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세계를 품다] 3. 남한산성 순교성지

교황 프란치스코가 8월 한국을 방문한다. 교황의 이번 방한은 지난 1984년과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에 이어 역대 세 번째다. 교황의 방한으로 가톨릭교회는 물론이고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다. 오는 8월 14일~18일까지 4박5일간의 사목 일정은 아시아 청년대회,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그리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특히 교황은 방한 중 여객선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을 만나 위로하고 장애인들을 격려하며, 평신도 및 수도자들, 한국 이웃종교 대표들과도 대화 시간을 갖는다. 방한 일정 중에 8월 16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앞에서 열리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은 이례적으로 교황청이 아닌 지역교회 현지에서 교황이 주례하는 장으로 더욱 관심을 모은다. 이번 시복식을 통해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는 복자(福者)로 선포된다. 복자는 가톨릭교회에서 죽은 사람의 성덕(聖德)을 증거해 부르는 존칭 중 하나이다. 한국 교회는 선교사가 아닌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교리를 공부하고 신앙을 키운 토대 위에 세워졌다. 이번에 시복되는 하느님의 종 124위 중 주문모 신부를 제외한 123위가 평신도다. 이에 따라 이번 시복식은 한국 평신도들의 모범을 널리 알리고, 전 세계 신자들이 한국 순교자들을 구체적인 신앙의 모범으로 공경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을 앞두고 우리가 관심가져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남한산성 순교성지(경기도 광주시 중부면)다. 지난 6월 22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은 약 1천400년 동안 산성과 도시의 기능을 함께 수행한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닌가. 그렇다면 남한산성 안에 순교성지가 왜 소재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천주교와 남한산성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7월 3일 오후 남한산성 순교성지(전담 박경민 베네딕토 신부)를 둘러봤다. ■ 최초의 박해, 신해박해(1791년) 때부터 남한산성에서 300여명 순교 남한산성은 종교의 보고다. 특히 천주교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곳이다. 남한산성은 신유, 기해, 병인박해를 통해 300여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곳으로 한강이남 경기지역 교우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교터다. 그렇다면 천주교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남한산성이 왜 천주교의 성지가 되었을까? 한마디로 정리하면, 남한산성에 광주부의 치소(治所, 어떤 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곳)가 되고 나아가 광주가 부윤으로 승격되고 1695년(숙종 21년)부터 토포사를 겸하면서 형장의 장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토포사는 반역도당들을 토벌하고 떼강도와 같은 큰 도적을 잡는 일을 직임하는 관리였다. 남한산성의 토포사는 광주 고을의 치안을 맡으면서 동쪽으로는 양근의 용진, 서쪽으로는 안산의 성곶이, 북쪽으로는 한강, 남쪽으로는 이천, 여주, 양지, 용인에 이르는 고을 안에서 강도나 역도들을 섬멸하는 역할을 했는데, 천주교 박해령이 내려지면 토포군관들은 위의 지역으로 나가 천주교 교우들을 잡았던 것이다. 광주 토포사가 관할 광주에는 1784년 공식적으로 교회가 이 땅에 출범하기에 앞서 천주 신앙에 관심 있는 학자들이 모였던 천지암을 비롯해 교회가 창설되면서 신앙운동이 우선적으로 전개됐던 곳이다. 교회의 선구자 이벽(李檗)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신앙운동에 나선 권일신(權日身)은 광주, 양근 일대에 신앙공동체를 조성했고, 정약종과 정약용은 마재(남양주)에 공동체를 조성했는데 이 같은 공동체는 박해에 따라 토포사의 표적이 됐다. 이처럼 광주 유수의 치소가 이전되고 포도청과 여러 관청이 자리하게 되면서 남한산성은 천주교 박해와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됐다. 포도청에서 인력이 모자라면 군인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연무관에서까지 천주교 신자를 심문할 정도였다. 이미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년) 때부터 교우들이 남한산성에 투옥됐고 신유박해(1801년) 때에는 최초로 순교자가 탄생했다. 이어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후기에 이르기까지 70년간 300여명의 천주교 교우들이 순교했다. 그 중 현재 이름과 행적이 알려진 순교자는 총 36명이다. ■ 남한산성에서 처음 순교한 한덕운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시복식 경기도 광주 지역은 천주교 신앙이 가장 일찍 전파된 지역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 천주교회를 창설한 주역, 이벽(李檗, 1754~1785)이 경기도 광주 출신이었고, 1784년 겨울, 거행된 최초의 영세식에서 이승훈(李承薰, 1756~1801)에게 세례를 받은 정약용의 고향도 광주 마재(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였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이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터로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1801년의 신유박해(辛酉迫害) 때부터였다. 이 같은 순교터로서의 의미는 이후 기해박해와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박해 기간 내내 끊이지 않았다. 1801년(순조 1)에 있었던 천주교에 대한 탄압, 신유박해는 겨우 터전을 잡기 시작한 한국 천주교회에 시련을 안겨주었다. 중국 출신의 주문모 신부가 순교했고, 대부분의 지도층 신자들도 희생됐기 때문이다. 당시 조정에서는 해읍정법(該邑正法), 즉 모든 신자들을 거주지로 압송해 처형함으로써 그곳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도록 하라는 영을 내렸다. 이에 따라 박해 기간 동안 경기도 양근과 여주 등지에서는 끊임없이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됐다. 박해가 끝나갈 무렵에는 광주 남한산성에서도 한 신자가 처형을 당했다. 바로 광주 의일리(현 의왕시)에 살던 한덕운(韓德運, 토마스, 1752~1802)이다. 1752년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난 한덕운은 1790년 윤지충을 통해서 교리를 배웠다. 윤지충이 신해년(辛亥年) 박해로 순교하자 신앙 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나 경기도 광주로 이주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한덕운은 교회의 동정을 살펴볼 목적으로 사기그릇 행상인으로 변장하고 서울로 상경해 순교자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루었다. 이런 사실이 발각돼 체포됐고, 남한산성으로 압송돼 동문 밖에서 1801년 12월 27일(양력, 1802년 1월 30일)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그의 나이 50세였다. 한덕운은 형장으로 끌려갈 때, 망나니를 똑바르면서도 잔잔한 눈길로 쳐다보면서 한칼에 내 머리를 베어 주시오.라고 말했다. 그러자 망나니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떨면서 헛칼질을 했다. 