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시장만 바라보는 인천시

지난해 9월 정부는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며 부처 장관에게 인사권 등 많은 권한을 주는 자율과, 이에 따른 책임을 강조했다. 모든 일을 대통령이 할 수 없는 만큼 부처 장관들이 알아서 하되 책임지고 일하라는 의미다. 물론 그동안 많은 정부들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정책이 있었기에 당연한 것이란 생각만 든다. 하지만 지방정부인 인천시를 보면 이 같은 자율과 책임은 아직 볼 수 없다. 민선 8기가 출범한 지 고작 8개월 남짓이라고 하지만 연간 수천억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시 정부의 각 실·국장이 오롯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 실·국장은 중앙정부에 비춰 보면 사실상 부처 장관과 같다.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상황에 맞는 정책을 추진하고, 만약 틀린 부분이 있으면 책임지면 될 일이다. 지금의 시 정부는 오로지 유정복 인천시장의 결정만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나오는 모든 결정을 시장에게 물어야 하고, 그 결정이 나올 때까지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다. 그동안 난방비 폭탄 등의 이슈가 발생해도 시의 대응은 느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유 시장이 최고 결정권을 가진 시장이란 직책으로 민선 6기 4년을 꼬박 보낸 만큼 그 어떤 고위 공직자보다 시 정부의 흐름이나 정책을 꿰뚫고 있을 것이다. 다만 유 시장이 정책의 큰 방향을 정한다면 실·국장이 최선을 다해 정책을 펴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민선 8기라는 큰 배의 선장인 유 시장. 선장은 배의 선로를 결정하지만 키를 잡고 배를 직접 조종하거나 무전기를 직접 잡는 것은 하지 않는다. 조종 등은 전문성이 있는 직원이 책임지고 하는 것이다. 인천시라는 공직사회가 수동적인 지금의 모습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바뀌어 실·국장들이 정책을 주도하며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직사회가 인물이 아닌 시스템적으로 하나로 뭉친 뒤, ‘으쌰으쌰’ 하며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필요하다.

[지지대] 짠맛에 대한 소고

“음식들이 짜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고요.” 몇 년 전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던 딸이 귀국하면서 털어놓은 첫마디였다. 우리만큼 맛에 섬세한 민족도 없다. 특히 짠맛이 더욱 그렇다. 김치부터 장류에 이르기까지 일찌감치 짠맛이 나는 음식에 우리의 미각이 길들여진 탓일까. 짜다는 건 음식에 소금 성분인 나트륨 함유량이 많다는 뜻이다. 장년층의 어렸을 적 추억 중 흔한 게 소금과 관련된 밥상머리 에피소드다. 그 가운데 으뜸은 어른들로부터 “짜게 먹지 말라”는 잔소리였다. 너무 흔하게 들었다. 당시 어른들은 “짜게 먹으면 혈압도 높아지고 몸에 좋은 게 하나도 없다”고 으름장을 놓곤 했다. 그러면서도 당신들은 간이 맞지 않는다면서 국에 소금을 뿌리곤 했다. 싱겁다는 이유에서다. 개구쟁이들로선 이해할 수 없는 반전이었다. 한국인 식단이 10년 새 33% 정도 싱거워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질병관리청의 최근 국민건강영양 조사 결과다.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평균 3천38㎎으로 조사됐다. 2012년 조사 당시 4천549.4㎎에서 10년 새 33.2%나 줄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5년까지 나트륨 섭취량을 3천㎎(소금 7.5g) 이하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인의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여전히 세계보건기구 권장량이자 한국인 목표 섭취량인 하루 2천㎎의 1.5배가 넘는다. 나트륨 과잉 섭취 비율도 2012년 87.1%에서 2021년 73.2%로 줄었지만 여전히 4명 중 3명꼴이다. 당국은 건강을 위해 국과 찌개는 건더기 위주로 먹으라고 권고하고 있다. 간편식 조리 시 채소를 추가하거나 나트륨이 적은 제품을 선택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는다. 그래도 한국인의 식탁에는 늘 소금이 놓인다. 간을 맞추기 위해서다. 요즘 세상살이가 너무 싱거울 정도로 허탈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반대여서일까.

[지지대] ‘다음 소희’

지난 8일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는 대기업 통신회사의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간 특성화고 학생 소희가 3개월 만에 목숨을 끊은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소희(김시은 분)는 폭언과 성희롱, 부당한 대우를 받다 세상을 떠나고, 형사(배두나 분)가 그 죽음의 전모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영화는 2017년 전주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고 실습생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고객의 계약 해지를 막는 업무를 담당했던 여고생은, 숨지기 전 부모에게 ‘콜 수를 못 채워 늦게 퇴근할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거나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 것이 알려지면서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의 열악한 근로여건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후에도 현장실습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위험에 노출되는 일은 반복됐다. 같은 해 제주 음료공장에서 실습생이 공장 기계에 끼여 목숨을 잃었고, 2021년에는 여수의 요트장에서 잠수자격증도 없는 현장실습생이 요트 바닥 청소를 하러 물에 들어갔다가 숨졌다. 영화는 모두 현실이 될 수 없지만, 종종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지금도 어딘에선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치열하게 버텨내는 이들이 있기에, 사회의 단면을 그려낸 영화들은 큰 울림을 준다. 영화 ‘다음 소희’도 그렇다. 소희가 다니던 학교는 취업률이라는 지표를 사수해야 살아남을 수 있어 학생들을 도구처럼 취급하며 성과에만 집착한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첫발을 내딛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정주리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주말 특성화고 졸업생·재학생들과 ‘다음 소희’를 관람했다. 김 지사는 덕수상고 3학년 재학 중 촉탁직으로 취업했던 사실을 전하며, “저 스스로가 오래 전 ‘소희’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내에서 넥스트(다음) 소희가 한 명도 나오지 않도록 민생을 돌보겠다”고 했다. 현장실습 학생들의 안전과 권익을 위해 정치권과 교육계도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지지대] 학생 삼청교육대

