한 편의점, 마트에 설치된 즉석 조리기로 끓여 먹는 3천~5천원의 봉지라면이다. K라면 인기에 인도네시아 라면 1위 업체는 걸그룹 뉴진스를 모델로 내세워 포장에 ‘한국 라면’ 네 글자가 박힌 한국식 라면을 출시했다. 라면과 함께 만두, 김, 김치, 과자 등 K푸드도 덩달아 인기라니 반갑고 기분 좋은 소식이다.

[지지대] 학교 내 스마트폰 금지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우울하고 짜증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청소년과 젊은층일수록 더 심하다. 캐나다 맥길대 연구팀이 전 세계 24개국 스마트폰 사용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스마트폰 중독률은 5위다. 요즘 교사와 학부모들은 ‘스마트폰과의 전쟁’을 치른다. 학생들이 집에서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스마트폰 화면만 들여다봐 대화가 사라지고 교실에선 수업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한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에 대한 청소년의 과의존 현상은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여성가족부가 초4·중1·고1 124만9천327명을 대상으로 한 ‘2024년 청소년 미디어 이용습관 진단조사’ 결과를 보면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청소년은 22만1천29명(17.7%)이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년도 디지털 정보격차·웹 접근성·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서는 청소년(10∼19세)의 과의존 위험군 비율이 40.1%나 됐다.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제지하는 교사와 지시에 불응하는 학생 간 갈등이 종종 발생한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도교육청 인권센터에는 교내 스마트폰 사용 금지에 반발하는 학생들의 민원과 진정이 많다. 인권위는 최근 기존 입장을 뒤집고 학교 내 휴대폰 사용을 제한하는 휴대전화 수거가 인권침해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학생들의 스마트폰 과의존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해외에선 이미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는 규정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프랑스는 학생들의 스마트폰 과의존을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 내년부터 초·중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등교하면 스마트폰을 별도의 사물함에 보관하게 해 학교 안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차단하는 ‘디지털 쉼표’ 제도다. 영국은 올해 초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 또는 제한하도록 학교에 지침을 내렸다. 최근엔 모든 학교가 ‘휴대전화 없는 지대’가 돼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우리나라에서도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민의힘 조정훈 의원이 이런 내용을 담은 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교육부도 법안 필요성에 동의했다. 학교 내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법도 필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과몰입으로 인한 중독에 빠지지 않게 교육도 병행해야 한다.

[지지대] 노래로 재건축된 ‘아파트’

케이팝이 또 일을 냈다. 세계적인 차트 상위권에 올라서다. 그것도 반세기 전에 발표됐던 대중가요와 같은 이름의 곡으로 말이다. 뭔 뜬금없는 넋두리냐고 반문하는 분들이 많겠다. 실타래를 풀어 보자. 전기기타 반주에 맞춰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라는 노랫말로 시작되던 유행가가 있었다. 가수 윤수일이 불렀던 ‘아파트’라는 곡이다. 발표 시기는 1982년 이맘때였다. 최근 블랙핑크의 로제가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듀엣으로 ‘APT.’를 불렀다. 그 사이 세월은 반세기가 흘렀다. 이 노래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100’에 8위로 올랐다. 케이팝 여성 가수로는 최상위권이다. 물론 ‘아파트’와는 완전히 다른 곡이다. 가사도 영어다. 전체적인 리듬도 경쾌하다. 노래 끝 부분에 들어가는 ‘아파트 아파트~’가 유일한 한국어라는 분석도 있다. 중독성도 있다. 다시 반세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 ‘아파트’ 인기가 하늘을 찌를 당시는 산업화시대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영어로 ‘따로 떨어졌다’는 뜻의 외래어인 아파트는 모두의 로망이었고 중산층의 상징이었다. 찬바람이 불어도 러닝셔츠 차림으로 지낼 수 있다거나 도둑 걱정도 없다는 등의 이야기들도 많았다. ‘아파트’는 그때 탄생했다. 유행가는 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아파트’ 탄생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을까. 한 젊은이가 어느 날 한강을 끼고 있는 연인의 아파트를 찾았다. 그런데 가족은 이미 외국으로 이민을 간 뒤였다. 휑했다. 그때의 심정이 노래에 녹여졌다. 가수 윤수일의 기억이다. 강산이 몇 차례 바뀌면서도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각종 운동경기에서 목청껏 부르는 국민 응원가가 됐다. ‘아파트’는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로 시작한다. 반세기 후 ‘APT.’에는 ‘아파트 아파트~’라는 후렴이 들어갔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조합이 제법 아름답다. ‘아파트’가 노래로 근사하게 재건축됐다.