한덕운은 그를 나무라며 두번째로 명했다. 망나니는 이번에도 헛칼질을 했고, 결국 세 번째 내려쳐서야 그의 머리가 떨어졌다. 그리고 1839년 기해박해에는 새로운 교우촌으로 성장한 구산의 김만집, 김문집, 김주집과 그의 아들들이 체포됐고,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구산의 김성희, 김차의, 김경희, 김윤희, 최지현, 심칠여와 서문 밖의 홍희만, 홍학주, 이천 단대의 정은 등 40여 명의 교우들이 체포돼 온갖 고문을 받으며 끝내 신앙을 증거 하다가 순교했다. 이렇게 신앙을 지키던 천주교 신자들은 시체가 돼 남한산성 동문 옆 작은 문을 통해 버려졌다. 사람들이 통행하는 일반적인 문을 이용하면 불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원래 이름은 동암문이나 시신이 버려진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작은 문을 시구문(屍軀門)이라고 불렀다. 신유박해 당시 남한산성에서 처음으로 순교한 한덕운의 시복식이 프란치스코 교황 주례로 8월 16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거행된다. 남한산성 순교성지 박경민 베네딕토 전담신부는 2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이스라엘 마사다는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 유적지으로 불굴의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민족 성지가 됐다며 남한산성의 경우 잊을 수 없는 순교터이면서, 잊어서는 안 되는 성지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점으로 학생들의 역사의식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불구불 남한산성의 성벽길따라 수백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피를 흘렸던 아픈 역사가 서려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세계유산등재를 기점으로 성곽 안에서 새로운 삶을 추구한 사람들의 외침을 잊지 않아야 한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병자호란 치욕의 상징서 ‘17세기 동아시아 역사적 거점’ 세계가 인정

올 여름, 남한산성이 국내 문화계를 강타했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유구한 역사에 걸친 우리 선조들의 성곽 축성기술 발달사의 표본이자, 조선시대에는 수어청의 근거지인 동시에 광주 읍치를 담당한 군사행정도시로서 비상시에는 한양 도성의 보장처로서 그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고, 2011년 2월 국내 잠정목록 유산 중 최우선 등재 추진지로 결정된 바 있다. 그 후 3년여 만인 2014년 6월 22일, 드디어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러한 남한산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은 아마도 병자호란(丙子胡亂)일 것이다. 1636년 만주족의 청(淸)이 조선을 침략했다. 국왕 인조와 조선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고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결사적으로 항전했다. 그 와중에 조선 신료들은 명(明)에 대한 의리와 조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오랑캐 청에 맞서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했던 척화파(斥和派)와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화파(主和派)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이어갔다. 허나, 포위된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식량은 부족하고 추위는 더 심해지는 데다 외부의 구원병마저 차단되면서 조선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한마디로 남한산성의 분위기는 수습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급기야 인조와 조선 조정이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강화도마저 함락됐다는 소식이 들려온 후 산성의 저항 분위기는 결정적으로 꺾이고 말았다. 인조는 결국 신복하라는 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산성의 서문을 나와 삼전도(三田渡,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 있던 한강 상류의 나루)로 가서 청 태종에서 세 번 큰절을 올리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말았다. 이 정도가 한국인이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남한산성과 병자호란의 기본 스토리이자,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내용일 것이다. 그래서 남한산성=치욕이라는 불편한 등식이 성립돼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병자호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참혹하고 끔찍한 전쟁이었다. 특히 청군에게 붙잡힌 포로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병자호란 무렵 청군에게 붙잡힌 조선인 포로는 수십만을 헤아렸다. 이 같은 끔찍한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학계는 병자호란을 정면에서 다루는 것을 기피해 온 경향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역사학계는 연구 자체를 꺼려했다. 하지만 남한산성을 주 무대로 전개됐던 병자호란은 항복, 치욕이라는 단어로 간단하게 정리되는 것 이상의 복잡한 국제적인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 17세기 역사적 거점ㆍ국제적 전장(戰場)이자 문제적 장소였던 남한산성 병자호란 당시 항전의 중심지였던 남한산성은 민족 항전의 성지의 의미를 넘어 당시 국제관계와 관련해 매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장소였다. 한명기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병자호란 시기 남한산성 항전의 국제관계사적 의미에 대해 남한산성 연구총서(제1권)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5세기 이후 명 중심의 중화적 세계질서에 순응해 왔던 조선에게 오랑캐 출신 누르하치가 후금국을, 홍타이지가 청 제국을 건국한 것은 충격을 넘어 천지가 뒤바뀌는 파천황(破天荒)의 현실이었다. 조선은 1627년 정묘호란 당시 후금과 형제관계를 맺었지만 그것은 오랑캐와 마지못해 맺은 내키지 않는 미봉책에 불과했다. 내키지 않으니 이후 후금과의 관계는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조선이 상국이자 임금, 부모국으로 섬기는 명과 조선의 형이었던 후금 사이의 대결이 지속되자 조선의 입지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1633년 차선을 둘러싸고 조명금(朝明金) 삼국이 벌인 갈등과 우여곡절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병자호란의 발생은 어쩌면 필연적인 것이었다. 조선이 청이 칭제하는 거부하고 의연히 명 중심의 질서를 고수하려 시도하면서 병자호란이 발생했거니와 조선 조정이 농성하고, 청군이 포위했던 남한산성은 기존 세계질서와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질서가 날카롭게 맞부딪히는 현장이었다. 또 내부의 조선 신료들 사이에서도 척화-주화 논쟁이 지속되면서 남한산성은 안팎으로 세계를 둘러싼 대립의 장소가 되었다. 조선이 결국 청에 항복하게 되면서 남한산성은 국제질서와 역학 관계 변화의 여파가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진원(震源)이 되었다. 명에게 조선의 항복은 마지막 후원자의 소멸을 의미했다. 그 여파는 곧바로 가도를 거쳐 요동을 지나 산해관을 통과하여 북경으로 미쳤다. 