1980년, 18세 학생이 고등학교 재학 중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버스에 실려 어디론가 가는데 함께 버스에 탄 이들은 하나같이 앳된 얼굴의 학생이었다. 입소한 곳은 강원도 화천의 제11공수여단 62연대 산하 유격훈련장. 교육은 구타로 시작됐다. 훈련장에 도착해 군복으로 갈아입은 순간부터 총을 든 군인들이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 연병장으로 가는 계단을 기어서 내려가라 하고는 느리다고 때렸다. 기합 소리가 안 맞는다고, 목소리가 작다고 때리기도 했다. 하루는 중대장의 군홧발에 차이고 또 차여 연병장 끝에서 끝까지 100m를 뒷걸음친 적도 있었다. 43년 전 학생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김모씨(61)의 얘기다. 김씨는 “살면서 그렇게 맞은 적이 없다. 잊을 수 없는 악몽”이라고 몸서리를 쳤다. 그는 지난해 6월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삼청교육이 중대한 인권침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의 문을 두드렸다. 지갑 속에 삼청교육대 수료증을 보관하고 있었다. 김씨는 제2기 진실화해위가 확인한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 학생 600여명 중 한 명이다. 청소년만 모아놓은 삼청교육대가 제11공수여단에 있었다는 건 그간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김씨는 “수료증을 갖고 있어 다행”이라며 “80년대 전두환 군부 정권이 자행한 학생 삼청교육대의 실체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했다. 삼청교육대는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설치해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가 사회정화를 빌미로 1980년 8월1일 만들었다. 1981년 1월25일 해산하기까지 4만여명이 교육을 받았다. 삼청교육은 폭력범과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소탕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구금과 구타, 강제노역 등 무자비한 인권탄압이 이뤄졌다. 교육 수료자들은 낙인이 찍혀 취업·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도 트라우마로 고통을 받고 있다. 2기 진실화해위가 미처 밝혀내지 못한 진실 규명에 나섰다.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낱낱이 밝혀내는 한편 국가로부터의 치유·명예회복·보상도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지지대] 순다르반스와 맹그로브

순다르반스. 우리에겐 생소한 지명이다. 하지만 환경단체에는 보석 같은 공간이다. 방글라데시 남서부 끝, 벵골만에 위치했다. 갠지스강, 브라마푸트라강, 메그나강 등이 만나는 삼각주다. 이곳을 더욱 소중하게 만드는 건 수생식물인 맹그로브의 군락지라는 점이다. 순다르반스에서 맹그로브숲 전체 면적이 약 1천400㎢에 이른다. 맹그로브는 조석 수로와 갯벌, 염분 등에 잘 견딘다. 그래서 지구촌의 숱한 멸종위기 동식물들이 이곳에서 서식 중이다. 현재까지 지속적인 생태 과정의 뛰어난 예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곳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도 지정됐다. 맹그로브는 아열대나 열대지방 해변 및 하구 습지 등지에서 자라는 관목이다. 조수에 따라 물속에 잠기기도 하고 나오기도 한다. 특수한 호흡근이 있고 어떤 종은 종자가 모체에서 발아하는 태생종자(胎生種子)를 갖췄다. 순다르반스는 노출된 모래톱을 포함한 토지 면적이 전체 면적의 70%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 부분은 수역으로 이뤄졌다. 경관도 웅장하고 빼어나다. 무엇보다 동식물의 높은 다양성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고대 유산을 간직한 랜드마크이기도 하다. 거대한 맹그로브숲은 실제로는 모양과 크기가 다른 여러 섬이 모자이크 형태로 이어져 있다. 미로처럼 얽힌 수로와 민물로 끊임없이 씻겨진다. 육상동물과 수생·해양동물의 훌륭한 서식지인 까닭이다. 벵골호랑이, 인도악어, 인도왕뱀, 이라와디돌고래 등의 낙원이다. 이곳은 한마디로 맹그로브의 영토다. 이 녀석들이 튼실하게 바닷물과 바람, 뜨거운 햇볕 등을 막아주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이곳도 없다. 인간은 늘 자연으로부터 배운다. 끝없는 갈등과 탐욕의 세상이 순다르반스로부터 깨쳐야 할 점은 명쾌하다. 모든 악의 근원은 배려를 망각한 정치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지지대] 국민취업지원제도