[지지대] 인천 강화 주민들을 살려라

제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여야의 정쟁으로 뒤덮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지난 24일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대상 국감이다. 인천 강화군의 주민 A씨가 참고인으로 출석, 국방부 관계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피해와 대책 마련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7월부터 사이렌, 북·장구 소리 등 최대 전철 소음 정도의 기괴한 소음을 24시간 동안 송출과 멈춤을 반복하며 대남방송을 하고 있다. 현재 강화군 송해면, 양사면, 교동면 등 3개 면에 사는 8천800여명 가운데 약 52%인 4천600여명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A씨도 국감에서 “일상이 무너졌다”, “딸은 입에 구내염이 생기고 아들도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 잔다”고 피해를 증언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지난 3개월간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16 강화군수 보궐선거에서도 여야 모두 대책 마련을 약속했지만 아직 근본적인 대안은 없다. 현재 정부와 인천시 등은 주민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등의 지원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북한 대남방송으로 인한 소음이 없어지거나 소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은 아니다. 박용철 강화군수는 최근 민간단체가 풍선으로 북한에 날려 보내는 대북전단부터 차단하자는 대책을 내놨다. 조금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야기지만 주민들을 위해 꺼냈다. 핵심은 대북전단 살포 방지를 위해 위험구역을 설정하는 것이다. 북한이 대북전단에 맞대응하면서 쓰레기 풍선을 날려 보낸 데 이어 이 같은 대남방송을 하는 등 일이 커진 만큼 대북전단을 막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인천 계양을)가 31일 오전 신정훈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등과 함께 강화 대남방송 피해 지역을 찾는다. 정쟁에서 벗어나 강화 주민을 위한 진정한 대책이 국회 차원에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지지대] 억새 그리고 환삼덩굴

약육강식의 처절한 전쟁. 식물의 세계에도 적용된다. 억새와 환삼덩굴이 그렇다. 으름장을 놓는 차원을 넘어 틈만 나면 상대의 영역을 무단 침범한다. 가해 측은 환삼덩굴이다. 억새는 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키 1~2m에 줄기는 원기둥 모양이다. 수세적이고 수동적이다. 잎은 길이 40~70㎝에 너비는 1~2㎝다. 잎 가운데 굵고 흰색 맥이 있다. 꽃은 줄기 끝에서 작은 이삭이 빽빽이 달린다. 가을에 무리를 지어 피는 꽃이 근사하다. 환삼덩굴의 잎은 손바닥 모양이다. 줄기는 억센 털이 촘촘하게 돋아 있다. 외형부터 공격적이고 호전적이다. 길가에서 잡초들과 자란다. 억센 줄기도 눈길을 끈다. 다른 식물을 휘감아 말라죽게 하면서 서식지를 넓혀서다. 제거하지 않으면 기존 고유 식물들의 터전이 좁아진다. 환삼덩굴이 억새 군락지를 점령(경기일보 10월24일자 7면)했다. 그것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특례시 팔달구 장안동 수원화성 화서문에서다. 억새들이 무리를 지어 피어 있던 억새밭 일대가 군데군데 파여 있고 훼손됐다. 환삼덩굴의 확산으로 억새들이 잠식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근에 있는 둘레길을 따라 언덕길을 올라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길 주변에 펼쳐져 있는 억새들이 윗부분에만 간신히 남아 있어 억새 군락지라고 보기에도 무색할 정도다. 이 현장은 2~3년 전부터 그랬다. 그때부터 억새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호소도 이어졌다. 화서문 일원 억새들이 외래종 확산으로 위협받고 있다. 억새들은 2004년 서문 아파트를 철거하며 진행된 화서공원 복원공사를 통해 심어졌다. 하지만 20년 만에 파괴되고 있다. 시의 무관심 탓이다. 전문가들은 일정한 시기에 두세 번 나눠 방제가 시급하다고 조언한다. 자연의 복원력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외래종 확산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 생태계도 후손들로부터 빌린 유산이다.