요컨대 17세기 초반의 남한산성은 동아시아의 세계질서와 조선 사람들의 세계인식이-격렬한 논쟁과 첨예한 갈등을 거치면서-바뀌고 변하게 되는 역사적 거점이자 문제적 장소였던 것이다. 이처럼 남한산성은 단순하게 인조가 피신했던 곳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인조의 치욕적인 항례(降禮)가 아닌 인조의 이마에서 철철 흘러내렸다고 하는 피를 기억해야 한다. 조선이 청에게 굴복해 항복하는 상황은 결코 조선과 청만의 문제일 수 없었다. 명과 일본, 심지어 몽골까지도 남한산성을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존재하고 있었던 셈이다. 세월이 흘러 흘러 이런 안타까운 역사를 배경으로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이 됐다. 이제는 병자호란을 한중일을 아우르는 대외관계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 중심지였던 남한산성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 동아시아 무기발달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탁월한 증거 그렇다면 유네스코는 왜 남한산성을 세계유산에 등재했을까? 세계유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갖고 있는 부동산 유산이 대상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10가지 평가기준을 갖고 있다. 문화유산은 이중 어느 한 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이코모스(ICOMOSㆍ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보고서에서 남한산성이 오랜 시간 동안 또는 세계의 어떤 문화지역 안에서 일어난 건축, 기술, 기념비적 예술, 도시계획 또는 조경설계의 발전에 관한 인간적 가치의 중요한 교류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등재기준 2(ⅱ)와 인류역사의 중요한 단계를 잘 보여주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 총체, 또는 경관의 탁월한 사례이어야 한다.는 등재기준 4(ⅳ)를 충족한다고 평가했다. 이코모스는 남한산성이 △동아시아지역의 무기발달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군사유산이며 조선의 자주독립의 수호를 위해 유사시 임시수도로 축조된 유일한 산성도시인 점 △자연지형을 활용해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함으로써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들어 세계유산적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남한산성에는 몸을 숨겨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는 여장(女墻)과 총을 쏠 수 있도록 뚫어놓은 구멍인 총안, 포를 쏠 수 있는 포루가 존재한다. 초기 성벽만 있던 형태에서 무기 발달에 따라 성의 형태가 변화한 것이다. 남한산성의 구성을 살펴보면 중앙에 행궁이 있으며 좌측에는 종묘에 해당하는 좌전, 우측에는 사직단에 해당하는 우실이 있다. 주변은 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성문이 있다. 중국 역대왕조의 수도 건설 원리였던 주나라의 문서 주례동관고공기(周禮冬官考工記)를 따른 것이다. 이코모스는 이 같은 증거가 인간적 가치의 교류를 강조한 등재기준 2(ⅱ)를 충족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남한산성에는 7세기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 인조, 숙종, 영조, 정조 등 각 시대별 성벽의 흔적이 모두 남아있어 시대별 축성술의 발달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는 인류역사의 단계를 보여줘야 한다는 등재기준 4(ⅳ)를 충족시키는 요건이다. 이밖에도 이코모스는 △완전성 측면에서 세계유산적 가치를 반영하는 유산이 잘 남아있고 효과적인 법적 보호체계와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이라는 단일 민간 전담기구를 통해 보존 관리되고 있다는 점 △진정성 측면에서는 남한산성의 형태와 디자인, 재료와 구성물질, 용도와 기능을 비롯해 역사적 구성 요소가 삼국사기 등 다양한 사료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상처로 점철된 남한산성은 고통스런 역사를 품어오다 드디어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국제기구로부터 인정받게 됐다. 세계적으로 단 하나밖에 없는 가장 가치 있는 유적지로 공인된 만큼 이제는 남한산성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남한산성의 앞날을 응원해주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조선 최대의 산악 군사ㆍ행정도시… 성곽 발달사의 보고

관방(關防) 문화유산, 산성도시, 역사자원의 보고.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해 1624년(인조 2)에 축성한 남한산성은 현재까지 참 다양하게 불리어지고, 해석되고 있다. 1626년 공사를 완료한 남한산성처럼 우리 역사와 오랜 기간 함께 한 성곽도 드물다. 2014년 남한산성 이름 앞에 세계유산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이 붙게 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2일 한국시간 오후 3시 35분 카타르 도하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8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남한산성에 대한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 등재를 확정했다. 이로써 남한산성은 한국의 11번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맞아 본보는 남한산성의 역사와 가치를 15차례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편집자 주 남한산성은 오랜 세월만큼이나 아픔이 깊은 곳이다. 378년 전 조선 왕조가 청의 침략에 무참하게 짓밟힌 전쟁, 병자호란(1636년)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중 인조가 한양 도성을 버리고 피신해 장기 농성한 왕궁이다. 이러한 뼈아픈 역사를 작가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을 통해 인조가 남한산성에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47일의 역사적 사실을 작가 특유의 냉혹하고 뜨거운 말로 치욕스런 역사의 한단면을 보여줬다. 성 안의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치명적인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 이는 감당할 수 없는 역사이고, 씻을 수 없는 역사였다. 이제는 남한산성을 달리 봐야 한다.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이 됐다. 남한산성은 세계유산적 가치가 충분하다. 아니 넘친다. ■ 연건 320만명 방문하는 남한산성 정확하게ㆍ 제대로 알아야 연간 320만명이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남한산성은 모르는 이가 없다. 허나, 정확하게,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남한산성의 속속들이 똑똑하게 밝히는 것이 이번 기획의도 중 하나이다. 그래서 간략하게 남한산성을 소개한다. 사적 제57호 남한산성은 해발 500m가 넘는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둘레 12㎢가 넘는 성벽을 구축해 많은 병력으로도 쉽게 공략할 수 없는 지리적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광주시가 22.920㎢(63%)를 차지하며 하남시 8.818㎢(24%), 성남시가 4.709㎢(13%)를 차지한다. 남한산성 내에는 성곽과 행궁 외에도 수어장대, 연무관, 숭열전, 청량당, 현절사, 침괘정 등 6개의 경기도 지정문화재가 있으며 망월사지와 개원사지 등 경기도 기념물도 2개가 있다. 