최근 회사를 퇴직한 선배를 만났다. 환갑을 앞둔 선배는 “우리나라 좋은 나라야”라며 말문을 열었다. 구직활동을 하면 정부에서 구직 지원금을 준다는 것이었다. 회사 면접 확인서를 제출하면 한 달에 50만원을 준다고 했다. 재취업을 준비 중인 선배는 아침에 집을 나와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가끔 지인들을 만나며 하루를 보낸다. 정부에서 주는 구직촉진수당 50만원이 큰 도움이 된단다. 사무실로 돌아와 포털사이트를 통해 관련 내용을 검색했다. 장기구직자나 경력단절 여성, 청년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계층의 구직 활동을 지원해 주는 국민취업지원제도가 있었다. 맞춤형 취업지원 서비스와 소득 지원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취업지원 서비스는 심층상담을 통해 구직의욕과 능력을 파악해 1년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득 지원은 중위소득 60% 이하 저소득층에 생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수당을 지원해 주고 있다. 청년구직활동지원금과 유사한 것인데 매달 구직활동의무 이행 시 월 50만원에서 최대 90만원(월 50만원씩 6개월·부양가족 1인당 10만원씩 월 최대 40만원 추가 지원)까지 6개월간 지원된다. 한국고용정보원 국민취업지원제도 사이트를 이용하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 취업자 증가폭이 8개월째 감소했다. 고용률도 62%를 기록해 지난 6월 이후 7개월째 내리막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청년 시절 IMF 위기로 취업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때는 지금 같은 지원제도는 물론 일자리가 없어 취업을 못했다. 어려운 경제 여건이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일자리가 있다. 정부가 구직촉진수당도 지급하고 있다. 벼랑 끝에 몰려 있다고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취업의 문을 두드려야 한다.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다양한 지원 정책을 살펴보고 삶의 보람과 생계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구직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지지대] 오르한 파무크의 쓴소리

튀르키예의 한 작가가 정부의 부실한 구호 조치에 날을 세웠다. 오르한 파무크다. 2006년 ‘검은 책’이라는 장편소설로 조국에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가여서 울림이 묵직하다. 외신에 따르면 그는 미국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구호물자를 실은 트럭이 피해 지역에서 수백마일 떨어진 도로에 몇 시간째 멈춰 있었다.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자 시민들이 공무차량과 경찰, 공무원 등의 길을 막고 항의했다”고 비판했다. 이 나라와 이웃 나라인 시리아에선 지진 참사로 인한 희생자가 14일 기준으로 이미 3만7천명을 넘겼다. 그는 “처음 규모 7.8의 지진이 한밤중에 발생한 지 9시간 만에 규모 7.5의 지진이 뒤따랐을 때 종말론적인 수준이었다”고 했다. 군중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음식을 찾으려 거리를 헤맸고, 폐허가 된 16층 건물의 잔해들을 맨손으로 파헤치고, 피난처가 될 공간을 찾았다고 전했다.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로 촬영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게시물은 종말론적 장면이라고도 말했다. 그의 비판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이 1915년 아르메니아인 100만여명과 쿠르드족 13만여명을 학살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었다. 지난 2001년이었다. 튀르키예 정부는 현재까지도 학살사건을 축소·은폐해 국제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이 발언으로 그는 우파들에게 살인 협박을 받았다. 튀르키예 문학계는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서구권 입맛에 맞는 발언으로 받은 게 아니냐고 맞섰다. 튀르키예는 동양과 서양 경계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문명 간의 충돌,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 서구화로 인한 전통의 상실 등이 부각돼 왔다. 그는 이런 문제들을 다룬 소설을 꾸준히 발표했다. 튀르키예 정부는 지식인들의 쓴소리도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 한때는 아시아와 유럽을 통치했던 오스만 제국의 후예 아닌가.

[지지대] 줄어드는 ‘착한가게’