[지지대] 편의점 단골 된 5060

1989년 5월,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세븐일레븐 1호점이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편의점이다. 여기서 편의점의 상징인 삼각김밥을 처음 출시했다. 세븐일레븐 올림픽점으로 불리는 이 편의점은 지금도 있다. 편의점 붐이 일어난 건, 1992년 MBC 미니시리즈 ‘질투’ 덕분이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최수종·최진실이 극 중에서 컵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편의점에서 데이트를 했다. 깔끔하고 세련돼 보이는 가게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즉석에서 먹는 것 자체가 센세이션이었다. 1990년대 편의점이 들어설 때는 주로 젊은층이 이용했다. 젊은이들의 맞춤 공간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당시 ‘편의점은 젊은층이 많이 가고, 구멍가게는 노년층이 많이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편의점은 세월 따라 크게 변화했다. 초창기만 해도 편의점은 도시의 산물이라 여겼지만 이젠 농어촌에도 편의점이 엄청 많다. 시골 구멍가게들이 편의점으로 전환돼 ○○상회 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 편의점 점포 수는 지난해 말 기준 5만5천여개에 이른다. 도시의 골목 곳곳에 포진한 편의점들은 과포화로 과열 경쟁이 우려될 정도다. 편의점은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편의점은 물건만 구매하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서 놀고 즐기고, 택배를 보내고, 은행업무까지 가능한 생활플랫폼으로 진화했다. 편의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성비’를 생각한다. 삼각김밥, 컵라면, 도시락, 초저가 커피, 네 캔에 1만원 맥주, 1+1이나 2+1 행사, 제휴통신사 할인까지 가격경쟁이 치열하다. 이벤트도 많다. 고객 연령대가 다양해졌다. 10대들이 하굣길에 들러 컵라면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요즘 가장 많이 늘어난 고객은 50~60대다. 고령화에 물가까지 급격히 오르면서 편의점 도시락이나 빵, 우유 등으로 끼니를 해결하려는 중장년층이 크게 늘어서다. 점심시간 즈음엔 5060 고객이 끼니도 해결하고 담소도 나누다 가는 동네 사랑방이 된다. 지금의 중장년층은 젊은 시절부터 30년 넘은 편의점 변천사를 지켜봐 온 고객들이다. 50·60대가 편의점 단골이 돼 도시락을 먹고 빵으로 식사를 때우는 풍경이 조금 쓸쓸해 보인다.

[지지대] 반가운 아기 울음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을 저출산 ‘월드 챔피언’이라고 했다. “한국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다”며 “‘월드 챔피언’이지 말아야 할 부분에서 ‘월드 챔피언’이 됐다”고 했다. OECD는 ‘2024 한국경제보고서’에서 “한국은 60년 뒤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고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전체 인구의 58%를 차지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으며 “노년부양비가 급증해 노동력 공급과 공공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라고 했다. OECD의 경고는 통계청 전망보다 부정적이다.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를 통해 60년 뒤인 2084년 인구를 3천80만명(중위추계 기준)으로 전망했다. 2022년 기준(5천167만명)의 60% 수준이다. 다행히, 뚝 끊겼던 아기 울음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있다. 8월 출생아가 1년 전에 비해 1천124명(5.9%) 늘어난 2만98명을 기록했다. 8월 기준 12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이다. 4, 5월 연속 늘어난 출생아 수가 6월 감소 뒤 7월에 이어 두 달째 증가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연간 출생아 수가 10년 만에 상승 반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8월 혼인 건수도 1만7천527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2천917건(20%) 늘었다. 7월엔 1만8천811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33% 증가했다. 국가소멸 위기론까지 대두될 정도로 심각한 저출산 상황에서 결혼과 출생아 수 반등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저출산이 바닥을 찍은 건 아닌가 하는 희망까지 품게 한다. 출생아 수 반등이 코로나19 장기화로 결혼과 출산이 급감했다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효과인지, 앞으로 계속 이어질 추세인지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대출·청약 등에서 불리했던 이른바 ‘결혼 페널티’를 ‘결혼 메리트’로 바꾸는 정책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혼율·출생률 증가 흐름이 이어지게 하려면 신혼·출산 가구 대상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육아휴직 급여를 높이는 등 각종 지원책을 더 늘려야 한다. 획기적이고 과감한 정책으로 아이를 더 많이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더 많은 아기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이 곧 국가경쟁력이다.