또한 남한산성은 내부가 넓고 평탄하며, 80여 군데가 넘는 우물과 45개의 연못을 있을 정도로 수원이 풍부해 비축된 군량미만 충분하다면 수만 명의 병력도 수용이 가능할 정도다. 구조적으로 본성 외에 봉암성, 한봉성 등 2개의 외성을 갖추고 있으며, 남쪽에는 두 개의 돈대가 있다. 본성에는 5개의 옹성이 있으며 20개의 포루를 설치해 화포공격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성벽에는 4대문 외에 16개의 암문이 있으며 성벽 위에는 1천940여 개의 타로 구성된 여장이 구비되고 각 타에는 원총안과 근총안이 설치돼 있다. 성벽 안쪽에는 125개에 달하는 군포가 구축돼 있다. 군포와 군포 사이에는 90여 군데의 소금을 묻어둔 매염터와 숯을 묻어둔 매탄터가 있었다. 남한산성 본성은 신라 주장성의 성돌을 활용해 구축됐다. 외성은 본성과 시차를 두고 구축함으로써 각 시기의 성을 쌓은 기법을 특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산성을 쌓은 기법의 교과서와 같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남한산성은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을 종합해 보면 남한산성은 오래 시대에 걸쳐 한강유역을 포함한 한반도 중심부 방어의 전략적 거점이자, 천혜의 요새 그리고 조선 최대의 산악 군사ㆍ행정도시로서의 경기도는 물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방 문화유산이다. 또 곳곳에 산재한 200여 개의 문화재와 아름다운 자연생태환경, 그리고 주민의 삶과 문화가 투영된 무형문화는 남한산성을 역사자원의 보고라 불리우게 하는 근거가 된다. ■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적 가치성곽발달사의 보고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6.15~25)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현지 시각 6.22(일) 오전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남한산성(Namhansanseong)을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키로 결정했다. 이번 등재 결정 과정에서 세계유산위원회 및 ICOMOS(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산하 자문기구로서 문화유산의 등재 여부를 위원회에 권고)는 남한산성이 17세기 초 비상시 임시 수도로서 당시 일본과 중국의 산성 건축 기술을 반영하고 서양식 무기 도입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군사 방어 기술을 종합적으로 집대성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와 무기체제의 변화상을 잘 나타내며, 지금까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어 살아있는 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부연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ㆍ자연ㆍ복합) 목록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정부간위원회(21개국으로 구성)인 세계유산위원회(WHC)가 인정한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적 가치를 정리해보자. 첫째, 도시계획사적 가치로 남한산성은 보선시대 도성 이남을 방어하기 위해 모민정책을 통해 계획된 신도시였다. 또 종묘와 사직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행궁이 있는 행정 군사도시로서 290년간 산성 내 마을이 현재까지도 지속, 유지된 독특한 산성도시다. 둘째, 남한산성은 성곽발달사의 보고라 할 수 있을 만큼 통일신라, 조선 인조, 숙종, 영조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 축성기법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성곽으로서 성곽축성발달사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남한산성은 성광주조 변화의 보고로서 활ㆍ총ㆍ포로 이어지는 무기발전사에 따른 성곽구조 변화체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성곽이다. 또한 지형에 맞게 다양하게 응용된 옹성구조를 갖추고 있는 유일한 산성이다. 마지막으로 전통적, 사상적, 문화적 가치다. 산성 축성의 주역인 팔도사찰과 관련된 수륙재, 영산재 등의 불교의례, 숭렬전ㆍ현절사 제향과 관련한 유교의례, 천주교 유입과 관련한 순교성지, 도당굿과 장승제와 같은 민간신앙, 마을 전통고유행사인 대보름맞이 행사, 무형유산인 산성소주 제조, 최초 배달음식인 효종갱 등이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2014년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됨에 따라 앞으로 남한산성의 치욕을 잊고, 남한산성의 아픔을 남한산성이 살아 낸 삶의 이력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야 한다. 왜냐 앞으로 남한산성이 가야할 길이 멀기 때문이다. 세계유산 등재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향후 남한산성의 중장기적 종합발전 계획 수립과 함께 세계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보호증진하는데 매진해야 하는 커다른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길고 긴 세월 우리의 역사와 함께 해온 남한산성. 이제는 경기도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뻗어나아가는 또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이에 본지는 총 10회에 걸쳐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이라는 날개를 달고, 더 멋지게 세계로 비상할 수 있도록 남한산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고자 한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경기문화재단

우리의 남한산성? 이젠 세계의 남한산성!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공식 등재됐다. 경기도대표단(단장 김문수 도지사)은 22일 오후 3시30분(한국시각) 카타르의 수도 도하(Doha)에 위치한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공식 등재를 발표했다는 낭보를 타전했다. 이로써 400년 난공불락의 요새, 남한산성은 우리나라 11번째 세계유산으로 우뚝 서게 됐다. 남한산성 등재가 발표된 직후 김문수 지사는 21개 세계유산위원국을 대상으로 한 감사 인사말을 통해 오늘 이곳, 이 자리에서 남한산성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또 하나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음을 감사히 여기며, 대한민국과 경기도는 동아시아 역사 중심이었던 남한산성을 강력한 보호체계와 예산지원으로 인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이번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총 49건의 등재 신청 유산 중 사전 완전성 평가에서 탈락한 9건을 제외한 40건(문화유산 28건, 자연유산 9건, 복합유산 3건)을 대상으로 등재 여부에 대해 심의를 진행한 가운데, 이 중 남한산성은 24번째로 심사 대상에 올라 최종 등재(Insribe)로 발표됐다. 앞서 지난 4월2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심사기구인 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심사평가서에서 등재 권고로 평가된 남한산성은 이변이 없는 한 이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확실시 돼왔다.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등재 기준 (ⅱ), (ⅳ)에 충족돼 병자호란 등 국제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 무기 발달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탁월한 증거 △조선의 자주독립의 수호를 위해 유사 시 임시수도로 계획적으로 축조된 유일한 산성도시 △자연 지형을 활용해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함으로써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점 등이 세계유산적 가치로 인정받았다. 또한 △완전성 측면에서 효과적인 법적 보호체계와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이라는 단일 민간 전문기관을 통해 보존 관리되고 있다는 점 △진정성 측면에서 성곽과 산성 도시는 충분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구성 요소로 하고 있고 다양한 사료에 의해 진정성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평가를 받은 점이 결정적인 등재 요인으로 꼽혔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찬란한 경기도 문화유산 세계를 향해 문을 열다