저렴한 가격, 청결한 운영, 기분 좋은 서비스로 소비자에게 만족을 주는 가게. ‘착한가격업소’다. 흔히 ‘착한가게’로 불린다. 정부가 2011년부터 서비스 가격이 지역 평균보다 낮거나 시장가격 안정에 기여한 업소에 인센티브를 주는 ‘착한가격업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물가안정을 위해 가격이 저렴하지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를 우리 동네 좋은 업소로 지정, ‘착한가격업소’라는 스티커를 붙여준다. 자치단체별로 쓰레기봉투 무상 제공, 상하수도요금 감면, 업소 홍보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지난해 말 기준 착한가격업소는 전국 6천146개소다. 691개소는 경기도에 소재한다. 최근 착한가격업소들이 줄고 있다. 경기도에 작년 상반기 706곳이 있었는데 반년 사이 15곳이 줄었다. 식자재값 폭등과 함께 전기료와 가스비 등 공공요금이 인상돼 착한 가격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월급 빼고 안 오른 게 없다는 고물가 시대에 가격을 올리지 않은 착한가게들. 서민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가게들이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짜장면 한 그릇이 2천500원으로 주변보다 크게 저렴한 가게는 한 명이라도 더 싼 가격에 식사할 수 있도록 20년 넘게 2천원대 가격을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깊은 고민에 빠졌다.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이 지난해보다 40% 이상 오르는 등 식자재값이 폭등한 데다 전기·가스비까지 인상돼 가격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함께 살자는 마음으로 버티다가 가격을 올리는 착한가게들도 속출하고 있다. 실제 10여년간 5천원을 유지하던 냉면값을 6천원으로 올려 1월부터 착한가게 지정이 취소된 사례가 있다. 가게 살림이 나빠져 5개월째 밀린 월세를 갚지 못해 폐업을 고민하다 착한가게를 포기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이어 물가폭등 여파까지 덮치면서 착한가게들이 큰 고통이 겪고 있다. 착한가게 유지를 못하고 무너지는 가게가 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물가안정 운운하며 무조건 ‘착함’을 강요해선 안된다. 착한 가격을 유지해 가게도 살고 소비자도 도움이 되게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지지대] 기억 공간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화성 씨랜드 화재, 대구 지하철 화재, 세월호 침몰, 이태원 압사 참사. 국민들의 뇌리에 기억되는 끔찍한 사건·사고다.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는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세우겠다고 약속하지만 비슷한 사고가 되풀이됐다. 159명이 숨지고 294명이 부상을 입은 이태원 참사가 2월5일로 100일을 맞았다.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다짐했건만, 또 대규모 인명피해를 피하지 못했다. 안타까운 건, 죽음을 대하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자세다. 수백명에 달하는 젊은이의 죽음, 그리고 그들의 가족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가 못내 안타깝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올해로 9년, 추모공간은 아직도 첫삽을 뜨지 못했다. 진상규명이 장기화하면서 정쟁에 휘말렸다. 여기에 안산 화랑유원지에 조성될 ‘4·16 생명안전공원’은 봉안시설 유치를 반대하는 일부 주민의 반발로 표류했다. 우여곡절 끝에 추모공간은 2014년 4월16일 참사 발생 10년 만인 내년 4월 착공된다. 이런 상황이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공간은 어떻게 될까 싶다. 지난해 10월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참사 이후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과 시민을 위로할 수 있는 추모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지만 현실은 갈 길이 멀다. 온전한 추모도, 진상 규명도 없이 유가족의 슬픔과 시민들의 공분만 쌓여왔다. 당장 분향소 공간 문제로 서울시와 유족 간의 갈등이 크다. 분향소가 추모의 공간이 아닌 갈등의 공간이 돼선 안 된다. 불행한 사고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고통, 그 부재에 대해 슬퍼하고 기억하려는 유족을 보듬으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기억 공간은 참사 희생자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한 반성과 성찰, 다짐의 공간이다. 유가족은 물론 시민 모두를 위한 저장소다. 베를린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세우고, 9·11테러로 무너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9·11메모리얼 파크’를 조성한 것도 같은 이유다.

[지지대] 정찰 풍선이 뭐길래

중국이 띄운 풍선들을 놓고 지구촌이 시끄럽다. 용도가 정찰용이어서 더 그렇다. 왜 미국 상공에 띄웠는지를 놓고도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일단 중국은 기상용 관측장비였는데 갑자기 경로를 이탈했다고 해명했다. 미국은 다양한 가설을 토대로 반박하고 있다. 격추 장면까지 실시간으로 생중계했다. 당사국은 해당 풍선이 자국에서 날아갔다는 점을 인정하고 일부 유감을 표명했다. 기상 관측에 주로 쓰이는 민수용 비행선이라는 해명도 곁들였다. 미국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해당 풍선이 알래스카 근처 알류샨 열도를 지나 캐나다를 가로지른 뒤 미국 본토 몬태나주 상공에서 포착됐다고 분석했다. 예상 경로에 핵심 군사시설들이 있다는 논리로 응수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격추한 것과 비슷한 풍선이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지에서도 잇따라 포착됐다. 세계 곳곳에서 목격담이 나오면서 풍선을 이용한 중국의 정보 수집이 오랜 관행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코스타리카는 자국 상공에서 중국 풍선이 비행했다면서 중국이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또다시 맞장구를 쳤다. 최근 미국 영공을 침범한 풍선이 세계 곳곳에서 활동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와 관련해 파악한 정보를 동맹 및 협력국과 공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만과 일본 등도 중국 풍선이 몇 년 전에도 자국 상공에서 포착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CNN은 최근 수년 동안 5개 대륙에서 최소 24번 임무를 수행했고 이 중 6건이 미국이 대상이었다고 보도했다. 정찰 풍선은 18세기 프랑스가 처음 운용했다. 냉전시대 가장 활발하게 사용됐지만 첩보위성 등에 자리를 내줬다. 하지만 인공위성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수준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어 아직도 특정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튀르키예 지진 참사에도 정찰 풍선의 여진이 계속되는 까닭이다.