[지지대] 독도의 날

오키(隱岐)제도. 10여년 전 경기도내 지자체 관계자들과 찾았던 일본 섬의 이름이다. 관할 지자체는 시마네현이다. 일본에선 최서단이다. 독도에서 157㎞ 떨어졌다. 선착장에 내리자 ‘다케시마(竹島)는 일본 땅’이라고 적힌 현수막들이 이방인을 맞이했다.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정치적 사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말자고 했지만 까닭 모를 분노가 치밀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독도와 관련된 양국 간의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서 시마네현 의회는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 조례안을 가결했다. 2005년 10월이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정무관을 이 섬에 파견하고 있다.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발족 직후인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연속이다. 이에 맞서 우리 정부도 같은 해부터 일반인에게 독도 방문을 전면 허용하고 대일(對日) 신독트린을 발표했다. 다시 한번 고난의 역사를 복기해 보자. 일본은 1905년 일방적으로 독도 명칭을 다케시마로 바꾸고 시마네현에 편입시킨 뒤 계속 근거 없는 영유권을 주장해 오고 있다. 앞서 대한제국은 1900년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릉도(鬱陵島)를 울도(鬱島)로 바꾸고 죽도(竹島)와 석도(石島)를 통치한다고 선포했다. 석도는 ‘돌로 된 섬’이라는 뜻의 ‘돌섬’을 한자로 옮긴 표현이다. ‘독섬’을 다시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도(獨島)’가 됐다. 독도가 행정지명으로 처음 언급된 건 1906년 심흥택 울릉군수가 정부에 올린 보고서를 통해서다. 이런 가운데 최근 오키제도가 독도 영유권 주장 집회를 14년 만에 열었다고 외신이 전했다. 정부에 각료(국무위원) 참석도 요구했다. 독도 문제 전담 조직을 설치하고 일본 어민이 안전하게 어업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구서도 전달했다. 11월9일에는 영유권 확립운동 집회도 열 계획이다. 10월25일 오늘은 독도의 날이다. 아픈 손가락이지만 독도는 누가 뭐래도 늠름한 우리의 강토다.

[지지대] “양쯔강도 때론 거꾸로 흐른다?”

문화대혁명. 20세기 중반 지구촌을 강타했던 정치적 사건이다. 마오쩌둥은 이념 경쟁을 통해 중국을 이처럼 좌경 모험주의로 내몰았다. 1966년부터 중국 전체는 혼돈으로 엎치락뒤치락했다.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아물지 않은 깊은 상처를 남겼다. 강산이 한차례 바뀌는 동안 지속됐다. 중국 당국은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을 철저히 금지해오고 있다. 중국인들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에 대해 문화대혁명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과오(過誤)를 범했다는 이유로 꺼릴 정도다. 최근 중국의 저명한 법학자가 중국 공산당의 문화대혁명 연구 금지는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허웨이팡(賀衛方) 전 베이징대 법대 교수다. 그는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공산당이 문화대혁명을 완전히 부정하면 다음 세대는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며 이처럼 언급했다. 그는 오랜 기간 문화대혁명을 모티브로 중국 정치와 사법 개혁을 주장해왔다. 그의 지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덩샤오핑 세대 이후 정치개혁 부재로 부패가 만연해졌고 이익집단이 특권을 유지하려는 동기가 강해져 더 심각한 딜레마에 빠졌다”고 짚었다. 이어 “문화대혁명의 쓰디쓴 교훈이 중국에 민주주의와 법치, 인권을 중시하는 역사의 흐름과 거꾸로 갈 때마다 국민들이 고통받고 국가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걸 일깨워준다”고 강조했다. 중국 현대사를 연구한 서양 학자들의 지적도 날카롭다. “아직 희망은 남아 있겠지만 퇴행적인 현상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황허(黃河)와 창장(長江·양쯔강)이 거꾸로 흐르지 않을 걸로 믿지 말라. 때때로 그렇다. 그러나 일반적으론 여전히 (태평양으로 가는) 동쪽으로 흐른다”. 역사는 특별한 성찰과 반성이 없으면 반복된다. 이웃 나라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강 건너 불 구경하듯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언제 폭풍처럼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지대] 어패류 생산량도 ‘뚝’