남한산성이 22일 세계유산으로 공식 등재되면서 세계인이 함께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문화재로 인정받게 됐다. 세계문화유산은 1972년 유네스코(UNESCO,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에 의거해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된 유산을 지칭한다. 인류의 보편적이고 뛰어난 가치를 지닌 각국의 부동산 유산이 등재되는 세계유산의 종류에는 문화유산, 자연유산 그리고 문화와 자연의 가치를 함께 담고 있는 복합유산이 있다. 남한산성의 세계유산적 가치는 조선시대 유사시를 대비한 임시수도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남한산성은 유사시 임시수도의 기능을 하도록 종묘와 사직을 지닌 행궁을 갖춘 초대형 성곽도시로서 수어청의 근거지이며 광주 읍치가 있었던 군사행정도시였다. 또한 남한산성 성벽에는 시대별 축성술의 표본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승영사찰을 중심으로 승군이 300년 이상 축성과 관리 보수를 맡았고 현재까지 주민들이 거주하고 제례, 음식, 민속 등의 무형유산이 함께 남아있는 점에서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11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한산성의 등재과정과 의미, 그리고 향후 관리방향 등에 대해 살펴본다. ■ 2009년 최초 문화유산 민간전문관리기구인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출범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지난 2009년부터 남한산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여왔다.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의 본격적인 추진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9년에 경기도가 출연한 경기문화재단 소속 국내 최초 문화유산 민간 전문 관리 기구인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의 출범에서부터 시작됐다.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이 없었다면 아마 남한산성의 세계유산 등재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등재 후보유산)에 공식 등재된 남한산성은 1년 후인 2011년 2월 문화재청으로부터 당시 국내 13곳의 잠정목록 유산 중에서 우선 등재 추진지로 선정되자 2011년 3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2년여에 걸쳐 작성된 세계유산 등재신청서를 2013년 1월에 프랑스 파리에 소재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공식 제출했다. 2013년 4월부터 6월까지 총 2차례의 세계유산 전문가를 초청해 자체 예비실사를 실시, 경험을 축적한 후 같은 해 9월에 등재 심사에 가장 중요한 관문인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에서 실시한 현장 실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다음해 2014년 4월 ICOMOS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남한산성의 등재 권고 판정의 평가보고서를 제출해 등재를 향한 결정적인 고지에 올랐고, 결국 2014년 6월 22일 제3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최종 등재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 道, 남한산성 등재로 국내 최다 세계유산 보유 남한산성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로 그 동안 병자호란(16361637년) 당시 삼전도에서 당한 치욕의 상징에서 우리 선조의 자주정신과 국난극복의 결정체로서, 승전의 장소보다 고통스런 역사를 통해 배운 기억의 장소로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국제기구로부터 인정받게 됐다. 더불어 세계적으로 단 하나밖에 없는 가장 가치 있는 유적지로 공인돼 국민과 정부의 관심이 높아져 유산의 보존과 관리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남북한 총 3천여 개에 이르는 평지성과 산성으로 이뤄진 성곽의 나라이다. 이중 경기도는 평지성(수원화성, 1997년 등재)과 산성(남한산성, 2014년 등재)을 모두 등재시켜 국내 성곽 문화유산을 모두 보유한 유일한 광역 지자체로 입지가 격상됐다. 남한산성은 서울과 인접해 국내 및 외국인 관광객 유입효과가 기존에 등재된 유산에 비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즉, 세계유산지로 외국인 한국 여행 시 방문 필수 코스의 하나로서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동안 중앙정부(문화재청)가 주도하는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서 국내 최초로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해 민간전문기구(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를 활용한 세계유산 등재를 성공한 최초의 사례로 남게 됐다. ■ 세계유산 등재 이후 2014년 주요 사업 계획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7월부터 12월까지 다채롭게 진행된다. 우선, 7월 24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남한산성행궁 외행전에서 등재 기념식 400년의 천작지성(天作之城), 1000년의 세계유산(世界遺産)을 개최하고 그 간의 등재 노력을 축하하고 등재 이후의 비전을 선포할 예정이다. 이어 7월 25일 오후 2시 수원 라마다 그랜드볼룸 호텔에서 남한산성 등재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이 열린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밀라그로스 플로레스(現 ICOFORT 위원장), 구오잔(現 ICOMOS 부위원장), 기오라솔라(前 이코모스 재무총장), 제인헤링톤(前 ICOMOS 호주위원회 위원장), 구르밋 상가 라이(ICOMOS 인도위원회 부위원장) 등 국내외 세계유산 전문가를 초청해 등재 이후 세계유산 남한산성의 보존관리 방향을 정립할 계획이다. 오는 9월 20~21일 남한산성 전역에선 등재 기념 페스티벌 월컴투 월드헤리티지 남한산성이 열린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공개행사, 외국인 과거시험, 헤리티지 톡톡 콘서트, 줄타기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오는 9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안내판 제작정비를 완료하고 세계유산 남한산성 운영 및 관리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다. 