[지지대] 아! 튀르키예

지난 6일 튀르키예 동남부 지방에서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수천명이 숨졌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이번 튀르키예 강진은 원자폭탄 32개를 터뜨렸을 때의 충격과 맞먹는다고 하지만 그 파괴력은 쉽게 가늠할 수 없다. 아직 사고를 수습 중인 상황에서 사망자가 수만명에 달할 수 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예측도 나온다. 현지에서 속속 안타까운 사연들이 알려지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튀르키예는 아직 ‘터키’라는 국가명이 익숙하다. 지난 2022년 튀르키예 정부가 유엔을 통해 국명을 변경하면서 우리나라도 튀르키예로 부르고 있다. 튀르키예는 1950년 6·25전쟁 때 연합군으로 참전해 우리나라를 도운 우방 참전국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더욱 친근하다. 튀르키예 사람들도 대한민국을 형제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6·25전쟁 당시 튀르키예군은 전쟁고아를 모아 학교를 세우고 돌봤다. 그 고마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자취는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 남아 있다.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이름을 딴 앙카라 학교 공원이 그곳이다. 6·25전쟁에서 튀르키예군의 인도적 활동은 영화로까지 만들어져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3, 4위전에서 만난 대한민국과 튀르키예는 승패를 떠나 형제의 나라로 서로 존중하며 훈훈한 정을 나누기도 했다. 이런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가 대재앙에 속수무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정부가 나서 긴급 구호물품과 지원단을 파견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이런 지원도 부족해 보인다. 수원시 등 지자체는 물론 민간에서도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형제국의 도리다.

[지지대] 2∙8독립선언 104주년

오전부터 뭉게구름이 몰려 들었다. 바람도 을씨년스러웠다. 한 청년의 일기에 남겨진 그날의 날씨다. 1918년 2월8일 일본 도쿄에서였다. 그즈음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의미 있는 정강(政綱)을 발표했다. 민족자결주의. 민족의 문제는 민족 스스로 해결하자는 주창이었다. 일본에 유학 중이던 조선 청년들이 도쿄로 모여 들었던 시점도 바로 그때였다. 춘원 이광수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앞서 그는 1년 전 조선에서 현상윤, 최린 등과 독립운동을 논의했다. 같은 해 11월 도쿄로 돌아와 와세다대에 다니고 있던 최팔용과 조선 유학생들을 규합해 독립선언을 기획한다. 그리고 마침내 2·8독립선언서가 탄생됐다. 3개월 남짓 걸렸다. 골자는 민족자결주의였다. 이광수는 2·8독립선언서를 한국어와 영어 등 두 가지 언어로 작성했다. 그날 오전 각국 대사관과 일본 국회의원, 조선총독부, 일본 여러 지역 신문사에도 해당 선언문이 발송됐다. 이날 오후 2시 재일본 도쿄 조선YMCA 강당에선 조선유학생 학우회 총회 개최가 예정됐다. 회의가 열리고 난 뒤 최팔용에 의해 조선청년 독립단을 결성하려는 긴급 동의도 나왔다. 선언문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백관수가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자마자 대회장을 감시하던 일제 경찰들이 들이닥쳐 조선 유학생 60여명을 체포했고 강제로 해산시켰다.주모자였던 최팔용과 백관수 등을 비롯해 8명이 기소됐다. 조선 유학생들은 2월12일과 28일에도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행진을 시도했다. 그 후 이 사건은 현해탄 건너 조선으로 전파됐고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꼭 104년 전 오늘 아침이었다. 세월은 무심하게 흘러가도 역사의 흔적은 뚜렷하다. 잊어서는 안 되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지지대] 킨텍스 대표의 월급 반납

“국민 여러분, 이 광고를 1년 동안 보관해 주세요.” 옛 새누리당이 2016년 4월11일 일간지에 낸 ‘대한민국과의 계약’ 광고다. 4·13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20대 국회의원 후보들이 ‘2017년 5월31일까지 5대 개혁과제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1년 치 세비를 기부 형태로 반납하겠다’는 글을 실었다. 김무성 대표의 자필 서명도 들어갔다. 새누리당은 세비 반납까지 공약했지만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계약에 서명한 56명 가운데 31명만 의원 배지를 달았다. 그리고 약속한 기한까지 5대 개혁과제는 이행되지 않았다. 예상대로 쇼로 끝났고, 국민들은 또 우롱당했다. 국민들은 민생은 뒷전인 채 정쟁만 일삼는 의원들에 대해 반감이 크다.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맞게, 일하지 않으면 세비를 반납하라한다. 의원들은 못 들은 척 외면한다. 올해 1월 국회는 30일에 본회의가 단 하루 열렸다. 그럼에도 의원들은 1천만원 넘는 세비와 국회가 열리면 자동으로 받는 한 달 100여만원의 특별활동비 수당을 챙겼다. 국회 형사사법체계개혁특별위 위원장을 맡은 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일도 안 했는데 세비를 받을 수 없다”며 세비를 반납한다고 최근 밝혔다. 지난 반년간 사개특위 위원장 몫으로 나온 매달 700여만원의 세비 4천여만원을 기부한다고 했다. 매달 특별수당 100여만원은 임기 후 한번에 기부할 뜻도 밝혔다. 매우 특별한 경우다. 세비나 월급 반납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돈이 많다 해도, 대부분 욕심을 내게 된다. 윤석열 정부가 ‘장·차관 월급 10% 반납’을 선언했다. 이후 제대로 지켜졌는지, 반납했다면 어떻게 쓰였는지 공개되지 않아 보여주기식 행정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런 가운데 이재율 킨텍스 대표이사가 연봉 20%를 반납하기로 해 화제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이 대표는 흑자경영 기반 조성을 위해 대대적 조직개편에 나서면서 자신의 연봉 3천600여만원을 삭감하기로 했다. 이 대표는 현 정부 출범 후 스스로 연봉을 깎은 첫 공공기관장이다. 킨텍스 임원들도 연봉 일정액을 자진 반납하기로 했다. 킨텍스 대표의 월급 반납이, 다른 고연봉 공공기관장까지 확산될지 주목된다.