지난 여름 폭염의 후유증일까. 바닷물 온도의 상승으로 양식 등의 어패류 생산량이 급감하고 있다. 광어와 우럭 등이 딱 그렇다. 가을 생선인 전어도 피해 가지 못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집계에 따르면 양식 광어의 2022년 생산량은 3천635t이었으나 지난해 3천499t, 올해는 3천400t(추정치)으로 줄었다. 지난달은 바닷물 고수온을 견디지 못해 폐사한 어린 광어가 급증하면서 250g 미만 생산량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35.6% 줄었다. 우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같은 기간(1천10t)과 지난달(1천185t)보다 적은 1천t가량 생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어도 어획량이 확 줄었다. 올해 들어 지난 8월까지 3천380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천470t)의 절반 수준이다. 2020년 4만1천t에서 지난해는 1만5천100t으로 감소했다. 홍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올해 들어 폐사한 홍합은 2천245줄(1줄은 약 14만2천마리)로 집계됐다. 바닷물의 고수온 탓이다. 지난해는 폐사한 홍합이 없었다. 굴도 그렇다. 올해 고수온으로 폐사한 굴이 7천628줄로 지난해(916줄)의 무려 8배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이달 홍합 생산량이 지난해 같은 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달 생산된 홍합도 폐사하거나 양성 상태가 불량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집계됐다. 오징어와 바지락 등도 어획량이 감소했다. 오징어는 지난달 2천643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평년 등에 비해 각각 39.0%, 74.9%로 줄었다. 어업계는 오징어가 수온이 낮은 어장을 찾아 기존 어장을 이탈하면서 어획량이 급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모두 기후변화 때문이다. 갈수록 바다 환경도 악화되고 있다. 달라진 변화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개선이 필요한 규제는 무엇인지 등도 명쾌하게 분석해야 한다. 정치권도 정쟁에서 벗어나 이 난제들을 풀어야 한다.

[지지대] 사회적 타살 ‘고독사’

고립과 빈곤의 벼랑 끝에서 죽음을 맞는 이들이 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를 보면 죽음이 평등한 것 같지만, ‘어떻게 죽었는가’를 보면 평등하지도 않다. 홀로 쓸쓸하게 맞는 죽음, 고독사(孤獨死)가 그렇다. 고독사 예방법에 따르면 고독사는 가족, 친척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사회적 고립 상태로 생활하던 사람이 자살, 병사 등으로 임종을 맞이한 경우를 칭한다. 2022년에는 고독사 사망자를 ‘홀로 사는 사람’에 한정했으나, 지난 2월 혼자 살지 않더라도 사회적 고립 상태에서 생활해 왔던 사람까지 범위를 확대하는 쪽으로 법이 개정됐다. 보건복지부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2년간 고독사 발생 현황과 특징을 조사한 ‘2024년 고독사 사망자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사회와 단절된 채 살다가 쓸쓸히 사망하는 고독사가 한 해 3천6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독사는 정부가 공식 집계를 시작한 2021년 3천378명, 2022년 3천559명, 2023년 3천661명으로 3년째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전체 사망자 100명당 고독사는 1.04명이다. 정부는 고독사가 늘어나는 주요 원인으로 1인 가구 증가를 꼽고 있다. 1인 가구는 2021년 716만6천명에서 2022년 750만2천명, 2023년 782만9천명으로 매년 증가세다. 지난해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35.5%를 차지했다. 1인 가구는 은퇴나 실직, 가족 해체 등으로 고립돼 있는 경우가 많다. 고독사를 사회구조적 고립이 낳은 ‘사회적 질병’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 칭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고독사는 여전히 장년층인 50~60대에서 집중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50~60대 남성 고독사 비율은 전체 고독사의 53.9%나 됐다. 이들은 홀몸노인 등과 달리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전체 고독사 중 극단적 선택을 한 사망자는 14.1%였다. 이 중 20대 59.5%, 30대 43.4%가 자살 사망자였다. 청년층이 고독사에 이르는 과정은 취업 실패나 실직과 연관이 크다고 한다. 생계 해결에 실패하면서 세상을 등질 생각에 빠진다는 것이다. 고독사를 줄이기 위한 연령대별 맞춤형 예방대책과 촘촘한 사회안전망이 절실하다.