또 12월에는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있어 혁혁하게 기여한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을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로 명칭을 변경하고,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백서를 제작 및 배포할 계획이다. ■ 등재 이후 중장기 종합발전계획(2015년2018년) 경기도는 등재 이후 중장기 계획으로 △유네스코가 요구하는 국제적 기준의 남한산성 유형무형유산의 체계적인 보존관리계획을 수립하고, △등재 이후 대폭적인 관광객 증가에 대비한 방문객 관리시스템을 구축, △경기도내 이미 등재된 수원화성, 조선왕릉을 연결하는 문화관광벨트화 등 남한산성을 세계적인 역사문화유적 랜드마크로 조성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아시아 성곽군사유산위원회(Acofort:Asian Scientific Comittee on Fortificaton and Military Heritage) 설립 △남한산성 박물관(전시관) 건립 추진 △남한산성 등재 기념 정례 축제 개발운영 △남한산성 다국어 포털 사이트 구축 및 다국어 전용 투어 모바일 웹 개발 △남한산성 문화상품 콘텐츠 개발 보급 △방문자 관리시스템(Visitor Management) 구축 △문화유산 및 탐방로 휴식년제 도입 등을 연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2009. 2 : 잠정목록 등재신청서 제출(문화재청) 2010. 1 : 유네스코 잠정목록 공식 등재(유네스코) 2011. 2 : 세계유산등재 우선추진 대상 선정(문화재청) 2012. 5 : 세계유산 등재추진위원회 구성운영조례 제정(경기도) 2012. 5 : 남한산성 행궁 재건 및 행궁 권역 정비 완료 2012. 6 : 세계유산 등재 업무협력 협약 체결 ●체결기관(6개 기관) : 道, 문화재청, 성남, 하남, 광주, 경기문화재단 2012. 7 : 남한산성 단독 등재 결정(문화재청) ● 서울시가 요구한 한양도성과의 공동등재가 아닌 남한산성 개별 등재 승인 2012. 8 : 세계유산등재 실무행정협의회 구성 2013. 1 : 세계유산 등재신청서 제출(유네스코) 2013. 4 : 1차 예비실사 ● 4.214.23 무니에르 부셰나키(프랑스, 前국제문화재보존복원연구센터 사무총장) 2013. 6 : 2차 예비실사 ● 6.26.4 제인 헤링턴(호주, ICOMOS 호주위원회 위원장) 2013. 9 : 본실사 ● 9.19.6 그루밋 상가 레이(인도, ICOMOS 인도위원회) 2013. 12 : 세계유산위원회 패널 심사 및 보완자료 요청서 수령 2014. 2 : ICOMOS 추가자료 요청에 대한 답변 송부 2014. 6 : 세계유산위원회 최종 결정(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카타르)

우리의 남한산성? 이젠 세계의 남한산성!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공식 등재됐다. 경기도대표단(단장 김문수 도지사)은 22일 오후 3시30분(한국시각) 카타르의 수도 도하(Doha)에 위치한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공식 등재를 발표했다는 낭보를 타전했다. 이로써 400년 난공불락의 요새, 남한산성은 우리나라 11번째 세계유산으로 우뚝 서게 됐다. 남한산성 등재가 발표된 직후 김문수 지사는 21개 세계유산위원국을 대상으로 한 감사 인사말을 통해 오늘 이곳, 이 자리에서 남한산성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또 하나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음을 감사히 여기며, 대한민국과 경기도는 동아시아 역사 중심이었던 남한산성을 강력한 보호체계와 예산지원으로 인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이번 제3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총 49건의 등재 신청 유산 중 사전 완전성 평가에서 탈락한 9건을 제외한 40건(문화유산 28건, 자연유산 9건, 복합유산 3건)을 대상으로 등재 여부에 대해 심의를 진행한 가운데, 이 중 남한산성은 24번째로 심사 대상에 올라 최종 등재(Insribe)로 발표됐다. 앞서 지난 4월 2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심사기구인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심사평가서에서 등재 권고로 평가된 남한산성은 이변이 없는 한 이번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확실시 돼왔다.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등재 기준 (ⅱ), (ⅳ)에 충족돼 병자호란 등 국제 전쟁을 통해 동아시아 무기 발달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탁월한 증거 ▲조선의 자주독립의 수호를 위해 유사시 임시수도로 계획적으로 축조된 유일한 산성도시 ▲자연 지형을 활용해 성곽과 방어시설을 구축함으로써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축성술의 시대별 발달 단계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점 등이 세계유산적 가치로 인정받았다. 또한 ▲완전성 측면에서 효과적인 법적 보호체계와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이라는 단일 민간 전문기 관를 통해 보존 관리되고 있다는 점 ▲ 진정성 측면에서 성곽과 산성 도시는 충분한 역사적인 사실들을 구성 요소로 하고 있고 다양한 사료에 의해 진정성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평가를 받은 점이 결정적인 등재 요인으로 꼽혔다. 강현숙기자mom1209@kyeonggi.com

“다양한 직종서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행복일터 만들어야”

대한민국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직장을 떠나고 있다. 그리고 다시 회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재취업을 희망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실제로 통계청의 2013년 경력단절여성 통계 자료에 따르면 15~54세 미취업자 기혼 여성 두 명 중 한 명꼴인 48.1%가 결혼, 임신과 출산, 육아 등의 이유로 직장을 그만 둔 경력단절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고용률 70% 로드맵를 발표하고 현재 남성ㆍ전일제ㆍ제조업ㆍ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진 고용 패러다임을 앞으로는 여성ㆍ시간선택제ㆍ서비스업ㆍ중소기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한 중점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을 제시했으며 오는 2017년까지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242만개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야심찬 계획은 경력단절 현상으로 인한 여성의 낮은 고용률을 높이지 않고서는 실현 불가능한 목표다. 그래서 여성 고용률이 중요한 것이다. 여성고용률 제고에 핵심이 되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란 육아, 점진적 퇴직, 학업 등으로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제도로 4대 보험 가입, 최저임금 등 기본적 근로조건 보장, 임금 근로조건 등에 불합리한 차별을 받지 않는 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근로 제도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주최한 제2차 경기여성 일자리포럼에서 여성 시간선택제 일자리와 관련한 연구발표와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모색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경기도내 경력단절여성이 지난해 기준, 58만2천명으로 조사된 가운데 여성이 가정을 돌보면서 일할 수 있도록 선택 가능한 다양한 근무시간과 직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8일 오후 3시 경기도인재개발원 신관 2층에서 열린 2014년 제2차 경기여성 일자리포럼에서 참석자들은 반듯한(양질의) 여성적합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방안을 제시했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원장 박숙자)이 주관한 이번 포럼에는 이복실 여성가족부 차관, 박수영 경기도 행정1부지사와 16개 시도 여성가족연구원장, 여성단체 관계자, 여성 일자리 전문가, 업설계사, 도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시간 선택제 일자리 확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이날 포럼에서 최윤선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일자리전략센터장은 경기도 여성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대 실현방안: 시간선택제 일자리 사업 참여 실태와 수요조사 결과를 중심으로을 주제발표와 함께 동탄시티병원과 경기도 광주에 소재한 식품제조업체인 (주)제이케이푸드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사례가 발표됐다. 