[지지대] 국회의원 수를 늘린다고?

한국의 국회의원 정수는 현재 300명이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200명으로 시작해 차츰 늘어난 의원 수는 2012년부터 300명을 유지하고 있다. 국회의원 수가 200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난 만큼 국회는 발전했을까? 대다수 국민들은 단호하게 ‘NO’라고 답할 것이다. 의원들 스스로도 자신 있게 ‘YES’라도 답하는 이가 거의 없을 것 같다.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 반감이 크다.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 그들 자신을 위한 정치에 몰두하며 정쟁만 일삼고 있어서다. 민생 문제는 외면하고, 국민 혈세로 특권만 누린다는 생각에 정치인들을 혐오하는 이도 많다. 우리 국회의원의 특권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국민 1인당 소득 대비 1.5배가량 많은 억대 연봉, 의원 1인당 9명의 보좌진, 일본·유럽 국가에 비해 4~5배 넓은 사무실 등 특권이 200여가지나 된다. 임기 4년 동안 의원 1인당 지원되는 금액은 34억여원에 이른다. 의원들은 2008년 총선 이후 선거 때마다 세비 30% 삭감, 무노동 무임금 도입 등을 약속했지만 지킨 적이 없다. 툭 하면 “특권을 내려놓겠다” 하면서 번번이 공수표를 날렸다. 지난 1월 임시국회 기간에도 본회의는 딱 한 번 열었고, 상임위는 물론 시급한 민생법안 하나 처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세비와 수당은 알뜰히 다 챙겼다. 의원들에 대한 반감·혐오·비판이 거센 현실에서 국회의원 증원 얘기가 나왔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며칠 전 선거제 개편의 대안으로 ‘국회의원 증원·인건비 동결’ 카드를 제시했다. 국회의원 숫자를 현행 300명에서 30∼50명 늘리되 의원에게 지급되는 인건비 예산을 5년 동안 동결하자는 내용이다. 국민 여론은 차갑다. 의원 수가 적어서 일을 안 했냐며 분노하고 있다. 온라인에는 ‘의원을 100명으로 줄여야 한다’ ‘보좌관 줄이고 운전도 직접 해라’는 식의 댓글이 넘치고 있다. 각종 지원과 특혜를 받으면서 민생은 거들떠보지 않는 국회, 당리당략에 치우쳐 싸움질만 하는 국회에 왜 혈세를 쏟아붓느냐고 소리친다. 의원 정수 확대는 할 수 없는 분위기다.

[지지대] 바뀐 건 정치인뿐이다

성남시가 ‘e-스포츠 전용경기장’ 조성 백지화를 선언했다. 경기도 역시 사업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사업을 돌이켜 보자. 출발은 지난 2018년 10월이다. 당시 경기도는 미래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e-스포츠를 육성하겠다며 ‘e-스포츠 육성계획’을 발표했다. 계획의 핵심은 500석 규모의 e-스포츠 전용경기장 조성과 e-스포츠 아마추어 리그 운영이다. 이듬해 도는 시·군을 대상으로 e-스포츠 전용경기장 공모를 진행했고 1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공모에는 안산, 용인, 성남, 부천 등 4개시가 유치를 신청했다. 공모 진행 당시 지역 정가에서는 어차피 성남시가 유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배경에는 성남 판교테크노밸리에 게임 업체들이 대거 입주해 있다는 점이 가장 컸겠지만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 출신이라는 정치적 배경도 한몫했다. 공모 결과 예상대로 성남시가 유치했고, 도는 공모 결과를 발표하며 판교의 상징성, 정보기술(IT)·게임기업 밀집지역, 시의 사업 추진 의지와 구체적 사업계획 제시 등이 높게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도는 국내 게임 산업과 e-스포츠 산업이 정체기에 놓여있는 상황이지만 e-스포츠 종주국의 위상 제고와 게임 산업의 발전을 위해 e-스포츠 지원사업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현재 e-스포츠 전용경기장 조성은 첫 삽도 뜨지 못한 채 백지화됐다. 성남시는 사업 백지화 이유로 e-스포츠 산업의 환경 변화와 투입 사업비 대비 낮은 기대효과 등을 꼽고 있다. 한마디로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3년 전에도 e-스포츠 산업은 정체를 보였다. 또 도와 지자체가 돈을 벌기 위해 경기장을 조성하겠다고 했던 것도 아니다. 어떠한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인가. 가장 큰 변화라면 이재명 도지사에서 김동연 지사로, 은수미 시장에서 신상진 시장으로 바뀐 것이겠다. 행정이 이래서야 되겠는가.