[지지대] 新노년층 ‘액티브 시니어’

내년이면 드디어 한국도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유엔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14% 이상)에서 초고령사회로 들어가는 데 걸린 기간이 7년이다. 고령화 속도가 엄청 빠르다. 세계 최고 고령 국가 일본을 앞설 수 있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일본 역전까지 20년 남았다. 일본이 50년에 걸쳐 느낀 것을 우리는 20년 만에 답습하게 될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에 세태도 급변하고 있다. 사회담론도 변하고 있다. 과거 사회담론이 ‘미래, 탄생’이었다면 요즘의 사회담론은 ‘현재, 죽음’이다. 복지, 연금, 고독사 등이 뜨거운 이슈가 되는 것은 사회가 고령화됐기 때문이다. 고령사회를 사는 노인들의 변화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2023년 노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조사 대비 65세 이상 노인의 연간 소득, 개인 소득, 금융 자산, 부동산 자산 등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최종학력 등 교육 수준도 전반적으로 향상됐고, 일하는 노인 비중도 39%나 됐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상속하고 자식들의 부양에만 노후를 기대는 노인은 줄어들고 있다. 일하면서 자산까지 불리는, 이전 세대에 비해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은 ‘새로운 노년층’이 등장하고 있다. 은퇴 이후에도 소비·여가생활을 즐기며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신(新)노년층의 가장 큰 변화는 자녀들에 재산을 상속하는 대신 자신과 배우자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노인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4명 중 1명이 그렇게 답했다. ‘(자식에게 물려주지 말고) 다 쓰고 죽자’는 ‘쓰죽회’ 멤버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 지금 행복하겠다’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는 더 이상 젊은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녀에게 재산을 상속하기보다 부양의 짐을 지우지 않는 것도 부모가 줄 수 있는 선물이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자기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는 것도 어려운 세상이기에.

[지지대] ‘과일릭’ 열풍

샌드, 빙수.... 과일로 즐길 수 있는 퓨전 메뉴들이다. 종전에는 있는 그대로 먹었다. 그런데 디저트나 케이크 등 다양한 버전으로 진화하고 있다. 토핑을 얹은 아이스크림이나 요거트, 다양한 주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최근 젊은이들로부터 각광 받는 탕후루도 그렇다. 원래는 중국 전통 간식이었다. 산사나무 열매를 긴 막대에 꿰어 달콤한 시럽을 바른 후 굳혀 만들었다. 요즘은 딸, 키위, 귤, 포도가 활용되고 있다. 외식업계도 다양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특히 과일 값 상승과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합리적 가격에 과일을 즐기려는 수요가 늘면서 이들 제품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 ‘과일릭’은 이런 트렌드를 가리킨다. ‘과일’과 중독되다를 뜻하는 ‘홀릭’이 만나 합성된 신조어다. 이런 가운데 과일릭 열풍(본보 16일자 8면)이 불어오고 있다. 과일이 소비자들을 홀리고 있어서다. 생과일이 포함된 메뉴를 과일 대체재로 먹는 소비자가 늘면서 과일이 카페나 주류업계 등 외식·식음료업계 전반에서 대세로 나서고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요거트 아이스크림에 딸기나 망고, 멜론 등을 토핑으로 올려 먹는다. 생과일을 산처럼 쌓아 올린 케이크, 생과일 주스 등 다양한 형태의 과일 디저트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과일릭 확산에는 비싼 과일을 비교적 싼 디저트로 대체하려는 심리가 작용됐다. 올해 ‘애플레이션(Apple+In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과일 값이 뛰었다. 이상기후에 따른 작황 부진으로 국내 대표 과일인 사과 값도 치솟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사과 10㎏ 도매가격은 9만1천700원으로 지난해 4만1천60원보다 123.3% 급등했다. 감귤이 귀했던 시절에도 이랬을까. 어렸을 적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과일릭이란 낱말은 한글과 영어가 만난 합성어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제법 묵직하다.

[지지대] 수능 기도 명당

수능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부모들은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기도 명당을 찾기 시작한다. 이는 그저 마음을 다독이는 행위가 아니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 시기에는 종교를 떠나 누구라도 마음속으로 한 번쯤은 신에게 간절히 빌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대구 팔공산 갓바위는 수험생 부모들 사이에서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믿음으로 유명하다. 1천365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는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모들은 자녀의 성공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가파른 산을 오르는 과정 자체가 부모들의 간절함을 상징하는 듯하다. 기도처로 가는 길이 힘들수록 그들의 기원도 더욱 절실해진다. 이들은 비단 갓바위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의 유명한 기도 명당을 찾아 나선다. △서울 삼청각 △남해 보리암 △관악산 연주대 불꽃바위 △인천 석모도 보문사 △안성 칠장사 △파주 구도장원길 △여수 향일암 △합천 해인사 △김제 성모암 △문경새재 책바위 등은 대표적인 장소다. 기도 명당을 찾는 부모들의 마음은 단순히 자녀의 성적 향상을 바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수험생이 겪고 있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대신 짊어지고, 그들의 심리적 안정과 건강을 기원하는 부모의 사랑이기도 하다. 수능은 단순한 시험이 아니라 수험생과 그 가족 모두에게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도 명당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부모에게는 자녀를 위한 마지막 응원이고, 기도로써 그들의 간절한 바람을 하늘에 전하는 방법이다. 시험 당일, 그들이 바랐던 모든 소원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지대] 잠복결핵