이와 함께 토론시간에는 김영옥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좌장을 맡고 최영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 이미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김성민 안산여성새로일하기센터 센터장, 윤수경 고용노동부 시간선택제 일자리창출지원팀 팀장이 토론에 참여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최윤선 도가족여성연구원 일자리전략센터장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고용노동부의 반듯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사업에 참여해 시간선택제 근로자에 대한 인건비 지원을 승인받은 경기도 사업체 278개소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시간선택제 일자리 적합 직무에 대해서는 단순노무직, 생산직, 서비스직, 사무직 순으로 조사돼 정부의 의도대로 반듯한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확대되기 위해선 전문직 등 다양한 직종에서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만들어져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 센터장은 올해 5월 경기도내 새일센터에서 기업체 취업을 희망하는 구직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주 3~4일(46.3%)이나 하루 4~6시간(42.4%) 근로 희망 비율이 높게 나타났으며 월 희망 임금은 평균 103만4천800원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은 올해 시간선택제 여성 일자리 확대를 위한 1차 연구과제로 여성 친화적이면서, 시간선택 활성화 추진계획에 포함된 보건 및 복지 등 사회서비스 분야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지원 방향에 부합하는 도내 병원 200개소와 어린이집 300개소를 대상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 수요조사를 실시했다. 이 같은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최윤선 센터장은 간호사나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등과 같은 특정한 자격증 소지자를 대상으로 하는 시간선택제일자리는 관련 교육기관이나 협회 등과 긴밀한 협조가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이날 포럼 토론시간에는 패널들의 열띤 토론과 함께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우선, 이미원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는 고용률 70%를 목표로 하는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지원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지만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제고를 통한 고용률 향상을 위해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고용시장에서 구조적인 변화가 없다면 양질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지원제도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제안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이라고 말했다. 김성민 안산여성새로일하기센터 센터장은 아직은 초기 단계이고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많이 확보되지 않았지만 점차 근무하는 종사자, 기업체의 수가 늘어나면 분명 이전과 다른 기업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우선적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며 최저임금을 급여로 지급받는 소기업에서도 시간제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의 시간선택제 일자리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박숙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장은 우리 연구원은 여성에게 적합한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해 일자리전략센터를 설치하고 연구와 컨설팅 등 실질적인 성과를 이끌어 내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오늘 포럼은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현장에서 여성의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현방안을 모색해보고자 마련했는데 이 같은 포럼이 경기도 여성들이 경력단절 없이 즐겁고 행복하게 일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일조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기독문화원, 21일 수원 세한교회서 ‘생명존종 상담세미나’

기독문화원(원장 유명재)는 21일 권선구 구운동 위치한 세한교회에서 생명존종 상담세미나 및 생명존종 집회를 개최한다. 생명존중을 위한 숙면을 즐기는 행복한 가정을 주제로 20일부터 열린 이번 행사는 각 지역 교회와 지역사회가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생명존중 정신을 되살려 자살, 낙태 등을 방지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상담세미나는 숙면과 행복한 가정(수면장애로 인한 우울증 극복)을 주요 내용으로 서정달 조원교회 목사, 치유상담전문가인 손매남(한국상담개발원장KCDI) 박사, 공보길 상담심리학 박사, 중독심리상담전문가 박종연 박사 등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 교회 성도와 수원시민을 대상으로 강의한다. 강의 내용도 수면장애, 수면장애와 중독, 수면장애와 자살과의 관련성, 어린이 품성교육 등 전문적이면서도 실생활에 유용하다. 유명재 기독문화원장은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불안에 빠져 있다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고 모든 생명에 가치를 부여하는 생명존종사상의 부활을 위해선 사회가정교회 차원의 공동체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행사에는 경기일보를 비롯해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총회장 주남석), 수원시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반종원), (사) 한국상담개발원(원장 손매남), (사)참 빛 청소년 상담마을(이사장 김봉태), (사) 수원생명의 전화(이사장 송종완), KidLead 한국(원장 공보길)이 동행기관으로 참여한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목조문화재의 적’ 흰개미를 소탕하라!