[지지대] 대만 청년들의 이유 있는 지적

돈대 대(臺)와 물굽이 만(灣)의 결합. 대만(臺灣)이란 지명의 뜻풀이다. 돈대 주변으로 물이 굽이친다는 섬이다. 우리에겐 대만이 더 익숙하다. 이곳은 지구촌에서 한반도와 더불어 전쟁 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그래서 이 나라 젊은이들도 우리처럼 군복무를 마쳐야 한다. 우리의 1년6개월(육군)에 비해 대만의 복무기간은 4개월이다. 너무 짧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침공하면 병사들은 과연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까. 외신에 따르면 이 나라는 지난해 기준으로 직업군인 수는 16만2천명이고, 매년 약 7만명이 징집돼 복무한다. 우리처럼 육군과 해군, 공군 등으로 나뉘어 있다. 최근 중국의 위협이 고조되면서 국방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만 정부는 내년부터 의무복무기간을 현행 4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유권자 73.2%가 의무복무기간을 적어도 1년으로 늘리는 데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민의기금회(TPOF)가 최근 20세 이상 유권자 1천7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다. 외신은 군복무를 마친 예비역들이 기존의 부실한 군사훈련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4개월 동안의 군복무를 마친 청년들은 군대에서 받은 훈련에 대해 “시대에 뒤떨어지고, 지루했으며, 비현실적이었다”고 혹평했다. 이들은 징집병 훈련이 대부분 구식 총검교육에만 할애됐고, 사격·포격교육과 실습 등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실전 대비 훈련과는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군사훈련 대부분이 시대에 너무 뒤처져 있다고도 비판했다. 이 같은 군사교육·훈련 내용이 전면 개선되지 않으면 의무복무기간 연장만으로 국방력 강화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대만의 군복무 현실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지대] 1인가구 안부살핌 서비스

1인 가구는 부모나 형제 없이 혼자 사는 형태다. 2000년대 들어 부쩍 늘었다. 결혼 지연과 미혼·이혼율 증가와 고령화 등이 원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인 가구는 716만5천788가구(33.4%)로 집계됐다. 3가구 중 1가구가 나 홀로 살고 있는 셈이다. 비율도 2000년 15.5%에서 2005년 20%, 2010년 23.9%, 2015년 27.2%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2000년과 2015년 등을 기준으로 연령대별로 비교하면 20대는 56만가구에서 95만가구, 30대는 42만가구에서 95만가구, 40대는 30만가구에서 85만기구, 50대는 25만가구에서 88만가구, 60대는 71만가구에서 158만가구로 늘었다. 40대와 50대 1인 가구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지역별로는 2015년 기준으로 서울·경기지역 1인 가구 비중이 각각 21.4%, 19.7% 등 41.1%로 다른 지역에 비해 많았다. 1인 가구 증가로 주택·식품·가전시장 등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정부는 1인 가구의 주택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도시형 생활주택 개념을 도입했다. 오피스텔·고시원을 준주택으로 지정해 소형주택 건축기준을 완화했다. 식품시장에선 대형마트 및 편의점 등의 간편식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가전시장에선 1인용 전기밥솥 등 규모가 작은 제품이 출시되거나 가전을 빌려 사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1인 가구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는 고독사다. 고독사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큰 일상사가 됐다. 일일이 살펴보지 않으면 생사 여부 파악도 힘들다. 최근 군포시 등 전국의 많은 지자체가 한국전력공사와 공동으로 ‘1인 가구 안부살핌 서비스’를 추진 중이다. 앞으로도 이웃을 살피는 더 많은 정책이 진행돼야 한다.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게 사회이기 때문이다.

[지지대] 은행 영업시간

마침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출근했다. 뭔가 좀 허전한 것 같기도 한데, 얼마 만에 맛보는 해방감인가. 일부 구역에선 아직도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노 마스크’는 시민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표정을 밝게 했다. 코로나19종식을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다 해도 일상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실내 마스크가 해제된 30일부터 은행 영업시간이 예전으로 돌아갔다. 오전 9시에 문을 열고 오후 4시에 닫는다. 2021년 7월12일부터 ‘오전 9시30분~오후 3시30분’으로 줄어들었던 단축 운영이 원래대로 정상화된 것이다. 고객 편의를 위한 당연한 조치다. 은행의 영업시간 정상화는 늦은 감이 있다. 코로나19 이후 은행이 늦게 문을 열고 일찍 문을 닫아 불편이 컸다. 대기 시간이 길어져 30분은 보통이고, 1시간을 넘는 경우도 많았다. 직장인들은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하는데, 시간이 부족해 은행 업무를 편하게 보려면 반차를 써야 했다. 인터넷 뱅킹 대중화 등 업무의 상당 부분이 온라인으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창구에서 대면해야 할 업무가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은행을 찾는 이의 대부분은 디지털 금융에 약한 노년층이다. 이들은 코로나 기간 중 영업시간이 줄어들고, 점포도 줄면서 은행에 가면 보통 한두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은행 업무시간 정상화에 상황이 좀 나아질까 하는 기대감을 갖는다. 그런데 금융노조가 영업시간 정상화에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영업시간 변경이 노사합의 사항이라며, ‘9시30분 개점’을 주장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1시간 줄였던 것을 정상화하는 것인데 반대라니, 이해가 안 된다. 은행원의 편의만을 고려한 이기적인 행태다. 여기에 어떤 은행은 방문 고객이 적은 지점은 점심시간에 문을 닫겠다고 한다. 고금리로 서민의 등골이 휘는 와중에도 은행은 예대 금리 차이로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그 결과 기본급의 300~400%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그런데도 수익을 가져다준 고객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 편의만 챙기겠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헐~’이다.