기원전 7000년 흔적이 발견됐다. 석기시대 화석에서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 질환이다. 처음 발견한 이는 독일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흐였다. 1882년 1월이었다. 같은 해 3월 학회에 발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결핵 얘기다. 폐결핵 환자로부터 나온 미세한 침방울 혹은 비말핵에 의해 직접 옮겨진다. 비말핵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면 결핵균이 들어 있는 입자가 공기 중에 나와 수분이 적어지면서 날아다닌다. 가을에 두드러진다. 감염된다고 다 걸리진 않는다. 접촉자의 30% 정도가 옮겨지고 감염된 사람의 10% 정도가 환자가 된다. 나머지는 평생 건강하게 지낸다. 발병자의 50%는 감염 후 1~2년 내 발병하고 나머지 50%는 그 후 일생 중 특정 시기, 즉 면역력이 감소하면 발병한다. 과거에 비해선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 기준으로 환자 수는 3만6천44명(10만명당 70.4명)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잠복결핵 감염 세부 정보를 소개한 책자를 개정해 발간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잠복결핵이다. 인체 내 방어 면역 반응에 따라 몸속에 들어온 결핵균이 증식하지 않고 결핵으로 진행하지 않는 경우다. 신체 내 결핵균이 잠을 자는 상태다. 실제 결핵과 달리 2주 이상의 기침이나 발열 같은 증상 및 전염성은 없다. 일반적으로 잠복결핵 감염자의 10% 정도에서 실제 결핵이 발병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의료기관, 학교, 어린이집 등 결핵 발생 위험이 높고 발생할 경우 집단 내 전파 가능성이 큰 집단시설 종사자는 의무 검진 대상이다. 잠복결핵에서 실제 결핵 발병으로의 진행을 막으려면 잠복 중인 결핵균을 사멸시키기 위한 치료제를 복용해야 한다. 치료를 완료하면 최대 90%까지 결핵을 예방할 수 있다. 날씨가 선선해지면 발병할 확률이 높다. 질병당국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지대] 문해력과 책읽기