도내 문화재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경기도 문화재돌봄사업단이 5월 한 달 동안 목조문화재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 흰개미 소탕에 나선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연구원 문화재돌봄사업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화재돌봄사업단은 오는 5월 말까지 흰개미 등 생물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도내 80개소, 150여개 목조문화재를 대상으로 방충제 살포작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경기문화재연구원 조사에 따른 것으로 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남한산성 숭렬전 등 21개 목조문화재를 대상으로 흰개미 피해 여부를 조사한 결과, 가평 향교 등 10개 문화재가 흰개미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흰개미는 매년 4~5월께 여왕개미를 비롯한 예비 여왕개미들이 날개를 이용해 지붕틈새 등 목조건물 내부로 들어와 새로운 서식처를 꾸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날개가 없는 일개미는 먹이 활동을 위해 땅속을 통해 나무기둥 등 목재를 갉아 먹어 목조문화재의 붕괴 피해를 일으키기도 한다. 한편, 지난해 도입된 문화재돌봄사업단은 보수, 정비에 머물던 기존 문화재 관리방식을 벗어나 상시 관리 전담 요원을 배치하고 훼손 요인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적 관리 사업으로, 현재 29명의 전담요원이 활동 중이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경기천년’… 道 문화자원 집대성, ‘아카이브’ 필요하다

문화자원 아카이브 사업은 시대적 요구다. 우리나라는 반지의 제왕처럼 자국 신화를 바탕으로 글로벌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선진국의 사례에 자극 받아, 2000년대에 들어선 뒤 우리의 각종 문화 자산을 디지털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드는 작업이 활발히 진행돼 왔다. 그렇다면 다양한 문화가 꽃핀 경기도, 분단의 현장이자 통일의 길목 역할을 하는 경기도는 어떠한가? 그동안 경기도와 관련된 문화 자료들이 개인별로 여러 곳에 흩어져 있고 분산되거나 소멸될 가능성이 커서 아카이브 구축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됐다. 게다가 경기도 문화를 지역자료 수집 및 관리, 연구, 활용 측면에서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런 가운데 경기도 문화 및 역사 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보존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지난 7일 오후 2시 경기도인재개발원 다산홀에서 2018년 경기천년을 준비하기 위한 경기도 문화자원 아카이브 심포지엄이 열렸다. 아카이브(Archive)란 일반적으로 단순한 자료의 집적이 아니라 자료의 기획과 생성, 변화와 유통 전 과정에 대한 집적을 의미한다. 이날 심포지엄은 그동안 개별적으로 고민해왔던 문화자료 집적, 활용의 방법을 경기도문화원연합회, 경기문화재단, 경기도사이버도서관 3개 단체가 한자리에 모여 각자의 장점을 살려 경기도 문화자원 아카이브를 논의하는 공식적인 첫 번째 자리가 됐다. 특히, 범위도 방대하고 자료를 선정하는 기준도 마련해야 하고 성격과 유형에 맞게 정리하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 남았지만 언젠가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결론에 도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 통일 한국의 중심, 경기도 정체성 확립을 위한 문화자원 수집보존 공동 노력 필요 첫 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강진갑 경기대 경기도가 한국사 전개 과정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경기도의 정체성을 상징할 수 있는 분단시대의 유산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사라져 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지역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강 교수는 경기도의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문화와 사상을 바탕으로 한 지역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ㆍ관리ㆍ연구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1.68%에 불과한 경기도 문화예산을 전국 광역 자치단체 평균 수준인 4.81%으로 올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장우권 전남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지역자료 수집, 보존의 당위성과 실천방법 주제 발표에서 지역문화자원이 무엇인지, 지역아카이브의 필요성, 아카이브의 종류와 특징, 지역문화자원 수집범위, 선정기준과 원칙 등 지역자료 수집과 보존을 위한 실천적인 방법과 국내외 주요 사례들을 소개했다. 이어 이동준 이천문화원 사무국장은 도내 문화원에서 발간한 자료 현황과 아카이브의 성공적 운영을 위한 관련 기관간 상호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동준 사무국장은 경기도내 문화원의 방대한 자료들을 아카이빙하기 위해서는 아날로그 형태로 정리돼 있는 자료를 디지털화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며 기존의 보존ㆍ보관 중심의 향토자료실 운영을 지양하고 문화원에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기능을 통합한 라키비움(Larchiveum) 형태의 공간조성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조언했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송재술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팀장은 경기도 디지털 아카이브 경기도 메모리에 대한 소개와 향후 서비스 확대를 위한 추진 전략을 소개했다. ■ 유기적 협업체제 구축 및 아카이브 위원회 신설 등 제언 한국기록관리학회 회장 신라대 서혜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종합토론에서는 서교송 파주문화원 사무국장, 김지욱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학연구팀장, 김기영 연세대 교수가 지정 토론자로 나와 향후 경기도 문화자원 아카이빙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활발한 토론을 진행했다. 서교송 파주문화원 사무국장은 경기도 지식정보 자원에 대한 열린 접근과 공유를 취지로 경기도와 사이버도서관에서 추진하는 경기도 메모리는 도내 문화자원 아카이빙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며 경기도 메모리가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아카이빙의 성공적 사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경기도도서관과 지방문화원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유기적인 협업체제를 구축하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라 조언했다. 이어 김지욱 경기문화재단 경기학연구팀장은 지역 문화자원의 수집, 보존과 활용을 위한 경기도사이버도서관과 도내 문화원 간의 상생을 위한 역할 분담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기영 연세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경기도 문화자원 아키이브를 위한 과제로 도지사 직속 문화자원 아카이브 위원회 신설을 통해 협력의 콘트롤 타워를 구축하고 법제화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김기영 교수는 1단계 현행 경기도 메모리 개선이 이어 2단계 경기도 문화자원 아카이브 TF팀 구성, 3단계 환경기반 구축, 4단계 문화자원 아카이빙 시행 등의 단계적 접근 방안을 모색했다. 염상덕 경기도문화원연합회장은 매년 전국 문화원을 통해 수많은 지역 자료가 생산되고 있고 그 분야 또한 지명유래, 민담설화, 문화유적, 역사문화인물, 지역축제 등 문화 전 영역을 아우르고 있어 체계적인 정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며 경기도 문화자료 집대성을 이 심포지엄을 시작으로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고 말했다. 한배수 경기도 평생교육국장은 경기도의 매력적인 문화 유산을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하고, 콘텐츠화 해 경기도 미래 경제를 이끌어가는 동력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며 향후 100년, 1000년을 내다보고 후대 사람들이 우리가 쌓아놓은 문화적 성과를 바탕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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