[지지대] “오또케”

2021년 서울의 한 편의점 점주가 구인구직 사이트에 올린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 글이 논란이 됐다. 점주는 지원자격에 만 20세 이상으로 ‘페미니스트가 아닌 자’라고 명시했다. 또 ‘소극적이고 오또케 오또케 하는 분은 지원하지 말라’고 했다. 이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지며 “점주가 여혐인 듯”, “성별 혐오를 조장한다”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논란이 커지자 점주는 모집 공고 글을 삭제했다. ‘오또케’는 ‘어떡해’의 변용으로, 여성의 수동적인 태도를 비꼬는 단어다. 주로 위급 상황에서 “어떡해”라는 말만 반복한 채 아무런 대처를 못 하는 여성을 조롱하는 것으로, 여성 혐오의 대표적 표현이다. 지난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측이 사법제도 공약을 발표하면서 ‘오또케’라는 여성 경찰 비하 표현을 사용해 한바탕 난리가 났다. “경찰관이 ‘오또케’ 하면서 사건 현장에서 범죄를 외면했다는 비난도...”라는 문장이 쓰인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는 “여성 비하 의미가 있는 줄 몰랐다”고 사과하며, 해당 표현을 삭제했다. 책임자였던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해촉했다. 2019년 서울 대림동 여성 경찰관 진압 영상과 함께 ‘오또케’라는 말이 유포됐다. 이것이 여경 전체의 무능을 조롱하는 혐오 표현이 됐다. 당시 경찰은 대림동 영상의 전체 촬영분을 공개하고 여경의 대처에 문제가 없었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오또케’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선 당시 ‘오또케’ 표현으로 캠프에서 해촉됐던 정승윤 교수가 국민권익위원회 신임 부위원장 겸 중앙행정심판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야당과 일각에선 검찰 출신으로 윤 대통령의 검찰 핵심참모였던 정 교수의 임명에 대해 “국민권익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젠더 갈등만 증폭시킬까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정 부위원장은 ‘오또케’가 “여성 비하 표현인지 정말 몰랐다”고 했다. 몰랐다고 해서 덮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권익위는 유희가 된 혐오 표현을 줄이는 노력도 하기 바란다.

[지지대] 안재홍 선생의 ‘다사리 민족주의’

들녘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동장군의 심술이 잔뜩 묻어 있었다. 평택시 고덕면 두릉리 646번지 게루지 마을. 이곳을 찾은 건 2006년 1월 하순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을 헤쳐간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1891~1965) 선생의 생가를 찾는 발길이었다. 필자는 그때 “가슴이 설렜다”고 썼다. 지난한 독립투쟁을 거쳐 광복을 맞았지만 6·25전쟁 때 납북된 뒤 북녘에서 별세했다. 해방정국에선 미군정 민정장관, 제2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하며 중도우파적 입장에서 근대국가 수립을 주창했다. 언론인,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정치인 등 여러 호칭이 따라붙었다. 민세 선생은 독립운동가였지만 각별히 우리말을 사랑한 지식인이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우리말을 아꼈다. 특히 그가 애지중지하던 단어는 ‘다사리’였다. 그는 생전에 “‘다사리’는 우주의 엄정한 질서와 운행법칙을 모델로 하는 인간사회의 정치이념이자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의 정치적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다사리’는 ‘모두 다 말(씀)하게 하여’나 ‘다 사리운다’와 같은 뿌리에서 ‘진백’(盡白)이나 ‘진생’(盡生) 등을 뜻한다. 진백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민주주의, 진생은 공동체 모두를 골고루 잘살게 해주는 사회복지로 서양 정치사상의 두 가지 흐름인 자유주의와 평등주의 등으로 귀결된다. 모두가 골고루 자유롭고 넉넉한 개념을 담고 있는 어휘인 셈이었다. 민세 선생이 평생 펼쳤던 사상은 다사리 민족주의였다. 그래서 그가 건국하려던 나라도 반쪽 독립이 아닌 완전한 독립이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고향인 평택의 한자 ‘平澤’을 순수한 우리말로 표현하면 다사리가 된다. 만약 그가 납북되지 않고 계속 활동했다면 ‘仁川’의 옛 지명 ‘미추홀’이나 ‘大田’의 우리말 ‘한밭’ 등처럼 ‘平澤’이란 지명도 ‘다사리’로 바뀌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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