초등학생인 조카와 여행할 때의 일이다. 고속도로를 주행하는데 ‘사고다발지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조카는 사고가 다발로 일어나는 곳이냐고 했다. 함께 있던 가족들이 한참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라는 의미는 같다. ‘사고 많은 곳’이라 하면 될 것을 ‘다발(多發)’이란 한자어를 쓴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걱정이 많다. 문해력(文解力)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 단어 자체의 뜻부터 쉽지 않다. 한국교총이 최근 전국 초중고 교원을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조사’를 했다. 5천848명의 교원 중 92%가 학생 문해력이 과거에 비해 떨어졌다고 답했다. 단어를 설명하느라 진도를 못 나가고, 문제를 이해하지 못해 시험 치르기 곤란할 정도라고 했다. 사례는 많다. 금일을 금요일로 알고 있고, 족보를 족발보쌈세트로, 두발 자유화를 두 다리가 자유로운 것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가로등은 세로로 서 있는 데 왜 가로등이냐는 질문, 우천시는 어디에 있는 도시냐는 질문도 있단다. ‘사건의 시발점’이라고 설명하는 교사가 욕(시발)을 했다고 오해한 경우도 있다. 중3 학생이 나라의 대표 도시인 ‘수도’의 뜻을 모르거나 고교생이 ‘혈연’, ‘풍력’의 뜻을 모르는 사례도 있었다. 문해력 저하의 원인으로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과 독서 부족을 꼽는다. 하지만 성인들도 책을 읽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아이들에게는 핸드폰을 그만 보라고 하면서 어른들은 종일 끼고 산다. 어른이나 아이 모두 스마트폰 중독이다. 성인 10명 중 6명은 1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게 우리 현실이다. 책 읽기를 통해 얻어지는 사고력과 창의력 등이 모두 문해력이다. 어른들이 먼저 책을 읽어야 아이들도 따라 읽는다. 아이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고 배우기 때문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책 읽는 분위기 확산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서점 오픈 런을 하고, 예약 대기를 걸어가며 책을 잔뜩 사놓고 읽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는 풍경을 보고 싶다. 문해력 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지지대] 한강의 기적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웨덴 한림원의 선택은 한강이었다. 한국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전국이 들썩였다. 온라인상에는 시민들의 열광적 반응이 쏟아졌다. “드디어 한국에서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며 “우리도 이제 노벨문학상 수상자 보유국”이라며 기뻐했다. “노벨문학상 원서를 한글로 읽다니 감동이다”, “한강의 기적이다. 너무 자랑스럽다”는 글도 이어졌다. “오늘부터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금지”, “국문과 나오면 무엇을 하는가? 노벨문학상을 타는 것이다” 등의 반응도 있었다. 노벨문학상 소식에 한강의 책 주문이 폭주하면서 교보문고, YES24 등 대형 서점 온라인 홈페이지가 한때 마비되는 혼란이 빚어졌다. 일부 오프라인 서점은 문을 열기 전부터 한강의 책을 구매하기 위한 ‘오픈 런’ 행렬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한강의 작품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웃돈을 얹은 책들이 나왔다. ‘채식주의자’ 구판본을 12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내 여자의 열매’ 초판본을 20만원에 판매한다는 글이 올라 왔다. 서점가에서 한강의 작품은 수백에서 수천 배의 판매 증가세를 보였다. 물량이 부족해 대부분 예약 판매로 진행되고 있다. 한강의 주요 저작물을 가진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국내 3대 문학 출판사는 즐거운 비명을 터뜨리고 있다. 인쇄소들은 주말을 반납하고 24시간 풀가동했다. 출판계가 불황을 겪으며 인쇄소도 어려움이 많았는데 한강이 구세주 역할을 한 것이다. 한국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인당 독서량이 세계 최하위권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3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중 일반도서를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을 뜻하는 종합독서율이 43%에 그쳤다. 2021년 대비 4.5%포인트 감소한 것으로, 1994년 독서실태조사 이후 역대 최저다. 한강의 수상은 한국 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줬다.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책 읽는 분위기가 확산되면 좋겠다. 그래야 진정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한 나라답지 않을까.

[지지대] 집 없는 직업군인들

참 자주 옮겨 다녔다. 그럴 때마다 트럭에 이삿짐을 잔뜩 실었다. 정들었던 동네를 떠날 때마다 동갑내기들이 달음박질하며 따라오곤 했다. 어렸을 적 추억이다. 필자의 선친은 직업군인이었다. 근무처가 바뀔 때마다 어머니는 전셋방을 구해야 했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이사를 가야 했다. 살던 마을이 익숙해지면 이별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부쩍 늘었다. 그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직업군인들의 이사는 줄지 않고 있다. 잦은 전출도 원인이지만 쥐꼬리만 한 월급에 집을 마련하지 못해서다. 여전히 민간인이나 일반 공무원과는 큰 차이를 보여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이 자료에 따르면 10년 이상 복무한 직업군인의 지난해 자가 보유율은 42.2%로 나타났다. 직업군인의 자가 보유율은 2016년 31.9%에서 조금씩 상승해 7년 동안 10%포인트가량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 수치는 2022년 조사된 국민 자가 보유율 57.5%보다 15%포인트 이상 낮았다. 소득 1∼4분위 하위소득 계층 국민 자가 보유율(45.8%)보다도 낮았다. 일반 공무원(63.0%)이나 군인과 같은 제복 공무원인 경찰(64.6%), 소방공무원(58.9%)과도 큰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직업군인 계급별 자가 보유율은 장성 68.8%, 대령 67.6%, 중령 62.2%, 소령 42.5% 등으로 나타났다. 준사관인 준위 60.2%, 부사관인 원사가 56.2%이고 상사는 39.4%로 분석됐다. 대한민국 국군은 세계 5위권이다. 그런데 최일선에서 국토를 수호하는 직업군인들은 절반 이상이 집도 장만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게 현실이다. 직업군인의 낮은 자가 보유율 및 군인 가족의 잦은 이사에 따른 주거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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